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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김환기의 선。면。점 @ 갤러리 현대

by Vanodif 2015. 12. 5.














 갤러리 현대 홈페이지 











전시에 대한 기사는 아래를 참고하시기를.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1203000153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20225081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02/0200000000AKR20151202185800005.HTML?input=1195m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오래 전, 인사동과 삼청동의 갤러리들을 헤매고 다녔을 때 방문했던 환기미술관에서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당시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흐나, 아니면 이수동 님의 동화동화 같은 작품들에 눈을 빛내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난해했던 작품들 때문에, 물음표만 한가득 물어왔더랬다. 하지만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점들과 그 점들을 둘러싸는 네모들의 무한 반복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뿜어내는 그 기이할 만큼의 고독감과, 김화백과 김향안 여사가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다. 넓고 고요한 미술관, 높은 천장으로 뻗어있는 하얀 벽을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던 큰 작품들. 그리고 작품 크기가 크면 클수록 이해가 어렵던 그림들. 그림 이외 전시실을 채우던 유일한 생명체였던 나와 마녀는 이상하게도 작품들 앞에서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그 때 이후,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어지간한 전시회에 꼭 한두 작품씩 끼어 등장했다, 마치 로스코의 작품 처럼. 그런 식으로 야금야금 눈에 익힌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총 22점. 적은 수지만,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있고,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뉴욕시기, 그것도 후기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였어서, 즐겁... 다기 보단 행복했달까.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좋아는 한다지만 아직 이해를 딱히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은, 이해되기 위함이 아니라 느껴지고 감상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자세로 마음껏 빠져든 시간이었다. 우선 1층 1전시실에는 60년대 중후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문제의? 라기 보단 감동의... 2관에는 1971-73년 시기의 작품들이 있다.


"나는 서러운 마음으로 그리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름답고 명랑한 그림이기를 바란다"

고 하신 김환기 화백의 말씀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들.

딱히 명랑, 이라기 보단... 고독과 환희가 절제미 있게 조화된 느낌이랄까.

'정제된 느낌'을 받았다.









오른쪽이 바로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입니다.

그리고 나는 왼쪽의 <무제>가 참 좋았지.









3전시실에 있던 74년작 위주로 구성된 작품들. 2관의 작품보다 좀 이른 시기의 작품들도 있었는데 왜 여기 왔을까, 싶었지만

개인적으론 2관의 작품들은 몹시 절제가 잘 된 것으로 보였더랬다.

이 전시실에 있는 작품들은 조금은 더 자유로워 보였고.








김환기


메아리 


1964


Oil on canvas

84 x 169 cm




김환기 화백의 '점화點畵 시리즈'의 초기 작품인 것 같다. 몹시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김환기


무제 V-66


1966


Oil on canvas

17.5 x 126 cm





이 작품을 보고 난 로스코를 떠올렸지. 특히 로스코전에서의 <Age of Color> 시기에 해당하는 작품들 같았다. 다만 로스코의 색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색들이 둥둥 떠있다. 로스코의 색들이 몽환적이고 율동적이며 음악적이었다면, 이 색의 덩어리들은 조금 더 단단하고 확고한 느낌? 그렇다 해도 부유하는 느낌은 들던데.








김환기


아침의 메아리 04-Ⅷ-65


1965


Oil on canvas

177 x 126.5 cm





이 작품은... 1관에 있는 작품인데, 처음 보아도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3관에 있는 말기 작품까지 다 보고 내려와 다시 보면, 심장에 양치를 한 기분이 들더라. 깨끗하고 시원하고 아름다워서는, 할 수만 있다면 데려오고 싶었지는.








김환기


무제 12-V-70 #172 


1970


Oil on cotton

236 x 173 cm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Ⅳ-70 #166


1970


Oil on cotton

 232 x 172 cm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작품의 뒷면에 적혀 있던 시였다 한다. 점 하나에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찍으면, 옷깃에 스며드는 눈물자국처럼 물감은 화폭에 번져 침윤한다. 김환기 화백은 점은 한 번에 찍어야 한다, 고 했으며, 한 번에 찍은 점을 사각으로 여러 번 둘러싸 칠했다 한다. 그의 수많은 점을 두고 어떤 사람은 조국의 그리운 강산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 속 번민과 고뇌, 또는 그리운 사람들이라거나, 한국의 돌담길이라 한다지만, 해석은 감상자 각각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모든 것이 결국엔 하나가 아니겠는가. 돌이 콕콕 박혀 있는 돌담길이 정겨운 고국의 강산과 사람들이 그리워 고뇌와 번민하는 마음을 하나하나 찍어낸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보는데, 흔들리는 점들이 시야에 덤벼들면서 울컥, 눈물이 범람할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여유로운 금액에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 여겨, '작품을 팔지 않겠다' 쓰셨던 화가는 먼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이 한 점 한 점을 눈물로 찍어내지 않았겠는가. 





김환기


고요


1973




<고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들 중 하나였는데. 이 <고요>에서부터 아래 두 작품을 포함한 세 작품이 내게는 참 좋았다. 어느 만큼 좋았는가 하면, 이 작품은 좀 안쪽 구석에 전시되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을 정도였지. 스텝분이나 다른 관람객들 신경 안 쓰고 실컷 혼자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작품의 사진은 잘 나온 것으로 구하기 힘들었는데, 위의 사진은 대충의 형태만 보여줄 뿐, 작품의 매력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각형 안쪽 북서향 모서리의 문양은 북동향 모서리 바깥쪽 문양에서 잘려진 부분의 좌우가 바뀌어 붙여진 것 같았다. 사각의 문 밖의 회오리치는 동심원에서 우주의 수많은 소리들이 휩쓸려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하얀 선 세 개를 배치함으로써, 마치 그 모든 우주소음으로부터 문을 닫고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의 내부에서는 바깥의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진행되는 것이지. 나의 외부를 채우는 그 많은 소리와 반대로 가는 내면의 소리. 그것이 고요, 인 게다. 아니, 어쩌면 외부의 소리와 다른 내면의 소리를 가르는 경계선이 고요일지도. 


외부의 우주는 소음이다. 우주의 소리에 따라 사는 것은 우주의 소음으로 내면을 채우는 일이다. 조화롭고 편리하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이 우주소음의 일부가 되는 일이 된다. 우주, 즉 외부의 소리와 반대로 살 때 비로소, 우주의 소음 속에서 나는 '고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요'가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 '고요'에 대해 내가 가지는 느낌은 휴식과 성숙과 공포다. 소음 속에서 성장을 한다면, 고요 속에서는 성숙을 한다. 그리고 성숙은 포용력을 넓히고, 너그러움은 마음의 휴식을 가져 온다. 그리고 공포. 내게 있어 혼자로 인한 공포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다면 공포를 떨칠 수 없겠지. 고요 속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그 고요는 자신의 선택에 의한 일시적인 것이며, 손을 뻗으면 '소통'을 할 어떤 대상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게다. 엇... 뜬금 없이 '고요'에 대한 생각은 또 왜. -_-a;; 이번에 전시 포스터엔 있었는데 전시되지 않았던 작품으로 <하늘과 땅>이 있는데, 음... 








김환기


하늘과 땅 24-IX-73 #320


1973


Oil on cotton

263.5 x 206.5cm



이 작품이다. 한 눈에도 매력적인 작품인 건데, 내가 직접 본 것은 <고요>이기 때문인지 난 <고요>가 좋다.








김환기


무제 03-II-72 #220


1972


Oil on cotton

 254 x 201 cm






푸른색의 작품이 많은 곳에서 드물게 붉음을 뽐내던 작품이다. 이 작품도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낫고. 사진에서는 점 사이의 경계가 흰색으로 보이는데, 노른자색에 가까운 오렌지색이다. 작품 가까이 서서 보면 기분이 환해진달까. 색이 몹시 예뻐서 넋을 놓고 보았다. 마치 저고리 옷깃인 듯 겹쳐진 부분이 단아했고, 붉음과 푸름의 대조는 태극무늬 같기도 했다. 예쁘고 아름답지만 붉음만 가득했더라면 피곤했을 텐데, 적절히 짙은 푸름이 들어가서 안심이 되는 느낌. 색채 만으로 받는 느낌은 그러했단 뜻이다. 내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더라면 이 작품 앞에서만 한 30분은 보내고 싶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환해졌거든. 








김환기


무제


1971


Oil on cotton

203 x 154 cm




이 작품. 아주 맘에 들었던 작품인데. 이 역시 사진으로 보니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네. 글쎄, 내 키에서 느꼈던 점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이 작품이 상당히 입체적으로 보였다. 아래에서 저 위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어. 성당의 높은 돔을 보았다... 는 성당의 천장이 저렇게 돔 형식이던가? -_-a 무튼, 돔 형태의 높은 천장을 보는 느낌이 들었고, 또 한 편으로는 우물 속에 갇혀 까마득히 높은 벽을 올려다 보는 기분도 들었다. 돌벽의 층이 울퉁불퉁 돌출된 것처럼 보였더랬는데, 일행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고. 그래서 내 키에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혼자 생각했다. 저 높은 곳에서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내가 있는 곳은 너무나 깊고 깊어, 그 빛은 흔적이나 느낌으로만 와 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염없이 올려다 보게 되는 것은, 그것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게다. 보자마자 순식간에 감상자로 하여금 지하 감옥에 갇힌 황홀한 죄수의 느낌을 갖게 하다니, 그림은 참 위대하지 않은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문학이나 음악, 무용관 달리, 즉각적인 감정을 단번에 소환해내는 그림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다. 물론... 감상하는 데 시간을 요하는 그림도 있으며, 그런 그림은 그런 그림대로 독특한 매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수많은 점을 그리움이나 우주의 별로 본다 하더라도, 내게는 우주의 황홀한 지하감옥, 혹은 그리움의 황홀한 지하감옥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김환기


10만개의 점


1973


Oil on cotton

263 x 205 cm





음. 지금에 와 느끼는 건데, 이 작품에는 위의 <고요>, <하늘과 땅>, 그리고 이번에는 전시되지 않았던 <무제 16-IX-73 #318> 세 작품을 섞어둔 것 같네. 








김환기


무제 16-IX-73 #318


1973


Oil on cotton

263 x 205 cm




이 작품입니다.









김환기


무제 05-VI-74 #335


1974


Oil on cotton

121 x 85 cm




김환기 화백은 1974년에 돌아가셨다. 즉 이 작품은 김 화백의 말기 작품이다. 3관을 보면서, 73년과 7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으셨나...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면서. 말기에 허리통증에 시달리셨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였는가. 71-72년의, 우울하지만 명랑한? 느낌을 내는 작품들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 들었다. 


2전시관의 작품들에는 밑선이 보이지 않았다. 쭉 선을 그어서 칸칸이 나누어 테두리를 치신 것이 아니라, 점을 찍고 그 점 하나를 둘러싼 테두리를 하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체적으로 곧음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를 보면 테두리의 크기나 각도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더욱 큰 매력이었고. 그런데 74년 작품에서는 밑그림이 있었다. 동그라미 때문이었으려나. 대부분 검정에 가까운 청회색이었고 뭔가 매끈매끈하지 않달까. 보는 마음이 불안한 것이, 딱 보아도 '죽음이구나' 싶었다. 3전시관에 있었을 땐 사망연도를 몰랐거든. 사망 1-2년 전, 검정과 회색을 탐닉하던 로스코의 말기 작품들과 느낌이 많이 닮았다.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할 수 있는 걸지도. 마음이 먹먹하고 아팠다, 이 그림들 앞에서.





예당의 전시에서 갈수록 작품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그동안 불평불평을 했더랬는데, 뭐, 그 불평을 거둘 마음은 없다. 전시 가격은ㅡ그많은 전시를 다 즐기기에는ㅡ부담 안 되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렇게 단 22점을 보았는데도 오히려 마음이 좋았던 것은 아마도, 미술관에서 선택한 작품들이 내 취향이 잘 맞았기 때문이겠지. 보통 200여 점이 오는 전시에 가서도 맘에 꼭 드는 작품은 다섯 점에서 많아도 열 점 정도에 불과한데, 이 스물 두 점의 전시에서 세 점에서 네 점 정도 맘에 꼭 들었다는 건 굉장한 일 아니겠나. 참 좋더라.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거. 의자가 있었더라면 아예 자리잡고 앉아 감상했을지도... 는 안 되겠구나. 매너가 아니겠지. 구상화는 구상화 대로의 매력이 있지만, 난 점점 추상화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그리는 선(線),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點)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江山).





 - 김환기, 1970년 1월 27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