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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구자승전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by Vanodif 2017. 11. 28.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거기 그 사물(being)이 그 적절한 자리에서 하나의 필수 불가결한 아름다운 대상이 되는 것. 그 대상들 하나 하나가 나의 분신이 되고 내 잃어버린 꿈의 파편이 된다. 메마른 나무상자, 흰 보자기, 오랜 유물같은 바랜 주전자, 비워진 슬병, 그리고 담겨지지 못한 자그마한 것들. 자갈, 체리, 토마토, 레몬, 계란, 바랜 사진... 어느날 쓸모없이 버려진 그 나무상자에 술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술병은 비워져 있다. 물기어린 자갈들을 하얀 보자기에 싸 말려주고 싶다. 담겨져야 온전해지는 것들. 담아야 그릇이 되고, 이름이 되고, 존재가 되는 것들. 그런 떠도는 일상의 사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주고, 더 아름답게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그들 각자는 이미 생명을 상실했지만, 하나의 그림이라는 공간에 놓여짐으로 의미있는 시적 오브제의 제탄생을 본다. 예술은 우리의 살처럼 깊이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듯, 나이와 함께 비로소 자신의 삶을 보게되고,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는가 보다. 그리고 내 그림의 표정을 통해, 순간 지나가는 바람마저도 숨을 죽여야 하는 그런 초긴장의 상태에 도달하고 싶다. 어느새 내 시각이 미세한 색채와 형태에 신경이 곤두설 때 쯤이면, 내 삶도 오브제들 속에 되살아난다.


숨을 쉬는 그림. 그 대상들이 주는 더 미세한 호흡을 찾고 싶다. 마치 그려놓은 대상이 무생물체의 큰 덩어리가 아닌, 무수한 꿈의 파편들이 부서져 그 잔해의 흔적을 극복하고, 온전한 오브제가 되기까지 말이다. 상처투성이의 아픈 심장을 가진 그 정물들을 나는 그림 속에서 치유한다.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것으로 표현되어 새로운 힘을 잉태하고, 다시 하나의 커다란 힘에 응집되는 새로운 조화와 질서 위에 놓여나길 원한다. 사물의 분명하고 명확한 묘지 외광의 투영만이 진실이 아닌 것처럼, 내 그림 앞에서 어느 감상자는 이렇게 말한다. 실수로 흘린 한 오라기의 실밥조차도 보이지 않는, 마치 원시의 때묻지 않은 순수 결정체. 어쩌면 에덴의 향기로운 사과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이 결코 거칠거나 투박하기 보다는 정제된 세련미와 나름의 멋이 담겨 있어 맑아진다고 한다. 그렇다. 극도의 정적 속에 투명하게 빛을 머금는 사물, 존재의 오브제들은 자유로운 유기체가 되어 그 감상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물이 거기 그 자리에 있다.' 나 스스로도 개입하길 원치 않는 단지 거기 그 자리에 그들을 높여주는 일을 할 뿐이다. 그래서 굳이 내가 그들을 통해 뭔가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리얼리티의 벼랑 끝에서 그것들은 이미 현실의 being이 아닌 것이다. 제 2의 being이 작품 속에서 잉태하는 것이다. 작가 자신은 이제 붓을 내려놓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이렇게 하나의 오브제에 빠져들면 우리는 미지의 공간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의 낯선 배합.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브제들의 독특한 자아. 나도 그 대상들 앞에서 새로운 존재로 타오르는 촛불로 그렇게 꿈틀대며 숨쉬고 싶다. 정물 하나하나에 호흡이 있어 각자의 소리를 말하려는 그 emergence의 상태. '긴박하다,' '외롭다,' 그리고 '강렬하다.' 정적과도 같은 공간은 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우주이다. 그 공간은 진공의 상태이며 무한하다. 그러나 그 안에 표현되는 오브제들에게는 시간이 개입한다. 그래서 마치 사물이 태양빛에 따스히 온기를 덧입고 바래가듯 시간성에 구속받는 것은 오브제들 뿐이다. 영원한 공간 속에 그 유한의 오브제들. 그것들은 살아 숨쉬는 동안 만은 최고의 빛을 발하고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어느 평론가가 말하듯 '시적 존재의 현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작품이 자신들의 자리매김을 하고 저마다의 색깔로 빛을 발할 때 쯤이면 나는 가끔 호흡을 멈춘다. 그들이 호흡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힘 안에 응집된 그들만의 질서. 거기 그 자리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조화의 아름다움. 사물들 각자가 자존심을 회복하고, 어느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그 미지의 공간에 그것들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아의 탄생, 허물을 벗는 새로운 잉태. 벌거벗은 나신의 미지의 순수한 유혹. 그 낯선 시선 속에서 우리를 자각케 하고 느끼게 하고 체험케 한다. 혹 지나치기 쉬운 사실 안에서 가장 바른 사실의 긍정, 결코 억압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자기망각의 간. 결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참 긍정의 꿈의 영역. 이것이 내가 표현하는 '사실'의 세계이다.

ㅡ 구자승 전시회, <작가는 말한다>




구자승

 꽃이 있는 정물

 Oil on canvas

 91.0×72.7cm

 2017


구자승 화백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10월에 있었던 MANIF 때였다. 그 전에 올해나 재작년의 KIAF 때 분명 보았겠지만, 그때는 작품들이 너무 많았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난 달 예당에서 있었던 MANIF의 많은 부스들 중 특별히 눈에 띄던 부스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자승 화백의 부스였었다. 리얼리즘의 거장이자 구상미술의 신사라는 수식어답게 깔끔하고 정갈하며 명료한 그림이 멀리서도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정물화야 많지, 구상회화야 그렇고 그렇지 싶겠지만, 구 화백의 작품 앞에 서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주요 연혁에도 나와 있지만, 전직 대통령들과 총재들, 그리고 대기업 회장들의 초상화를 그가 도맡아 그렸다는 사실은 구 화백의 극사실주의적 화풍이 단순히 대상을 있는 그대로 베껴만 내는 것 이상의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프랑스 미술평론가인 호제 뷰이어는 구 화백의 작품을 두고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은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찬사를 보낸 적이 있는데, 구 화백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뭔지 모를 궁금함이 바로 그것이다. 오브제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극사실주의에서 어째서 추상화의 느낌이 나는가 하는 것.




구자승 

양머리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00×100cm

2017


구 화백의 작품은 '서양화에 동양화의 여백을 끌어들인 것'으로 그 특별함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바로 그 여백의 미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서양화의 정물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며, 의아함을 자아낸다. 꽃병이나 사물이 주인공이 되는 정물화의 경우, 거의 그 사물 밖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 사물에 대한 표현이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서양화의 정물화에서 배경은 오브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구 화백의 작품에서 사물 뒤의 빈 벽은 단순한 배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구자승

여름 어느날

Oil on canvas

162.0×130.3cm

2017







구자승

와인박스 위의 정물

 Oil on canvas

72×72cm

2017








구자승

항아리와 자두

 Oil on canvas

53.0×45.5cm

 2016








구자승

 회고

 Oil on canvas

100×100cm

2017







구자승

 양머리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00×100cm

2017






구자승

 꽃

 Oil on canvas

162×130cm

2017













구자승

 꽃이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62×130.3cm

2017






구자승

 소머리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62×97cm

2013






구자승

 주전자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30.3×97cm

2017







구자승

 정물

 Oil on canvas

162×130.3cm

2015





구자승

 Ifor_의_갈망

 Oil on canvas

200×140cm

2008






구자승

 양머리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62×112cm

2017






구자승

 꽃

 Oil on canvas

162×130.3cm

2015






구자승

 The Still Life with Fruit

 Oil on canvas

130×130cm







구자승

 The Still Life on the Wine Box

 Oil on canvas

91×72cm

2014





구자승

 꽃과 과일

 Oil on canvas

80×80cm

2016









구자승

 잃어버린 꽃

 Oil on canvas

110x68cm

2017





구자승

 누드

 Oil on canvas

162×112cm

1989













구자승

 뷘의 강변

 Oil on canvas

225.5 x

1994





구자승

 비온 후

 Oil on canvas

144x110cm

1993






구자승

 꽃과 과일

 Oil on canvas

53x41cm

2010







구자승

 함 위의 정물

 Oil on canvas

101x101cm

2016





구자승

 레이스 있는 정물

 Oil on canvas

65.2x53cm

2015







구자승

 The Still Life with Window

 Oil on canvas

91x91cm


















구자승

 한적

 Oil on canvas

72x61cm

2015








구자승

 소머리 있는 정물(왼)

 Oil on canvas

53x45.5cm

2016



구자승

 꽃과 자두

 Oil on canvas

53x45.5cm

2016






구자승

 남미의 추억(왼)

 판화(Limited Ed.)

100x75.5cm

2017



구자승

 푸른 배경의 정물

 판화 (Limitd Ed.)

72x72cm

2017








구자승

 백두산을 오르며

 Oil on canvas

162×97m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