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A. 클레이턴, 『파라오의 역사』와 위키백과 등을 참고하여 정리한 내용.
사진 출처 : 위키백과와 구글링
제2장 피라미드의 건설자들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년-2181년) - 505년
★ 이집트 문명의 성년기
★ 중앙집권강화와 효율적 행정체계 개발 → 이집트 강성
★ 왕의 개념 변화 : 신성한 면 강조. 호루스의 화신. 태양신 레의 아들.
★ 건축, 기술, 상형문자, 미술의 발전 → 피라미드 건설 (제 4왕조 때 절정) 조세르, 쿠푸, 카프레, 스핑크스.
★ 제6왕조 때 지방분권화 등장 → 왕권 약화 → BC 2181년 경 정치 무정부 상태 → 붕괴
제3왕조(기원전 2686-2613)
※ 사나크테 (BC 2686-2668)
▷ 호루스명 : 사나크테(강한 보호)
▷ 재위기간 18년
▷ 제2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카세켐위의 딸과 결혼
▷ 자신의 후계자이자 동생으로 알려진 조세르와 함께 시나이 반도의 광산을 개발하여 구리와 터키 석을 채광하였다.
▷ 시나이 반도의 유적지에는 사나크테가 나르메르가 보여준 자세로 적을 공격하는 모습
※ 조세르 (BC 2668-2649)
조세르 석상
▷ 호루스명: 네체리케트(성스러운 몸)
▷ 출생명 : 조세르
▷ 선왕 사나크테의 동생
▷ 재위기간 19년
▷ 조세르 석상
- 이집트 파라오의 전형적인 모습.
-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 된 왕의 상.
- 왕위 갱신제인 헤브-세드 때 사용된 길고 하얀 망토를 몸에 꼭 맞게 두르고 있는 모습.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
▷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 :
- 세계 최초의 석조건물.
- 재상 임호텝이 건설 .
- 6개의 마스타바 쌓아 올린 모습.
- 처음에는 조그마한 무덤으로 시작하였으나, 몇 번의 증축을 거쳐 62미터에 이르는 현재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되었다.
- 영혼을 위한 영역 만드는 것이 목적.
- 피라미드 단지를 둘러싼 담에는 14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만 진짜 문이고 나머지 13개는 가짜문.
- 출입구로 들어서면 세로 홀이 파인 주랑(그리스의 도리스식 기둥[2천년 후에 등장] 연상)이 늘어선 홀→뒤의 버팀벽의 일부.
- 흙벽돌 → 돌
- 케케르 띠장식
Khekher
※ 세켐케트 (BC 2649-2643)
▷호루스명: 세켐케트(몸이 강하다)
▷ 재위기간 6년
▷ 시나이의 와디 마가라에 있는 부조에서 보이는 왕의 자세
▷ 미완성된 계단 피라미드 - 도굴 흔적은 없는데 왕의 유해가 없었다.
※ 카바 (BC 2643년-2637)
▷ 호루스명 : 카바(영혼이 나타난다.)
▷ 미완성 계단 피라미드.
※ 후니 (BC 2637년-2613)
▷ 호루스명 : 후니(차는 자)
▷ 후니의 마이둠 피라미드
- 카이로 남쪽 80킬로미터에 있는 파이윰의 변두리 마이둠에 건설
- 전형적인 정사각형 기초의 피라미드 → 기하학적으로는 이집트 제4왕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피라미드와 사실상 똑같다
- 지금은 오래되어 외형을 둘러싼 석회암이 무너져내린 모습으로 남아있다
- 신왕국 시대에는 스네프루가 지은 것으로 여겨졌다.
- 마이둠의 피라미드 설계는 이후 피라미드 단지 설계의 규범이 된다.
- 후니의 뜰에 있는 귀족 마스타바에서 라호테프와 노프레트 부부의 상 출토.
제4왕조(기원전 2613-2498)
※ 스네프루 (BC 2613년-2589)
▷ 제3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의 딸인 헤테프-헤레스과 결혼
▷ 출생명 : 스네프루. 스네페르(아름다운 자)
▷ 후니가 후궁인 메레산크를 통해 낳은 자식.
▷ 재위기간 24년.
▷ 제1왕조 때 있었던 시나이 반도로의 원정을 재개하여 터키 석을 비롯한 그 지역의 자원을 손에 넣었다.
▷ 시나이의 와디 마가라에서 그는 신으로 숭배받았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부조에는 나르메르 시대에서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형적인 적을 제압하는 동작을 하고 있는 스네프루가 새겨져 있다.
▷ 훗날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지배했을 때(제15왕조)의 기록에 스네프루의 궁정 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쿠푸의 아들인 바네프레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신관 자자-엠-앙크와 뱃놀이 이야기에 등장.
▷ 스네프루의 두 개의 피라미드
남쪽 피라미드/굴절 피라미드
- 건축 도중 붕괴를 막기 위해 각도가 변경되었다.
북쪽 피라미드/붉은 피라미드
▷ 선왕 후니의 마이둠도 건설.
▷ 고대 이집트의 경제력 안정.
※ 쿠푸 (BC 2589-2566)
쿠푸왕의 석상 - 엄청난 건축물에도 불구하고 정작 왕 자신의 상은 작은 것 하나가 전부다.
▷ 출생명 : 쿠푸(크눔으로부터 보호받다.)
▷ 재위기간 23-24년.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자의 대피라미드의 건설자.
▷ 시나이 반도 원정에 나섰다
▷ 와디 마가라의 유적에는 쿠푸의 군대가 주둔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베두인족 제어, 터키석 채굴 목적.
▷ 남쪽 아스완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에도 쿠푸 왕의 흔적을 보여주는 비석이 남아 있다.
(우아, 시나이 반도에서 엘레판틴이라니 굉장한 영토를 누비고 다녔네. +_+)
▷ 쿠푸의 대피라미드
- 높이가 137.5m에 달해(건설 당시에는 146.6m) 지금까지 4천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건조물이었다.
- 쿠푸 이전의 파라오들은 다슈르와 사카라 등지에 피라미드를 조성했다.
- 쿠푸 이후 기자에 거대한 피라미드 단지가 조성된다.
- 대피라미드의 공사를 담당한 것은 건축가이자 쿠푸의 사촌인 헤몬
-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건설기간은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 현대 기술로도 이 대피라미드의 건축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 쿠푸 파라오의 석관은 거대한 회랑을 따라 올라가면 피라미드의 핵심에 있는 방에 있다. 이 석관은 거대한 한 개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이다.
- 피라미드 바깥 면은 빛나는 하얀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데, 위에서 아래로 덮어나갔다. 중세에 카이로 건설을 위해 이 석회암을 훔쳐갔다.
- 피라미드 근처에서 쿠푸의 배가 발견되었다.
수천년 동안 온전하게 보존된 쿠푸의 나무배.
ㅡ 피라미드 건설에 필요한 바위를 옮겨 나른 후 1,224개 조각으로 해체되어 바위 구멍에 묻혀 있었다.
※ 제데프레 (BC 2566-2558)
▷ 출생명 : 제데프레(레처럼 영원하다)
▷ 쿠푸의 아들로, 기자의 대피라미드와 장례용 배를 마무리했다.
▷ 기자 북쪽 8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아부 로아슈에 자신의 장례 기념물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피라미드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했다.
※ 카프레 (BC 2558-2532)
▷ 출생명 : 카프레(레처럼 나타난다)
▷ 재위기간 24-26년
▷ 아버지 쿠푸의 대피라미드 옆에 기자의 제2피라미드를 지었다.
▷ 스핑크스의 건설자로 인정되고 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기자의 제2피라미드
- 카프레의 제2피라미드의 높이는 136.4 미터로, 대피라미드보다 1.1미터가 낮다. 하지만 애초에 좀 더 높은 곳에 건설했기 때문에,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더 커 보인다. 피라미드 안의 유적들은 대부분 도굴꾼들이 가져갔다.
- 카프레를 기리는 골짜기 신전은 고왕국의 구조물들 중에 피라미드를 제외하면 가장 큰 건축물이다.
대스핑크스
-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를 본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스핑크스의 재료는 쿠푸의 대피라미드를 만들고 남은 석회암 바위산으로 알려져 있다.
- 스핑크스의 높이는 20미터, 길이는 73미터이다.
- 카프레가 세운 이후 한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기원전 1419년 경에 당시 왕자였던 투트모세 4세가 모래를 치웠다.
※ 멘카우레 (BC 2532-2504)
멘카우레와 그의 부인 카메레르네브티 2세
- 그리스의 아르카익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 하는 포즈.
멘카우레와 하토르여신(카메레르네브티 2세)
▷ 출생명 : 멘카우레(레의 영혼처럼 영원하다.)
기자의 제3피라미드
- 전설에 따르면, 멘카우레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운 쿠푸, 카프레와 달리 자비롭게 통치하였는데, 이것이 신들에게 모욕이 되었다. 신들은 부토의 신탁을 통하여 멘카우레가 6년의 치세 후에 죽고, 뒤에는 다시 억압적인 정권이 들어설 것이라 선포하였다. 멘카우레는 이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밤에 불을 밝혀 낮과 밤을 모두 살았다고 한다.
▷ 재위기간 28년.
▷ 쿠푸와 카프레 시대의 거대 공사 때문에 멘카우레가 28년씩이나 다스렸음에도 그만한 규모의 피라미드를 지을 수 없었다.
※ 셉세스카프 (BC 2504-2500)
▷ 출생명 : 셉세스카프(그의 영혼은 고귀하다.)
▷ 쿠엔레라는 배다른 형이 있었다. 하지만 멘카우레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인지 왕위는 솁세스카프가 계승하게 되었다.
▷ 아버지 멘카우레와 달리 기자가 아닌 사카라에 무덤을 세웠다.
▷ 피라미드가 아니라 커다란 직사각형 석관 모양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현재는 본모습을 찾기 어렵다.
제5왕조(기원전 2498-2345)
※ 우세르카프 (BC 2498-2491)
▷ 출생명 : 우세르카프(그의 영혼은 강하다.)
▷ 제데프레의 손자로, 솁세스카프와 친척 관계였다. 솁세스카레가 죽은 후, 그의 누이이자 멘카우레의 딸인 켄트카웨스와 결혼하여 왕위를 이었다.
▷ 제4왕조와 달리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의 무덤 근처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웠다.
▷ 기존의 피라미드에서는 무덤 신전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세르카프는 이것을 남쪽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태양신 숭배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후 제5왕조의 파라오들은 "태양 왕들"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 아부-구라브에 태양신전을 지었다 → 이곳에 원형적 오벨리스크 건설 → 이 유적은 아크나톤이 아텐에게 바치는 봉헌물이 되었다.
▷ 이후 제5왕조의 파라오들은 이 옆에 자신들의 태양신전을 지었다.
※ 사후레 (BC 2491년-2477)
▷ 출생명 : 사후레(레에 가까운 자)
▷ 아부시르에는 그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여기에 이집트와 레바논 지역간의 교류 장면이 그려져 있다.
※ 네페리르카레 (BC 2477-2467)
▷ 즉위명 : 네페리르카레(레의 영혼은 아름답다)
▷ 재위기간 1년 6개월
▷ 그의 이름은 아비도스 왕 목록에만 나온다. 토리노 파피루스에는 그의 이름이 나올 자리가 유실되어 있다.
※ 셉세스카레 (BC 2467-2460)
▷ 출생명 : 셉세스카레(레의 영혼은 고귀하다.)
※ 네페레프레 (BC 2460-2453)
▷ 출생명 : 네페레프레(레는 아름답다.)
※ 니우세르레 (BC 2453-2422)
▷ 즉위명 : 니우세르레(레의 힘을 가지다)
※ 멘카우호르 (BC 2422-2414)
▷ 즉위명 : 멘카우호르(레의 영혼들은 영원하다.)
※ 제드카레 (BC 2414-2375)
▷ 즉위명 : 제드카레(레의 영혼은 불멸이다.)
▷ 재위기간 32년 이상.
▷ 제드카레부터는 더이상 태양 신전을 짓지 않았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두고 오시리스의 영향력이 레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 그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위치해 있다. 거기서 제드카레의 거의 완성된 미라가 발견되었다.
※ 우나스 (BC 2375-2345)
▷ 출생명 : 우나스
▷ 우나스의 피라미드는 사카라 북부에 위치한다 → 벽에 새겨진 장식 겸 문서: "피라미드 문서"(Pyramid Texts).
- 사자의 서: 우나스를 시작으로 이러한 형식의 글을 새겨넣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 중왕국 시대 : 관 문서(Coffin Texts)
→ 신왕국 시대 : '사자의 서' 파피루스
▷ 피라미드에 이르는 둑길에는 사냥, 항해, 무역 등을 주제로 한 갖가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기근을 다룬 내용도 있다. 둑길의 남쪽 면에는 쿠푸의 배가 들어있던 것과 같은 배 구덩이가 두 개 발견되었다. 그러나 배는 발견되지 않았다.
▷ 19왕조의 대신관 카엠와세트가 우나스의 피라미드를 복구하고 새긴 비문이 남아 있다.
▷ 재위기간 30년.
제 6왕조 BC 2345 – 2181
테티 BC 2345 – 2333
우세르카레
페피 1세 BC 2332 – 2283 (메리레)
메렌레 BC 2283 – 2278 (넴티엠사프)
페피 2세 BC 2278 – 2184 (네페르카레)
• 호루스명 : 세헤텝 따위 (두 땅을 평화롭게 하는 자)
• 또 다른 이름 : 오토에스 (마네토)
• 5왕조 마지막 파라오인 우나스의 사위.
• 딸 세슈세셰트를 재상 메레루카와 결혼시켰다. (※ 메레루카의 화려한 마스타바가 유명) 33개 호화스러운 방, 이집트 귀족 무덤 중 가장크다.
• 약 12년간 다스림 → 비블로스, 누비아와 교역.
• 경호원에 의해 살해되었다. (마네토)
• 피라미드 :
→ 사카라 왕족 공동묘지의 북부 가장자리에 위치
→ 심하게 손상된 현실. 피라미드문서의 발췌문이 새겨져 있음. 뚜껑 없는 석관.
→ 1881년 목관 발견
→ 그의 피라미드 북쪽에 왕비 이푸트 (피라미드에서 그녀의 유해 발견),
카위트의 작은 피라미드가 발견.
▷ 후손 : 페피 1세, 우세르카레, 테티-앙크-켐 왕자, 인티 공주.
우세르카레
• 아비도스 왕 목록에 나오는 파라오.
• “레의 영혼은 강하다”
• 테티가 죽고 그 아들 페피 1세가 즉위하기까지 잠시 즉위
→ 반대파의 수장이었을 것이라는 주장 제기.
• 약 2-4년간 통치한 것으로 추측.
• 피라미드 등의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 남사카라 석관덮개를 통해 존재가 증명되었다.
• 남사카라 석관덮개 THE SOUTH SAQQARA STONE : Ankhesenpepi 앙케센페피의 석관뚜껑
Further to the left in this titulary band there are the names of Userkara and (circa 25 cm left of the middle of the slab breadth), the titles of Meryra Pepi and his mothers' names Ipwt.
(http://xoomer.virgilio.it/francescoraf/hesyra/ssannals.htm)
페피 1세 BC 2332
- 2283
• 메리레 : “레의 사랑을 받는 자.”
• 50년간 통치 → 어린 나이에 즉위 → 귀족 세력 성장
• 아들 : 후임 파라오인 메렌레와 페피 2세.
• 왕비 중 하나인 웨레트-임세트가 반란을 꾸며 처벌됨.
• ‘멤피스’의 어원 : 사카라 남부에 있는 페피 1세의 피라미드에 ‘멘-네페르 Mn-nfr (권위가 있고 선하다)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훗날 그리스 역사가들에 의해 와전됨.
• 상이집트의 히에라콘폴리스 :
→ 긴 지팡이를 짚고 있는 페피 1세의 거대한 동상이 발견됨. (부장품 도난)
→ 녹색 점판암 상 : 무릎 꿇고 양 손에 작은 꽃병 하나씩 들고 있는 페피 1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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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렌레
BC 2283 - 2278
• 출생명 : 넴티엠사프 “넴티는 그의 보호자”
• 페피 1세의 아들.
• 5년간 통치.
• 그의 시대에 웨니가 상이집트 총독이 됨.
• 11-13년간 다스렸다는 가설.
• 출생명 : 페피
• 즉위명 : 네페르카레 “레의 영혼은 아름답다.”
• 안크네스메리레와 무릎에 앉은 어린 페피 2세의 설화석고상 → 네메스를 쓴 어른의 축소형 → 어려서 즉위한 페피 2세의 모습.
• 아스완의 귀족 하르쿠프의 무덤 비문에 페피 2세의 어린 시절 묘사 → 아스완 남쪽 여행을 다녀온 하르쿠프가 가져온 귀중품과 보물들 중 난쟁이를 데려오라고 한 에피소드.
• 여러 왕비 중 네이트와 이프웨트가 잘 알려져 있다.
• 94년간 통치 → 왕권 약화. 귀족 세력 강화. 국외 의존도 상승 → 정치부패 가속화
메렌레 2세
• nmty m sA=f / Nemtiemsaf (Nemty Is His Protection)
• mry.n ra DfA m sA.f // Merenre Djefaemsaf
• 페피 2세와 네이트 왕비 사이의 아들.
• 1년 1개월 통치
• 살해당한 후 왕비 니토크리스가 복수한 후 자살했다는 설.
니토크리스
• nt-iqrty / Nitekreti (Nitocris) (Neith Is Perfect)
• Turin Canon assigns to her 2 years, 1 month and 1 day of rule while Manetho – 12 years and Erastotenes – 6 years.
• 마네토 : “니토크리스는 당대의 모든 남자보다 용감했고, 모든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으며, 살결은 희고 뺨은 붉었다.”
• 헤로도토스 : “오빠(테티 1세? 메렌레 2세?)를 살해한 범인들을 꾀로 물에 빠뜨려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 고고학적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