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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ext

Charles Maturin, Melmoth the Wanderer 찰스 머튜린, 「방랑자 멜모스」

by Vanodif 2017. 11. 18.

The-Betrothed-de-Alessandro-Manzoni.pdf


p127-134


Rough Translation


*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는데 '멜모스'가 두 번이나 나왔다. 해서 작품을 찾았는데 번역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하니 구텐베르그 프로젝트에서 만든 원서 파일이 있어서 읽다가 흥미로워 번역해 버렸다. 재미삼아 간단히 번역한 것이라 수정 작업은 없다. 문장을 다듬지 않았으니 내용만 건지는 용도로 가볍게 읽기 바란다. 그보단 단어도 문장도 쉽고 길이도 짧으니 웬만하면 위에 첨부한 원서로 읽기를 권한다.












I. 초상 


"와인 한 잔 마시고 싶구나," 노인이 신음하며 말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더 살아있는 것 같을 게다."

 

존 멜모스는 와인을 갖다 드렸다. 죽어가는 남자는 두르고 있던 담요를 꽉 움켜쥔 채 조카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다.


"이 열쇠를 가져 가거라. 저기 비밀창고 속에 와인이 있다."


60년 간 삼촌 외엔 누구도 그 비밀창고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존은  알고 있었다. 그의 삼촌은 일생동안 탐욕스레 재산을 쌓아 올린 인물로, 죽는 순간까지 성직자에게 드리는 자신의 마지막 성례비조차 아까워하고 있었다.


비밀창고에 들어가자마자 존의 시선은 벽에 걸린 초상화에 머물렀다. 옷이나 얼굴에 특별한 점은 없었으나 초상화의 두 눈은 이 세상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눈 같았다. 마치 사우디의 글에서처럼 "그 눈은 악마적 빛으로 빛났다." 존이 초상화 가까이 촛불을 가져가자 가장자리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였다. "존 멜모스, 1646년." 공포에 질린 채 쳐다보고 있던 그는 삼촌의 기침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 초상화를 본 게냐?" 삼촌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예."


"다시 보게 될 게다. 아직 살아있거든."  


늦은 밤 구두쇠 삼촌이 죽는 순간에 존은 어떤 사람이 방에 들어와 찬찬히 주위를 둘러 보고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바로 그 초상화의 얼굴이었다! 순간 공포에 질린 존이 뛰어 나가 그를 쫓았지만, 삼촌의 비명이 그를 불러 세웠다. 고통은 거의 끝났고, 얼마 후 삼촌은 숨을 거두었다.


존을 부자로 만든 삼촌의 유언장에는 비밀창고에 있는 초상화를 없애버릴 것과 그 초상화 아래 마호가니 상자에 들어있는 문서를 원한다면 읽어도 되지만 파괴하라는 삼촌의 지시가 들어 있었다.


춥고 어둑어둑한 저녁, 존은 비밀창고로 들어가 문서를 발견하고는 미신적 공포감 속에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꽤나 힘든 작업이었던 것이, 문서가 퇴색되고 훼손되어 많은 부분 해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이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17세기에 스페인을 여행한 스탠튼이라는 영국인 이야기였다. 어느 폭풍우 치는 밤 스탠튼은 번개 맞아 죽은 두 연인의 시체가 자신 앞을 지나쳐 운구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시체를 조용히 쳐다보던 그가 갑자기 악마같은 끔찍한 웃음을 터뜨렸다. 스탠튼은 이후로 그 남자를 여러 번 보게 되는데 매번 공포스러운 상황에서였고, 그의 이름이 멜모스임을 알게 되었다. 이 일이 반복되자 스탠튼은 일종의 매혹 상태에 빠져 여기저기 그를 찾아 다니게 되었다. 결국 스탠튼은 그의 재산을 지키고 싶어하는 친척들에 의해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되는데, 멜모스와 친척들의 알려지지 않은 거래의 결과로 풀려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읽은 존 멜모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초상화의 눈을 쳐다보더니, 몸서리를 치며 액자에서 초상화를 뜯어내고는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벽난로 속에 초상화 조각을 집어던졌다.

집 근처에는 아일랜드의 바위 많은 위클로우 해안이 있었다. 다음 날 밤 선박 하나가 조난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밖으로 나간 존은 그 배가 가망 없음을 알았다. 바위 위에 내팽개쳐진 배 위로 30피트 넘는 거품으로 돌진하는 폭풍우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동을 존이 목격하는 동안 바위 조금 위쪽에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는데, 그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동정심이나 공포도 보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도, 도우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얼마 후 존은 또렷하게 들었다. "죽어 버려라!"


바로 그때 거대한 파도가 그 배로 돌진했고, 구경꾼들은 경악에 차 소리를 질렀다. 비명이 그쳤을 때 멜모스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위쪽 바위에 서있는 사람이 내는 소리였다. 존은 스탠튼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분노가 끓어오른 그는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잡은 바위가 부서지면서 그는 으르렁대는 깊은 아래로 휩쓸려 들어갔다.


여러 날이 지난 후에야 정신을 차린 존은 난파선 생존자인 스페인 사람이 자신을 해안으로 끌어올려 구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마자 존은 그에게 서둘러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는 막 떠나려 할 때 스페인 사람이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 그가 말했다, "제가 알기론 선생님 성함이" -- 그가 간신히 말했다 -- "멜모스 씨죠?"


"그렇습니다만."


"혹시" 스페인 사람이 재빨리 말했다, "백 사십 년 쯤 전에 스페인에 살았던 친척이 있는지요?"


"잘은 모르지만 그런 것 같더군요."


"선생님은 그분의 후손인지요? 선생님께서 갖고 계신 끔찍한 비밀이란 게...?" 그는 잠시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지더니 서서히 회복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상한 것은 이 사고로 인해 제가 어떤 분을 만날 수 있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그분은 제가 처한 기이한 상황에서 동정심이나 위안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인 거고요. 그 상황이란 게 절대 천기누설입니다만 선생님께만 알려드리지요."




II. 스페인 사람 이야기


"아시다시피 저는 스페인 사람입니다만 몬사다라는 귀족 집안 후손임을 알려드립니다. 저를 임신하셨을 때 어머니께선 저를 종교에 헌신시키겠다 신께 서언하셨지요. 자라서 속세를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저는 제 앞에 펼쳐진 수도원 생활이 두려워 서약 지킬 것을 거부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교활하고 거들먹거리는 사제에게 꼼짝 못하고 있었는데, 만약 제가 순종하지 않는다면 신의 저주를 제게 퍼부을 거라며 그가 협박했습니다.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 복종했지요.


"수도원 생활에 대해 기대했던 공포는 수도원의 악을 깨닫게 된 제가 겪은 고통과 혐오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편협함과 천박함, 위선, 그 모든 것에 전 반발심을 느꼈죠. 제가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탈출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희망의 빛이 비추었죠. 당찬 제 남동생이 우리 가족을 휘두르던 사제와 언쟁을 한 끝에 어렵사리 제게 연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 서약 교정을 위한 민사 절차가 착수될 거라 장담하더군요.


"하지만 민사 절차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저의 희망은 끝났습니다. 이 실패로 인해 제 마음이 얼마나 황량해졌는지는 말로 다 못합니다. 절망에는 기한이 없으니까요. 당시 저는 몇 시간이고 정원을 걷곤 했는데, 다른 수도사들과 함께 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거든요. 하루는 장기방치된 정원 분수를 수리하러 온 일꾼이 정원벽 아래에서 통로 하나를 발굴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낮밤으로 경계가 서는 바람에, 자유와 탈출에 대한 저의 바람은 감질나게만 되었죠.


"어느날 저녁, 그 통로 문 곁에서 우울하게 앉아 있는데 누군가 제 이름을 속삭이더군요. 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문 아래로 종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전 그 글씨체를 당장 알아 보았죠. 제 동생 후안의 글씨였거든요. 그 쪽지에는 후안이 아직도 제 탈출을 계획하고 있으며, 수도원 내부의 공모자를 발견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존속살인범이었는데, 처벌을 면하려고 수도사가 된 자였죠. 


"후안이 그에게 뇌물을 많이 주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그를 믿기 두려웠는데, 자신도 탈출하려 한다고 제게 털어 놓더군요. 결국 우리의 계획은 완성되었습니다. 그가 예배당 문 열쇠를 손에 넣었는데, 그곳 지하납골당은 정원으로 나가는 작은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었죠. 후안이 벽 위에서 던져주는 밧줄사다리를 타고서 우리는 탈출할 예정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그 문을 지나 수도원 밑의 그 무시무시한 통로를 기어갔습니다. 사다리 끝에 도달했을 때 손전등이 제 눈을 비추는 바람에 저는 동생 품에 떨어졌어요.


"우리는 마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고 제가 마차로 뛰어 들었습니다.


"형은 무사해"라고 후안이 저를 따라오면서 소리쳤습니다.


"그치만 너는?" 동생 뒤의 목소리가 대답하더군요. 동생이 휘청거리다 쓰러졌습니다. 제가 뛰어내려 갔는데 온통 피범벅이 되었어요. 동생이 죽었거든요. 흥분과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 저는 곧 의식을 잃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떄 저는 수도실도 아니고 십자가도 없는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옆에는 함께 탈출했던 사람이 서있더군요.


"'여기가 어디야?' 제가 물었습니다.


"'종교재판 감옥이지,' 그가 비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가 날 배신한 겁니다! 그는 내내 수도원장쪽 사람이었던 거예요.


"저는 종교재판을 받고 또 받았습니다. 수도원 탈출과 종교 서약을 어긴 죄 외에 동생 살인죄까지 덮어 쓴 거죠. 판사들 앞에 설 때마다 제 영혼은 쪼그라들었고, 결국 저는 화형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밤 그리고 그 이후로 여러 번, 한 사람이 저를 방문했습니다. 아무 도움이나 방해 없이 다니는 모양새가 마치 감옥 전체의 마스터키라도 가진 사람 같았죠. 그렇지만 종교재판 관련자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상 그는 종교재판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혹독하게 비판했죠. 하지만 제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사람 눈의 초자연적인 섬광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 눈에서 그처럼 활활 타오르는 눈빛은 본 적이 없었죠. 또한 기이했던 것은 그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마치 직접 목격한 것 마냥 계속 언급하더란 겁니다.


"마지막 재판 전날 밤 산 채로 화형당하는 흉측한 꿈에서 깬 저는 옆에 낯선 사람이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불현듯 저항할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나 그 사람 발 앞에 몸을 던지고는 살려달라 애원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요--단, 말로 못할 어떤 끔찍한 조건 하에 말입니다. 공포에 질린 저는 용기내어 거절했고 그는 떠났습니다.


"다음날 화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허나 무시무시한 운명이 이루어지기 전에 전 풀려났어요--그것도 저를 죽이기로 되어 있던 바로 그 화형집행인에 의해서 말입니다. 종교재판 감옥은 불타 없어졌고 혼란한 틈을 타 저는 탈출했습니다.


"사람 없는 거리를 달리느라 지친 저는 어떤 문에 기댔는데 문이 열리는 바람에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몸을 숨기고 있는데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나이 든 남자와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노인이 자신의 아들인 젊은이에게 고백하더군요. 실은 자신은 유대인이며 아들이 이스라엘 신앙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요.


"저는 그가 종교재판이 두려워 카톨릭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거짓 개종자임을 알았습니다. 흔치 않은 비밀을 알게되어 흥분한 저는 즉시 그에 따라 행동했지요. 그들 앞에 불쑥 나타나서는 저를 숨겨주지 않으면 노인을 고발하겠노라고 협박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공포에 휩싸였지만 곧 서둘러 저를 숨겨주겠노라 약속하더군요. 자신의 집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그러더니 안방에서 마룻바닥 한 부분을 들어 올리더군요.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끝에 있는 문을 열어주었고, 제가 들어가자 문을 닫고는 물러갔습니다.


"저는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벽에는 해골과 기형체들이 담긴 병, 그리고 흉물스러운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둘러 보면서 소름끼쳤죠.


"'왜 이것들을 두려워하는 게요?' 어떤 목소리가 물었습니다. '의료기구에 공포를 느끼면 안 되지.'


"돌아보니 굉장히 나이든 사람이 탁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비록 세월에 바랬지만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군요.


"'그대는 종교재판의 마수에서 도망친 것이오?' 노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대답했죠.


"'그렇다면 감옥에 있었을 때,' 그는 열정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말을 이었습니다, '끔찍한 댓가로 구해주겠다 제안한 유혹자를 만나셨소?'


"'맞습니다,' 저는 궁금해하며 답했습니다.


"'내 기도가 그렇다면 받아들여진 것이구려. 그리스도교 젊은이인 그대는 이곳에서 안전합니다. 내 유대인 동족 이외에 내 존재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소이다. 이제 나는 그대에게 고용된 것이외다.' 


"그는 제게 커다란 문서를 보여주더군요. 


"그가 말하기를 '이것은 종교재판 관료들은 알지 못하는 글자로 씌여진 것이오만 이제 바꿔 써야 할 때가 왔구려. 그런데 나이 든 내 눈으로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소이다. 허나 이 일은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해야만 하오.'


"문서를 힐끗 보니 스페인어로 적혀 있었으나 글자가 그리스어였죠. 저는 그것을 읽기 시작한 그대로 끝까지 눈도 들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




III. 임말리의 연애


"그 문서는 어떻게 스페인 상인이 자신의 젖먹이 딸은 남겨둔 채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동인도로 출발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성공한 그는 동쪽에 정착하기로 했고, 유모와 함께 딸을 데려오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배가 난파당한 거지요. 딸과 유모 만이 탈출했는데 후글리강 어귀에 있는 무인도에 발이 묶였더랬습니다. 그러다 유모는 죽고 딸만 살아 남았고요. 그 아이는 야성적이고 아름다운 자연의 딸로 자라나 외롭고 천진하게 살면서, 멀리서부터 그녀를 지켜보던 원주민들에 의해 여신으로 존경 받았습니다.


"(아이 스스로 지은 이름인) 임말리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으로 자랐을 때, 그녀가 그 섬에서 보아왔던 어두운 피부색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창백한 얼굴을 한 낯선 이가 그 섬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순진한 기쁨으로 가득 차 그를 환영했지요. 그는 자주 그녀를 찾아와서는 바깥 세계의 사악함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의 어조에서 묻어나는 불길한 신랄함에 대해 알 리 없는 그녀는 연민을 가지고서 완전히 빠져들어 그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부이며, 어디로 가건 자신도 따라 가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심각한 슬픔에 잠긴 채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갑작스레 그녀를 떠나서는 다시는 그 섬을 찾지 않았습니다.


"임말리는 구조되었고 자신의 신분을 되찾아 부유하고 독실한 스페인인 부모가 조심스레 키운 이시도라 데 알리아가가 되었습니다. 섬이랑 낯선 남자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죠. 그런데 어느 날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그녀는 다시 한 번 또렷하게 기억나는 눈을 보게 됩니다. 그 후 즉시 그 낯선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더니 그녀 집을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모릅니다. 다시 자주 찾아왔거든요. 그녀는 그를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했어요.


"마침내 다른 여행을 떠났던 그녀의 아버지가 새로 찾은 딸을 위해 적합한 신랑감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내용을 알렸습니다. 당황한 이시도라는 낯선 남자에게 자신을 구해달라 애원했습니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결국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이시도라는 폐허가 된 수도원에 사는 은둔자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결혼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왔고 그는 다시 방문하여 그들의 영원한 결혼을 밝히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고통의 극한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 말 못할 거래를 맺는 조건으로 풀어주겠다며 유혹하는 사악한 자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자가 그 아버지에게 나타나서는 딸이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한 거죠.


"아버지는 돌아가자마자 결혼식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이시도라는 남편에게 자신을 구해 달라고 애원했고요. 그는 약속을 한 후 떠났습니다. 혼례식날에 가면 무도회가 열렸고, 12시가 되자 이시도라는 그녀의 어깨를 만지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남편이었죠. 그들은 급히 서둘러 떠났지만 들통이 났습니다. 그녀의 오빠가 그들 부부를 불러 세우고는 검을 꺼내 든 겁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오빠가 피를 흘리며 죽었죠. 가족과 손님들은 공포에 빠진 채 몰려 들었고 낯선 남자는 팔을 휘두르며 그들을 쫓으려 했지만, 마치 땅에 뿌리라도 내린 듯 그들은 꼼짝 않고 서 있었습니다. 


"'이시도라, 나와 도망갑시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시도라는 그를 보고 죽은 오빠의 시체를 바라 보더니 혼절해 버렸고 낯선 남자는 무력하게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빠져 나갔습니다.


"부정함을 자인한 신부 이시도라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종신감금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래 살지 못했지요. 죽기 전에 그녀의 남편이 나타나 그녀가 치르려 하지 않을 끔찍한 것을 댓가로 자유와 행복, 그리고 사랑을 주겠다고 제안했던 겁니다. 이것이 치명적인 사랑을 금지된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자와 엮인 임말리의 불운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IV. 멜모스의 숙명


암말리의 이야기를 마친 몬사다는 그가 유태인 의사의 집을 떠난 일과 아일랜드에 온 목적에 대해 말하겠노라고 했다. 장황한 이야기는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몬사다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때는 폭풍우 치는 어두운 밤이었다. 두 사람은 불 가까이로 다가갔다.


"쉿!" 갑자기 몬사다가 말했다.


존 멜모스는 귀를 기울이며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누군가 보고 있어요!" 그가 소리쳤다.


그때 문이 열렸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방의 중앙을 향해 천천히 나아왔다. 몬사다는 성호를 그었고 기도하려 했다. 존 멜모스는 의자에 못 박힌 채 자신 앞에 다가선 자를 응시했다. 그는 정말로 방랑자 멜모스였다. 그러나 눈이 흐릿했다. 지옥의 불꽃이 점화된 두 눈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여," 이상하게 엄숙한 억양으로 방랑자가 말했다, "그대들이 여기서 내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그 운명은 완수되었다. 그대들의 조상이 귀환했다." 그는 존 멜모스를 향해 말을 이었다. "만약 나의 죄가 필사의 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나의 처벌 또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처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


"내가 금지된 비밀을 탐색한지 150년이 되었고 이제 그 벌을 치루어야 할 때가 왔다. 스스로의 동의가 없이는 누구도 나의 운명에 동참할 수 없었는데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영혼의 적인 악마로부터 인간이 살 수 있는 기간 이상의 생명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생각만 하면 장소를 이동할 수 있고, 위험에 직면해도 다치지 않으며, 지하감옥을 통과할 뿐 아니라, 건드리기만 해도 감옥 빗장을 녹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 그 능력으로 극한의 고통에 빠진 가엾은 자들을 유혹해 나와 그들의 입장을 뒤바꾼다는 조건 하에 그들을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더군.


"누구도 방랑자 멜모스와 운명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바꿀 자를 찾아 세상을 방랑했으나 그 누구도 세상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았어!" 그는 말을 멈추었다. "괜찮다면 한 시간 동안 휴식할 수 있게 해주게. 아, 휴식하며--눈을 붙이는 거야!"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이 깜짝 놀라자 그가 말했다. "나는 아직 사람이라네!"


그가 말하는 동안 섬뜩하고 조소적인 미소가 그의 얼굴 여기저기를 스쳤다. 존 멜모스와 몬사다는 방을 나왔고, 방랑자는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깊이 잠들었다.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까지 그 방에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방랑자가 일어났고, 그들은 그에게 일어난 변화를 보고는 공포에 질렸다. 엄청난 세월의 주름살이 몸 전체에 뒤덮은 것이다.


"나의 시간이 왔네," 그가 말했다. "나를 혼자 있게 해주게. 다가올 끔찍한 밤의 과정에서 어떤 소음이 들리건 가까이 오지 말게, 그대들 생명이 위험할 지니. 경고 명심하고 물러들 가게나!"



"그날 낮에 그들은 극도로 불안했고, 밤에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한밤중이 되자 형언할 수 없이 공포스런 소리가 방랑자의 방에서 시작되었는데, 애원하는 비명인지 신을 모독하는 고함소리인지 그들은 구별할 수 없었다.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그 방으로 갔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뒷계단으로 나있는 작은 문이 열려 있었는데, 그 근처에 축축한 모래와 진흙 발자국이 있었다. 발자국은 계단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정원으로, 그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바다를 내려다 보는 바위로 향해 있었다.


바위를 뒤덮은 가시덤불 사이로 누군가 다리를 끌면서 갔거나 끌려간 흔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바위 꼭대기에 닿았다. 그 바위는 넓고 황량하며 아래엔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험준한 바위 아래 뭔가가 강한 바람에 휘날리듯 걸려 있었다. 멜모스는 기어 내려가 그것을 붙잡았다. 전날 밤 방랑자가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이었다. 그것이 방랑자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멜모스와 몬사다는 조용히 공포에 질린 시선을 주고 받고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ㅡ 전체적으로 재밌는데 결말이 좀 재미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