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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Book Review

도스또예프스끼,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1846-1847 <도끼 전집 ③>

by Vanodif 2014. 10. 22.

 

 

 

 

 

 

 

 

 

 

 

 

 

 

 

도스토예프스키,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1846-1847 <도끼 전집 ③>

 

 

 

 

「쁘로하르친 씨」, 1846년 10월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1847년 1월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1847년 6월

「여주인」, 1847년 10-12월

 

 

 

 




********** 다음의 줄거리와 후기는 개인의 기억저장을 위해 기록한 것으로, 지나친 스포일링이 있으니

 

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은 읽지 않으시길 강력하게 권합니다. ************




 

 

 

 

 

「쁘로하르친 씨」

 

세묜 이바노비치 쁘로하르친은 낮은 관등의 사람으로 우스찌니아 페도로브나의 집에 세들어 산다. 평생 품위를 딱히 지키지 않은 채 인색한 자린고비로 비참한 생활을 하며 사람을 혐오하던 그는 같은 집 하숙생들이 그를 놀리기 위해 '곧 낮은 관등직이 없어진다더라'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어느날 부턴가 주정뱅이 거지인 지모 베이낀과 어울리며 다니다가 술에 취해 집에 와서는 끙끙 앓다가 죽어 버렸다. 그가 죽은 후,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던 그의 짐을 하숙집 사람들이 같이 들추어 보는데, 그가 누워있던 침상에서 백만 루블에 가까운 큰 돈이 나왔고, 이에 그를 오랫동안 가장 아껴왔던 하숙집 여주인 페도로브나와 다른 하숙생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고인의 말로 끝맺는다.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이 글은 친구인 뾰뜨르 이바니치와 이반 뻬뜨로비치 사이에 오가는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반 뻬뜨로비치가 뾰뜨르 이바니치의 집에 예브게니 니꼴라이치를 데려가서 예브게니는 뾰뜨르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뾰뜨르는 예브게니가 너무 오래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기에 이젠 그만 다른 곳으로 이사가기를 원하는데, 자신이 직접 말하진 못하겠으니 이반이 그 말을 대신 해주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보내고, 이반은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한다. 그렇게 편지가 오가는 중에 서로의 어조는 점점 격앙되고, 나중에는 뾰뜨르와 이반 사이에 불화가 커지게 된다. 결국 둘은 거의 절교의 지경에까지 이르는데, 그 즈음에 서로에게 배달된 편지에 따르면, 두 사람의 아내가 각각 예브게니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뻬쩨르부르그에 대한 도끼 씨의 생각을 적은 것이다. 뭐, 속물도시, 라는 식인데, 딱히 줄거리로 뽑아낼 만한 것은 없... 진 않겠지만서도 그럴 만큼 재밌게 읽지 않았다. 지루했다니.

 

 

 

 

 

「여주인」

 

바실리 미하일로비치 오르디노프는 귀족출신의 무직자로, 물려 받은 돈은 조금 있으나 책만 많고(또 많이 읽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종의 은둔자에 가까운 사회부적응자다. 어느 날 그는 교회에 갔다가 일리야 무린이라는 노인과 함께 있는 젊은 여성 까쩨리나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는데, 결국 건물 속의 한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그들의 집 안의 한 방에 세들어 살게 된다. 일리야 무린은 젊은 시절 선박 부자였으나 선박사고로 파산하고 화재가 나서 우울증에 걸린 채 간질병을 앓는 노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까쩨리나에게 죄를 뉘우쳐야 한다며 늘 기도하기를 강요하고, 까쩨리나 역시 자신은 죄인이라며 기도에 전념한다. 그러한 까쩨리나를 애처로워하면서 더욱 사랑에 빠져드는 오르디노프는 무린과 함께 까쩨리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된다. 까쩨리나는 늘 어떤 비밀을 말하고 싶어하는데 무린이 그 비밀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막는다며 오르디노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기이한 이야기를 쏟아 놓는데... [[까쩨리나의 아버지는 선박 부자였는데, 선박일에 문제가 생겨 집을 비우고 어린 까쩨리나와 어머니 둘이 집에 있던 밤이면, '거지'라고 처음 묘사한(번역이 좀 이상한 걸까? 글을 이상하게 쓴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좀 납득이 안 가) 남자가 집에 와서 어머니와 더불어 '따따르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박과 집에 화재가 났고, 그 화재 속에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는 죽도록 홀로 남겨둔 채 까쩨리나는 어머니의 그 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고 한다. 결국 까쩨리나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그렇게 그 남자와 도망간 곳에서 남자는 까쩨리나를 두고 다른 곳으로 일하러 오랜 기간 떠나 있게 된다. 그러는 동안 까쩨리나는 어린 시절 집안의 정략결혼 대상으로 정해졌었던 약혼자 알료샤를 만나게 되는데, 알료샤는 자신과 함께 가서 살자, 고 그녀를 설득한다. 알료샤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 날에 그 남자가 돌아와서는 까쩨리나를 데리고 배를 타는데, 그 배엔 알료샤가 타고 있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도중 폭풍우가 불어서 '한 명은 배에서 내려 육지까지 헤엄쳐가야 하게' 되었는데, 알료샤는 까쩨리냐에게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택하라고 말한다. ㅡ 여기까지가 까쩨리나의 기이한 이야기]] 이 부분에서 무린이 와서 까쩨리나의 말을 막고 그녀를 데려간다. 그 직후 오르디노프는 옛친구 야로슬라프 일리히의 집에서 무린을 만나게 되는데, 일리히는 오르디노프에게 무린이 한 이야기를 전한다. 즉, 까쩨리나는 정신병이 있으며 그녀가 오르디노프를 방해하고 있으니, 오르디노프가 이사를 나갔으면 한다는 이야기. 결국 오르디노프는 무린과 까쩨리나의 집에서 나와서 살게 되고, 시간이 지난 후 일리히로부터 그들의 소식을 듣는다. 이 결말이 또한 이상한데... -_-; 무린네가 세들어 살던 집의 주인이 도둑의 두목이었음이 밝혀져서 일망타진되었고, 무린은 아내인 까쩨리나를 데리고 3주 전에 고향으로 떠났다는 이야기. 무슨 결말이지? -_-a

 

 

 

 

 

 


 

 

 

 

 

 

줄거리를 쓰고 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재미가 없었어. -_- 하루키 씨와 마찬가지로 도끼 씨의 책도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은데ㅡ아, 이건 지금까지 내가 읽은 바에 의하면 그렇단 뜻이다. 지금껏 몇 권 읽지 않았으니 이 생각은 나중에 바뀔 수도 있겠다ㅡ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쁘로하르친 씨」,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처럼 줄거리와 사건이 비교적 명확하게 잡히고 잘 읽히는 유형(하루키로 치자면 『상실의 시대』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해변의 카프카』나『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헉헉, 아직 제목을 다 못 외웠네 ㅡㅜ)』의 류)이고, 다른 하나는 『분신』과 「여주인」처럼 이상 심리묘사에 심취하여 흥미를 끌지만 선뜻 해석해 버리기엔 조금 고민이 되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유형(하루키 씨의 작품으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태엽 감는 새』, 『양을 쫓는 모험』, 『1Q84』등이 이에 속한다)이다. 다른 대작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추가될 것이니 그때 다시 다루기로 하고. 즉, 후자의 경우엔 작가 본인이 구상한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달까. 나의 경우 『분신』은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여주인」보단  『분신』을 더 재미나게 읽었지만,  『분신』이나 「여주인」이나 전체의 개연성이 딱 맞아 떨어지진 않는 느낌이랄까. 특히 「여주인」의 결말은 이게 뭘까, 싶도록 개연성이 떨어져, 마치 결말을 어떻게 내어야 할 지 몰라 서둘러 아무렇게나 휘리릭 만들어낸 느낌이랄까. 자신의 작품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지나치게 설명하는 작가들이나, 아예 작품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넣어 해석해 버리는 작가들은 친절해 보일지 모르지만 기실, 아주 고약한 양반들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들의 상상력과 분석력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아주 불친절하고 광포한 폭군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썰 많은 작가를 싫어해. 그런데 도끼 씨는 설명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이거 원. 사건의 지나치게 많은 걸 뛰어넘다 보니 '애초에 건너 뛴 공간에 들어찰 내용이 있긴 한 건가?'싶어진단 말이지. 뭐, 내 상상력 분석력 부족일 확률이 많을 테지. 하지만 이 작품은 뒤에 첨부된 해석조차 딱히 마뜩지 않아.

 

무슨 불평을 이렇게나. +_+

 

 

 

 

 

「쁘로하르친 씨」

 

재밌었다. 도중에 살짝 졸립긴 했지만 그래도 끝부분이ㅡ흔한 설정이긴 한데ㅡ재밌었어. 도끼 씨 책엔 하숙집이 많이 나오는가?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이건 뭐, 시시하게 읽다가 결말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

내내 시시한 내용이었는데 한 방이 즐거웠지. 그런데 결론만 재밌지, 그 사이의 과정이 너무 지루하다.

도끼 씨의 특징인 걸까, 그 시대 문학의 특징인 걸까, 아니면 러시아 문학의 특징인 걸까?

그러니까, 줄거리에 관계 없는 이야기에 대한 썰이 너무 많달까.

미야베 미유키 씨의 글을 보는 착각까지 드는 것 같다.

 

그나저나 마지막의 편지는 누가 보낸 걸까?

예브게니가 두 사람을 곯려주려 보낸 걸까? (이건 확률이 좀 적겠지. 예브게니는 이반과 함께 떠날 예정이니까.)

그렇다면 뾰뜨르와 이반 둘 다 상대의 부인들이 예브게니와 바람을 피우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상대 부인들의 편지를 보낸 걸까?

그렇다면 그 편지는 어떻게 구할 수 있었지?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에세이를ㅡ아주ㅡ싫어하는 나로서는 별로 코멘트하고픈 마음이 없고.

 

 

 

 

 

「여주인」

 

참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인데도 아이러니인 것이, 오히려 쓰고픈 말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작가 본인이 구상해서 창조한 특별한 세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인데ㅡ이해가 난해한 만큼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가능하며, 또한 그 독특한 세계를 일단 이해하게 되면 그때부턴, 뭐랄까, 작가를 이해하는 극소수의 독자만이 초대받는 비밀의 공간에 은밀하게 출입하게 되는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래서 이런 류를 좋아하기는 해. 다만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읽기엔 세련미가 좀 떨어지고(매끈매끈한 하루키 씨를 보라!), 대신 순박함이랄까, 인간 내면을 묵묵하고도 저돌적으로 깊이 파내려가는 뚝심이랄까, 그런 것이 일종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ㅡ어라, 이것이야 말로 괴랄한 표현이로군. =_+; 뭐, 말은 이렇게 해도 본격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ㅡ가 문제가 아니라, 그럴 만큼의 흥미는 느끼지 못했어서는.

 

일단 오르디노프는 『가난한 사람들』의 뽀끄로프스끼를 연상시킨다. 작가들의 글이란 것이 그러하듯 한 작가의 작품들엔 비슷하게 연상되는 인물들이 되풀이되게 마련인데, 오르디노프와 뽀끄로프스끼가 그러하다. 귀족출신의 책벌레 공상가 한량인데 현실은 시궁창. 지적 허영으로 차있는 인간혐오자? 도끼 씨는 작품 곳곳에서 이러한 지적허영에 찌들린 현실부적응 몽상가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비판이라기 보단 비난에 가깝다)하고 있지만, 기실 그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정작 이런 인물들에게 상당히 중요한/좋은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무린은 까쩨리나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말하고, 까쩨리나에 따르면 무린의 말이 거짓이고. 그런 무린은 간질을 앓고 있고ㅡ물론 간질과 정신병은 상관이 없지만. 무튼 죄다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무린과 까쩨리나의 말 중 어느 쪽이 진실일까? 진실, 이란 것은 꼭 밝혀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 인간에게 있어 진실, 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무린의 입장에서는 무린의 말이 진실인 것이고, 까쩨리나의 입장에선 까쩨리나가 진실일 뿐. '무린과 까쩨리나가 같은 집에 산다'라는 '사실'은 있겠으나, 어느 쪽의 말이 참인가, 에 대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믿는 바가 각자의 입장에서 진실인 것일 테지.

 

정신병이라 한다면 정신분열로 연상되는 것인데... 이것은『분신』에서도,『가난한 사람들』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인 바, 아직은 생각을 좀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

 

뭐, 시시한 후기네. 책이든 공연이든 무엇이든 두 번째 보는 것이 더 신나는 것일 텐데, 바쁘다, 바빠. 벌써 10월이 얼마 남지 않았어!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