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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Sleeping Beauty by 국립발레단 KNB

by Vanodif 2016. 11. 8.








다양한 사진이 있는 기사 : http://newsculture.heraldcorp.com/sub_read.html?uid=90389&section=sc165



훌륭한 해설이 있는 기사: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1106_0014499382&cID=10701&pID=10700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직접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다. 차이콥스키의 3대 고전발레 중 첫 번째 작품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고전발레의 교과서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초연 안무는 서막(오로라 공주의 생일 축하 파티), 1막(오로라 공주의 16세 생일 파티+가시에 찔림), 2막(데지레 왕자가 오로라 공주를 구함), 3막(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결혼 파티)의 총 네 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장 4시간에 걸친 공연이라 한다. 그 작품을 루돌프 누례예프가 조금 줄이고 변형시켜 안무를 했고, 또 다른 안무가들의 작품이 있었을 텐데, 이번 국립발레단이 올린 작품은 마르시아 하이데 Marcia Haydee의 안무다.


마르시아 하이데는 브라질 출신 발레리나로, 국립발레단 현 단장님이신 강수진 님이 독일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에 있었을 때 거의 어머니처럼 영향을 끼친 분이시라 한다. 지금은 안무가와 단장을 하고 계시고. 이번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오셔서 안무지도를 해주셨다고.


프티파나 다른 안무가들의 안무를 보면 주인공은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임이 확실하다. 오로라 공주는 1막부터 3막에 걸쳐 계속해서 춤을 추고, 그 둘의 사랑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무에서는 악마 카라보스는 춤을 추지 않고 주로 마임을 담당하는데, 마임만으로도 카라보스는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프티파의 버전에서는 남성 무용수가, 누례예프 버전에서는 여성 무용수가 카라보스를 연기하는데, 어떨 때는 도도하고 오만하면서도 어떤 때는 익살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딱히 안무다운 안무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웠지.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마르시아 하이데의 안무는 바로 이 카라보스를 적극적으로 무대 위로 끌어낸다. 그리고는 전체 이야기를 카라보스(악)와 라일락 요정(선)의 대결구도로 만든다. 그리하여 자칫 잘못하면 좀 부산스러울 수 있는데, 그것이 전체의 서사는 카라보스와 라일락 요정이 끌고 가지만, 기교면에 있어서는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가 주인공인, 즉 주인공 커플이 두 커플이 되는 느낌을 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차라리 오로라 공주와 데지레 왕자의 역할을 대폭 줄이고, 차라리 카라보스와 라일락 요정을 위한 내용을 새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무튼, 하이데의 이 안무는 실로 마임만 부여하기엔 너무 아깝도록 매력적인 카라보스라는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여, 이 발레를 훨씬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던 나는, 처음 보았던 금요일에는 이영철 님이, 토요일 낮공연엔 김기완 님이, 그리고 마지막 일요일 공연에는 이재우 님이 연기하신 세 명의 카라보스를 즐길 수 있었다. 와... 정말 짜릿했다. 거기에 대한 설명은 좀 있다 쓰기로 하고.


에또, 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마임으로 유명한데, 하이데는 네 시간의 러닝타임을 150분으로 줄인 만큼 많은 마임을 삭제했다. 그래서, 남겨둔 주요 마임으로는 공주 생일 파티 때 카라보스가 등장해 "너희는, 잊었지, 나를, 왜?" 와 "저 공주는 예쁘지. 암. 저 공주는 조그맣지만 자라고 자랄 거야. 그럼. 하지만! 어느 날 가시를 발견하게 되고, 그 가시에 손이 찔리고, 몸에 힘이 풀리면서... 죽게 돼!" 그러고는 16세 생일 파티 때 공주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자, 당황해하는 왕에게 와서는 "너희가, 잊었지, 나를, 어? 그래서 저 공주가 가시에 찔려 죽은 거야! 으하하하!" 하고 마임을 한다. 그 직후 라일락 요정이 등장해서는 카라보스에게 "당신이 저 공주를 가시에 찔려 죽게 했나요?" 라고 마임을 하고, 카라보스는 "그렇소. 내가 했지" 대답을. 그러자 라일락 요정이 "아니예요. 공주는 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라고 마임을 한다. 


그 외 마임으로는, 공주의 16세 생일 파티 때 왕이 공주에게 "너를 봐라.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는 부분과, "네가 이렇게 자랐으니, 이제 결혼할 때가 되었다. 이들 왕자들 중에 신랑을 구해 보아라"라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해 못한 마임이 있는데 말이다. 라일락 요정의 가슴께에서 카라보스가 뭔가를 받아내 손에서 휘휘 젓더니 입 속에 집어 넣는 마임이 뭔지 모르겠다. 아마도 라일락 요정의 에너지를 받아 자신의 힘을 충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만일 그게 맞다면 라일락 요정은 참 신기한 캐릭터이지 뭔가. 악에게마저 차별 않고 에너지를 나눠주는 존재라거나거나거나? 암튼.


총 4막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하이데는 2막으로 줄였다. 서막과 1막을 1막으로, 2막과 3막을 2막으로 줄인 것이다. 극의 흐름에 무리가 없이 잘 줄였다고 생각한다. 


하이데버전 1막에서는 처음 카라보스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마임을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공주의 16세 파티에서 발끝으로 서서 아라베스크를 한 상태에서 네 명의 왕자들과 차례로 손을 잡고는 한 바퀴씩 도는 '로즈 아다지오'가 유명하다. 보기에는 몹시 아름답지만, 발레리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동작이라 한다.


2막에서는 사냥을 간 왕자 데지레가 라일락 요정의 인도로 잠든 오로라 공주를 만나게 되고, 영혼인 듯 몽환적인 오로라공주가 왕자와 더불어 아름다운 춤을 춘다. 1막에서의 16세 발랄한 공주와 2막에서의 몽환적인 춤을 비교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리고 결혼식에서는 당당하면서도 즐거워하믄 공주의 춤을 보는 것이 또한 묘미이고.


2막 후반의 결혼식 장면은 디베르티스망이 압권이다. 각종 동화 속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미녀와 야수, 라푼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알라딘과 자스민?, 개구리왕자, 신데렐라, 그 외 내가 이해하지 못한 세 커플이 있었다. 디베르티스망의 메인 무용수로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원작자인 샤를 페로의 다른 동화 속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파랑새와 플로렌스 공주, 장화 신은 고양이와 레이디캣, 빨간 두건과 늑대가 그들이다. 그리고 알리바바와 네 보석들이 등장하는데, 알리바바가 페로의 동화였나?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걸로 아는데... 암튼, 화려한 기술과 기교가 등장하여 흥이 가득한 무대를 만든다. 알리바바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춤이 많은 갈채를 받았다. 파랑새와 플로렌스 공주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탁월한 우아함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고. 그리고 장화신은 고양이와 레이디캣은 너무나 귀엽고 익살스런 안무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빨간 두건과 늑대도 재치있는 위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개구락지 왕자님은 디베르티스망 내내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연기하느라 수고 많으셨고 말이죠.


그런데 하이데 버전은 음... 한 번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장치가 있었다. 바로, 뒤의 등장인물들이 다들 각기 연기를 한다는 점이었는데, 그러니까 메인 무용수들이 앞에서 솔로 혹은 파 드 되, 파 드 트루아 등으로 춤을 추는 동안에 뒤의 배경 인물들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알리바바의 세 보석이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추는 동안, 뒷배경의 신데렐라가 야수에게 자리를 빼앗겨서는 자기 자리를 뺐겼다며 시종장에게 일러 바치고, 야수는 아니야, 난 그냥 여기 앉는 거야, 라며 너스레를 떨어서 신데렐라는 할 수 없이 비어 있는 앞자리에 가서 앉게 되는 부분이라거나, 난쟁이들을 불러 이동시키는 부분이라거나, 개구리 왕자와 공주가 슬쩍 사라지는 부분이라거나... 뒷배경 분들의 연기를 보다 보면 깜빡, 하고 메인 무용수분들의 무용이 끝나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는 함께 간 일행도 그랬다 말한 점이었다. 나는 세 번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들이 신경 쓰이면서도 재밌으면서도 더 보고 싶었는데, 한 번만 본 사람들은 얼마나 아까웠을까. 다행히 주인공들이 춤을 출 때는 배경분들이 각기 연기를 자제해주셨지만, 잘못하면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 수도 있고, 또 잘 하면 훨씬 풍성한 감상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될 것 같은 장치였다. 개인적으론 재밌었어요.


에또... 생각난 것은, 하이데 버전에서는 카라보스가 무대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심지어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에마저 등장한다. 이에 대해 하이데는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선과 함께 공존한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 하고 싶었던 말이 생각났다. 군무. 내가 군무를 좋아하는데, 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 하이데 버전에서는 군무가 특별히 매력적이진 않았다. 프티파 버전에서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났더랬는데 말이다. 이번 군무를 보면서 느낀 점인데, 나는 여성 군무를 좋아한다. 여성 군무에 비해 혼성 군무는 훨씬 다채로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수평 이동 뿐 아니라 수직 이동이 화려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지. 이는 남성 무용수들이 여성 무용수들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군무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확실히 혼성 군무 최고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동작이 훨씬 화려해지는 것이 맞다. 다만... 집중도가 떨어진달까. 여성 만으로 이루어진 군무를 보면 몹시 섬세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동작들이 많이 쓰인다. 특히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가 그러했는데, 해서, 많은 여성 무용수분들의 단체 집중력이 자아내는 농밀한 분위기와 긴장감이 좋았거든. 말하자면 좁고 깊다 할까. 그런데 혼성 군무에서의 여성 무용수는 남성 무용수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한다. 해서 동작은 화려하지만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도의 집중력이 느껴지지 않아 매력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군무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성 군무가 있고 남성 군무가 있고 혼성 군무가 있다. 여성 군무에서는 여성 무용수들이 각자의 연기를 전체에 맞게 집중하여 연기한다. 혼성 군무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지탱하고 여성은 남성의 도움으로 화려한 도약과 기술을 펼친다. 남성 군무에서는 남성 특유의 힘과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데 말이다. 남성 군무에서 남성 무용수가 다른 남성 무용수를 리프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여성 군무에서 여성 무용수는 다른 여성 무용수를 들지 않을까? 또는 여성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를 드는 동작은 나올 수 없는 걸까?


물론 여성이 가볍고 남성이 힘이 세니, 남성이 여성을 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무난하다. 그런데 여성은 남성을 들어선 안 되는 걸까? 여성 한 명의 힘이 부족하다면 여성 둘이서 남성 한 명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가능할 테다. 내가 알기론 남성이 여성을 들어올리는 것도 그냥 들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 무용수가 호흡 맞춰 도약을 하는 순간에 들어올림으로, 그 무게를 굉장히 덜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호흡만 잘 맞춘다면, 여성 무용수들이 남성 무용수를 들어올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러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인데... 흐음. 나도 이 부분에서 좀 생각이 많이 복잡했다. 남성이 여성을 리프트하는 것과 남성이 남성을 리프트하는 것에 비해, 확실히 여성이 남성을 들어 올리는 것에는 메리트가 턱없이 부족하긴 하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그 의미를 찾아 보자면... 강한 지탱의 부드러운 도약이 아니라, 연약하고 부드러운 지탱과 함께 강하면서도 부드러워진 도약과 기술, 정도가 될까나? 뭐, 새로운 시도 자체 만으로도 가치는 있을 터. 음. 그런데 내가 발레 초보이니 말이다. 어쩌면 여성 서포트의 남성 도약 안무가 이미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여성이 여성을 들어 올리는 안무라거나. 있다면 보고 싶네ㅡ는 아 또 삼천포. -_-












아 이 매력적인 카라보스. -_ㅜ

토요일 저녁 공연이 완전 대박이었을 텐데.

다름 아닌 김지영 님의 오로라였다!

거기다 이재우 님의 데지레에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 ㅜㅠ

아... 저 세 분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

토요일 저녁엔 상형문자 스터디가 있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아.

속상하네.









공연일자로는 둘쨋날이고, 내가 본 것은 첫날이었던 금요일 공연.


오로라: 박슬기

데지레: 허서명

카라보스: 이영철

라일락 요정: 정은영


박슬기 님이야 뭐... 길쭉한 팔다리에 뽀얗고 하얀 미녀. 너무 아름다우셔서 멀리서도 빛이 나는 분이다. 열정적인 연기와 로맨틱한 연기를 모두 잘 소화한다는 평을 받는 분이신데, 이번에 느낀 점이 있다. 동작이 부드럽다는 거. 과하지 않은데, 연결 동작이 부드럽다. 그리고 음... 뭐랄까, 타이밍이 좋다? 보면서 '이 분 참 영리하시구나'란 생각을 했는데, 살짝 엇박으로 연기하시는 것이 오히려 동작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내어서 신기했다. 이 금요일엔 2막에서 넘어지셨어서 다들 가슴이 철렁했었다. 큰 실수를 하신 건 아니었는데, 들어가시다가 미끌어지신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의 결혼식 장면에서 너무나 훌륭한 그랑 파 드 되를 해내셔서 '프로는 프로구나'를 확인했었다. 그 가녀린 몸매에 그렇게 강한 멘탈을 갖고 계시다니. 실수도 자연스레 넘기셨던 분. 멋지셨다.


박슬기 님은 어려운 동작을 쉽게 해내셔서 그 동작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큰 장점이자 또 엉뚱하게 불리한 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1막에서의 그 어려운 '로즈 아다지오'에서 말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라든가, 다른 발레단의 영상을 보아도 그 부분에서 오로라 역 발레리나께서는 팔을 덜덜덜덜덜덜덜 떨면서 힘겹게 연기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거든. 그런데 박슬기 님은 감쪽같이 해내셔서는, 도무지 그 장면이 어려워 보이지 않더란 거다. 깔끔하게 해내는 분이다. 모든 동작이 부드럽고 깔끔해. 그만큼 실력이 탄탄하게 뒷받침된다는 증거일 테다. 


데지레 왕자 역의 허서명 님은 이번에 처음 이름을 보았다. 이전에도 보았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도약 높이 좋으셨고, 회전이 깔끔하시던. 공중 2회전의 연속, 연속, 또 연속. 그 어려운 공중 2회전의 반복을 매번 깔끔하게 해내셨다.


라일락 요정 정은영 님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분이신데... 라기엔 내가 기억하는 분이 몇 없다. -_- 암튼, 아휴, 미친 비율이라고 밖에... 쬐그만 얼굴에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휙휙 뻗으실 때마다 우아함이 샤라락*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품위 있고 우아한 라일락 요정의 연기를 잘 소화하셨다.


그리고 카라보스 이영철 님. -_ㅜ 아...  역시 이영철 님은 좋다. 강한 역이나 악역을 평소 많이 맡으시기는 하는데, 단순한 악역을 연기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번 세 분의 카라보스 중에 난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가 가장 좋았거든. 하이데 버전에서의 카라보스는 가부끼 분장인 듯 하얀 얼굴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영철 님이 연기하신 카라보스는 넘 웃겨서 계속 웃었다. 카리스마 가득한 악마인데도 왜 그렇게 귀여운 겐지. 그러니까, 토요일의 김기완 님이 연기하신 카라보스는 말하자면 위엄 있고 자존심 드높은 카라보스로서, '감히 나를 초대하지 않았는가!'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는 '나 빼고 너네끼리 노니까 재밌냐? 흥! 나 삐졌어'란 느낌이랄까. 그러면서 '너희는 왜 나를 잊은 거야?'라고 따졌을 때 왕이 '저기 목록을 확인해 봐'라고 하자, 득달같이 달려가서는 목록에 코를 박고 이리저리 살피던 모습, 그리곤 흥! 때려 치워! 라는 듯 핑, 돌아서던 모습이라든가. 가장 귀여웠던 부분은 음... 뭐랄까. 이영철 님께서 의도하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말이야,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가 라일락 요정을 짝사랑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이 카라보스는 라일락 요정 앞에만 가면 몸에 힘이 빠져. 으하하. 막 너무 예뻐하는 것 같은 거다. 2막에서 라일락 요정과 둘이서 싸우는 장면에서도 '너를 무찌르겠어!'가 아니라, '와아, 이렇게라도 너랑 (싸우며) 놀 수 있어서 넘 좋다!'란 느낌이었달까. 암튼 굉장히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도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카라보스를 연기하셨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커튼콜 때까지 연결된다. 커튼콜 때, 모든 무용수분들이 함께 앞으로 걸어나와 인사를 하고는 뒷걸믐쳐 들어가시는데, 카라보스는 망또가 길어서 뒷걸음치기 힘든 것이지. 그래서 김기완 님과 이재우 님은 망또를 한 손으로 잡고 뒷걸음을 치셨다. 그런데 우리의 이영철 카라보스는요? 혼자 휙~! 뒤로 돌아서서는 관객에게 등을 보인 채 도도하게 걸어 들어가더란 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마다! 으하하. 자신이랑 안 놀아줬다고 삐져서 막 저주해대고 끝까지 어떻게든 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무대에 등장하는 귀여운 은따 카라보스의 이미지가 커튼콜 때까지 쭉 이어져서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보고 싶단 말이지.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 정말 유쾌하게 잘 보았습니다.










토요일 2시 공연.


오로라: 김리회

데지레: 박종석

카라보스: 김기완

라일락 요정: 박슬기


김리회 님은 회전이 깔끔하셨다. 회전을 하는데도 몸이 기울지 않고 꼿꼿하시던. 회전의 속도도 빠르셔서 시원시원했다. 그런데 '로즈 아다지오'에서 박슬기 님께서 워낙 매끈하게 해내셨어서는.... 김리회 님은 시간이 아주 조금 지체되었다. 덕분에 오케스트라 지휘자 님의 재치 있는 연주가 돋보였던. 천천히 연주해 주셨어요, 하하. 하지만 덕분에? 관객들은 '아, 이 동작이 정말 엄청 어려운 거구나'를 깨달았고, 큰 박수가 쏟아졌다. 전체적으로 실수 하나 없이 잘 하셨다.


박종석 님은 음... 도약 높이가 좋으셨던 것 같은데... 헷갈린다.;;; 담번엔 좀 더 주의 깊게 볼게요. 두 번째 공연에서 뒷배경의 캐릭터들에게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ㅡㅜ


박슬기 님의 라일락 요정이야 뭐. 뽀얗고, 아름답고, 빛나시고, 부드럽고. 세상 혼자 사는 분이시다 뭐.


그리고 김기완 님의 카라보스. 위에 적었듯, 김기완 님의 카라보스는 카리스마 가득한 캐릭터였다. 음울하고 무거우며, 자존심 드높은 악의 제왕 같은 이미지. 신경질적이라기보단 분노해야 할 것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느낌이 들었다. 진중하고 멋진 카라보스, 잘 보았습니다.









마지막 일요일 공연.


오로라: 박슬기

데지레: 허서명

카라보스: 이재우

라일락 요정: 정은영


카라보스를 제외하곤 모두 금요일 공연과 같은 캐스팅이었다. (마지)막공연인 만큼 다들 아낌 없이 보여주셨고. 훨씬 활기차고 신나는 무대였다. 박슬기 님은 실수 한 번 없이 끝까지 아름답게 잘 해내셨는데, 어휴, 이 막공연에서의 '로즈 아다지오'는 어찌나 매끈하게 연기하시는지. '어머, 쉬운가봐요?' 싶을 정도였다. 그 어려운 동작을 그렇게 쉬워 보이게 해내시려면 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셨던 걸까.


나머지 분들은 같으니까 넘어가고.


이재우 님. 거의 2m에 가까운 최장신. 하이데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이재우 님을 보고는 큰 키에 놀라고, 큰 키에도 불구하고 동작이 빨라서 놀라셨다고. 그리고는 2막에서 다른 남성 무용수들이 카라보스를 들고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데, 무용수분들이 이재우 님께 '무겁다, 다이어트 좀 해'라고 놀리셨다고. 아니, 이재우 님 뺄 살이 어딨다고. 


뭐, 그랬다. 처음 등장씬에서 가마를 타고 이재우 카라보스가 등장했을 때, 머리가 천장에 닿는 건 아니야? 싶었던. 존재 자체 만으로도 카리스마가 가득 퍼졌다. 그리고는 그 긴 팔을 휘잉~! 하고 뻗으면 카리스마가 척! 손을 펼치면 아...! 손 마저도 커...! 그 손에서 장풍이라도 휘휘 나올 것 같고 말이다. 암튼, 이재우 님의 카라보스는 뛰어난 신체조건 덕분인지 엄청난 효과를 냈다. 쓰고 보니 토요일 저녁 공연에서 이재우 님의 데지레와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가 어땠을까가 더욱 궁금해진다. -_ㅜ 무튼. 이재우 님의 연기력은 탁월하다. 요정들을 위협하면서 순간 고개를 뒤로 젖히는 동작이라든가, 2막에서 데지레/라일락과 싸울 때 박쥐들의 날개 뒤에 숨어 그들을 훔쳐 보면서 고개를 까딱까딱 날짐승(박쥐)마냥 돌리는 동작 등 재치가 세밀하게 콕콕 박힌 연기를 하셨다. 앞서 이영철 님의 카라보스는 라일락 요정을 짝사랑한다는 느낌을 주었던 반면, 이재우 님의 카라보스는 오로라공주와 데지레 왕자 자체를 탐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니까 라일락 요정은 자신이 갖고 싶은 '아름다운 것들'을 번번이 채어가는 경쟁자인 것이지. '아 얘도 뺏어가는 거야?'라는 느낌. 그래서 라일락 요정과 싸우는 동안, 카리스마와 매력이 가득하지만, 전교 1등에게 번번이 지는 만년 전교 2등의 느낌이 들었달까.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것들은 죄다 라일락 요정만 좋아하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그래서 뒤틀려져 버린 귀여운 악마 같았다. 


아니, 이재우 님의 카라보스는 말이야, 1막 마지막 커튼이 다 내려간 후에도 한참 동안 무대 중앙에서 턱에 손을 괸 채 서 있다가 마지 못한 듯 느긋하게 들어가시더니, 모든 공연이 끝나고 커튼이 내려간 후에도 혼자 무대 중앙에 서서 한참 동안 서있는 모습에 계속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비록 라일락에게 번번이 지긴 하지만, 그래도 관객 늬들은 내가 제일 좋잖아?'라는 듯 말이다.


즐거웠다. 마르시아 하이데의 카라보스는 참 매력적이어서, 카라보스를 보는 재미가 엄청났다. 그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라일락 요정 캐릭터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아 밋밋하게 느껴진 점이 살짝 아쉬웠지만, 카라보스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끌어낸 것만으로도 훌륭한 안무였다 생각해. 멋지고 즐거운 공연 잘 보았습니다.







매력적인 카라보스ㅡ김기완 님.














예당은 최고다.

이 멋진 발레를 이 멋진 공연장에서

믿을 수 없도록 착한 가격에 볼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국립발레단도, 유니버설 발레단도 고맙고

예당은 정말 엄청나게 많이 고맙다.





아래는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에 관한 동영상이다.

이 동영상 올려주신 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