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박된 프로메테우스
티탄이라는 신의 종족 가운데 한 명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약초를 써서 병을 낫게 하는 기술과 여러 가지로 점을 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위에 오르자 인류를 멸하려고 생각했던 참이라, 이 일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화를 내게 되었다. 제우스는 불의 신이며 대장간의 신이기도 한 헤파이스토스에게 명하여 프로메테우스를 붙들어다가 커다란 바위에 결박하여 형벌을 내리도록 명했다.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은 이 사실을 슬퍼하여 그를 찾아와 위로했다. 또한 오케아노스도 역시 그에게 찾아와 제우스에게 사과하여 그의 분노를 풀도록 하라고 권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그 권고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한편, 알고스 왕의 공주인 이오가 등장하여 자신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것으로 해서,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분노를 사게 된 터였다. 그 시샘으로 끝내는 암소가 되어 괴로움을 받아야만 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오를 향하여 그녀의 장래 운명을 미리 예고해 준다. 그 말에 의하면, 그녀의 자손이 프로메테우스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고 제우스는 신들의 왕좌로부터 추방되고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러한 대화가 오갈 때에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가 등장했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을 듣고서, 제우스를 위해 그 비밀을 알려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끝까지 그 요구를 거절했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오케아노스의 딸들과 더불어 땅 밑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2002. 4. 1., 가람기획)
아이스퀼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아이스퀼로스
작품 소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퀼로스 작이 아니라, 그의 사후에 다른 사람이 완성하거나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운율, 문체, 공연 기술 등에서 그의 전해지는 다른 6편의 비극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그의 작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공연자료집’(didaskalia)에 공연 정보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90편 가운데 지금 7편만 남아 있음을 고려할 때 속단할 수 없다는 신중론자들도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전에 제우스를 도와 티탄 신족을 이기고 올림포스 신족의 시대를 열게 해주었건만, 불을 주고 기술을 가르쳐주는 등 인간들을 편들다가 제우스의 미움을 사 헤파이스토스 등에 의해 카우카소스 산의 높은 암벽에 결박 당한다. 이때 암소로 변신한 이오가 그곳을 지나자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에게 미래사를 말해주며 제우스가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끝까지 거절하다가 제우스의 벼락으로 산산조각이 난 바위조각들과 함께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등장인물
힘과 폭력
헤파이스토스
프로메테우스
코로스: 오케아노스와 테튀스의 딸들로 구성된
오케아노스
이오: 아르고스의 왕 이나코스의 딸
헤르메스
장소: 그리스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외딴 곳. 암벽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힘[1] 우리는 대지의 가장 먼 경계에 도착했소이다.
여기가 바로 스퀴티스 땅으로 인적미답의 황무지요.
헤파이스토스여, 그대는 어서 아버지[2]의 명령을
이행하시오. 여기 이 주제넘은 자를 강철 사슬의
부술 수 없는 족쇄로 높고 가파른 바위에
붙들어 매란 말이오. 그자는 그대의 꽃을,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불의 광채를 훔쳐내
필멸의 인간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오.
그 죗값으로 그자는 신들에게 벌 받아 마땅하오.
그래야만 그자는 제우스의 통치에 순응하여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를 버리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헤파이스토스 힘과 폭력이여, 그대들 둘은 제우스의 명령을
완수했으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소이다.
하지만 나는 차마 내 친척[3] 신을 폭풍 몰아치는
암벽에 강제로 붙들어 맬 용기가 나지 않는구려.
그럼에도 이 일을 위해 나는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구려.
아버지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프로메테우스에게) 바른 조언을 하는 테미스의
생각이 원대한 아들이여, 그대도 나도 원치 않는 일이지만
나는 풀 수 없는 청동으로 이 인적미답의 절벽에
그대를 꽁꽁 붙들어 매지 않을 수 없소. 그러면 그대는
이곳에서 인간의 음성과 모습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며,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그을려 꽃다운 살갗을 잃을 것이오.
그때는 별빛 찬란한 옷을 입은 밤이 햇빛을 가려주고,
새벽 서리를 다시 태양이 쫓아주면 그대는 그것이
반가울 것이오. 그리고 항시 곤란한 일이 생겨 그대는
지쳐 녹초가 될 것이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그대의 태도가 그대에게 가져다 준 결실이오. 그대는
자신이 신이면서도 신들의 노여움 앞에 움츠러들지 않고
인간들에게 과분한 명예를 주었소.
그 대가로 그대는 아무런 기쁨도 없는 이 바위를
지키게 될 것이오. 곧추서서는 잠도 자지 못하고, 무릎도
구부리지 못한 채, 그대는 수많은 탄식과 비명을 내뱉게
되겠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오. 제우스의 마음은 달래기
어려우니까요. 새로 권력을 쥔 자는 누구든 가혹한 법이오.
힘 자, 자! 그대는 왜 꾸물대며 쓸데없이 동정을 보이는 게요?
그대는 왜 신들에게 미움 받는 신을 미워하지 않는 게요?
그자는 그대의 특권[4]을 인간들에게 내주지 않았던가요?
헤파이스토스 친족관계란 것은 강력한 것이오. 친교도 그렇고.
힘 그건 그렇소. 하지만 아버지[5]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그건 어떻고요? 그대는 그게 더 무섭지 않나요?
헤파이스토스 그대는 언제나 잔인하고 과감하기 짝이 없구려.
힘 그자를 위해 울어봤자 아무 소용 없어요.
무익한 일에 쓸데없이 헛수고하지 마시오.
헤파이스토스 오오, 내 손재주여, 나는 네가 정말 밉구나!
힘 손재주는 왜 미워하시오. 솔직히 그자가 처한 지금의
이 어려운 처지에 그대의 손재주는 전혀 책임이 없을 텐데요.
헤파이스토스 이 손재주가 다른 이에게 주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힘 모든 소임은 다 괴로운 법이오. 신들을 다스리는 것 말고는.
제우스 외에는 아무도 자유롭지 못하니 말이오.
헤파이스토스 이것들[6]을 통해 그런 줄 알았소. 내 반박하지 않겠소이다.
힘 그렇다면 어서 여기 이자에게 사슬을 두르시오.
그대가 늑장부리는 것을 아버지께서 보시지 않도록.
헤파이스토스 자, 보시오. 여기 사슬이 준비되어 있소이다.
힘 그자의 손에 그것을 채우고는 망치를 힘껏 휘둘러
바위에 그자를 꽁꽁 붙들어 매시구려!
헤파이스토스 나는 벌써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소이다. 그것도 실수 없이.
힘 더 세게 치시오. 바짝 죄시오. 한군데도 느슨해서는 아니 되오.
그자는 교활해 어떤 궁지에서도 빠져나갈 길을 찾아낼 테니까요.
헤파이스토스 여기 이 팔은 단단히 묶여 절대로 풀 수 없을 것이오.
힘 이번엔 이쪽 팔도 못으로 단단히 고정시키시오.
제아무리 교활해도 제우스보다는 굼뜨다는 것을 알도록.
헤파이스토스 여기 이 프로메테우스만이 내 작업을 정당하게 흠잡을 수 있을 것이오.
힘 이번에는 강철 쐐기의 무자비한 이빨을
그자 가슴에 힘껏 두들겨 박으시오[7].
헤파이스토스 프로메테우스여, 내 그대의 고통을 보니 탄식이 절로 나는구려.
힘 그대는 또 꾸물대며 제우스의 적을 위해 탄식하는 게요?
언젠가 그대 자신을 동정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오.
헤파이스토스 그대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소.
힘 나는 여기 이자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보고 있소.
자, 그자의 양 옆구리에 무쇠 띠를 두르시오!
헤파이스토스 어차피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 너무 재촉하지 마오.
힘 내 이번에는 정말로 재촉하고, 몰아대기까지 하겠소.
그대는 아래로 내려와 그자의 양다리에 쇠고리를 채우시오.
헤파이스토스 내 그 일도 해치웠소이다. 오래 수고하지 않고.
힘 이번에는 구멍 뚫린 족쇄들을 힘껏 쳐서 고정시키시오.
이 일을 검사하실 분[8]은 엄한 분이시니까요.
헤파이스토스 그대는 말하는 것과 생긴 것이 똑같소 그려.
힘 그대나 나약하시고, 내 완고함과
거친 기질은 제발 헐뜯지 말아주시오!
헤파이스토스 자, 갑시다. 그는 사지가 그물에 감겨 있소.
힘 (프로메테우스에게)
이제는 여기서 오만불손하게도 신들의 특권들을 훔쳐내어
그대의 하루살이들[9]에게 줘보시지. 필멸의 인간들이
어떻게 그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 신들이 그대를
‘사전에 생각하는 자[10]’라고 부르는 건 잘못되었소.
이 정교한 그물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
그대 스스로 ‘사전 생각’이 필요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헤파이스토스와 힘의 폭력, 퇴장)
프로메테우스[11] 오오, 고귀한 대기여, 날랜 바람의 입김이여,
강의 원천들이여, 바다 위 파도들의
무수한 미소들이여, 만물의 어머니 대지여,
그리고 만물을 굽어보는 둥근 태양이여,
내 그대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보시오.
신인 내가 신들로부터 어떤 일을 당하는지!
보아두시오, 내가 어떤 모욕과 고통에 시달리며
만 년 동안이나 괴로워하게 될 것인지!
축복받은 신들의 새 지도자가 나를 위하여
이런 모욕적인 결박을 생각해냈소.
아아, 나는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고통을
동시에 한탄하고 있소이다. 앞으로 어떻게
내 이 고난에 종말이 밝아올 것인가?
한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있을 일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
어떤 고통도 느닷없이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으리라.
내게 정해진 운명을 나는 되도록 가볍게 견뎌내야 해.
필연의 힘에 맞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아니까.
하지만 이런 내 운명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도,
침묵을 지키지 않는 것도 내게는 불가능하구나.
인간들에게 큰 특권을 선물한 까닭에 나는 이런
고통의 멍에를 지고 있는 거야. 나는 회향풀[12] 줄기에
싸서 불의 원천을 훔쳐냈는데, 인간들에게 그것은
온갖 기술의 교사가 되고 큰 도움이 되었지.
그런 죄를 지은 까닭에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어.
노천에서 사슬에 꽁꽁 묶인 채.
아니, 아니, 이게 뭐지?
무슨 소리가, 무슨 냄새가 눈에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거지?
신들의 것일까, 인간들의 것일까, 아니면 둘이 섞인 것일까?
대지의 끝에 있는 이 암벽을 찾아오다니.
내 고통을 보려고? 아니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다면 보시구려. 사슬에 묶인 이 불행한 신을.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제우스의 적이 되고,
제우스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모든 신들에게 미움 받는 이 모습을!
아아, 새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구나. 날개를 가볍게 쳐대니
대기도 덩달아 윙윙 울리는구나.
무엇이 다가오든 나는 두렵기만 하구나.
(크로스, 날개 달린 마차를 타고 공중에 등장)
(좌 1)[13]
코로스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 일행은
아버지의 마음을 간신히 설득하여
날개들이 서로 속력을 다투는 가운데
그대의 친구로서 이 암벽을 찾아왔으니까요.
빨리 날라다 주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었어요.
요란한 망치 소리가 우리 동굴의 맨 안쪽까지
들려와, 나는 수줍음도 잊어버리고
이렇게 샌들도 신지 않은 채
날개 달린 마차에 뛰어올랐어요.
프로메테우스 아아, 아아!
자식이 많은 테튀스의 따님들이여,
쉴 새 없이 온 대지를 감돌아 흐르는
아버지 오케아노스의 따님들이여,
그대들은 똑똑히 보시오.
내가 어떻게 사슬에 묶이고 못으로 고정된 채
우뚝 솟은 이 암벽 꼭대기에서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파수를 보고 있는지!
(우 1)
코로스 보고 있어요, 프로메테우스 님.
그대가 강철에 묶여 이런 수모를
당하며 암벽에서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는 두려움에
눈물이 앞을 가려요.
새로운 키잡이들이 올륌포스를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우스는 법도를
무시한 채 새 법에 따라 통치하며,
전에 강력했던 것을 지금 말살하고 있어요.
프로메테우스 그가 풀 수 없는 사슬들로 나를
잔혹하게 묶어 지하로, 사자들을 받아들이는
보내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신도, 다른 어떤 자도
내 이 꼴을 보고 좋아할 수 없도록.
한데 나는 가련하게도 바람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구나. 내 적들이 기뻐하도록.
코로스 신들 가운데 누가 이런 일을 보고
기뻐할 만큼 마음이 가혹하겠어요?
누가 그대의 불행에 함께 분개하지 않겠어요,
제우스만 빼고? 그는 악의에 차
언제나 굽힐 줄 모르는 마음을 품고
우라노스의 자식들[16]을 제압하고 있지요.
그는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성에 차거나,
아니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누군가
손으로 그의 통치권을 빼앗기 전에는.
프로메테우스 내 비록 족쇄에 꽁꽁 묶여 수모를 당하지만,
축복받은 신들의 우두머리[17]에게
내가 필요한 날이 반드시 올 것이오.
그의 왕홀과 왕위를 빼앗게 될
새 음모를 그에게 밝혀주도록 말이오.
그때는 꿀처럼 달콤한 설득의 말로도
나를 호리지 못할 것이며, 나도 결코
그의 무서운 위협에 굴복하여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오. 그가 가혹한 사슬에서
나를 풀어주고, 내가 받은 이 수모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려 들기 전에는.
(우 3)
코로스 그대는 용감하게도 쓰라린 고통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군요. 하지만 나는
에는 듯한 공포에 마음이 불안해요.
나는 그대의 운명이 두려워요.
언제 그대가 이 고난의 종점에 무사히
상륙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크로노스의 아들[18]은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기질과 말로 설득할 수 없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프로메테우스 알고 있소. 그가 가혹하고 제멋대로
정의를 행사한다는 것을.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마음이 온순해질 것이오.
앞서 말한 그런 식으로 타격을 받게 되면 말이오.
그때는 양보할 줄 모르는 그의 성질도 누그러져,
그는 나와 동맹을 맺고 친구가 되려고 그러잖아도
그러기를 바라는 나를 서둘러 찾아올 것이오.
코로스장 다 털어놓으세요. 우리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제우스가 그대를 붙잡아
이렇듯 불명예스럽고 가혹한 고문을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세요. 말해도 해를 입지 않으신다면.
프로메테우스 그에 관해서는 말하는 것도 내게는 괴로운 일이고
말하지 않는 것도 괴롭소. 어느 쪽도 괴롭긴 마찬가지요.
신들 사이에서 불화가 고개를 들어,
더러는 앞으로 제우스가 통치할 수 있도록
크로노스[19]를 권좌에서 축출하기를 원하고
더러는 반대로 제우스는 절대 신들을 통치해서는
안 된다고 열을 올렸을 때, 나는 최선의 조언을 했으나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자식들인 티탄 신족을
설득할 순 없었소. 그들은 현명하고 교묘한 내 조언을
무시하고는 완고한 자신감에 차 힘들이지 않고도
완력으로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한데 테미스라고도 불리는 내 어머니 가이아[20]께서
ㅡ이름은 여럿이지만 사실은 한 분이시지요ㅡ
미래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 누차 예언해주셨소.
힘이나 폭력에 의해 승리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략이 뛰어난 자들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고 말이오.
그래서 내가 티탄 신족에게 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으나
그들은 내 말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겼지요.
그래서 당시의 여러 가지 가능성 가운데 내게는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제우스 편에 가담하는 것이
상책으로 보였고, 그것은 또 양측이 다 원하는 바였소.
내 조언 덕택에 타르타로스의 검고 깊은
심연이 옛날에 태어난 크로노스를
그의 모든 전우들과 함께 감추고 있는 것이오.
그렇듯 내 덕을 보았건만 배은망덕하게도
신들의 폭군[21]은 내게 이런 보답을 하지 뭐요.
친구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폭정이 앓는 질병이니까요.
그대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가 나를
고문하느냐 물었는데, 이제 그것을 밝히겠소.
그는 아버지의 왕좌에 앉자마자 지체 없이
여러 신들에게 저마다 다른 특권과 직위를
나눠주며 자신의 통치권을 분배했으나,
불쌍한 인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소.
아니, 그는 인간들의 종족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다른 종족을 새로 만들려 했소. 나 말고는
이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소. 하지만 나는 과감히
반대했소. 그리하여 나는 인간들이 박살 나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인간들을 구해주었소.
그 때문에 나는 견디기 괴롭고 보기 민망한
이런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오. 인간들을
동정하다가 나 자신은 동정 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 이런 무자비한 벌을 받고 있지만,
이런 광경은 제우스에게 불명예가 될 것이오.
코로스장 프로메테우스 님, 그대의 고통을 보고도 동정하지 않는
자는 틀림없이 무쇠의 심장을 갖고 있고 돌로
만들어졌을 거예요. 이런 광경을 보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보고 나니까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
프로메테우스 그럴 테지요. 친구들에게는 내가 보기 딱하겠지요.
코로스장 그대는 우리에게 말한 것보다 한술 더 뜨시진 않았나요?
프로메테우스 그래요. 나는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을 내다보지 못하게 했지요.
코로스장 그 병에 대해 그대는 어떤 약을 발견하셨지요?
프로메테우스 그들의 마음속에 맹목적[22]인 희망을 심어놓았지요.
코로스장 그대는 인간들에게 큰 도움을 주셨네요.
프로메테우스 게다가 나는 그들에게 불도 주었지요.
코로스장 하루살이 인간들이 벌써 환한 얼굴의 불을 갖고 있단 말인가요?
프로메테우스 인간들은 불로부터 많은 기술을 배우게 될 것이오.
코로스장 그러니까 그런 죄를 지었다고 제우스가 그대를…
프로메테우스 고문하고 있고, 그 고통은 결코 완화되지 않을 거요.
코로스장 그리고 그대에게 이 고난의 종말은 정해져 있지 않나요?
프로메테우스 정해져 있지 않아요. 제우스에게 그럴 마음이 생기기 전에는.
코로스장 어떤 마음이 생기죠? 그럴 희망이 있나요. 그대의 잘못이
안 보이세요? 그대가 어떻게 잘못했는지 말한다는 것은
내게도 반갑지 않고 그대에게도 괴로운 일이에요.
그건 말하지 말기로 하고, 이 고난에서 벗어날 방도나 찾으세요.
프로메테우스 재난을 당하지 않고 그 바깥에 서 있는 자가
고통 당한 자에게 조언하고 경고하기란 쉬운 일이오.
사실 나는 그대가 말한 것을 다 알고 있었소.
나는 의도적으로 잘못했고, 그랬음을 부인하지 않겠소.
인간들을 도와줌으로써 나는 고난을 자초했소.
물론 허공에 매달린 바위에서
이웃도 없는 외딴 암벽에서
이런 고문을 당하며 시들게 될 줄은 몰랐소.
하지만 그대들은 지금의 내 처지를 슬퍼하지 마시오.
자, 그대들은 땅에 내려와 다가올 내 미래를 들으시오.
그대들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도록 말이오.
자, 내 말대로 하시오. 그리고 지금 핍박 받고 있는
나와 고통을 함께 하시오. 고통은 떠돌아다니다가
오늘은 갑에게, 내일은 을에게 내려 앉으니 말이오.
코로스장 프로메테우스 님, 그대가 외쳤던 그 소원을
기꺼이 이루어드릴게요. 이제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아다니는 날랜 마차와
신성한 대기와 새들이 날아다니는 길을 떠나
울퉁불퉁한 대지로 다가가겠어요.
그대의 고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 없이 다 듣고 싶어요.
(코로스, 본무대 뒤로 내려온다.)
오케아노스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등장하며)
이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구먼.
그대를 방문하러 나는 먼 길을 왔소이다.
프로메테우스여, 이 날개 달린 새를
고삐도 없이 생각으로 몰면서 말이오.
알아두시오. 나도 그대의 불행을 함께
괴로워하고 있소. 우리가 친척이란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대를 동정하게 만드는 것 같소.
그대가 내 친척이라는 점 말고도, 내가 그대보다
더 존경하는 이는 아무도 없소이다. 그것이
사실임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오. 빈말로
아부하는 것은 내 성미에도 맞지 않소이다.
그러니 어떻게 그대를 도울 수 있는지 말해보시오!
그러면 그대는 오케아노스보다 그대에게
더 성실한 친구가 있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오.
프로메테우스 아니, 여긴 어인 일이시오? 그대도 내 고난을
구경하러 왔나요? 그대가 어찌 감히 그대의
이름을 딴 강물과 지붕이 바위로 된, 저절로
만들어진 동굴을 떠나 무쇠의 고장인 이 나라에
왔단 말이오? 그대가 정말 내 운명을 보고,
내 불행을 동정하러 왔단 말이오?
자, 보시구려, 이 광경을. 제우스를 도와
그의 독재 왕국을 세웠던 이 제우스의 친구가
그의 지시에 의해 어떤 고문을 당하는지!
오케아노스 보고 있소. 프로메테우스여! 그대 비록 영리하지만
내 그대에게 가장 유익한 충고를 해주고 시소.
그대 자신을 알고, 그대 생각을 새롭게 바꾸도록 하시오.
신들의 통치자도 새로 바뀌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그렇게 거칠고 날 세운 말들을 내뱉는다면,
비록 저 위 먼 곳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제우스가
곧 그대의 말을 듣게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 그대가 진
고난의 짐도 어린애 장난처럼 보일 것이오.
자, 가련한 자여, 그대는 분을 삭이고
지금의 고난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으시오.
그대에게는 내 말이 고리타분하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오만불손하게 큰소리쳤다가 이런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소, 프로메테우스여! 그대는 여전히
고분고분하지 않고, 불행 앞에서 물러서기는커녕
지금의 불행에 다른 불행을 보태려 하고 있소.
그대가 내 충고를 따른다면 물이 막대기를 차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오. 그대도 보시다시피,
가혹한 독재자가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고 통치하고
있지 않소. 그래서 내 지금 가서, 혹시 그럴 수 있을는지,
그대를 이 고난에서 구하도록 노력해볼 참이오.
그대는 잠자코 있고, 말을 너무 함부로 하지 마시오.
그대는 누구보다 영리하니 허튼 소리를 하면
벌 받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프로메테우스 나는 그대가 부럽소. 그대는 나와 모든 것을 나눠 갖고
나와 함께 감행했는데도[23] 책임은 지지 않으니 말이오.
이제 나를 내버려두고, 더 이상 내 염려는 하지 마시오.
그대는 제우스를 설득하지 못해요. 그는 설득 당하지 않아요.
이번 걸음으로 봉변당하지 않도록 그대나 조심하시오!
오케아노스 그대는 천성적으로 자신보다 남들에게 훨씬 더
좋은 충고를 할 줄 아시는구려. 말이 아니라, 행동이
그걸 입증하고 있소. 그대는 내 열의를 제지하지 마시오.
나는 믿소. 굳게 믿소. 제우스가 내게 호의를
베풀어 이 고통에서 그대를 풀어줄 것이라고.
프로메테우스 나는 그대에게 감사하며, 감사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오. 그대의 호의에는 부족함이 없소.
하지만 수고하지 마시오. 그대가 수고를 아까지 않는다 해도,
내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헛수고가 될 테니까요.
그대는 얌전히 있고, 이 일에서 손을 떼시오.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해서, 그 때문에 되도록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천만에. 나와 형제간인 아틀라스가 당한 운명만 생각하면
나는 벌써 마음이 아프오. 그는 세상의 서쪽 끝에
서서 하늘과 대지의 기둥을 결코 견디기 쉽지 않은
짐을 양 어깨에 떠메고 있으니 말이오.
그리고 킬리키아의 동굴에 사는 대지의 아들로
일백 개의 머리를 가진 무시무시한 괴물인 사나운
튀폰이 힘에 의해 제압되는 것을 보았을 때도,
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소. 그자는 모든 신들과 맞섰고,
무서운 턱들에서 쉿쉿 소리를 내며 공포를 내뿜었소.
그리고 눈들에서 사납게 노려보는 광채를 발하며
그자는 제우스의 독재통치를 힘으로 무너뜨리려 했소.
하지만 제우스의 깨어 있는 날아다니는 무기가 그자를
덮쳤소. 아래로 떨어지며 화염을 내뿜는 벼락 말이오.
벼락이 그자를 쳐서 큰 소리와 호언장담을 제지했소.
그자는 정통으로 심장을 얻어맞았고,
그자의 힘은 벼락에 타 재가 되어버렸소.
그리고 지금은 큰 대자로 뻗은 쓸모 없는
몸뚱이로서 그자는 아이트네[24] 산의 뿌리에
짓눌린 채 그곳 바다의 해협 가까이 누워 있지요.
그 산꼭대기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앉아서 발갛게 단
무쇠를 두드리고 있소. 그곳에서 언젠가 불의 강들이
터져 나와 그 사나운 턱으로 아름다운 열매의
시켈리아[25]의 넓은 들판들을 먹어 치우게 될 것이오.
뒤폰은 비록 제우스의 벼락에 까맣게 타버렸지만,
접근할 수 없는 불의 입김의 뜨거운 화살들로
그렇게 자신의 분노가 끓어오르게 할 것이오.
그대는 세상물정에 어둡지 않으니 내 충고가 필요 없을
것이오. 그대는 자신이나 구하시오. 그 방법은 그대가
알고 있소. 나는 지금의 이 불행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실 것이오. 제우스가 노여움을 풀 때까지.
오케아노스 프로메테우스여, 그대는 모르시오. 노여움에
병든 마음에는 말이 곧 의사라는 것도?
프로메테우스 그렇겠지요. 때가 되었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풀어 오른 노여움을 억지로 누그러뜨리려 하지 않는다면.
오케아노스 하지만 누군가 그대를 동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거죠? 좀 가르쳐주시오.
프로메테우스 그것은 헛수고이자 불필요하고 경솔한 선의일 뿐이오.
오케아노스 그런 병이라면 앓게 내버려두시오. 현명하면서도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가장 이득이 되니 말이오.
프로메테우스 하지만 이번 경우 어리석어 보이는 것은 내가 되겠지요.
오케아노스 그대의 말은 분명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는구려.
프로메테우스 그래야 그대가 나를 위해 슬퍼하다 미움을 사지 않을 테니까요.
오케아노스 새로 권좌에 오른 자에게 말인가요?
프로메테우스 그가 역정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오케아노스 프로메테우스여, 나는 그대의 불행을 교훈으로 삼겠소.
프로메테우스 떠나시오. 어서 가시오. 지금 그 생각을 잘 간직하시오.
오케아노스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나는 떠나는 중이오.
나의 네 발 달린 새가 대기의 널은 주로를
날개로 치고 있소. 녀석은 집에 돌아가
제 마구간에서 무릎을 구부리고 싶은 모양이오.
(오케아노스 퇴장, 그 사이 코로스가 오르케스트라로 나온다.)
코로스[26](좌 1) 내 그대의 비참한 운명을
탄식해요, 프로메테우스 님.
부드러운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내 볼을
젖은 물줄기로 적셨어요.
제우스가 자의적인 법에 따라
이렇듯 아무 제약 없이 통치하며
옛 신들에게 오만한 창 끝을 보이다니요.
(우 1) 벌써 온 대지가 소리 높여 비탄해요.
그들은 그대와 그대 형제들의
위대하고 오래되고 존귀한
지위를 생각하고 비탄하는 거예요.
신성한 아시아에 정착하여
그곳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대의 고난을 동정하여
크게 비탄하고 있어요.
(좌 2) 콜키스[27] 땅에 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처녀들[28]도,
대지의 맨 끝에,
마이오티스 호[29] 주변에 사는
스퀴타이족의 무리도.
(우 2) 그리고 카우카소스[30] 산 근처의
암벽 성채를 지키는
아라비아의 호전적인 꽃들도.
그들은 무서운 군대로 끝이 뾰족한 창을
휘두르며 함성을 지르곤 하지요.
(좌 3)[31] 그대 말고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티탄 신이 지칠 줄 모르는 고난의 사슬에
묶여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둥근 하늘을 엄청난 힘으로
혼자 등에 떠메고 그 밑에서
쉴 새 없이 신음하는 아틀라스 말이에요.
(우 3) 바다의 파도도 부서지며 함께 비탄하고,
바다 밑도 비탄하고, 대지의 맨 안쪽인
어두운 하데스도 밑에서 메아리치고,
맑게 흐르는 강들의 원천들도
그대의 가련한 고통을 비탄하고 있어요.
프로메테우스 (한참 뒤에) 그대들은 내가 오만하고 완고해서 침묵을 지켰다고
생각지 마시오. 오히려 나는 이런 수모를 당하는
나 자신을 보니 괴로워 가슴이 찢어질 듯하오.
사실 따지고 보면 새 신들에게 특권을 나눠준 것은
내가 아닐 누구란 말이오?[32] 하지만 이 일은
말하지 않겠소. 나는 그대들이 아는 것만 말하겠소.
들어보시오. 인간들이 겪었던 고통들과,
전에는 어리석었던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사고력과 지적 능력을 주었는지 말이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인간들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선물들이 호의에서 전달되었음을 밝히기 위해서요.
인간들은 전에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소. 아니, 인간들은 꿈속의
형상처럼 긴긴 일생 동안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뒤섞었소. 그들은 양지바른 곳에
벽돌집을 지을 줄도 몰랐고, 목재를 다룰 줄 몰랐으며,
득시글거리는 개미 떼처럼 햇빛도 안 드는
토굴 안에 파묻혀 살았소. 그들에게는
겨울과 꽃 향기 가득한 봄과 결실의 늦여름이 다가와도
그것을 말해줄 확실한 징표가 없었소.
그들은 모든 것을 지각없이 해치웠지요. 그들에게
별들이 언제 어디서 뜨고 지는지ㅡ사실 그것은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지요ㅡ내가 가르쳐주기 전에는.
그 밖에도 나는 그들을 위해 발명품의 진수인 수를
발명해냈고, 문자의 조립도 찾아내어, 그것이 그들에게
모든 것의 기억이 되고, 예술의 창조적 어머니[33]가 되게
했소. 나는 또 처음으로 들짐승들에게 멍에를
얹었소. 봇줄의 노예가 된 야수들이 가장 힘든 노역에서
인간들을 구해주도록 말이오. 나는 또
말들을 수레 앞으로 끌고 가 고삐에 복종케 함으로써
부자들이 자신의 사치를 자랑할 수 있게 해주었소.
아마포의 날개를 달고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선원들의 수레를 발명해낸 것도 다름 아닌 나였소.
가련한 나는 인간들을 위해 그런 기술들을
발명했건만, 나 자신은 지금 이 곤경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소.
크로스장 그대는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어요. 그래서 그대는
당황하여 헤매고 있고, 스스로 병에 걸린 의사처럼
절망한 나머지 어떤 약이 그대를 낫게 해줄지
스스로 알아내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프로메테우스 내가 어떤 기술들과 방도들을 생각해냈는지 내 말을
마저 들어 보시오. 그러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오.
가장 큰 것부터 말하겠소. 인간들 가운데 누군가
병에 걸리면 병을 막아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소.
먹을 것도, 바를 것도, 마실 것도.
인간들은 약이 없어 죽어갔소. 내가 그들에게
온갖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약초들을
섞는 방법을 보여주기 전에는 말이오.
나는 또 수많은 종류의 점술을 정리했는데,
내가 처음으로 꿈들 가운데 어떤 것이 깨어 있는 동안
실현되는지 가려주었고, 풀이하기 어려운 소리들과
길 가다 만나는 것의 전조를 알려주었소.
나는 또 발톱이 구부정한 새들의 비상도 정확히
가려주었소. 어떤 새들이 그 본성에 따라 오른쪽으로 날며
길조를 보여주고, 어떤 새들이 흉조를 보여주는지.
새들은 제각기 어떤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지.
또 새들이 어떻게 서로 미워하고 좋아하고 어울리는지.
또 내장이 매끈해야 한다는 것과, 쓸개가 어떤
색깔을 띠고 있어야 신들의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간이 발갛게 잘 생겨야 한다는 것도 설명해주었소.
나는 또 기름조각에 싼 넓적다리뼈와 긴 등뼈를 태우며[34]
인간들을 이 난해한 기술로 인도했으며,
전에는 어둠에 가려 있던 불타는 전조들이
눈에 보이게 만들어주었소.
그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대지 아래
감춰져 있는, 인간들에게 유익한 것들인
청동이며 무쇠며 은이며 금은 대체 누가 나보다
먼저 발견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소?
확신컨대 아무도 없소. 허풍선이가 아니라면.
모든 것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간들의
모든 기술은 프로메테우스가 준 것이오.
코로스장 그대는 인간들을 과분하게 도와주지 마세요.
불운한 그대 자신은 돌보지도 않고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믿어요. 언젠가는 그대가 이 결박에서
풀려나 제우스 못지않게 강력해지리라고.
프로메테우스 모든 것을 성취하는 운명의 여신이 아직은 그 일이
그렇게 되도록 정해놓지 않았소. 먼저 수많은 고난에 휜
다음에야 나는 이 사슬에서 풀려나게 될 거요.
기술은 필연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이오.
코로스장 그럼 필연의 키는 누가 잡고 있나요?
프로메테우스 세 명의 운명의 여신들과 잊지 않는 복수의 여신들이지요.[35]
코로스장 그럼 제우스는 이들보다 약한가요?
프로메테우스 그도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요.
코로스장 그럼 늘 통치하는 것 외에 제우스에게 무엇이 정해져 있나요?
프로메테우스 아직은 알려 하지 마시오. 그런 청은 하지 마시오.
코로스장 그렇게 감추시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엄숙한 비밀인 것 같네요.
프로메테우스 다른 것에 관해 이야기합시다. 아직 그것은
말할 때가 아니오. 아니, 그것을 나는 되도록 깊숙이
감춰야 하오. 잘 감추고 있어야만 나는 언젠가
수치스런 사슬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코로스[36](좌 1) 만물을 지배하는 제우스가 내 생각에 반대하여
자신의 힘을 행사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아버지 오케아노스의 휴식을 모르는 강물 가에서
신성한 제물을 바칠 때, 내가 소의 제물을 가지고
신들에게 다가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게 되기를!
내가 말로 죄를 짓지 않게 되기를!
이런 내 생각이 굳건히 버티고 녹아 내리는 일이 없기를!
(우 1)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확신과 희망을 갖고 명대로 살아가며
밝고 명랑한 가운데 마음을 기른다면!
하지만 그대가 온갖 불운한 고통에
찢기는 것을 보니, 나는 마음이 오싹해요.
프로메테우스 님. 이는 그대가 제우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인간들을 과분하게 존중한 탓이에요.
(좌 2) 자, 친구여, 말씀해보세요. 그대의 호의가
얼마나 보답 받지 못했는지! 그대를 위한 구원은
어디 있으며, 하루살이들로부터는 어떤 도움이 있었지요?
그대는 보지 못했나요, 허약하고 꿈 같은 무기력이
인간들의 눈먼 종족의 발을 묶고 있음을? 인간들의
계획이 제우스의 질서를 벗어나는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우 2) 그대의 잔혹한 운명을 보고 내 그것을 알았어요.
프로메테우스 님! 이 노래[37]는 전혀 다르게 울려 퍼졌어요.
내가 전에 그대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그대의 결혼 목욕[38]과
침대를 위해 축혼가로 불러주던 그 노래와는.
그대가 우리 언니 헤시오네[39]를 구혼 선물로 설득하여
잠자리를 같이하는 아내로 삼았을 때 말이에요.
(이오가 쇠뿔이 난 소녀로 등장)
이오 여기는 어떤 나라지? 어떤 종족이 살고 있을까?
암벽에 묶인 채 험악한 날씨에 내맡겨진 저이는
누구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대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나요? 말해주세요, 가련한 내가
대지의 어느 곳으로 표류해왔는지 말이에요.
아이고, 아이고!
쇠파리가 또다시 불쌍한 나를 찔러대는구나.
천 개의 눈을 가진 내 감시자인,
대지가 낳은 아르고스[40]의 환영을 보면
나는 겁이 나요. 그자는 음흉한 눈길로
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고,
죽었는데도 대지는 그자를 감추지 않아요.
오히려 그자는 저승의 사자들 사이에서
솟아올라 가련한 나를 사냥하며
굶주린 나를 바닷가 모래 위로 몰아대지요.
(좌 1) 그리고 밀랍으로 이어 붙인 갈대피리[41]가
부드러운 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는구나.
아아, 멀리 떠도는 방랑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크로노스의 아드님[42]이시여, 그대는 내게서 무슨 잘못을
발견하셨기에 이런 고난의 멍에를 씌우시는 것이며,
아아, 미칠 듯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나를 쇠파리에
쫓기는 두려움으로 이렇게 괴롭히시나이까?
나를 불에 태우시거나, 대지의 품에 숨기시거나,
바다의 괴물들에게 먹이로 던져주시고,
내 이 소원을 거절하지 말아주소서, 왕이시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시련을
겪을 만큼 겪었으나 어떻게 해야 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대[43]는 이 쇠뿔 달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세요?
프로메테우스 내 어찌 쇠파리에 쫓기는 소녀인, 이나코스의 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겠소? 그녀는 제우스의 마음을
사랑으로 달구었고, 그래서 지금은 헤라의 미움을 사
끝없이 먼 주로를 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우 1)
이오 어떻게 알고 내 아버지 이름을 말하는 거죠?
고통 받는 나에게 말해주세요. 그대가 대체 뉘신지.
가련한 이여, 그대는 대체 뉘시기에 이 가련한 여인의
이름을 그렇게 정확히 부르며, 멀리 떠돌아다니게
하는 몰이 막대기로 찔러 나를 말려 죽이는,
신이 보낸 이 병에 관하여 말하는 거예요?
아아, 그래서 나는 굶주림과 고통에 시달리며
겅중겅중 뛰어 급히 달려왔지요. 헤라의 적의에 찬
음모의 제물이 되어. 아아, 신들에게 미움 받는
자들 가운데 누가 나처럼 이렇게 고통 받았지요?
그대는 분명히 말해 주세요. 어떤 고통이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방책이, 어떤 약이
병을 고쳐줄지. 알고 있다면, 말해 주세요. 불운하게
떠돌아다니는 이 소녀에게 알려주고 말해주세요.
프로메테우스 그대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내 모두 분명히
말해주겠소. 친구들에게 말할 때 그래야 하듯,
수수께끼를 엮어 넣지 않고 간결하게. 그대는
인간들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있소.
이오 모든 인간들에게 자선을 베푼 가련한 프로메테우스 님.
그대는 무슨 일로 이런 벌을 받나요?
프로메테우스 나는 내 고난을 비탄하다가 방금 끝냈소이다.
이오 그대는 나에게도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겠어요?
프로메테우스 용건을 말해보시오. 그러면 내가 다 말해주겠소.
이오 말해주세요. 누가 그대를 이 바위에 묶었는지.
프로메테우스 제우스의 계획과 헤파이스토스의 손이 그랬다오.
이오 뭘 잘못했기에 그대는 이런 벌을 받나요?
프로메테우스 내가 이미 밝힌 것으로 만족하시오.
이오 그 밖에 내 방랑의 종말에 관해서도 말해주세요.
얼마나 긴 세월을 내가 괴로워해야 하는지.
프로메테우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그대에게 더 나을 것이오.
이오 내가 어떤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는지 숨기지 마세요.
프로메테우스 내가 인색해서 그대에게 그런 선물을 거절하는 게 아니오.
이오 그렇다면 왜 모든 것을 알려주기를 망설이시죠?
프로메테우스 인색해서가 아니라, 그대의 마음을 불안하게 할까봐 그러오.
이오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염려할 필요는 없어요.
프로메테우스 그대의 뜻이 정 그렇다면 말하지 않을 수 없구려. 들어보시오.
코로스장 아직은 말하지 마세요. 우리도 이 즐거움에 끼게 해주세요.
우리 먼저 이 소녀의 병에 관해 알아보도록 해요.
그녀가 자신이 당한 수많은 불행을 제 입으로 말하고 나서
남은 시련은 그대에게 들어 알게 하세요.
프로메테우스 이오여,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그대 몫이오.
무엇보다도 이들은 그대 아버지의 누이들이니까.[44]
듣는 이들로부터 동정의 눈물을 거둬들일 수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불행을 실컷 울고 슬퍼하는 것은
역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겠소.
이오 그대들의 요청을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가 없네요.
그대들은 원하는 모든 것을 알기 쉬운 말로
듣게 될 거예요. 신이 보내신 이 폭풍과
내 일그러진 모습이 가련한 나를 어디서
엄습했는지 나로서는 말하기조차 괴로워요.
밤만 되면 매번 환영들이 내 규방에
들어와서는 상냥하게 말을 걸곤 했지요.
“큰 복을 타고난 아기씨, 왜 그렇게 오랫동안
처녀로 남아 계세요? 가장 위대한 결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제우스께서 연정으로 달아올라
그대와 사랑으로 교합하기를 원하세요.
그러니 아기씨, 그대는 제우스와의 잠자리를
거절하지 말고, 풀이 무성한 레르나[45]의 풀밭으로,
아버지의 가축 떼가 있는 축사로 나가세요.
제우스의 눈이 그리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밤마다 그런 꿈들이 가련한 나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밤에 돌아다니는
환영들에 관해 아버지께 알려드렸지요. 그러자
아버지는 퓌토[46]와 도도네[47]로 많은 사절들을 보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만
신들의 마음에 들겠는지 알아 오게 하셨지요.
하지만 그들은 돌아와서 모호하고 풀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신탁들만 알려주었어요. 드디어
아버지 이나코스에게 분명한 말씀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오해의 여지 없이 명령하고 지시했어요.
나를 집과 고향에서 내쫓아 대지의 가장 먼 경계들까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하라고. 그리고 아버지가
거절하시면, 불의 얼굴을 한 벼락이 제우스에게서
다가와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아버지는 록시아스[48]의 이런 예언에 복종하시어
나를 내쫓고 대문을 잠그셨는데, 이는 양쪽 모두
원치 않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제우스의 고삐는
의사에 반해 그런 짓을 하도록 아버지를 강요했어요.
그러자 즉시 내 모습과 마음이 일그러졌어요.
보시다시피, 나는 뿔이 달린 채 따끔하게 물어대는
쇠파리에 찔리며 미친 듯이 겅중겅중 뛰어
케르크네이아[49]의 마실 수 있는 물과 레르나 샘으로
달려갔어요. 그러자 대지에서 태어난, 소치는 목자로
성미가 급한 아르고스가 나와 동행하며
수많은 눈으로 내 발자국을 지켜보았어요.
하지만 뜻밖의 죽음이 갑자기 덮쳐 그자의 목숨을
앗아갔어요. 하지만 나는 신이 보내신 채찍인 쇠파리에 쫓겨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대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들었으니, 앞으로 어떤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를 동정하여 거짓말로 나를 위로하려 하지는 마세요.
단언하건대, 꾸며낸 말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런 병이니까요.
코로스 아아, 그만두세요, 슬프도다!
내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이런 망측한 이야기가 내 귀에 들리리라고는.
그리고 이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고난과 고통과 공포가 양끝에 침이 박힌,
몰이 막대기로 내 마음을 싸늘하게
식히리라고는. 오오, 운명이여, 운명이여.
이오의 고통을 보니 나는 등골이 오싹해요.
프로메테우스 그대는 너무 일찍 비탄하며 겁에 질리는구려.
남은 것도 마저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시오.
코로스장 말씀해주세요. 다 가르쳐주세요. 남은 고통을 모두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되니까요.
프로메테우스 그대들의 첫 번째 요구는 힘들이지 않고 이루어졌소.
그대들은 먼저 여기 이 이오가 자신의 고난에 관해
제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싶어했으니 말이오.
이제 나머지도 들어보시오. 여기 이 소녀가 헤라에 의해
아직도 어떤 고난을 더 참고 견뎌야 하는지.
이나코스의 따님이여,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하시오.
그대의 여행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도록 말이오.
그대는 먼저 여기서 해 뜨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
쟁기질하지 않는 들판을 걸어가시오. 그러면 그대는
훌륭한 바퀴가 달린 달구지 위에다 버들가지로
오두막을 엮어놓고 사는 유목민인 스퀴타이족에게
가게 될 것인데, 그들은 멀리 쏘는 활로 무장하고 있소.
하지만 그들에게 다가가지 말고, 파도가 신음하는
해안을 끼고 걸어서 그들의 나라를 지나치도록 하시오.
그러면 그대의 왼쪽에 무쇠를 다루는 칼뤼베스족이
살고 있을 텐데, 그들도 조심해야 하오.
유순하지 않고 나그네에게 불친절하니까요. 그러면
그대는 이름에 걸맞게 오만불손한 휘브리스테스 강에
이르게 될 텐데, 건널 만한 여울이 없으니 그 강은
건너지 마시오. 그대가 그 봉우리들에서 강의 힘이
아래로 내리 쏟아지는 가장 높은 산인 카우카소스에
이르기 전에는 말이오. 별들과 이웃하고 있는
이들 봉우리들을 넘어 그대는 남쪽 길로 가시오.
남자를 미워하는 아마조네스족의 무리들에
이를 때까지. 이들은 언젠가는 테르모돈 강변에 있는
도시 테미스퀴라에서 거주하게 될 것인데,
그곳에서는 살뮈뎃소스[50]의 바위투성이 바다 턱[51]이
배들의 의붓어미로서 선원들을 위협하고 있소.
아마조네스족이 그대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리켜줄 것이오.
호수[52]의 좁은 문 바로 옆에 있는 킴메리아 지협[53]에
그대는 이르게 될 것인데, 그대는 그곳을 뒤로 하고
용감하게 마이오티스의 수로[54]를 건너도록 하시오.
그러면 인간들은 두고두고 그대가 물을 건넌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그곳은 보스포로스[55]라고
불릴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에우로페[56]의 들판을 떠나
아시아 대륙으로 가게 될 것이오. 그대들[57]에게는
신들의 통치자[58]가 매사에 똑같이 잔인하다고 여겨지지
않나요? 그는 신이면서 인간인 이 소녀와 살을 섞기를
원하다가 그녀에게 이런 방랑의 짐을 지웠소.
소녀여, 그대는 정말 고약한 구혼자를 만났구려.
그대가 방금 들은 이야기는 그대가 앞으로 당할 고통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테니까요.
이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프로메테우스 그대는 또 비명을 지르며 탄식하는구려.
남은 고난을 마저 듣고 나면 어쩌려고?
코로스장 아니, 이 여인이 당해야 할 고통이 아직도 남았단 말이에요?
프로메테우스 파멸과 고통의 겨울 바다가 아직 남아 있소.
이오 그렇다면 산다는 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왜 나는 어서 이 가파른 바위에서[59] 아래로 몸을 던져
땅바닥에 박살난 채 이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날마다 고통당하며 평생을 사느니
단번에 죽어버리는 편이 더 낫잖아요.
프로메테우스 아마도 그대는 내 이 고난을 잘 견디지 못할 것
같구려. 나는 죽지도 못할 운명이니 말이오.
죽음은 사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지금 내 고난에는 어떤 종말도 예정되어
있지 않아요. 제우스가 권좌에서 축출되기 전에는.
이오 제우스가 권좌에서 축출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요?
프로메테우스 그대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좋겠다는 투군요.
이오 어찌 안 그렇겠어요? 제우스 탓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데.
프로메테우스 그렇다면 믿어도 좋소.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이오 대체 누가 그의 왕권을 빼앗게 되죠?
프로메테우스 그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이 빼앗게 된다오.
이오 어떻게요? 해가 되지 않는다면 알려주세요.
프로메테우스 그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결혼을 하게 될 것이오.
이오 여신과, 아니면 여인과? 말해도 된다면 말씀해주세요.
프로메테우스 어떤 결혼인지를 왜 물어요? 그건 말할 수 없소.
이오 그는 아내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나요?
프로메테우스 그래요. 그녀는 아버지보다 더 강한 아들을 낳게 될 것이오.
이오 그에게 이런 운명을 막을 방도는 없나요?
프로메테우스 없어요. 내가 이 사슬에서 풀려나지 않으면.
이오 하지만 제우스가 원치 않는다면 누가 그대를 풀어주겠어요?
프로메테우스 그대의 자손들 가운데 한 명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소.
이오 뭐라고요? 내 자식이 그대를 불행에서 구해준다고요?
프로메테우스 그렇소. 십하고도 삼 세손이.
이오 그 예언은 이제 이해하기도 쉽지 않네요.
프로메테우스 그렇다면 그대 자신의 고난도 더 알려 하지 마오.
이오 선심을 쓰시다가 도로 빼앗아 가지 마세요.
프로메테우스 그대에게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들려주겠소.
이오 어떤 이야기들이죠? 먼저 알려주시고, 선택권을 주세요.
프로메테우스 좋소. 선택하시오. 그대에게 남은 고난을 자세히
말해줄까요, 아니면 나를 해방해줄 이를 말해줄까요?
코러스장 둘 중 하나는 이 여인에게, 다른 하나는 내게 베푸시되,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진 마세요.
그러니까 이 여인에게는 그녀의 남은 방랑을, 내게는 누가
그대를 풀어줄지를 말씀해주세요. 알고 싶어요.
프로메테우스 그대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내 거절하지 않고
그대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다 말해주겠소.
이오여, 먼저 우여곡절이 많은 그대의 방랑을 말할 터이니,
마음의 서판에 새기시오.
그대는 두 대륙을 갈라놓는 해협을 건너거든
불의 얼굴을 한 태양이 떠오르는 쪽을 향하여
파도가 철썩거리는 바다[60]를 끼고 가시오.
카스테네[61] 땅의 고르고 평야에 이를 때까지.
그곳에는 백조의 모습을 한 고령의 처녀들로
눈 하나와 이 하나를 공유하는, 포르퀴스의
세 딸[62]이 살고 있는데, 햇빛도 밤의 달도
일찍이 이들을 비춘 적이 없소. 근처에는
이들의 날개 달린 세 자매들로 머리털이 뱀이고
사람을 미워하는 고르고 자매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을 본 인간은 누구라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오.
이들이 곧 그 지방의 수비대라오.
그대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광경에 관해서도
들어보시오. 그대는 조심하시오. 이빨은 날카롭지만
짖을 줄 모르는 제우스의 개들인 그륍스들과[63]
외눈박이 아리마스포이족[64]의 기마부대를. 그들은
황금을 흘려보내는 플루톤[65] 강의 여울 가에 살고 있소.
그들에게 다가가지 마시오. 다음에 그대는 머나먼
나라에, 흑인들의 부족에 이르게 되는데, 그들은
태양의 원천[66] 옆에, 아이티옵스 강 유역[67]에 살고 있소.
그대는 그 강둑을 따라가시오. 그러면 폭포[68]에
이르게 될 것인데, 바로 그곳에 있는 파퓌로스 산들[69]로부터
네일로스[70] 강이 신성한 맑은 물을 아래로 내려 보내지요.
그 강은 그대에게 네일로스 강의 세모난 나라[71]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줄 것인데, 그곳에서 이오여, 그대는 자신과
자손들을 위해 머나먼 식민지를 발견하도록 정해져 있소.
혹시 이 가운데 그대에게 모호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면 묻고 또 물어서 확실히 알도록 하시오.
내게는 원하는 것 이상의 여가가 있으니까요.
코로스장 혹시 그대가 고난에 찬 방랑에 관해 이 여인에게
더 할 말이 있거나, 빠뜨린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하지만 다 말씀하셨다면, 우리에게도 잠시 전에
부탁 드린 호의를 베풀어주세요, 생각나시죠?
프로메테우스 이 여인은 자신의 방랑의 종말에 관해 이제 다 들었소.
하지만 내게서 들은 것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나는 그녀가 이리로 오기 전에 고생했던
일들을 이야기해 내가 한 말의 증거로 삼고자 하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곧장 그대의 방랑의 종말을 향해 나아갈 것이오.
그대는 몰롯시아[72]의 평야와 가파른 능선의
도도네[73]로 갔었소. 그곳에는 제우스 테스프로토스[74]의
신탁소와 믿기지 않는 기적인 말하는 참나무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참나무들로부터 그대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아니라 아주 분명한 말로
앞으로 그대가 제우스의 이름난 아내가 될 것이라는
인사를 받았소. 어때요, 그런 인사가 마음에 드시오?
그러고 나서 그대는 쇠파리에 찔려 해변 길을 따라
레아의 넓은 만[75]을 향해 질주하다가, 그곳에서
되돌아서서[76] 지금은 폭풍에 떠밀려 가고 있는 중이오.
잘 알아두시오. 앞으로 그 바다의 안쪽은
모든 인간들에게 그대의 여행에 대한 기념이
되도록 이오니오스 해[77]라고 불릴 것이오.
바로 이것이, 내 마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증거요. 남은 것들은
내가 이야기를 중단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여
그대들과 이 여인에게 함께 들려주겠소.
나라의 맨 끝[78]에, 네일로스 강 하구와 물에 떠내려 온
진흙더미 옆에 카노보스[79]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서 제우스는 그대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해줄 것이오.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손으로 어루만지기만 함으로써.
그러면 그대는 살갗이 검은 에파포스를 낳게 될 터인데,
제우스가 낳아준 방법에 따라 그런 이름을 갖게 된 그는
네일로스의 넓은 강물이 적셔주는 모든 땅에서 수확할 것이오.
쉰 명의 딸들[80]로 이루어진, 그로부터 다섯 번째 세대가
의사에 반해 도로 아르고스로 가게 될 것인데,
이 처녀들은 사촌과의 근친 결혼을 피하고 싶어한다오.
하지만 총각들은 마음이 후끈 달아올라,
마치 비둘기들에게 많이 처지지 않은 매처럼,
사냥할 수 없는 사냥감인 결혼을 사냥하러 오겠지만
신은 그들에게 처녀들의 몸을 내주지 않는다오.
그리고 펠라스고스[81]의 땅이 그들[82]을 받아들일 것이오.
여인들이 밤에 파수를 보다가 대담하게 전쟁을 걸어와
그들을 도륙하고 나면, 여인들은 저마다 네 남자의 목숨을
빼앗으며 쌍날칼을 목구멍에 적실 테니 말이오.
그런 모습으로 퀴프리스[83]가 내 적들에게 다가갔으면!
처녀들 중 한 명[84] 만이 사랑에 홀려 자기와 동침한
남자를 죽이지 못하고, 계획이 무뎌지고 말 것이오.
그래서 그녀는 두 가지 중에서, 살인에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비겁자라고 불리는 쪽을 택하게 될 것이오.
바로 그녀가 아르고스에 왕족을 낳아준다오.
이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긴 이야기가 필요하오.
하지만 그 씨앗으로부터 대담무쌍하고 활로 유명한 자[85]가
태어나 나를 이 고난에서 풀어주게 될 것이오.
그런 신탁을 옛날에 태어나신 내 어머니,
티탄 신족이신 테미스께서 내게 알려주셨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지 말하자면 긴 이야기가
필요하며, 다 알아도 지금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오.
이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또 다시 발작이 일어나고,
마음을 혼란케 하는 광기가 나를 불태워요.
쇠파리의 벼리지 않은 화살촉이 나를 찔러요.
심장이 두려움에 가슴을 쿵쿵 치고,
두 눈이 바퀴처럼 빙빙 돌아요.
광란의 거친 폭풍 때문에 나는 주로에서
멀리 벗어나 있고, 혀도 말을 안 들어요.
그래서 뒤죽박죽이 된 말들이 끔찍한 재앙의
파도에 부딪쳐보나 아무 소용 없어요.
(이오 퇴장)
코로스[86](좌 1) 현명하고 현명하도다.
맨 먼저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고는
말로 표현하는 자는.
같은 신분끼리 결혼하는 것이 상책이며,
부에 물러빠진 자들이나
문벌을 뽐내는 자들과는
품팔이꾼은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우 1) 존엄한 운명의 여신들이여,
내가 아내로서 제우스의 침상에 다가가는 것을
그대들은 결코, 결코 보지 않게 되기를!
하늘의 신들 가운데 한 분이 내게 신랑으로
다가오는 일이 없기를! 남편을 싫어하는 처녀 이오가
헤라의 미움을 사 고통스럽고 힘든 방랑을 하느라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무서워요.
(종가) 대등한 상대끼리의 결혼이라면 나는 두렵지 않아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더 강력한 신들의 사랑이
내게 피할 수 없는 눈길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것.
그것은 싸울 수 없는 싸움이며, 길 없는 길이에요.
내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요.
제우스가 원한다면, 어떻게 그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나도 모르니까요.
프로메테우스 마음이 거만한 제우스지만 언젠가는 그도
의기소침해질 날이 올 것이오. 이미 그는
자신을 권좌에서 내던져 눈에 보이지 않게 해줄
결혼을 준비하고 있으니 말이오.
그러면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오래된 권좌에서
떨어지며 내뱉은 저주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오.
그런 불행을 막아줄 방도는, 나 말고는 신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에게 분명히 말해줄 수 없소. 나만이,
그 일을,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알고 있소.
그러니 지금은 그가 허공의 굉음을 믿고, 불을 내뿜는
벼락을 손으로 휘두르며 태평하게 앉아 있게
내버려두시오. 그 어느 것도 그의 불명예스럽고
참을 수 없는 추락을 막지 못할 테니.
그런 적대자를 그는 지금 자신에 반대하여
스스로 무장시키고 있소. 맞서 싸우기 어려운 괴물을.
그자는 벼락보다 더 강한 화염과, 천둥을 압도할
엄청난 굉음을 발견할 것이오.
그자는 또 대지와 바다를 뒤흔드는[87]
포세이돈의 삼지창도 산산이 부숴버릴 것이오.
그런 운명을 만나게 되면, 그때는 그도 알게 될 것이오.
통치하는 것과 노예가 되는 것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크로스장 제우스에 대한 그런 욕설은 그대의 희망사항에 불과해요.
프로메테우스 내 소원이기도 하지만, 일어날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크로스장 제우스의 상전이 될 자가 과연 있을까요?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그는 지금의 나보다 더 힘든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오.
크로스장 두렵지도 않으세요?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프로메테우스 뭐가 두렵겠소? 어차피 나는 죽을 운명이 아닌데.
크로스장 하지만 그는 그대에게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을 줄 지도 몰라요.
프로메테우스 줄 테면 주라지요. 모든 걸 각오하고 있으니까.
크로스장 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아드레스테이아[88]에게 적절한 경의를 표해요.
프로메테우스 그대나 존경하고 경배하시구려. 지배자가 누구든 언제나
아첨하시구려. 나는 제우스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소.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제멋대로 행동하며
권세를 휘두르라 하시오. 그는 오랫동안 신들을
통치하지는 못할 테니까. 한데 저기 제우스의
심부름꾼이 보이는군. 새 독재자의 시종 말이오.
분명 새로운 소식을 전하러 오는 것 같소.
(헤르메스 등장)
헤르메스 그대 교활한 자여, 독하디 독한 자여, 신들에게
죄를 짓고 하루살이 인간들에게 명예를 준 자여,
불의 도둑이여, 내 지금 그대에게 말하고 있소.
아버지께서 그대에게 명하시기를, 그분은 권좌에서
축출하게 될 것이라고 그대가 허풍치고 있는
그 결혼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 아뢰라 하시오.
수수께끼 같은 말이 아니라 알기 쉽게 자세히 털어놓아
내가 두 번 걸음 않게 하시오, 프로메테우스여. 아시다시피,
제우스께서는 그대의 이런 태도에 결코 주눅 들지 않소.
프로메테우스 점잖으면서도 불손하기 짝이 없는 그 말투,
과연 신들의 종다운 말투로다.
그대들 신출내기들은 통치한 지가 얼마 안 되거늘
벌써 고통을 모르는 성채에서 살고 있는 줄 아는가?
그곳에서 나는 폭군이 벌써 둘[89]이나 떨어지는 것을 보았네.
지금 통치하고 있는 세 번째 폭군도 더없이 수치스럽게
금세 떨어지는 것을 나는 보게 될 것이고.
자네는 내가 겁먹고 새 신들 앞에 굽실댈 줄 알았나?
천만에.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네. 그러니 자네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도록 하게. 내게 묻고 있는 것을
자네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테니.
헤르메스 그대는 전에도 이렇게 고집을 피우다가
자신을 이런 고통의 항구에 정박하게 되었지.
프로메테우스 하지만 잘 알아두게. 나는 내 이 불행을
자네 종살이와는 결코 바꾸고 싶지 않네.
헤르메스 이 바위에 종살이하는 편이 제우스의 충실한
사자 노릇을 하는 것보다 더 낫기도 하겠소!
프로메테우스 그래서 오만한 자에게는 오만하게 대해야 하는 법이지.[90]
헤르메스 그대에게는 지금 이 처지가 편한 것 같구려.
프로메테우스 편하다고? 나는 내 적들이 이렇게 편한 것을
보았으면 싶네. 이제 나는 자네도 그들에 포함시키네.
헤르메스 그대의 불행에 나까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프로메테우스 간단히 말해, 내 선행을 부당하게도
악으로 갚는 모든 신들을 나는 증오한다네.
헤르메스 듣자하니, 그대는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려.
프로메테우스 미쳤겠지. 자신의 적들을 미워하는 것이 미친 짓이라면.
헤르메스 그대가 잘 나간다면, 그대를 참아내기란 불가능할 것이오.
프로메테우스 아아, 슬프도다!
헤르메스 아아, 슬프도다? 제우스께서는 그런 말은 알지 못하싱.
프로메테우스 세월이 가면 누구나 다 알기 마련이지.
헤르메스 하지만 그대는 신중함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구려.
프로메테우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종에 불과한 자네와 말하지 않았겠지.
헤르메스 한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구려.
프로메테우스 그에게 내가 신세를 졌다면 기꺼이 갚고 싶었을 텐데.
헤르메스 나를 어린애처럼 갖고 노는구려.
프로메테우스 내게서 무얼 알아내리라 생각했다면, 자넨 어린애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니, 어린애보다 더 철없다 해야겠지.
제우스는 어떤 고문으로도, 어떤 계략으로도 나를 움직여
내가 알고 있는 비밀을 말하게 할 수 없을 것이네. 그가
이 치욕스런 사슬에서 나를 풀어주기 전에는.
그러니 그가 불타는 화염을 하늘에서 아래로 내던지고
하얀 날개의 눈보라와 지하에서 천둥 치는 지진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라 하게.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누가 권좌에서 그를 축출할지
말해주도록 나를 굽힐 수는 없을 것이네.
헤르메스 자, 그러는 것이 과연 그대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보시오.
프로메테우스 이미 오래 전에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네.
헤르메스 오오, 어리석은 자여! 이만큼 고초를 겪었으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제발 정신 좀 차리시오.
프로메테우스 마치 파도에 대고 말하듯, 자네가 아무리 졸라대도
소용없네. 내가 제우스의 의도에 겁을 먹고는
마음이 약해져 내가 몹시 미워하는 자에게
여자처럼 두 손을 들고 이 사슬에서 나를 풀어달라고
애원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말게.
나는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까.
헤르메스 나는 벌써 많은 말을 했건만 아무 소용 없을 것 같구려.
내가 간청해도 그대는 부드러워지거나 누그러지지
않으니 말이오. 그대는 갓 멍에를 맨 망아지처럼
재갈을 입에 물고 고삐에 맞서 싸우고 있소.
하지만 그대의 거친 행동은 무익한 작전에서
비롯된 것이오. 지혜가 따르지 않는 고집은
그 자체로는 힘이 허약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오.
잘 생각해 보시오. 그대가 내 말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피할 길 없는 어떤 폭풍과 재앙의 너울이
그대를 덮칠 것인지. 먼저 아버지께서는
이 들쭉날쭉한 암벽을 천둥과 벼락의 화염으로
부수어 그대를 땅속 깊이 묻으실 것인데, 그러면
바위가 팔을 구부려 그대를 껴안게 될 것이오.[91]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그대는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오. 그러면 제우스의 날개 달린
개가, 피투성이가 된 독수리가 게걸스럽게
그대의 몸을 큼직큼직한 고깃덩어리로 갈기갈기
찢게 될 것인데, 이 불청객은 날마다 다가와
그대의 까매진 간을 포식하게 될 것이오.
게다가 그대는 그런 고문이 끝나리라고 기대하지 마시오.
신들 중에 누군가 그대의 고통을 대신 떠맡아
햇빛이 들지 않는 하데스와 타르타로스의
캄캄한 심연으로 내려가기를 자청하기 전에는.
그러니 이 점을 유념하고 결심하시오. 괜히
허풍 치는 게 아니라, 이건 어디까지나 진담이오.
제우스께서는 거짓말할 줄 모르시며, 당신
입으로 하신 말씀은 모두 성취하시기 때문이오.
그러니 그대는 이모저모 잘 생각해보고 심사숙고하되,
좋은 조언보다 고집이 더 낫다고 생각지 마시오.
코로스장 우리가 보기에 헤르메스가 얼토당토아니한 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대더러 고집을 버리고
현명한 조언을 구하라 하니 말이에요. 그의 말대로 하세요.
지혜로운 자에게는 실수한다는 것이 수치예요.
프로메테우스 그가 전하기 전에 이미 나는 전언을
알고 있었소. 서로 미워할 경우 적의 손에
고통 당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오.
그러니 두 갈래진[92] 번개가 나에게
내던져지고, 천둥과 사나운 돌풍의
경련에 대기가 요동치고,
바람이 대지를 밑바닥으로부터
뿌리째 흔들려무나!
바다의 물결이 높이 솟구쳐
하늘의 별들의 길을 막으려무나!
그리고 그가 내 이 몸을
필연의 세찬 소용돌이와 함께
캄캄한 타르타로스로 던지려무나!
그래도 그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오.
헤르메스 정신이 돌아버린 자들의 생각과 말이
어떤 것인지 예서 들을 수 있겠구나.
그의 이 기도는 광기의 모습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보여주는구나. 그의 광기는
나아질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 (코로스에게)
한데 그의 고통을 동정하는 그대들은
이곳을 떠나 어서 다른 데로 가시오.
천둥의 사정없는 노호가 그대들을
실신시키지 않도록 말이오.
코로스장 다른 말을 하세요. 내가 따를 수 있는 충고를
해주세요. 그대가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그 말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어째서 그대는
나더러 그런 비겁한 짓을 하라 하세요?
여기 이분과 함께 나는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디겠어요. 배신자들을 미워하도록
나는 배웠으니까요. 내게는 배신보다
더 경멸스런 병은 없어요.
헤르메스 그렇다면 미리 충고해두겠으니 내 말을
명심하시오. 재앙의 사냥감이 되더라도
그대들은 운명을 탓하지 말고, 제우스께서
그대들을 예기치 못한 고통에 빠뜨리셨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지 마시오.
그것은 자업자득이니까요. 그대들은 느닷없이
또는 은밀히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피할 길 없는 재앙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니까요.
(헤르메스가 퇴장하자 천둥소리가 들린다.)
프로메테우스 이제 말이 아니라 실제로
대지가 요동치는구나.
그에 맞춰 지하로부터 천둥[93]이
으르렁거리고, 벼락이 작렬하며
뒤틀리고 번쩍이는구나.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빙글빙글 돌리고, 온갖 바람의
입김들이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서로 격렬한 내전을 벌이는구나.
하늘과 바다가 뒤섞여 하나가 되는구나.
그처럼 격렬한 기운이 제우스로부터 눈에 보이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구나. 나를 겁주려고.
오오, 존경스런 어머니 대지여! 오오, 우리 모두를
비추도록 해를 굴려주는 하늘이여, 그대는 내가
얼마나 부당하게 고통 당하고 있는지 보고 있나이다.
(프로메테우스가 결박된 암벽이 무너져 없어진다. 코로스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부록) 아이스퀼로스 비극의 세계 (천병희)
7.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다음에는 그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순서는 이 논의의 마지막을 그의 최대 걸작인 『오레스테이아』로 장식하고자 함이며 작품이 처음 공연된 연대의 순서와는 무관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최초 공연 연대는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제우스를 도와 권좌에 오르게 했던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동정한 나머지 하늘에서 불을 훔쳐 지상의 인간들에게 가져다 주었을 뿐 아니라 온갖 기술을 가르쳐준다. 이를 벌하고자 제우스가 세상의 끝에 있는 카우카소스(Kaukasos)산의 암벽에 그를 결박하는데, 여기까지가 이 드라마의 전제다.
극이 시작되면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헤파이스토스 신이 ‘힘’과 ‘완력’의 도움을 받아 프로메테우스를 암벽에 결박한다. 동정심 많은 헤파이스토스와 난폭하고 인정머리 없는 ‘힘’의 대조적인 성격이 대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침묵하고 있다가 그들이 떠난 뒤에야 입을 열어 비참하고 억울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극은 이후 계속해서 삽화적 성격을 띤 일련의 방문 장면에 의해 진행된다. 그것은 아마 극의 주역인 프로메테우스가 꼼짝하지 못하게 묶여 있어 진정한 의미의 사건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코로스를 구성하는 오케아노스의 딸들이 그에 대한 깊은 동정심에서 날개 달린 수레를 타고 등장한다. 오케아노스도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나타나 그에게 양보할 것을 종용하지만, 그의 호의적인 권유도 프로메테우스의 고집은 꺾지 못한다. 다음에는 이오가 무대 위에 뛰어든다. 그녀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던 까닭에 헤라의 미움을 사 암송아지로 변신한 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의 미래를 예언하던 중 제우스로부터 똑같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자신과 그녀 사이를 이어줄 인연에 관하여 밝힌다. 즉 나일 강변에서 제우스는 가벼운 접촉을 통하여 그녀에게 본 모습을 돌려주고 어머니가 되게 하는데, 바로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 가운데 한 명인 헤라클레스가 그의 고통을 끝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오가 떠난 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제우스에 대하여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제우스에게 치명타가 될 어떤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코로스에게 밝힌다. 즉 제우스가 맺게 될 어떤 결합에서ㅡ여신 테티스(Thetis)와의 결합을 말한다ㅡ더 강력한 아들이 태어나, 마치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쓰러뜨렸듯이, 제우스를 쓰러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제우스가 올륌포스(Olympos) 정상에서 이 말을 듣고 헤르메스를 보내 비밀을 알아내도록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헤르메스의 욕설과 위협은 물론이고 제우스의 벼락에도 굴하지 않고 비밀을 간직한 채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가혹한 새 통치에 반항하여 벌 받을 줄 알면서도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주는가 하면,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타협을 거부하고 남의 불행을 위로해줄 만큼 자의식이 강하고 동정심이 많은 이 위대한 신에 대하여 우리는 진심으로 애정과 경의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에서 이 작품이 과연 아이스퀼로스의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두고자 한다.
먼저 그 시어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매우 소박하고 일상어에 가깝다는 점이다. 다음, 다른 작품들의 경우는 작품의 사상적 내용을 밝히는 것이 코로스의 주된 임무이고 그 노래의 분량도 『오레스테이아』에 이르기까지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왔다. 그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코로스를 구성하는 오케아노스의 딸들이 하는 일이래야 동정심이나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다. 구성상으로 보더라도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충돌하는 첫 부분과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의미의 극적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데 이 역시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취급하고 있는 소재의 특수성과 아이스퀼로스에 관한 우리 지식의 제약성(그의 작품 90편 가운데 지금은 7편만 남아있다)을 고려할 때 앞서 말한 이유만으로 이 작품이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이 아니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속단이 아니겠느냐는 신중론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우스 상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제우스는 얼마 전에 올륌포스의 권좌에 오른 가혹하고 의리 없는 폭군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보아온 제우스는 세계의 정의로운 조종자이며, 나아가 세계의 의미 그 자체였다. 두 제우스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만일 어떤 화해가 있었다면, 3부작의 없어진 부분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오레스테이아』의 종결부는 분명 아이스퀼로스가 우주 질서를 대립적인 힘의 화해로 보았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프로메테우스 3부작’도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화해로 끝났음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메테우스 극 가운데 『불을 붙이는 프로메테우스』는 『페르시아인들』이 속하는 4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튀로스 극이므로 여기서 제외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해방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Lymenos)와 『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Pyrphoros)인데 이 중 전자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을 주제로 한다. 현존하는 단편들에 따르면, 티탄 신족이 코로스를 이루는 이 작품에서 헤라클레스는 다시 이 세상에 나온 프로메테우스를 위하여 그의 간을 쪼아먹는 독수리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측된다. 끝으로 『불의 운반자 프로메테우스』는 그 내용도, 3부작 내에서의 순서도 확실치 않다. 만약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면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소재로 했을 것이고, 세 번째 작품이라면 적대적인 힘들을 화해시키고 프로메테우스 찬미를 위하여 종교 의식을 제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ㅡ『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천병희 옮김), 도서출판 숲
[22] 희망이 ‘맹목적’이라 한 것은, 희망은 인간들이 죽음을 내다보지 못하고 열심히 살아가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절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변형한 경우로, 여기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해 불 만이 아니라 희망을 준 것으로 그려져 있다.
[23] 잘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오케아노스는 프로메테우스와 함께 제우스에게 벌 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고, 234행에서 프로메테우스도 자기만이 인간들을 보호해주려 했고, 그래서 벌 받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오케아노스는 제우스를 우두머리로 한 올륌포스 신족과 티탄 신족 간의 전쟁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31] 여기서 좌 3(425~430행)은 6행이고, 우 3(431~435행)은 5행으로 정확히 동일한 구성을 갖고 있지 않아, 좌 3과 우 3이 합쳐서 종가를 이룬다는 견해도 있고, 좌 3은 나중에 가필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32] 229~230행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신들에게 특권을 나눠줬다고 말해놓고는 여기서는 자신이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당시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협력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가당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33] 구전 시인에게는 기억의 여신인 므네모쉬네(Mnemosyne)가 시가의 여신인 무사(Mousa)들의 어머니였지만, 기원전 5세기의 시인들에게는 문자에 의한 기록이 기억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다.
[55] 보스포로스는 ‘소가 건넌 여울’이란 뜻으로, 이오가 소로 변신하여 건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보스포로스란 이름을 가진 해협은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이어주는, 뷔잔티온 즉 지금의 이스탄불 바로 옆에 있는 이른바 ‘트라케의 보스포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흑해와 아조프 해를 이어주는 이른바 킴메리아의 보스포로스’다. 이오는 대개 더 유명한 트라케의 보스포로스를 건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는 또다시 전승된 이야기가 변형되어 있다.
[62] 그라이아이 자매들(Graiai). 포르퀴스는 네레우스(Nereus) 또는 폰토스(Pontos)의 아들로, 날 때부터 할머니들인 그라이아이 자매들과 보는 이를 돌로 변하게 한다는 고르고 자매들과 선원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스퀼라의 아버지다.
[77] 이오니오스 해란 이름은 소아시아 서부 해안 지대와 그 부속 도시들로 이루어진 이오니아(Ionia) 지방과는 무관하며, 이오가 이 바다의 해변 길을 달렸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93] 지진.
헤시오도스, 『신통기』 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올륌포스 신족 제우스의 권력 쟁취 과정
1. 아틀라스와 메노이티오스
한편 이아페토스는 발목이 예쁜 오케아노스의 달 클뤼메네[1]를 아내로 맞이하여 동침하였다. 클뤼메네는 그에게서 용감한 아들 아틀라스를 낳았고, 영광스러운 메노이티오스[2]와 민첩하고 꾀 많은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빵을 먹는 인간에게 최초로 불행을 가져다 준 바보 에피메테우스를 낳았다. 도한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최초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여자[3]를 아내로 받는다. 앞일을 예견하는 제우스는 무법자 메노이티오스를 연기 나는 번개로 쳐서 에레보스[4]로 던져버렸다. 왜냐하면 그가 통제하기 어렵고 너무 무모하고 뻔뻔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목소리가 낭랑한 헤스페리데스[5]가 사는 세상의 끝에서 똑바로 서서, 머리와 지칠 줄 모르는 팔로 억지로 넓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했다.[6] 충고하는 자인 제우스가 그에게 이른 운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2.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의 대결
(1) 프로메테우스의 형벌
또한 제우스는 아주 지혜로운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쇠말뚝을 박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쇠사슬로 꽁꽁 묶었다[7]. 제우스는 강한 날개를 지닌 독수리를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내 그의 불멸의 간[8]을 파먹도록 했다. 하지만 그 간은 강한 날개를 지닌 독수리가 낮에 파먹은 만큼 밤이면 다시 완전히 자라났다. 그런데 발목이 예쁜 알크메네의 힘센 아들 헤라클레스가 바로 이 독수리를 죽여서, 이아페토스의 아들이 겪고 있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막아주고 그를 불행에서 구해주었다[9]. 이런 일은 풍요로운 대지에서 테베출신의 헤라클레스의 명예가 전보다 훨씬 더 빛을 발하도록 하려는 높은 곳에서 다스리고 있는 올륌포스의 제우스의 뜻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우스는 이런 명예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내려주었다. 이것으로 제우스는 화가 아직 다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프로메테우스가 강력한 크로노스의 아들인 자신과 지혜를 겨루려고 했던 때부터 그때까지 품고 있었던 분노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2) 프로메테우스의 속임수
그 당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과 유한한 인간들이 바로 메코네에서 협정을 맺을 때[10] 교활한 의도를 품고 커다란 소를 잡아 둘로 나누어 내어놓고 제우스를 속이려고 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하나는 살코기와 기름기가 있는 내장을 소가죽으로 말아서 소 위장으로 쌌다. 또 다른 하나는 하얀 뼈를 윤기가 흐르는 기름덩이로 덮어 예쁘게 쌌다[11]. 그러자 신과 인간의 아버지(제우스)가 그에게 말했다. “이아페토스의 아들(프로메테우스)여,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영리한 자여, 나의 오랜 친구여! 너는 고기를 너무 불공평하게 나누었구나!” 지혜롭기 그지없는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이렇게 꾸짖었다. 그러나 사악한 프로메테우스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는 자신의 교활한 술책과 속임수를 자랑스러워하듯 이렇게 말했다. 제우스 신이시여, 모든 영원한 신들 중 가장 명예롭고 가장 고귀한 신이시여! 이 둘 중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소서!” 그는 그렇게 교활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혜롭기 그지없는 제우스는 그의 속내를 꿰뚫어보며 속임수를 알아채고[12] 동시에 유한한 인간들에게 내릴 수 있을 재앙들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두 손으로 하얀 기름덩이를 들어올리면서 제우스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소의 하얀 뼈가 아주 교활하고 정교하게 싸여 있는 것을 보자 마음에 분노가 사무쳤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지상의 인간들은 향내로 뒤덮인 제단 위에서 하얀 뼈를 태워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3) 프로메테우스와 불
무척 화가 난, 구름을 모으는 신인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여,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교활한 자여, 나의 오랜 친구여, 보아하니 너는 아직도 그 간사한 속임수를 버리지 않았구나.”
지혜롭기 그지없는 제우스는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다. 그 후 제우스는 항상 그 속임수를 생각하며 지상에 살고 있는 물푸레나무에서 나온 유한한 인간에게 꺼질 줄 모르고 타는 불의 힘을 오랫동안 주지 않았다.[13] 하지만 수완이 좋은 이아페토스의 아들은 제우스 몰래 속이 빈 회향목 줄기 속에 꺼질 줄 모르고 타며 멀리 빛을 비추는 불을 숨겨 훔쳐왔다.[14] 그러자 하늘에서 천둥을 치던 제우스는 마음이 괴로웠으며, 더군다나 멀리 빛을 비추는 불이 인간들 옆에서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
(4)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
곧바로 제우스는 불에 대한 벌로 인간에게 내릴 재앙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15]가 제우스의 계획에 따라 흙으로 정숙한 처녀의 상을 하나 빚어냈다.[16] 그리고 눈이 빛나는 아테나 여신은 그 상에 광택이 나는 옷을 입혀준 다음 허리띠를 둘러주고, 머리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공들여 수를 놓은 면사포를 드리웠다. 정말 그냥 보기에도 아까운 모습이었다. 팔라스 아테나는 또 갓 돋아난 풀꽃으로 만든 귀여운 화관도 그녀의 머리에 얹어주었으며, 게다가 명예스러운 절름발이 신도 황금관을 만들어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는데, 그것은 그가 아버지 제우스의 뜻을 받들어 직접 공들여 만든 것이었다. 그 황금관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육지나 바다의 양분을 먹고 사는 수많은 동물들에게서 본떠온 것과 같은 정말 굉장한 모습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동물들의 상은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였으며 마치 목소리를 지니고 있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제우스는 이 아름다운 재앙을 인간이 받은 불의 축복에 대한 벌로 만든 후에 다른 신들이나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는데, 특히 그녀는 강력한 제우스의 딸이며 빛나는 눈을 지닌 아테나가 준 장신구를 하고 있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불멸의 신들과 유한한 인간들은 미처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여인을 보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그녀는 인간들에게는 물리칠 수 없는 매혹적인 존재였다.
이렇게 해서 그녀로부터 여자와 여성의 종족이 생겨났다. 즉 그녀로부터 인간에게 커다란 고통이자 아주 사악한 종족인 여자의 무리가 유래하는 것이다[17]. 그들은 남자의 집에 살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자가 찢어지게 가난할 때가 아니라 아주 풍족할 때만 그의 동반자로 지낼 뿐이다. 일벌들은 둥근 벌집에서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뼈빠지게 일하며 하얀 벌집을 짓고 성격이 포악한 수벌들을 먹여 살린다. 이에 비해 수벌들은 오목한 벌집에 편히 앉아서 자신이 수고하지 않은 남의 양식을 자신들의 배에 쑤셔 넣기만 한다. 바로 이 수벌과 똑같이 하늘에서 천둥을 치는 제우스는 유한한 인간들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해 성격이 사악한 여자들을 만들었다. 또 제우스는 인간이 얻은 이익을 상쇄시키기 위해 또 다른 재앙을 주었다. 즉 결혼과 여자로 인한 근심을 피해서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비참한 노년을 맞게 해준 것이다. 그런 노인에게는 노년에 자신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노인은 살아생전에는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지만, 죽으면 그의 재산을 먼 친척들이 나누어 가질 것이다. 그러나 결혼해서 고상한 아내, 즉 마음에 맞는 여자를 취하는 사람도 일생 동안 행과 불행 사이를 떠돌게 될 것이다. 특히 아주 질이 나쁜 여자에게 빠지면 그는 평생 마음과 정신에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을 안고 살 것이며, 그 불행은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제우스의 뜻을 기만하거나 속일 수는 없다. 교활한 이아페토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조차도 제우스의 격심한 분노를 피하지 못했다. 총명한 그도 제우스의 강력한 쇠사슬에 단단히 결박 당했기 때문이다.
제1부 인류의 고통의 생성 원인과 대처 방안
2.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
신들은 인간들이 먹을 것을 숨겨놓고 계신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쉽게 하루 만에 일 년을 먹어도 충분할 만큼의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빈둥빈둥 세월을 보내도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또한 배의 노를 굴뚝 위로 치워버려도 될 것이고, 소들이나 억센 노새를 부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제우스 신은 인간에게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일용할 양식을 숨겨놓으셨다. 교활한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우스 신은 인간들에게 슬픈 불행을 안겨줄 요량으로 불을 숨겨놓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불을 충고하는 자인 제우스 신에게서 약삭빠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 속이 빈 회향목 줄기에 넣어 몰래 훔쳐왔다. 제우스 신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실 리가 없었다. 구름을 모으는 자인 제우스 신은 그 도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누구보다도 영리한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여, 너는 나의 불을 훔쳐 나의 뜻을 거역하고도 기뻐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 불은 너 자신이나 이후에 태어나게 될 인간에게 큰 고통이 되리라. 인간들 모두가 불을 얻어 기쁨에 겨워 하겠지만, 나는 그 불에 대한 대가로 인간들에게 평생 불행을 껴안고 살아가게 만들 재앙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노라.”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큰 소리로 웃으셨다. 그러고는 재빨리 손재주가 뛰어난 헤파이스토스에게 흙과 물을 섞어 인간의 형태를 만들어 그 안에 목소리와 생명을 불어넣도록, 그리고 얼굴에는 불멸의 여신들처럼 아름답고 귀엽고 매력적인 여자의 모습을 만들어 넣도록 명령하셨다. 더 나아가 그는 아테나에게 명령하시어 자수 놓는 기술과 미세한 직물을 짜는 기술을 그녀에게 가르쳐주라고 하셨고, 황금빛이 나는 아프로디테에게는 그녀의 머리에 매력뿐 아니라, 고통에 찬 동경과 남자들의 팔다리의 힘을 빠지게 하는 비탄을 불어넣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또한 아르고스를 죽인 전령 헤르메스[18]에게는 음란한 마음과 교활한 성격을 심어주라고 명령하셨다.
그렇게 제우스 신이 명령하시자, 신들은 자신들의 지배자이자 크로노스의 아들인 그의 말에 복종했다. 그래서 유명한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즉시 크로노스의 아들의 뜻대로 진흙으로 수줍음을 잘 타는 소녀의 상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빛나는 여신 아테나는 그녀에게 허리띠를 만들어주고 화장을 시켜주었으며, 우미의 여신들과 페이토[19] 여신은 그녀에게 금목걸이를 걸어주었고, 아름다운 고수머리를 지닌 계절의 여신들은 그녀에게 봄꽃으로 화환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몸의 모든 패물은 팔라스 아테나가 만들어 장식해 주었다. 그리고 아르고스를 죽인 신들의 정령 헤르메스는 웅장하게 천둥 치는 제우스 신의 뜻대로 그녀의 가슴속에 기만과 사기와 아첨과 교활한 심성을 불어넣어주었다. 신들의 전령은 그녀에게 또한 말하는 능력을 선사하고 그녀를 판도라[20]라고 이름지었다. 올륌포스에 사는 모든 신들이 열심히 일하는 남자들에게 고통이 될 만한 것들을 그녀에게 한 가지씩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도 당해 낼 재간이 없는 완벽한 속임수가 마련된 후에 아버지 제우스 신은 아르고스를 죽인 것으로 유명한 발 빠른 전령 신을 보내 그 선물을 에피메테우스에게 주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인간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올륌포스의 제우스가 선물을 주거든 받지 말고 돌려주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충고를 생각지 않고 그 선물을 덥석 받았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는 그 선물을 처음 받았을 당시에는 불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지상의 인간 종족들은 자신들에게 죽음을 재촉하는 불행이나 힘든 일 그리고 심한 고통을 모른 채 아주 오랫동안 살았다. 고생하며 사는 사람은 더 빨리 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여인이 항아리에 덮여 있는 단단한 뚜껑을 손으로 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인류에게 극심한 고통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21] 그런데 유일하게 희망만은 항아리의 가장자리 아래 붙은 채 그 누구도 깨뜨려 열 수 없는 뚜껑 안에 남아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러기 전에 구름을 모으는 자이자 아이기스 방패를 지니고 다니는 자(제우스)의 뜻대로 판도라가 놀라 항아리의 뚜껑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로운 불행들은 인간들 사이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따라서 지상 바다 할 것 없이 고통으로 휩싸이게 되었으며, 병마가 어떤 사람에게는 낮에, 다른 사람에게는 밤에 마음 내키는 대로 갑자기 찾아 다니며, 소리 소문 없이 인간들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모든 것을 계획하는 자인 제우스 신이 인간들에게 목소리를 거두어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우스 신의 이런 결정을 피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던 것이다.
[7]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는 프로메테우스는 가슴에 말뚝이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는 아마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쇠기둥에 묶었다는 표현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런 형벌을 받는 장소는 코카서스 산이다. 아이스퀼로스는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를 독재자 제우스에 의연하게 맞서 싸우는 정의의 사도로 그리고 있으나, 헤시오도스는 정의로운 제우스에게 겁 모르고 대드는 사기꾼이자 범죄자로 묘사하고 있다.
[10] 인간들은 원래 신들과 서로 교류가 있었다. 언젠가 신들은 자신들과 인간들의 관계를 협정을 맺어 조절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바로 이때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을 속여 인간과 신은 영영 갈라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의 타락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때부터 단지 영웅들만이 신들과 접촉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16] 다른 많은 민족의 신화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나중에 생겨나 남자에게 불행만을 초래한다고 쓰여 있다. 특히 성서의 「창세기」에도 이브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주어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게 만드는 악역을 맡고 있다.
[18] 이오와 사랑을 나누던 제우스는 헤라가 나타나자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킨다. 이를 수상쩍게 여긴 헤라는 제우스를 졸라 암소를 선물로 받아내 얼굴에 눈이 백 개나 달려 졸지도 자지도 않는 괴물 아르고스에게 감시하게 한다. 제우스는 이것을 안타깝게 여겨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괴물 아르고스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잠자게 만든 뒤 죽이게 한다.
[21] 소위 ‘판도라의 상자’라고 알려진 이야기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첫째, 과연 판도라가 뚜껑을 연 것이 상자인가 아니면 항아리인가 하는 것인데, 이 점은 본문의 내용대로라면 알려진 바대로 상자가 아니라 흙으로 만든 단단한 항아리였을 것이라는 것이 더 일리가 있다. 둘째, 판도라가 최초의 여자라면 그 전의 인류는 무성생식을 했을 것인데 거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헤시오도스는 판도라가 사악한 성격을 지닌 최초의 여자라는 사실만 이야기하고 있다. 셋째, 판도라 자체가 악이었고 인간에게 불행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면 굳이 항아리가 필요했을까 하는 것이다. 넷째, 항아리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제우스가 보낸 것인가, 아니면 생물체를 만들고 그들에게 속성을 부여하던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사악한 속성들을 단단한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가? 헤시오도스는 여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호메로스에 의하면 제우스는 하늘에 사악한 것과 좋은 것을 각각 갈라 넣은 두 개의 항아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판도라에게 주어 보냈다고 적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희망이 사악한 것들과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희망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악한 것에 속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