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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지젤에 대한 이전 포스팅 3 : http://vanodif.tistory.com/756 (그램머피의 지젤)
막공연 예약. 황혜민 님과 시몬 츄진 님의 공연.
발레 <지젤>에 대한 어지간한 이야기는 앞에서 다 했고... 는 줄거리는 이야기 한 적 없었나? 그런데 지금에 와서 하려니 좀 귀찮다. 간단히 말하자면 춤을 좋아하나 심장이 약한 시골 처녀 지젤이 '춤을 추면 죽는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놀고 있는데, 그런 평민 지젤에게 귀족 알브레히트가 반한다. 당시에는 신분을 넘어 결혼할 수 없는 사회제도였기 때문에, 그 둘의 결혼은 처음부터 불행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 없다. 알브레히트는 귀족의 상징인 긴 검을 숨긴 채 평민차림으로 지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지젤은 그런 알브레히트에게 마음을 준다. 지젤을 짝사랑하는 평민 청년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가 귀족임을 알게 되어 기회를 노린다. 그러던 중 알브레히트의 약혼녀와 아버지가 귀족들을 거느린 채 사냥을 나오고, 지젤의 집에 머문다. 때마침 마을의 포도축제에서 지젤이 올해의 여왕으로 뽑히고, 다들 즐거워하는 가운데, 힐라리온이 사람들 앞에서 알브레히트가 귀족임을 밝힌다. 지젤이 충격에 휩싸인 동안 지젤의 집 안에서 쉬고 있던 알브레히트의 약혼녀가 나오고, 그녀가 내민 손을 알브레히트가 잡는 것을 보며 지젤은 광기에 빠져든다. 극심한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지젤은 광란의 춤을 추다 죽음에 이른다.
2막은 윌리들이 등장하는 백색발레 Ballet Blanc이다. 남성에게 버림 받아 한을 품은 채 죽어 영면에 들지 못하는 처녀 유령 윌리들의 여왕인 미르타는 새벽 12시부터 동이 트기 전인 4시까지 윌리들을 깨워 춤을 춘다. 그 때 숲을 지나는 남성들은 윌리들의 저주에 걸려 춤을 추다 죽게 되는데, 힐라리온이 여기에 휩쓸려 죽음을 당한다. 그러다 지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알브레히트가 윌리들에게 걸려들게 되고, 그런 알브레히트를 지젤이 보호하며 계속해서 미르타와 윌리들에게 알브레히트를 살려줄 것을 간청하지만 거절 당한다. 밤새 알브레히트와 함께 춤을 추는 지젤. 결국 동이 트고 윌리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증오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은 지젤은 처녀 유령 윌리가 되지 않고 영면으로 들어가고, 알브레히트는 구원에 이른다는, 죽음 후에도 여성의 희생만을 미덕으로 강요하는 시시하디 시시한 내용이다. 왜 이런 내용이 만들어졌을까요? 이것을 만든 사람이 남성이었기 때문이죠. 전통적으로 예술은ㅡ예술 뿐이겠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분야에서 그러하지 않겠는가ㅡ생산자도, 향유자도 철저히 남성이었다. 여성은 그들이 생산하고 향유하는 대상, 즉 물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스토리가 버젓이 예술품으로 각광 받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와 같은 여성은 그런 전통성에 철저히 길들여져, 그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토록 즐거워하는 것이지. 내 입장에서의 변명을 해볼까. 한심한 것은 한심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서의 예술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기존의 것에서 취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그 자체로 취하고 누리는 입장이다. 음. 변명이 되었을까?
1. 문훈숙 단장님. 역시나 시작 전에 등장하셔서 특유의 기품있는 몸짓으로 우아하게 발레마임과 지젤의 내용을 설명해 주셨다. 이 시간이 참 너무 좋단 말이지. 발레의 대중화란 이렇게 하는 겁니다, 를 몸소 보여주시는 거다. 오늘도 빠뜨릴 수 없는 사랑고백을 해볼까. 사랑합니다, 문 단장님.♥
2. 황헤민 님. 음... 말해 무엇할까. 요즘 난 황혜민 님의 발레에 흠뻑 빠졌다. 발레를 보고 나오면서 일행과 계속해서 되풀이한 말이 있다. "황헤민 님은 참 민폐 캐릭터야". 민폐 캐릭터가 맞다. 요즘 한국 발레리나/리노분들은 어지간한 서양인들 옆에 있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비율을 자랑한다. 일반인과 함께 있으면 차원이 다른 날씬함과 아름다움을 뽐내는 분들이지. 그런데 그런 발레리나분들을 죄다 오징어... 죄, 죄송합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발레리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오징어는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음... 그러니까... 그런 아름다운 발레리나분들을 죄다 국화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분이 바로 황헤민 님이다. 작은 체구임에도 길쭉길쭉한 팔, 다리. 사라질 것 같은 얼굴. 그런데 단지 그 외모 만으로 그런 평가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황혜민 님의 민폐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벼움에 있다. 단지 몸무게만 가벼운 것이 아니라, 발레 연기 자체가... 대부분 발레리나분들의 연기를 보면 뼈가 없는 연체동물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황혜민 님은... 일행은 그녀를 두고 "먼지 같다"고 평했다. 무슨 말인지 딱! 맞다는 감이 오는데, 아니, 발레리나를 두고 '먼지'라니. 그만큼 가볍다는 말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그러한 것인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먼지라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깨끗한 먼지"라고. -_- 안다. 별로 다르지 않지. 하지만 '깃털' 보다도 가벼운 그 느낌을 달리 어떤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한숨'? 그래. 한숨, 정도 되려나.
발레리노 시몬 츄진 께서 황혜민 님을 들고 동작을 하시는데, 그 린넨 천 조각 있잖아. 그걸 손에 들고 하늘하늘 흔드는 것 같았다. 마치 손가락으로 탁, 튕기면 이리 휭, 저리 핑, 날아다닐 듯한 무게감. 어떻게 사람의 몸을 하고 그런 표현을 할 수가 있지? 보는 내내 황혜민 님의 그 비인간적인 연기에 넋을 잃었다.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아서는. 부디 오랫동안 활동해주세요.
황헤민 님은 발끝으로 걸을 때도 발등이 웨이브를 한다? 이 무슨... 동작 하나하나가 비인간적이다. 정말 너무 황홀했어.
3. 시몬 츄진. 1막에서 알브레히트는 존재감이 별로 없긴 하다. 해서, 딱히 굳이 시몬 츄진이어야 할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2막 윌리의 저주에서 추는 솔로에서 그 미친 앙트르샤. 아... 엄청난 점프력에 빠르고 정확한 앙트르샤가 대체 몇 번이더라? 생각지도 못한 화려함에 정줄 놓고 박수치느라 몇 번인지도 몰랐다. 완전 깜짝 놀랐어요.
4. 코르 드 발레. ㅜㅠ 내가 모든 발레 중 가장 좋아하는 한 장면. 지젤의 코르 드 발레는 팔을 머리 위로 아름다운 원을 그리며 허리를 꺾는 동작이 유명한데, 내게는 아라베스크 상태에서 열을 바꾸는 장면이 최고다. 그 부분만 보면 소름이 돋아. 이번에는 너무 좋았던 나머지 실제 눈물까지 찔끔 났는데, 그 부분 보면서 '내가 왜 이 <지젤> 공연을 한 번 밖에 예약하지 않았던가!' 하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무용수분들 힘내시라고 미친 듯 박수치고 싶은데, 그래야 하는데, 그 장면을 최대한 잘 감상하고 싶어서 박수 보다 더 집중하고픈 마음이 들어서 혼란스러웠다. 결국 마음껏 박수는 치지 못하고... 아... 박수쳐드리고 싶었는데... 지젤에서의 코르 드 발레는 최고입니다. 당신들이 주인공이에요. 이 부분이 끝나자마자 서운함이 몰려들었다. 이 장면 보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거잖아, 하며. -_ㅜ
5. 외국인 무용수. 이번 공연에선 유독 외국인 무용수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주/조연은 제외하고, 1막 디베르티스망에서 여성 2인무 중 외국인 무용수가 한 분 계셨다. 동작이 깔끔하고 선이 아름다워서 눈에 띄었던.
6. 이번 공연에선 1막의 축제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이전에도 이렇게 풍성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왜 그랬을까?
7. 김채리 님. 김채리 님이 요즘 유니버설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지젤>에 빠져든 것이 김채리 님 때문이었기 때문에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김채리 님의 그 광기 연기를 잊을 수 없다. 드라마에 강하신 인상을 받았는데. 2막에서의 성숙한 지젤의 이미지 역시 키가 큰 김채리 님께도 잘 어울렸던 것으로 인상에 남아 있어서, 김채리 님이 부쩍 생각났었다.
8. 어지간하면 충무아트홀에선 <지젤> 공연은 하지 않는 걸로 해주세요. ㅡㅜ 무대가 좁아서 무용수분들 부딪히실까봐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던 걸요. 무대와 가까운 점은 참 좋았으나, 발레 만큼은 화려한 동작이나 군무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특히 윌리들 군무의 경우 보통 24인무라 생각했는데, 무대 때문인지 18인무였다. 그 인원 만으로도 무대는 이미 꽉 차버렸지만. -_- 슬펐다구요. 무용수분들이 마음껏 신나게 동작을 펼치시는 무대를 보고 싶습니다. 굳이 충무아트홀이어야 한다면 3층 1, 2열은 판매하지 말아주세요. 2열은 그나마 무대가 조금 가리지만 1열은 정말... 비양심 좌석이더라. 충무아트홀 3층 1열을 판매하면서 앞으로 기대지 말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뒷좌석 사람으로서 그런 주의를 주셨던 것은 고마웠지만, 내가 1열이었다 해도 기대고 싶었을 듯. 무대를 그렇게 많이 가리는 좌석을 판매하면 어떻게 해요. 공간이 좁아선지 오케스트라도 없고! 아 증말. ㅜㅠ 날것의 연주소리가 아쉬운 것도 아쉬운 것인데, 오케스트라는 무용수분들의 동작에 음악을 맞추어 줄 수 있는 반면, 녹음된 음악에 동작을 맞추시는 것은ㅡ그렇게 연습은 하셨겠지만서도ㅡ보기에 안쓰러웠다. 하긴, 공간이 좁은 충무아트홀에서 오케스트라까지 있었다면, 소리가 넘 시끄러웠으려나. 충무아트홀 안티가 아닙니다. 예전에 충무아트홀에서 뮤지컬을 봤을 땐 참 좋았어요.... 는 그땐 1층이긴 했지만. 다만 3층 앞좌석에서 발레를 보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 3층 1, 2열은 어지간하면 판매하지 맙시다. 2열에 앉아 1막에선 황헤민 님이 무대 앞쪽에서 하시는 동작에서 발을 볼 수가 없었단 말이다. 그 아름다운 발등을 볼 수 없었다고.
9. 아, 난 또 왜 흥분을. -_- 후기 쓰다 혼자 흥분하는 건 내 고질병이다. 징차.
10. 이 <지젤>을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단 말이다. 벌써부터 슬프다. 10월에 있는 유니버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벌써 예매해두었다. 믿고 보는 유니버설이 보여주는 새로운 이야기. 10월이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