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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ext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픽션들』

by Vanodif 2016. 8. 18.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ㅡ 빅토리아 오캄포에게







   리델 하트는 『유럽 전쟁사』 242페이지에서 1916년 7월 24일 영국군 13개 사단이 1400문의 대포 지원하에 세르 몽토반 전선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29일 아침까지 연기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리델 하트 대위가 쓴 바에 따르면, 폭우 때문에 연기된 것이었지만, 그 연기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다. 칭다오 대학의 영문학 전직 교수였던 유춘 박사가 구술하고 다시 검토한 후 서명한 다음의 진술은 그 사건에 관한 이외의 진상을 밝혀 주고 있다. 처음 두 페이지는 분실되었다.



   ...... 그리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곧바로 독일어로 대답한 음석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리처드 매든 대위의 목소리였다. 빅토르 루네베르크의 아파트에 매든 대위가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노력은 물론 목숨마저도 끝나 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것은 루네베르크가 체포되었거나 살해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날의 해가 지기 전에, 나도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될 것이었다. 매든은ㄴ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아니, 무자비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영국군의 명령을 받는 아일랜드 사람이며, 미적지근한 태도와 아마도 반역 혐의까지 받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천우신조, 즉 독일 제국의 스파이 둘을 색출하여 체포하고 어쩌면 제거하는 데까지 이어질 그런 기회를 얼른 붙잡고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어처구니없게도 열쇠로 방문을 잠갔고, 비좁은 철제 침대 위에 덜렁 드러누웠다. 창밖으로 평상시에 보이던 지붕들과 구름이 가린 여섯 시의 해가 보였다. 나는 아무런 조짐이나 전조도 없이 그날이 내게 무자비한 죽음의 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한때 하이펭의 대칭형 정원에서 놀던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런 다음 내 머릿속에는 모든 일이 바로 한 사람에게,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태곳적부터 언제나 일어나는 일들, 그런 일들은 오로지 현재에 일어난다. 하늘과 땅과 바다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정말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는 것이다...... 매든의 말대가리 같은 얼굴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기억이 이런 상념을 뒤엎어 버렸다. 증오와 공포 한가운데서 (지금 나는 공포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한다. 지금 나는 리처드 매든을 따돌렸고, 지금 내 목은 밧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용사가 큰 소리로 떠들어대면서 틀림없이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며, 내가 '기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밀'은 바로 앙크르 강변에 주둔한 새로운 영국 포병대의 정확한 위치였다. 새 한 마리가 회색 하늘을 가르며 나아갔고, 나는 무턱대고 그것을 비행기로 보았으며, 그 비행기를 프랑스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해 영국 포병 기지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수많은 비행기라고 받아들였다. 한 발의 탄환이 내 입을 뭉그러뜨리기 전에 내 입이 독일에서도 들을 수 있도록 그 이름을 외칠 수만 있다면....... 내가 지닌 인간의 목소리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대장의 귀에 들어가도록 할 수 있을까? 루네베르크와 나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주제에 스태퍼드셔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베를린의 썰렁한 사무실에서 끝없이 신문들을 뒤적거리며 우리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지긋지긋하고 증오스러운 인간의 귀에 말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도망쳐야겠어." 그러고는 마치 매든이 이미 나를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불필요하게 완벽한 침묵을 지키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무엇인가 ㅡ 아마도 더 이상 내가 기댈 곳은 없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생각 ㅡ 에 이끌려 나는 내 주머니들을 뒤져 보았다. 그리고 이미 짐작했던 것들을 주머니 속에서 발견했다. 미국제 시계, 니켈 도금된 시곗줄, 사각형 동전, 나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루네베르크 아파트의 쓸모 없는 열쇠들이 달린 열쇠고리, 수첩, 내가 즉시 파기해 버리겠다고 마음먹은(그러나 파기하지 않았던) 편지 한 장, 위조여권, 크라운 한 개, 2실링과 펜스 동전 몇 개, 빨강과 파랑이 섞인 연필 하나, 손수건, 그리고 한 발의 탄환이 장전된 리볼버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리볼버를 손에 쥐고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용기를 얻으려고 했다. 나는 막연하게 권총 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십 분이 지나자 내 계획은 ㅁ누르익었다.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는 기차로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는 펜톤 교외에 살고 있었다.


   나는 비겁한 자다. 그 누구도 위험하고 무모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내 계획을 수행한 지금 나는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가를 잘 안다. 나는 독일을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내게 스파이라는 더러운 행위를 강요한 야만적인 나라에 대해서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게다가 나는 내가 보기에 괴테에 못지않은 어느 영국인 ㅡ 아주 겸손한 사람 ㅡ 을 안다. 나는 그와 한 시간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 한 시간 동안 그는 괴테였다....... 나는 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은 대장이 내 인종의 피를 가진 사람들 ㅡ 내 핏줄 속에 흐르는 셀 수 없이 많은 조상들 ㅡ 을 약간 우습게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황인종 한 명이 그의 군대를 구원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매든 대위에게서 도망쳐야만 했다. 그의 손과 목소리가 언제라도 내 방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옷을 입었고, 거울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작별을 했고, 계단을 내려와서 조용한 거리를 유심히 살펴본 다음 밖으로 내려왔다. 기차역은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나는 택시를 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헀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눈에 띌 위험이 적을 것 같았다. 사실 텅 빈 거리에서 나는 눈에 잘 띄고 무한히 약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택시 운전사에게 기차역 중앙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 달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일부러 거의 슬픔에 잠긴 사람처럼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애시그로브라는 마을로 갈 생각이었지만, 보다 먼 기차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 출발 시각은 앞으로 몇 분 남지 않은 8시 50분이었다. 나는 서둘렀다. 다음 기차는 9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이었다. 플랫폼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객실들을 살피며 걸었다. 농사꾼 몇 사람과 상복을 입은 어느 여인, 그리고 열심히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읽고 있는 청년과 행복한 표정을 지은 어느 부상병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드디어 기차가 출발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 플랫폼 끝까지 달려왔지만 기차에 올라타지는 못했다. 그는 리처드 매든 대위였다. 기진맥진한 채 몸을 떨면서 나는 의자 한쪽 끝에서, 그러니까 무섭기 짝이 없는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는 상태를 벗어나자, 나는 거의 비열한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가 되었다. 이미 결투를 시작했고, 비록 사십 분을 얻은 것에 불과하지만 행운이 나를 도와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첫 번째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이 작은 승리가 총체적인 승리를 예껸해 주는 것이라고 애써 생각하려고 했다. 나는 그것이 결코 작은 승리가 아니라고 나 자신을 설득시켰다. 기차 시간표가 내게 선사해 준 그 간발의 차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감옥에 갔거나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 궤변적으로) 이런 비겁한 행복감은 내가 이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임을 입증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약함에서 나는 힘을 얻었고, 그 힘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보다 끔찍한 일을 체념하여 받아들일 것이고 이내 세상에는 군인과 도둑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무시무시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그것을 완수했다고 상상해야만 하고, 과거처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미래를 자기 자신에게 강요해야 한다'. 나는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런 동안 이미 죽은 사람과 같은 내 눈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날의 흘러가는 낮과 펼쳐지는 밤을 새기고 있었다. 기차는 물푸레나무 숲 사이로 부드럽고 감미롭게 달리고 있었다. 기차가 들판 한복판 쯤에서 멈추었다. 그 역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애시그로브니?" 나는 플랫폼에 있는 몇몇 아이들에게 물었다.

   "애시그로브예요." 아이들이 대답했다.

   

   나는 내렸다. 등불 하나가 플랫폼을 비추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스티븐 앨버트 박사님 댁에 가세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른 아이가 말했다.

   "박사님 댁은 여기서 멀어요. 그렇지만 저 길을 따라 왼쪽으로 가다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왼쪽으로 돌면 절대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아이들에게 동전 하나(마지막 동전)를 던져 주고서, 돌계단 몇 개를 내려간 다음, 아무도 없는 길로 들어섰다.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었고 위로는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있었으며 낮게 뜬 둥근 달이 나와 함께 가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리처드 매든이 나의 필사적인 계획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계속 왼쪽으로 돌아가라는 아이들의 말은 내게 그것이 특정한 미로에서 중앙을 발견하는 데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미로에 대해 약간 알고 있었다. 내가 추이펀의 증손자라는 사실이 영 무용지물인 것만은 아니었다. 추이펀은 윈난성의 성주였고 『홍루몽』 보다 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모든 사람이 길을 잃을 미로를 만들기 위해 속세의 권력을 포기했다. 그는 십삼 년 동안 그 이질적인 두 가지 일에 전념했지만, 한 낯선 이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미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영국산 나무들 아래를 걸으면서 그 사라진 미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그것을 아무도 모르는 어느 산의 정상에 있어서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완벽한 것으로 상상했다. 또한 논에 의해, 혹은 논물 밑에 가라앉아 윤곽이 흐려져 버린 것으로 상상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팔각정이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오솔길이 아니라, 강이나 주 혹은 왕국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것이라고 그렸다....... 나는 미로들 중의 미로,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며 어쨌거나 행성들까지 수반하는 구불거리고 갈수록 커져가는 미로를 상상했다. 이 가공의 모습에 몰입한 나머지 나는 내가 쫓기는 운명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만큼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동안 마치 나 자신이 세상을 추상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희미하게 생동하는 들판, 달, 그리고 그날 오후의 잔재들이 내 안에서 행동했던 것이다. 또한 모든 피로의 가능성을 제거해 준 완만한 내리막길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 저녁은 친근했고 무한했다. 길은 내리막이었고, 이제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들판 쪽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다. 나뭇잎 소리와 뒤섞인 채 멀리서 들려와 희미하면서도 날카롭고 분명한 노랫소리가 산들바람이 불거나 그칠 때마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곤 했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적이 될 수 있지만, 한 국가의 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반딧불, 언어, 정원, 강물의 흐름, 석양의 적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느 우뚝 솟은 녹슨 문 앞에 도착했다. 쇠창살 사이로 포플러 나무 오솔길과 정자 비슷한 것이 엿보였다. 나는 곧 두 가지 사실을 꺠달았다. 첫 번째 사실은 하찮은 것으로서 아까 들었던 음악이 정자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거의 믿기 힘든 것으로서 그 음악이 중국 음악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음악에 사로잡혔다. 종이나 초인종이 있었는지, 아니면 손뼉을 치면서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톡톡 소리 나는 음악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친숙해 보이는 집 뒤편에서 등불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등불은 나무줄기들을 비추었다가, 어떤 때는 나무들 때문에 완전히 가려지기도 했다. 달빛의 색을 띠고 북 모양을 한 등롱이었다. 키가 큰 어느 남자가 그것을 들고 오고 있었다. 나는 등불에 눈이 부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가 대문을 열었고, 내 모국어로 천천히 말했다.

   "자비로운 쓰펑 씨가 저의 고독을 달래주려 애를 쓰고 있는 것 같군요.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도 정원이 보고 싶어 찾아온 거지요?"

   나는 그 이름이 우리 집안의 어느 관리 이름이라는 것을 기억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정원이라고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말입니다."

   그러자 내 기억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고, 나는 나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저의 선조 추이펀의 정원이지요.

   "당신 선조라고요? 당신의 그 고명하신 선조라고요? 자, 들어오십시오."

   축축한 오솔길은 마치 유년 시절 내가 놀던 오솔길처럼 구불구불했다. 우리는 동서양의 책이 꽂혀 있는 어느 서재에 도착했다. 나는 황색 비단으로 제본된 책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명나라 세 번째 황제가 편찬했지만 결코 인쇄된 적이 없는 『유실된 백과사전』의 필사본 몇 권이었다. 축음기에 걸린 레코드판이 청동 불사조 상 옆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또 분채 자기 한 개와 우리 장인들이 고대 페르시아의 도자기를 그대로 복사한 몇 백 년이 된 청자 하나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스티븐 앨버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그는 키가 아주 컸고, 얼굴은 날카로웠으며 눈과 턱수염은 회색이었다. 성직자 같은 인상도 조금 있었지만, 동시에 선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그는 내게 '중국학 연구자가 되기 전에' 힌때 톈진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앚았다. 나는 낮고 긴 의자에, 그는 창문과 크고 둥근 시계를 등진 채 앉았다. 나는 추적자 리처드 매든이 적어도 한 시간 안에는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돌이킬 수 없는 나의 결정을 내릴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스티븐 앨버트가 말했다.

   "추이펀은 경이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태어난 곳에서는 성주였고, 천문학과 점성술 학자였고, 사서삼경을 지칠 줄 모르게 해석한 사람이었으며, 장기의 대가였고, 유명한 시인이자 서예가였지요. 그는 한 권의 책과 하나의 미로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는 억압과 정의와 수많은 여인들과의 잠자리와 연회의 쾌락을 끊었습니다. 심지어 해박한 지식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도 거부했지요. 그러고서 십삼 년이라는 세월동안 '청고루'에 은거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후손들은 어지러운 원고뭉치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발견하지 못했지요. 아마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 원고를 불에 던져 버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유언집행자가 ㅡ 도교의 도사였는지 불교 승려였는지 확실치 않지만 ㅡ 그 원고를 출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대답했다.

   "우리 추이펀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승려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런 원고를 출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 책은 앞뒤가 맞지 ㅇ낳는 초고들을 어정쩡하게 엮은 원고뭉치에 불과합니다. 저는 언젠가 그 책을 검토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의 3장에서 주인공은 죽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는 그가 살아있습니다. 추이펀의 또 다른 작업인 미로에 관해서는......"

   "바로 여기에 그 미로가 있소."

   그는 옻칠한 높은 책상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나는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상아로 만든 미로군요! 정말 작은 미로네요......."
   "상징들의 미로지요." 그가 내 말을 바로잡아 주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미로랍니다. 영국의 야만인인 제가 그 영묘한 비밀을 벗겨 내도록 선택되었습니다. 물론 벌써 백여 년의 시간이 지났기에, 아주 세부적인 것들까지 회복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추이펀 선생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은퇴해서 책을 쓰겠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이렇게 말해을 것입니다. "은퇴해서 미로를 만들겠다."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작품을 상상했습니다. 아무도 책과 미로가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청고루는 정원 한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아마도 그 정원은 얽히고 설켜 있을 겁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미로를 연상하게 했을 테지요. 추이펀 선생은 고인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드넓은 영지에서 미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혼란스러운 그의 소설이 바로 미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을 저는 두 가지 조건을 통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추이펀 선생이 정말로 무한한 미로를 세우고자 했다는 흥미로운 전설이며, 둘쨰는 제가 발견한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앨버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잠시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더니 검은색과 금색으로 꾸며진 책상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심홍색이었지만, 이제는 은은한 분홍색의 사각형 종이를 들고 돌아섰다. 그것은 서예가로서 추이펀의 명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 가문의 누군가가 붓으로 정성들여 쓴 말들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열심히 읽었다. "나는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 모든 미래가 아니라 몇몇의 미래를 남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편지를 되돌려 주었다. 앨버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편지를 발견하기 전에, 저는 한 권의 책이 무한한 책으로 화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주기적이거나 순환적인 책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와 첫 번째 페이지가 동일해서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책 말입니다. 또한 저는 『천 하루 밤의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밤을 떠올렸지요. 그날 셰에라자드 왕비는 (필경사가 마법에 걸린 듯이 한 눈을 파는 틈에) 『천 하루 밤의 이야기』를 그대로 언급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다시 그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밤으로 되돌아올 위험이 있지요. 그리고 그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겁니다. 또한 나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이상적이고 유전적인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각각의 새로운 후손이 한 장씩 덧붙이거나, 조상들이 이미 써놓은 페이지들을 공손하고 세심하게 정정하는 그런 작품 말입니다. 이런 추측을 하면서 저는 즐거워하기도 했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추측도 추이펀이 쓴 모순적인 작품의 장들과 일치하거나 심지어는 희미하게라도 흡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 당신이 방금 전에 읽은 그 글이 옥스퍼드에서 배달되었지요. 당연히 저는 "나는 모든 미래들이 아니라 몇몇 미래들에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을 남긴다"라는 문장에 주목했습니다. 거의 즉시 저는 꺠달았습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무질서한 혼돈의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래들이 아니라 몇몇 미래들"리아는 구절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작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고 저는 제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소설에서 작중 인물은 여러 가능성과 마주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거의 풀 수 없는 추이펀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ㅡ 동시에 ㅡ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미래들, 즉 몇 개의 시간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증식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소설이 가진 모순들이 설명됩니다, 예를 들어, 팡이라는 사람이 하나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그의 방문을 두들기고, 팡은 그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다양한 결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팡이 침입자를 죽일 수도 있고, 침입자가 팡을 죽일 수도 있으며,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건질 수도 있고, 두 사람 모두 죽을 수도 있고, 그 이외의 가능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추이펀의 작품에서는 이런 모든 결말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각 결말은 또 다른 갈라짐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미로의 길들이 모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이 집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과거에 당신은 저의 적이고, 또 다른 과거에는 저의 친구입니다. 만일 당신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제 발음을 이해해 주신다면, 몇 페이지를 함께 읽어 볼까 합니다."

   등롱의 선명한 원 속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의심할 나위 없이 늙은이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불요불굴의, 심지어 불변하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영웅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한 장의 두 가지 판본을 천천히 또박또박 읽었다. 첫 번째 판본에서는 어는 군대가 황량한 산을 지나 전쟁터로 행진한다. 바위와 어둠에 대한 공포에 고무되어 군인들은 목숨을 하찮게 여기게 되고, 그래스 그들은 손쉽게 승리를 거둔다. 두 번째 판본에서는 똑같은 군대가 연회가 벌어지는 어느 궁전을 지나간다. 그들은 번쩍거리는 전쟁터를 축제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쉽게 승리를 거둔다.

   나는 경건하고 예의 바르게 그 옛날이야기들을 듣고 있었다. 아마도 그 이야기 자체는 우리 가문의 한 사람이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으며, 그 머나먼 제국의 사람이 서구의 한 섬에서 필사적인 모험을 하고 있는 내게 그 이야기들을 복구시키고 있다는 사실만큼 주목할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마치 비밀의 계명처럼 각각의 판본들에서 반복되던 마지막 문구를 기억한다. "그렇게 영웅들은 싸웠고, 훌륭하고 장한 그들의 마음은 차분했고, 칼을 마구 휘두르며 덤덤히 죽고 죽였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내 주변과 나의 어두운 몸 안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들은 분산되어 나랗니 나아갔다가 마침내 합쳐지는 군대들의 득실댐이 아니라, 그것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내면적인 동요였다. 물론 그런 동요는 어느 정도 그 군대가 미리 예시한 것이기도 했다. 스티븐 앨버트가 계속 말했다.

   "저는 당신의 고명한 조상이 한가롭게 여러 판본을 만들며 장난쳤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하나의 수사학적 실험을 수없이 해보기 위해서 십삼 년이라는 세월을 희생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당신 나라에서 소설은 저급한 장르에 속합니다. 게다가 당시 소설은 경멸할 가치조차 없는 장르였지요. 추이펀은 천재적인 소설가였지만 또한 학자였기에,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자신을 하찮은 소설가로 여기지 않았지요. 동시대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그가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그의 삶은 그런 사실을 충분히 확인시켜 줍니다. 철학 논쟁이 그의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모든 문제들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불가해한 시간의 문제만큼 그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그를 괴롭히지도 않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시간에 대한 것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라는 소설에서 나타나지 않는 '유일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그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그런 의도적인 삭제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나는 몇 가지 해결책들을 제시했지만,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었다. 우리들은 토론을 벌였다. 마침내 스티븐 앨버트가 내게 말했다.

   "해답이 장기인 수수께끼에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유일한 단어가 어떤 것이지요?"

   나는 잠시 생각을 하고서 이렇게 대답했다.

   "장기라는 단어지요."

   그러자 앨버트가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거대한 수수께끼이거나 비유이며, 그 주제는 시간입니다. 깊숙이 숨겨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수 없었던 겁니다. 한 단어를 항사아 생략하는 것, 서투른 은유와 너무나도 분명한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 그 단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가장 명확한 방법이 바로 그런 것일 겁니다. 바로 그 에두르는 방식이 우회적 성격의 추이펀이 고갈되지 않는 소설의 갈래길마다 선택했던 것이지요. 저는 수백 묶음의 원고들을 비교해 보았고, 필경사들이 부주의로 인해 범한 오자들을 정정했고, 그 혼돈스러운 계획을 추측했으며, 원래의 순서대로 그것을 재정리했고, 아니, 재정리했다고 믿었으며, 작품 전체를 번역했습니다. 저는 그가 단 한 번도 '시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게 설명됩니다. 추이펀이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불완전하지만 그릇되지는 않은 우주의 이미지입니다. 뉴턴이나 쇼펜하우어와는 달리, 당신의 조상은 통일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한하게 연속된 시간들을 믿었어요. 분산되고 수렴되고 병렬적인 시간들로 구성된 점차로 커져가는 어지러운 시간의 그물망을 믿었던 거지요. 서로 가까워졌다가 갈라지기도 하고 서로를 잘라 버리거나 아니면 수백 년 동안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들로 이루어진 직물은 모든 가능성들을 포합합니다. 그런 대부분의 시간 속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간 속에서 당신을 존재하지만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시간의 경우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존재하기도 합니다. 우연이 제게 호의를 베푼 이번과 같은 경우, 당신은 제 집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경우였다면 당신은 정원을 가로지르다가 죽어 있는 저를 발견했을 겁니다. 또 다른 경우에 저는 지금처럼 똑같은 말을 하지만, 하나의 실수, 즉 유령이지요."

   나는 약간 떨면서 말했다.

   "모든 점에서 추이펀의 정원을 다시 창조한 당신을 존경하고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모든 점은 아닙니다. 시간은 셀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 두 갈래로 갈라지거든요. 그 미래들 중의 하나에서 저는 당신의 적입니다."

   나는 앞서 말했던 그 득실댐을 다시 느꼈다. 집을 에워싼 눅눅한 정원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무한하게 포화된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은 또 다른 시간의 차원들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남모르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앨버트와 나였다. 눈을 들자 어렵풋한 악몽은 사라졌다. 노랗고 검은 정원에는 단 한 사람만 존재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마치 동상처럼 굳건해 보였다. 그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리처드 매든 대위였다.

   나는 대답했다.

   "미래는 이미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그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볼 수 있을까요?"

   앨버트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뚝 선 그가 높은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그는 잠시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이미 리볼버 권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총을 쏘았다. 앨버트는 단 한 마디의 신음도 내뱉지 않은 채 즉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가 번갯불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맹세한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이고, 중요하지도 않다. 매든 대위가 방 안으로 들이닥쳐 나를 체포했다. 나는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가증스럽게도 나는 승리했다. 나는 공격을 받아야 할 비밀의 도시 이름을 베를린에 전했던 것이다. 어제 그곳에 폭격이 가해졌다. 나는 그 기사를 박식한 중국학 학자인 스티븐 앨버트가 유춘이라는 이방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실었던 바로 그 신문들에서 읽었다. 나의 대장은 이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는 전쟁의 굉음 너머로 앨버트라는 이름의 도시를 어떻게 보고하느냐는 것이 내가 직면한 문제였고, 그래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죽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끝없이 참회하며 지쳐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 누구도 그것을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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