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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ext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알렙」, 『알렙』

by Vanodif 2016. 8. 18.






알렙







천만에, 나는 호두껍질 안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

으면서도 나 자신을 무한하기 그지없는 어떤 공

간의 <주인>으로 여길 수 있네.


「햄릿」 2막 2장



그러나 그들은 <영원>이란 <현재의 시간>에 조용

히 <서 있는 것>, 그러니까 그 학파 사람들이 부

른 바대로 Nunc-stans(지금 있는 것)이라고 가

르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Hic-Stans(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단지 <공간>의 <무한한> 광활

함 정도로 이해할 뿐이리라


『레비아탄』 4장 46절







   2월의 어느 무더운 아침, 베아뜨리스 베떼브로는 혹심한 병마의 고통 끝에 마침내 죽었다. 그런 가혹한 투병의 과정 중에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감상적이 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떴던 날, 나는 꼰스띠뚜시온 광장의 철제로 된 금색 담배갑 광고판이 소리 소문도 없이 바뀌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냐하면 끝없고 광활한 우주가 이미 그녀로부터 떠나버렸고, 그러한 변화가 일련의 무한한 변화의 첫번째 것이라는 점을 깨닫도록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우주는 바뀌리라, 그러나 나는 바뀌지 않으리라. 나는 암울한 공허감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때 나의 맹목적인 헌신이 그녀로 하여금 넌더리를 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미 그녀가 죽은 이상 희망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제 굴욕감 같은 것을 느낄 필요 없이 그녀에 대한 기억만큼은 아름답게 남겨둘 수 있으리라. 나는 그녀의 생일이 4월 30일이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곤 하리라. 그 날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남자사촌인 까를로스 아르헨띠노 다네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가라이 가에 있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곤 했던 것은 예의바르고, 무례하지 않고, 어쩌면 불가피하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행동이었다. 만일 그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다시 숨이 턱턱 막히는 비좁은 거실에서 그녀를 기다렸을 것이고, 또다시 그녀의 많은 초상들로 둘러싸인 실내를 둘러보게 되었을 것이리라. 여러가지 색깔로 된 옆모습의 베아뜨리스, 1921년 축제 때 눈 가면을 쓴 베아뜨리스, 첫 영성체 떄의 베아뜨리스, 로베르또 알레산드리와의 결혼식 때의 베아뜨리스, 승마클럽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이혼 직후의 베아뜨리스, 낄메스에서 델리아 산 마르꼬 뽀르셀과 까를로서 아르헨띠노와 함께 있는 베아뜨리스, 비에가스 아에도가 그녀에게 선물한 털이 긴 강아지와 함꼐 있는 베아뜨리스, 손으로 턱을 괸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정면 상반신의 베아뜨리스....... 나는 다른 때처럼 어색함을 떨구려고 값싼 책선물을 구실로 그녀의 집에 나타날 필요가 없으리라. 몇 달 후 전혀 손도 대지 않은 채 내팽개쳐 둔 것을 확인하게 되지 않으려고 결국 책장들을 잘라버리고 주는 습관을 갖도록 했던 그 책들.


   베아뜨리스는 1929년에 죽었다. 그때부터 나는 계속해서 4월 30일이면 그녀의 집을 찾았다. 나는 늘 7시 15분에 도착해서 약 20분 정도 그곳에 머물곤 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나의 방문 시간은 조금씩 늦어지기 시작했고, 머무는 시간은 약간씩 늘어가기 시작했다. 1933년에는 갑자기 내린 소낙비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내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히 그 행운의 전조가 그냥 흘러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1934년 나는 8시가 다 돼서야 산따 페에서 만든 과자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그들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음울하고, 이미 죽었기 때문에 헛되이 관능적인 그녀의 기일들이면 나는 점차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 다네리의 환대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베아뜨리스는 키가 크고, 가냘프고, 보일락 말락할 정도로 기우뚱한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의 걸음걸이 속에는 (만일 일반화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마치 엑스터시의 초기 같은 아름다운 휘청거림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는 장밋밫 얼굴에, 체격이 건장하고, 은발 머리에, 출중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남부의 교외에 있는 한 기이한 도서관에서 정확한 직위는 알 수 없지만 한 말단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권위적이었으나 동시에 무능했다. 그는 아주 최근까지 집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밤과 공휴일에 일을 처리하곤 했다. 이미 두 세대가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여전히 이탈리아식의 S 발음과 과장적인 몸동작들이 남아있다. 그의 정신활동은 집착적이고, 열정적이고, 변덕스럽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천하다. 그리고 쓸모없는 유추나 불필요한 꼼꼼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마치 베아뜨리스처럼) 크고 길다란 아름다운 손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몇 달 동안 그는 뽈 포트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뽈 포트가 쓴 발라드 때문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명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프랑스 시인들의 왕자지」 그는 우쭐대며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자네가 그와 대적한다는 것은 헛일이야. 자네의 단가들 중 가장 전염성이 강한 것조차도 그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거야」


   1942년 4월 30일, 나는 기꺼이 늘 가지고 가던 과자 상자에 국산 꼬냑 한 병을 첨가시켰다. 술을 조금 입에 대본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맛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잔을 들이킨 뒤 현대인에 관한 옹호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의아스러울 만큼 열광적으로 말했다. 「마치 우리가 한 도시의 망루에서 얘기를 나누고나 있는 듯 전화, 전보, 축음기, 무선 송수신기, 영화, 환등기, 용어사전, 계획표, 비망록, 회람...... 등이 구비된 서재에 앉아 있는 그런 현대인을 떠올리게 되네」


   그는 이처럼 잘 구비된 사람에게 여행이란 전혀 불필요한 일일 거라고 말했다. 「20세기에 들어 우리 인간은 <모하메드와 산>의 신화를 바꿔놓았지. 이제 현대적인 모하메드 위로 모든 산들이 수렴되고 만 거야」


   그의 생각은 아주 어리석어 보였지만 그의 해명이 너무 현란하고 웅장했기 때문에 나는 즉각 그것과 관련지어 문학을 떠올렸다. 나는 그에게 왜 그것을 글로 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예견했던 대로 그는 이미 그렇게 했노라고 말했다. 그러한 개념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혁신적인 다른 개념들은 그가 여러 해에 걸쳐 작업중인 장시의 「전조의 시」, 「서시」, 또는 단지 「시-서문」편만을 들춰봐도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시를 여기저기 떠벌리지도, 야단법석을 떨지도, 선전을 하고 다니지도 않으면서 항상 <노고>와 <고독>이라 불리우는 그 두 지팡이에만 의존한 채 써오고 있었다. 먼저 그는 상상력에 의존하여 갱구를 열었고, 그 다음에는 그것에 운율을 치장했을 것이었다. 그 시의 제목은 「지구」였다. 그 시는 세계에 대한 묘사를 다루고 있었다. 당연히 그 시에는 장황한 정경 묘사와 빼어난 웅변술이 부재하지 않았다.


   나는 짧아도 좋으니 그 시그이 한 소절을 들려달라고 청헀다. 그가 책상 서랍을 열어 후안 끄리스또모 라피누르 도서관 이름이 인쇄된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흐뭇한 어조로 그것을 읽기 시작했따.



   나는 보았다, 마치 그리스 사람처럼, 인간들의 도시들을

   그들의 노고를, 항상 다른 빛을 가진 나날들을, 그들의 굶주림을,

   나는 사실들을 왜곡하지도, 이름들을 날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들려주는 이 <여정 voyage>은...... <내 방 주변에 관한 것들 autour de ma chambre>이라네



   「모든 관점에서 흥미있는 연이지」 그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첫 번째 행은 교수, 학자, 그리스 연구가의 찬탄을 받고 있는 행이지. 잡다한 지식의 잡학가들 말고 말이야. 두 번째 행은 호머로부터 헤시오도스로 넘어가고 있지.  (휘황찬란한 건물의 입구에서 교훈시의 아버지인 헤시오도스에게 바치는 하나의 암시적인 전폭적 경읭라고나 해야 할까.) 이미 『성경』에서 여러 세대를 걸쳐 대물림되고 있는 열거, 축적, 또는 집합과 같은 장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야. 세 번째 행은 바로크주의, 세기말주의, 그러니까 형식에 대한 숙청과 광신의 양식이라고나 할까? 이 행은 쌍둥이 같은 두 개의 반행으로 이루어져 있지. 사실 이중언어로 되어 있는 네 번째 행은 풍요로운 의미의 경쾌한 제시 때문에 모든 지각 있는 사람들의 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증해주고 있지. 나는 현학적이 되지 않으면서 이것의 독창적인 운율, 또는 네 개의 행 속에서 30세기에 걸친 방대한 문학의 역사를 세 개의 박식한 인유를 가지고 축약하고 있는 그 구체적인 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어. 첫 번째 인용은 『오디세이』이고, 두 번째 인용은 『일과 하루』,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사보야인의 만필이 우리에게 남긴 불후의 소품들이지. ...... 나는 다시 한 차례 더 현대의 예술이 웃음의 향유, 즉 <스께르쪼>를 요구한다는 것을 꺠닫고 있네. 골도니라는 말에 그것이 분명코 내포되어 있지!」


   그는 내게 앞의 연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화자찬과 장황한 코멘트를 늘어놓으면서 다른 많은 연들을 읽어주었다. 그것들은 기억에 남을 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다고 그것들이 처음에 읽어준 연에 비해 아주 형편없는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의 글 속에는 응용과 인고와 우연이 서로 뒤엉켜있았다. 다네리가 장점이라고 든 것들은 이미 시가 씌어지고 난 뒤에 생겨난 것들이었다. 나는 그 시인의 작업이 시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있는 작업은 그 시로 하여금 찬탄을 받도록 하기 위한 명분들을 창달해 내는 것에 있었다. 자연히 이러한 후차적인 작업은 그에게 있어 그 작품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지도록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다네리의 말솜씨는 굉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꼽을 정도를 제외하고 그 시가 가진 운율적 결함은 그러한 굉장함이 시에까지 전달되도록 만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일생에 단 한 차례 만 오천 행으로 된 12음절의 시 『폴리올비온 Polyolbion』을 들춰볼 기회가 있었다. 저자인 마이클 드레이틴은 이 지형학적인 시에서 영국의 동식물 생태, 수로 지형, 산악 지형, 군과 수도원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묘사했다. 나는 엄청나지만 역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 저작이 같은 류에 속하는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방대한 작품보다 덜 지리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는 둥근 지구의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하고자 의도하고 있었다. 1941년에 이미 그는 퀸스랜드 주에 있는 몇 헥타르의 땅, 옵 강의 일 킬로미터가 넘는 수로, 베라끄루스의 북쪽에 있는 가스 탱크, 꼰셉시온 교구의 주요 상가, 벨그라노의 온세 데 셉띠엠브레 거리에 있는 마리아나 깜바세레스 데 알베아르의 별장, 그리고 평판 높은 바라이턴 해양박물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터키탕의 시설들에 대한 묘사를 끝마친 뒤였다. 그는 내게 자신의 시에 들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관해 고심해 쓴 몇몇 부분들을 읽어주었다. 그 길고 산만한 알렉산더 운의 시구들에는 시문이 보여주던 그러한 상대적으로 선동적인 어조가 결여되어 있었다. 한 연을 그대로 옮겨 본다.



   깨달아라. 일상적인 푯말의 오른쪽 손 편에서

   (물론 북북서쪽에서 오고 있는)

   양들의 축사로 하여금 납골당의 분위기를 갖게 하는

   해골 하나가 권태스러워 한다네 ㅡㅡㅡ 색깔은? 희끄무레한 하늘색 ㅡㅡㅡ



   「내가 다시 복원시킨 두 개의 다담한 표현」 그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자네도 그것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군! 나도 알아, 나도 안다니까. 첫 번째 것은 <일상적인>이라는 성질 형용사지. 그것은 명백히 자질구레한 목장일과 농사일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권태를 파노라마처럼 폭로하고 있잖나. 전원시들이나, 우리들의 계관시인인 돈 세군도조차도 결코 그렇게 적나라하게 폭로할 수 없던 그런 권ㄴ태 말일세. 두 번째 것은 <해골 하나가 권태스러워 한다네>라는 활기찬 산문조의 구절이네. 성격이 세심한 사람은 이 구절에 겁을 집어먹게 될지도 모르지만 남성적 취향을 가진 비평가는 그것을 자신의 삶보다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할 걸세. 게다가 이 시행 전체가 아주 진작된 미학적 바탕 안에 이루어져 있단 말일세. 이 시의 두 번째 반행인 <샐깔은? 희끄무레한 하늘색>은 독자들과 생생한 담소를 하도록 만들어주지. 우선 독자들로  하여금 절절한 호기심이 들도록 만들고, 그 다음에는 입 안에 질문을 우물거리도록 만들고, 그리고 마침내는 그것에 대한 대답을 갖도록 만들어주지....... 즉각 말이야. 그런데 그 <희끄무레한 하늘색>이라는 돌발적인 표현에 대한 자네 의견은 어떤가? 이 회화적인 신조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풍경에 있어 극도로 중요한 요소, 그러니까 하늘을 함축하고 있지. 이러한 수사적 환기가 없었더라면 풍경의 스케치는 지나치게 어두워졌을 것이고, 독자는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상처받아 치유할 길 없는 깜깜한 우수에 젖은 영혼과 함께 책을 덮어버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을 것이네」


   자정 무렵에 나는 그의 집을 나왔다.


   두 번의 일요일이 지난 후 다네리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 기억에 그것은 그를 안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내게 네시에 만났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아주 진보적인 수니오와 숭그리가 ㅡㅡㅡ 자네도 알 거네만 낸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의 소유주들이지 ㅡㅡㅡ 길 모퉁이에 연 서로 맞붙어 있는 살렁-바에서 함께 우유나 마시게 말이야. 그 과자점은 자네도 알아두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드네」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 <살롱-바>는 가혹할 정도로 현대적이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덜 대담했다. 옆의 탁자들에서는 열광한 사람들이 수니오와 숭그리가 전혀 값을 깎지도 않은 채 그 집에 투자한 돈의 액수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는 어떤 점이 그러하다는 것인지는 ㅁ노르겠지만 그곳의 조명 시설에 대해 놀라워하는 척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그것에 대해 벌써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그가 다소 엄숙한 태도로 내게 말했다.


   「자네 마음에는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곳은 플로레스 지역에서 가장 날리는 살롱ㅡ바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거네」

   

   그런 다음, 그는 내게 예의 그 시 너더댓 페이지를 다시 읽어주었다. 그는 그 시를 <언어적 과장>이라는 부패한 원칙에 따라 수정을 가한 뒤었다. 전에 <푸른 빛을 띤 azulado>이라고 썼던 것은 <푸르른 azulino>, <푸릇푸릇한 azulenco>, 심지어 <푸르스름한 <azulillo>으로까지 풍요해져 있었다. 그에게 <젖 모양의 lechoso>라는 단어가 아주 추한 것만은 아니었다. 양털 세탁장에 대한 격정적인 묘사에서 그는 <우유 같은 lactario>, <유즙 같은 lacticinoso>, <유액 같은 lactescente>, <젖 같은 lechal>이라는 단어들을 선호했다. ...... 그는 비평가들에게 신랄한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고 나서 다소 온화해진 어조로 그는 그들을 <보석도 없고, 보물들을 주조하기 위한 증기 압착기도, 엽연기도, 황산도 없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는 가리킬 수 있는> 사람들에 비유했다. 이어 그는 <'천재들의 왕자'가 『돈키호테』의 뛰어난 서문에서 이미 희화화했던> <서문광>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작품의 겉장에는 휘황찬란한 서문, 날카롭고 중후한 문필가가 서명한 짤막한 언급이 있으면 좋을 거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장시 앞부분을 출판할 계획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뜻하지 않게 전화로 나를 불러냈는지에 대한 이유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그 현학적인 잡탕 글의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의 염려스런 추측은 착각이었다는 게 곧 드러났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는 질시감 깃든 찬사와 함께 뛰어난 학식의 소유자인 알바로 멜리안 라피누르가 각계에서 얻은 명성은 확고한 것을 ㅗ치부해도 전혀 착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애를 써주면 그가 지신의 시에 흠뻑 빠져 서문을 써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나는 가장 엄청난 실수를 피하기 위해 명명백백한 두 가지 장점의 대변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형식적 완결성과 과학적 치밀성.> <왜냐하면 비유들과 수사들과 장식적 언어들로 구성된 이 거대한 정원에는 엄중한 진실을 확인해주는 그 모든 항목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아뜨리스가 늘 알바로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동의, 무턱대고 동의를 했다. 나는 그가 보다 확실하게 믿도록 하기 위해 알바로와 월요일이 아닌 목요일, 모든 작가 클럽의 회합 끝에 늘상 갖게 되는 조촐한 만찬석상에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물론 그런 만찬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회합이 목요일에 열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 다네리는 그것을 신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내 말에 일종의 사실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고, 내심 머리를 굴려 알바로에게 서문의 주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작품의 흥미로운 구성 방식에 대해 들려 주겠노라고 말했다. 우리는 작별했다. 베르나르도 데 이리고엔 거리의 모퉁이를 돌면서 나는 아주 냉철하게 내가 선택해야 할 미래에 대해 따져보았다. 1) 알바로와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 그에게 베아뜨리스의 남자 사촌이(이렇게 빙 돌려서 설명하는 어법으로 말해야만 그녀의 이름을 들먹일 수 있으리라) 동음 반복과 혼돈 구조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놓은 것처럼 보이는 시를 썼다고 말하는 것. 2) 알바로와 그 얘기를 나누지 않는 것. 나는 명백하게 나의 게으름이 두 번째 것을 선호하게 될 것임을 예견했다.


   금요일의 이른 시각부터 전화기는 나를 불안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 때는, 이제 다시는 되돌려놓을 수 없는 베아뜨리스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이 기구가 자기 현혹에 빠진 그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쓸모없고, 아마 노기가 섞여 있을 불평을 전달하는 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 미묘한 무엇이 걸려 있는 일을 강요해 놓고도 아예 나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린 그치가 나로 하여금 품도록 만든 그 피할 길 없는 앙심을 제외하곤 말이다.


   전화기는 자아내던 공포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10월 말경,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극도로 격앙해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처음에 그의 목소리를 간파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이미 끝간 줄 모르고 날뛰는 그 수니오와 숭그리가 자신들의 얼토당토 않는 제과점을 확장한다는 구실 아래 자신의 집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고 말을 더듬거렸다.


   「내 부모님들의 집, 나의 집, 가라이 가의 유서 깊은 고옥을 말이야!」 아마 그는 그 말의 멜로디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삭히는 것인지 되풀이해 말했다.


   내가 그의 비애에 동참하는 게 아주 당연하다는 것은 금세 증명되었다. 이미 40대에 들어선 내게 변화라는 모든 것은 세월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저주스러운 상징에 속한다. 게다가 그것이 내게 끊임없이 베아뜨리스를 은근히 암시하는 어떤 집일 때는 더욱 그러했다. 나는 그 미묘하기 그지없는 나의 관점을 피력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만일 수니오와 숭그리가 그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자신의 변호사인 순니 박사에게 <그 사실에 입각해> 손해 배상을 청구토록 해 그들로 하여금 10만 빼서를 내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순니라는 이름은 나 또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까세로스와 따꽈리 거리 사이에 위치해 있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은 철저한 변호 업무 수행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나는 그가 이미 사건을 맡았는지 물었다. 다네리는 오늘 오후에 곧바로 그와 얘기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그가 머뭇거렸고, 사람들이 어떤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을 때 쓰는 그런 무덤덤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시를 끝마치기 위해서는 그 집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지하실의 한 귀퉁이에 <알렙>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알렙>이란 모든 지점들을 포괄하고 있는 어떤 공간 지점들 중의 하나라고 털어놓았다.


   「그것은 부엌의 지하실에 있어」 그는 괴로움 때문에 한 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내 거야, 그건 내 거야. 나는 그것을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어린 시절에 발견했었지. 지하실의 계단이 아주 가파랐기 때문에 삼촌들은 내가 그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도록 했지. 그런데 누군가가 그 지하실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였어.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것은 어떤 <트렁크> 하나를 두고 한 말이었지. 허나 나는 정말로 그곳에 어떤 세계가 있는 걸로 생각했지. 나는 몰래 지하실로 내려갔고, 금지된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지. 눈을 떴을 때 나는 <알렙>을 보게 된 거야」

   「알렙?」 나는 되풀이해 물었다.

   「그래.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든 각도에서 본 지구의 모든 지점들이 있는 곳이지. 나는 아무에게도 나의 그러한 발견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시 그곳을 찾아갔자. 그 어린아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시를 짓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러한 특혜가 지신에게 부여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 수니오와 숭그리는 나로부터 그것을 빼앗아갈 수 없어. 천 번 만 번 그럴 수 없고 말고. 법률에 대해 모조리 꾀고 있는 순니 박사가 나의 <알렙>이 <양도될 수 없는>어떤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걸세」


   나는 허점을 지적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지하실은 아주 어둡지 않나?」

   「의도적으로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항적인 태도 속에는 진실이 찾아들 수가 없는 법이지. 만일 <알렙>속에 지상의 모든 장소들이 들어있다면 거기에는 모든 조명 기구들, 모든 등들, 모든 빛의 원천들이 들어있지 않겠어」

   「지금 당장 그것을 보러 가지」


   나는 그가 안 된다는 말을 내뱉을 여유를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에는 의심하지 않았던 일련의 진면목들을 즉각 간파하는 데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때까지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비떼르보 집안의 모든 사람들, 적어도...... 베아뜨리스(낸 스스로가 늘상 되풀이해 말하는 거지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여자, 그런 여자애였지만 반면에 그녀는 병리학적 설명을 요하는 무심함, 방만함, 매정함, 진정한 잔인성을 가지고 있었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광기는 나를 사악한 흡족감에 가득 부풀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은연 중에 서로를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라이 거리에 도착한 내게 하녀가 죄송하지만 조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지하실에서 사진을 현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 피아노 위의, 한 송이의 꽃도 꽂혀 있지 않는 화병 옆에서 색상이 바랜 베아뜨리스의 거대한 초상이(시간이 뒤죽박죽되어 있다기보다는 시간이 없어져 버린 것 같은 모습으로)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리움의 애틋한 절망감 속에서 사진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베아뜨리스, 베아뜨리스 엘레나, 베아뜨리스 엘레나 비뗴르보, 사랑하는 베아뜨리스, 영원히 없어져 버린 베아뜨리스, 나야, 보르헤스야」


   잠시 후 까를로스가 들어왔다. 그가 냉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알렙>의 상실 이외에는 그 어떤 생각에 빠질 심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꺠달았다.


   「먼저 꼬냑 같은 것이나 한 잔 들게」 그가 명령했다. 「그런 다음 지하실로 잠입해 들어가야 할 거야. 이미 상상했겠지만 등을 구부려야 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네.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 되도록이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 시력을 조절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필수불가결한 일이지. 판석이 깔려 있는 바닥에 누워 눈을 그 문제의 층계 19번째 계단에 고정시키게. 나는 지하실 문 밖으로 나갈 거니까 자네 혼자 그곳에 남게 될 거네. 쥐 같은 동물이 자네를 소스라치게 만들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게 어디 별일이겠나! 몇 분만 지나면 자네는 <알렙>을 보게 될 거네. 연금술사들과 카발라 신비주의자들의 소우주요, <작지만 알차다!>라는 우리에게 구체적이고 친숙한 금언인 바로 그것을 보게 될 거라 이 말이네」


   우리는 이미 부엌에 당도해 있었다. 그가 덧붙였따.


   「한 가지 명백히 해두어야 할 것은 자네가 그것을 못 본다 할 지라도 그건 자네의 무능력 탓이지 내가 한 증언이 거짓잉기 떄문이 아니라는 점일세....... 내려가게. 곧바로 자네는 베아뜨리스의 모든 영상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거네」


   그의 불필요한 부언 설명에 넌더리가 난 나는 부리나케 지하실로 내려갔다. 층계보다 약간 넓은 정도인 지하실은 패인 구멍들 투성이였다. 나는 눈을 이리저리 돌려 헛되이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내게 언급했던 그 트렁크를 찾았다. 병들이 담긴 몇 개의 상자, 돛배로 만든 몇 개의 자루가 구석에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까를로스가 자루 하나를 집어들어 그것을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를 잡은 다음 그곳에 그것을 놓았다.


   「베개가 낮다고 생각하는군 그래」 그가 설명했다. 「그렇지만 만일 자네가 단 일 센티미터라도 그것을 들러올리면 자네는 털끝만한 것도 볼 수 없을 거고, 그래서 무안하고 수치스러운 감정 속에 빠져들 걸세. 몸뚱이를 바닥에 푹 파묻고 열아홉에 다다를 때까지 계단의 숫자를 세어보게나」


   나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요구사항들을 행동에 옮겼다. 마침내 그가 지하실을 나갔다. 그가 조심스럽게 지하실문을 닫았다. 나중에 틈새 하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어둠은 내게 완벽한 것처럼 보였다. 돌연 나는 내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한 미치광이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되고, 그로 하여금 나중에 나를 독살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까를로스의 엄포에는 내가 그 기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염려가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어. 까를로스는 자신의 정신착란증을 호도하기 위해,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나를 죽여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혼란스러운 불안감 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것이 마취제(아까 그가 먹인 꼬냑)의 작용인 아닌 긴장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알렙>을 보았다.


   이제 나는 말로 형용할 길 없는 내 이야기의 중심부에 이르러 있다. 바로 여기서 작가로서의 나의 절망이 시작된다. 모든 언어는 상징들의 알파벳이다. 그것의 사용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과거를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뒤덮인 나의 기억이 간신히 감싸안고 있는 그 무한한 <알렙>을 전달해 줄 수있단 말인가? 이와 비슷한 경우에 신비주의자들은 상징들을 남발한다. 신성을 의미하기 위해 한 페르시아인은 일견 모든 새들이기도 한 한 마리의 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중심이 모든 곳에 있고, 원주는 어떤 곳에도 없는 어떤 구체에 대해 말한다. 구약의 「에제키엘서」는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 한 천사에 대해 말한다. (내가 괜히 이러한 엉뚱한 유사성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알렙>과 어떤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마 신들은 내가 그것들과 동등한 이미지를 가진 어떤 것을 발견했따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나의 이러한 전달방식은 문학과 허위로 오염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무한한 총체성을 단지 부분에 불과할지라도 열거할 수 있느냐 하는 핵심적인 문제 만큼은 해결이 무망하다. 나는 그 장려한 찰나 속에서 황홀하거나, 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경이로운 광경들을 보았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서로 겹치거나 투명해져 버리는 법 없이 모든 것들이 같은 지점 속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 눈이 보았던 것은 동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글로 옮기는 것은 연속적이다. 왜냐하면 언어의 성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무엇인가 적어보도록 하겠다. 


   층계의 아래쪽 오른편에서 나는 거의 눈에 담기 어려운 광채를 빛낸고 있는 형형색색의 작은 구체를 하나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회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잠시 후 그 움직임이 그 구체 속에 들어 있는 어지러운 광경들 떄문에 생겨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렙>의 직경은 2 또는 3 센티미터에 달할 듯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공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나의 사물(예를 들어, 거울에 비친 달)은 무한히 많은 사물들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또렷하게 우주의 모든 지점들로부터 그것을 볼 수 있었기 떄문이었다. 나는 으르런거리는 바다를 보았고, 새벽과 저녁을 보았고, 아메리카 대륙의 군중들을 보았고, 검은색 피라미드의 중앙에 있는 은빛 거미줄을 보았고, 부서진 미로(다른 아닌 런던 시)를 보았고,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주위의 셀 수 없이 많은 눈들을 보았고, 그 중 어떤 것도 나를 비추고 있지 ㅇ낳은 세계의 모든 거울을 보았고, 솔레르 거리의 한 후원에서 30년 전 프라이 벤또스의 한 집의 현관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보도블록들을 보았고, 꽃송이들과 눈과 담배와 금속의 줄무늬와 수증기들을 보았고, 봉곳하게 솟아오른 적도의 사막과 모래벌판의 모래 하나하나를 보았고, 결코 잊지 못할 한 여자를 인베르네스에서 보았고, 그녀의 거칠게 풀어헤쳐진 머리칼과 거만한 자태를 보았고, 유방암을 보았고, 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한 오솔길에서 원모양을 이루고 있는 마른 땅을 보았고, 아드로게의 별장과 필레몬 홀랜드가 번역한 플리니의 『자연사』 37권 중의 하나를 보았고, 나는 각 페이지 안에 들어있는 각 글자들을 동시에 보았고 (어린 시절 나는 늘 덮어놓은 책 속의 글자들이 밤이 경과하는 동안 서로 뒤셖여 사라지지 않는 것에 놀라곤 했다), 밤과 낮을 한꺼번에 보았고, 벵갈의 장밋빛 색깔을 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께레따로의 석양을 보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나의 침실을 보았고, 알크마르의 한 거실에서 끝없이 나를 증식시키고 있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놓여 있는 지구본을 보았고, 새벽 기운에 물들어 있는 카스피해의 한 해변에서 갈기를 흩날리고 있는 말들을 보았고, 어떤 손의 섬세한 뼈마디들을 보았고, 어떤 전쟁에서 살아남아 우편엽서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고, 미르사푸르의 한 진열장에 있느 한 벌의 스페인제 트럼프를 보았고, 한 온실의 바닥에 드리워져 있는 몇 그루 양치류 식물들의 비스듬히 기울어진 그림자들을 보았고, 호랑이들과 피스톤들과 들소들과 거대한 파도들과 군대들을 보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를 보았고, 페르시아 고대 천체 관측기를 보았고, 책상의 한 서럽에서 베아뜨리스가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에게 보낸 저속하고 믿기지 않는 또박또박 쓴 편지들(그 글씨는 나를 떨게 만들었다)을 보았고, 차까리따에 있는 한 기념비를 보았고, 한때는 달콤하게스리 베아뜨리스 비떼르보가 소유했었던 잔혹한 그녀의 유품들을 보았고, 더러운 나의 피의 순환을 보았고, 사랑의 톱니바퀴와 죽음의 변화과정을 보았고, 모든 지점들로부터 <알렙>을 보았고, <알렙> 속에 있는 지구를 보았고,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너의 얼굴을 보았고, 현기증을 느꼈고, 그리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제멋대로 남용해 쓰고 있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그 비밀스럽고 단지 상상적인 대상, <불가해한 우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끝없는 경외감과 끝없는 회한을 느꼈다.


   「전혀 예기치도 않았던 곳을 그토록 밑바닥까지 흝어보았으니 정신이 혼란스러울 것이네」 희희낙락해하는 그 지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자네가 온갖 머리를 다 짜낸다 할지라도 한 세기 안에는 내가 자네에게 보여준 그 계시에 대한 보답을 결코 하지 못할 것이네. 이보게,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관측소지 않나, 보르헤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의 구두가 층계의 맨 꼭대기 위를 점하고 있었다. 언뜻 스쳐가는 희미한 불빛 속에서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더듬더듬 입을 열 수가 있었다.


   「굉장해. 그래, 굉장해」


   나는 무심한 내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안달이 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계속 물었다.


   「모든 것을 그것들이 가진 원래의 색깔대로 똑똑히 보았겠지?」


   그 순간 내게 복수의 방법이 떠올랐다. 나는 다정하고, 겉으로 환히 드러날 정도로 동정심에 가득 찬 얼굴로, 초조에 떨고, 회피적인 태도로 까를로스 아르헨띠노 다네리에게 지하실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 호의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에게 집의 철거를 그 누구도, 정말이지 그 누구도(!) 가만 내버려두지 ㅇ낳는 해독한 도시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계기로 삼으라고 간곡히 말했다. 나는 부드러운 단호함 속에서 <알렙>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거부했다. 작별을 고하면서 나는 그를 포옹했고, 그에게 시골과 평화로운 삶이야말로 두 가지의 위대한 의사라는 당부를 되풀이해 말했다.


   거리에서, 꼰스띠뚜시온 광장의 층계에서, 지하도에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들이 그토록 친숙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나를 놀라게 할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세계에 대한 그 뒤집힌 인상이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밤의 불면 끝에 다시 망각의 손길이 내게서 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1943년 3월 1일의 후기>

   가라이 거리의 그 건물이 헐린 뒤 6개월 후 쁘로꾸스또 출판사는 그 엄청난 시의 길이에 개의치 않고 『아르헨띠노 시선』이라는 한 발췌본을 시장에 내놓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 다네리는 <국가문학상>의 2등상을 받았다. 1등상은 아이따 박사에게, 3등상은 마리오 본판띠에게 주어졌다. 믿을 수 없게도 나의 작품 『도박꾼의 트럼프』는 단 한 표조차 얻지 못했다. 또 한 차례 몰이해와 질투가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내가 다네리를 못 보게 된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신문들은 그가 곧 제2권을 세상에 내놓게 될 것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알렙>에 의해 무뎌지지 않고 있는) 그의 복 받은 펜은 아세베도 디아스 박사 작품의 요약본을 시로 바꾸는 데 헌신하고 있었다. 나의 우 가지 견해를 침입시키고자 한다. 첫째는 <알렙>의 본질에 관한 것이고, 둘쨰는 그것의 일므에 관한 것이다. 그 이름은 알려진 것처럼 그 신성한 언어의 첫 번째 알파벳이다. 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구체에 그것을 적용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카발라 신비주의에 있어 이 글자는 엔 솨 En Soph, 즉 한계가 없고 순수지고한 신성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은 하급세계가 상급세계의 거울이자 지도라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하늘과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한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 <집합론>에 있어서 그것은 전체가 부분들의 어떤 것보다 크지 않은 <초유한수>들에 대한 상징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싶었다. 까를로스 아르헨띠노가 스스로 이 이름을 발탁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지점들이 수렴되는 다른 어떤 지점을 지칭하고 있는> 그 이름을 그의 집에 있던 <알렙>이 보여준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의 하나에서 보았던 것일까? 의아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또 다른 <알렙>이 존재한다고(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라이 가에 있던 <알렙>은 가짜였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를 대겠다. 1867년 경 버튼 대위는 브라질에서 영국 영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942년 빼드로 엔리께서 우레냐는 브라질 산또스 시의 한 도서관에서 버튼 대위의 원고 하나를 발견했다. 그 원고는 동양에서 이스칸다르 수 알-카르나인, 즉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비코르니스 대왕의 것으로 간주되는 한 거을에 대한 시였다. 이 거울에는 전 우주가 비쳐진다. 버튼은 다른 유사한 물건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카이 코스루의 일곱 겹 유리 술잔, 타릭 벤세야드가 한 탑에서 발견한 거울(『천일야화』의 272번째 밤),  루시아노 데 사모사따가 달에서 실험할 수 있었던 거울(『진실된 역사』 1장 26절), 카펠라의 『풍자가』 제 1권에서 주피터 신의 소유로 보고 있는 거울로 된 창, <둥글고, 오목하고, 마치 유리의 세계 같은> 메를린의 우주 거울(『요정나라의 여왕』, III, 2:9).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문장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점에다) 일종의 광학 기구들에 불과하다. 카이로에 있는 아무르 회교 사원을 찾는 신도들은 중앙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돌기둥들 중 하나의 내부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명백한 사실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의 표면에 귀를 가져다 대본 사람들은 잠시 후 부산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 회교 사원은 7세기경에 세워졌다. 그 기둥들은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있던 종교의 사원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 현상에 대해 아벤할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목민들에 의해 세워진 국가들의 경우 모든 석조 건축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타지인들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돌기둥 내부에 그 <알렙>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내가 모든 것들을 보았을 때 나는 알렙을 보았따가 그러고 나서 그것에 대해 잊어버린 것일까? 우리들의 정신에는 망각으로 뚫려있는 수많은 구멍들이 있다. 나 자신 또한 세월이라는 슬픈 풍상 작용 속에서 베아뜨리스의 모습을 변질시키고, 상실해가고 있다.




에스또라 깐또에게



 








※ 보르헤스의 글은 처음 접했을 때 쉬이 읽히지 않는다. 묘사나 설명이 많지 않고 바로 아이디어를 글로 만들어 제시하기 떄문인데, 하여 주석이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로 그 주석을 또한 하나의 유희로 장치해 가지고 노는 것이 보르헤스다 보니... 하지만 보르헤스의 유희에는 악의가 없고 큰 피해가 없으므로 그대로 즐기며 읽어도 무방하다. 더군다나 역자께서 찾아놓으신 주는 친절한 듯 까칠한 보르헤스 글을 조금이나마 매끈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바, 주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사서 읽으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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