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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박선기 Bahk Seon Ghi 개인전 <NATURE> @ Gallery bk

by Vanodif 2017. 10. 1.







http://www.gallerybk.co.kr/







전시를 검색하다가 막날이 바로 코 앞이어서 다른 가려던 전시들 포기하고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렇게 간 갤러리비케이는 한강진역 근처 골목에 위치해 있는데, 좁은 골목에 있지만 한강진역 쪽에서 가면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분명히 주말이면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이태원이고 실제로 근처에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조용하고 단아했다. 여유롭게 작품 감상하기에 딱 좋은 깔끔한 곳. 1층에 2-3대 가능한 자체 주차장 있습니다.





위의 메인 사진을 보고 한 눈에 '가야겠다' 해서 달려갔다. 그리고 지하 1층에 이 작품이 있었다. 지하 1층과 1층 모든 작품의 제목은 다 An aggregation이다. 3층 작품들의 제목은 Point of view인데 3층은 사정이 있어서 개방하지 않는다.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은 총 8점. 많지 않지만 덕분에 더욱 여유롭고 꼼꼼하게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아름다운 담당자분의 친절한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박선기

An aggregation 20170830

Charcoal, nylon threads, etc., hcm300

400 x 100 cm

2017



나의 어떤 말보다 네이버캐스트 한국미술산책의 아주 훌륭한 해설과 설명을 싣는다. 박선기 작가의 세계에 대한 해설이 근사하다.


["숯은 변화한 나무다. 즉 나의 모든 작품을 꿰뚫고 있는 소재는 바로 나무이다"라고 정의한 박선기는 "작업은 끝없는 고행의 연속이고 고민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출시키는 방법적 문제가 가장 큰 고통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작품은 또 다른 창작 발전의 에너지"라고 했다. 작가의 이 자전적인 발언은 우리가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말해준다. 그 화두는 숯이다. 이 숯 작업을 위한 고통스러운 작업의 순간들만큼 그의 작품에 쓰이는 오브제나 재로는 보편성을 거부할 만큼 특별하다. 숯이 하나의 훌륭한 미술작품으로서 오브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작품은 어느 정도 파격적이다. 그렇다고 숯에 관한 일상적인 개념이나 의미에 큰 무게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 미술 오브제로서 숯에 관한 선택이 본질적으로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무가 숯이 되어가는 생성과 소멸의 철학 =

그의 고향은 선산으로 아주 작은 산골 마을 태생이다. 눈에 보이는 것 자체가 자연이 모두인 그에게 가장 자연스레 다가온 것이 산과 바람, 나무로 그 가운데 그는 나무와 바람에 관심을 가졌다. 가장 가까이서 보아 온 자연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자연 가운데서 고민하다 나무가 산이나 바람보다 더 친근하며 표현하기 쉬워 나무를 소재로 출발하여 숯이란 재료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나무의 본질을 버린 것은 아니다. 후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다. 이 피할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의 환경 지배론처럼 작가는 태어난 환경에 형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는 숯에 대한 철학을 점진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나무 즉 숯의 생성이 작품에 결정적 모티브가 된 이유와 의미들을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숯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 그는 숯을 놓아두기 보다는 매다는 바업에 오히려 관심이 더 많았다. 그 이유는 줄에 물체를 매다는 것은 바닥이나 벽에 붙여두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인스틸레이션적인 공간의 제약에서 쉽게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무에서 출발하여 작품 제작과 설치의 단계를 거치면서 그는 두 개의 목적을 이루었다. 하나는 작품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브제로 재료의 확장을 통하면서 동시에 나무가 숯에 이르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의 자연적인 이치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기에 박선기와 숯 작업은 국내외 전문가나 컬렉터들 사이에서 검은색의 숯을 투명한 낚싯줄에 매달아 놓은 한 폭의 동양화나 추상 작업을오 평가되고 있다.




박선기

Point of view 09-08-2

Burn wood, Variable installation

2009


※ 사진출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5562&cid=58863&categoryId=58863


위의 사진은 볼 수 없었음. 3층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 시리즈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는 빈번하게 작업의 방향을 하나로 일관되기보다는 두세 가지 스타일로 나누면서 작업을 전개시키는 다양성과 미술의 열린 시각을 지니고 있다. 물론 분위기와 성격도 모두 달랐다. 숯 작품과 벽에 걸리는 부조식 작품의 성향은 분명 본질적인 컨셉과는 다르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한 폭의 벽걸이 조각 같은 [point of view] 시리즈 작품들은 숯 작업과는 이질적인 느낌이지만 그는 그것을 두 얼굴을 한 인간의 원초적 감성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는 분명히 사람의 감정은 하나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성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감성적이며 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응??). 그래서 그 두 가지 감성의 교차 속에서 박선기의 작품이 태어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두 가지 작품을 병행하는 것은 한 가지에 얽매이며 고민하면 오히려 더디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주목받고 인기를 얻는 작품은 벽에 걸려있는 입체 조각이거나 작품을 불규칙하게 분할한 슬라이스 류의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그의 부조식 작품은 한 면에서 봤을 때만 정확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데 여기서 그의 작품들은 슬라이스에서 흩뜨려 놓고 있다. 즉 사물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각 작품을 볼 때에 관객들은 거의 ㄷ부분이 한 자리에서만 관찰한다. 형태가 일그러져 보이는 곳에서 작품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 관객들은 다시 작품이 제대로 보이는 자리로 돌아와 관람을 한다. 그래서 눈은 그냥 매개체일 뿐이고 자신의 관념으로 작품을 관찰한다. 그래서 작가는 그 틀을 깨고 싶어 한다. 익숙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그 부분조차도 슬라이스를 통해 변형을 유도하는 것이다.


=철저히 계산된 착시가 주는 시각적 유희=

이제 우리는 그가 주목하는 [시지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해 박선기는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미술은 시지각이다. 눈을 통해 작가의 정신을 찾을 수 있을 때 그 작품이 항상 신선하고 영구불멸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자명한 사실이다"라는 15년 전의 메모에서 그의 모든 작품들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부조를 가졌는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부조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았던 그의 이탈리아 유학 시절, 부조 뒤의 벽면을 제거하는 틀을 깨는 작업에서 반 부조 스타일의 입체가 탄생된 것이다. 원래 조각에는 원근법의 공간이 없지만 부조에서 파생된 입체이다 보니 시점과 원근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한 포인트에서 보아야만 우리의 관념 안에 있는 정확한 형태의 틀을 볼 수 있게 된다. 그의 입체 작품의 본질은 기존 작업에 이른바 '슬라이스 기법'을 추가해 시점의 변화에서 더 나아가 대상의 시각적 분열을 의도하는 것에 근거한다. 작가가 시점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조각 작품에 다시 한 번 착시를 줄 수 있게 대상을 슬라이스한 것이다. 그 오브제들은 사과, 컵, 펜, 제도용 컴퍼스, 가방 등 우리가 일상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소재들로 흰색으로 평면화시켜 시점 변화를 강조한 입체 작품들이다. 이러한 수사학적 화법으로 여전히 그는 시각이 가지는 허구성과 계산된 착시가 주는 재미난 흐트러짐을 관객들이 즐겨주길 기다린다. 박선기의 이 작업들은 압축된 조각처럼 보이면서 입체주의적 시점 개념을 조각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의 시점을 혼란스럽게 혹은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그의 조각은 세잔 이후 많은 작가들이 추구해 온 벽걸이 조각 만큼이나 신선하다. 특히 회화적 기법으로 제작된 조각은 전통적 조각의 특징인 양감과 덩어리를 덜어내면서 질감을 배제하고 이를 위해 보이는 시점에서 시작하여 한 곳에서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조각을 다시 한 번 착시를 줄 수 있게 분할하는 것이다.


=표현의 대상이 아닌 예술적 오브제=

박선기는 여전히 조각그룹에서는 전통조각에 반기를 들고 생소한 '숯'이라는 소재를 17년 이상 부조 작품과 넘나들며 자연을 주제로 인간의 감정 속에서 찾아낸 주목 받는 작가이다. 그러기에 나무는 박선기에게 있어 표현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이고 생성이자 소멸의 종착역에서 만난 예술적 오브제이다. 부조작품 역시 어떤 형상이든 멀리서도 읽혀질 만큼 단순하게 물질성을 넘어 새로운 입체의 영역을 뒤흔드는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지닌 작가이다. 특히 직접적인 표현이나 재현보다는 철학적이며 시각적인 입체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들은 조각이 안고 있는 표현한계의 문제를 열어놓은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처럼 나무의 경험적 순간을 포착하여 숯으로 전이시키는 박선기는 우리에게 보는 작품에 대한 기억의 한 층을 새롭게 시각화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작품이 가지는 우월한 값어치가 있다면 단연 작품에서 우러나오는 깊이감이다"라면서 "시각이 가지는 허구성과 계산된 착시가 주는 재미난 흐트러짐을 관객들이 즐겨 주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독백은 우리들을 그의 작품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ㅡ 김종근 미술평론가]]


※ 평론 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5562&cid=58863&categoryId=58863





위의 김종근 교수님의 평이 참 근사하다. 내가 작품을 보면서 주의 깊게 보았던 모든 부분에 대한 해석이 명쾌하게 되어 있어 개운한 기분이 되었다. 이 깔때기? 같은 모양의 작품은 산수, 즉 산과 물을 표현한 작품으로, 오른쪽이 산이고 왼쪽이 물이며 동시에 그 물은 산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왼쪽의 아래에 물이 놓여 있는 것도 그것이 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이 작품의 중앙에 산과 물이 만나는 부분이 위의 에어컨에서 나오는 바람 때문에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그것을 보는 기분이 묘했다. 물론 산과 물, 그리고 바람이라는 자연을 표현하신 것이었는데, 내게는 마치 무중력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운석 조각들 같아 보였달까. 지구의 자연을 형상화하신 작품에서 지구 밖의 우주가 떠올랐다는 점이 신기했다. 





찍으면서 내가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한 자리에서 찍었다.





어찌 보면 파드득 날아오르는 까마귀떼 같아 보이기도 하고, 화산의 분출이라거나, 혹은 초신성폭발 같을 수도 있겠고 말이다.









박선기

An aggregation-Drawing 20170907

Charcoal, black ink, etc.

100 x 50 cm

2017












박선기

An aggregation 20170831

Charcoal, nylon threads, etc., hcm170

170 x 15 cm, installation

2017



이 작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형상화 하신 작품이다. 벽에 얌전히 걸려있는 설치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들 덕분인지 굉장한 역동성이 느껴진다. 허공에 매달려 있으니 만큼 미세하게 움직이긴 하겠지만서도. 그리고 이 작품은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다 달라서 다양한 각도에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집에 와서 검색하니 위의 평론에 그 설명이 있어서 즐거웠다. 그것을 의도하셨었다니. 관객으로 하여금 단번에 알아 차릴 수 있게 하는 굉장한 표현 능력이 아닌가.





위의 작품을 한쪽 끝에서 보면 이런 모습이 된다. 계절을 네 개로 분할하고, 그 분할한 1/4 계절 또한 여러 열로 분할하고, 그렇게 분할된 한 열도 여러 행으로 쪼개고 분할하는 작업 속에 가능한 모든 요소에 자율성을 부여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를 바람이 통과하며 이 작품은 온몸으로 유동성을 노래하는 셈이다. 그런 움직임의 이미지를 느끼며 이 끝의 한 시점에서 바라본 분할된 사계절은 마치 회오리처럼 자체적으로 끝없이 돌아가며 순환되는 느낌을 준다.




박선기

An aggregation 20160621

Charcoal, nylon threads, stone, etc., hcm180

100 x 24 cm

20176



그렇게 하여 닿은 이 작품은 바로 옆의 사계절을 합친 '계절'이라는 설명. 태양 주위를 끝없이 돌고 도는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 또는 운석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고대 이집트를 떠올리고야 말고. -_- 고대 이집트 <암두아트의 서>에는 태양신 라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 태양신이 죽어서 부활을 하게 되는 지점에 태양신의 시체를 둘러싸는 '오로보로스'라는 뱀이 있다. 이 뱀은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으로 영원한 순환을 상징하며, 태양신 라의 시체를 감싸 보호하고 그 부활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원형의 작품이 매년 어김없이 발생하는 계절의 부활과 순환을 의미하듯 말이다.










연결시킨 줄마저 작품의 일부분인 것처럼 인식되고.





1층 전시 작품. 왼쪽은 테두리를, 오른쪽은 중앙 부분을 나타내며, 두 작품을 합칠 때 비로소 완성된 하나가 된다.









박선기

An aggregation 20170903

Charcoal, nylon threads, etc., hcm170

100 x 15 cm

2016







두 작품 다 옆에서 보면 가장자리 부분은 세 줄로 되어 있고 조금 안쪽으로 밀도에 따라 두 줄이 더 있었다.





그림자마저 드라마틱하고.










구별이 될까? 오른쪽 작품의 옆면이다. 중심의 밀도가 높은 버전.




박선기

An aggregation 20170905

Charcoal, nylon threads, etc., hcm170

100 x 15 cm

2016



회화작품들도 그러하지만 설치미술은 특히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실제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효과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크다. 특히 박선기 님의 작품은 위의 설명에도 있듯 전체를 수없이 쪼개고 각 조각 사이에 공간을 주어 유동성을 의도했기 때문에, 보는 각도에 따라 또 이는 바람의 여부에 따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의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다음에라도 기회 된다면 꼭 실제로 가서 감상하시길 권한다.








박선기 님의 작품을 보면서 치밀한 수학적 계산 하에 만들어진 작품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한 부분 부분이 모두 정확한 비례에 맞게 정확한 자리에 배치되어 있다. 왼쪽 작품의 좌표와 오른쪽 작품의 좌표에 해당하는 조각 둘이 함쳐져야 비로소 완성된 1이란 입자를 가질 수 있고, 그 많은 입자들이 모두 그런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국 왼쪽 작품 전체와 오른쪽 작품 전체를 또 합쳐야 완성된 전체로서의 1이 되는 철저한 수학적 구조. 그런데 그렇기만 하다면, 그러니까 만약 이 작품이 벽에 고정된 형태였다면 그런 오차 없는 수학적 구조와 배치에 숨이 막혔을 수도 있었겠는데, 그 모든 부분들을 허공에 매달아 둠으로써 자율성과 유동성을 불어 넣으신 것이 참 매력적이다.





정작 각 부분을 이루는 소재는 아무렇게나 잘린 것 같아 보이는 숯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 숯도 하나하나 다 손질하신 것 같아 보였는데, 모든 조각이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앞서 해설에도 있지만 이 숯은 원래의 나무와 나무를 태운 숯, 그러면서 또 다시 다른 것을 태울 수 있는 숯으로서, 시작과 끝, 순환과 유동성에까지 이어지는 상징을 지닌다. 


정말이지 이 숯으로 만드신 작품은 볼 때마다 우주를 유영하는 운석이 떠올라 부유감이 느껴졌다.





박선기

An aggregation cloud 170305

UV print on acrylic plates, etc., hcm30

30 x 15 cm

2017



이것은 유동성의 상징인 구름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온통 투명하여 대체 다른 사물이 찍히지 않을 수가 없다. 스티커를 붙인 여러 투명 아크릴판을 전체 투명 아크릴 상자 안에 배치시킨 작품으로, 언뜻 보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또한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 정면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모든 아크릴판의 정확한 위치에 점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이 작품 역시 똑같은 모양을 한 두 작품이 조금 다른 크기로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왼쪽 작품의 맨 아래 구름은 앞쪽의 아크릴판에 붙어 있었고, 오른쪽 작품의 맨 아래 구름은 뒤쪽의 아크릴판에 붙어 있어서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주었다는 점이다. 나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함께 한 일행이 매의 눈으로 발견해 주었어서 즐거웠던 부분.





옆모습은 이렇게 아크릴판만 보인다.









도대체가 다른 사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니.

이것은 심지어 아크릴판에 고정되어 있는 점들임에도 감상자의 위치에 따라 점들이 퍼져나가고 모여드는

운동성을 지닌다는 점이 독특했다.


어쩌면 움직이는 것은 세상이 아닐 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동하는 것일 수도.










박선기

An aggregation cloud 170310

UV print on acrylic plates, etc., hcm50

40 x 15 cm

2017



아래의 조금 큰 작품.









페인트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깨끗하고 단정하고 조용하고 쾌적하던 비케이 갤러리.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던 박선기 작가의 전시를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