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불가해한 상처가 그대 삶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면.
★ 6/10
줄거리
스스로를 '개성이 없는 사람' 이라 생각하는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생 시절, 네 명의 뚜렷한 개성을 지닌 친구들과 더불어 '완벽한 공동체' 의식을 누리게 된다. 다섯이서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느낌을 구성원 모두가 가지며 서로를 아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나머지 네 명으로부터 돌연, 이유를 알 수 없는 '절교'를 당한다. 이로 인해 쓰쿠루는 죽음에의 충동을 느낄 만큼 심한 좌절을 겪게되고, 그 이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 주는 것을 꺼리게 되면서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다 서른 중반이 넘어 사귀게 된 기모토 사라가 그에게 16년 전 소식이 끊어졌던 그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가 설명을 듣고 마음의 앙금을 풀라고 종용한다. 이에 자신의 삶을 크게 가로막은 상처를 풀기 위한 쓰쿠루의 마음의 여행이 시작된다.
하루키에 대한 내 평은 언제나 짠 편이다. 네임밸류에 비해 그닥, 이란 것도 있고(단순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루키'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겉멋'이기 때문. 그것은 내가 겉멋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의 그러한 특징을 달가워하지 않기에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느 정도 자기 잘난 맛에 취한 사람들이고, 자신의 겉멋을 '책'으로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댄디하다' 느낌을 주는 인기작가들의 소설이나 수필을 집어 꼼꼼하게 살펴 보라.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책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지를. 때로 그런 '목록'들이 작가와 그 작품을 더 속속들이 감상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연 이 작품을 읽었기에 이런 생각과 묘사가 나오는구나'라 파악하기엔 유용하단 뜻이다. 허나, 작품의 흐름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그저 '과시용'으로 나열되는 책 이름들도 적지 않다. 그것은ㅡ세계 모든 작가에게 해당하긴 하지만 특히나ㅡ무武 보다 문文을 중시 여겼던 유교의 뿌리 깊은 영향을 받아온 한국인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열등감을 느끼면서 경의를 표하는 '학문'의 구현체이자 상징으로서의 '책'의 이름을 나열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지성과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지적허영이다.
심지어 수많은 '허영' 가운데 '지적허영'이란 단어에 유독 관대한 것도 사실이 아닌가? 소위 '지식인'이라면 오히려 스스로 겸양의 의미로 사용할 지언정, '지적허영'이란 단어를 내심 자랑스러워할 지도 모르겠다ㅡ그럴 확률이 아주 많으리라 확신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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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로 빠진 것이지, 나는 또. -_-
어쩌다 이 말을 썼나, 아, 겉멋.
하루키의 경우 이 겉멋을 지적허영... 도 있긴 하지만 뭐랄까, 문화적 허영? 내지는 취향적 허영 방향으로 살짝 다른 가지를 뻗었다는 것이 그의 크나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의 책에 넘쳐나는 수많은 재즈 음악과 가수들, 클래식 곡과 작곡가, 특정 연주자들의 이름들, 커피, 와인, 술의 이름들을 보라. 얼마나 많은, 이 사회의 소위 '잘 나간다 하는', '댄디한' 남녀들이 그런 목록들에 열광하는가 말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ㅡ나도 그리 좋게만 보지는 않는 사람으로서ㅡ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하루키 작품 특유의 문화적 정보를 풍성하게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책 읽을 때 더 많은 감각을 상기시킴으로 말미암아 작품의 감상이 더 풍부해지기도 하고. 아, 근데 그것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건 왜 그런 것이냐고? 일단 겉멋 자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며, 또는 그만큼의 에너지를 내용 자체에 더 충실하게 쏟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 때문일 테지. 우리의 하루키 씨는 그래도그 조절을 잘 하는 편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를 모방하는 수많은 작가들ㅡ정작 인간 이해에 대한 내용은 부실하면서 온갖 화려한 문화만 넘쳐나는ㅡ이겠지. 뭐 그렇다 해서 수많은 미메시스에 대한 책임을 원형이 져야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미스터 플라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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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딴 말이 많지, 오늘. -_-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헉헉, 이 긴 제목을 외우기 귀찮아 ctrl c와 ctrl v를 사용하다니. =_= 여러모로 민망한 포스팅이 되는군. 무튼, 이 책에는 그동안 하루키의 작품에 면면히 흘러온 메세지와 상징들, 문화적 정보가 어김없이 담겨있다. 아, 나는 장편만을 다 읽었고 소수의 단편을 읽었을 뿐, 다른 단편들이나 에세이는 읽지 않았으니 음... 하루키의 '장편소설'을 일관적으로 흐르는 특성... 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구원에의 추구. 평행이론. 유전자. 섹스. 구원에 대한 실마리의 근원지로서의 여성 등. 어... 하루키 전공자분들이 보면 '이거 뭐야?'하시겠는데. 그냥 일개 독자로서 내가 받은 인상을 나열하는 것 뿐이니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도록 하자. +_+; 그 외 클래식 음악, 연주자, 패션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 뭐 그런. 해서, 다작을 하는 편인 하루키 씨의 책을 많이 읽어왔고, 또 그에 대해 그다지 좋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 또???" 하며 지레 질려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읽어 보시지 그래요.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꽤..."라고 권할 것 같다. 왜냐하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평소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일 확률이 많고, 그렇게 삶과 사람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면서 생각을 해온 사람이라면 꽤나 흥미를 가질 만한 말들을 이 작품에서 많이 하기 때문이다. 상처에 관해서. 사랑에 관해서. 구원에 관해서. 인간 이성의 가치에 대해서. 등등. 종교, 혹은 이성을 넘어선 어떤 확신에 대해서는 아직 수줍게 살짝 터치만 하고 넘어가는 하루키 씨지만, 그 또한 그의 일관된 관심사 중 하나인 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그런 명제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확실히 하루키는 달필가다. 쉽게 읽히게 쓰지 않는가? 그러면서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눈물나도록 질투나는 재능이다.
음. 평소 '머리가 좋고 이해력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으로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쪽에서 보자면 하루키 씨는 확실히 머리가 좋은 편인 것 같다. 누가 읽어도 비교적 쉽게,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게 쓴다는 점. 그러면서 깊게 생각할 만한 것을 충분한 단서와 함께 제공한다는 것은 그가 지닌 큰 장점이다. 그런데 이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붙여넣기... -_ㅜ 반드시 외워야지, 이 제목! 근데 이렇게 긴 제목은 필요 없는 것 같아. 제목 자체에 작품의 내용이 고스란히 다 들어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친절함으로 오히려 불친절해져버린 제목이 아닌가 싶으니까)에서는 '응? 하루키 씨, 나이 들었어?'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는데, 말이 너무 많달까. 워낙 치인저얼하게 설명해주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설명이나 해석이 좀 과하셨단 느낌이 들었어서ㅡ그만큼 읽기 쉽고 편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독자가 즐길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강탈해버린 고약함이라 볼 수도 있다.
평소 김난주, 양억관, 이세욱 님이 번역하신 작품은 신뢰를 갖고 고르는 편인데(아... 가오리 씨와 바나나 씨는 더는 읽지 않지만요;;), 양억관 님의 번역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펼쳤다. 그런데 시간이 좀 급... 하셨나요...? 오타가 두어 개. 번역내용 또한 '서둘러 번역하셨나?' 하는 생각이 아주 살짝, 스쳤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워낙 탄탄한 실력을 지닌 분이어서. 평소 양억관 님의 멋진 번역에 비하자면 그런 느낌이 눈꺼풀 깜빡임 만큼 들었단 얘기다.
어렵지 않게. 얄팍하지도 않게.
'대 하루키 씨'의 사상이나 특징들이 예쁘고 정갈하게, 지나치게 골치 아프지 않은 모양으로 소담스레 담겨있는, 하나의 맛깔스런 디저트를 먹은 기분이 들었던 책. (장편이 왜 디저트냐 묻지는 않겠지, 설마. 짧디 짧은 단편이 진하고 묵직한 스테이크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말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괜찮았던' 작품으로서 주관적인 점수를 매기려 하다 보니 7점은 과한 것 같고, 6점이면 좋겠다, 싶었다.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읽어 보아요'라 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