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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 덩케르크 ★5/10

by Vanodif 2017. 7. 28.




★5/10



요즘 핫하디 핫한 영화 <덩케르크>를 보았다. 최근에는 공연이나 전시를 다니느라 영화를 안 본지 오래되었던 건데.

지난 번 <미녀와 야수>도 엄청 오랜만에 보았었고, 그 이후로 처음이다.

딱히 볼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ㅡ는 나는 요즘은 영화에 대한 의욕은 제로에 가깝다ㅡhy 씨가 교정 본 작품이라 해서 

원래는 책만 볼까 했다가, 하도 가는 곳마다 <덩케르크>라고 해서 보았다.

사실 난 그 인기 많은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거든.

자타가 공인하는 독특한 부류인 인팁들이 비인팁들과 드물게 호감을 공유하는 두 영화인데,

어째서 나는 그 두 영화에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덩케르크>는 반드시 용산 아이맥스에서 보시라'는 수많은 조언을 들었다.

4D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지만 아이맥스가 최고다라는 한결같은 평.

그래서 용산 아이맥스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롯데시네마 무료티켓이 있어서 롯데 시네마로 갔다. 그런데...

용산 롯데는 두 번 다시 안 가는 걸로.

쾌적하지 않았다.


암튼.


사람들의 평은 옳았다. 용산 아이맥스에서 보세요. 그랬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 확실하다.




내가 좀 반응하는 포인트가 살짝 이상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이 <덩케르크>도 그러했지.

말하자면 상당해 내 취향이 맞는 거긴 한데...

똑같은 작품을 헐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여기저기 피가 튀고 장엄한 음악과 효과에

엄청 가족가족, 조국, 인간애거리며 요란한 감정과 대사들이 난무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 지긋지긋한 감성팔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그런데 영국이 배경인 거라 대사가 참 없는 건데

기실 그것이 더 이해가 가지 뭔가. 전쟁터에서 대화는 무슨.


지겨울 틈이 없었고 쉴 새 없이 몰입했고 전쟁에 대한 메세지와 과하지 않고 담백한 감정의 표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난 왜 섬뜩했지?


...........



사람 신체의 절단이나 피를 못 보기 때문에 전쟁영화나 공포 스릴러물을 보지 않는데

그런 내게 있어 그런 장면이 없는 이 영화는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말이다

일반 2D영화관에서 보는 중에 공중에서 전투기가 다른 전투기를 쏘아대는 장면에서 말이다,

나도 모르게 '아! 이 장면은 아이맥스나 4D로 보았으면 좋았겠는데!' 싶었더라는 거다.

그리고는 그런 나 자신이 소름끼쳤다.


전쟁이 싫다면서, 혐오스럽다면서,

잔인한 장면 없이 사람이 개미처럼 죽어나가는 장면이 편안하게 느껴지다 못해

광활한 하늘을 가르며 전투기에서 적의 전투기를 쏘아 맞추는 장면에서 아이맥스나 4D를 떠올린 이유는

'좀 더 실감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었겠는가.

사람을 죽이고 죽는 일이 '좀 더 실감을 느끼고 싶은 쾌락'이라고....???


생각이 이에 이르자, 그 장면이 마치 피씨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이 여겨지면서

이 영화가 더욱 무서워졌다.


다른 전쟁영화를 보면 반 이상을 눈을 감고 보아도 감정이 지나치게 힘들어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구역질을 느끼고 나와 계속 기분이 더러운데,

이 영화는 전쟁을 다루었고 충분히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알겠는데도

왜 기분이 개운하지...?

분명 이쪽도 많이 죽었고, 상대 독일군을 잘도 쏘아 맞춰 죽였는데도 말이다.

차라리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과 메딕이 죽는 장면이 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데.




참 잘 보았고 좋은 영화였는데, 뒷골이 서늘하다.

이것이 놀란 감독이 노린 것이었다면 의도는 성공했다.

그런데 난 그 너무 액션영화를 본 듯한 이 기분이 유쾌하지 않단 말이다.

이 담백함은 분명 내가 가장 높게 치는 덕목임에도.


암튼 잘 모르겠다.

두 번 볼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주변에 보실 분이 있다면 가급적 아이맥스로 보시라고 권할 것 같다.

'그게 더 즐거울 테니까'.






-





내게는 아주 가벼운 공황장애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데,

잠수교를 걸을 때마다 잠수교가 무너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던가

버스를 타면 버스가 사고날 것 같아서 유리창 해머의 위치를 확인한다든가

길을 걸으면 그대로 내 발 앞의 땅이 싱크홀로 꺼지는 생각이 든다던가 뭐 그런 가벼운 불안이 늘 있다.

사람이어서 당연히 있는 건줄 알고 살았는데, 그 말에 대해 내 주변에 공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충격을 받았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상관은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그런 가벼운 염려증, 즉 불안증세는 물론 내가 선천적으로건 후천적으로건 조금 예민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만약 내가 분단국가이자 휴전국가가 아닌 스웨덴에서 태어났더라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


스웨덴인이, 미국인이, 영국인이, 하다 못해 일본인이 전쟁영화를 본다 해도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같은 전쟁영화를 본 이후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될까?

그들에게는 '세계의 어디선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이겠지만,

우리에겐 당장 10분 후라도 일어나려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전쟁이지 않은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잠시 중지된 상태의, 엄연한 전쟁 분단 국가에서 산다는 것은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자국땅에서 일어날 확률이 적은 타국의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른 느낌인 것이 분명하겠지.

뭐, 그런 걸로 보면 이라크 출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른 종류의 강렬함이겠지만서도.


암튼 그래선지 내게는 전쟁영화가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 건데,

그들에게도 그렇게 느껴질까.

이 조그만 땅덩어리 한 쪽에서는 꽃다운 청년들이 휴전선 바로 앞에서 총을 들고 보초를 서는데

나는 발레를 보며 황홀해하고,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공부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순간

너무나 기괴하고 낯선 장면으로 느껴지는 거다.


아무리 담백하다 해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는 언제나 보고 나면 기가 다 빨려 나가는 기분인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