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당 유료회원 응모 이벤트에 덜컥, 당첨이 되었다.
안 그래도 현대무용을 기웃거리다 말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당첨 덕분에 즐겁게 가서 보았다.
원래 초대장을 받으면 팜플렛을 사는 것이 예의인데
하필 현금을 하나도 들고 가지 않아서는.
카드로는 살 수 없다고 하셔서 결국 사지 못했다.
미안해요, 국립무용단 관계자분들.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얌체 같이 작품만 달랑 보고 왔어요.;;
국립극장은 예전에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에서 몇 번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달오름극장은 처음 갔다.
해오름을 생각하고 갔던 내게는 다소 작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늑하여 집중하기에 좋던.
좌석은 2층 맨 뒤 중앙좌석이었는데
원래 무용이나 오케스트라 관람은 2층을 선호하기도 하고
무대가 크지 않기 때문에 꽤나 좋았던.
공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523&contents_id=90968
나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523&contents_id=89123
나
http://news1.kr/articles/?2272575
를 참고하시기를.
솔직히 말해 볼까.
멘붕이었다.
학부 때 예당에서 했던 현대무용을 한 번 보겠답시고 혼자 갔다가
도무지 이해할 길 없는 모호함에 멘붕이 되어 두 번 다시 갈 엄두를 못내게 되었더랬다.
물론 당시엔 현대미술을 보아도 멘붕멘붕하긴 했지만
글쎄, 현대미술은 그 다음에 감상하는 법에 대해 작가분께 들은 바가 있어서 그러나
이제는 멋 모르는 배짱을 호기롭게 부리며 자신만만하게 덤벼들곤 한다.
그런데...
현대무용은, 아...*
나는 그동안 발레영상감상회를 통해 그래도 현대발레를 좀 접해 보았으니ㅡ
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었나 보다.
그 현대발레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매니저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이었단 사실을 어제 처절히 깨달았다.
징차... -_ㅜ
나의 문제는 그것이다.
'해석'을 하려고 애쓰는 습관.
'느낌'이 먼저일 텐데, '분석'을 먼저 하려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어
작품을 충실히 감상하기 힘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마녀가 나보다 현대무용 쪽은 훨씬 잘 감상하는 듯.
얼마 전 hj의 공연에서도 그러했고.
성격 탓일게다.
또 습관 탓도 있고.
나는 아직, 훈련이 너무 많이 부족하구나.
작품이 끝나자마자 옆 자리에서
"아... 나 졸았어!"
"나도."
"나도..."
라는 말이 들리자 피식, 웃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군, 하며.
마, 많이 존 것은 아니다.
잠깐, 아주 잠깐, 한 10초? 정도 졸았단 말이야.
약 때문에!
감기약을 먹었기 때문에.
-_-;
쓸 데 없는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쓸 데 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대부분의 쓸 데 있는 이야기는 저 위에 걸어둔 링크를 참고하면 더 좋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최진욱 안무
<남극일기>, <마담 뺑덕>, <헨젤과 그레텔> 영화감독 임필성 연출
<도가니>, <광해> 영화음악감독 겸 베이시스트 모그 음악
무용 공연에 어째서 감독님이 연출을 담당했느냐, 가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인데
'춤 무대를 영화처럼' 만들고 싶었던 최진욱 님이 임필성 감독님의 <남극일기>를 보고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셨다고 한다.
내용은 안데르센의 잔혹동화 <빨간구두>의 프리퀄Prequel (전사前事를 다룬)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는데
음...
'죽을 줄 알면서도 벼랑 끝에서 춤을 추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그리셨다고.
음...
이렇게 언어로 풀면 금방 이해되는 것인데
문제는 이 언어를 몸짓으로 표현한 것이 춤이라는 사실이다.
발레에는 무대장치와 의상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스토리가 알려져 있고
또한 발레마임이 있기 때문에 춤을 언어로 통역해 내는 작업이 용이하다.
그런데 이 현대무용은, 음...*
이 작품을 보고 나니 내일 있는 그램 머피의 <지젤>이 몹시 기대되고.
아마도 모던 발레일 것 같은데 어제의 이 작품과는 또 얼마나 다르게 충격을 안겨줄까.
이 작품은 깔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인 무대장치가 돋보였는데,
바로 윗사진에서 처럼 무대 바닥에 비친 선을
마치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무용수분들을 무용수가 아닌 '배우'라 불렀다는데
과연, '연기를 하듯' 보는 사람도 위태로움을 느끼게 할 만큼 연기력이 다들 뛰어나셨다.
무용은 굳이 말하자면 현대무용에 가깝겠으나
한국무용과 발레의 요소가 모두 잘 어우러진 동작이 매력적이었다.
어째서 무용전공자분들이 발레ㅡ한국무용ㅡ현대무용을 모두 다 배우는 것인지 알겠던.
현대무용의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동작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중간중간 발레의 고전적 우아함이 스치는가 하면
퇴장하는 장면 등 희한한 부분에서 한국무용의 들썩이는 춤사위가 나온다든가
한국인 무용수들이기 때문에 표현이 가능한 동작과 흥이었달까.
한국창작무용을 표방한 국립무용단, 이란 설명이 무슨 말인지 알겠던.
매력적인 동작들이었다.
음악을 말해 볼까.
최근 몇 번의 현대무용을 감상하면서 느낀 점인데,
현대무용, 특히 한국현대무용에선 참 음악을 잘 쓴다, 생각을 하곤 했다.
멋진 음악을 쓴달까.
이 작품에서 역시, 아무래도 인간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을 표현한 만큼
퍼커션이 두드러진 음악이 주를 이루었는데,
작품과 잘 어울렸단 생각을 한다.
중간중간 한국적 가락도 많이 들었는데
위에 걸어둔 기사 중에 어디였더라... 휘모리 장단도 있다고 한 것 같고...
무튼, 한국적인 요소를 중간중간 집어 넣었는데
그것이 단순히 정겨운 것을 넘어 근사하게 들리더란 거다.
음악, 좋았습니다.
의상은 깔끔 그 자체였는데, 군더더기 없었고.
아... 마지막 황금색 드레스는...!!
그 사진이 어딨더라.;;;
이렇게 보니 그다지 강렬하지 않은데
무대에서는 화려하고 환상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감독님의 연출작품이라는 거.
전체 스토리를 잡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영상처럼 뇌리에 박히는 장면들이 있었다.
무대 장치나 조명, 음악과 동작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특별하게 인상적으로 박히는 장면들.
좀 이상한 연상이긴 했지만
욕조가 나오는 첫장면에서 나는 어째서 쟈크 루이 다비드 Jacques Louis David 의
마라의 죽음 Mort de Marat 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Jacques Louis David
Mort de Marat
Oil on Canvas (1793)
165×128.3cm
Royal Museum of Fine Arts of Belgium
나른하고 요염한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이 죽음의 장면이 떠올라서
혼자서 갸우뚱 갸우뚱.
그 외에도 X선 위에서의 위태로운 춤,
특히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쓰러져 있는 여성을 뒤로 한 채
뒤돌아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
눈이 내리고
노란 불이 하나씩 꺼지는.
그런 장면들이 인상깊게 찰칵, 하고 박히는 것을 보니
춤이라는, 익숙한 이해의 틀에 담기 힘든 장르를
영상미 있게 잘 빚어낸 것 같기도 하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인상적이다, 랄까.
현대, 가 붙은 작품들은 난해하다.
그것은 이해, 혹은 해석을 하려고 덤비기 떄문에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에 내가 느낀 것은
아... 현대무용은 역시 어렵구나, 라는 거. -_ㅜ
좀 더 시도해 보면 익숙해지려나.
무튼, 초대권 덕분에 귀한 공연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