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현 : 휴식의 숨>
* 기간: 2018년 5월 1일 (화) - 5월 20일 (일)
* 장소: 갤러리라이프
작년 여름이었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뜨거운 날씨에 지칠대로 지친 나는 어디론가 파란 바다를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일정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물기를 잃고서 바짝 마른 논바닥처럼 쩌억쩌억 갈라지고 있던 나는 미친 듯 인터넷을 검색했고, 그 중 눈에 띈 것이 안소현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한 눈에 마음이 시원해지던 작품들은 순식간에 메마른 내게 수분을 공급했고, 즉각적인 힐링이 제공되는 그 놀라운 경험. 나는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매일같이 안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또 보면서 9월의 늦은 휴가 때까지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다.
안소현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면 그냥 시원하다. 그러다 묘하게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Morning Sun
1952
* 사진 출처: https://gbtimes.com/edward-hoppers-paintings-inspired-gustav-deutsch
특히 저 위에 실은 <휴식의 나>는 어떤 면에선 호퍼의 <Morning Sun>이나 <Office in a Small City>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의 인상일 뿐, 조금만 쳐다보면 호퍼와 안소현 작가의 작품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Edward Hopper
Office in a Small City
1953
* 사진 출처: https://mises.ca/wp-content/uploads/2015/04/hopper-small-office-image.jpg
Edward Hopper
Rooms by the Sea
1951
* 사진 출처: https://www.1000museums.com/art_works/edward-hopper-rooms-by-the-sea
Edward Hopper
Gas
1940
* 사진 출처: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80000
호퍼의 작품은 첫째, 미국의 도시나 마을의 풍경을 다루고 있고, 둘째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을 담는다. 호퍼 작품 속의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삶이나 일상에 눌려 지쳐 보인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도 서로 정감 있는 소통을 주고 받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Edward Hopper
People in the Sun
1963
* 사진 출처: https://www.edwardhopper.net/people-in-the-sun.jsp
이런 작품에서 사람들은 함께 있지만 소통하고 있지 않다. 음. 좋아하는 작가다 보니 자꾸 호퍼에 대한 글이 길어지려는데 그만 줄여야겠다. 암튼 이처럼 호퍼의 작품은 매끈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소모된 모습이나 고독, 또는 온기 없이 건조하고 매끈한 인간관계를 드러낸다면, 안소현 작가의 작품은 정반대다. 바다나 자연이 가까이 있으며, 혼자 있어도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인물이 혼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자가 들어가 함께 할 자리가 없을 것 같은 호퍼의 <Morning Sun>이나 <Office in a Small City>에 비해, 안소현 작가의 <휴식의 나>, <깊은 휴식,>, <0의 휴식>을 보라. 의자는 하나 뿐이지만, 얼마든 말 없이 옆자리에 의자를 가져가 앉거나 누워도 될 것 같지 않은가? 그녀들은 그런 나를 보고 미소 지을 뿐, 별로 불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을 것 같다. 또한 여러 사람이 있는 작품은 어떤가. 호퍼의 <People in the Sun>에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있으나 서로를 향하지 않고 제각각의 세계에 있지만, 안소현 작가의 <휴식의 대화>에서는 세 사람 뿐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맞추고 있다. 썬글래스를 쓰고 있어도 시선과 마음이 서로에게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안 작가의 작품은 따스하고 포근하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은 <unch>에서조차 부부 같아 보이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기대듯 앉아 있어, 각자가 원하는 책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심지어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 <푸른 숨>과 <모과와 선인장>은 아예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여기 빈 의자가 있어요. 피곤한 당신은 그저 몸만 와서 여기에 앉아 쉬면 되어요. 햇살이 뜨겁지 않게 천을 드리워 두었고, 심심하지 않도록 선인장과 앵무새가 있으니, 그 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는 이곳에서 편히 쉬어요."
갤러리 라이프는 예당 길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그동안 예당에 다니면서 몇 번 보았더랬다. 볼 때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전시를 하고 있어서 몇 번이나 들어가려 했으나 시간이 늦었거나, 그날 발이 너무 아프거나 해서 ㅡ2층 갤러리는 힐을 신고 돌아다녀 발이 아픈 날은 방문하기 쉽지 않다. 늘 낮은 운동화를 갖고 다니는데, 하필 그런 날은 갖고 가지 않았어서는ㅡ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안소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예당 전시를 감상하자마자 달려갔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나로 하여금 들어가고 싶은 바람을 몇 번이나 느끼게 한 갤러리 라이프의 안목과, 내게 오아시스 같은 휴식을 주었던 안소현 작가님의 작품 둘 다에 대한 기대감으로 달려가는 마음에는 시원한 파도소리와 밝은 햇살, 그리고 바람소리가 이미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갤러리는 아담했다. 큰 갤러리에는 큰 갤러리의 매력이, 작은 갤러리에는 작은 갤러리의 매력이 있다. 요란하지 않고 간결한 갤러리와 작품들이 주는 쾌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들어서서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어도 누구도 나오지 않는 갤러리. 오롯이 나를 위한 곳인 것만 같아 신이 났다.
안소현
휴식의 나
116.8x91cm
Acrylic on canvas
2017
ㅡ 미야모투테루,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RHK출판 의 책표지
가장 좋아한 작품이다. 이 작품만 따로 벽에 걸려 있는데, 가까이 서면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녀가 앉아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까. 크고 시원한 저 창 밖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놀이 지고 있을까, 아니면 숲의 풍경이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시의 풍경일까. 여느 그림에서 이렇게 사람이 홀로 의자에 앉아 있다면 여지없이 '외로움'을 떠올렸을 것이나, 안온한 색감과 의자에 앉은 여성의 편안한 자세로 인해 이 작품에선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창 밖 하늘을 물들이는 놀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
안소현
숲의 수영장
116.8x91cm
Acrylic on canvas
2017
안소현 작가의 작품에는 선인장이나 나무가ㅡ심지어 그림이라 하더라도ㅡ등장한다. 그리고 앵무새, 의자 등이 등장하는데, 굳이 '앵무새'인 까닭을 여쭈었더니,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하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랐다. 맞다, 앵무새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지. 그리고는 답은 이어진다. "사람의 말을 하지만 먼저 말을 걸진 않죠. 사람이 말을 걸었을 때 대답을 하는 새예요. 휴식을 취하면서 혼자만 있는 건 심심한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진 않을 때, 앵무새가 있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두 번째 방문한 19일 토요일에는 안소현 작가께서 갤러리를 지키고 계셨다. 덕분에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작가님의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워낙 내 사진 찍는 솜씨가 발솜씨다 보니, 허락은 받았지만 올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 사진은 내 기준에선 잘 나왔다. 하지만 기왕이면 전문 사진 기자님께서 찍으시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자그마한 체구에 단아한 홑꺼풀의 큰 눈이 선해 보이는 안소현 작가는 봄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꽃잎 같이 섬세하고 고운 분이었다. 여린 체구 만큼이나 여린 마음을 지닌 안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푸른 순수함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웃는 모습이 맑고 예쁜, 소녀같은 화가. 안소현 작가님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이 공간에 안 작가님과의 대화 내용을 얼만큼 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밀한 개인사 이야기는 되도록 밝히지 않고, 큐레이트분께 들은 내용과,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에 대한 이야기 정도만 소개하고자 한다. 조심스러워하신 앞으로 하실 작품에 대한 귀한 이야기는 내 마음 속에만 소중히 간직하며 충분한 기간을 두고 기대하기로.
안소현
SCARF
116.8x91cm
Acrylic on canvas
2017
판매불가/작가소장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책표지
이 작품, 색감이 왜 이렇게 나왔지. 실제로는 훨씬 산뜻하고 깔끔하다. 그동안 안소현 작가의 작품들을 인터넷에서 하나 둘 씩 찾아 보았지만, 빨래가 걸려 있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보았다. 왜 빨래인가요, 라는 질문에 "빨래를 좋아하거든요. 뽀송뽀송한 향이 집안 가득 채우는 것도 좋고"라는 답. 과연 단정한 외모와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답이다.
나로 말하자면 처음에 저 빨래를 빨래라 보지 않았다. 커튼 대용으로 드리운 천으로 보았다. 예전, 피크닉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의 '그녀'가 있었다. 'Lune(달)'이라는 닉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거의 완벽한 피크닉 도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을 모아 피크닉을 할 때 푸른 잔디 위에 세팅을 마친 후 옅은 보라색 천을 나뭇가지에 기다랗게 드리우곤 했다. 푸릇한 초록의 잔디, 붉고 푸른 체크무늬의 테이블보와 하얀 의자들. 테이블의 빵, 채소, 과일, 와인, 잔들과 나무.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를 드리우는 연보랏빛 린넨 천. 그 피크닉을 완벽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다른 모든 구색을 갖춘 식기와 테이블과 음식들이 아니었다. 바로 그 천 하나였다. 그 연보랏빛 천 아래에서라면 돌덩이에 앉아 캔맥주를 마신다 하더라도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피크닉이 될 것만 같았다. 해서 나는 그 천을 떠올렸다.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법의 화룡정점.
그 천을 다시 자세히 보자. 빨랫줄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가 없다. 뜬금없이 하늘에서 털썩, 내려와 걸린 것 같은 느낌. 마치 하늘로부터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여기 경치와, 선인장과, 의자와, 앵무새를 갖추어 놓았어. 와서 앉아 편히 쉬려무나. 아, 그늘이 필요하겠네. 차르르. 여기, 경치를 가리지 않는 그늘을 내려 줄게. 이제 모든 것이 완벽한, 오롯이 너만을 위한 휴식이 마련되었으니, 너는 그 무엇도 염려하지 말고 여기 앉아 쉬면 돼."
이 작품이 재미난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안소현 작가 작품의 특징은 장소의 모호함이다. 그림 속의 장소는 작가의 상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그 장소가 실재하는 어디인지가 모호하다. 한국일 수도 있고 미국일 수도 있고 저세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가? '옥상'. 실제로 옥상을 염두에 두고 그리셨다 한다. 그런데 말이다. 옥상, 이라 하고 보면 이상한 것이 있지? 바로 선인장이다. 선인장은 옥상의 시멘트 바닥에 심겨 있는 거야? 바로 이 맛이다. 안소현 님 작품의 깜찍한 묘미.
안소현
산과 사막의 앵무새
116.8x91cm
Acrylic on canvas
2017
참 그렇지? 옥상인가 하면 바닥이 흙이고, 그런데 카펫은 벽에 걸려 있고, 벽 너머는 또 산이고. 이쯤 되면 장소 검증은 의미 없는 일이다. 그저 보고 휴식을 취하면 되는 일.
안소현
모과와 선인장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7
모과였구나. 난 망고인 줄. 그런데 작가께서도 딱히 뭔가를 생각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내가 '망고'라고 말하니깐 대뜸, "제가 망고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요"라는 답을 해주신 것을 보면. 귀여우셨는데. 내가 안소현 님을 좋아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작품 해석에 대한 많은 부분을 감상자에게 부여하신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친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데, 지난 <북유럽 현대무용>을 강의하신 페르난도 멜로 역시 작품의 의미를 묻는 수강생의 질문에 "정해진 절대적인 의미는 없다. 무엇이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이 정답이다. 그러니 '이렇게 받아들인 내 생각이 옳을까?'라는 의심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받아들인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든 작품의 의미가 된다"라 답했다. 이에 대해 마녀는 '작가로서의 책임의식이 결여된 자세가 아니냐'라는 불만을 표했고, 그에 대해 나는 '자신의 작품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 작품의 의미를 제한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부조리극의 정수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저술한 사무엘 베케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수없는 질문에 "그것을 알았더라면 내가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것이 정답이라 생각한다.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을 비롯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중심주의, 해체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작품을 진정 사랑하고 그 작품의 무한한 잠재성을 계발하기 원하는 작가라면 작품의 의미를 제한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작가는 작품에 있어 절대적이라 인식되는 존재인 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해석해 버리면 작품은 그 지점에서 모든 성장과 발전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A라고 하면 그 작품은 A인 것이다. 그 외 다른 무엇이 있겠나. 하여, 작품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는 작품에 대한 작가로서의 권한을 최대한 내려놓는 것이라 생각한다. 신기하고 재미나지 않을까? 작가인 자신조차 생각지 못한 해석으로 수없이 자라나고 뻗어가는 작품의 의미를 지켜본다는 사실이 말이다. 모르겠다. 정작 작가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안소현 작가는 작품을 만드실 때의 배경이나 가졌던 생각, 느낌 등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지만, 딱히 '이것은 이것을 의미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잘 모르겠기도 해요' 식으로 다른 해석에 대한 여지를 열어두는 화법을 구사하시는데, 나는 안 작가님의 그런 태도가 참 고마웠다. 해서 '저는 이것을 보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어요"라 말씀드리면 "와! 멋지네요.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네요! 신기해요. 그리고 제 작품을 그렇게 꼼꼼하고 진지하게 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 답하신다. 자신의 작품이 다른 보는 이의 내면에서 이래저래 변화하는 모습을 즐겁고 신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안 작가님의 겸손과 순수와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이 길어졌는데... 제목에는 '모과'라 적혀 있지만 가만히 보면 모과, 망고, 혹은 레몬이라 해도 상관 없을 과일이었다. 쨍하니 파란 하늘 아래 선인장이 있고 의자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과일이 놓여 있다. 햇살 가득한 날씨에 선인장과 연결시키면 이국적인 열대과일 망고를 연상해 보는 것이 잘 어울릴 수 있겠다. 뜨거운 햇살 아래 앉아 망고를 꺼내어 길게 반을 잘라 커다란 씨를 꺼낸다. 격자무늬로 칼집을 낸 망고를 살짝 뒤집어 그 달큼한 열대향을 맡으며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으로 열대의 진득한 과즙이 퍼진다. 지금에 와 고백하자면 작가님께 내가 '망고'라 말했을 때 입으론 망고라 말하면서 머릿속으로는 파파야를 떠올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오글오글 알갱이진 씨가 거추장스럽긴 하지만 망고보단 파파야가 더 맛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브라질을 떠올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상상 속에서 망고니 파파야니를 다 먹고 나면 이제는 레몬으로 이미지를 넘긴다. 자, 따가운 햇살 아래 선인장, 의자. 레몬을 손에 들고 껍질을 벗긴다. 새콤한 레몬향이 공기 중에 탁! 터진다. 껍질을 벗기고 과육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미 눈꼬리는 가늘어지고 입 안엔 침이 고인다.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 선인장을 바라보면서 레몬 과육 하나를 입에 넣는다. 순간, 마비될 듯한 신맛이 입안과 광대뼈, 턱뼈로 번지고, 이내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부르르 떨린다. 꿀꺽, 삼킨 입 안은 단맛 없는 신맛만 남아, 매운 음식을 먹은 직후와 마찬가지로 나른함이 퍼진다. 눈물이라도 맺힐 듯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위로 햇살의 쾌활한 웃음소리가 내려 앉는다.
자아, 이제 모과로 가볼까. 근데 모과는 가을의 과일이다. 그러니 저 하늘은ㅡ이제는 미세먼지 때문에 보기 쉽지 않은ㅡ한국 특유의 청명한 가을하늘이 된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가을 낮 1시 50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사물의 그림자가 서서히 숨겨둔 몸을 드러내는 시각. 의자에 앉아 정직한 선인장과 함께 한낮의 광합성을 흠뻑 즐긴 나는 문득 허기를 느낀다. 그때 코를 자극하는 모과의 향. 팔을 뻗어 모과를 손에 든다. 단단한 과육은 생식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온몸으로 경고한다. 한껏 벌렸던 입을 오므려 모과의 표면에 입맞춘다. 코로 스며드는 모과향으로 배를 채우는 오후.
아... 후기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ㅠ 이러고 놀면 일주일이 지나도 후기는 끝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안 작가님의 작품이라 자꾸 더 놀고 싶지만 이러면 안 돼. 떽.
안소현
식물원
260.6x193.3cm
Acrylic on canvas
2017
문제의 선인장 작품이다. 무엇을 상상하건 이 사진과 실제 작품을 볼 때의 느낌은 다르다. 그것은 작품의 크기 때문이다. 갤러리 벽 한 면을 채울 정도로 큰 작품이다. 그만큼 작품 앞에 서면 식물원의 높은 천장이 더 실감나서 시원하고 한적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그리신 직후 그린 작품이 다음다음 작품인 <0의 휴식>이라 한다. 한참 선인장에 빠져 선인장을 그리셨는데, 큰 이 작품을 그리는 동안 어깨와 팔이 너무 아프셨다고. 마침내 작품을 끝내고 작품에서 '빠져 나왔을' 땐 진이 다 빠져서는 당분간 더 이상 선인장은 그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해서 다 지우고 그저 쉬고만 싶은 심정으로 그리신 것이 <0의 휴식>. 참 멋지지 않은가? 오래 전 읽은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였던 것 같다. 버스에 서서 갈 때 읽는 쉬운책이 생물학 책이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책벌레들이 사용하는 방법이긴 한데, 이를 테면 전공책 읽다 머리 아플 때 쉬기 위해 소설책을 읽는 식. 암튼 그런 느낌인 거다. 엄청나게 에너지를 소모시킨 작품을 끝낸 후 쉬고 싶은 마음으로 또 다른 작품을 그리신다는 거. 신비로운 존재다, 예술가들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작품은 직접 ㅡ가능한 여러 번ㅡ 보아야 한다. 나도 한 번 갔을 땐 이 작품의 매력을 별로 알지 못했다. 두 번 가고 세 번째 갔을 때 이 작품 앞에서 한참 서있었다. 그만큼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선인장이 한 종류 밖에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종류가 있다. 바닥의 돌멩이 같은 조그만 것들도 다 선인장이며 왼쪽 아래 풀처럼 보이는 것도 선인장이다. 한 마디로 선인장 파티! 쿠션 있는 썬베드에 누워 은은한 흙내음과 선인장 향을 맡으며 유리창을 통과하는 햇살을 즐기는 상상 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왜 선인장인가요? 라는 질문에 안소현 님의 답을 들었다.
안: 제가 나약하기 때문이에요. 선인장은 물을 거의 주지 않아도 잘 살잖아요. 가시를 품은 것도 그러하고. 그런 선인장이 제게는 굉장한 '강하다' 느껴지거든요. 그런 강함이 부러워서 그리고 싶었어요.
나: '나약하다' 하심은 육체적인 건가요, 정신적인 건가요?
안: 정신적인 거예요. 제가 정신력이 강하지 않아요.
나: 유리멘탈이시구나.
안: 네. 하고픈 말도 잘 못하고 스트레스를 안으로 삼키는 편이에요.
나: 상처 잘 받으시겠네요.
안: 네...
불현듯 그녀가 지나온 사춘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런 감수성이라면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해 받기 쉽지 않았겠다. 상냥한 성격 탓에 친구들은 있었겠지만 생각과 마음, 느낌을 결 따라 이해 받을 순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내가 느끼는 바를 공감할 자가 없다는 그 외로움. 아마도 안 작가님의 청소년기와 20대 초중반은 체념에 가까운 공허로 차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렸다. 선인장처럼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떤 모습이건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고 가치로운 것이니. 그런 유리멘탈 덕분에 이처럼 근사한 작품들을 내가 볼 수 있는 것이겠죠.
안 작가님의 경우 배경이야 큰 붓으로 칠하지만 그 외 모두를 가는 붓으로 작업한다셨다. 그래선지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섬세한 빛이나 사물의 재질 표현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하나하나 꼼꼼하고 정성스러운 작업. 안 작가님의 작품 앞에선 가급적 많은 시간은 할애하여, 멀리서 작품이 한 눈에 들어오는 느낌도 즐기고 가까이서 세밀한 작업이 주는 묘미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소현
깊은 휴식
100x65.1cm
Acrylic on canvas
2017
다른 밝은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은 짙은 푸른색이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돌아서면 이상하게 자꾸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처음 보았을 땐 사막에 누운 사람을 그리신 것 같았다. 실제로 작가께서 사막을 여행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를 상기한 그림이라는 갤러리 관계자님의 설명이 있었다. 사막의 푸른 밤이 내려앉고, 걷다 지친 여행자는 선인장 곁에 수건을 펼치고 누워 잠에 빠진다. 여행자치고는 짐이 없다. 그 말은 챙겨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 선인장 아래의 동그란 무언가가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이 여행 짐인 걸까? 그렇다 해도, 짐을 곁에 두고 잠을 잘 것 같은데 말이다. 잠든 그녀의 심정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사막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사막이 아니라 바닷속이라 보기도 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과연 깊은 바다 밑바닥 같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저 선인장은 순식간에 해초로 둔갑한다. 그러고 보았을 때 일행이 해초 아래 둥근 것에 대해 '문어 머리가 아닐까?'하는 엉뚱하고도 재미난 생각을 내놓았다. 덕분에 으하하, 웃었고.
그러자 이번엔 생각이 이렇게 방향을 트는 거다. 우주라면 어떨까. 저 푸른색은 끝없는 우주공간이고, 바닥은 지구, 또는 달, 또는 그 무엇이라 할 만한 행성의 표면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니 공간 감각이 너무 확장되어 고독이 심화된다. 진공의 먹먹함이 전달되는 기분.
안소현
0의 휴식
100x72.7cm
Acrylic on canvas
2017
판매불가/작가소장
막상 작품 앞에 서면 참 뭐가 없다. 파란색은 바다인 것 같은데 그 흔한 파도나 포말 한 점 그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인가 하니 저 의자가 너무 위태롭다. 그저 의자 하나와 발판, 그리고 그 의자에 널부러지듯 기대어 쉬고 있는 여성이 전부다. 심심하다. 그런데 자꾸 생각난다. 그녀를 작품 중앙에 배치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가쪽으로 밀어내었기에 내 마음이 들어설 공간이 마련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의자 하나 둘 정도 가져가 앉아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슬쩍 미소짓겠지만, 상관 않고 다시 고개 돌려 잠들 것이다. 바람이 불 것이고 새가 지날 것이며 에너지가 차오를 것이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묘미 두 가지는 머리카락과 그림자다. 머리카락이 의외로 섬세하다. 손을 얹어 쓰다듬어 주고 싶도록 뭔가 다정한 느낌을 낸다. 그리고 그림자. 앞으로 안소현 작가의 작품을 볼 때는 그림자를 잊지 말고 감상하도록 하자. 안 작가님의 작품이 초현실주의 성향을 띠는 것에는 배경 장소의 모호함과 익숙한 듯 생경한 사물의 배치 이외 그림자도 한 몫 한다. 누워 있는 사람과 그림자의 모양이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받아 들이는 안소현 님의 유머다.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게 돼.
안소현
(각각) 휴식의 숲
24.2x24.2cm
Acrylic on canvas
2017
소품이라 할 만한 작은 작품 세 점인데, 이 작품들은 귀여웠다. 쉬고 싶은데 남 눈에 띄고 싶진 않아. 그렇다고 너무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곳에 홀로 남겨지고 싶지도 않아.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느낄 순 있지만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 타인과 함께 하되 나만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 이렇게 풀에 가려진 곳이라면 지척에 누군가 있다 해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바쁜 일상 속 숨이 막혀올 때마다 달려가 남몰래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숨을 돌릴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꼭 옷장 밑에 숨어 있는 강아지의 발 같지 않아요?
안소현
푸른 숨
145.5x112.1cm
Acrylic on canvas
2017
한 눈에 시원ㅡ해 보이는 작품이다. 한가롭고 자유롭고 분명 비어 있는데도 풍성한 느낌이 드는 작품. 아마 휴식이 충만하다 느껴서 그러한 것이리라. 안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일행이 좋은 포인트 하나를 발견했는데, 많은 작품들이 태양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림자가 다 의자 뒤쪽으로 향하고 있다. 안소현 님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햇살.
나: 무엇을 할 때가 가장 좋으세요?
안: 햇볕을 쬘 때요.
나: 햇볕?
안: 네. 햇살은 제게 치유예요. 따뜻한 햇살을 쬐고 있으면 마음이 밝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전 햇볕이 정말 좋아요.
그래서인가. 그녀의 작품에선 잘 구워진 햇볕 내음이 난다. 햇살 아래 뽀득하게 말린 빨래와 같이 모든 슬픔이 살균된 뽀송한 느낌. 어쩌면 그녀는 작품 속 햇살을 통해 살아오면서 겪었던 슬픔과 아픔을 정화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햇살을 느끼며 작품을 보는 내 마음 속 멍자국 역시, 볼 때마다 조금씩 옅어진다.
유난히 정겨운 이 작품 <푸른 숨>에는 빈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의자가 비었다지만 결코 빈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작품 전체를 감도는 자유와 휴식이 주는 풍요로움 때문이다. 내가 한 의자에 앉는다면 다른 누군가 와서 옆의 의자에 앉겠지. 이런 세팅에서라면 그 사람이 누구건 간에 침묵, 혹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저런 배경에서 살인이나 강도,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 않겠나. 아마 서로의 꿈이나 좋아하는 것들, 그리운 것들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나누는 이야기를 앵무새들이 지켜보며 들을 것 같고, 그 중 몇 마디를 따라할 테다. 이를 테면 '친구', 라거나 '좋아요', '보고 싶다' 등.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머리 위에서 펄럭이는 빨래는 그 상쾌한 향을 퍼뜨리며 멋진 배경 음악이 되어 줄 것이다. 꽃인 듯 옆에 놓여 있는 선인장은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기억했다가 감감히 먼 훗날 우리 모두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어느 날엔가, 길을 물어오는 별에게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전해줄 지도 모른다.
안소현
unch
100x72.7cm
Acrylic on canvas
2017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것은 키 웨스트였다. 헤밍웨이의 별장이 있는 미국 최남단 키 웨스트. 그곳에서 이런 곳을 보았던가? 떠올리니 딱히 생각나는 곳은 없다. 다만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푸른 바다와 그곳이 휴양지임을 나타내는 이정표, 한적한 카페와 카페의 노란 문과 차양. 그리고 느긋하게 각자의 책을 읽고 있는 부부의 모습에서 음소거된 집중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주변의 음들이 소거된다고 느낄 정도의 몰입은 그 자체가 휴식이 된다. 주변에 신경쓸 사람이나 일이 있다면 이처럼 편안한 몰입은 불가하다. 그들은 지금, 각자가 들여다 보고 있는 책인지 메뉴판인지 속에 흠뻑 빠져 있다. 찰나의 정적.
풀이 없군요, 싶겠지만 앞에 있는 파티션에 풀이 그려져 있다.
안소현
휴식의 대화
193.3x121.1cm
Acrylic on canvas
2017
갤러리 관계자분에 따르면 이 작품은 작가께서 이태원에 갔을 때 눈에 들어온 장면을 그리신 것이라 한다. 물론 거리에 사람들은 더 많았다. 그런데 이 세 분만 눈에 확 들어왔다고.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배경은 지우고 이 분들만 그렸다. 말하자면 그림 속 사람들은 실존 인물인 거다. 지금도 이태원 어딘가를 다니다 스칠 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배경의 벽에는 나무와 풀을 그려 넣으셨다. 마치 저들이 앉은 곳 맞은 편에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이 작품에서 세 사람의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가 들리는 것만 같다.
거의 열 달 가량을 보고 싶어 하다 드디어 만나게 된 안소현 작가의 작품들은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보면 볼수록 더 좋았다. 아무도 없는 갤러리에서 작품 앞에 홀로 있으면 바다 소리, 바람결, 햇살의 따스함, 그리고 간헐적인 새의 지저귐이 들리는 것만 같다. 거기다 직접 만난 안소현 님은 상냥하고 따스하게 감상자를 맞이해 주셔서, 그런 분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더욱 상승했다. 갤러리 라이프 응모전에서 당선되어 데뷔하셨기에 앞으로도 갤러리 라이프에서 작품전을 하시겠지만, 현재 인기가 너무 많으셔서ㅡ는 작품을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ㅡ여기저기 전시 콜을 많이 받고 계시다는 갤러리 관계자분의 말씀이 있었다.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디자인 아트 페어>에서 5월 26일까지 전시 중이며, 7월 8일까지 압구정동 K현대미술관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에서는 좀 더 많은 작품을 전시 중이다. <디자인 아트 페어>에서는 이번 주말, 안소현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유리멘탈을 지닌 내향적인 사람들은 대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람들과 함께 할 때의 에너지 소모가 몹시 큽니다. 적당히 이야기 나누시고 너무 소모하지는 맙시다ㅡ는 내가 소모할 작가님의 여유가 필요하니깐요. ㅋ 아마 내가 작가님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빼먹은 방문객 중 하나일 것이다. 미, 미안해요.;;
<디자인 아트 페어>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34857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
K현대미술관: https://www.kmcaseou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