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par David Friedrich
[German Romantic Painter, 1774-1840]
The Monk by the Sea
1808–10
Oil on canvas
110 cm × 171.5 cm (43 in × 67.5 in)
Alte Nationalgalerie, Berlin, Germany
내가 왜... 이 작품을 포스팅하려고 했던가... -_ㅜ 안 그래도 가뜩이나 수다스러운 주제에 대체 어떻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 줄여 봅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어서.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로서 풍경화를 즐겨 그렸는데, 자연에의 명상이라든가, 자연세계에 대한 감정적 반응에 관심을 두었으며,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존 머레이 Christopher John Murray에 따르면, 확장된 풍경과 축소된 인물을 배치시킴으로써 감상자의 시선을 철학적인 차원으로 이끈다, 고 한다. 그 외 프리드리히의 전기에 대해서는 구글링을 해봅시다. 정말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와 있으니. 나의 의도는 그저, 소소하게 그의 작품 하나를 나누어 보고자함일 뿐이니.
이 <바닷가의 수도승>은 모니터를 다 채울 만큼 크고 큰 화면으로 감상하면 참 좋다. 1810년,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파격적인 형식으로 적잖은 당혹감을 불러 일으킨 이 작품은 아래 <Abbey among Oak Trees 오크숲 수도원>과 한 쌍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이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당시까지만 해도 작품에 있어 중요시 되었었던 원근법도, 주목 받는 주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그때까지의 작품들에는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를 (화가로서는)압축하고 (감상자로서는)풀어낼 수 있도록 빛이라든지 크기, 상징물, 구도 등을 사용하여 중요한 주제와 그 주제에 부속된 나머지 인물, 혹은 물건들이 치밀한 계산 하에 배치되곤 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제목에 간신히 '수도승'이 들어 있을 뿐, 딱히 주목할 만한 인물도, 사물도, 하다못해 주인공을 하이라이트하는 빛조차 없다. 터무니 없다 여겨질 정도로 광대한 하늘 아래, 간신히 존재감을 드러낸 검은 바다, 그리고 백사장. 구조물은 고사하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나 바다에 떠다니는 배조차 없어 원근감 제로에 가까운, 그야말로 풍경이 2차원적 평면인 양 무심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마네의 작품을 보았을 때 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오죽했으면 프리드리히의 초상화를 그렸던 Gerhard von Kügelgen의 부인 Marie von Kügelgen는 이 작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A vast endless expanse of sky ... still, no wind, no moon, no storm - indeed a storm would have been some consolation for then one would at least see life and movement somewhere. On the unending sea there is no boat, no ship, not even a sea monster, and in the sand not even a blade of grass, only a few gulls float in the air and make the loneliness even more desolate and horrible."
"끝없는 하늘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데... 바람은 없고, 달도, 폭풍우도 없군요. 정말 폭풍우라도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적어도 어디선가 생명이나 움직임 같은 것이라도 볼 수 있어 위안이 되었을 텐데 말이에요. 끝없는 바다에는 보트도, 배도, 어쩜 바다괴물조차 없군요. 모래 위에는 풀 한 포기 없고요. 공중을 날아다니는 갈매기 몇 마리는 오히려 이 고독을 더욱 적막하고 끔찍하게 만들 뿐이에요."
또한 독일작가 Heinrich von Kleist의 평을 보자:
"How wonderful it is to sit completely alone by the sea under an overcast sky, gazing out over the endless expanse of water. It is essential that one has come there just for this reason, and that one has to return. That one would like to go over the sea but cannot; that one misses any sign of life, and yet one senses the voice of life in the rush of the water, in the blowing of the wind, in the drifting of the clouds, in the lonely cry of the birds ... No situation in the world could be more sad and eerie than this—as the only spark of life in the wide realm of death, a lonely center in a lonely circle..."
"구름 가득 뒤덮인 하늘 아래 바닷가에 오롯이 홀로 앉아, 끝없이 펼쳐진 물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단지 그것을 하기 위해 바다를 찾고 또 돌아가는 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바다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생명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으나,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새들의 고독에 찬 울음소리에서 생명의 음성을 미세하나마 느끼게 된다... 세상 그 어떤 상황도 이보다 더 슬프고 기괴할 순 없으리라--죽음의 광대한 영역 속 한 점 빛나는 생명이자, 외로운 원 안에 있는 외로운 중심점으로서..."
그리고는 클라이스트의 유명한 표현 하나가 이어진다:
"since in its monotony and boundlessness it has no foreground except the frame, when viewing it, it is as if one's eyelids had been cut away."
"무한한 단조로움 속에 액자를 제외하고는 딱히 전경이라 할 만 한 것이 없기 때문에(시선을 집중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작품을 보았을 때 마치 눈꺼풀이 잘려 나간 느낌이다."
일단은 두 사람 다 갈매기가 날아다닌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갈매기가 아니라 검은 파도 위의 하얀 포말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바다 위에 배 두 척을 그렸다가 나중에 물감으로 덮어 지웠던 것을 생각하면, 갈매기 역시 남겨두지 않았을 것 같다.
여기서 '눈꺼풀이 잘려나간 것 같다'는 평이 재미난데, 글쎄, 내가 느끼기엔 이러하다. 작품 속 유일한 수직인 (작고 작은) 수도승을 제외하면 하늘 - 검은 바다 - 모래 라는 단순한 배경이 모조리 수평으로 가로질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내 눈꺼풀도 그 수평에 맞추어 잘려져 나가, 마치 검은 바다가 내 눈인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는 것인데, 이런 멋진 표현을 해준 클라이스트 씨에게 박수를.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우정아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작품 발표 당시 1810년은 독일어권 전체가 나폴레옹의 지휘 아래 점령지역을 넓혀가는 프랑스군에 유린되던 시기였으므로, 화가 프리드리히는 수도승의 몸을 빌어 신의 전당과 종교에 대한 믿음이 힘을 잃고,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는 땅에서 영광적이었던 과거를 증명하는 폐허에 선 당대인들의 우울을 대변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서양미술 산책)
작품 속의 수도승은 화가 프리드리히 자화상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발에 긴수염을 한 모습이 초상화에서 보는 화가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프리드리히 본인도 훗날, 사제직과 흡사한 예술가의 직분을 떠올리며 사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하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그렸을 수 있겠다. 물론 감상자들은 각기 수도승의 모습에 감상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하늘과 바다를 보게 되겠지만. 사실 수도승의 모습은 광활한 배경 속에 너무나 작기 때문에 제목이 아니었다면 딱히 수도승이라 확신할 순 없겠다. 음. 작품을 실제 육안으로 본다면 구별이 명확하려나. 무튼, 이렇게 인터넷이나 책으로 보기엔 구별이 쉽지 않다. 무슨 말이냐 하면, 멀리서 보자면 긴 드레스를 입은 여성으로 볼 수도 있겠단 것이지. 그럴까봐 제목에 'The Monk'를 굳이 표시해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작품을 보다가 '왜 하필 monk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말했듯, 홀로 있는 여인을 그렸을 수도 있고, 또 아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에서 처럼 근사한 양복을 입은 남성을 그렸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저 황량한 풍경에 여인이나 신사나 아이가 아니라 '단 한 명의 수도승'을, 그것도 '뒷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감상에 있어 얼마나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다 주는지 모른다. '수도승'이 들어간 순간, 작품의 거의 5/6를 차지한 저 하늘과, 깊이를 들여다볼 수 없는 칠흑같은 바다와, 무심한 모래는 순식간에 삶과 죽음, 우주와 세계와 신과 자연의 무한성, 그 앞의 보잘 것 없이 작고 초라한 인간의 유한성을 절감하게 만드는 철학과 사색의 세계로 감상자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이 작품 앞에서 핑크빛 사랑이나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먹먹함.
그 한 단어였다. 이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내 안의 모든 농밀한 욕심들이 덧없게 느껴지는, 그런.
머리가, 심장이 복잡해질 때면 꼭 찾아서 넋놓고 들여다보곤 하는 작품.
Caspar David Friedrich
[German Romantic Painter, 1774-1840]
Abbey among Oak Trees
1809 or
Oil on canvas
171 cm (67.3 in) x 110.4 cm (43.5 in).
Alte Nationalgalerie, Berlin, Germany
고딕... 낭만주의...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도록 합시다.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머네. -_ㅜ
Caspar David Friedrich
[German Romantic Painter, 1774-1840]
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Oil on canvas
98 × 74 cm (38.6 × 29.1 in)
Kunsthalle Hamburg, Hamburg, Germany
이 작품은 감상을 나누려고 올린 것은 아니고,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중 하나여서 실었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중국 황산에 올랐을 때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주 멋드러진 그림이다. 물론 이 사람 역시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감상자의 시선을 감정이입시켜 작품 속 인물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하기 위한 장치이고.
James McNeill Whistler
[American Tonalist Painter and Printmaker, 1834-1903]
Harmony in blue and silver: Trouville
1865
Oil on canvas
50 × 76 cm (19.7 × 29.9 in)
Isabella Steward Gardner Museum
여기서부터의 작품들은 프리드리히의 <바닷가 수도승>의 영향을 받았다 하는 작품들인데 구도가 좀 비슷하긴 하다. 음... 휘슬러에 대해선 아는 바가 별로 없는데, 이 작품에 연관되어 찾아보니 꽤나 흥미로운 화가인 것 같다. 토널리스트, 색조주의 화가라. 휘슬러는 스토리보다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고, 특히 빛을 색으로 인식하여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는데, 스토리에 매이지 않았다면 확실히 프리드리히의 작품과도 연관성이 있겠다.
Gustave Courbet
[French Realist Painter, 1819-1877]
Le bord de mer à Palavas, The Beach at Palavas
1854
Oil on canvas
27 x 46 cm
Musée Fabre, France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쿠르베 씨는 모자를 들고서 바다를 향해 힘차게 인사를 하시는군요. <바닷가의 수도승>과 아주 흡사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은 쿠르베 씨 안에서 뜨겁게 들끓는 혁명적 정열 때문일까나. 이런 것을 보면 예술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흡사한 구도와 인물을 가지고서 각기 이렇게 다른 느낌을 내니 말이다. 이 작품에서도 광활한 자연과 그 앞의 작은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압도감이 있긴 하지만, 프리드리히의 작품에 비해 상쾌하고 청량한 느낌이 든다. 랑그독에서 그린 작품이라는데. 아... 랑그독. 언젠가 와인 마시러 가 보아야. +_+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English Romantic Painter, 1775-1851]
The Evening Star
about 1830
Oil on canvas
91.1 cm x 122.6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터너의 이 작품도 물론 영향을 받은... 어쩌고... 작품이다. 근데 가만 보다 보면 '영향을 받았다'지만 어쩌면 '작가의 우물' 일지도. 우연히 비슷한 구도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 작품은 사진이 하도 작아서(큰 파일을 구할 수 없었다) 아래에 확대사진을 올렸는데, 'The Evening Star', 샛별이라는 제목이 좀 의아했어서 확대를 해보니 아래와 같이 분명히 -_- 샛별이 있더라. 하늘에 있는 샛별은 정말 찾기 힘들고 바다에 슬쩍 비친 별그림자를 찾아 올라가면 저렇게 하늘에도 샛별이 보인다.
초저녁을 알리는 샛별이 뜨고, 새우잡이 그물을 정리하여 집으로 향하는 소년의 앞에는 강아지가 깡총거린다. 외롭기도 하고 안온하기도 한 느낌의 작품이다.
Franz Marc
[German Expressionist Painter, 1880-1916]
Horse in a Landscape
1910
Oil on canvas
Museum Folkwang, Germany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상징주의나 표현주의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다. 색채는 다채롭지만 여러층의 수평선 배경이라든지 뒷모습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라는 평. 그런가? 말에게 감정이입을 하려니 갑자기 좀 당황스럽긴 하고. 히히힝.
Mark Rothko
[Latvian-born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Painter, 1903-1970]
Light, Earth and Blue
1954
Oil on canvas
75.4 in. x 66.9 in.
드디어 로스코. 마크 로스코는 미국의 유명한 추상화가입니다. 러시아 출신이나 미국으로 망명한 미국화가. 예술가에게 국적이란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 엘리엇 씨는 미국인이냐 영국인이냐. 미국인 시인으로 분류하긴 하지만 영국으로 망명을 했으므로 딱히 구분이 애매하고. 뭐. 확실히 국적이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백남준 씨가 일본인으로 인식된다면 무지 화가 날 듯.
로스코의 이 작품이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승>과 연관 있다, 는 말을 대했을 때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기이한 것이... '느낌 알겠지' 않은가??? 이는 미술사가인 Robert Rosenblum이 한 말인데, 그의 설명은 더욱 근사하다. 로젠블룸은 프리드리히와 터너의 작품이 로스코의 이 작품과 사뭇 '친근한' 느낌을 준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리드리히의 작은 수도승과 터너의 고기잡이 소년이, 광대하고 무한한 신과 그 앞에 선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대조를 만들어낸다면, 추상화가인 로스코에게는 그러한 초월적 풍경과 실제 감상자 사이의 감정이입을 위한 매개자로서의 장치(수도승과 소년)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 로스코의 이 거대하고 고요한 작품 앞에 서면, 감정이입을 위해 사용할 수도승과 소년이 없이도, 감상자 자체가 이미 수도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작품이 드러내는 자연과 신의 현존 앞에 선 감상자는 가만히 침묵한 채 명상을 하게 된다. 마치 일몰이나 달빛 비치는 밤을 바라보는 것 처럼 말이다."
로스코는 관람객들이 작품과 교감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그림들이 개별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심지어 작품 스스로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고 하는데, 살아있다면 꼭 한 번 만나고 싶었을 것 같다.
The people who weep before my pictures are having the same religious experience I had when I painted them. And if you, as you say, are moved only by their color relationships, then you miss the point!" ㅡ Mark Rothko
"내 작품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내가 작품을 그리는 동안 느꼈던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내 작품의 색채와 그 조합에만 감명 받는다면, 그대는 (내 작품 감상에 있어서)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ㅡ Mark Rothko
이건 또 프리드리히로 시작해서 로스코로 끝이 나는.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