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코엔, 『나는 오랫동안 그녀를 꿈꾸었다』
Thierry Cohen, Longtemps, j'ai reve d'elle
딱히 소설을 쓰겠다기 보단 다른 표출 방법을 알지 못해 쓴 첫소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좋은 평을 받자, 작가 요나는 독자와 출판사의 독촉에 떠밀려 두 번째 소설을 쓰지만 혹평을 받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실망을 하게 되어 이후 절필을 결심한다. 그러던 요나의 꿈 속에 어떤 여성이 나타나고, 요나는 그 여성이 자신의 운명의 상대임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힐릴이라는 노서적상이 운영하는 서점에 취직하여 일하는 중, 꿈속의 여성 리오르를 마침내 만나게 되는데...*
스포일링 할까, 말까.
하지 말아야겠지. 스포일링은 고약한 짓이니. -_-
아... 줄거리를 다 쓰지 않으면 난 나중에 또 잊어버리는데.
--- *
1.
이전에 바로 이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아마 싸이에 올렸던 거의 최초의 글이었을 텐데.
당연히 짧고 무지막지하게 조잡한 글이었다.
다만 난 내 결말이 더 맘에 든다, 는 것이 차이점.
내건 황당할 정도로 비극적이거든.
비극적이라 미처 느끼기도 전에 비극이 되어 버리는.
아주, 황당하여 나조차도 쓰고 나서 화를 버럭버럭, 내어 버린. =_=
글이라 할 수도 없는 글이었다.
2.
내가 이 소재ㅡ꿈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나다ㅡ를 사용할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꿈에서 보았지.
그리고 만났다.
그리고.
3.
내 결말이 비극인 것은 당연할 테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나치게 심술궂은 비극임이 문제인 거지만.
이건 뭐.
4.
사담이 길었다.
5.
내가 쓴 것은 쓴 것이고 그 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고
신통한 꿈 몇 개를 갖고 있는 나는 그 이후로도 꿈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고
지금 께엔 꿈이란, 낮동안 뇌 속에 입력된 수많은 정보와 감정들이 전두엽에 젤리 상태로 불안정하게 갇혀 있다가
잠을 자는 동안 꿈 속에서 비로소 풀려나, 그 중 저장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선별하고
카테고리에 배치하기 위한 작업ㅡ이란 것을 이젠 알고 있다, Long Live The Science!
6.
그런 철저하게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ㅡ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꿈 속에서 보다, 라는ㅡ설정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비과학적 설정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지.
요나는 어디선가 리오르를 본 적이 있는 것이다. 둘은 같은 파리에 살고 있지 않은가? 둘 다 지독히 책을 좋아하고? 예민하고? 같은 영혼에서 생겨난 운명의 두 사람이니 만큼 둘은 클릭하는 취향과 특성이 많은 것이다, 하여 둘이 만난 곳도 서점. 둘의 활동 반경은 비슷할 수 밖에 없단 뜻이다, 그러니 어디선가 스쳤을 확률이 몹시 높단 뜻이고, 특히 리오르는 뛰어난 미인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은가, 요나는 첫눈에 반한 것이지ㅡ의식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순간 스쳤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의식이 말이다. 그래서 꿈에서 풀려난 무의식이 반한 감정을 소환해 낸 것이고, 그 감정과 결합하여 '운명의 상대'라는 카테고리에 배치된 것이다, 오케이?
-_-
이런 비낭만을 보았나, 죽일 놈의 과학 같으니라고.
아... 이 글을 먼저 읽게 된다면 감상의 묘미를 파괴당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미리 써야 하려나. ㅡㅜ
여튼, 과학이야말로 최상의 가치다ㅡ라 널리 인정되는 21세기에 길들여진 내 분석은 그러하단 이야기다, 그냥 설정, 이란 한 단면을 가지고 다룬 것 뿐. 이런 분석 때문에 이 작품을 읽지 않으려 한다면 그대는 어차피 이 작품을 읽을 자격이 없다. 소설 아닌가. 소설. SF판타지도 화려하게 매력을 뽐내는 마당에 이 정도 설정이면 낭만으로 받아들여야 할 터.
7.
대단한 구성력이나 플롯을 기대한다면 실망한다, 반드시. 그런 거 별로 없어. 작품의 거의 끝부분 몇 페이지에 구성은 몰려 있다. 그 부분을 읽으면 조금 재밌긴 한데, 뭐 추리소설 이런 걸 떠올리면 또 눈썹끝이 내려갈ㅡ혹은 위로 치솟을?ㅡ것이고. 작품 거의 전반을 진행하는 동안 심심했던 구성력, 딱히 구성이라 할 만한 것도 없을 정도의 구성력에 비해 뒷부분에서 "뭐라고? 이 작품의 플롯이 엉망이라고?"라며 작가가 도끼눈을 치켜 뜨고 쓰기라도 한 듯 반짝* 구성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권하겠는가ㅡ그렇다.
모르겠다, 연애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권하는지는.
아마 지금 내 심장이 누군가로 인해 몰랑몰랑*한 상태이기 때문일 지도.
9.
이 책의 최강점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랑을 기다리는, 사랑에 빠진 남녀의 마음을 아주 섬세히 묘사했다는 것에 있다.
10.
여성이라면, 사랑에 다친 여성이라면 특히 읽기를 추천하는데ㅡ남성은... 내가 남성이 아니어서 모르겠다ㅡ아마 아주 많은 부분, 맞아 맞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위로를 받을 것이고. 그 뿐 아니라 이해하지 못했던 남성의 반응에 대한 심정까지 이해하게 되는 보너스도 있지. 사랑에 관심이 있는 여성이여, 이 책을 들어라! 다만 큰 기대는 말고 그저 소소한 연애 영화 한 편을 본다는 마음으로.
11.
아주, 전공책 저리가라다.
책 거의 전체가 이렇게 지저분. 모서리마다 접혀서 별표 번쩍거리고.
로엣과 으닐 탓이다.
아...* 힘들여 다독으로 바꾸었던 건데, 다시 꼼꼼으로 돌아가다니.
이 연애소설 하나 읽는데 일주일이 넘어 걸렸다니!
또 다시 삼천포지만
다독이 필요한 경우가 있고 꼼꼼독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다독의 장점은 꼼꼼 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단 말이다.
더군다나 난 선천적으로 꼼꼼이 맞는 스타일이어서 힘겹게 다독으로 바꾸었던 것인데, 아...*
여튼
플롯이나 구성력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저, '공감'만을 목적으로 읽는다면 상당히 책이 빛나 보일 것이다.
뭐랄까. 명언에 대한 욕심이 많은 작가 같달까.
읽다 보면 어느 새 '엇, 꼬엘류의 『연금술사』아냐, 이거?' 싶을 정도로 멋진 구절들이 넘쳐난다. 난 그런 책은 수필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이 책은 시기도 잘 맞았고, 내겐 아주 사랑스러웠던 책이어서.
사랑에 대한 멋진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심장이 촉촉한 봄비에 젖듯 아름다운 구절들에 젖어들 것이다.
다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단 느낌은 하나의 작은 함정.
좋은 구절을 한 번 더 듣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지.
12.
대사가 많은 소설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사는 참 쓰기 좋은 장치이지, 나도 대사를 쓰는 것이 훨씬 취향에 맞는 편이다. 그런데 대사를 무한정 쓰고 싶다면 '희곡'이란 장르가 있지 않은가? 혼자만의 독백을 무진장 하고 싶다면 '수필'이란 장르도 있고, 혼자의 독백을 고도로 압축, 정제시켜 예쁜 결정체로 만들고 싶다면 '시'라는 장르가 있다. 굳이 '소설'이란 장르를 취하면서까지 대사를 주저리 널어놓을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ㅡ어디까지나 내 의견이다. 소설이란 장르가 워낙 만만하지 않은가. 포용력이 넓고.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성장을 거듭해 시장을 당당하게 장악해 버렸고. 미국이건 소설이건 다수를 장악하기엔 포용력, 이상이 없다ㅡ아 또 삼천포. -_ㅜ
13.
오늘 왜 이렇게 삼천포가 심한 거지.
14.
바보.
대ㅡ바보 때문이야.
온통 서운해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지.
15.
이 작품은 거의 대사로 채워져 있다. 정말 대사가 많다. 그렇지만 그 '대사'라는 장치를 얄밉도록 영리하게 사용했달까. 뭐, 우주의 진리와 천하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그 못지 않게 귀중하긴 하지만 인간의 감성이 주로 담당하는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이디어나 분석을 통한 '이해' 보단 '공감'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러하기에 '사랑에 대한 공감'을 하는 데 있어서는 이 '대사'란 장치가 썩 효과적이란 것이지. 생생하게 실감이 나니까.
16.
마지막으로 번역이다. 박명숙님이 옮기신 것인데, 이름이 특별하진 않다 보니 이전에 이 분의 번역을 읽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프랑스 작품으로 이 정도 맘에 든 여성 번역가는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난 처음 대하는 것 같다. 놀랄 만큼 특별하다 할 순 없지만, 재치있고 깔끔한 번역이어서 난 참 고맙고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