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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Book Review

도스또예프스끼,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1849 <도끼 전집 ⑤> (미완성 작품)

by Vanodif 2014. 10. 24.













도스토예프스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Netochka Nezvanova』, 1849 <도끼 전집 ⑤> (미완성 작품)






간단한 줄거리로 이 책의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의 일부분을 싣는다.




이 소설은 네또츠까(원래의 이름인 안나의 애칭, 또 다른 애칭은 아네따)라는 한 소녀가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슬픈 과거의 회상이자 비극적인 이야기다. 소설은 여주인공의 계부인 예피모프에 관련된 이야기와, 공작의 딸 까쨔와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나중에 보호자가 되는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에 얽힌 이야기라는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각기 독립된 주제와 사건의 전개, 정점, 해소를 지니고 있는 독립적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1849년에 나온 판본에는 <유년 시절>, <새로운 인생>,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에는 몇 개의 에피소드가 있어서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사건의 진행에 가속도를 부여하면서 각각의 이야기를 비극적인 결말로 이끌고 있다.




이 정도의 줄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은 이후의 글은 읽지 않으시기를.












********** 다음의 줄거리와 후기는 개인의 기억저장을 위해 기록한 것으로, 지나친 스포일링이 있으니

 

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으시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







1. 예피모프


네또츠까의 생부는 결혼 한지 1년 만에 사망했고, 네또츠까의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예고루쉬까 뻬뜨로비치 예피모프와 재혼한다. 예피모프는 원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 우연한 기회로 이탈리아 지휘자로부터 유명한 바이올린을 물려 받았고, 또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후,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에 비해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오만함 때문에 성공을 위한 착실한 단계를 밟지 않은 채 허세에 찬 생활을 하게 되고, 재산을 보고 네또츠까 어머니와 결혼했으나 돈이 떨어지자 일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는 와이프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망쳤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네또츠까는 이상하게 이 계부 예피모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집착하는데, 그녀의 눈에 이 한량 예술가 백수 아버지는 생존을 위해 억척스레 일하는 엄격한 어머니에게 고난을 당하는 피해자로 비쳤기 때문이다. 어느 날, 예피모프는 심부름 가는 네또츠까의 손에 들린 돈을 탐내게 되고, 그 돈을 건네준 네또츠까는 처음으로 엄마를 속이고 거짓말 한 것으로 인해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그즈음 그 마을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S씨가 방문하여 연주를 하는데, 돈이 없는 예피모프는 심부름 가는 네또츠까로부터 돈을 빼앗기 위해 거의 협박하기에 이르고, 네또츠까가 죄의식과 배신감에 슬퍼하는 것을 본 어머니가 정황을 눈치채게 되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그 때 예피모프의 옛이야기를 해준 사람이자 그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B 씨가 소개해준 예술후원가 H공작이 예피모프에게 보낸 S 연주회의 초대장이 도착한다. 예피모프가 공연에 가 밤새 들어오지 않은 동안 평소 병약하던 네또츠까의 어머니는 잠든 중에 사망하고, 예피모프는 새벽에 들어와 이를 발견하지만, S의 연주를 듣고는 진정한 예술을 확인한 충격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예피모프는 어머니의 시체를 방치한 채, 네또츠까를 데리고 도망을 가는데, 그나마도 도중에 네또츠까를 버리고 혼자 가버린다. 버려진 네또츠까가 정신을 잃은 곳은 마침 H공작의 집 앞이었고, H공작은 네또츠까를 받아들여 양육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얼마 후 네또츠까는 H공작으로부터 예피모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2. 까쨔(까쩬까)


H공작의 딸 까쨔는 몹시 아름다운 소녀로, 할머니의 집에서 살다가 돌아와 네또츠까와 지내게 된다. 쾌활하고 발랄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까쨔는 웃는 것과 놀기를 좋아하는데, 까쨔에게 첫눈에 반한 네또츠까는 아직 병약하여 같이 어울려 놀지 못하고, 그런 네또츠까를 까쨔는 지루하게 여긴다. 네또츠까의 건강이 회복되자 까짜와 같이 수업을 듣게 되는데, 가정교사인 마담 레오따르는 네또츠까의 영민함을 칭찬하며 까쨔의 나태함을 꾸짖는다. 이에 질투에 휩싸인 까쨔는 네또츠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질문을 함으로 네또츠까에게 상처를 주는데, 이 일로 인해 마담 레오따르 뿐 아니라, 까쨔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 아버지 H공작으로부터도 호되게 혼나게 된다. 그 이후 침울하게 지내던 까짜는 네또츠까를 싫어하는 자신의 어머니의 방에서 지내기도 하는데, 어느날 까쨔의 잘못을 네또츠까가 자진하여 뒤집어쓰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까쨔는 네또츠까의 그간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 이후 두 소녀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때마침 할머니집에 있던 까쨔의 동생 알렉산드르가 아프게 되는 바람에 H공작은 가족 모두를 데리고 아들에게로 간다. 그러는 중에 공작부인이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인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가 네또츠까를 만나게 되고, H공작의 허락을 받아 네또츠까를 양녀로 데려가게 된다.






3.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뾰뜨르 알렉산드로비치와 결혼한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는 바이올리니스트 B씨의 친구이기도 한 여성으로, 몹시 조용하고 착하고 온유한, '천사'와도 같은 성품을 지녔으며, 독서를 좋아하여 네또츠까에게 많은 책을 읽어준다. 자식에 관해서는 도끼 씨의 모순된 설명이 보이는데, 앞에서는 자녀가 없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아이가 둘 있다고 나온다(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을 쓰던 중에 감옥에 가게 되어 수정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라의 교육은 마담 레오따르의 것과 달라서,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책을 읽어주고 그 책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런 제약 없이 서로가 느끼는대로 풍부히 나눔으로 인해, '본능적 감각을 이해하고 선한 의지를 깨울 수 있는' 루소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교육법으로, 이러한 충분한 소통과 교감, 이해와 애정과 깊은 사랑으로 인해, 네또츠까의 어린시절부터의 상처가 차츰 치유된다. 한 편 남편 뾰뜨르는 몹시 정중하게 대하지만 알렉산드라에게 애정을 딱히 보이지 않는데, 이는 뾰뜨르를 간절한 마음으로 따르면서 그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알렉산드라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렉산드라는 점점 병약해지게 되며, 나중에는 신경증에 발작까지 심해지게 되어 네또츠까와 잠시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하는 시간이 반복되는데, 그러는 중에 알렉산드라는 네또츠까에게 성악가로서의 큰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이를 격려한다. 우연한 기회로 네또츠까는 서재열쇠를 줍게 되고, 그때부터 3년 간 몰래 서재에 들어가 탐독하게 되는데, 그러다 어느 책에서 접혀진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 편지는 S.O.라는 이니셜을 지닌 사람으로부터 알렉산드라에게 온 이별편지로, 결혼 후 알렉산드라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그와의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악평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그것을 남편인 뾰뜨르가 다 용서하고 커버해주었기 때문에, 미천하고 비겁한 자신은 알렉산드라와의 관계를 끝내고 떠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편지를 읽은 네또츠까는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그로 인해 알렉산드라에 대한 마음에 혼란을 겪는다. 그러다 뾰뜨르가 알렉산드라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다른 인격인 양 가면 같은 표정으로 바꾸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네또츠까는 그에 대한 혐오에 몸서리치며 신경질적으로 웃게 되고, 뾰뜨르와 네또츠까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그러다 다음 날, 예의 편지를 몰래 읽고 있던 네또츠까는 뾰뜨르에게 들키는데, 이를 네또츠까에게 온 연애편지로 오해한 뾰뜨르는 네또츠까를 감싸며 변호해온 알렉산드라에게 가서 네또츠까의 부정함을 폭로하게 되고, 이에 네또츠까는 뾰뜨르를 따로 불러 그 편지를 보여주게 된다. 그 직후 방을 나온 네또츠까에게 사무를 보좌하던 오브로프가 대화를 청하는데 네또츠까는 몸이 좋지 않다며 피하게 되고, 다음날 이야기하기로 하는 부분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줄거리만 쓰는 데도 이토록 에너지 소모가 크다니. -_-





잠시 쉬었다 에너지를 조금 충전하고 돌아왔는데, 그러는 사이 줄거리를 쓰면서 휘몰아쳤던 감상들이 상당히 휘발되었다. 많지 않은 에너지를 지닌 나의 약점이다. -_ㅜ 아...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감상을 시도해 본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에 대한 평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책 뒤에는 이 책을 번역하신 박재만 씨의 평이 실려 있는데 내게는 상당히 맘에 드는 평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그 해설로 작품 이해에의 도움을 얻기를 권한다. 조목조목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평을 읽고 나니, 작품을 훨씬 더 풍성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하여, 내가 지금부터 쓰는 감상은 그런 훌륭한 해설과는 동떨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자 분석이 될 것임을 (언제는 그러지 않았던 것 마냥) 밝힌다.

 

미완성으로 끝난 이 작품은 원래 한 명의 주인공에 의해 5, 6개의 독립된 중편소설이 연결되는 레르몬또프의 『현대의 영웅』식의 구성을 염두에 둔 대작으로 계획되었다 한다. 그래선지 크게 세 부분으로 뚜렷하게 분리되는 에피소드는 각각이 이미 개별적 완성도를 지닌 단편이 되며, 그리하여 별로 두껍지는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세 작품을 읽은 느낌이 든다. 상당히 긴 세월 동안의 많은 에피소드를 담아내는 것이 그다지 큰 무리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화자가 어린 소녀인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녀가 성장함에 따라 독자에게도 그 화자가 성장하는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일종의 성장소설Bildungsroman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읽으면서 들었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분명 화자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을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독자도 그 작품 속에 뛰어들어 화자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란 후에 B씨의 이야기를 들어서 쓰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정이입을 어느 단계 이상으로는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린 아이의 시점에 몰입하여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것이 이 나이의 아이가 생각할 만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화들짝 놀라, 순간, 몰입으로부터 확 빠져나오게 된다는 뜻이지. 뭐, 대다수의 성장소설도 이런 식이긴 하다. 자세히 묘사를 할수록 감정이입하기에 좋으니 작가들은 온갖 세련된 기술을 구사하여 몰입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 그런데 그렇게 온전히 빠져들기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Portrait of a Young Man as an Artist』이 떠올라 버려서. 이 성장소설의 화자인 스티븐 디덜러스는 어렸을 때의 어투와 자랐을 때의 어투가 다르다. 또한 윌리엄 포크너Willliam Faulkner는 『내가 누워 죽어 있을 때 As I Lay Dying』에서 화자마다 다른 어투를 씀으로, 독자의 몰입도를 높였을 뿐더러 작품 감상에의 즐거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린 효과를 내었다.

 

이 작품에 대하여 박재만 씨는 '한 편의 심리 소설이자 청년 도스또예프스끼가 최초로 시도한 장편소설로, 청년 시대를 마감하고 미래의 작가상을 예고해 주는 작품이고, 창작 기법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으며, 유형 후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사상과 여러 인물들의 형상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작품은 아직 도끼 씨의 초기 작품들로, 내게는 다소 산만하고 거칠며 세련되게 다듬어지지는 않은 느낌이 든다. 뭐, 어느 작가라도 초기작은 그렇지 않겠는가만. 그런데 확실히 강렬한 가능성의 씨앗이 감지되는 것은, 사건의 진행에 있어 빈 공간이 많은 대신 인물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아주 치밀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전 작품 「여주인」까지는, 인물 묘사와 사건 진행 간의 조화와 균형이 썩 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치밀한 인물묘사는 사건으로 진행되는 작품의 흐름으로부터 동떨어진, 일종의 군더더기로 인식되었는데, 이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에서는 그 점에 대한 개선책의 일환으로 각 사건을 아예 독립된 이야기로 분리시켜 버림으로, 그런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세련된 방식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예 사건과 사건 사이를 분리시킴으로 인해 사건 간 개연성 부족에 대한 아쉬움은 확실히 사라졌으며(각 사건을 아예 분리된 것으로 인식해 버리게 되니까), 그리하여 각 사건에 좀 더 충실히 몰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비로소 도끼 씨 특유의 심리묘사의 매력에 감탄할 수 있게 되었다.

 

인물에의 치밀한 묘사, 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 씨인데, 미유키 씨는 작품 속 거의 모든 인물의 외적 배경이나 조건, 상황에 대해 치밀하게 설정하고 묘사함으로 중반 이후로 달리는 사건에의 몰입도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도끼 씨의 인물 묘사는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성격이나 생각, 그리고 '심리'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묘사한다. 인물의 외면이 아니라 내면, 정신의 활동을 꼼꼼하게 묘사하기 때문에 자칫 어렵고 난해하게 되기 쉬운 이 방법은, 제대로 사용되고 받아들여졌을 때, 그 인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듦으로 결국 그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까지 가지게 하는 효과가 있더라. 음... 내가 표현을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이번에 처음 깨닫게 된 것이라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는. 지금 이러면서 정리가 되겠지는. +_+

 

읽기 지루하겠지만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기 위한 곳이니ㅡ그러니 발행은 하지 않겠다ㅡ 다시 한 번 시도해 본다. =_=;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음. 그러니까, 인물의 외향이나 조건, 배경, 사건을 묘사하는 것과 '심리'를 묘사하는 것은 그 효과가 다른데, 외적 배경이나 사건 묘사는 그 인물을 독자의 눈 앞에 '그려내는' 반면, 생각이나 심리를 도끼 씨 처럼 치밀하게 묘사하면, 독자를 아예 그 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겠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그러므로 그만큼 그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이 대폭 상승하게 되는 것이지.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인물에 대한 애정도도 높아지게 되고. 마치 정유정님께서 『내 심장을 쏴라』에서 인물의 정신이 분열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정신분열증에 대해 납득과 공감을 할 수 있게 되고, 또 그만큼 인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다.

 

장황하게 썼지만 한 마디로 '도끼 씨의 인물 심리 묘사가 아주 좋았다'는 뜻이다. -_- 쓸 데 없이 말을 길게 쓰지, 나는.

 

에또... 에너지가 떨어지네...;;

 

이 책은 중간을 달리면서부터 온통 밑줄이 그어지고 여기저기 낙서... 가 한가득 적혀 버렸는데, 그만큼 읽는 중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좋은 장치를 많이 사용했네! 란 생각이 계속 들었던.

 

에또... 무엇에 대해 쓸까. 쓸 것은 너무 많은데 귀차니즘이 고개를 들고 있어...* ;;

 

아, 도끼 씨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거의 그러한 것 같지만, 갈수록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니, 이 작품에선 거의 모든 인물이 병을 앓고 있는데, 어머니나 알렉산드라의 경우는 육체적인 병을 앓고 있고, 예피모프나 알렉산드라는 정신적 질병을 겪고 있으며, 네또츠까도 나중에는 신경질적 발작을 하게 된다. 또한 까쨔도 조울증이 없지 않은 인물이고, 까쨔의 어머니도 신경질적이며, 뾰뜨르 알렉산드로비치는 후반에 가면 아예 '악마적인 면모'를 섬뜩하게 비출 정도로 모든 인물이 다 병적이다. 유일하게 H공작은 괜찮은 듯 보이지만 가만 생각하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이, 부인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데 바깥에서 데려온 존재들에 대해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애정과 호의와 동정심을 보인다. 뭐, 그 당시엔 그것이 교양인으로서 당연한 것이었으려나.

 

네또츠까의 애정을 향한 집착, 은 눈물겨운데, 쓰레기에 가까운 예피모프의 사랑을 비굴해 보일 정도로 갈구하는 모습은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비참하고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상처가 그녀가 집착하는 상대가 바뀜에 따라 조금씩 치유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세 명의 사람(예피모프ㅡ까쨔ㅡ알렉산드라)에게 비굴할 정도로 애정을 갈구하는데, 예피모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또츠까를 이용만 해먹었지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까쨔는 네또츠까를 많이 괴롭혔으며, 결국 네또츠까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으나 그것은 네또츠까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었다. 네또츠까의 거짓말 이후 그 거짓말 사건에 대해 자기변명을 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어린 네또츠까의 탓으로 돌렸던 예피모프와 달리, 까쨔는 그 사건으로 인해 네또츠까에 대한 마음을 마침내 활짝 열게 된다. 까쨔가 네또츠까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인물임은, 네또츠까가 사랑 받고 싶어 했던 대상에게 처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하여 8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었는데 도중에 작품이 끝나 버렸지. 알렉산드라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성숙한 사랑을 보여준다. 네또츠까가 원하기도 전에 풍부한 사랑을 주었을 뿐 아니라,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네또츠까를 신뢰하고 보호하고 지켜주고 사랑해줌으로 인해 네또츠까는 비로소 애착의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처음으로 분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예피모프나 까쨔에 대해서는 자신의 모든 생각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조차 접은 채, 자신을 부당하게 희생해서라도 상대의 애정을 맹목적으로 바랐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극히 사랑하고 또 그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주는 알렉산드라를 독립된 개체로서 바라보고 또 알렉산드라의 죄에 대해 판단하고 질책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피모프나 까쨔의 경우였더라면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감싸돌기만 했으리라. 그런데 알렉산드라의 경우, 조금은 성숙에 이른 네또츠까는 알렉산드라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바른 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 것이지.

 

미완성의 이 작품이 좀 더 진행될 수 있었더라면 상당해 재밌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엔 알렉산드라와의 관계는 불화인 상태로 알렉산드라의 죽음으로 인해 끝나게 되고(아직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므로), 다음에 이어질 가능성을 비추었던 오보로프와의 관계에서 그것을 좀 더 극복하게 되거나, 나중에 다시 만나기로 되어 있는 까쨔와의 재회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영글어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 물론 자연주의 작가로서 온전한 해피앤딩을 쓰진 않았겠지만서도, 자연주의긴 하지만 낭만주의 성향이 꽤 들어있는 느낌을 주는 만큼, 네또츠까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조금 더 그렸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의 뽀끄로프스끼에서 시작되어 바르바라로 전염되고,「여주인」의 오르디노프로 이어지는 독서광 몽상가의 계보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에서는 그 성별을 바꾸어 알렉산드라에서 시작되어 네또츠까로 전이되는 양상을 보인다. 역시 도끼 씨 책에는 독서광 몽상가가 빠지지 않는 것 같은데, 이것만 보아도 「뻬쩨르부르그 연대기」그토록 신랄하게 비난하던 독서광 몽상가를 사실은 몹시 아끼는 것 같지 말이다. 자고로 '독서광 몽상가'란, 아닌 척 해도 기실, 거의 모든 소설가들의 자기 정체성이자 로망이며 자랑이 아니겠는가.

 

 

 

 

 

두서도 없고 구성도 없는 이 후기는 후기가 아니라 일기다. 일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