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예당에 가서 본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
포스팅을 하기 전에 불만부터 말하겠다.
전시 보는 내내 정말 좋았더란 거다. 생각보다 적은 작품이 왔지만 생각보다 알찬 작품들이어서.
그래서 보면서 '나가서 도록을 꼭 사야지' 마음을 먹고는 느긋하게, 작품 이름도 적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도록이 품절??
물어 보니 전시가 곧 끝나기 때문에 도록이 다시 들어올 예정이 없다, 라고.
이건 뭐지.
굉장히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여지껏 도록이 품절되어 사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훌륭한 작품을 소개하였으면, 나중에 도록을 통해 그 작품들을 되새기며 다시 감상할 기회까지 제공하는 것이
기획사로서 갖추어야 할 서비스 자세일 테다.
전시가 아직 남아있는 기간 중에 도록이 품절되다니. 어째서 전시 끝까지 완벽한 서비스를 보여주지 않는 건가.
더군다나 아무리 괜찮은 작품들이 왔다 해도 겨우 85점이 아닌가.
예당의 한 층... 에 불과한 작품을 전시하면서 무료도 아닌 도록을 품절되도록 인색하게 준비하다니.
상당히 많이 불쾌했다.
좋은 작품에, 훌륭한 도슨트에, 정말 신나는 시간을 즐기고는 나오면서 난 데 없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
덕분에 내가 좋아했던, 그래서 소개하면서 다시 감상하고 싶었던 화가들과 작품들의 이름을 깡그리 날려 버렸단 말이다.
보아하니 도록도 꽤 잘 만든 것 같던데.
공식적이고 전체적인 정보는 아래의 긁어온 사진에서 정보를 확인하시길.
자자, 주요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은 아래의 공식홈피 정보를 참조합니다.
http://www.greatartists.co.kr/exhibition.php?state=3&id=69
여기서 다룬 주요? 화가들의 작품은 다른 블로그에서도 많이들 다루었으니, 뭐.
아... 정말 맘에 들었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작가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난 다소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들에서도 한참을 서있었어서는.
그런 작품은 공식홈피 같은 곳에는 올라오지 않지.
일단은 오후 5시 남성 도슨트분의 정성스런 해설과 재치있는 감각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 시간을 꼬박 해설하셨는데, 더 찌르면 더 많이 술술 말씀해 주실 것 같았던.
2주 전에 이별을 하셨다는데 토닥토닥.
도슨트로서의 자부심이 빛나 보였던, 내가 지금껏 들었던 가장 정성스런 해설을 해주셨어서
덕분에 감상이 풍성해졌다. 시종일관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잘 들었습니다-*
이번 관람은 오후 4시 20분부터 8시까지 세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송승헌 씨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녹음된 오디오가이드가 50분 정도에, 도슨트 설명이 1시간이었으니
정작 개인 감상은 1시간 반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작품 수가 적었던 덕분에? 비교적 한 85% 정도 만족스런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
도록 때문에 배신감을 느꼈지. -_-
나는 오래 전에 보았던 샤갈전이나 오르셰전도 나중에 가끔 도록을 뒤적이면서
관람 당시의 감동을 새록새록 떠올린단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도록이 중요해. 관람자의 권리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런 소위 대형 전시에서 도록이 품절되다니. 아, 뒤끝... 도록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생각도 하기 싫어.
앵그르, 고야, 들라크루아, 마네, 모네, 고흐 등등 화려한 작가들의 작품은 당연히 좋았다.
왜냐하면 익숙하니까.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유명한 만큼 잘 알려져 있어서
감상 포인트를 잡고 감상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그 유명화가들의 작품 중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을 꼽자면
우선 피카소의 초기작인 <푸른 방>이 있다.
도슨트분의 섬세한 설명으로는, 당시 물이 귀해서 많은 여성들이 몸을 씻을 때
위의 작품에서처럼 판 위에 올라가 물병에 떠 둔 물을 조금씩 몸에 부어 씻었다는데,
축 늘어진 여성의 몸에서 삶에 대한 현기증 나는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을 푸르스름한 색감으로 표현하여 더욱 애상적인 분위기를 내었고.
피카소, <푸른 방>
음... 한 화가의 작품을 단독으로 전시하는 경우, 그 화가의 깊은 내면에 젖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좋다.
샤갈전이라든지 클림트전이라든지 뭉크전이라든지.
그런데 오르셰전이나 지금과 같은 필립스전 처럼 시대를 관통하여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전시에 가면 다른 좋은 점이 있다.
각 시대 특유의 사건이나 배경을 느끼는 것 이외에도, 특히 풍경화의 경우
마치 몇 시간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달까.
예를 들어
The Road to Vétheuil
Claude Monet 1840-1926
- Nationality French
- Creating Date 1879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23 3/8 x 28 5/8 in.; 59.4 x 72.7 cm
위의 모네의 <베퇴이유로 가는 길>을 볼 때 느끼는 햇살의 따스함과 마른 흙내음,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의 소리와
On the River Stour
John Constable 1776-1837
- Nationality British
- Creating Date ca. 1834-ca. 1837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24 x 31 in.; 60.96 x 78.74 cm.
존 컨스터블의 작품에서 느끼는 물소리, 습기, 벌레소리, 신중하게 낚싯대를 조준하는 남성들의 집중된 호흡소리.
Lake Albano
George Inness 1825-1894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1869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30 3/8 x 45 3/8 in.; 77.1525 x 115.2525 cm.
조지 인네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잔잔한 호수의 평온함, 잔디내음, 도란도란 공간을 엷게 채우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사박사박 풀잎을 밟는 발자국 소리와 스치는 옷자락 소리, 햇살이 비친 잔디의 따스함과 그늘의 서늘함, 푸르디 푸른 나뭇잎의 싱그러운 향은 분명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지나 앞에 설 때마다 그 시대, 그 마을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고,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기분이 되어, 멋진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져.
그래서 좋아한다,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놓은 전시도.
음. 필립스 홈피를 찾았는데 http://www.phillipscollection.org/collection/browse-the-collection?page=38&_=1425830950847 덕분에 짜증나던 포스팅이 한결 쉬워졌다. 매력적인 컬렉션이 많네. 르누아르의 <선상에서의 오찬>도 있다니! 그런 인기작은 해외 원정 전시에 실리기는 힘들겠지. ㅡㅜ 하지만 이번 전시에 오지 않은 작품들도 꽤 많아서 작품 찾는 것이 좀 힘드네. 순서에 상관 없이 맘에 들었던 작품을 찾는 대로 실어야겠다.
Red Hills, Lake George
Georgia O'Keeffe 1887-1986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1927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framed: 28 1/4 in x 33 3/8 in x 2 in; 71.75 cm x 84.77 cm x 2 in; overall:
두 말해 무엇하랴.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입니다. 오키프의 작품을 보면 항상 거울 그녀가 생각난다.
Spring No. 1
John Marin 1870-1953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1953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22 x 28
이 작품. 실제 작품 보다 사진이 못 나왔네. 작품을 보면 아래 좌우로 붉은 점이 박혀 있는 꽃나무가 참 사랑스럽고 예쁘다. 붉은 점 주위를 옅은 분홍과 흰색이 청순해 보이도록 감싸고 있어서 보기에 즐거웠던. 이 작품 앞에서 많은 시간을 들인 이유는, 위쪽의 선들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도 알겠고, 울긋불긋한 산의 나무도, 화사한 꽃도 알겠어. 그런데 위의 직선들은 무엇일까요? 맘 같아선 같이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곧 끝날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어. 난 이 날도 어김 없이 거의 마지막으로 쫓겨났습니다. 나오는 순간까지 눈을 홀리던 작품이 있어서 못내 돌아보며 아쉬워, 아쉬워.
Elena Povolozky
Amedeo Modigliani 1884-1920
- Nationality Italian
- Creating Date 1917
- Medium Oil on canvas
- Dimensions 25 1/2 x 19 1/8 in.; 64.77 x 48.5775
쇠라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들 작품 특유의 고독과 현실에서 조금은 떠 있는 듯한 서늘함이 좋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서늘하다기 보단 차가운 느낌인 건데. 초점 없는 눈이 주는 이질감과 거리감이 좋아.
The Newspaper
Edouard Vuillard 1868-1940
- Nationality French
- Creating Date between 1896 and 1898
- Medium Oil on cardboard
- Dimensions 12 3/4 x 21 in.; 32
아... 안 돼... 이 작품의 색감이 이렇게 표현되면 안 되는 건데... ㅡㅜ 속상하네. 조명의 힘이었는지는 몰라도 붉은 테이블보의 색상이 인상적이었던. 그림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실내의 느낌이 좋아서 한참을 서있었던 작품이었다. 창백하고 을씨년스러운 창 밖의 날씨. 꼭 닫은 창은 가끔 덜컹덜컹, 바람에 흔들리고. 실크벽지의 아늑함. 오래되고 익숙한 소파 특유의 포근함과 두터운 테이블보의 질감. 바스락, 간간이 신문을 뒤적이는 소리. 아마도 남성의 맞은 편 벽에는 조그만 벽난로가 타고 있지 않을까. 그림이 너무 아늑해서 한참을 서서 보았다.
New York Roof Tops
Louis Michel Eilshemius 1864-1941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ca. 1935
- Medium Oil on cardboard on wood panel
- Dimensions 30 1/2 x 25 5/8 in.; 77.47 x 65.0875
이 작품은 왜 오지 않았을까. 신나게 감상했을 것 같은데. 오지 않은 작품입니다.
Totemic Transcendental
Richard Pousette-Dart 1916-1992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1982
- Medium Acrylic on linen
- Dimensions overall: 80 in x 48 in; 203.2 cm x 121.92 cm
이 작품은 사진이 너무 못하네. 그 이유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거친 마티에르를 멋지게 표현했기 때문인데, 작품 앞에 서면 두텁게 칠해진 하얀 물감과 검정 물감에서 과연 무언가 원시적 신앙을 향한 몸짓이라도 느껴지는 듯하다.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좀 더 감상하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
Ice on Ellery Lake, Sierra Nevada, California
Ansel Adams 1902-1984
- Nationality American
- Creating Date ca. 1959
- Medium Gelatin silver print
- Dimensions 13 x 18 3/4 in.; 33.02 x 47.625 cm
이 작품도 왔으면 신났겠는데... 오지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 작품도 있는데 오지 않았고. 호퍼 작품은 꼭 보고 싶은데.
어... ;; 필립스 홈피에도 실려있지 않은 작품이 꽤 있네.;; 어떻게 찾지, 그럼. 피곤한데.;;
헉헉, 보나르의 작품을 찾느라 싸이트에 가입을 하다니. ㅡㅜ
이번 전시에서 새로이 알게된 작가다. 피에르 보나르. 마지막 인상주의 화가이자 앙티미즘의 작가. 그의 작품은 다섯 점인가, 유독 많이 왔는데, 그 중 이 작품과 아래 작품 앞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품은 처음에 오디오 가이드의 작품설명을 들으며 스치던 중(오디오 가이드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품이다),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져서 멈추었던 작품인데, 오른쪽 앞의 복숭아뺨을 지닌 여성에게서 말소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일 저녁 파티에 장식할 꽃을 사야하는데. 음. 저 붉은 꽃이 테이블보와 잘 어울릴까' 라던가? "엄마, 나 저 인형 갖고 싶어요"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 꽃 할인합니다. 싱싱하고 예쁜 꽃을 보세요" 그리고는 뒤의 철컹, 전차 소리. 웅성웅성 사람들 소리. 웃음 소리.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 이거야 원, 이토록 왁자지껄해서는, 그냥 지나갈 수가 있어야지.
설마... 진짜 저 소리들이 '귀에 들렸다' 고 여기는 사람은 없겠지. 눈을 통해 뇌에 들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려나. 덕분에 몹시 즐거운 감상 시간을 보냈던 작품이다.
Nude in an Interior / Pierre Bonnard - circa 1935
그리고 이 작품. 이 작품은 처음 힐끗 보았을 땐 딱히 빨려들지 못했다. 그런데 도슨트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눈물이 핑 돌아서 떠날 수 없게 된 작품이었지. 스토리의 힘이다. 개인적으로 문학이건 미술이건 작품을 볼 때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연관성을 따지는 것을 지양하려는 경향이 있다. TV 없는 내가 드물게 챙겨 보는 프로그램 중 K팝스타가 있는데, 그 방송을 볼 때 마다 참가자들의 스토리(개인사)가 나오면 화면을 넘기곤 한다. 오롯이 노래 만을 듣고픈 것이어서.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이건 적어도 처음 대할 땐 작가에 대한 가능한 아무 지식 없이 먼저 작품을 대하려고 애쓴다. 작품 자체가, 예술이라는 존재 자체가 날것의 몸짓으로 내게 전하는 것을 감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히 스토리가 갖는 힘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작품에 연결된 작가의 사적 생애를 듣고 나면 작품의 감상이 훨씬 풍성해지거나, 가끔 완전히 뒤바뀌어 버릴 정도로 크게 변화하는 경우가 있지.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였다.
바람둥이들이 많은 예술가들 중에서 피에르 보나르는 드물게 순정파 사랑을 한 화가였다. 그의 작품 중 수백 점을 차지하는 주제와 모델이 그의 아내 마르타였는데,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보나르보다 열 살 연하인 16세라고 말했다. 그렇게 결혼하여 30년 동안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보다 겨우 두 살 연하였으며,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 미성년자도 아니었던 것이지. 더군다나 수십 년 간 마르타로 알고 있었던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난 후에도 그녀를 향한 보나르의 애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마르타에게는 일종의 강박증이 있었는데,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귀했던 물을 펑펑 쓰는 것이었다. 작품 위에는 '그녀의 유일한 사치였다'라는 보나르의 말이 적혀 있을 정도로, 매일 같이 서너 시간 동안 온몸을 박박 문지르며 강박적으로 몸을 씻었다고 한다. 그런 마르타를 향한 보나르의 애정은 다분히 소년의 순정 같달까. 마르타가 나이들었을 때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늘 좀 더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르타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그리워했던 보나르는 그녀의 방문을 잠근 채,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열지 못했다고. 이런 사람이기에 작품 속에 친밀감을 표현한 앙티미즘 작가였던 거겠지.
이 작품을 그렸을 당시 보나르는 60세 후반이었다. 그렇다면 마르타 또한 적어도 60대였단 뜻이다. 과연 그녀의 몸은 이제 더는 매끈한 곡선이 아름다운 젊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빛내지 못한다. 그런데 살이 붙고 늘어졌을 그녀의 몸을 최대한 괜찮아 보이도록, 상체를 숙여 긴 하체가 드러나게 그렸다. 그리고... 20대의 찬란한 금발처럼 밝게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을 보라. 60대의 여성이라면 백발에 가까웠을 머리카락을, 햇살을 빌어 저토록 아름답고 생기있게 그려낸 화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알 수 없는 공포 속에 몸을 닦고 또 닦고 있었을 그녀의 어깨로, 다리로, 황금빛 햇살이 따뜻하게 감싸 안는 것이, 마치 병적인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픈 보나르의 애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이 작품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랑을 받는 여성은 얼마나 행복할까.
음... 나와 취향이 아주 비슷한 사람의 포스팅을 지금 발견했다. http://egloos.zum.com/kasa/v/3134965 인데, 좋아했던 작품이 꽤 많이 겹쳐서 깜짝 놀랐어.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네. 이런 사람과 같이 전시회 다녀올 수 있다면 신날 것 같은데. 이제부터 싣는 작품은 이 분의 홈피에서 데려오겠습니다. 더군다나 오른쪽 마우스 금지도 걸어 놓지 않았네! 나는 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른쪽 마우스 클릭을 금지시켰지만, 다른 곳에서 데려온 사진을 실으면서 복사 금지 설정하는 것은 내심 부끄럽고 싫다. 내가 직접 찍은 것도 아니고 나도 데려온 건데, 어째서 남은 데려가면 안 된다는 건가. 티스토리 설정 기능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아야겠다. 사진의 경우 풀 수 있다면 풀어야겠어. 올려주신 작품 사진 고맙게 잘 쓰겠습니다.
릴리안 웨스트콧 헤일-가정 교습
이 작품이 있어 깜짝 놀랐다. 여기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못 보았거든. 이 작품은 조명이 좀 강해서 눈이 부셔 조금 방해를 받았는데, 큰 작품이다. 그리고 뭔가 오묘해. 처음엔 꼬마 아가씨의 꼿꼿하게 날 세운 턱선에서 느껴지는 도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가만히 보면 그녀는 몸만 작을 뿐, 어른처럼 보이는 것이다. 손의 모양이라던가, 얼굴 표정이라던가. 조금 큰 체형에 올림 머리로 그렸더라면 수업하러 가는 교사의 모습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발걸음이 붙들렸다. 오른쪽의 지구본과 뒷벽의 그림을 보아 하니 공부방 바로 앞의 복도이거나, 공부방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림 앞의 낮은 가구도 그렇게 물건들이 서로 가까이 배치된 것으로 보아 공부방 내부일 듯도 한데... 그렇다면 아직 선생님이 오시지 않은 걸까? 선생님을 보고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면 이상한 일이 아닌가. 먼저 들어간 것이라 해도 그 수업을 고대하던 표정은 아닌 것 같다. 상류층 자제로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어떤 과목이었겠지. 밖으로 뛰어 나가 햇살 아래 밝게 웃으며, 앞으로 펼쳐질 싱그러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마음껏 발산할 나이에, 어둡고 근엄한 분위기의 실내에 갇혀 무거운 주제의 수업을 받아야 하는, 어른의 모습을 강요 받는 아이의 모습인 것만 같아 마음이 좀 눌렸달까.
헬렌 터너-비 오는 날
아, 이 블로거... 본격적으로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지?? 이 작품에 대한 한 줄 평이 하필 저 여성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대한 궁금증이었다니. 더군다나 모자라 여기고 있었다니! 이번 전시에서는 단 한 명에게 밖에 질문을 하지 못했는데, 바로 이 작품 앞에서 바로 저 질문을 했더란 거다. 접때 쓴 적이 있지만, 혼자 전시회에 갔을 때 작품들 앞에서 궁금증을 느끼면, 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습성이 있다. 여태껏 꽤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단 한 번도 답을 듣지 못한 적이 없었다.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내 질문은 본인의 생각에 대해 묻는 것이어서. 다들 처음엔 당황해하지만 곧 진지하게 답해주었고, 가끔은 근처에 있던 다른 낯선 관람자도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해주는 때도 있어, 순간적으로 한 작품 앞에서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도 잠시 마련되곤 한다. 그래서 전시회에서 질문하는 것을 참 즐기는 것인데... 이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작품 앞에서 질문을 던졌다.
"아이의 엄마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뭐로 보이세요? 모자일까요?"
그리고는 내 질문을 받은 사람을 쳐다 보니, 아름다운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더니 미안한 듯 웃으며 "잘... 모르겠어요..." 라고 하더라. 순간, 상처 받았어. 내가 정답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본인의 의견을 물은 것 뿐인데 모르겠다, 라니. 그리곤 미안해졌다. 그녀의 감상 시간을 내가 방해한 것이지 않은가. 좀 더 생각을 해보니 내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서둘러 질문한 것이 맞았다. 그러니까 이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이는 사람이 전혀, 전혀 없었어서... ㅡㅜ 한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마침내 다른 사람들 보다 살짝 오래 머무르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참지 못하고 질문을 해버렸던 것. 질문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은, 같은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이다. 오래 서서 앞으로, 뒤로, 옆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그 작품을 깊이 감상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면, 꽤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이번엔 내가 성급했다. 당황하게 만들어 미안해요, 아름다운 아가씨.
그래서 그 다음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한 작품들이 몇 더 있었지만 질문을 하지 못했다. 의욕이 꺾여 버렸어. -_ㅜ 다음에는 좀 더 신중하게 해야지. 질문을 포기하진 않을 거야, 뭐.
그래서ㅡ 저 블로거랑 같이 관람을 하고 싶지 무언가. 신나게 대화할 것 같은데. +_+
금빛이 표현된 사진을 찾아 올리긴 했는데 그래도 실제 작품에서 만큼 표현이 잘 되진 않았네. 제목을 보라. <비오는 날>. 그림 자체도 얼금얼금해 보이지? 작품 앞에 서면 전체적으로 표면에 미세한 금가루가 뿌려진 듯 느껴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근하게 수직으로 뿌려진 금가루가 얼마나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지 몰라. <비오는 날>의 실내 모습인데, 이상하게 실내에 금빛 비가 내리는 느낌. 그 느낌이 너무 묘해서 뭐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어. 비오는 날 창 밖에서 실내를 들여다 본 모습 같기도 하고. 작품 오른쪽에 누워있는 사람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져든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서있는 여성도 이해가 된다. 조금은 사늘한 초가을 오후, 종일 똑똑,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녹진한 잠에 빠져든다. 바스락. 다정한 손이 푸른 담요를 어깨 위까지 끌어 덮어주는 소리. 앞치마를 두른 엄마는 아이의 매끈한 이마를 따뜻한 손바닥으로 스윽, 만진다. 그리고는 화장대 위의 모자를 손에 들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확실히 전시장에서는 훨씬 모호해 보이던 물건이,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확실하게 모자로 보이네. 모자가 맞나 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을 하면 완벽한데, 오른쪽 위의 새장에서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단 거다. 이 또한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훨씬 나아 보이는데, 실제 작품 앞에서는 새장이 뭐랄까, 박제인 듯 생명력이 없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생각은 또 다른 해석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프다. 열이 펄펄 끓고 있지.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아이는 오들오들 떨다 못해 자신이 얇은 담요를 목까지 바짝 끌어 당겨 잠을 청한다. 그 때,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들어와... 자아, 엄마가 들어와... 처음에는 모자를 주사기나 약으로 생각했는데, 그래서 약의 양을 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 아무래도 모자 같아 보여서는, 가사도우미가 들어와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이의 모자를 탐하며 이리저리 만져보는 모습을 그려본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니 상단의 활기 없는 새장이 이해가 되었지. 그런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처음 해석이 훨씬 그럴 듯 하네, 그렇지? +_+ 실제로 작품을 보았을 때와 아주 다른 느낌을 내는 사진입니다. 덕분에 해석은 더 명확해졌고.
오스카 코코슈카-쿠르마요르산과 거인의 이빨.
아, 이 사람 증말... 어떻게 이 작품을 올릴 생각을 한 거지?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작품입니다. 전후로 화려한 작품들이 있어서. 이 작품에 시선이 갔던 것은 제목 때문이었는데, <ㅡ산과 거인의 이빨>. 거인의 이빨??? 그래서 멈춘 것이지. 삐쭉삐쭉한 쿠르마요르... 산을 거인의 이빨로 묘사한 것이 아닐까 했는데. 자아, 거인이 누워서 하늘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군요. 그리고 거인의 둥근 입 속엔 마을이 통째로 삼켜져 있습니다. 삼키는 과정에 여기저기 붉은 핏자국이 보이지요? 이빨 사이사이로 하얀 거품이 박혀 있군요. 맛있게 삼켰나 보죠. 뾰족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나무를 가지고 이런 일을 상상해 본 것이지 말이다. 전시회에 가서 이러고 놉니다.-_- 실제 작품은 붉은 색이 좀 더 인상적이고, 붓터치가 상당히 혼란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마크 로스코-무제
마크 로스코... 로스코!!! ㅡㅜ 이 블로거도... 로스코전을 고대하고 있다니! 뭐야, 포스팅 하나로 이 사람에게 반해 버리겠어.+_+; 자신의 작품을 영적체험의 도구로 여겼던 로스코. 도슨트분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는 로스코 교회가 있다고? 예배당 안에는 십자가 대신 로스코의 그림이 걸려있고, 방석에 앉아 각자의 방식으로 명상을 하는 곳이라던가. 로스코는 몹시 까탈스러운 화가였어서, 생전 자신의 작품이 전시될 때 장소, 조명, 관객 의자와의 거리 등을 센티미터 단위로 꼼꼼하게 확인했을 정도로 예민했다고 한다. 그런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나는 뭐 그런 건 아닌데... 로스코 작품 앞에 설 때 마다 생각지 못했던 어떤 느낌이 들긴 해. 때론 지독한 암울함과, 이 작품 처럼 따뜻함이라던가. 딱히 언어로 짚어내고 싶지 않은, 그럴 의지를 다 날려 버리는 이미지의 덩어리랄까. 그래서 학수고대하고 있다. 곧 있을 로스코전!
김환기-27-11-70
캬아...! 김환기 님의 작품까지! 그리고 이 작품 밑에 실려 있는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까지! 나와 똑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니. 일단 위의 작품에는 김광섭 시인의 시가 실렸다.
덕분에 편하게 시를 가져왔습니다아. 음... 나도 글에 대한 복사금지 설정을 풀까...? 하지만 평소 거의 일기를 포스팅하기 때문에... -_ㅜ; 무튼. 이 작품은 필립스에서 소장한 유일한 한국 작가 작품이다.
머나 먼 타국에서 고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작가는 눈물인 듯 색색의 점들을 한 번씩 찍는다. 천에 물감이 번지듯 점들이 물들고. 이제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그리움 방울들은 번지고 번져 이웃하는 색에 닿아, 그렇게 그리움끼리 서로 몸을 섞는다.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은 재가 되어, 그리움의 눈물 방울 사이사이를 까맣게 흐른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코튼에 유채, 236×172
알마 토마스-가을꽃을 스치는 바람
이쯤 되면 누군지도 모르는 저 블로거를 사랑할 것만 같다.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쫓겨나는 순간까지 시선을 뗄 수 없어 못내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던 작품. 멀리서 보다가 가까이 서서 보시기를. 그리고는 서서히 시선을 옮겨 보기를 바란다.
꽃은 알겠다. 바람도 알겠다. 왜 가을일까. 가만히 색상을 보면 아! 가을임을 알겠지. 가을 특유의 강렬한 단풍들일 테니. 색색의 꽃들이, 화려한 낙엽의 나못잎이 펼쳐져 있고, 꽃잎 사이사이를, 나뭇잎 사이사이를 사늘한 바람이 스친다. 긴머리를 쓸어 넘기는 소녀의 머리카락 처럼 살며시 꽃잎들이 뒤집히고. 꽃과 나무 사이를 사락, 사락, 스치며 어루만지는 바람. 흔들흔들, 흔들리는 꽃잎과 나뭇잎들. 그들의 사랑놀음 속에서 몹시 즐거운 기분이 되어 더, 더, 더 감상하고팠던 작품.
색동 같기도 하고? 덕분에 익숙한 느낌이 되었고. 자세히 보면 캔버스에 세로로 직선들이 그어져 있다. 언뜻 보면 꼴라주 기법 중 종이를 붙인 파피에 꼴레 같은데 물감입니다.
이번 필립스 컬렉션에서 느꼈던 한 가지 특이한 점이, 표구라 하나? 작품을 담은 액자 틀이 인상적이었다.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몇몇 작품들에는 감상하는 데 있어 살짝 방해를 받긴 했는데ㅡ작품 보다 틀이 더 화려해서 시선이 자꾸 갔던ㅡ 전체적으로 작품 하나하나 마다 신중하게 신경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장점을 최대한 돋보이게 했다는 느낌. 어지간한 전시회에서 표구가 인상적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정성스런 표구가 눈에 들어와서 또한 즐거웠다.
아 참, 먼저 보았던 <블라디미르 쿠쉬전>도 그랬고, 이번에는 오디오가이드 제한시간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반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모네전도 늦지 않게 가야 할 텐데, 마음은 이미 로스코를 기다리고 있어서. 보고 싶은 전시가 많아서 예당 회원 등록한 보람이 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