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분신』 Dvoinik
************ 다음의 줄거리는 개인의 기억저장을 위해 기록한 것으로, 지나친 스포일링이 있으니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
<줄거리>
하급관료 야꼬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자신은 보잘것 없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으로 상류사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모사꾼'이 아님을 자랑스러워한다'며 주치의인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루쩬쉬삐쯔에게 자신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는 9등 문관인 자신에 비해 젊은 나이에 8등 문관으로 승진을 함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있는 블라지미르 세묘노비치가, 자신이 흠모하는 끌라라 올수피예브나와 가깝다는 사실에 대해 질투심을 드러낸다.
끌라라의 아버지인 5등 문관 베렌제예프의 집에서 파티가 열려 찾아갔으나, 하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골랴드낀은 한참을 망설이다 마침내 파티에 무단침입을 하게 되고, 말실수 뿐 아니라 넘어지는 등 소위 '상류사회 파티'의 분위기를 망쳐버리게 된다. 결국 쫓겨난 그는 밤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만난다.
다음 날부터 직장에 파견된 자신의 '분신'은 동명이인에 동향, 거기다 똑같은 외모를 지닌 사람으로, 처음엔 동정심을 유발하여 골랴드낀의 집에 들어와 살지만 특유의 사교성과 아첨과 교활함으로 점차 골랴드낀의 것을 빼앗기 시작한다. 골랴드낀의 하인 뿐 아니라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 모두의 환심을 사면서 정작 골랴드낀 자신에게만 싸늘하고 비열하게 대하는 '작은 골랴드낀'으로 인해 '큰 골랴드낀(주인공)'은 점차 파멸에 이르고, 참지 못해 이 작은 골랴드낀의 실체와 자신의 부당함을 상급관료에게 고하려 편지를 썼지만 그 편지마저 작은 골랴드낀이 가로챔으로써, 결국 주인공은 하인과 동료 뿐 아니라 직장도 잃게 된다.
자신을 파멸시킨 철천지 원수 '작은 골랴드낀'을 미워하며 방황하던 골랴드낀은 또 다시 '그들의 파티'에 이르게 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며 측은히 여기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윽고 의사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의 마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랴드낀은 정신병원으로 호송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l에 따르면 <열린책들>은 프랑스로 돈 벌어 러시아를 판다던가.
도끼의 전집을 오래 전부터 발간한 출판사이기도 하고.
그래서 <열린책들>로 도끼 전집을 달리기로 했는데, <열린책들>에선 도스또예프스끼, 라고 써두었다.
뭐, 어차피 난 도끼 씨, 라고 부르므로 상관은 없지만서도.
전집을 달리는 작가의 작품은 발표순으로 읽는 습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작가의 사고의 변화를 따라가기 용이하기 때문인데
어차피 전집을 읽을 것이면 그 편이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또한 발표순으로 읽으면 좋은 점 중 하나로,
사람의 사고라는 것이 급진적으로 확확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초기작들을 꼼꼼하게 읽으면 어느 순간이 되면 읽는 데 속도가 붙는다는 점이다.
기존의 사고관에 새로운 것들이 조금씩 붙어 변형하는 편이니 앞뒤 발표 작품들과는 겹치는 부분이 많고
어떤 사고나 표현이 등장했을 때 이해가 쉽게 되는 것이지.
해서, 발표순으로 달리게 되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
인데
도끼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었어서... ㅡㅜ
주문한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 서점에 온다고 하니 내일부터 달리게 될 듯.
하여, 구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작품 『분신』을 먼저 달린 것이었다.
『분신』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혼란스러웠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도끼의 작품 중 가장 많은 혹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네.
전작인 『가난한 사람들』이 엄청난 호평을 받은 데 반해 이 『분신』은 아주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는 평.
그러나 번역가 석영중님은 이 『분신』에서 사용된 여러가지 장치들이 앞으로 도끼의 작품들에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인간의 이중성과 의식의 분열, 자의식의 초기형태라는 가치를 부여한다.
훗날 대작에 등장하는 몇몇 장치들의 싹이랄까.
하지만 정작 도끼 본인은 이 작품을 자신의 걸작이 될 거라 하였고, 또한 작품 속 '골랴드낀은 자기가 발견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전형'이라고 말했다 한다.
글쎄, 사람들의 평을 보아도 이 작품이 난해하다, 힘들었다, 는 것이 많기는 한데
내게도 혼란스럽긴 했다. 밸런스끼의 말마따나 '기교와 절제의 조화'가 아쉽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동감하는 편이고.
그런데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여서인지 그것이 그리 혹평,을 할 만큼 형편없다 싶은 건 아니었어서.
오히려 작품 속 깊이 심어둔 자아분열의 복선과 점차 분열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방식은 흥미롭다고 느꼈을 정도인데
카프카스럽기도 했고, 주제 사라마구도 스쳤으며, 아무래도 자아분열이다 보니 정유정 님의 『내 심장을 쏴라』도
언뜻언뜻 떠올랐다. 작품의 구조라든가 그런 점에서가 아니라, 단순히 자아가 분열해가는 과정, 을 표현한 부분에서다.
아, 시간이... 나머지는 나중에 ㅜ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