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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닉 베세이전 @예술의전당

by Vanodif 2017. 8. 21.







에너지도 없는데 카림 라시드 전시 후기라도 쓰려니 닉 베세이전 사진 찍은 게 또 아까워서. 그냥 '사진 투척으로 관람을 인증한다' 차원으로 사진만 올리려고. 이나마도 안 하면 기억이 휘발되니.



http://www.xrayman.co.kr/











이건 따로 설명이 없어도 딱 이해가 되겠지만서도, 왼쪽 위가 달리의 <Lobster Telephone (1936)>, 아래가 뒤샹의 <Fountain (1917)>, 오른쪽이 마그리트의 <Ceci n'est pas une pipe(1928)>에 대한 오마쥬다. 세 작가 모두 기존의 것을 뒤집는 아이디어로 유명하니 만큼 이 세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한 닉 베세이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이 살바도르 달리의 <Lobster Telephone (1936)>이다. 위의 한글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달리는 "내가 레스토랑에 가서 랍스터 구이를 주문했을 때 한 번도 전화기 구이가 나오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다분히 달리스러운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째서 샴페인은 항상 차게 서빙되는지, 전화기는 왜 늘 끈적하며 뜨뜻한지, 어째서 얼음 담긴 차가운 통에다 전화기를 두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했는데, 기존의 관습적 가치관 속에 함몰되어 새로운 가치를 시도할 생각을 않는 소위 '정상인'들의 편견과 편협을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전화기와 랍스터는 달리의 작품에 있어 서로 성적 연관성을 갖는다고 해석되며, 랍스터의 생식기 부분이라 여겼던 (실상 랍스터의 생식기는 다리의 안쪽에 있다) 꼬리부분이 전화기의 수화기 부분에 닿는 것으로 성적 함축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닉 베세이가 딱히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모르지, 작가가 무엇을 의도한 건지는. 




Aphrodisiac Telephone (1938)




달리의 이 하얀 버전을 보면 닉 베세이의 작품과 좀 더 연관성이 느껴진다. 달리의 작품도 기이하지만, 닉 베세이의 엑스레이 사진은 마치 랍스터가 수화기 위에 붙은 것이 아니라, 수화기 자체가 랍스터인 것처럼 보여서 한 편으로 보면 닉 베세이의 작품이 더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아름답다.











패러다임 쉬프트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르셸 뒤샹의 <Fountain (1917)>. 하지만 닉 베세이의 작품은 뒤샹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인기쟁이 르네 마그리트의 <Ceci n'est pas une pipe(1928)>. 이 작품은 좀 의아했던 것이, 마그리트의 이 작품은 메타 메세지에 관한 것으로 "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구와 함께 보는 저 파이프 형상이 포인트인데, 저 글귀를 삭제하고 파이프만 달랑 남긴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싶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다시 평범한 파이프의 본질로 환원시키는 것으로 보는 걸까나? 아... 벌써 시간을 이렇게. 안 되겠다. 사진만 두두둑. 멘트는 간결히.







전시장 내부













이 작품은 왜 찍었는고 하니,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프로그램 <뜨거운 사이다>의 지난 주였나, 어떤 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몰래카메라에 대한 한 패널의 멘트가 떠올라서이다. "마치 여성을 인격을 지닌 총체적 존재가 아닌, 가슴과 생식가라는 특정 부분으로 조각조각낸 '물체'로 인식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내용이었는데, 딱 그 말이 연상되었다. 천박한 인류의 문명은 이제 어디로 튀려나.







저 문구. "나는 엑스레이를 이용해 로봇이라는 경이로운 기술력 산물에 인간과 같은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보면서 기어 올라가 박박 지우고 싶은 어록이었다. 견딜 수 없는 유치함. 아직도 로봇이 신기한가?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나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 않나.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는가,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가?"도 안 싣느니만 못한 어록. 더군다나 사진의 저 가운데 손가락은 참을 수 없는 유치함이었다. 중2병 아닌 초딩들도 구사할 만한 구절. 내게는 공해로 인식되었다.







이건 실제로 보는 작품이 훨씬 예쁩니다. 폰으론 안 담긴다.







작품 앞 설명을 읽기 전에도 한 눈에 향수병의 질감과 포장의 질감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반듯한 직사각형의 매력에 빠져 있는데, 이렇게 보아서 반가웠다며.
































예쁨. 예쁨. 예쁨.








예쁨 x3







식용 성게. 저것이 어떻게 성게란 거지?







echinus esculentus. 찾으니까 이걸로 나오는데. 가시가 훨 작게 표현되었... 아, 또 이러고 있네. -_-







이 어록에 이르러서는 괴로웠다. 이젠 벽의 글을 안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이건 좋았는데.







장미의 단면을 찍은 듯한 모습.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이다. 뭐, 이런 생각이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서도, '정형외과 버스광고'로 이 사진을 밀어붙인 그 대담성에 박수를 보낸다. 나같으면 길거리에서 이 병원 광고를 보았다면 환호했을 것 같은데, 시민들의 항의를 받아 금방 내렸다고. 쳇.







이쪽을 보고 있는 안경낀 사람. 프흘흘.







근데 맨해튼의 버스는 달리는 버스에서 저 자세로 서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걸까? 그게 궁금했더라며.



















위의 두 사진은 한 작품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에너지 바닥났...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