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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ext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음모」, 『칼잡이들의 이야기』

by Vanodif 2016. 8. 25.









   벗들의 초조해하는 단도에 의해 쫓겨 한 석상의 발치까지 밀려 간 시저는 경악에 경악이 겹친 격으로 사람들의 얼굴과 무기들 사이에서 자신의 후계자, 마치 <아들> 같았던 브루투스를 보았다. 이미 방어할 여력을 잃은 그가 탄식했다. 「아들아, 너까지도!」 셰익스피어와 께베도(스페인 시인)는 이 비장한 외침을 자신의 작품 안에 삽입했다.


   운명은 반복되고, 변형되고, 병립하기도 하면서 계속 확장된다. 19세기의 시간이 지난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방의 남부에서 한 가우초(목동)가 다른 가우초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된다. 그는 쓰러지면서 그들 중에서 자신의 양아들을 발견한다. 그는 은근한 경외심과 아련한 놀라움 속에서 그에게 말한다(이 문장은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녀석아!」 그들은 그를 죽인다. 그는 하나의 장면이 되풀이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죽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LA TRAMA

         Para que su horror sea perfecto, César, acosado al pie de la estatua por lo impacientes puñales de sus amigos, descubre entre las caras y los aceros la de Marco Bruto, su protegido, acaso su hijo, y ya no se defiende y exclama: ¡Tú también, hijo mío! Shakespeare y Quevedo recogen el patético grito.
         Al destino le agradan las repeticiones, las variantes, las simetrías; diecinueve siglos después, en el sur de la provincia de Buenos Aires, un gaucho es agredido por otros gauchos y, al caer, reconoce a un ahijado suyo y le dice con mansa reconvención y lenta sorpresa (estas palabras hay que oírlas, no leerlas): ¡Pero, che! Lo matan y no sabe que muere para que se repita una escena.







   

   그의 공포를 완성시키기 위하여, 벗들이 성마르게 들이대는 단도로 인해 석상의 발치까지 몰린 시저는, 많은 무기와 얼굴 가운데, 자신이 총애하던 제자이자 아들이나 다름 없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얼굴을 발견하자마자, 더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은 채 부르짖었다. "아들아, 너까지도!" 셰익스피어와 께베도는 이 비통한 절규를 자신의 작품 안에서 다시 사용하였다.


   운명은 반복과 변형과 대칭을 좋아하는 바, 19세기가 지난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방의 남부에서 한 가우초가 다른 가우초들에게 공격을 당하는데, 쓰러지면서 자신의 양자를 알아보고는 온화하게 책망하고 더디게 놀라면서 말했다 (이 말은 읽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 "Pero che!"* 그는 죽고 있었지만, 하나의 장면이 반복되기 위해 죽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reconvención f. 질책, 책망

manso/ mansa 온화한








The Plot :: J. L. Borges

To make his horror complete, Caesar, pressed to the foot of a statue by the impatient daggers of his friends, discovers among the blades and faces the face of Marcus Junius Brutus, his protege, perhaps his son, and ceasing to defend himself he exclaims: “You too, my son!” Shakespeare and Quevedo revive the pathetic cry.

Destiny takes pleasure in repetition, variants, symmetries: nineteen centuries later, in the south of the Province of Buenos Aires, a gaucho is attacked by other gauchos. As he falls he recognizes an adopted son of his and says to him with gentle reproof and slow surprise (these words must be heard, not read), “Pero che!” He is being killed, and he does not know he is dying so that a scene may be repeated.

[From Dreamtigers, by Jorge Luis Borges, translated by Mildred Boyer]













* 민음사 번역에서 '은근한 경외심'이란 표현이 이해되지 않아 본문을 찾았다가 그냥 번역해 버렸다. 번역하고 보니 이 글은 스페인어로 읽었어야 하는 글임을 알았다. 황병하 선생님은 생각보다 ㅡ 그냥 읽었을 땐 번역이 많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내가 번역하고 보니 상당히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진지하게 번역하셨다 ㅡ 번역이 훌륭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Pero che! 일 것이다. 이 부분은 밑에 역자주로 달아주셨으면 좋았을 걸. 다른 글에선 근사한 역자주를 많이 달아주셨는데, 이 글은 별로 주목하지 않으셨나 보다. 아래의 영어 번역을 보자. 역시 "Pero che!"는 번역을 하지 않았지? 당연한 거다. 번역하고 보니 이건 보르헤스의 말장난이었던 거다. 스페인어본에서 하이라이트한 부분을 보면 para que와 pero que가 직조하듯 교차하여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pun, 즉 말장난이다. 


실제로 pero는 '그러나', che는 '야! 임마!'의 뜻이다. 그래서 황병하 선생님의 "그렇지만 이 녀석아!"라는 번역은 옳다. 그런데 맞긴 한데 맛이 안 산다는 느낌인 거다. 언어, 특히 문학전공자들... 중에서도 시 전공자들은 금방 알아 채는 류의 언어유희다. 보르헤스는 단편작가이니 이런 언어유희가 많겠다 싶은데? 여지껏 보르헤스 작품을 번역한 적은 없는데, 관심이 생기네. 다시 pero che로 돌아가서. 이거 되게 재밌는 건데.


para que 는 ~를 위하여, ~하도록 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Para qué? 로 따로 떨어뜨려 쓰면서 물음표를 붙이면 '왜?', '무엇 때문에?'가 된다. 요즘 많이 쓰는 깨진 한국어로 쓰면 '왜 때문에' 정도 되나. 그 '무엇 때문에!"를 연상시키는 구절이 바로 "pero que!"인 것이다. 즉 pero che!는 가우초가 영문도 모른 채 죽으면서 "하지만 이 녀석아!"라고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왜! 무엇 때문에!"라 말한 것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읽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들었을 때, '빠라 께'와 "뻬로 께"는 상당히 비슷하게 들리니까.


자, 조금 더 들어가 볼까?


이 가우초의 사건은 시저의 사건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하여 같은 장면이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앞서 보르헤스는 '운명은 반복과 변형과 대칭을 즐긴다'고 말했다. 이 반복, 변형, 대칭이란 단어를 다시 주목하자.


일단 반복은 너무 명확하게 제시되어 간과할 수가 없다(국어다운 글을 지향하고 있는데 아직도 영어스러운 문장을 쓰고 있네, 나는. 어떻게 고쳐야 하지). 셰익스피어가 『The Tragedy of Julius Caesar』에서, 께베도가 『Vida de Marco Bruto』에서 재현한 시저-브루투스의 일화를 보르헤스가 이 작품에서 또 다시 재현하고 있다. 은근히 자신이 셰익스피어급이라는 거겠지. 하하? 암튼.


변형, 은 셰익스피어에서의 시저가 "Et tu, Brute?"라고 말한 것을 -- 께베도의 작품은 찾기 귀찮다 -- 보르헤스는 "¡Pero, che로 변형시켰음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리고 너마저냐, 브루투스?"라 한 것을 보르헤스는 "하지만, 이 녀석아!" 혹은 "무엇 때문에!"로 변형시킨 것이다(편의상 이제부터 필요에 따라 "하지만 이 녀석아!"를 A, "무엇 때문에!"를 B로 칭한다). 


우선 A를 고려해 보자. 셰익스피어에서 "그리고 너마저냐, 브루투스?"에서는 '왜'라기 보단 '브루투스'라는 인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서의 시저는 자신을 살해하는 이들의 동기를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보르헤스에서  그 구문을 "하지만 이 녀석아!"로 해석하면, "다른 놈들은 나를 죽일 만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아! 너는 그러면 안 되지!"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여기에서도 시저는 브루투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의 태도가 좀 다른 것이다. '온화한 책망'이란 표현은 그래서 사용되었을 지도 모른다. 책망이잖아?


B라 해석하게 되면, 앞서 셰익스피어에서의 시저가 "너마저냐, 브루투스?"라고 말한 것을, 보르헤스는 "대체 왜!"라고 ㅡ 또 다시 ㅡ '책망'한 것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인물'에 초점을 맞춘 셰익스피어에 반해, 보르헤스는 '원인'에 주목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어쨌거나 말장난인 거지만.


대칭. 음... 이 '대칭'에선 내가 살짝 선을 넘을 수도 있겠다? 감안하고 읽으시도록 하자. '대칭'은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것이긴 하나, 대칭축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반복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즉 abcd의 대칭은 dcba가 되는 것이지. '양아버지가 양아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라는 전제를 대칭시켜 보면, '양아들이 양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가 된다. 그러니 여기서 어쩌면 가우초는 "하지만 야, 이녀석아! 지금은 내가 널 죽이는 차례인 거야!"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ㅡ보르헤스가 이것을 의도한 것 같진 않지만, 일종의 롤랑 바르트적 해석이 아니겠어? 으하하. 


미안.

내가 비약을 즐기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암튼 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스페인어 본문의 위력이다. 아... 이럴 때마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깊은 탄식을 유발하는 문구가 생각나는 거다. 그리스도교적 천국에서의 실업자 두 부류는 성직자와 통역/번역가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그래야 한단 말이다. 천국에서마저 이 언어적 불통의 한이 풀어지지 않는다면, 이 내 답답함은 어찌 해소된단 말이냐! 이 세상의 통/번역가분들, 힘내시는 겁니다.


허니, 우리나라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뭐다? 한-영 번역가다. 통역가는 충분히 계신데 전문 문학 번역가가 아쉬운 거다. 문학작품을 영-한으로 번역할 때 한국인 번역가가 절대적으로 많듯, 한국 작품을 한-영으로 번역할 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문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루키가 왜 노벨상 후보가 되었게?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왜 많이 번역되었게? 서양인들이 한국보다 일본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지. 이처럼 소급될 질문은 끝이 없을 것이며... 각설하고. 이번에 한강 님께서 상을 타신 것도 뛰어난 영국인 번역가 덕분이었지. 그처럼 우리나라의 뛰어난 작품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그만큼 뛰어난 외국인 번역가들이 필요한 것인데 때마침 한류가 유행이니,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국인들은 가급적 많은 한국문학을 전도합시... 아니, 전하도록 합시다. 지금은 어리더라도 그 외국인 친구들이 몇 년 후에 우리나라 문학작품을 누구보다 멋드러지게 번역해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마녀를 위해 본문을 타이핑하고 말려고 한 건데 무슨 수다를 이렇게나. -_- 보르헤스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하필 본문이 극 짧고, 특별히 걸리는 번역이 있었고, 하필 원문을 찾았고, 하필 직접 번역을 했고, 하필 원어로 즐길 수 있는 말장난을 발견했고, 그러다 보니 평소 가슴 속 깊이 단단하게 맺혀 있는 외국어 전공자로서의 한恨 ㅡ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ㅡ 이 억울해 폭주한 것으로 이해하시라. 끝.




ㅡ 는 중요한 걸 하나 빼먹었네.


첫 번째 "Para que"에서 '그의 공포를 완성하기 위하여'라는 표현, 재밌지 않은가? '그의 공포를 완성하기 위해 브루투스를 발견한 시저가 부르짖은 거다. "너까지도, 아들아!"라고. 그의 공포를 완성하려는 주체는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