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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예르미타시 박물관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by Vanodif 2018. 1. 10.






예르미타시 박물관전 홈페이지: 

https://russia2017.modoo.at/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259934&listType=gallery



티몬 홈페이지: 

http://www.ticketmonster.co.kr/deal/792517486/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전>은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프랑스 회화, 조각 소묘 등 80여 건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멋진 전시다. 그런데 이 전시의 또 다른 근사한 점이 바로 뛰어난 도록이다. 27,000원이란 가격은 다소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 안에 실린 알찬 내용을 보자면 결코 지나친 가격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구석구석 꼼꼼한 작품 설명과 논문까지 첨부한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3만원 이하의 가격으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애쓴 느낌까지 들 정도의 도록이기에, 어지간하면 구입해서 프랑스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힐 뿐 아니라, 전시 작품의 세밀하고 풍성한 감상을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을 받기를 권한다.


맘에 드는 도록의 경우 그 안의 내용이 아까워 이 공간에 옮겨 적는 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에 한해 발췌해서 타이핑하기 때문에, 내가 적지 않은 대다수의 훌륭한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빠져 있을 것이다. 앞부분의 서문과 큐레이터의 설명부터가 훌륭하기 때문에 일부 발췌한다. 파란색 글자는 도록의 내용이다.






[서문 - 장상훈, 이양수, 김승익(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겨울 궁전이 자리 잡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703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네바 강 연안의 습지에 세운 도시입니다. "유럽을 향한 창"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8년까지 러시아의 수도로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이후 표트르 1세의 딸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의 재위 시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많은 궁전이 들어섰습니다.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건축가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가 설계한 겨울 궁전은 가장 화려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8년이라는 오랜 건설기간 때문에 1762년 완공된 겨울 궁전의 주인이 된 사람은 예카테리나 2세였습니다. 그해 황제로 즉위한 에카테리나 2세는 겨울 궁전 가까이에 '은자의 집(hermitage)'으로 불린 작은 별궁을 만들고 이곳에 그녀가 수집한 예술품들을 보관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르미타시박물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재위 기간에 예르미타시는 크게 확장되었고, 이 드넓은 궁전은 현재 3백만 점의 방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중략)


유럽 미술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프랑스 미술입니다. 15세기부터 21세기까지 폭넓은 시기의 작품으로 구성된 프랑스 미술 컬렉션은 르네상스 이후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만일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프랑스 미술을 제대로 감상하고자 한다면, 단연 예르미타시박물관을 방문해야 합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미술 컬렉션은 제정 러시아 시기의 황실과 귀족, 학자, 기업가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으로 수집되었습니다. 특히 계몽 군주로 자처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노력이 매우 컸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에 대한 네이버 캐스트 정보는 사진을 클릭하세요.)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를 비롯한 동시대 저명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했던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유럽 각지의 저명한 개인 소장가들의 소장품을 대거 구입했습니다. 특히 17-18세기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수집했습니다. 그녀가 생전에 수집한 유럽 회화는 거의 4천여 점에 이릅니다.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은 스트로가노프 백작이나 유수포프 공작과 같은 동시대 귀족들에게도 이어져 18세기 말 이후 많은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들이 러시아 공공건물과 상류층 저택을 장식했습니다. 이러한 개인 소장품들이 20세기 초에 국유화되면서 오늘날 예르미타시 박물관은 더욱 다채로운 프랑스 미술 소장품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프랑스 미술 컬렉션은 예르미타시 박물관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지난 300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와 프랑스의 긴밀한 문화적 유대관계가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중략)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는 기존 전시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작품들도 선보입니다. 18-19세기의 프랑스 궁정과 아카데미의 조각 작품들과 샤를루이 클레리소의 건축 소묘가 대표적입니다. 프랑스 미술의 전체적인 경향 안에서 이 작품들은 이번 전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해 줄 것입니다. 이밖에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의 빛나는 별이었던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과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20세기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준 앙리 루소의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이번 전시에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협의의 최종 시점에 선정된 베르나르 뷔페의 대형 작품 <거울 궁전> (1992)은 이번 전시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아 전시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예르미타시박물관이 연 첫 서유럽 개인 작가전의 주인공이 20세기 프랑스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베르나르 뷔페였고, 이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면면히 이어져온 문화적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 도록에서는 프랑스 미술의 흐름과 그 수집의 역사, 문화적 배경에 대한 다양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핵심 전시품이 제작된 17-18세기의 프랑스 미술에 대한 글과 미술품 수집 계층이 다변화된 19세기 이후의 프랑스 미술 수집을 다룬 글은 프랑스 미술의 전개와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줄 것입니다.


(후략)









이 전시회 도슨트가 그렇게 좋다는 평을 보았는데 두 시간 밖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도슨트는 고사하고 미리 구입한 오디오 가이드 들을 시간도 없었다. 어떤 작품들이 왔는가를 살펴보고 급히 사진 찍고 모든 작품 앞에 친절하게 설치되어 있는 설명을 읽으며 초간단하게 작품들을 감상한 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1관 겨우 다 보았는데 폐관 시간이 되어서는 허겁지겁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전시회의 감상은 1회성이 아니기에 고작 두 시간 여유를 갖고도 배짱 좋게 갔던 것이었고. 날이 살짝 풀리면 산책 삼아 걸어서 다녀와야겠다. 이번엔 넘 급한데 바로 약속이 또 있었어서 여유롭게 감상하진 못했다.


모든 작품 앞에 설치된 설명 뿐 아니라 모든 작품을 플래쉬 없이 사진으로 찍을 수 있게 해주시는 배려는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엄이다. 도록부터 사진까지 관람객을 위한 세심하고 정성스런 배려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ㅡ인데 내 블로그를 자주 보시는 분들은 뭐, 이제 내가 찍는 사진 따위 기대하지 않으시리라. 네. 그렇게 찍어대어도 여전히 발사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아도 이 정도면 직접 가서 보시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 따위로 사진을 찍는 것은 가능한 많은 사람을 원작 앞으로 끌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서... 는 *뿔. 걍 손이 발손이에요.


가능한 많은 그림과 설명을 찍으려 했지만 설명이 붙어있는 거리가 다 달라서 크기가 들쭉날쭉하거니와, 어떤 것은 심히 흔들렸거나 식별이 불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아보기 힘든 것은 그냥 버릴 것이니,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시길 바란다. 자, 그럼 친절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도록의 설명은 여전히 파란색으로 표시한다.

※ 예르미타시박물관전 홈페이지에 있는 몇 작품들은 훨씬 보기가 좋으니, 그 사진들은 그냥 싣는다. 그곳에서 가져온 사진들은 클릭하면 전시회 홈페이지로 연결되도록 설정하겠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 출력이다. 입구의 회랑을 지나면 이 작품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깁니다.






1부 고전주의 Classicismㅡ 위대한 세기의 미술


17세기의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통치 아래 유럽에서 강력한 전제국가로 성장했고 막대한 경제적 부를 쌓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젊은 프랑스 화가들이 '위대한 세기'를 보여주는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을 꾸미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다. 1648년에는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가 결성되어 미술에 있어서도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형성되었다. 아카데미는 니콜라 푸생의 작품을 전형으로 삼아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보편적인 원리와 질서, 안정과 통일성을 중시하는 '고전주의' 양식을 지도 이념으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나 로마의 고대 예술을 모방하고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주제로 한 그림이 선호되었다. 풍경화에서는 클로드 로랭이 고전주의의 원칙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냈다. 그는 실제와 가상이 조합된 풍경을 배경으로 신화와 성경이 인물이 등장하는 이상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궁정과 아카데미에서 고전주의 양식이 지배적이었지만 한편에서는 르 냉 형제와 같이 실제 삶 속의 평범한 모습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고, 귀족들의 화려한 모습과 일상을 그린 작품도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렸다.






































































































































































2부 로코코와 계몽의 시대 Rococo and the Age of Enlightment


프랑스 미술에 있어서 18세기는 변화의 시대였다. 18세기 초 루이 14세가 사망한 이후 프랑스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인 침체를 겪어야만 했다. 1724년까지 지속된 이 전환기에 화가들은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합리적 정신보다 인간 감정을 더욱 중시했다. 앙투안 바토가 그린 '페트 갈랑트(우아한 연회)'는 궁정의 격정적인 휴의 속에 자리잡은 불안함과 쓸쓸함을 담아내면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냈고, 아카데미에 있던 프랑수아 부셰 역시 화가의 감각에 기초한 비현실적인 색채로 자기만의 표현 영역을 구축해갔다. 이 새로운 흐름은 '로코코'라 불리는 장식적 양식의 출현을 낳았고, 회화 뿐 아니라 장식 예술과 건축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로코코 양식이 유행했다. 한편, 1730년대 이후 계몽주의 사상이 확산되고 가족에 대한 가치, 겸손함, 진실한 감정과 같은 부르주아 계급의 미덕이 중시되면서 로코코 양식과 반대되는 경향이 형성되었다. 이런 경향은 가장 대중적인 장르라 할 수 있는 풍속화와 정물화, 초상화에 먼저 나타났다. 1760년대 이후에는 자연과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사상이 큰 관심을 끌면서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