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글 작성: 2018년 5월 21일 → 뒤로 밀리면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안소현 님 작품 후기를 마저 완성하기 위해 포스팅을 앞으로 끌어 올린다.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exhibit/detail?searchSeq=34857
* 디자인 아트페어 홈페이지: https://daf777.modoo.at/
좀전에 <안소현 개인전> 포스팅을 끝냈더니 이젠 정말 에너지가 없다. 하지만 진행 중인 전시가 있어 이렇게 간신히 사진을 올린다. 이 전시는 안소현 작가 때문에 간 것이어서 안소현 님의 작품에 대한 멘트만 쓰고 나머지는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지금 당장은 에너지가 너무 없으니 그냥 안소현 님의 작품에 대한 멘트도 에너지 날 때마다 조금씩 할 생각이다.;;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기대했던 <텅 빈 대화>를 보아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안소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안소현
텅 빈 대화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16
↑ 안소현 작가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안소현 님께 주셨던 편지.
위의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고 아래의 사진은 일행이 찍은 것이다. 일행과 나의 키 차이는 거의 15cm에 달하는 관계로 미세하게 시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찍은 사진이 더 실제 색감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일행의 높이에선 이렇게 보이는 걸까나.
이 날의 전시는 안 작가님께 받은 초대권으로 간 것이었지만, 진즉에 티몬에서 할인 티켓을 구매해 두었더랬다. 이유는 안 작가님의 바로 이 작품 하나 때문이었다. 이 작품을 직접 보고 싶어서 티켓을 샀다. 그리고 직접 본 작품은... 비록 부스가 좁아 갤러리에서처럼 여유롭게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끌려 들어가게 되는 작품. 이 작품이 내뿜는 아우라는 대단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마침내 작품을 시작하려 결심하고는 그리신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배경의 바탕색을 칠하는 데만도 자그마치 1년이 걸린 작품이다. 이유인 즉 작가께서 의도하신 '바로 그 파란색'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다. 그리고는 저 테이블 하나를 완성하는 데 또 다시 한 달이 꼬박 걸렸다고. 그만큼 많은 정성과 고민이 들어 있는 작품이고, 그런 정성과 시간과 고민과 두려움과 기대는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나 내면의 빛으로 맺혀 있다. 이 작품에 얽힌 배경 이야기는 위의 파란 종이에 안 작가께서 손글씨로 써서 붙여 두셨다. 너무 질문을 많이 받으셨기 때문에 글로 써서 붙여 두셨다고. 차분하게 잘 정리하신 글이니 찬찬히 읽어 보면 좋다.
쨍한 블루, 저 바다는 그 푸름 만큼이나 농밀한 감정을 품고 있다.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저 푸른색은 그래, 바다일 수도 있겠고 하늘일 수도 있겠고 무한한 우주일 수도 있겠다. 그도 아니면 피안의 세계일 수도 있겠고 그리움의 호수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무엇이건 저 파란색을 마주하는 마음에선 알 수 없는 일렁임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정성스러운 파랑'. 그리고 땀방울 서려 있는 그라데이션. 그 색 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뭉클하다.
테이블이 마련되었고 정갈한 테이블보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마주 보는 의자 두 개. 안 작가님의 심정으로는 한 의자에는 어머니를, 다른 의자에는 안 작가님 자신을 앉히고 싶으셨을 것 같다. 음식도, 음료수도, 꽃도 없이 그저 바다와 하늘과 대화 만으로 마음을 채우며 도란도란 끝없이 다정한 수다를 어머니와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계실 때는 힘든 적도 많았겠지만, 엄마란 존재가 그렇다. 가까움과는 별개로 의외로 깊은 속마음을 터놓기 쉽지 않은 대상. 그것은 '엄마'와 '딸'이라는 위치 때문이다. 어른이 된 이제, '엄마'와 '딸'이라는 특수 수직관계가 아니라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그 어떤 전제 조건도 필요하지 않은 평등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진심과 진심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은,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쯤 꿈꿀 만한 일일 것이다. 나라면 무슨 대화를 나눌까. 이런 곳에 엄마와 둘이 나란히 앉는다면, 길고 긴 시간 동안 둘이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을까. 비어 있는 두 의자에서 이 삶을 살아간 수많은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들의 소소한 담소가 도란도란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이 테이블을 드리우는 그림자와 비추는 햇살을 잊지 말고 감상하도록 하자. 아랫부분에 살짝 접힌 테이블보를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내게는 위트로 인식되는 안 작가님의 사랑스러운 특징이다.
이제 이들 위를 드리우는 그늘의 주인공을 보자. 비치 파라솔이 아니다. 텐트 위에 치는 타프tarp도 아니다. 놀랍게도 회전목마의 지붕입니다. 클로즈업 사진이 없는데, 가까이서 보면 저 타원형 속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사람 형상도 있고 꽃 형상도 있고. 정작 안소현 님은 '뭔지 정확히 의도하고 그린 건 없어요. 그래서 뭉그러진 느낌이 나기도 하죠'하며 웃는다. 무엇이라도 편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한 감상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다. 저 회전목마 지붕 가의 타원을 둘러싼 점도 어찌나 공들여 찍으셨는지, 가만히 보다 보면 그 점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다. 또한 회전목마 지붕의 끝은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어 화려함과 환상을 더한다.
이 작품을 구상화가 아닌 초현실적 작품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이 지붕에 있다. 허공에 떠있는 자체로 이미 마법이라도 시작하려는 듯 몽환적인 지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 무엇이라도 일어날 수 있게 한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보면 이 회전목마 지붕이 서서히 돌아가면서 아련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어린 시절 즐겼던 회전목마의 기억. 그 기억에는 반드시 부모님이 계실 것이다. 나는 말을 탈 거야, 나는 마차를 탈 거야, 하며 아빠 엄마와 함께 말을 타기도 하고 혼자 타다가 고개 돌려 부모님을 확인하기도 하는 기억들.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그대로 소환된다. 그 기억들은 행복이다. 삶에서 가장 걱정 없고 행복했던 시기. 그래. 어린 시절에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즐기는 회전목마 하나로 세상 모두를 얻은 듯 행복했다. 그런 단순하고 소박했던 나와, 그 내가 사랑했던 시절의 한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어쩌면 그 시절의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어 버린 우리는, 그 시절의 내가 보는 시선으로 지금의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무 다른 생각 없이 부모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운 건지도.
이 아름다운 작품 앞에 서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금의 부모님을, 혹은 훗날 다른 세계에서 만나게 될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잠시나마 그리운 시절의 행복 속에 치유 받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권한다. 이 작품은 절대 팔지 않으실 텐데, 다음에 깨끗하고 조용하고 한적한 갤러리에서 꼭 다시 감상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디자인 아트 페어>와 현재 K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상한 나라의 괴짜들>에서 전시 중인 안소현 작가의 작품들은 <안온한 시간들>을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제에 관한 안 작가님의 설명이다.
안소현
기다림-카페
60.6x50cm
Acrylic on canvas
2017
부스가 좁아서 작품들이 위 아래로 빡빡하게 전시되어 있어 감상하기에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안 작가님의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것은 좋다. 이 작품에서 내 눈에 띈 것은 단연코 저 그림자였다.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혹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진지한 옆얼굴을 한 남성이 조용히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안소현
두 의자
65.1x53cm
Acrylic on canvas
2017
안소현
Green
72.7x53cm
Acrylic on canvas
2017
안소현
비누
53x53cm
Acrylic on canvas
2017
제목이 <비누>인데 내 눈에는 버터 조각으로 보였을 뿐이고.;; 내가 배가 고팠는가. 아마도 저 놋그릇을 연상시키는 접시ㅡ비누 받침대겠지ㅡ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놋그릇에 버터를 올리는 것도 딱히 평범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재밌는 게다. 평범한 사물들을 그린 것 같은데 가만히 쳐다보면 물음표가 자꾸 생긴다. 얌전하고 단아한 모습 안에 독특한 세계를 지닌 작가님 답다고 느끼는 부분. 비누라 보더라도 저렇게 고급스런 접시 내지는 트레이에 정성스레 올려둔 모습이 신기하다. 받침대에 물 한 방울 없이 단정히 놓여 있는 저 비누는, 세상을 향한 마음의 때를 말끔하게 씻어 내고픈 마음일지도.
안소현
조각연구소
145.5x89.4cm
Acrylic on canvas
2018
안소현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후기는 http://vanodif.tistory.com/1184 에 싣겠습니다. 두 군데에 올리려니 힘들어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니 만큼 쓰는대로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안소현
나의 두 의자
116.8x80.3cm
Acrylic on canvas
2017
안소현
기다림
116.8x72.7cm
Acrylic on canvas
2016
안소현
자켓과 야자수
100x80.3cm
Acrylic on canvas
2016
안소현
하늘 테라스
112.1x145.5cm
Acrylic on canvas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