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 Klimt
[Austrian Art Nouveau Painter, 1862-1918]
Judith I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
1901
Oil on canvas
84 cm × 42 cm (33 in × 17 in)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그림이 크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선 애정이 각별해서 가급적 큰 이미지로 올리고 싶었다. 황금빛 유혹, 클림트.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이라는, 1대, 3대 클짱이신 우주고양이님이 직접 지으신 이 매력적인 클럽명은 몇 년 전, 클림트 전기의 부제로 작가와의 상의 하에 쓰였을 정도로 클림트의 작품에 대한 적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한 클림트의 대표작을 꼽으라 한다면, 클림트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스>를 택하리라. 내게는 이 <유디트 I>이 최고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클림트 전시회에 오기 훨씬 전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작품으로, 이 작품 하나를 좀 더 감상하기 위해 예당을 한 번 더 찾아야 했다. 클림트 전시회엔 그의 많은 작품들이 왔으나, 나는 이 한 작품 앞에서 꼬박 한 시간을 넘게 보내었다. 두 번째 갔을 땐 두 시간이 넘었고. 사람들이 밀려오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갔다가, 또 물러났다가 다가갔다가 하며. 예당이나 시립미술관 등 큰 전시회에 가면 보통 서너 시간 정도 감상을 하곤 하는데, 이 날은 이 작품에 온통 홀렸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려서. 뭐, 스탕달 신드롬까진 아니었지만, 발터 벤야민이 말한 예술작품 원작 특유의 '아우라Aura'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전시회의 일반공개 직전에 클럽회원들만 따로 초대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갔었을 걸 그랬어. 국내에선 예외적으로 사진촬영이 허용되었다던데. 하필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어서는. 그 초대회는 2대 클짱님이 추진하신 처음이자 마지막 오프 이벤트였어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R.I.P.
사족은 이만 끝내고 작품감상에 들어가 보자.
작품 내용상의 배경은 이러하다.
유디트는 누구인가. 성경 속 인물이다. 나는 하도 친숙한 내용이어서 성경에서 읽었나 했더니, 외경에 있는 내용이라면서? 제목은 보통 <유디트 I>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품 상단 황금빛 테두리에 적혀 있듯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고도 한다. 홀로페르네스는 앗시리아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을 점령하기 위해 파견한 장군이다. 그는 유다의 베툴리아를 포위하고는 물길을 차단한 채 유대인들이 항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유대의 소문난 미모의 과부였던 유디트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시녀 하나를 데리고 홀로페르네스에게 도망간 것처럼 해서 다가가서는 술을 먹인 후 잠든 그의 목을 베는 것이다. 다음 날, 적장의 사망으로 인해 앗시리아군은 의욕을 잃고 패하여 물러나고, 유디트는 민족의 존망 앞에 몸을 던져 이스라엘을 구한 성녀로 추앙된다.
재밌는 내용이지? 홀로 몸을 던져 적장을 죽이고 민족을 구하는 미녀, 즉 팜므 파탈의 한 원형으로서 그녀는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되어왔다. 하여, 빛과 어둠의 화가 카라바조나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 작품은 널리 사랑받고 있고. 개인적으론 카라바조의 여리여리한 말도 안 되는 유디트보단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우람한? 유디트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생각한다. 젠틸레스키는 당시 드문 여류화가로서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유디트 작품은 현실성과 함께 잔혹함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아... 수다. -_ㅜ 언젠가 유디트 작품을 따로 포스팅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만. 가능할까나.
무튼 성녀 중의 성녀인 정숙한 이 유디트가, 우리의 구스타프 클림트 씨에게 오면 성녀를 벗고 요부로 탈바꿈한다. 다분히 클림트 씨다운 해석이 아닌가. '여성에게서 모성의 족쇄를 박탈하고 여성성을 해방하라!' 라는 기치 하에,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으로서 수많은 여성들과의 사이에 십수 명의 -- 자신은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던 -- 자식을 얻었던 클림트. 참, 인물이긴 해. 아, 인물이 잘 생기신 건 아닙니다. 에또...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음, 덜 생기시긴 했어요.
어때? 이렇게 생기셨다니깐. 하긴 여성은 남성과 달라서 외모에 너무 집중하진 않는 편이니까. 그의 황금빛 빛나는 재능이라면 마음을 빼앗길 만도 했을 테죠. 자자, 이제 다시 유디트 부인에게로...
클림트의 이 작품에서 보는 유디트는 확실히 성녀라기보단 뇌쇄적인 요부의 이미지가 절대적이다. 클림트 평생의 뮤즈였던 에밀리 플뢰게가 아니라 상류층 부인이었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이 모델인 것으로 추정되는(남편 바우어 씨가 선물한 목걸이가 그 단서라고) 이 작품에서, 유디트는 가슴을 드러낸 반나체의 모습으로 잘려진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에 살짝 손을 얹고 있다. 여기서 그녀의 얼굴에 주목해 보자. 작품 앞에 섰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눈의 표정이었는데, 오른쪽과 왼쪽의 반을 세로로 가린 채 눈을 보라. 화면의 오른편에 보이는 눈만을 보면 당당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마나님 같지만(성경 내용상 유디트는 부유한 과부였다 한다), 화면 왼편에 보이는 눈만 보면, 무언가 마약을 한 듯한 느낌이 들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마치 피안의 세계로 정신을 놓아버리는 순간을 포착하기라도 한듯, 몹시 이질적이고 위험을 느끼게 하는 눈빛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여성의 몸으로 적장의 목을 홀로 벤 직후의 정신이 제정신이었겠는가. 당연히 정신이 외출하셨겠지, 싶다가도 양볼의 발그레한 홍조를 보란 말이다. 마치 황홀경에 도취한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그 표정을. 이것이 작품 앞에 선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부분이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어서. 다가가는 위치에 따라 또 각도에 따라 어찌 보면 몹시 슬퍼 보이는 것 같고, 또 어찌 보면 은밀한 쾌감을 남몰래 만끽하는 표정 같기도 해서는, 작품 앞에 서서 수없이 질문을 던져야 했다. '유디트. 그대는 누구인가요?'
남편이 죽은 후 평생을 정숙하게 살았다는 성경의 내용대로라면, 얌전한 부잣집 마나님이었던 그녀가 미모를 이용해 사람을, 것도 건장한 남성을 죽여야 하는(앗시리아 군대 장군의 굵은 목뼈를 여성이 칼로 자른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어디 카라바조 유디트의 여리여리 가녀린 몸매로 가능한 일일지를), 보통 노동이 아닌 '살인'을 한 직후 제정신일 리가 없었겠다. 자신의 운명이 처참하고 슬펐을 테지. 요리를 해보지 않은 여성이 처음으로 생선의 배를 가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슬픔이 밀려드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목을 잘랐으니. 어쩌면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에게로 간 것이 온전한 그녀의 뜻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에로화가 클림트 씨의 '요부색안경'을 끼고 보면,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남편 죽은지 3년. 아직 젊고 아름다운 유디트는, 사내 중의 사내인 홀로페르네스와의 황홀한 잠자리를 오랜만에 즐겼다ㅡ라는, 외설스런 해석이 가능해져 버리는 것이지. 외람된가? 자아, 조금만 더 위험한 상상으로 나아가 본다면 이건 어떤가? 요즘 아주 유행하는 그 '싸이코패스'. 으하하, 너무 나갔습니까? 뭐, 작품 해석이야 다양할수록 즐거운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서는. 가능한 모든 바운더리를 걷어치워 봅니다. 그러니까 적장과의 관계니 뭐니 차치하고라도, 클림트의 유디트는 살인, 자체의 쾌감에 눈을 뜬 것이지! 그것을 나른하게 감은 눈으로 표현한 것이고. 으음. 이 포스팅에는 19금이라는 경고를 붙여야 하려나. =_=;;
무튼, 이처럼 작품 속 유디트가 끝없이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몇 시간이고 그 작품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
Gustav Klimt
[Austrian Art Nouveau Painter, 1862-1918]
Judith II (Salomé)
1909
Óleo dobre leinzo
178 x 46 cm.
Ca'Pesaro, Galería de Arte Moderno, Venecia. Fundación Museos Cívicos de Venecia
자아, 세컨 유디트로 가보자. 먼저 이 작품의 부제에 다시 한 번 시선을 꽂아 봅니다. '살로메'.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 않은가? 이 살로메 역시 성경 속 인물로 신약에 등장한다. 때는 바야흐로 그리스도의 시기. 예수의 그리스도(구세주) 되심을 미리 예언한 금욕주의 예언자 세례요한이란 인물이 있었다. 당시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는데, 깐깐한 세례요한이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다. 강직한 성정대로 "그대들의 결혼은 옳지 않소!" 헤롯에게 입 바른 소리를 했는데, 욱한 왕이 요한을 잡아다 옥에 가두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요한을 선지자라 칭송하니까(당시 세례요한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차마 죽이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문제는 악녀 헤로디아 여사이십니다. 그런 세례요한을 원수처럼 여겼던 것이다. 근데 나는 왜 이 대목만 읽으면 항상 구약의 요셉을 유혹하려다 거절당하자 죄를 뒤집어 씌워 버린 그 마나님이랑 이미지가 겹쳐지지? -_- 무튼. 헤롯의 생일이 되어 파티를 열었는데, 아마도 사람들은 거나하게 취했을 테지,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헤로디아의 딸인, 드디어 등장하는 우리의 살로메 양이 삼촌이자 계부인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저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라 나와 있지만, 이 대목이 상상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살로메는 거의 벗다시피 한 몸으로 헤롯왕 앞에서 외설적이고 요염한 춤을 추니'로 각색이 되어 버리곤 한다. 그 결과 수많은 화가들이 탐내었던 살로메는 반나체 의상으로 그려졌고. 나름 당대의 정보를 참조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뭐, 거의 옷이란 걸 걸쳤다 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그린 화가들이 많아서는. 이렇게 헤롯을 만족시킨 살로메에게 헤롯이 말한다. "살로메야, 살로메야,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 기분이 좋으니 무엇이라도 다아 해주마." 살로메는 사랑하는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쪼로로 가서 물었고, '기회다!' 싶은 헤로디아 여사는 눈엣가시였던 '세례요한의 목'을 말한다. 하여, 어여쁜 살로메가 장미꽃잎 같은 입술을 열어 나긋한 자태로 말하기를,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라고. 헤롯왕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왕으로서 한 말에 대한 위신을 지켜야지, 하는 변명인지 핑계일지 합당한 이유일지 궁금한 명목으로 마침내 세례요한의 목을 치라 명한다.
이 배경을 떠올리며 스크롤바를 살짝 올려 작품을 들여다 보자. 여인의 얼굴... 살로메... 그렇습니까?? 이 여인이 살로메임은 그나마 (이번에는) 양쪽이 다 훤히 드러난 가슴과 왼손으로 움켜쥔 남자의 머리로 간신히 상상할 수 있을 뿐, 저 희고 봉긋한 젖가슴을 드러내어도 그다지 에로틱하지 않은 것은(아, 이것은 내가 여성이라서 그, 그런 것인지도. +_+;) 그녀 얼굴의 점 때문인 걸까, 움푹 파인 볼 때문인 걸까, 마르고 뾰족한 콧날 때문인 걸까, 것도 아니면 프리다 칼로를 연상시키는 숯검댕이 눈썹 때문인 걸까? 몹시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걸친 것으로 보아 고귀한 신분이신 것은 같은데 꽃다운 살로메라고 연상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고. 아? 잠깐? 혹시... 성경 속의 살로메 자체가 알고 보니 중년여성이었을 수도?!?? 그런데 솔직한 심정으로 이 미모로는 유디트 부인이라고 하기에도 마뜩지 않은 걸요. -_ㅜ
유디트와 살로메. 살로메와 유디트.
살로메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다. 유디트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또한 팜므파탈의 한 명이고. 두 여성은 다 본인의 여성성과 미모를 무기로 당시 힘 있던, 또는 명망 높던 남성의 목을 베었다. 차이라 한다면 유디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베었고, 살로메는 한 남성을 유혹하여 다른 남성을 베었다는 것. 같은 성경적 인물이지만 살로메에겐 너무나 당연하게 적용되었던 팜므파탈, 요부의 이미지를, 성녀로 인식되는 유디트에게서 끌어내었다, 혹은 부여했다라는 클림트의 발칙한 상상력이 유디트에 대한 새로운 감상의 지평을 넓힌 것이다.
자아, 번거롭겠지만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세뇌시키며 다시 한 번 두 작품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유디트 I>은 1901, <유디트 II>는 1909. 두 작품 사이엔 8년이란 세월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쩌면 화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품 속 유디트의 세월도 같이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해서, 같은 여성의 얼굴이 작품 속에서 나이들었는지도. 오오... 이제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까지 손을 뻗는 겐가. 그, 그만해야지. 그나저나 오스카 와일드, 해서 하는 말인데, 이 공간의 초기에 짧게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아일랜드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다름 아닌「살로메」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다. 그 희곡을 참 즐겁게 읽었는데, 거기선 살로메가 세레요한에게 사랑을 느낀 나머지 necrophilia 스러운 모습까지 보여준다(19금을 해야...;;). 와일드답게 으스스하고 아름답고 짜릿한 글이다. 아주 짧고 강렬하니 읽어보시기를 추천하... 는데 나는 이미 스포일링을 해버렸고. 미, 미안.;;
Gustav Klimt
[Austrian Art Nouveau Painter, 1862-1918]
The Kiss (Der Kuß)
1907-1908
oil on canvas
180 × 180 cm (70.9 × 70.9 in)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Austria
이 작품이 바로 클림트 씨의 그 유명한 <키스>다. 현대의 상품에서도 수없이 재해석, 재생산되곤 하는 이 작품에도 여성의 자세라든지 발의 위치라든지 꽃침대라든지 등등 이런저런 해석이 많다만 그 수다는 다음 기회(가 있다면)에. 그저 눈이 멀 듯 화려한 황금색 만으로도 시선과 마음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