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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라 바야데르 La Bayadére by 국립발레단 KNB

by Vanodif 2016. 4. 1.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 클릭 













백만 년 만에 문화생활을 즐겼다.

발레 공연이 없는 1-2월은 이상하게 나도 쉬게 되는 경향이 생기는 듯.

무용수분들이 쉬는데, 일반 관객인 내가 대체 왜??

ㅡ라기엔 올해는 좀 그렇다.

내가 지금 문화생활을 즐길 상황이 아닌 건데, 너무 오랫동안 못 하다 보니 삶에 먼지가 가득 낀 느낌이어서

국립발레단 달력을 무심코 바라보다 탁상달력 위로 삐죽이 솟아 있는 돌출물을 보고는

'아, 발레가 있는 달이었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아니, 시작한 거야??

화수는 치료 때문에 도저히 스케줄을 뺄 수가 없기 때문에 빼기 힘든 목요일 저녁을 억지로 힘겹게 뺐다.

금요일 낮공연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없으므로 어쩔 수 없지.


3개월 만이다. 내가 비로소 웃은 날이.

어젯밤 <라 바야데르>를 보면서 스스로 놀랐다. '내가 3개월 간 실질적으로 웃지 않았구나'.

물론 웃기야 웃었지. 그런데 상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즐거워서 웃은 것이 처음이란 이야기.


사람의 몸이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노라니 

황사 두텁게 낀 마음이 뽀득뽀득 씻겨지는 기분.


그래.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었지.

이런 즐거움이, 황홀함이 있었지.


그래서 오늘은 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국립발레단과 예당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국립발레단 2016 스케줄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새로 포스팅을 하나 팔까 어쩔까 싶다.





















 작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후기 → 클릭 












아래는 국립발레단의 2016 <라 바야데르> 에 대한 훌륭하고 전문적인 기사들이다. 

관심 있는 분은 모두 클릭 클릭 클릭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6031800082326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31/2016033100153.htm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51&newsid=01315286612586600&DCD=A405&OutLnkChk=Y



http://plus.hankyung.com/apps/newsinside.view?aid=201603316764A&isSocialNetworkingService=yes











<라 바야데르>의 발레 마임.


1. 배경이 인도여서 손목이 바깥쪽으로 꺾인다.

2. 오른손을 머리에, 왼손을 가슴에 대는 동작은, '내 생각과 마음을 다해 인사드립니다'.

3. 승려와 무희들이 등장할 때 양손을 가슴에 얹는 동작은 '신 앞에 나의 모든 것으로 복종합니다'.

4. 하늘을 향해 오른 팔을 뻗고, 왼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것은 '내가 하늘에 대고 (사랑을) 맹세하나니'.

5. 오른손을 주먹쥔 채 들어올렸다 손등을 정면으로 보이며 아래로 내린다면 '죽일 것이다'.

6. 왼손의 약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가리키면 '결혼'.

7. '전사(여기선 솔로르)는 이마의 띠에 깃털을 달았으므로 이마 중앙에 손을 세웠다가 위쪽으로 뻗으면 '전사'.

  그런데 이번 국립발레단의 솔로르는 이마의 깃털이 누웠는지 눈에 띄지 않았고, 

  1막에서 신하가 왕에게 "도착했습니다, 전사 솔로르가" 라고 마임으로 말할 때, 

  주먹 쥔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린채 오른발을 쿵, 구르는 것으로 솔로르를 표현한 것 같았다.

8. '무희'는 탁발승에게 물을 따라 주는 일도 했으므로, 왼손 손바닥을 위로 향한 채 왼쪽 바깥쪽으로 팔을 올리고,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한 채 팔을 왼쪽을 향하여 들어 올림으로 물동이를 인 모습으로 표현한다. 즉 '무희 (여기선 니키아)'.



이 마임을 알아두면 음성언어와 활자가 없는 발레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더 될까 싶어 그림으로 그려 보았는데, 워낙 내가 기예엔 소질이 없어서. 

내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무슨 노래인지 모르고, 그림을 그리면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는 그런. 뭐.







네. 웃으셔도 좋습니다. -_-










작년에 썼던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가 누구 버전인지 안 적혀 있네. 지금 공연 중인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1877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를 1991년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볼쇼이발레단을 위해 재해석한 것을, 2013년 국립발레단을 위해 조금 각색한 버전이라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것은 마린스키 버전, 마카로바 버전, 누례예프 버전, 그리고 그리가로비치 버전이 있는데, 다른 버전은 내가 안 보았어서 모르겠지만, 작년의 유니버설 발레단의 안무가 이번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버전과 많이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립발레단 버전이야, 그리가로비치가 국립발레단을 위해 직접 수정을 한 것이니.


작품의 줄거리와 전문적인 평가는 위에 실어둔 정보와 기사들을 참고하세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어지간한 이야기는 작년 유니버설 발레단 작품의 후기에 다 실려 있다. 지금 후기엔 어제 공연에서 특별하게 느꼈던 것만 쓰려고.


이전에 내가 본 공연이 작년 유니버설 발레단의 것이었으니, 거의 모든 비교가 그 공연에 대한 것이 될 것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국립발레단 홈피와 위의 뉴스 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먼저 의상과 무대장치.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좋게 말하면 깔끔했고, 나쁘게 말하면 휑했다. 유니버설의 무대와 의상이 형형색색의 화려함을 뽐냈다면, 국립발레단의 것은 심심할 정도로 깔끔했다. 무대에는 꼭 필요한 소품만 있었는데,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라 바야데르>' 라는 수식어를 만족시키기엔 좀 허전했다. 하지만 덕분에 무용수분들의 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이는 국립발레단의 성격에 잘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국립발레단의 성격'이란 것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나중에 따로 말하겠다. 


무대장치 만큼이나 의상이 또한 밋밋했다. 유니버설의 의상은 색상도 화려했을 뿐더러 문자 그대로 '튀튀의 향연'이었다. 물론 국립발레단의 의상에도 튀튀가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유니버설의 의상은 한 무대에 바지, 로맨틱 튀튀, 클래식 튀튀 등 실로 다양한 의상이 동시에 등장해 몹시 화려했던 것에 비해, 국립발레단의 의상은 다소 간소한 편이었다. 그처럼 간소화된? 의상이 주는 큰 장점이 하나 있었다. 베일(천)의 의미가 그것인데 (지금 보니 이번 공연의 포스터 글자도 이 천으로 표현되었네), 작년 유니버설 때 공연을 두 번이나 보았는 데다 공연정보에 아예 천에 대한 언급과 해석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었다. 너무 화려해 볼거리가 많아 오히려 놓친 점이었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이번 국립발레단의 의상을 보면서 처음 1막에서부터 3막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긴 베일의 일관성이 두드러졌다. 유니버설에서 제공했던 정보 속 시놉시스의 마지막에서 그 천을 '사랑의 스카프로 두 사람을 연결하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고 설명했는데, 그 장면에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국립발레단의 의상을 보면서 오히려 '인간을 떠나지 않고 옭아매는 아름답고 잔인한 운명의 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스카프를 두고 운명의 끈이라 생각한 이유를 말해 볼까. 처음 니키아가 등장할 때 베일로 얼굴을 가리운 채 등장한다. 운명은 우리의 눈을 가린 채, 우리를 세상의 무대로 떠밀어 등장시킨다. 그리곤 춤을 추게 만들지. 1막 2장 궁정의 파티에서 니키아가 등장할 때 그녀는 베일에 몸을 감긴 상태였는데 (이것이 1장이었나...?? 헷갈리는데.;; 무튼) 몸을 돌려 그 베일을 풀어가는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곤 시종일관 머리띠에서 늘어져 손목으로 연결되는 길다란 베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무대를 채우고, 마침내 니키아가 죽은 후 망령의 세계에까지 연결되어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보며 개인적으로, 죽음으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운명의 끈이란 것이 이 국립발레단 버전의 경우 좀 더 잔인한 성격의 것으로 도드라져 인식되었던 이유는, 희한하게도 절제된 의상으로 인해 오히려 강조된 일부 무용수들의 의상 때문이었다. 형형색색 화려해 눈이 즐거웠던 유니버설의 의상에 비해, 국립발레단의 의상은 더스티 파스텔 계열이다. 잘 눈에 띄지 않아. 1막에선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심지어 초라하다는 느낌 마저 들었더랬는데, 2막의 결혼식 장면에서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몹시 고상하고 우아하게 느껴졌다 (이 의상은 전세계적으로 국립발레단 만의 특징이라 한다).  딱히 튀는 색 없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차분한 색조로 인해 눈이 편안해졌고. 반면, 전체 의상이 고상하고 조화로웠기에 더욱 눈에 띄기도 했겠지만, 보는 순간 놀라움을 넘어 불쾌감을 느꼈을 정도로 원색적인 의상들이 있었는데, 탁발승과 인디언들의 의상이 그러했다. 감자티 공주의 짙은 파랑이나, 니키아의 붉은 의상이 눈에 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탁발승과 인디언... 인디언이 맞나... 무튼 붉은 의상에 북을 치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소위 '블랙 페이스'라 하는 '검둥이 분장'을 했는데, 그것이 노출, 원색적 의상과 함께 이루어져서인지 원시성을 연상시켜서 보기에 참 불쾌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었는데, 좀 전에 검색하니 위에 실은 마지막 기사에도 있듯, '인종차별적 요소'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 한다. 19세기 공연 당시에 백인 무용수들이 흑인을 희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블랙 페이스' 분장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시대적 요소로서, 세계적으로 지양되는 부분이라 한다. 그래서 작년 유니버설의 의상에선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그런데 이번 국립발레단에선 전체 의상이 톤다운된 마당에 오히려 탁발승이나 인디언 등 하층계급의 의상과 분장을 붉은색에 블랙페이스로 표현한 바람에, 그들의 상대적으로 비참하다고 여겨지는 신분과 계급이 더 강조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블랙페이스로 분장된 인디언의 붉은색이 2막에서 니키아가 죽을 때 입었던 붉은 의상과 연결되어, 결국 니키아의 잔인한 운명에까지 이미지가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블랙페이스의 국제적인 논란을 모르실 리 없는 강수진 단장님께서 굳이 이 분장을 사용하신 것에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보는 입장에서 그 블랙페이스의 불편함이 오히려 니키아의 잔혹한 운명을 부각시키게 되어 내게는 유익한 효과였다 하겠다. 











작년에도 인상 깊게 보았던 32명 무용수분들의 3막 등장 장면. 경사에서의 아라베스크가 참 많이 힘들긴 한가 보다. 작년엔 경사에서 한 분이 비틀, 하셨는데, 어제는 경사는 무사히 지나시고선 전체 정렬에서 중간의 두 분이 비틀. 아... 정말 힘드셨겠구나, 싶어 안쓰러웠으면서 살짝 재밌기도 했고.


이렇게 보니 푸른색 같은데, 육안으로 보면 파란색 보단 차라리 청녹색 느낌이 날 정도로 흰색이었다. <자잴>의 공연에서도 그렇게 느꼈는데, <지젤>의 2막 윌리의 무대에서 유니버설은 푸른색, 국립발레단은 희미한 흰색으로 정령을 표현했었다. 푸른색은 낭만과 아련함을, 흰색은 좀 더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이번 <라 바야데르>에서는 니키아의 잔인한 운명이 유독 강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에, 블랙 앤 화이트가 주는 무대 조명이 잘 어울렸다.










코르 드 발레의 아름다운 팔, 치마, 다리의 각도와 곡선을 감상하자.


작년에도 느꼈지만 <라 바야데르>의 3막은 코르 드 발레를 위해 억지로 무리해서 집어 넣은 것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연이 너무 길어서 그러한지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1, 2막에 비해 3막은 좀 지루하다.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에서 처럼 대열을 바꾸는 군무가 별로 없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나마 이번 국립발레단의 3막에선 맨 마지막에 니키아와 솔로르의 화려한 회전을 추가해 주셨어서, 그나마 신나게 환호할 기회가 생겨 고마웠다. 


한 가지, 난 작년 유니버설 때 물동이를 머리에 인 독무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일행이 작년에도 있었다 한다? 근데 난 왜 처음 보는 것이지? 두 명의 어린 발레리나를 동반한 물동이춤을 추셨던 분. 머리에 물동이를 얹고는 손을 땐 채 춤을 추셨는데 와... 싶었다. 그런데 생소한 장면이어선지 관객들의 환호가 생각보다 크진 않던. 난 처음 봤는데, 알고 보면 흔한 장면이었던 거야? -_ㅜ 뭐, 내가 아직 발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긴 하다. 유니버설의 안무와 다른 부분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차이점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라 바야데르>는 3막의 군무가 압권이라고들 하는데, 왜 나와 일행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감상 수준의 차이라 하면 수긍합니다. 그렇겠죠. 내가 보기엔 오히려 3막의 코르 드 발레 보단 2막의 디베르티스망에서 뽐내는 2인무,  8인무, 12인무가 더 재미나던데. 










이번에 비로소 느낀 점이 하나 있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차이.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그리고 나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그 점을 감안하여 읽으시길 바란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개성과 자유, 국립발레단은 절제와 안정.

유니버설의 개성과 자유에는 낭만과 불안이 있고, 국립의 절제와 안정에는 조화와 단조로움이 있다.


어제 공연을 보면서 무대, 의상에서부터 무용수분들의 체형, 동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국립발레단의 성격이 선명하게 인식되었는데, 절제와 조화가 주는 안정감이 큰 매력이었다. 발레리나의 경우 키가 그리 많이 차이나지 않아서, 코르 드 발레에서 다리만 뻗거나, 심지어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짜릿한 통일감에 쾌감이 느껴진다. 상당히 눈이 즐거웠다. 그걸 왜 지금에야 알았지. 작년 유니버설의 <라 바야데르>를 보면서 키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키가 큰 김채리 님의 니키아엔 키가 더 큰 최지원 님이 감자티를, 키가 작은 황혜민 님의 니키아엔 조금 크신 강미선 님이 감자티를 맡으신 것을 보고, 키 큰 니키아의 아련함과 키 작은 감자티의 카리스마가 맞붙을 순 없을까? 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지. 니키아와 감자티의 키 비율은 비슷했지만, 유니버설의 경우 전체 발레리나의 체형이 꽤 다양한 편이라 생각한다. 황혜민 님과 김채리 님은 둘 다 수석무용수이시지만, 키 차이가 꽤 나시는 걸로 알고 있고. 그런데 국립발레단의 경우 물론 크고 작은 분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편이었기에, 3막의 발레블랑에서 똑같은 흰색 튀튀를 입고 정렬했을 때 통일감이 굉장했다. 


절제와 안정 vs 개성과 자유라는 특징은 무용수분들의 연기나 동작에서도 드러났는데, 유니버설의 황혜민 님이나 홍향기, 강미선, 특히 김채리 님의 춤을 보았을 때 유독 '연기력이 좋다, 공기 같다, 아련하다, 하늘하늘하다, 부드럽다'라고 인식했던 반면, 국립발레단의 김지영, 이은원, 박슬기, 김리희 님의 춤을 보았을 땐 '정확하다, 안정적이다, 주관과 성격이 뚜렷한 여성을 연기하시는 것 같다, 직선적이다' 라 느껴진 것에서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유니버설의 공연을 보면 몹시 낭만적이고 아련한 분위기에서 다채롭고 개성이 강해 생각지도 못한 짜릿함을 기대하게 되는 경향이 이ㅡ개인적으로ㅡ있다. 무용수분들, 특히 유니버설의 발레리노분들의 경우 동작이 훨씬 과장적이고 도약의 높이도 천차만별이고 화려한데, 그런 만큼 착지 시 쿵, 쿵, 소리가 크게 나는 편이어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고르고 균형적이고 조화롭고 절제된 분위기에서 무용수분들의 연기나 동작이 극도로 과장스러운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이 또한 발레리노 분들을 떠올려 보았을 때, 신기하게 모두 착지가 조용하셨다. 깜짝 놀랐는데. 아니, 이영철 발레리노께서 원래 그렇게 착지가 조용하셨었나? 싶고. 어제 새삼 놀랐던 점이라 이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번 공연에서도 활약하시지만, 작년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 슈트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프리드만 포겔의 춤을 보았을 때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무음착지?가 이번엔 국립발레단 발레리노분들의 전체적 특징으로 다가와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물론 차이는 있다. 포겔의 경우 발끝으로 착지하며 흡사 여성의 동작인 양 부드러웠던 반면, 이영철 발레리노의 경우 소리는 적었지만 동작 자체는 남성적이었거든. 무튼, 남녀를 막론하고 국립발레단 무용수분들의 동작은 유니버설에 비해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하고, 정확했다. 정확했다 해서 실수가 적다는 것이 아니라, 실수야 없을 수 있겠나,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이고 조화로웠다. 다만 고상하다 보니 하늘하늘 야들야들 낭만과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넘치는 류의 자유로움은 느끼기 힘들었는데,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 한다. 국립발레단에는 국립발레단의 매력이 있고, 유니버설발레단에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매력이 있는 것이지. 음악 전공에 있어 서울대학교 vs 한예종이랄까. 그런 인상이었다.






이젠 뭘 쓰지...

뭔가 쓸 것이 더 있을 것도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네.

나중에 떠오르면 덧붙이든지. 일단은 이것으로 후기를 맺는다.


국립발레단의 절제미와 조화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던 <라 바야데르> 덕분에 오랜만에 눈이 정화되었다.

맘 같아선 토요일의 김지영 님 공연을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서 속상하다.

이번에 느낀 국립발레단의 특성을 고려한 상태로 김지영 발레리나의 정확하고 빼어난 기술을 감상한다면 정말 황홀할 텐데.

하긴... <라 바야데르>에서 표현되는 니키아의 성격은 너무 단선적이고 안무도 다소 밋밋한 편이어서

김지영 님의 정확한 테크닉을 즐기기엔 분량 자체가 적을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오데트 vs 오딜의 성격 표현 만큼 즐거운 캐릭터와 연기력 비교는 드물구나.





국립발레단과 예술의 전당 덕분에 3개월 만에 행복한 2시간 반을 즐겼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