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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Book Review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生』

by Vanodif 2012. 7. 10.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生』

Emile Ajar, La Vie devant Soi

 

 

창녀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프랑스에서 창녀들이 맡긴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로자 아줌마와 그녀가 맡은 아이 중 하나인 모모(모하메드)의 이야기가 모모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로자 아줌마는 그녀 자신이 젊은 시절 창녀였으며, 이젠 낡은 아파트 7층에서 창녀 아이들을 돌보며 거친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양육비가 끊긴 아이도 쉽게 빈민구제소로 보내지 못하는, 정 깊고 엄청나게 뚱뚱한 할머니다.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으로서 유대교를 지키며 살진 않지만, 젊은 시절 나치수용소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들 때문에 아직도 침대 밑에 히틀러 사진을 두고서, 생이 힘들어질 때면 그 사진을 꺼내 보고 즉시 바짝 정신을 차리곤 한다.

 

로자 아줌마네 아랫층에는 롤라 아줌마라는 알제리 출신 흑인 여장남자창녀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로자 아줌마 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으로, 모모를 사랑으로 대하고 모모 또한 그녀를 잘 따른다. 그리고 주위에 아랍인인 하밀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이 들어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모모가 어릴 적부터 여러가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유태인 의사 카츠 할아버지도 모모를 따뜻하게 보아주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최하층민의 삶을 어릴 적부터 몸에 익혀온 모모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또한 가끔은 필요한 생필품을 얻기 위해 도둑질을 일삼으며 자란다. 그가 대하는 세계는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받는 창녀와 포주의 세계.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는 불법 이민자들의 세계이자 부랑아들의 세계지만, 로자 아줌마는 그런 모모에게 '나중에 크더라도 절대로 엉덩이로 벌어먹고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을 다짐받고, 모모 또한 그 생각에 동의한다. 마약이나 범죄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는 환경 속에서 모모는 끝내 마약을 거절하며 조금의 악동짓을 하지만 비교적 바른 사고를 지닌 아이다.

 

그러다 지나치게 뚱뚱하고 노쇠한 로자 아줌마에게 노환, 즉 치매현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모모의 삶에 큰 위기가 닥치게 된다. 카츠 의사 선생님은 그런 로자 아줌마를 큰 병원시설에 옮겨 치료받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식이 돌아온 로자 아줌마는 그 의견에 펄쩍 뛰며 반대한다. 안락사가 금지된 프랑스에서 병원이란 곳은 의사들의 생체실험을 위해 생의 고통을 하루라도 줄이고픈 환자들의 바람을 묵살하는 곳으로, 죽고싶은 환자들을 가능한 죽지 않게 하려 온갖 고문을 행하는 곳이란 것이다. 로자 아줌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한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결코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그녀의 증세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카츠 선생님의 압박도 심해진다.

 

그러던 중 모모는 돌아다니다 나딘이라는 아름다운 금발미녀를 알게되는데, 그녀는 영화에 더빙을 하는 성우로서, 그녀의 집에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금발의 아이들이 몇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모모는 나딘에게 자신이 아이로서 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로자 아줌마를 간호하던 어느 날 너무나 힘겨운 모모가 나딘에게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나딘은 자신의 연락처를 종이에 적어 모모의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로자 아줌마의 정신이 돌아온 어느 날, 아랍인 남자가 찾아와 아들을 찾는데, 모모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유명했던 창녀인 엄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모를 맡긴 직후 엄마를 살해했고, 그 후 11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있다 풀려나자마자 아들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런 정신병자 아버지에게 모모를 보내기 싫었던 로자 아줌마는 아랍인에 회교도인 모모가 아닌, 곁에 있던 금발머리 유태인인 모세가 그의 아들이라 말했고,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모모의 아버지는 너무 흥분을 한 바람에 극도로 쇠약한 심장이 마비되어 즉사하게 된다. 그런 아버지의 시체를 아랫층 사람들의 도움으로 계단에서 사망한 것으로 꾸미고, 경찰이 오기까지 잠시의 시간 동안 모모는 아버지 시체 곁에 앉아 아버지 주머니에서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 피운 후 다시 로자 아줌마에게로 돌아간다.

 

로자 아줌마의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임종이 거의 임박했음을 깨달은 모모는,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재촉하는 카츠 선생님께 '로자 아줌마의 친척이 이스라엘로부터 와서 아줌마를 데려가 좋은 치료를 받게 하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는 로자 아줌마가 평생 나치를 두려워한 나머지 남몰래 마련해둔 지하실의 '유태인 동굴'로 아줌마를 데려가 소파에 앉히고는 방에 초를 밝혀둔다. 그리고 아줌마 곁에 이불을 깔고 자신도 거기서 누워 지낸다. 그리곤 로자 아줌마는 눈을 뜬 채 임종을 맞는다. 죽은 로자 아줌마의 시체의 색이 점점 변하는 것을 보고 모모는 아줌마가 좋아하는 화장을 날로 더 두껍게 아줌마의 얼굴에 바르고, 또 썩는 냄새를 가리기 위해 아줌마가 좋아하는 향수를 사다가 병째 붓는 생활을 하면서 3주일을 버틴다. 마침내 썩는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온 사람들에 의해 시체와 시체 곁에 누워있는 모모가 발견되고, 사람들은 모모의 주머니에 있는 나딘의 연락처로 연락을 한다. 모모는 치료를 위해 나딘의 별장으로 요양을 가고, 그곳에서 나딘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린다. 모모는 나딘의 애인인 라몽에게 자신이 광대로 꾸민 우산인 '아르튀르'를 가져다 달라고 한다. '사랑해야 한다'가 글의 마지막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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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의문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인 에밀 아자르. 자살 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이었으며,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간한 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소설도 그가 쓴 것임이 밝혀졌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1975년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간한 두 번째 소설로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에 빛나는, 어린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다. 작가는 악동 같지만 순수한 어린 주인공 모모를 통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ㅡ 네이버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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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그래 해학적이다. 열 살, 아니 알고 보니 모모가 떠날까봐 로자 아줌마가 나이를 속였던, 실제론 열네 살짜리 소년의 시선에서 그린 삶은 불가해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폭력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구원 없는 생'에서 하루키가 찾은 '구원'이란 '섹스'였듯이, 에밀 아자르가 찾은 구원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몹시 부드럽고 아름답고 거창하고 화려하고 숭고한, 요란한 형태의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거친 말로 표현되고 때론 무뚝뚝한 무관심, 혹은 냉소적으로 표현되기까지 하지만 그 중심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무채색의 따뜻한 어떤 사랑이다. 환하고 가볍고 깨끗한 바깥세상에서는 한낱 구질구질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지만, 어둡고 무겁고 더러운 세상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저 서로의 '존재'가 '전부'인 사랑. 그런 사랑.

 

무겁다. 냉소적이라 상당히 가볍게 느껴지는 말투와 달리 내용이 너무나 무겁다. 모모는 그 누구보다 열 살 짜리 아이답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 나이든 노인 같다. 그가 열살짜리 어투로 무심히 뱉어내는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농밀하고 아프다. 그리고 그의 어리지만 진한 마음이 버겁다.

 

읽으면서 '읽어 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는 것은 마녀의 말.

건조한 문체에 농밀한 감동이 전해지는 책.

 

공쿠르상은 괜히 받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덮고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는데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가벼운 것 같단 기분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