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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리사이틀] 소프라노 강혜정 독창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ㅡ 은빛 거미줄의 희롱

by Vanodif 2017. 9. 28.











먼저, 이렇게 멋진 리사이틀에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당 회원 초대로 간 소프라노 강혜정 독창회는 최근 전시 후기들이 잔뜩 밀려 있어서 미처 예습을 하지 못하고 갔다. 그런데 기대를 훨씬 뛰어 넘는 콘서트에 깜짝 놀랐다. 일단 간단하게 외모 칭찬부터. 와... 드레스가 넘 우아한데, 그 우아한 드레스가 딱 잘 어울리도록 아름답고 귀여우셨다. 일단 눈이 즐거워졌고. 세 벌의 드레스가 참 예뻤는데, 그 드레스보다 강혜정 님은 더 아름다웠다. 


프로그램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곡이 많았다. 꼬박 두 시간을 채운 공연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는 걸 느낄 수가 없었다. 1부 곡이 여섯 곡인데, '벌써 여섯 곡이 끝났어?' 했더니, 2부의 여섯 곡은 더욱 일찍 끝났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시간이 흘러 있어서 어이 없었던. 그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던 독창회였다. 


우선 조명을 먼저 칭찬하자. 2부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에서는ㅡ루살카는 이를 테면  <인어공주>의 오페라 버전이니까ㅡ파도 같이 굽실대는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아래에서 허벅지 부분까지 보랏빛 조명으로 비추어 마치 물 속에 잠긴 채 노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나 하면, 뒤의 벽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조명 덕분에 환상적인 느낌이 상승했다.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 연주 끝나고 일행과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 연주 들으러 가 보자'는 말을 나누었을 정도로 소리가 정제된 연주를 해주셨다. 마치 한 악기로 연주하듯 잘 다듬어지고 응축된 소리가 귀에 즐거웠는데, 알고 보니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과 수지오페라단의 <나비부인>, 솔오페라단 등의 공연과 함께 해오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는 반가웠다. 그러니까 우리가 들어본 오케스트라였구나. 다음에 오페라를 보게 되면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의 연주인지 눈여겨 봐야겠다.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 Carlo Palleschi. 와... 이 분 사랑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 지휘자로 코심 수석 객원 지휘자와 스타니슬라오 활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스폴레토 극장 상임 지휘자이자 국립음악원 교수로 활동 중이시라는데, '눈으로 즐기는 지휘'를 보여주셨다! 특히 두 개의 오페라 서곡을 지휘하시는 동안 흔히 '지휘자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상상하는 바로 그 동작으로 눈으로 듣게 되는 지휘를 하시는데, 그 덕인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지휘자의 동작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쾌감이 대단했다. 나중에는 거의 방방 뛰면서 지휘를 하시는 모습에 관객석에선 웃음이 나왔고, 여기저기 지휘봉을 부딪힐 정도로 열정적인 지휘에 아낌없는 박수가 터졌다. 


바리톤 양준모 님. 낮고 굵직하고 풍성한 바리톤 음성이 강혜정 님의 높고 맑은 음색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강혜정 님. 내게는 1부와 2부가 좀 다르게 들렸는데, 1부에서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특유의 높고 맑고 화려한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면, 2부에서는 리릭 소프라노의 서정성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다가왔다. 한 번은 어떤 곡이었더라, 부르시는 도중에 발성 영역이 이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음악에 대해 잘 몰라서 답답하다. 암튼, 한 호흡의 발성에 음색과 발성법이 자연스레 바뀌어서 신기했다. 순간 반짝, 하고 무지개가 나타난 것 같았어.


로시니의 '피렌체의 꽃 파는 소녀'의 콜로라투라에서부터 은빛 미세한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났는데, '집시와 새'에서 펼쳐진 플룻과의 듀엣에선 반짝이는 은빛 거미줄 위로 이슬 방울이 또르르 굴러가는 느낌이 들어서 넋이 나갔더랬다. 2부의 '달에게 부치는 노래'에선 청순하고 정숙한 처녀의 느낌이 실크로 된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낭만적으로 전해졌으며, 마지막곡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에서는 솔리스트 플룻의 연주와 함께 그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콜로라투라가 현란하게 펼쳐졌다.  밝게 빛나는 햇살 아래 미세한 거미줄이 한 겹 뒤에 또 한 겹, 그런 식으로 수없이 반짝이다가, 그 위를 이슬 방울들이 또르르 구르더니, 이내 은박으로 된 나비가 나타나 은빛 날개를 팔랑이며 은빛 거미줄과 이슬 위를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강혜정 님의 노래가 내게 참 듣기 좋았던 것은 맑고 깨끗하게 빛나는 음색 외에도 비브라토가 너무 크지 않고 가늘었기 때문인데, 그래서인가 높고 가는 콜로라투라 음정에 더욱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뛰어난 소프라노분들 중에 간혹 굵은 비브라토를 지니고 계셔선지 고음으로 가면 살짝 음이 뜨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아직 감상법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는 그런 음이 좀 힘겹다. 그런데 강혜정 님은 모든 음이 정확하고 안정적이어서 듣기에 편안했다. 또한 강약의 조절을 가슴 설레도록 쫀득하게 하셔서 지루할 틈 없이 즐거웠다. 과함이 없고 잘 통제된 깨끗한 노래. 그 정돈된 아름다움.


리사이틀이 끝난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엊저녁의 은빛 거미줄과 이슬 위로 은빛 날개를 팔랑이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다. 







La fioraia fiorentina by Anne Marie Rodde, Noel Lee 

Gioacchino Rossini, Vincenzo Bellini, Gaetano Donizetti






소프라노 박성희 - J. Benedict - The Gipsy and The Bird






Song to the moon (Dvorak) - Hye-Jung Kang



유툽에서는 강혜정 님의 화려한 콜로라투라를 즐길 수 있는 동영상을 구할 수 없어 속상하다.






Sumi Jo - Adam - Le Toreador - Ah! vous dirai-je, maman


듣는 것도 숨이 차는데 부르시는 것은 대체 어떨까.







Beverly Sills - Ah vous dirai-je, maman






[프로그램] 
 
G. Donizetti - 'Overtre' from Opera <Don Pasquala> 오페라 <돈 파스콸레> 서곡

G. Rossini - La fioraia fiorentina '피렌체의 꽃 파는 소녀'

G. Donizetti - 'Quel guardo il cavaliere' from Opera <Don Pasquale> 오페라 <돈 파스콸레> 중 '기사의 뜨거운 눈길'

G. Gonizetti - 'Pronta io son' from Opera <Don Pasquale> 오페라 <돈 파스콸레> 중 '자, 준비됐어요'

V. Bellini - 'Care compagne... Come per me sereno' from Opera <La Sonnambula>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 중 '사랑하는 친구들'

J. Benedict - The Gypsy and The Bird '집시와 새'



INTERMISSION



G. Rossini - 'Overture' from Opera <Il Barbiere di Siviglia>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 서곡

Arr. 김민경 - 새야새야

이지수 - 아라리요

A. Dvorak - 'Song to the moon' from Opera <Rusalka> 오페라 <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

G. Verdi - 'E sogno? O Realta?' from Opera <Falstaff> 오페라 '팔스타프> 중 '꿈인가? 생시인가?'

A. Adam - 'Ah! Vous dirai-je, Maman' from Opera<Le Toreador> 오페라 <투우사> 중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프로필]        
 
특유의 맑은 음색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로 꼽히는 소프라노 강혜정은 이번 독창회에서 스폴레토스페리멘탈레 극장 상임지휘자이자페루지아 국립음악원교수인 지휘자 카를로 팔레스키,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강혜정은이번 무대에서관객들에게 그가 자랑하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곡들을 선별해 들려줄 예정이다. 이번 독창회는도니체티의<기사의 뜨거운 눈길>, 베네딕트의 <집시와 새>, 드보르작의 <달에게 부치는 노래>, 이지수의 <아라이요> 등 그만의 특유의 음색인 높고 맑게 울리는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꾸며진다. 더불어,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한국가곡레퍼토리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소프라노 강혜정은 이번 독창회에서 바리톤 양준모와 함께 도니체티의 <자, 준비됐어요>를 연주할 예정이다. 바리톤 양준모는 2013년 국내에서 초연된 국립오페라단의 <파르지팔>에서 클링조르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현재는독일 뉘른베르크 국립오페라극장 주역가수로 활동 중인 성악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