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금요일. 예당 한가람 미술관 3층에서 전시 중인 모딜리아니전에 다녀왔다.
한가람 미술관은 지금 난리난리던.
1층 보테로. 2층 키아. 3층 모딜리아니.
이제는 1-2층을 다 채우는 작품 수의 전시는 더 이상 한가람에서 열리지 않는 것인가.
작품 수는 반토막이 났는데 관람료는 그대로거나 조금 올랐으니,
결국 두 배 이상 값이 오른 셈이다.
모딜리아니는 워낙 남긴 작품 수가 적었다지만 그래도 작품이 너무 적었다.
관람료 할인은 안 될까?
프리다 칼로전에 투덜투덜대었더니,..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어서 그나마 만족스럽게 본 것이지
보테로전과 키아전은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내가 다 걱정이다.
도록은 소도록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대도록만 있는데 3만원.
뭐... 적은 작품 수로 3만원짜리 도록을 만들려니 오지도 않은 작품들이 좀 실렸던.
그런 거 필요 없고 가격이 좀 다운되면 좋을 텐데.
예당 회원은 2천원인가 3천원인가 할인 받습니다.
전시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이 포스팅 맨 밑에 싣는다.
↑ <모딜리아니전> 대도록. 가격 3만원.
그런데 작품 수가 적고 가격이 좀 세서 그렇지, 이번 모딜리아니 도록은 꽤 괜찮다.
거의 모든 작품의 해설이 꼼꼼하게 달려 있거든.
도록 하나를 제대로 읽으면 오디오 가이드를 굳이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그 점에서 보자면 소장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도록 미리 사서 공부한 후에 보러 가도 좋겠고.
예전에 강남영풍 있었을 땐, 영풍에서 미리 대도록 사면 그 안에 평일 초대권이 들어 있었더랬다.
미리 도록을 사서 공부를 하고는 평일에 가서 무료로 보곤 했는데.
그런 도록의 부록 덕분에 같은 전시를 두세 번 간 적도 있었지.
그 평일 초대권을 포함하고도 대도록이 2만원대였는데.
와... 요즘은 사악해진 도록 가격입니다아. -_ㅜ
발레고 전시고 음악회고 두루두루 즐길 수 있도록 전반적으로 문화공연 가격이 좀 내려주면 안 될까.
발레의 경우 5천원 좌석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미안하고 황송하긴 하더라.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무대장치만 해도 어딘데, 훌륭한 안무에 그 많은 무용수분들의 뛰어난 공연을
단 돈 5천원은 물론이고 1-2만원에 볼 수 있다는 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진 거여서.
그 덕분이었을까, 한 동작도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열심히 보고 감상하려 애썼던.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과 예당의 그런 배려 덕분에, 대중이 즐기기 쉽지 않았던 발레라는 장르가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에 훨씬 가까워졌다. 다시 한 번 발레 관계자분들 고맙습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그런, 말하자면 '박리다매' 식의? 시스템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해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생각을 돌려 보면, 기왕이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일이지 않을까?
오페라나 특히 뮤지컬은 가격 면에 있어 좀 많이 사악해서는.
예전에는 부지런히 가서 즐겼지만 이젠 가지 않는다.
같은 돈으로 좀 더 다양하게 즐기고 싶어서.
뜬금 없는 삼천포가 되어 버렸지만, 평소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 점에서?? 7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목숨 걸고 예당에서 놀아야겠다.
수요 수업 방학인 덕분에 드디어 즐길 수 있게 된 문화수요일.
아... 그런데 그 때 지방 가는 일과 겹치게 되면 어쩌지. orz
오디오 가이드 설명 괜찮습니다. 배우 아닌 성우여서 몰입에 방해 받지도 않았고.
몽파르나스 최고의 미남, 이라던가?
가장 잘생긴 화가, 로 유명한 모딜리아니.
그만큼 그의 곁에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Amedeo Modigliani
Jeanne Hébuterne con cappello
1918
55×38 cm
Collezione privata, Giappone
모딜리아니, 하면 떠오르는 작품. 이 작품은 오지 않았다.
Amedeo Modigliani
Ritratto di donna con cravatta nera
1917
olio su tela
65,5 x 50,5 cm
Collezione privata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 이 작품이 꼭 왔으면 했는데
역시 오지 않았다.
내게 있어 이 작품은 클림트의 <유디트>와 비슷할 정도로
직점 보고픈 작품인 건데.
Amedeo Modigliani
Ritratto di donna con cravatta nera
Petite Route de Toscane
21 x 37 cm
Museo Civico Giovanni Fattori, Livorno, Italy
인물화가였던 모딜리아니는 퓽경화를 몇 점 남기지 않았는데, 14세 때 그린 풍경화다.
인상주의 화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
Amedeo Modigliani
Femme nue avec un chapeau(Recto)
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 (앞면)
1908
81x50cm
Courtesy of the Hecht Museum, University of Haifa, Israel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Maude Abrantes (Verso)
모드 아브랑트의 초상 (뒷면)
1908
81x50cm
Courtesy of the Hecht Museum, University of Haifa, Israel
풍경화 한 점을 지나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 이 작품은 양면화다. <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와 <모드 아브랑트의 초상>은 캔버스의 앞뒷면에 그려져 있으며, 두 모델은 모딜리아니의 첫사랑인 모드 아브랑트이다. 1907년 몽마르뜨 예술가 모임에서 모드를 만난 아마데오(모딜리아니)는 1년간 교제를 하게 되는데, 1년 후 임신을 한 상태에서 모드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 모드는 몹시 우아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 양면화는 이 작품을 비롯하여 두 점이 왔는데, 이 작품은 앞뒤삭 거꾸로 그려져 있다. 즉, 뒷면인 <모드 아브랑트의 초상>은 바로 걸려 있는데, 뒤로 돌아가 앞면을 보면 <모자를 쓴 여인의 누드>가 거꾸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해서, 이 작품에만 앞쪽의 밑바닥에 거울이 깔려 있다. 주최측의 감상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인 것인데, 아래의 거울에 비치는 모드의 창백하고 깡마른 모습은 다소 기이한 분위기를 낸다. 연못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올려다 보는 듯한 느낌. 또 다시 나르킷소스는 소환되고. 얍.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Jeanne Hébuterne
(Ritratto di Jeanne Hébuterne)
1919
olio su tela
55 x 38 cm
Collezione privata
이 작품은 오지 않았는데, 어째서 도록 여기저기에 실려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놓친 작품인가? 그럴 리 없을 텐데.
작품 수가 많지 않아 도슨트분의 설명 듣고, 돌아가 오디오 가이드 설명 듣고
다시 돌아가 개인감상을 두세 번 한 건데, 이 작품을 놓쳤단 말인가?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Jean-Baptiste Alexandre au Crucifix
십자가가 있는 장-밥티스트 알렉상드르의 초상
1909
92x70cm
Musee des Beaux Arts de Rouen, France
이 작품은 실물에 비해 사진이 굉장히 못 나왔네. 조명 덕인지 실제 작품은 훨씬 반짝거리며 색상도 깔끔하다. 모딜리아니의 밀도 높은 색채감을 잘 볼 수 있는 작품. 그림의 장-밥티스트 알렉상드르는 아래 작품의 인물인 모딜리아니 최초의 후견인 폴 알렉상드르의 아버지로, 성실한 기독교인이자 파리의 약사였다. 이 작품 앞에 서면 한 눈에 그의 올곧고 융통성 없으며 단호하고 청빈한 성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을 보면, 얼굴 처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미술사조들이 드러나는데, 입체파의 입체감을 강조하는 얼굴의 윤곽선 표현과, 야수파 화가들이 즐겨 쓰는 붉고 강한 색채로 채색을 한 것이라 한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Dr. Paul Alexandre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1909
100.5x81.5cm
Tokyo Fuji Art Museum, Japan
피부과 의사였던 폴 알렉상드르는 비록 돈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예술가 친구들을 후원한 사람이었다. 1907년 돈이 없어 작업실에서 쫓겨난 모딜리아니를 화가, 조각가, 배우 등의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세낸 집의 작업실로 데리고 가서 작업활동을 돕는다. 그리고 모딜리아니에게는 특별하게 경제적 지원을 하기 시작하며 그의 후견인이자 친구가 된다. 모딜리아니는 폴 알렉상드르와 그의 가족의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았고 그리하여 가난하게 살았는데, 희한하게도 매번 후견인들이 있었다. 한 후견인이 다른 후견인에게로 모딜리아니를 부탁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후견인들과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는 단순히 외모 덕분 만은 아니지 싶다. 잘생긴 외모에, 몰락했지만 한 때 잘 살았던 집안, 유난히 병약한 몸을 지녔다는 것이 영향을 미치긴 했겠지만, 그것 만으로 이렇게 사람들이 넘쳐났던 건 아니었으리라. 아마도 모딜리아니는 꽤나 괜찮은 인품을 지닌 사람었을 것 같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Dr. Paul Alexandre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1913
81x45.6cm
Musee des Beaux Arts de Rouen, France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Paul Guillaume
폴 기욤의 초상
1915
74.9x51.1cm
Toledo Museum of Art, USA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Leopold Zborowski
레오폴드 즈보로브스키의 초상
1916
65x43cm
Israel Museum, Jerusalem
레오폴드 즈보로브스키는 폴란드 출신 시인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생계를 위해 그림을 거래하기 시작한다. 즈보로브스키는 폴 알렉상드르, 폴 기욤 다음으로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구입한 사람으로, 후에 자신이 모딜리아니를 더 돌볼 수 없게 되자, 그를 레오폴드 쉬르바주에게 부탁할 정도로 모딜리아니를 배려한다. 이런저런 것을 보아도 모딜리아니의 인간성이 꽤 괜찮았던 듯. 또한 당시는 아직 낭만이 꽤 남아있었고.
팔짱을 낀 즈보로브스키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을 보면 상단에 즈보로브스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는 친분이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는 모딜리아니의 습성을 보여준다. "대비되는 색상과 강한 밀도의 질감은 이 시기 모딜리아니 회화의 특징이다"라고 도록에 설명되어 있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l'artiste Leopold Survage
레오폴드 쉬르바주의 초상
1918
61.5x46cm
Ateneum Art Museum, Finnish National Gallery, Finland
러시아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판화가인 쉬릐바주는 1차 세계대전 종전 5개월 전인 1918년 4월, 모딜리아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자, 앞서 모딜리아니의 화상이었던 즈보로브스키가 모딜리아니를 남프랑스로 요양을 보내게 되는데, 그 때 모딜리아니의 간호를 흔쾌히 수락했던 사람이다. 부유했던 그는 모딜리아니만 받은 것이 아니라, 모딜리아니의 만삭의 부인인 잔느 에뷔테린느까지 맞아들여 돌보았으며, 모딜리아니 부부의 딸 잔느가 태어나서까지 그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작품은 매력적이었는데, 무엇보다 눈을 보면 한쪽은 눈동자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밝은 청녹색으로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묘한 느낌을 주었고. 이전 파리에서의 초상화는 배경이 어두었는데, 이 시기의 초상화는 배경이 밝은 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무래도 남부 프랑스의 화사한 햇살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 같고. 나는 파리를 좋아하는데, 최근 와인이나 이런 미술 작품들을 접하면서 남프랑스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다. Jh는 남프랑스에서만 석 달인가 있다 왔는데, 너무 좋았다며 언제라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대체 남프랑스의 햇살이 어떠하길래 그토록 사람들은 열광하는 걸까? 여름과 따가운 햇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더욱 신기하다.
Amedeo Modigliani
Jeune aux Cheveaux Roux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
1919
61x46cm
Courtesy Richard Delh, K.A.D Gallery, Belgium
우선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 일부를 옮겨 적는다.
"화가로서의 생의 마지막 해에 그려진 작품답게 윤곽선의 완벽한 처리와 선의 간결함, 그리고 보통의 인물이었던 모델에 우아함을 더한 표현감, 적절한 양으로만 칠해진, 절제된 색체사용은 모딜리아니의 회화의 완성도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도슨트분도, 오디오 가이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난 이 작품 앞에서 한참을 떠날 수 없었지. 떠날 수 없던 이유는 한 가지다. 우아함. 이번 전시회에 온 모딜리아니의 모든 작품 중에 가장 우아한 작품이었다. 모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그런 것이 상관 없지 않은가. 피안의 세계로 혼자 감감히 빠져든 그의 시선은 마치, 치열하지만 절제된 사색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 깔끔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Sep. 19. 2015. 재감상. 이 작품 앞에 서자 심장이 떨렸다. 이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을 둘러 보았을 때, 단연코 가장 눈에 띄던 우아함.
Amedeo Modigliani
Cariatide Rouge (Recto)
붉은 여인상 기둥 (앞면)
1913
80x58.5cm
Private Collection, San Francisco, USA
앞뒤 양면 작품이다. 그것에 대한 설명은 아래 작품 아래에 적는다. 지금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카리아티드.
The Caryatid Porch of the Erechtheion,
Athens,
421–407 BC
위의 카리아티드. Cariatide/Caryatid는 그리스의 에렉테이온 신전의 석주(돌기둥)로 조각한 여인상이다. 카리아티드는 여러 신전의 석주로 만들어졌지만, 에렉테이온 신전의 조각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자아, 이 카리아티드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로마 건축가였던 Marcus Vitruvius Pollio 비트루비우스의 기록인데, 도슨트께서는 이 버전을 말씀해주셨다. 카리아티드는 카리아 Cariae/Karyae/Καρυές 의 여성을 일컫는 말로, 카리아는,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바로 옆 지역인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였다. 그런데 그리스-페르시아전에서 페르시아편이 된 것이지. 당시 스파르타의 300명을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군대의 1/10도 안 되는 병력이었으므로, 소도시국가로 이루어진 그리스에서는 여기저기에서 그리스의 패전을 확신하고 페르시아 편으로 선 국가들이 있었다. 카리아는 그 중 하나였고. 그런데 3차에 걸친 전쟁 끝에 마침내 그리스군이 승리를 하게 되고. 승전 후 아테네는 그리스를 배신한 도시국가들을 응징하게 된다. 그 중 가장 크게 응징한 곳이 바로 이 카리아인 것이고. 해서, 카리아의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여성과 아이들은 끌고 가서 노예로 삼게 되는데, 다른 도시국가들에게 배반자의 최후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카리아 여성들을 신전 지붕을 받치는 형벌을 받는 여성의 모습으로 새겨 넣었다는 이야기. 재미있지? 그대로 믿고 싶은 이야기다.
이에 대한 반론은 간단하다. 페르시아 전쟁 훨씬 이전부터 그리스와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여성 모양의 장식기둥이 존재해 있었다는 것. 이 장식기둥의 여성들은 주로 아테네, 혹은 아르테미스 여신을 위한 축제에서 머리에 인 바구니에 여신들을 위한 성물을 담아 운반하던 여사제들을 형상화한 것이였는데, 이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여사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카리아는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이자 절세미녀인 헬레네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카리아이 여성들은 아름답고, 키가 크고, 강하고, 또 튼튼한 아이를 잘 낳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시 최고의 여성들이 많이 있는 곳인 카리아의 여성들을 신전을 받치는 모습으로 묘사할 만도 했겠다.
카리아티드와 상응하는 남성의 모습은 Telamon 텔라몬이나 Atlas 아틀라스로 불리운다고 한다. 아틀라스는 익숙한 이름이지?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은 티탄족으로,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맏형입니다.
신전의 육중한 지붕을 떠받치는 석주로서 카리아티드를 떠올려 보자.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을 텐데. 바로 목 부분, 그리고 발목 부분이다. 해서, 이 부분을 당시 조각가들은 목걸이를 목에 두른 모습, 혹은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모습으로 만들어 목 부분을 두껍게 하였다 한다.
Intricate hairstyle of Caryatid,
displayed at the Acropolis Museum in Athens
이렇게 말이지. 그리고 발 부분은 한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일종의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있다. 콘트라포스토치고는 S라인이 너무 덜 살긴 하지만.
대영박물관에 있는 에렉테이온 신전의 카리아티드 진품이라 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수, 수다가 또 길어졌는데 orz 뭐, 한두 번도 아니고. -_- 무튼, 기원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건 간에, 모딜리아니는 비트루비우스의 매력적인 해석을 체택한 것 같다. 여성이 힘겹게 두 손으로 지붕을 떠받치는 것 같은 형상을 그렸으니 말이다. 이 당시 그렸던 모딜리아니의 다른 여인상 기둥 작품들을 보아도, 축제 때 여신을 위해 성물을 옮긴다기 보단 뭔가 힘겨운 포즈로 형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
Amedeo Modigliani
Les Epoux (Verso)
부부 (뒷면)
1913
80x58.5cm
Private Collection, San Francisco, USA
위의 <붉은 여인상 기둥>과 이 작품은 또 하나의 앞뒤 양면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뒷면의 <부부>를 엑스선으로 비추었을 때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런 식으로 밀레의 <만종>에 있는 감자 바구니도 알고 보니 죽은 아기 바구니였다거나... 작품 옆에 엑스선 사진도 나와있다.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을... 다 쓰긴 좀 많고, 일부만 발췌해서 적겠다.
"조각가가 되고자 했던 모딜리아니의 노력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캔버스 앞뒤에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세 개의 그림이 공존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1910년부터 화가에서 조각가로 전향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모딜리아니는 유화그림 작업을 멀리하고 드로잉에 수채물감을 간헐적으로 덧칠하는 방식의 여인상 기둥의 반복된 습작을 집중적으로 제작하게 된다.
모딜리아니가 파리에 도착하던 시절에 파리 미술계에 크게 유행했던 대표적인 이국적 정서의 미술인 고대 에투르스크 조각상과 나무로 만든 아프리카 원시조각 및 크메르 조각에 영향을 받아 조각가로 전향하기로 한 모딜리아니는 친구 폴 알렉상드르를 설득해서 조각가의 길을 들어서는데 조각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얻기 위해 파리 트로카데로에 있는 민족박물관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조각가로 전향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은 1908년 폴 알렉상드르의 소개로 루마니아 출신의 이방인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작업실을 방문하면서 느낀 고대 그리스 조각에 대한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중략)...
양면화로 된 이 작품의 뒷면에는 <부부>라 명명된 또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중략)...
이 작품의 엑스선 촬영을 통해 발견된 새로운 사실은 바탕 밑그림으로 모딜리아니의 누이였던 마게리타의 초상이 그려져 있음이다. 숨겨진 밑그림은 모딜리아니가 1905년 파리로 오기 전에 리보르노에서 그린 그녀의 초상화로 밝혀졌다.
모딜리아니는 완성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들을 가차없이 버리곤 했던 습관으로 인해 기존의 그림 위에 새로운 작품을 덧씌워 그린 것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ㅡSounjou Seo
그런데 엑스선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누이동생 마게리타의 초상은, 모딜리아니의 다른 그림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초기작이라면 그럴 수 있긴 한데, 그래도 딱히 모딜리아니 작품인 줄 모르겠던.
Amedeo Modigliani
Hermaphrodite
헤르마프로디테
1910-1011
43x26cm
Courtesy Galleria Tega, Italy
자야 하는데... 원래 이 작품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다가 이렇게 길어진 거라서. =_=;
나는 유화작품을 좋아한다. 드로잉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 어지간한 드로잉은 슬쩍 보고 지나친다. 그런데 이 작품 앞에서 X마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거리며 떠날 수가 없었다. 제목만 아니었다면 그냥 스윽, 하고 지났을 텐데. 제목은 누가 붙인 것이지? 모딜리아니 자신이 붙인 것인가? 아니면 후대의 사람들인 붙인 것인가? 답답. -_ㅜ
제목. 저 <헤르마프로디테>라는 글자만 아니었더라면 '으흥... 조각상을 연습했던 시기의 드로잉이네' 하며 스쳐갔을 것이다. 그런데 헤르마프로디테. 응? 헤르마프로디테? 뭐라고??
잠시 헤르마프로디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이름 자체에서 볼 수 있듯,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 난 아드님이시다. 당연히 양쪽 부모님의 꽃미모를 타고난 꽃소년이었고. 그가 15세가 되자 낯선 땅을 방랑하고 다니는데, 그러다 도착한 곳이 뤼키아의 도시들과 카리아, 둘 다 소아시아 지역이다. 여기서의 카리아Caria는 윗작품에서 말한 카리아Cariae/Καρυές와는 다른 곳인 듯 합니다. 이렇게 도착한 카리아에서 그는 어떤 샘물에 닿게 되는데, 이 샘물에는 살마키스라는 아름다운 물의 요정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르키소스에게 반한 에코처럼 이 살마키스도 한 눈에 헤르마프로디투스(헤르마프로디테)에게 반하고 마는 것이지. 그리하여 살마키스는 헤르마프로디투스에게 구애를 하지만, 아직 육체적 사랑에는 관심이 없는 헤르마프로디투스는 그녀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는 샘물에 몸을 담그면서 옷을 벗자, 더이상 참기 힘들어진 살마키스가 달려들어 헤르마프로디투스를 온몸으로 칭칭 감고, 저항하는 그를 두고 신들에게 간곡하게 기도한다. "누구든 그 어느 날도 나에게서 그를 떼어놓거나 그에게서 나를 떼어놓지 못하게 하소서!" 이에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져, 남성의 몸으로 물에 들어갔던 헤르마프로디투스는 남성과 여성의 몸을 둘 다 지닌 자웅동체의 몸으로 물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묘사는 다음과 같다. '더 이상 둘이 아니라, 여자라고도 소년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면서 둘 다인 것처럼 보이는 한몸이 되었다.' 아름다운 소년과 아름다운 소녀가 융합되었으니 아주 아름다웠을 테지? 기막히게 아름다운데 또한 낯섦에서 오는 공포와 전율은 어쩔 수 없다. 억울한 헤르마프로디투스는 부모에게 기도하여 그 이후로 그 샘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든 남녀추니로 나오도록 해달라 했고, 그의 기도는 또한 이루어졌다고? 이상한 기도만 들어주는 그리스 신들이다. +_+; (※ 인용: 오비디우스, 『변신』. 천병희 역)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때 헤르마프로디테는 어떤 모습으로 떠오르는가? 이에 대한 조각가들의 멋드러진 상상력의 산물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아래의 작품이다.
호기심이 동하는 분이라면 Sleeping Hermaphroditus, 혹은 Sleeping Hermaphrodite로 좀 더 구글링을 해보시길 권한다. 미려한 선이 기가 막힌 각도에서 찍힌 사진들이 꽤 있거든. 특히 뒷모습은 눈이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여체를 조각한 것인데, 앞으로 가서 보면 잠시 얼음이 되는. 수요 수업 선생님께서 놀라웠다고 강조하시던 걸작 중의 하나다. 나는 본 적이 없는데, 정말 보고 싶네. 언젠가 다시 프랑스로 간다면 이 작품은 꼭 보아야겠다.
자아, 여기까지 읽었을 때 뭔가 이상한 것이 있는가? 모르겠다면 다시 모딜리아니의 <헤르마프로디테>로 돌아가 보시라.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 보시라. 모딜리아니의 작품에서 헤르마프로디테는 카리아티드 조각상에서 연습했던 특징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좁고 긴 얼굴이라던가, 목걸이를 한 듯 이어 붙인 부분을 표현한 목의 경계선이라던가, 확실히 조각상 같아 보이는 표정이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리가 끝난 부분을 보면 헤르마프로디테는 물 속에 서있다. 양손의 포즈를 보면, 표정 없는 조각상 같은 그도 깜짝 놀란 듯하다. 물 속에서 몸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지?
문제는 그의 육체가 자웅동체의 모양이긴 한데, 보통 화가나 조각가들이 상상하고 묘사하는 모습의 자웅동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개는 여성의 가슴과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몸매에 남성의 생식기를 더한 모습으로 표현되곤 하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는 아예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생식기를 둘 다 없애 버렸다. 생각해 보면 '모딜리아니답다' 싶지. 가능한 불필요한 것을 지우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얼굴의 특징만을 잡아 인물을 표현하려 애쓴 화가였으니까. 그래서 '자웅동체'라는 의미를 '둘 다 가지고 있는'이 아닌 '둘 다 가지지 않은'으로 해석한 건지도. 그런 것이면 정말 매혹적인 해석이긴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떠나지 못했어. 그런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육체를 지닌 사람은 꽤 많잖아??' 여성의 생식기에 납작한 가슴을 지닌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의심의 여지 없이 '여성'으로 분류되는 것이지.
이 지점에서 나는 멘붕에 빠졌다. 그런 것이면 제목이 잘못되었다. 그러다가 아니, 제목에 끼워 맞춰 보자, 라며 땀을 뻘뻘. '변신의 과정인 거야'라며. 들어간 곳이 나오고 나온 곳이 들어가고 등등... 의 과정이라고... 하다 보니 그 또한 석연치 않다. 차라리 제목이 '살마키스'라면 모를까, '헤르마프로디테'라는 이름을 달고서 이런 변신과정이 있으리라고는 좀 너무 번거롭다. 남성의 몸에 여성의 가슴이 솟아나는 것이 변신의 과정인 거잖아? 그리고 '(여성의)연약한 육체가 되었다' 라고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표현되어 있고. 그러니 여성의 가슴과 선을 가진 것이 맞다.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더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 겨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혼자서 '어째서 제목이 살마키스가 아닌 헤르마프로디테인 것일까?'라며 곰 네 마리, 곰곰곰곰.
이 사진의 여성은 잔느 에뷔테른느로, 화가지망생이자 모딜리아니의 뮤즈이자 아내였다. 잔느를 만나기 전 영국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와 동거했던 모딜리아니는 가난 속에 술과 마약에 찌든 삶을 살다가 헤이스팅스와 헤어진다. 그 후 33세 때 당시 19세였던, 신앙심 깊은 집안 출신의 잔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는데, 잔느는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의 뮤즈였고 그를 지탱해준 아내였다. 둘 사이 딸이 태어났고 아내의 이름을 딷라 잔느라 이름을 지었을 정도로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있어 '구원'이었다. 1920년 1월, 병약한 모딜리아니는 결핵성 뇌막염으로 끝내사망하고, 모딜리아니를 아주 싫어했던 잔느의 부모님은 그의 장례를 치뤄주는 것을 거절한다. 그리고 다음날, 부모님 집의 5층에서 잔느는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10년 후,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무덤에 합장된다. 이들의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 많이 언급되었다 한다. 아래의 두 작품은 잔느 에뷔테른느를 그린 것이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Jeanne Hebuterne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
1918
46x29cm
Musee d'Art Moderne, Troyes, France
이 작품에 대해서는 도록에 설명을 싣겠다. 설명이 잘 되어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을 25점 이상 그리는데, 초상화 속 얼굴의 생김새는 그가 벌써부터 즐겨 표현하던 형태적 특징을 반영한다. 그는 자신의 반려를 그린 일련의 작품에서 얼굴은 길게, 그리고 주인공의 내향성을 보여주기 위해 눈은 주로 동공 없이 묘사했으며, 목도 물론 자시늬 취향대로 아주 길게 묘사했다. 하지만 1918-1919년에 걸쳐 그렸던 성모 마리아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른 많은 그림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그녀를 더 근거리에서 그렸으며 엄숙한 포즈를 통해 수직성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1918년에 그려진 이 초상화의 표현은 1910-1913년 사이에 조각을 하면서 탐색했던 표현과 관련이 깊다. 길죽한 형태와 납작한 양감은 아프리카 마스크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초상은 또 여인상 기둥을 연상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그가 결코 완성할 수 없었던 '쾌락의 신전'을 떠받치는 '사랑의 기둥'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에게 잔느는 영감의 원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누드를 한 번도 그리지 않았으며, 목이 파진 옷을 입은 모델을 자주 그렸지만 이 초상화 속 그녀는 목이 긴 스웨터를 입고 있다. 잔느가 입은 스웨터의 넥라인 아랫부분을 관찰하면, 여인상 기둥에서 목을 몸통에 붙이는 부분에 조각해 넣는 진주와 비슷한 특이한 모티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톤온톤으로 표현된 목걸이와 유사한 이 모티브는, 동일한 스웨터를 입은 잔느를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모직물로 된 넥인데도 불구하고 목이 더 가늘고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넥라인의 둥근 형태는 잔느를 후광처럼 감싸고 있는 모자와 유사한 효과를 발하면서, 헌신적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구리빛의 땋은 머리는 포즈의 딱딱함을 상쇄시킨다.
초상에 쓰인 색상은 조각같은 구성에 상당한 부드러움을 부여한다. 색이 희미해진 눈썹, 선명하지 않은 턱선, 소수의 색조들로만 채워진 팔레트가 사랑하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ㅡ Rudy Chiappini
이에 덧붙일 말은 없다. 이 평을 읽으며 미술평론가란 작품을 보고 해석하는 지식 뿐 아니라, 창의적인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에 표현력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이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Amedeo Modigliani
Jeanne Hebuterne, assise
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느
1918
55x38cm
Israel Museum, Jerusalem
배부분이 볼록한, 임신 중인 잔느 에뷔테른느를 그린 작품이다. 모딜리아니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단순한 색으로 칠해져 있거나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 편인데, 이 작품에선 예외적으로 침대와 테이블이 있는 침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밝고 온화한 색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프랑스의 햇살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이처럼 부드러운 분위기의 작품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Amedeo Modigliani
Femme au col blanc(Lunia Czechowska)
흰 옷깃의 여인(루나 체코프스카)
1917
81x60.2cm
Musee de Grenoble, France
19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최초 제목은 <환상 Reverie>이었다 한다. 폴란드 태생 루냐 체코프스카는 즈보로프스키와 함께 전시회에 갔다가 모딜리아니를 만난 후, 모딜리아니가 죽을 때까지 플라토닉 러브에 가까운 정신적 교감을 나눈 친구가 되었다 한다. 키가 크고 홀쭉한 얼굴을 지닌 그녀는 모딜리아니가 가장 선호했던 모델이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이 작품에 대해 말할 때 '키가 큰 여성임을 알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을 때 물음표가 튀어 나왔다. 혼자 앉아있는 그림인데 어떻게 모델이 키가 큰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를 해보았는데, 과연 이 작품과는 차이가 있더라. 다른 인물화에서는 모델의 머리 위로 공간이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모델의 머리 위에 공간이 없습니다아. 조금 김이 새었지 뭔가. 이 작품이 개인적으로 시선을 끌었던 것은, 모델의 얼굴이 내 친구 Jh언니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르게 생겼고 내 눈엔 Jh가 훨씬 에쁘지만, 그리고 이렇게 키가 크지도 않지만, 마른 몸매에 작은 얼굴, 그리고... 이상하게 Jh가 연상되더란 말이지.
Amedeo Modigliani
Portrait d'une jeune femme assise
앉아 있는 젊은 여인의 초상
c. 1915
Huile sur toile
75x52.4cm
Fitzwilliam Museum, Cambridge, UK
문제의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다. 영국인인 그녀는 파리에서 지내면서 당대의 여러 예술과들과 더불어 친분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모딜리아니와 동거하면서 병약한 그에게 담배와 아편을 가르쳐주기도 했지.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 일부를 발췌하겟다.
"조각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 속 주인공들은 마치 조각의 주제처럼 표현되고 있다. 그일례가 이 작품상에서 나타나는 입체감이다. 밀도있는 갈색, 볼 위로 분명하게 표현된 그늘, 코의 윤곽선, 오른편 윗입술의 위쪽은 마치 간결한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시인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로 알려져 있는데,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여러 번 그렸다. 그녀의 완벽한 타원형 얼굴 아래로는 원기둥형의 목이 있으며, 얼굴과 목의 색조로 인해 형태에 조각과도 같은 3차원성이 부여되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검은색은 입체성을 강조한다." ㅡ Rudy Chiappini
직접 보았을 땐 딱히 감흥이 없던 작품인데, 이렇게 설명을 보니 간단하게 보고 지나칠 작품이 아니었군, 싶네.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Beatrice Hastings
1915
헤이스팅스를 그린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지 않았는데, 검색하다 보니 색이 예뻐서 싣는다.
Beatrice Hastings
Amedeo Modigliani
Tete de femme(Hanka Zborowska)
여인의 얼굴(한카 즈보로브스카)
1917
54.5x37.3cm
Private Collection, Italy
이 작품은 실제로 보면 마티에르가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두텁게 물감이 칠해졌어요.
Amedeo Modigliani
Tete de femme(Hanka Zborowska))
여인의 얼굴(한카 즈보로브스카)
1918
53.7x36.8cm
Sainsbury Centre for Visual Arts, University of East Anglia, UK, UEA 13
위의 두 인물은 같은 사람이다. 한카 즈보로브스카는 모딜리아니의 후견인이었던 레오플드 즈보로브스카의 부인이었는데, 가늘고 긴 선을 좋아한 모딜리아니가 위의 루나 체코프스카와 함께 가장 많이 그린 모델이었다 한다. 같은 인물이라는 것은 제목을 보거나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아래의 작품은 흡사 남성이라 해도 될 정도로 딱히 성별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아래의 그림이 낫더라.
Amedeo Modigliani
Portrait de Maria
마리아의 초상
1918
66x54cm
Private Collection, USA
이 작품. 아... 이 작품! 이번 전시에 온 모든 작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그것은 작품성이 뛰어나다거나 그래서가 아니다ㅡ는 작품성을 알아 보는 안목은 내게 아직 없으며. 도록에도 특별한 평이 없고, 오디오 가이드에선 아예 뛰어 넘었던 작품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지. 우선,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을 싣는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 마리아는 정면을 향하여 시선은 고정한 채 앉아 있으며, 매고 있는 검은 스카프는 몸과 얼굴을 명확히 나누고 있다. 또 인물이 캔버스의 높이 거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방 안에 앉아 있으며 뒷 배경은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묘사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모델의 얼굴은 거의 종교적이기까지 한 거룩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모딜리아니는 초상화 속 인물이 실제 모델과 유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독특한 기준에 따라 스스로의 그림을 체계화하기 시작하는데, 초상화와 관련된 그의 예술적 여정 전체를 따라가면 그 변화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의 회화는 그런 특징으로 인해 대중의 높은 호응을 얻게 되며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을 누리게 된다. ㅡ 루디 키아피니
모딜리아니의 수많은 초상화들 속에서 마리아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혼자 만의 벽에 걸린 채 박제처럼 숨을 죽인 작품. 전시회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스타처럼 뽐을 내는 작품이 있나 하면, 존재감 없이 흑백사진 속으로 소실되는 작품도 있다. 이 작품은 소실까진 아니었으나, 소수 사람들의 관심 만을 받은 편. 그런데 나는 한 눈에 이 작품이 좋았다. 마치 클림트의 유디트 처럼, 작품 속의 마리아를 지켜 보느라 신이 났지. 뭐, 유디트 씨와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긴 하다. 유디트의 그 짜릿한 서사가 불러 일으키는 상상력이나 감정과 견줄 이야기가, 이 모딜리아니의 마리아에게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이야기와는 상관 없이 그림 그 자체로 감상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클림트의 <유디트 I> 을 언급했는데, 이 작품과 동일한 포인트로 감상했기 때문이다. 자아, 이 작품 앞에 서게 된다면 일단 전체가 주는 분위기를 느껴 봅시다.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밀도 높은 채색감과 존재감 있는 붓터치 어쩌고... 의 특징을 감상합니다. 그리고는 인물을 쳐다 봅니다. 그렇게 어떤 것이 느껴지는지를 곰곰이 짚어 보는 것이죠. 그렇게 느낌이 잡혔다면. 검지 손가락을 들어 눈 앞에 대고는 마리아 얼굴을 '세로로' 반을 가려 본다. 그 상태로 왼쪽 절반을, 그리고 오른쪽 절반을. 그렇게 하면 이 마리아의 얼굴에는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 일단 양쪽의 귀 자체가 다르며.
보는 입장에서 오른쪽 절반의 큰 귀쪽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슬픈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는 현실의 땅을 살과 뼈로 이루어진 물질로서의 육체로 딛고 살고 있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너무 고단하거나, 운명이 기구한 건지도 모르겠다. 가늘게 접힌 쌍꺼풀은 피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움푹 패인 눈매와 은근하면서도 처연하게 꼬리를 떨군 눈썹, 붉게 상기된 뺨이 절망을 말하는 것 같아 애잔하다. 그녀의 귀가 유난히 크게 부각된 것은, 누군가로부터 이 삶의 부조리와 납득불가의 운명에 대한 어떤 해명이라도 듣고 싶은 것일지도. 꼬옥 안아 토닥여주고 싶은 얼굴이다.
그린데 왼쪽 절반, 작은 귀쪽 얼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인지 남성인지 성별의 구분조차 번거로운 표정. 현실의 그 무엇도 상관 없이 오로지 내면, 혹은 피안의 세계를 응시하는 그 눈은 비인간적이고 무기질적이다. 삶의 궁경이라든가 불가해한 운명이라든가, 슬픔, 좌절, 심지어 행복과 쾌락 마저도 관심 없고 상관 없는 표정. 인간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표정은 이전 시기에 모딜리아니가 탐닉했던 그리스 조각상과 닮았다. 홑꺼풀에 길지 않은 날카로운 눈매에서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그 반쪽 얼굴은, 마치 곤충이나 외계 생명체의 그 무엇처럼 낯설다.
마녀는 오른쪽의 슬픈 얼굴이 더 좋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왼쪽의 차가운 표정이 더 좋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의 감정을 거추장스러워하는 잉팁으로서의 취향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끈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일 수도.
'차고 매끈한'은 내가 좋아하는 형용사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차고 부드럽고 매끈한'이다.
Amedeo Modigliani
Buste d'une jeune femme
젊은 여인의 상반신
1917
46x34cm
Courtesy Richard Delh - K.A.D Gallery, Brussels, Belgium
위의 작품은... 음... 아래 작품의 얼굴 부분을 그린 것이다. 아래 작품은 당시 가격 700억이래나, 무튼 모딜라이니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가격으로 경매된 것으로 유명하다고. 이번 전시에 아래 작품은 오지 않았다.
Amedeo Modigliani
Nudo seduto su un divano
1917
olio su tela
100 x 65 cm
Collezione privata
몸값 높으신 그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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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누드화로 넘어간다ㅡ라고 해 보아야 누드화는 단 두 점만 왔습니다. 모딜리아니의 누드화에는 신화라든가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배경의 어떤 이야기가 없이, 오로지 여체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했다는 특징이 있다. 과연, 스토리 없이 여체의 표현 만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Amedeo Modigliani
Female Nude, 1916 (circa
여인의 누드
1916 (circa),
92.4ㅊ59.8cm
The Samuel Courtauld Trust, The Courtauld Gallery, London
오지 않은 작품입니다. 누드화 중에서는 이 누드화가 보고 싶어요. 모델의 표정이 너무 좋다.
아마 이 작품 앞에 서면 육체가 아니라 얼굴을 만져 보고 싶어질 듯.
Amedeo Modigliani
Nu couche de dos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누드
1917
64.5x99,5cm
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 USA
이것도 오지 않은 작품이다.
눈동자가 그려지지 않은 누드화는 어떤 느낌일까, 싶어서 검색한 것인데, 확실히 몹시 이질적이네.
누드로 그리니까 더욱 적나라해지는 느낌이랄까.
수컷을 먹으려는 사마귀 같지 않아?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Amedeo Modigliani
Nu couche aux cheveaux derioues
머리를 푼 채 누워 있는 여인의 누드
1917
60x92.2cm
Osaka City Museum of Modern Art, Japan
자아, 반짝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며 도록표지에서 그 당당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시다. 누드화는 이 작품과, 아래의 <누워있는 누드> 두 작품만 왔는데, 그 두 작품을 비교, 대조하면 감상이 더욱 풍성해진다. 작품 감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 작품에 대한 도록의 설명을 싣는다.
모딜리아니의 누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1917년 파리의 베르트 베일 갤러리에서 열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에 전시된 네 점의 누드 작품 중 한 점이다. 이 작품 외에 다른 세 점이 어느 작품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전시 오픈 날에 모델의 음모를 노출시킨 표현이 너무나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진 후 전시를 문 닫게 만든 문제의 그 누드 작품이다.
모딜리아니의 누드는 자크 림시츠에 의하면 "작품이 발산하는 향기와 전율과 촉감과 파장에 의해 여체의 신비를 가장 감성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때론 가장 아카데미적이면서도 가장 독창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그의 누드는 삶의 숨소리를 담고 있다고 표현할 만치 미술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오사카 시립미술관 소장인 이 작품은 일찍이 파리를 떠나 일본으로 간 작품으로 1928년 프랑스 주재 일본대사였던 시게타로 후쿠시마가 화상 폴 기욤으로부터 구입해서 일본으로 반입된 후에 야마모토라는 소장가의 손을 거쳐 오사카시가 매입하여 현재까지 소장하게 된 작품이다.
한때 이 작품에 대해 진품을 모사한 위작이라는 설이 나돌 정도로 논란이 일었으나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진품임을 확인 받은 작품이다.
모딜리아니가 남긴 여인의 누드 작품 가운데 밀도 있는 색채사용과 완벽한 윤곽과 절제된 표현력 그리고 모딜리아니 작품에 보편적으로 보여지는 아몬드형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드문 작품으로서 누드 작품 중 최고의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다. ㅡ서순주
누드화의 외설 논란이라 하니 어쩔 수 없이 마네의 <올랭피아>가 떠오르지 뭔가.
Sandro Botticelli
Nascita di Venere
1482–1485 circa
tempera su tela
172×278 cm
Galleria degli Uffizi, Firenze
도슨트 분께서도 강조하셨지만, 모딜리아니의 저 누드를 보면 처음 떠오르는 작품이 이 보티첼리의 비너스다. 도슨트분께서는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옆으로 누워있는 것 같은 포즈다'라고 하셨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보티첼리의 어여쁜 비너스 양.
Giorgione de Castelfranco
Venere dormiente
1507-1510 circa
olio su tela
108,5×175 cm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a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아리따운 비너스 양이 수줍은 듯 서 있다면, 르네상스의 거장 죠르죠네의 <Sleeping Venus, 잠든 비너스>에서는 제목 그대로 비스듬히 누워 잠들어 있다. 죠르죠네의 이 비너스는 아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영향을 준 작품이다ㅡ는 아예 티치아노가 이 작품에 참여했었다. 이 작품은 죠르죠네 사망 당시 미완성작으로, 그가 죽은 후 배경의 한 부분을 티치아노가 그렸다고 한다. 아마도 다리 위 오른쪽 윗부분의 풍경 같은데, 원래는 그 자리에 큐피드 그림이 있었다고. 그러나 죠르죠네가 그 큐피드를 지웠다 한다.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성가시네. -_-; 비너스는 아프로디테고 큐피드는 에로스입니다ㅡ 아, 이러니까 좀 낫다. +_+;
난 죠르죠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는데, 아마도 인체를 비율에 맞게 다부진 형태로 그리며, 또 배경의 풍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을 그렸을 당시 베네치아(Venice)는 영토 문제가 있었나 본데, 그리하여 이 '베누스'는 '베니스'를 의인화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붉은색과 저... 색을 뭐라 하지? 베이지...?라 하기엔.;; 무튼, '묘한' 색의 새틴 천 위에서 비너스의 육체는 밝게 두드러진다. 머리 뒤로 뻗은 팔, 쭉 뻗은 다리와 함께 전체 몸은 옆으로 나른하게 늘어진 마름모꼴을 형성하는데, 그런 그녀의 육체는 뒷배경의 자연과 어우러져, 그녀 자신 또한 저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을 준다고. 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평 하나는, 이 작품에서 비너스의 '에로틱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글쎄. 남성의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나?;; 내 눈엔 전혀 에로틱하지 않아서. 뭐, 생각해 보자면 그럴 수 있겠지. 미의 여신 비너스가 어째서 사람 없는 바닷가나 숲 한가운데가 아닌, 지척에 민가가 있는, 심지어 민가에서 그녀를 내려다 볼 수도 있을 장소에서 대낮에 저렇게 벌거벗고 혼자 잠들어 있느냐는 것이다. 모르지, 통제불능 전쟁의 신 아레스... 에또... 마르스... 와 더불어 남편 헤파이스토스의 눈을 피해 막 정사를 즐긴 후인지도. 그런 상상을 하자면 그래, 에로틱할 수도 있겠네. 길쭉하게 늘어진 몸의 라인이 다소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편안한 기분이 들어.
Vecellio Tiziano
Venere di Urbino
1538
Olio su tavola
119 x 165
Galleria degli Uffizi, Firenze, Italia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죠르죠네의 비너스와 포즈가 거의 똑같지? 하지만 명백한 차이는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요? 야외에 있어야 하는 여신 비너스를 감히 집 안에 들인 것이죠. 'Domesticate'란 단어를 썼던데, 어디선가. 여신께서 기분 좀 상하시겠어요. 비너스 자신의 집이라 하기엔 하녀들의 복장이 너무 비그리스적이지 않아요? 모델은 Angela del Moro라는, 당시 베니스의 고급 창녀이자 티치아노의 식사친구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공작이 의뢰한 것이고. 모델이 누구건 간에 이 작품에서 그녀는 여신, 그것도 미의 여신 비너스지. 그리고 또 한 가지의 큰 차이점은, 죠르죠네의 비너스가 눈을 감고 꿈을 꾸고 있는 반면,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새초롬, 뇌쇄적인 눈빛으로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죠. '이것 봐요, 보고만 있을 거예요?' 라는 듯.
비너스 뒤에서 하녀들은 상자... 어... 궤에 가까운 함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그 함은 cassone라고 당시 결혼할 때 신부측 부모님이 해주는 결혼 선물이었다는데, 아마도 그 함에서 비너스에게 입힐 옷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평이 있다. 하녀들이 옷을 찾아 가져오면 비너스는 옷을 입으며 돌아서 버리겠지.
배경을 2분할하는 검은 커튼은 비너스의 밝은 육체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또한 배경의 세로 선들은 비너스 육체의 곡선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여기에서 발치에 큐피드가 아닌ㅡ귀여운ㅡ강아지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도록 하자. Fidelity. 아이러니컬하게도? 충실함, 정절의 상징이랍니다. 비너스 여사가요? 오호호.
Édouard Manet
Olympia
1863
Oil on canvas
130.5 cm × 190 cm (51.4 in × 74.8 in)
Musée d'Orsay, Paris
티치아노의 비너스를 본 후 이 마네의 <올랭피아>를 보면 재미나지. 우선, 실내였던 배경은 그대로다. 그런데 깊이가 없어졌지? 2차원의 캔버스 면을 3차원인 양 보이도록 만드는 마법의 원근법을 집어 치워 버렸지, 마네는. 배경이 바짝 앞으로 당겨져 있어서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까지 든다ㅡ그래도 배경을 '그려준 게 어디냐'며. -_ㅜ 원근법에 익숙한 현대인이 보기엔 잠시 호흡 고르기가 필요한 마네 씨니까. 그리고 뭔가를 찾던 하녀는 흑인으로 바뀌어 있고(어... 잠깐. 혹시 티치아노의 저 흰옷 입은 하녀가 실은 흑인이었던 건가...?ㅡ는 그렇지 않았을 게다. 티치아노 작품을 확대하면 살짝 금발기가 보이기도 하거니와, 마네가 흑인 하녀를 등장시킨 것은,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결과 유럽 대륙에 새로운 인종이 등장했다라는, 당시 현실적 상황의 반영이라고 하니까), 하녀는 손에 비너스를 위한 옷이 아닌, 어느 숭배자가 보낸 듯한 꽃다발을 들고 있다. 참, 그리고 발치에는 강아지 대신 검은 고양이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새삼 말하기도 무안할 만큼 유명하긴 한데. 생각 정리 겸 한 번 적어 볼까.
마네가 1865년 살롱전에 이 <올랭피아>를 출품하자, 프랑스 미술사에 있어 최악의 스캔들이 터져 버린다. 혹평에 혹평이 끊이질 않았고, 작품을 향해 주먹을 들이대는 사람들, 지팡이를 두드려대는 사람들 때문에 구석방으로 옮겼는데도, 오히려 훌륭한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혹평을 듣고 온 사람들과 기자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왜요? 기분이 나빴거든, 이 그림을 보는 파리의 신사, 숙녀 분들이.
이 작품 속의 올랭피아는 비너스와 같은 컨셉으로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그녀는 여신이 아니라 매춘부였다. '올랭피아'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원작인 알렉산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우리나라에선 '춘희'라 번역되었다)에 등장하는 인물로, 아름다운 육체를 팔아 살아가는 매춘부였으며, 마네가 그림을 그렸을 당시 파리에서 '매춘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매춘부의 흔적을 찾아 볼까. 까만 목걸이(ㅡ라기엔 목끈에 가까운;;)와 뒤가 트인 새틴구두는 당시 파리 매춘부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이라고. 그리고 발치의 검은 고양이는 전통적으로 악마로 보지만, 이 작품에서는 등과 꼬리를 세운 모습으로, 발기된 남성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자, 그런데 마네의 이 <올랭피아>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혹평을 받았을까?(엇, 전부 혹평만 한 건 아니고, 에밀 졸라의 경우는 '훌륭한 그림'이라 호평을 했다.)
이 작품이 그토록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이유는, 고상한 척 하는 사회가 숨기고팠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 죠르죠네, 티치아노, 에또 벨라스케즈라든가, 카바넬이라든가. 여성의 나체를 그려 넣으려면, 신화나 성경 속의 인물을 핑계 삼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니까 여성의 누드는 보고 싶은데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좀 상스러우니까, 분명한 누드를 그려 놓고는 '아니야, 이건 현실의 여성이 아니고 신화 속 인물이야, 혹은 신이야. 신들은 인간과 다르니 누드도 고상한 거잖아'라고 변명하는 것이지. 당시 귀족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미술의 한 장치였다고. 그러니 아무리 노골적인 나체를 그린다 해도, 그녀는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닌 신이니까 괜찮잖아, 그렇잖아, 였던 거지. 그런 여성의 누드화를 '아니거든. 여신이 아니거든. 당신이 알 수도 있고 관계를 가졌을 수도 있는, 주변의 인간 여자 사람 맞거든'이라 선언한 것이 일찍이 고야의 마하 여사. 다만 고야 씨는 조금 수줍어 하셨어요. 딱히 모델이 '매춘부'라는 암시도 없었고. 그런데 우리의 반항아 마네 씨는 '당신이 어제 잠자리했던 그 매춘부 있잖아!'라며 노골적으로 모델을 매춘부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 19세가 당시 파리에서는 매춘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행한 나머지, 몇 단계로 나뉘어져 있기까지 했다 한다. 최고급 매춘부와는 고급 인테리어가 된 곳에서 아리아를 들으며 ... 했고, 그 다음 단계와는 야외 저택에서 먹고 마시며 도박까지 즐기며 ...했고, 공식적으로 경찰의 감시 하에 ...를 할 수 있는 곳에, 잠깐 빌려 ...할 수 있는 곳까지 있었다 하니, 이쯤 되면 매춘은 공인된 직업, 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도 미술에서는 아직 신화, 여신, 거리며 시치미 뚝, 떼고 있으니 마네 씨가 욱했던 거겠지. 이런 상황에서 마네가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드러내 보이자, 고상하신 신사, 숙녀분들께선 심기가 편치 않았던 게다. 아니 근데 속되다 욕하면서 왜 두 눈 크ㅡ게 뜨고 바짝 다가가 보는 거냐며?
작품 속의 올랭피아는 아름답지 않은(?이라고들 하는데 왜 내 눈엔 예뻐 보이지;;) 얼굴에 똥배가 부각된(?왜 내 눈엔 저 몸매도 날씬해 보이지;;ㅡ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남성의 왜곡된 환상 때문인 거라며! 또 혼자 열 받아 버럭버럭) 육체를 지닌 매춘부임에도 불구하고, 벗은 몸을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보는 이ㅡ남성ㅡ을 유혹하기는 커녕, '넌 뭔데?'라는 듯 시크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는 이를 '감히' 내려다 보고 있다. 현대의 여성인 내가 보기엔 시크하고 멋진 언니인 건데, 당시 신사분들이 보시기엔 많이 언짢으셨던가요? 불처럼 화를 내셨다고들.
아니 근데 말이다, 이 모델에 대한 또 다른 정보가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http://bbigsso.blog.me/220404369566 를 방문해 보면 이 모델이 실제로는 매춘부가 아닌 화가지망생이자 나중에 화가가 된 빅토르 뫼랑이라는 사람이라 합니다. 사실이라면 좀 많이 억울하셨겠어요. 하지만 뭐, 같은 화가라면 예술적으로 이해했던 거겠지는. 그러니까 누드모델을 헀던 것일 테지.
문득 든 생각인데, Domesticated Venus, 즉 길들여진 여신은 매춘부가 되는가? 뭐랄까, 여성의 성적 해방을 부르짖었던 클림트 씨가 잠시 스치는데, 그러니까 여성은 죠르죠네에서의 비너스처럼 길들여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이다. 집 안에 갇혀 한 남성에게로 길들여진다면 그것은 상대를 유혹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뭐래.;; 관련 작품들을 훑다 보니 그냥 떠오른 생각이다. 훠이훠이. =_=
이 작품도 오르셰 미술관에 있네. 오르셰 미술관엔 유명한 작품이 너무 많아. 가서 보고 싶다.
자아, 이쯤에서 그 사이 기억 저 편 어드멘가로 밀려났을 우리의 주인공, 모딜리아니의 그녀를 다시 불러 옵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여성 보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더 맘에 든다. 하지만 마네의 작품은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이 작품은 앞서 말했듯 아래의 작품과 비교해서 보면 색다른 매력이 두드러진다. 우선은 표정. 몹시 당당하지? 마네의 시크 앤 퉁명 올랭피아와는 다른 당당함으로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다. 앞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는 다른 누드화와 달리, 신화나 풍경, 실내 등의 배경이 없이 오로지 여체 만을 전적인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확실히 볼 것이라곤 모델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집중력을 유도해낼 수 밖에 없는 장치를 영리하게 사용한 모딜리아니 씨.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까 얼굴이 잘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얼굴은 그닥 들어오지 않더라ㅡ는 내 키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려나.;;
우선 이 작품은 액자가 씌워져 있다. 쉬이 눈에 띄진 않는데, 반짝임 때문에 알게 되었지. 반짝임은 좀 있다 말하기로 하고. 이렇게 사진으로 보아도 여체의 곡선이 황홀하지?ㅡ그래? 싶으면 아래의 작품을 보면 된다. 다소 직선적인 아래 작품 여체에 비해, 이 작품의 여체는 그야말로 곡선곡선하지 뭔가. 튀어나와 보일 정도로 뚜렷한 '선'은 너무나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어 아찔하던. 아주, '여체의 매끈함을 제대로 보여주지!'라며 작정을 한 것 같다. 작품 중간 즈음의 위치, 바닥의 감상 라인 가까이에 서서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더라. 마, 만지고 싶었어. +_+;;; 껍질 벗긴 말랑 복숭아처럼 매끈한 그녀의 육체는, 여성이 보기에도 탐스러워서는, 정말 너무 만져 보고 싶더란 말이다ㅡ는 그림이니 막상 만지면 거칠거칠하겠지. 그리고는 반짝임*. 액자와 조명 때문인가 싶어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며 액자 없는 아래 작품과 비교를 해보았는데, 뭐 그 영향도 크긴 하겠지만 꼭 그것 때문 만은 아닌 듯. 위의 사진을 보아도 살짝 반짝임이 보이는데, 아마도 물감의 흔적 때문인 것 같다. 이것도 일종의 임파스토 기법이려나? 그러니까 물감이 자잘하게 맺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치 몸에 좁쌀 여드름이 뒤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빛과 섞이면 반짝반짝* 빛을 내던. 옆으로 길쭉한 작품이니 옆으로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감상을 하면, 이동에 따라 그녀 몸의 부위가 반짝반짝거리더라. 아주, 넋이 나갈 뻔. 모딜리아니 특유의 밀도감 있는 채색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내 공간에 있다면ㅡ상상을 해보았는데 음... 야릇한 느낌이 들더라. +_=; 오사카 미술관 소장이라 하니, 언젠가 오사카에 가게 되면 꼭 꼬옥 다시 만나 봐야겠다. 일본에서 가고 싶은 곳은 오사카-교토 하나 남았거든.
Amedeo Modigliani
Nu allonge(Portrait de Celine Howard)
누워 있는 누드(셀린 하워드의 초상)
1918
65x100cm
Private Collection, Switzerland
드디어 마지막 작품이다!! 머, 멀미 나.;;; 괜히 죠르죠네니 티치아노니 건드려 가지고서는. ㅜㅠ 물론 아직 키슬링과 작업한 작품이 있긴 하지만 그건 뭐, 별로 감흥이 없었어서 사실상 이 작품이 내가 후기로 다룰 마지막 작품이다ㅡ는 쓸 말은 거의 다 썼고, 이미. 도록의 설명을 적습니다.
모딜리아니가 대중의 마음 속에서 처음 각인되고 쭉 그 명성을 유지해 온 것이 누드화 덕분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1902년 피렌체에서 누드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이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한 후로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모델을 고용하지 못하다가, 1916년부터 비로소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 덕분에 누드를 그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다. 자유분방하게 드러누운 균형 잡힌 신체를 지닌 여성이 관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주인공으로부터 드러나는 솔직성과 부끄러움 없는 천연함으로 인해 그 당시로서는 큰 스캔들이 야기될 수 밖에 없었다. 모델의 신체와 관찰자의 시각은 동일한 높이에 위치한다. 모델은 강렬한 붉은색의 직풀이 덮인 침대 위에 드러누워 다리를 관찰자 쪽으로 반쯤 벌리고, 팔은 머리 뒤로 구부리고 있으며, 얼굴은 관찰자를 향한 채 도전적이고 관능적인 눈짓을 보내고 있다. ㅡ루디 키아피니
시선이 살짝 위에서 내려다 본 것이라는 건 이제야 알았네. 그랬어도 내 키에서는 별로 위가 아니었으니, 흥. 이 작품은 처음 보았을 땐 꽤 맘에 들었었다. 위의 <머리를 푼... 누드>는 처음 보았을 때 좀 부담스러웠거든. 빈틈이 없달까. 호흡이 곤란했다. 반면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숨통이 트였지. 윗작품에 비하면 훨씬 담백한 선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포즈도 윗작품에 비하면 대충스럽고? 상대적인 여유.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눈동자가 참 인상적이더라. 나는 '생선의 눈'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말을 들은 마녀는 뜨아? 표정을 짓던. 응? 생선? 하며. 흰자위를 표시한 은빛 때문이었을까. 매끈매끈, 갈치라기 보단 고등어의 그 매끈탱글함이 떠올랐다. 그래선지 다소 이질적이고 더욱 당당... 당돌하게 느껴졌던. 위의 루디 키아피니 씨의 평 때문에 '관능적'을 국어사전에서 검색했다. '성적인 감각을 자극하는'이라. 역시 여성이라 못 느끼는 것이려나. orz 으...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대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작품들을 작가의 의도대로 충만히 감상하려면 내가 남성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orz 성전환 수술이라도 해야 하려나아. ㅜㅠ
확실히 노골적인 노출은 '관능'을 감소시키는 것이, 음모가 훤히 드러난 이 작품 보다, 중요 부위?를 살짝 가린 윗작품이 훨씬 '관능적'이다.
Moise Kisling & Amedeo Modigliani
L'atelier de moise Kisling
모이즈 키슬링의 아틀리에
1918
66x63.5cm
Private Collection, Europe
네네. 에너지는 바닥났습니다. 장장 2개월 넘게 끌었던 후기를 드디어 끝낼 수 있겠구나ㅡ싶은 마음에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더 긁어 모으고 싶지만, 그닥 별로 느낀 바가 없었어서. 키슬링은 모딜리아니를 좋아하는 내게는 아직은... 별로였던. 키슬링과 모딜리아니가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석상이라든지 그림은 모딜리아니가, 그 외 정물은 키슬링이 그렸다고.
이 작품은 오지 않은 것으로, 모딜리아니의 <앉아 있는 누드>, 1917 이라는데 찾기 귀찮다.
위에 키슬링과 같이 작업한 작품 안에 있는 그림이어서 올려 보았다.
처음 모딜리아니전에 다녀왔을 때 마녀에게 말하니 마녀가 대뜸, "그, 나 같이 생긴 사람들 초상화?" 라고 말해서 푸하하 웃었다. 그래서 내가 모딜리아니 작품을 좋아하는 걸까? 실제로 모딜리아니는 가늘고 길쭉한 선을 지닌 사람들을 좋아했는데, 나와 취향이 겹친다, 싶었지. 개인적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담백함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대략적인 취향이 그러하다는 것이고, 개별적으로 대상 각각의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쇠라와 함께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이번 기회에 직접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을 대하니 느낀 것도 많고 즐겁더라. 작품 수가 적었던 것은 모딜리아니가 남긴 것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웠고. 그래도 이렇게 직접 만날 수 있는 것이 어디야ㅡ라며.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세 작품은 <마리아의 초상>과 <머리를 푼... 누드>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였다. 그 중 딱 한 작품을 '집에 가져가 걸 수 있다'고 상상해 보았는데, 이상하게 가장 좋았던 <마리아의 초상>이 아니라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를 선택하겠던. 마리아 씨는 좀 너무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서. 우아한 그, 를 데려가 내 공간 벽에다 걸어두고 싶었다. 머리 복잡할 때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다른 세계로 다녀오면 좋겠고. <머리... 누드>를 내 공간에 걸어둔다면 끄응...; 내 조그만 공간 자체를 집어 삼켜 버리지 않을까.;; 상상 만으로도 황홀하군!
멋진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미술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뒤돌아 보니 오탈자와 기괴한 문장이 너무 많다. 뭐, 할 수 있다면 하나하나 정정해 보겠지만 귀찮.
알아서 읽으시겠지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