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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Special Gala & Being the Best by 서울발레시어터 SBT

by Vanodif 2015. 10. 23.










어제 22일과 오늘 23일, 이틀에 걸쳐 서울발레시어터에서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을 한다.

좀 있으면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단장님께서 퇴임공연을 하신다 하여 아쉬워하고 있는데,

서울발레시어터 단장님의 퇴임공연이라는 마녀의 말에 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음... 모르겠던데. 인터미션 때 나왔는데, 2부에서 그런 말씀이 있었으려나?


예당 오페라극장 4층은 좀 좁고... 좁은 건 그렇다 치는데, 좌석이 너무 가파르게 되어 있어서

갈 때 마다 불편하다. 스커트에 힐을 신고 내려가기에 불안해.

하지만 다음 주에 있을 유니버설 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도 봐야 해서.

나의 파라다이스에는 문화의 바다가 흐른다.










http://blog.naver.com/coolida/220510682524

↑ 감성할 때 참고하면 좋은 정보가 있는 블로그.







 공연 감상에 필요한 정보는 위를 보시면 됩니다.

아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수다에 불과하니, 동영상들만 골라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1부 첫공연인 <Rage>다. 제임스 전 안무가의 작품이라는데.

음... 이 작품을 보고 깜놀했다. 왜냐하면, 작년 가을이었나 겨울이었나,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보았던

서울예고 현대무용과 학생들의 공연과 복장에서부터 내용까지 거의 모든 것이 흡사했기 때문이다.

같은 안무가께서 안무하신 것이겠지ㅡ하긴 했는데.

복장이나 동작이나 상당히 현대무용스럽다.

차이라 하면 남성 무용수가 좀 더 많다는 것과, 맨발 공연인 현대무용과는 달리 소프트슈즈를 신었다는 것?


"제임스 전의 최신작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분노와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춤어휘로 풀어낸 작품이다" 


ㅡ라고 팜플렛에 나와있다. 역시 같은 안무가의 작품이었겠군, 싶네.

예상을 했었더라면 덜 당황하며 좀 더 작품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물음표가 떠올랐다. 모던 발레와 모던 댄스의 차이는 뭘까.

발레 슈즈와 맨발, 만으로 차이를 정할 순 없을 텐데.

모던 발레와 모던 댄스의 차이에 대해 1년이 넘도록 궁금해 하는 중인데

도중에 답을 찾았다 싶었더랬는데, 또 다시 혼란에 빠졌다.


시원시원한 작품입니다.


아 참, 그리고 이번에 알게된 정보인데, 서울발레시어터는 모던발레의 대중화에 힘쓴 민간발레단이라 합니다.



1부의 다른 공연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구할 수가 없네. 

개인적으론 두 번째, 네 번째 작품들이 내가 알던 '발레'에 가까워 이해가 쉬웠는데.






두 번째 작품은 리차드 월락 Richard Wherlock 안무의 <Snip Shot>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배경으로 사랑의 단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람들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를 이야기한다"


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난 처음 이 부분 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어. 왜 이해하지 못했느냐 하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지. 

이번 서울발레시어터 공연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언어에 찌든' 인간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작년 국립발레단의 <교향곡 7번>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단 건데. 

베토벤의 교향곡 7번 A장조를 형상화한 작품.

이 스닙샷을 보고는 비로소 그 교향곡 7번을ㅡ1년이 지난 이제야... -_-; ㅡ 이해하게 되었단 이야기.

내가 좀 그렇다. 어떤 부분은 이해력이 우습도록 빠른데, 어떤 부분은 어이없도록 늦을 때가 있어.


내가 무엇을 '이해'했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언어중심사고를 하는 습성이 배어 있는 나는, 무엇을 하건 '스토리'를 생각한다.

그림에서도 스토리를 찾으려 하고, 음악에서도, 무용에서도 그러하지.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무슨 말인가'를 끝없이 생각하는 시스템이다.

해서, 일관성이 없는 말을 견디기 힘들어한다ㅡ는 알고 보니 잉팁의 특징이라면서. 그넘의 잉팁. =_=

같은 것에 대해 어제는 이랬다 오늘은 저랬다 하는 말.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예뻤어' 했던 것을 '처음 보았을 땐 그냥 그랬는데, 볼수록 이쁜 것 같아'라 뒤집는다던가.

처음 느낀 인상 자체가 바뀔 리가 없으니, 바뀐 것은 '언어'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을 의미하지.

내가 견디기 힘들어 하는 '거짓'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거짓을 말해도 괜찮아.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과 일관성만 갖춘다면ㅡ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언어를 기억하니까.

엇 또 삼천포네. 쳇.


무튼, 작품 감상에 관한 한 그다지 포스트모던하지 못한 내게는? '스토리'의 척추 없이 제각각의 다원성을 자랑하는

현대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만큼 언어에 길들여졌다는 말이겠지.

그나마 미술작품은 나름의 감상법?을 발견해서 즐기는 방법을 아는데

아... 현대무용이나 현대발레는 정말이지, 아직 낯설구나, 싶었던.


아 또 삼천포. -_ㅜ

오늘 후기가 왜 이래.;; 다시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교향곡 7번>이나 <Snip shot>이나, 어떤 '스토리'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영감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 

이것이 어째서 어제의 나에게 다소 큰 충격을 주었느냐 하면

음... 이것도 어제 마녀에게 물어보고 깨닫게 된 사실인 건데...

음악을 들을 때 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면서?

내게 가벼운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다니거든.

구체적인 동작들이 그려진다는 것인데, 다들 그런 건줄 알았어.

버스나 전철을 타면 창문 부수는 망치나 수동손잡이를 먼저 확인하고, 내가 탄 그 버스가 사고가 나는 장면이 떠오르고,

그랬을 때 저 망치로 어떤 창문을 깨어서는 (이 시점에서 버스 안을 둘러 본다) 내 자켓을 벗어 창틀에 씌운 후,

버스 안의 누구를 먼저... 저 할머니 먼저 내보내고, 그 다음 저 아이, 그 다음 저 여려 보이는 아가씨, 그리고 나는 몇 번째

로 탈출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런 불안 없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버스나 전철을 탄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 엄청나게 긴 문장이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사람들이 춤을 추며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작품은 음악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형체를 현실 속에 끄집어 낸 것이구나' 싶으니까

그제야 이해가 되더란 이야기.


그렇게 놓고 보니 흥미로웠다. 똑같은 바흐의 무반주첼로곡을 들었을 때 내게 떠오른 영상들은 사뭇 달랐거든.

그것은 아마도, 무용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머릿속의 동작들은 현실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지.

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작들과 많이 다른 동작들을 보며, '이 안무가는 그 동작들을 실현해내는 능력이 있는 분이니

저런 동작들을 빚어내신 거구나'라 생각하게 되었다.

하여, 같은점과 다른점을 비교, 대조하며 즐기게 되었고.


우아한 작품이었다.






아니, 간단하게 적고 말려고 했는데, 무슨 수다가 이렇게 긴 거지.;; 쓸 데 없는 말이 길어져서 공식정보를 위로 올린다.


세 번째 작품은 허용순 님 안무의 <그녀는 노래한다 Elle Chante>이다.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무대였는데, 설명이...


"한 여인의 심리적 변화를 표현한 작품으로, 내성적인 그녀는 사랑의 힘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는 심리변화의 과정을 묘사한다"


고 한다. 시원시원한 동작들이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네 번째 작품은 로이 토비아스 Roy Tobias 안무의 <마음 속 깊은 곳에 Straight to the Heart>인데,


"서울발레시어터의 초대 예술감독 로이 토비아스의 작품으로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세 커플의 사랑을 서정적으로 표현한다"


라고 한다.

이 작품 역시 두 번째 스닙샷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서울 발레 시어터의 초대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셨던 고故 로이 토비아스를 위한 헌화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마치

세 마리 백조와 사랑에 빠진 세 명의 남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음... 백조라기 보단 홍학이나 두... 두루미...? 가 연상되었는데,

그만큼 길쭉길쭉하신 무용수분들의 아름다운 동작이 인상깊었다.

우아한, 이라기 보단 고상한, 단어가 떠올랐던.


그러니까 이 작품은 낭만발레라 해도 되겠을 만큼 눈에 친숙한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 감상하기 편했다.

화려한 턴이나 기술 없이도 동작의 아름다움으로 작품을 가득 채울 수 있음이 즐거웠고.

시작하기 전에 이 작품에 대한 로이 토비아스의 인터뷰를 잠시 상영해 주셨는데,

"인간의 몸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자산이다. 무대 위 인간의 몸은 가장 아름답다. 

무대 위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과 몸이다"

ㅡ라는 말씀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과연 그 말씀대로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안무였다.










내가 놓친 2부의 <Being> 공연인 듯. 역시 난해하네... +_+;












꽤나 집중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미션 때 나왔던 이유는, 일단 같이 갔던 마녀가 지루해했기 때문이고,

나 또한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갈라'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말하자면 가수의 베스트 앨범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나마 가수들의 노래는 앨범 전체의 흐름을 본다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곡 하나로도 충분히 감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은... 모르겠다, 아직 나의 내공이 그만큼 터무니 없도록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스토리'가 없는 공연을 나는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젤이나 백조의 호수와 같은 낭만/고전 발레들은 발레마임도 있거니와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있어 이해가 쉽다.

뭐, 현대미술의 감상처럼 현대발레 또한 스토리를 벗어나 동작 자체와, 그 동작이 주는 느낌 자체 만을 감상한다면,

그래, 어떤 면에선 감상이 더 쉬울 수도 있겠다.

쉬울 수 있지. 느낌을 따라가면 되니까. 그런데 재미가 없다.

이것은 내가 스토리, 즉 언어에 찌든 인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술을 비롯한 예술은 문학의 하인 역할을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그토록 애를 써온 것이 사실이고

그 결과 그 장르 자체만의 가치를 높여왔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니까.


로스코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언어의 지배력을 벗어나, 색감의 맨몸으로 영혼의 교감에 이르기 위한 그의 눈물나는 추구와 노력에 감명을 받았거든.

그런데 무용에 있어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철저하게 언어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는.


음... 좀 쓴소리를 하자면.


뮤지컬이나 무용이나 나는 '창작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는 것은, 창작공연의 경우 스토리가 뻔하다는 이야기.

첫 번째 스토리를 말해 볼까.

<나는 뮤지컬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현실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고된 현실적 고난을 다 견디고 난 끝내 내 꿈을 지켜냈어요. 

그래서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서서 마음껏 공연하는 배우가 된 것이죠! 꿈을 포기하지 말아요!> 라는 내용.

두 번째 스토리는

<사랑 만이 구원. 사랑의 힘은 위대하답니다> 라는.


그 두 가지 내용으로 창작작품은 거의 귀결된다.

그래서 난 창작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아.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럴 만 한 것이

뮤지컬 배우는 평생을 노래와 춤 속에 산 사람이다.

작가는 평생을 글을 쓰며 사는 사람이고.

그러니 작가보다 뮤지컬배우가 노래와 춤을 잘 하는 것이 당연하고

배우보다 작가가 스토리를 잘 만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그러니 스토리를 전문으로 쓰는 작가들을 제발 사용해 주셨으면, 하는 이야기.


기존의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더 세련된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당연한 이야기다.

작가는 스토리를, 감독은 연출을, 배우는 연기를, 조명은 조명을, 소품은 소품을.

제각기 잘하는 분야의 일들을 자신의 역량대로 해내고, 그 모두를 감독이 자신의 의도대로

한 방향으로 모아 이끌어가는 것, 그것이 공연 아닌가?

배우분/관계자분들의 개인적 역경 이야기를 굳이 보고 싶진 않단 말이죠.

물론 역경을 이겨내다, 라는 메세지는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모든 분야에 다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나

그런 내용은 이미 난무하니까, 지겨워.


신나서 찾아다니던 뮤지컬을 어느 순간 보지 않게된 주된 이유는 가격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지만,

작은 이유 중에 '뻔한 내용'이 있었다.

지금은 또 많이 달라졌겠지는.

관심 없다.


결론은 '스토리'에 집착하는 촌스러움을 내가 아직 벗지 못했다는 이야기.






언어의 가치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요즘인데,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언어의 가치를 폄하하지만

막상 언어를 제거해 보니 그 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그만큼 언어의 위력이 크다는 것이겠지.


누구나 사용하고 있기에 익숙하다 하여 가치를 낮게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마치 공기와 마찬가지로.

가족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없다면 그 무엇이 있어 서로의 소통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인간적인 것에 있어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듯, 언어 또한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가치를 폄하하기엔, 언어가 지니는 실제가치가 너무 크다.



이건 뭐 기승전언어냐.

영 이상한 후기네. 나중에 수정을 하게 될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