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그리스 신화에 관한 연극 네 편을 공연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었다. 꼭 가야지 했더랬는데, 일이 생겨 가지 못했다. 그렇게 아쉬워하던 중, 산울림 소극장의 대표 연극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다시 상영되었고, 끝나자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앞서 공연했던 네 편 중 두 편을 재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표를 예매해 두었다. 7월 2일 토요일 오후 세 시. 몇 년 만일지도 모를 시간을 건너 오랜 만에 찾은 산울림 소극장은 여전한 그대로. 참 공간이란 것이 그렇구나. 연극도 배우도 관객도 바뀌었지만 장소는 그대로 남아 예술정신을 이어가는가, 싶고. 우리나라에 어지간하면 변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공간이 몇 군데 있지. 산울림소극장이라거나, 대학로의 샘터 파랑새극장이라거나. 그리고 내 개인적 욕심으로는 광화문의 씨네큐브. 변하지도 말고 사라지지도 않았으면 하는 공간들. 자리는 맨 앞 맨 중앙. <프로메테우스>를 어떻게 풀었을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을 기다렸다.
http://www.mhj21.com/sub_read.html?uid=97436§ion=section2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51&newsid=03653926612684344&DCD=A405&OutLnkChk=Y
↑ 공연에 대한 근사한 평들은 위의 기사들을 참고하세요. 아래의 사진들은 위의 기사들에서 데려와
고맙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흐음... 위의 두 사진은 앙코르가 아닌 첫 공연 때 사진인 건가? 윗사진의 여성분은 다른 분인 것 같고, 아래 사진의 여성 배우분도 의상이 다르네. 그리고 저렇게 목마를 타는 장면은 없었는데.
내용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을 배경으로 하여 프로메테우스와 관련된 그리스신화의 이야기들이 진행되는 형식이다. 보면서 한 가지, 프로메테우스가 크로노스의 형제였던가? 나는 왜 제우스의 사촌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거지. 헤로도토스의 『신통기』를 다시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이 연극의 주요골자는 아이스퀼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내용이다. 그 희곡을 중심으로 대본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다. 이오가 등장하는 것은 아이스퀼로스의 책에 나오는 부분이고, 어쩔 수 없이 판도라도 등장하는데, 이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다시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 감상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도 있고, 또 아닌 부분도 있고 그러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주었던 '불'은 단순히 물질적인 불이 아니라 계몽이자 자유의 상징으로서, 신으로부터 분리되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고능력이자 이성이라는 해석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긴 했다. 달리 무엇으로 보겠는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가져다주기 전까지 인간이 신들과 함께 올림포스에 살았다는 해석은 새로운 것이었는데, 음... 그렇게 해석되는가? 그랬다면 인간은 올림포스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되나? 신들과 인간 사이의 계약을 체결할 때 지방과 내장으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편을 들어 제우스를 속였기 때문에 제우스는 화가 나서 인간들로부터 불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다 주었고. 뭔가... 신화 자체가 시간적 순서가 좀 헷갈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을 만들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 불을 선물로 주었다는 말이 되니까, 그럼?
그리고 또 한 가지 의아한 해석은, 물론 판도라가 '선물'이란 뜻이긴 하지만서도, 인간들 전체가 판도라를 받아들였는가?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의 아내인데? 그 말은 에피메테우스 또한 티탄족이란 뜻이고. 뭐지... 그래서 인간들이 신들과 같이 먹고 살았다고 해석을 한 것일까. 이 판도라의 부분은 조금 더 면밀히 사고해 볼 필요가 있지 싶다. 최초의 여자인간인 판도라가 어찌하여 인간이 아닌 신ㅡ티탄족ㅡ의 아내가 되었나. 그리고 판도라와 에피메테우스의 자녀인 퓌라와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덩이가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할 수록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아 그런데 귀찮네.
무튼, 두어 군데 ??하는 곳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난 연극이었다. 폭군이자 독재자인 제우스의 권력의 남용이라는 정치비판적 요소도 있었고. 그런데 그리스신화를 읽는 동안에는 프로메테우스 편이었는데, 아이스퀼로스의 글을 읽고 이런 연극도 보니까 별안간 제우스가 또 불쌍해지지 뭔가. 어릴 적부터 신데렐라보다는 계모와 이복언니들이, 콩쥐 보다는 팥쥐가 더 불쌍해 보인다 생각했더랬는데, 이유인 즉 신데렐라나 콩쥐는 내가 아니어도 읽는 독자들마다 또 책 속의 등장인물들마다 예뻐하고 사랑해주는데, 못생기고 못돼먹은 언니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청개구리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건지도. 제우스가 여기저기서 두드려 맞으니까 또 슬그머니 편을 들어주고 싶어지고 그래ㅡ지만, 그리스신화를 읽다 보면 역시나 제우스는 비겁한 호색한이다.
그리스신화의 내용을 공연제목에 등장하는 인물별로 다시 정리하고 싶다면 꽤나 많은 도움이 될 연극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번뜩이는 해석도 재치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