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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엄익훈 - Illusion of Sculpture: Infinity Space @키미 아트

by Vanodif 2017. 8. 25.







엄익훈 개인전: Illusion of Sculpture: Infinity Space


http://kimiart.net/?portfolio_category=exhibition












다녀온 지는 좀 되지만 기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여서 끝나기 전에 포스팅을 한다. 언제나의 각오처럼 간단하게만.

평창동 언덕길에 이렇게 많은 갤러리가 있는 줄 몰랐다.

오래 전, 열심히 평창동을 다니던 때가 있었건만, 어째서 이런 곳이 있는 걸 몰랐을까.

키미아트는 올라가는 길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걷기에는 조금 힘들 것도 같았다.

내려오면서 한겨울 눈이 내리면 이 비탈길을 어떡하나, 걱정이.

하지만 너무 뜨거운 한여름낮이나 너무 추운 한겨울 해질녘이 아니라면,

천천히 산책의 여유를 즐기며 한적하고 고즈넉한 평창동의 언덕길을 걸어 키미아트에 닿는 것은 참 예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크지 않은 1층은 갤러리, 2층은 갤러리와 카페를 겸하고 있는 키미 아트 갤러리 카페. 어째 외래외래어인 것이지만 갤러리는 맘에 들었다. 엄익훈 님의 이 전시는 한 달 전에 검색한 그 많은 전시 중 단연코 시선을 끄는 작품들이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더랬다. 해서, 피곤타 심드렁한 마녀를 졸라서 갔다. 주말엔 할 일이 있는데, 투덜대던 마녀는 어지간하면 혼자 다니는 전시를 굳이 같이 가자고 자꾸 조르는 나를 좀 이상하게 여기며 기꺼이 함께 해주었다. 너무 더운 여름날 한낮에 뚜벅이로 갈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이 전시는 분명 마녀도 좋아하리라는 확신. 그리곤 들어갔던 입구에 서있던 작품이 위의 작품이다. 계단 혹은 벼랑 끝에 아슬아슬 서있는 길쭉한 사람의 형태에 마음이 설레었다. 그런 설정은 어째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가. 마녀가 사진을 잘 찍었지. 조각의 모양은 남성인데 그림자는 여성 같아 보인다.







이것은 흡사 이집트 상형문자

ㅡ혹은 잠수교에서 매일 보는 따오기인지 왜가리인지 하는 새 같다.

히에로글리프로 하면 토트 신의 '제후티' 새(따오기) 정도 되려나.

부리가 구부러지지 않았으니 플라밍고는 아니겠네.

아, 그런데 플라밍고가 데쉐르dSr였어? 붉은/사막이 dSrt이니 역시 그렇겠군.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 중 하나.

 나중에 불이 꺼졌을 때 폰으로 비추었는데, 의외로 저 나비형상을 잡아내는 위치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이 실체라니 짜릿하지 않은가?

























이건 정말이지 도깨비 방망이를 든 악마라 해도 믿겠는데







하트 풍선을 든 아이라나.















아래의 해설파일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그림자와 실체 사이의 여러 단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 국립발레단 이영철 님의 안무 <볼레로>를 보고는 그림자에 대해 생각했더랬는데, 그 때의 그림자가 이곳까지 연장된 느낌이었다. 무용수분들의 역동성과 외형이 다 보여줄 수 없는 감추어진 진실을 반영하는 것이 이영철 님의 그림자였다면, 엄익훈 님의 그림자는 또 다른 의미로 감상에의 묘한 쾌감을 주었다. 그것은 그림자를 형성하는 실체 때문이었는데, 보통은 그림자를 두고 실체의 부속물 정도로 여기지 않나. 온전한 형상을 갖춘 3차원의 실체를 간략한 2차원 실루엣으로만 표현한, 실체에 비해 열등할 수 밖에 없는 그림자의 역할. 그런데 말이다, 엄익훈 님의 작품에서는 그 둘의 위치는 같으나 가치가 역전된다. 실체가 있기에 그림자가 존재한다, 라는 둘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림자만 보아서는 실체를 알 수 없다, 라는 명제가 여기에서는 뒤바뀌는 것이다. 실체만 보아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림자를 보아야만 비로소 온전한 형태와 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 실체라는 것. 그것도 아주 세심히 각도와 위치를 맞추어 비춘 빛이 함께 해야만, 그때까지 의미를 만들지 못하던 그 실체의 가치인 그림자는 비로소 완성된다. 아, 한 가지 더 필요하지. 벽.


좀 더 생각해 볼까.

각자의 재질이 무엇이건, 각각의 실제 형태가 얼마나 기괴한 것이건 간에, 특정 위치에서 특정한 밝기의 빛을 비추면 그 빛이 통과해 닿는 벽에 아름다운 그림자가 완성된다. 그림자가 실체의 가치가 되는 세계. 실체 못지 않게 중요한것이 적확한 위치의 빛과 평편한 벽이다. 벽이 울퉁불퉁하다면 아무리 빛이 좋고 실체가 맞다 하더라도 그림자는 일그러질 것이니. 실체가 아름답다면 그 자체로 적당한 빛만 있으면 얼마든 완벽해질 수 있다. 실체가 훌륭하지 못하다면 세밀한 빛의 각도와 평편한 벽을 통해 실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자의 가치를 얻게 되겠지. 생각하려 들면 다양한 적용이 가능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

초신성폭발이 일자 암흑의 우주를 뚫고 빛이 태어났다.

그 빛은 사랑의 모양을 띈 채 공간을 형성하며 퍼져나갔다.







이 공간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의자 하나만 놓아주셨으면 좋았을 걸

ㅡ은 그럼 난 아예 안 나왔겠군.

하긴, 의자를 마땅히 어디에 둘 것인가도 하나의 문제가 되겠다만.











2층 카페 야외 테라스.





난간에 이렇게 액자가 있는데, 바보 같이 이 액자가 작품인 걸 몰랐지. 

오른쪽 아래에 작품명이 있는 걸 게다.

제대로 감상했을 걸.







가슴이 탁 트이는 풍경.

봄가을에 강추하는 곳입니다.







2층 실내 창문에 덧설치된 작품.

이렇게 보니 작품인 것이 확실하게 보이지?

심소라 님의 작품인데, 실제 산 뒤로 보이는 산 실루엣의 선 (정확히는 유릿장에 새긴 금)과

아래의 선들이 엄익훈 님의 실체ㅡ그림자에 대한 연상과 무리없이 잘 연결된다.

심소라 님의 이 작품에선 뭐랄까, 영혼, 혹은 추상의 세계라거나, 좀 식상하게 말하면

평행우주라거나 그런 것도 떠올랐고.

이 작품, 참 좋았다.






아래는 엄익훈 개인전에 대한 비평가분의 해설이다. 

아주아주 훌륭한 해설이니 가시게 되면 꼭 읽어 보시길.
























저 감각적인 레터링 데코레이션.

뉴욕치즈케익은 괜찮았고 아메리카노는 내가 맛을 잘 모르고







와인빙수는 비추입니다. 달착지근한 포도주스 맛이 나요. 얼음은 곱지 않고, 밑의 하얀색은 플레인 요거트. 젤리와 간혹 양갱과 블루베리가 있었는데, 식감이 별로였고 가성비가 안 좋았다. 하지만 보울이나 받침, 데코의 아름다움을 가격에 포함시킨다면 그리 많이 비싸진 않을지도. 다만 나는 다시 안 먹을 거예요.













카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었나 보다. 내려오는데 1층 전시실의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지고 보니 하나하나, 무슨 형체인지 그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없던 실체들. 그림자가 붙어야만 비로소 의미를 생성하는 실체들을 보며 살짝 뒷골이 오싹해졌던 건 왜일까. 그런 짜릿함까지. 정말 맘에 드는 작가다.







미세한 호흡처럼, 혹은 꺼져가는 생명인 양 희미하게 아름답던 공간.







불이 꺼진 작품 앞에 가서 불빛을 비추어 보았다.

이처럼 어지간한 각도로는 어림 없다.









그림자는 실체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지만

실체는 그림자가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당장 보기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이라 해도

적절한 조명과 장이 제공된다면

그림자를 합친 전체는 예술 작품이 될 지도 모른다.

고흐의 삶과 작품이 그러했던 것처럼.





갤러리를 나오면서 마녀에게 감사 인사를 대단하게 들었다.

전시도 카페도 너무나 맘에 든다며.

이런 전시 보게 해주어서 고맙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