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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호두까기인형 The Nutcracker by 유니버설발레단 UBC @유니버설아트센터

by Vanodif 2017. 12. 28.





유니버설 발레단 홈페이지: 

http://www.universalballet.com/korean/performances/performance_view.asp?cd=678&furl=performance



인터파크 예매 페이지: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7012208







처음 방문한 유니버설 아트센터는 리틀 세종회관 같았다. 아담한 공연장이어선지 공연장 분위기 자체가 가족적인 느낌이었다. <호두까기 인형> 특징상 어린이 관객을 동반한 가족 관객이 많아서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전 캐스팅이 다 나오니 좋네. 원래 공연 때 이랬나? 국립 <호두까기인형> 때도 이 전체 캐스팅표의 덕을 톡톡히 보았더랬는데. 공연을 보다 보면 궁금한 무용수분들이 생기니까.



이번 유니버설 <호두까기 인형>은... 처음 보는 거라 안무가 낯설기도 하고, 뭣보다 예당 오페라극장에선 개방되지 않는 발코니석 욕심에 발코니석으로 많이 예매했더랬다. 그런데 앉아 보니 예당에서 개방 않는 이유를 알겠더군. 다리 아픕니다. 당연히 시야제한 꽤 있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가깝다. <호두까기 인형>은 장점만 쓰기로 했는데... 그거 안 될 듯. 슬프네. ㅜㅠ


이번에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발레를 너무 가까이서 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 발레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이 인간의 몸으로 구현하는 비인간적인(천상의) 아름다움이다 보니, 너무 가까이에서 무용수분들의 물성을 적나라하게 확인하는 건 내게는 유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무용수분들의 멋진 몸매와 근육,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동작이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 동작의 라인을 세심히 따라갈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잇점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당혹스러웠다. 


3층이었지만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였기에 오페라글래스가 필요 없는 자리였는데, 예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글래스로 보는 것보다 맨눈으로 보는 것이 더욱 가깝게 보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무용수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건 참 좋았지만, 너무 가까이서 보다 보니 전체적으로 실사판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기분이 묘했다.


단, 가까이 발코니석에서 보는 최대 장점은 무용수분들의 화려한 기량을 볼 때였다. 점프의 높이라든가, 빠르고 정확한 회전, 리프트 등의 고난도 동작을 섬세하게 확인하는 것은, 오페라극장의 멀리서 간신히 전체 선만 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쾌감이 있었다. 여러 번 볼 것이면 발코니석을 예매해도 색다른 관점에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쓰다 보니 2층 발코니석이 또 궁금해지네. 더욱 가깝게 느껴질 텐데ㅡ는 그런데 2층 발코니석은 맨 앞자리가 비어있는 것 같았다만. 모르겠다. 암튼, 내내 궁금했던 발코니석 관람을 즐길 수 있어 독특하고 신기했다. 그런 점에서 재미난 감상이었고.


일단 어제 공연의 감상은...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소박하고 동화스러웠다. 분장도 그러하고. 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를 바실리 바이노넨이 리메이크한 버전인가 보다. 함 찾아봐야겠네. 안무는 내 타입이 아니었다. 국립의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과 상당히 흡사하긴 하지만, 왜 그리고로비치가 굳이 다시 안무를 해야 했는지 납득이 갔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유니버설 무용수분들의 기량이 아까웠달까. 그분들의 실력을 잘 아는 나로서는 무용수분들이 아까운 안무였다. 하지만 무대가 예당 오페라에 비해 작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셨을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어린이 관객들은 더욱 좋아했을 것 같기도 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연.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가 몹시 화려하고 웅장하고 세련되었다면, 바실리 바이노넨의 안무는 곳곳에 고난도의 동작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면서 따뜻하고 소담했다. 그동안 국립의 그리고로비치 버전을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에 아직은 화려함이 더 익숙하지만, 유니버설의 버전을 좀 더 보다 보면 이쪽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만 박스석과 일반좌석의 차이로 인해 정확한 비교는 불가하겠다.


일단 전체적 분위기와 안무를 따라가느라 개별 무용수분들에 대한 감상은 거의 하지 못했다. 급하게 몇 가지나마 떠올려 보자면



장유진 어린 클라라: 오른발등이 어쩜 그리 예쁜지. 요즘 어린이 무용수는 다 이래요? 깜짝 놀랐다. 발끝이 단정하고 상쾌하다. 무엇보다 그 가벼움. 드롯셀마이어가 들어 올릴 때의 무중력감이 지금껏 보았던 어떤 발레리나보다도 가벼웠던 것은 어린이 무용수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가벼움을 보고 싶었던 것이어서 그 부분을 3층 발코니석이 아닌 2층 중앙 일반석에서 보고 싶었다. 



강미선 클라라: 강미선 님의 선이 참 좋으셔서 보는 눈이 시원했다. 어떻게 거의 모든 선이 수직 수평 대각선이지? 특히 수직 180도가 매번 깨끗하셨는데, 이것이 3층 발코니석에서 보았기에 그렇게 느꼈던 건지 정말 그러신 건지를 확인할 수 없어 답답했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건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작이라 황홀했다. 회전 빠르시고 정확하시고. 고난도의 리프트도 아무런 불안 없이 척척 가볍게 해내시는 강미선 님은 오히려 시간이 좀 남아 보였을 정도였다. 덕분에 박수 타이밍이 살짝 어색했지만, 그래도 보는 입장에선 눈이 화려해서 즐거웠다. 아, 2층이나 3층 중앙 일반석에서 강미선 님을 다시 보고 싶다! ㅠ



콘스탄틴 호두왕자: 콘스탄틴이야 뭐... 믿고 보는 콘스탄틴. 높은 점프와 유난히 사뿐한 착지 때문에 단번에 보는 사람을 낭만의 세계로 데려가 버리는 낭만왕자 콘스탄틴. 든든한 회전과 탁월한 서포트까지, 참 우아하고 산뜻한 무용수다. 콘스탄틴의 동작을 보면 피아노의 소프트페달을 누른 효과가 난달까. 다만 답답함은 없고 상쾌함이 더해진 상태에서 은은하고 낭만적인 기분이 된다. 그리고,,, 콘스탄틴의 서포트를 받는 발레리나분들은 유독 더 가볍게 날아오르시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성 무용수분들의 기량이겠지만, 콘스탄틴과 함께 하는 여성 무용수분들은 특히 더 안정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면이 있어. 



홍향기 스페인춤: 힘향기햇살파워 회전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역시나 홍향기 님! 특유의 안정감과 밝은 에너지로 등장하시자마자 즐거워졌다. 근데 헉, 이제 내가 예매한 공연에서는 더이상 홍향기 님을 볼 수가 없네. 이럴 수가.;; ㅡㅠ 마녀는 홍향기 님의 동작이 유독 우아하다는 평을 늘 한다. 힘과 우아함의 공존이 홍향기 님의 특징이라고. 홍향기 님 춤 더 보고 싶은데 속상하네.ㅜㅠ 내년 4월의 <지젤>에서 뵈어요! 벌써부터 <지젤>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마밍 로즈왈츠 4남자: 이번에 마밍 호두왕자를 볼 수 없어서 속상했는데, 로즈왈츠에서 마밍이 등장했다? 이날은 주연 두 분의 캐스팅만 보고 간 것이어서 마밍이 나오는지 아닌지도 몰랐더랬는데, 눈 앞에 마밍이 나왔어서 깜짝 놀랐다. 얼굴은 예당 오페라의 멀리서 보았을 때와 좀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네 분 중에 동작의 선이 탁월히 다르신 것이었다. 분명 똑같은 동작을 똑같은 속도과 각도로 하는데도 이상하게 다른 느낌. 선이 달라서 몸을 보았더니 마밍의 몸이었다. 수직으로 곧으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자세의 몸과 길고 곧은 목선. 역시 마밍이구나! 마밍의 동작은 화려한 회전이나 점프가 아니더라도 자꾸 보게 된다. 회전의 경우 팔과 다리를 길게 쓰기 때문에 더 화려하고 시원해 보이는 걸 알겠는데, 왜 그냥 팔을 뻗기만 해도 기품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서 계속 관찰했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중심선과 속도 때문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어제 갔던 일행에게 시작 전에 마밍의 춤이 우아하고 기품있는데 놓쳐서 아쉽다는 말을 했더랬는데,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때 '저 분이 마밍이에요!'라고 했더니, '어쩐지. 눈에 띄더라고요. 동작이 참 좋았어요'라는 반응이 왔다. 어제 일행은 발레를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시각예술 전공이어서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밍을 보게 된 것은 뜻밖의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오늘 공연에서도 박쥐들과 로즈왈츠에 나오신다니 눈여겨 보아야겠다.













중복되는 분은 30일 후기에 함께 쓴다.

 


예카테리나 클라라: 유니버설의 무용수분들은 발등이 아름다운 분들이 많네. 이 분도 그러했다. 선 좋으시고.


데니스 호두왕자: 30일 후기.


제임스 드롯셀마이어: 30일 후기.


윤아인 어린 클라라: 몹시 사뿐하고 유연했다.


아나스타샤 스페인춤(여): 오드리 햅번을 연상시키는 예쁜 분이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화려해졌고.


샤오 쿤 스페인춤(남): 이 분의 춤이 눈에 들어왔는데, 점프가 가볍고 시원했다.


이다정 눈꽃송이 리드/로즈왈츠 4(?): 이다정 님이신지는 잘 모르겠는데, 눈꽃송이 리드하시는 두 분 중 한 분의 동작이 유독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로즈왈츠 네 분 중 한 분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느꼈어서 보니까 이다정 님이 두 파트에 중복이 되어 있네. 내일 공연에도 눈꽃송이 리드와 로즈왈츠 4(여)에 중복되어 계신데 다시 한 번 보아야겠다.


마 밍 로즈왈츠 4(남): 30일 후기.













두 번째 보았던 28일 공연에선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이후 훨씬 더 즐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기자기한 맛이 도드라져 점점 사랑스러운 버전이라 여기게 되었고. 하지만 30일 공연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던 기분이 드는 것은, 30일에는 2층의 중앙 좌석에 앉아서 보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좌석이었는데, 예당 오페라극장으로 보자면 2층 중앙이거나 3층 앞좌석 정도의 느낌이었다. 덕분에 눈송이 군무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점프와 회전도 훨씬 잘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매너는 별로였는데, 계속해서 폰이 울리고 공연 도중 사진을 찍나 하면, 지그재그 좌석도 아닌데 시작부터 앞의 사람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바람에 나는 내내 앞으로 기울였어야 했다. 혹시나 싶어서 제일 뒷좌석을 예매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박스석이나 발코니석의 최대 장점은 비록 시야제한이 조금 있긴 하지만 앞사람으로 인한 방해가 적거나 없는 점이라 하겠다. 그것도 무시 못하지. 공연 내내 앞사람이 몸을 기울이거나 뒷사람이 좌석을 발로 차면 감상에 큰 방해를 받게 되니까. 감상하다 보니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보는 공연은 박스석이나 발코니 좌석도 괜찮겠다 싶다. 하지만 가급적 예당 오페라극장에서 보고싶어요. 교통도 불편하고.


일단 무용수별 감상을 먼저 올린다.




나탈리아 클라라: 연말, 매일같이 공연들이 있다 보니 30일 공연은 미처 캐스팅을 확인하지 못했다ㅡ는 맨날 못해.;; 데니스를 보고는 클라라가 예카테리나인 줄 알았더랬다. 좌석이 무대로부터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외국인인 것만 확인하고는 예카테리나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춤을 보다 보니 많이 달랐다. 그래서 나탈리아 쿠쉬였음을 알았다.


나탈리아도 발등이 몹시 아름다웠다. 그런데 어째서 아름다운 발등웨이브가 나오지 않았을까. 발꿈치를 붙인 채 가능한 발을 일자로 유지한 채 뒷걸음질을 쳐야 발등웨이브가 생기는 건가? 발등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대했는데...


지난 마린스키 발레단의 춤과 예카테리나, 그리고 나탈리아에 데니스까지. 이러고 보니 서양인ㅡ러시아인이려나ㅡ의 공통점이 눈에 잡히는 것 같았다. 안정감과 아름다운 선. 예카테리나도 선이 참 좋았는데 발코니석에서 보았기 때문에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30일 공연에서 나탈리아는 중앙좌석에서 보았기 때문에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선이 몹시 정확하다. 수직, 수평, 대각선. 모든 선이 정확하고 깔끔해서 보는 맘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특유의 안정감. 어째서 서양인들의 춤에는 안정감이 두드러지는 걸까? 


하지만 장점이 분명한 만큼 단점 또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딱히 이분들의 단점이라기 보단 우리나라 무용수분들의 뛰어난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확실히 한국인 무용수분들의 몸이 가볍다. 몸이 가볍기 때문에 다소 동작이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회전이 빠르다. 몹시 빨라. 공중에서 회전해서 남자무용수에게 안길 때도 도약도 가볍고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몹시 가볍게 느껴진다. 리프트에서도 훌쩍 가볍고. 무엇보다 기술이 좋다. 강미선 님, 홍향기 님 모두 고난도 기술이 정확하고 깔끔하며 회전이 빠르고 몸이 가볍다. 서양인 무용수분들은 회전이 빠르진 않지만 우아함이 있고. 개인적으론 가벼움을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안정감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 분의 클라라의 동작이 모두 달랐다? 그것도 2막 그랑 파 드 되의 아다지오에서 있었던 리프트에서 세 분의 안무가 달랐다. 아마도 개인적 역량에 따라 기술적인 부분을 다르게 안무하신 것 같은데. 각자 잘 하는 동작을 해내는 편이 보는 눈에도 편하긴 하다. 지난 번 <오네긴> 때 주연을 맡으셨다가 못 나오셨어서 궁금했는데, 이번에 보게 되어 반가웠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지만, 정확하고 시원하고 깔끔한 선이 주는 쾌감이 커서 좀 더 시선이 갈 것 같다. 우아하고 아름다우셨습니다.



데니스 호두왕자: <오네긴> 때 본 이후 다시 보아 반가웠던 데니스. 다리가 아주 길어서 점프를 하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특히 여성 무용수를 잘 서포트해주시는 것 같아 보였는데, 나탈리아가 데니스의 서포트를 받으면 아주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제임스 드롯셀마이어: 제임스의 풀네임을 기억해 보도록 합시다. 제임스 알렉산더 프레이저. 오오... 혹시 그 유명한 『황금가지』를 쓴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와 연관이 있습니까...? ㅡ 는 농이고. 그 프레이저가 아니더라도 제임스 알렉산더 프레이저의 이름은 기억하고 싶었다. 28일과 30일 공연의 히어로! 이 분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 어떤 한국인 무용수가 있어서 이렇게 캐릭터를 소화해 낼까 싶을 정도로 탁월한 드롯셀마이어였다. 


유니버설의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에서 다루는 드롯셀마이어는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에 나오는 멋드러진 마법사 드로셀마이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바이노넨의 드롯셀마이어는 레프 이바노프 버전과 비슷한 걸로 알고 있는데, 신비롭고 멋드러진 마법사라기 보단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할아버지에 가깝다. 다정하고 상냥한 마술사의 느낌인데, 알고 보니 특별한 능력이 있지만 남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몰래 능력을 쓴다ㅡ는 식이랄까. 암튼 그래서 탁월한 카리스마라거나 신비로움은 별로 들어있지 않은 캐릭터이다. 아이들과 장난치고 놀고 즐겁게 해주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 그런데 제임스 알렉산더 프레이저의 드롯셀마이어는 그 특징에 꼭 끼워 맞춘 듯한 캐릭터였다. 이 분 역시 한 동작 한 동작에서 말풍선이 팡팡 튀어나오는데, 그게 '연기를 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드롯셀마이어 같았다. 외국영화에서 보면 악의 없고 착한 괴짜 과학자 역으로 나올 법한 바로 그 모습과 동작들. 너무나 자연스럽고 재미나서 제임스 드롯셀마이어만 등장하면 시선이 꽂혀서 빠질 줄을 몰랐다. 모든 동작에 의도가 담겨져 있고, 그 의도를 정확히 표현하는 재능. 그리고 제임스를 보면서 처음으로 '녹음된 음악에 맞춰 추는 발레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나 정확한 타이밍 때문이었다. 언제 어떤 음이 나오는지를 너무나 정확히 아는 듯 음악에 딱딱 들어맞는 동작에 무슨 메트로놈인 줄. 그 쾌감도 대단했다. 그리고 커튼콜 때 크리스마스 노래를 어린이 무용수가 단체로 불러 주는데, 그 때도 제임스 혼자 신났다. 아이들 춤출 때 같이 들썩이며 따라 춤추는 무용수는 제임스 한 분이시던. 완전 사랑스러우셨다며. 찾아 보니 코르 드 발레시던데. 캐릭터 있는 역할을 맡으시면 참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박쥐와 왈츠 4 남자에 나오시네? 안 그래도 내일 마밍 없어서 서운타 했는데, 이렇게 되면 '제임스를 찾아라!' 게임이 시작되는 거다. 하하. 최고였습니다. 정말 즐거웠어요.



문희원 어린 클라라: 아... 안 돼... 어린이 무용수에까지 덕질을 할 순 없어... ㅜㅠ 그런데 너무나 예쁜 발등과 특히 그 압도적인 무중력감 때문에 순간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사실 나는 어린이 무용수에 그닥 흥미가 없었더랬다. 요즘은 어린이 무용수들도 기술과 배역에의 이해가 뛰어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 무용수 특유의 깊은 이해와 자기만의 해석을 통한 표현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표현력 부분은 어쩔 수 없긴 하다. 경험과 배역에의 한계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기술과 표현력에 상관 없이 어린이 무용수 만의 절대 강점을 찾았다. 어른 무용수와 함께 했을 때의 그 탁월한 가벼움. 앞의 두 공연은 박스석에 앉아서 보았기에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30일 공연 때는 정확히 보았다. 제임스 드롯셀마이어와의 파 드 되에서 리프트 할 때마다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어린 클라라를. 거기다 어린 클라라들의 그 유연성 또한 어마어마한 매력이었다. 혼자 선 채로 한쪽 다리를 거의 귀 옆에까지 들어올리다니. 아... 넋이 가출하셨지 말입니다. 꿈만 꾸던 그 가벼움이 이렇게 펼쳐질 줄은 몰랐다. 아 참, 문희원 어린 클라라는... 어째서 벌써 발등웨이브가 되는 것이지?? 신기했다. 31일 낮공연 때도 문희원 어린 클라라네. 박스석을 예매했어서 30일에 느꼈던 그 짜릿함을 느낄 순 없겠지만... 앞날을 기대합니다.



류 이페이 할리퀸: 높은 도약, 정확한 회전. 덕분에 박수가 짠 관객석에서 제일 먼저 박수가 터졌다.



홍향기 스페인춤(여): 스페인 춤이 홍향기 님이었어...? 너무 멀어서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향기 님은 주연 역할을 보고 싶지 말입니다.



류 이페이 중국춤: 캐스팅표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맞는 건지 모르겠다. 같은 공연에서 할리퀸과 중국춤이 같은 게 맞나? 기술을 보면 맞는 것도 같고. 30일 저녁 공연 중국춤은 완전 포텐 터지셨다. 끝없이 계속되는 점프와 또 점프. 몹시 높은 점프를 그렇게 계속 하시다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습니다. 덕분에 너무나 유쾌하고 즐거웠다.



마 밍 로즈왈츠 4(남): 마밍은 마밍이다. 그냥 알아 보게 되는 자태. 왜 계속 보고 싶지? 고개를 너무 들지도 않으면서 살짝만 드는 모습. 시종일관 수직으로 정면을 향하는 상체의 그 꼿꼿한 선. 처음 보았을 때 마밍이 넘 안 웃어서 그게 살짝 불만이었는데, 28일 공연에서는 활짝 웃었더랬다. 30일 공연은 너무 멀어서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네. 하지만 무용수는 몸으로 말한다. 선이 참 우아하고 기품있는 마밍. 31일 낮공연에선 볼 수 없다니 섭섭하다. ㅠ




한 가지 큰 불만이 있다. 가뜩이나 잘 놀라는 편이어서 길가다 누가 길 물으려 말만 걸어도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길 묻던 사람이 더 놀라서 내게 사과를 하는 일이 수없이 많이 발생하는 나로서는, 무대에서 12번인가, 꽝꽝 쏘아대는 그 대포소리가 너무나 공포스럽다. 첫날엔 더군다나 3층 박스석 맨 앞에서 보았던 터라 기절하는 줄 알았어. 그 후 두 번째 보았을 때부턴 언제 그 소리가 나올지 몰라 너무 무서워서 두 귀를 꼭 막고 보게 된다. 그래서 호두병정군단과 생쥐군단의 싸움 부분에 대한 감상은 거의 날아갔다. 생쥐분들 깨알코믹연기 많이 하시는 것 같던데. 어린이 관객들도 많은데 그렇게 큰 소리를 그렇게 여러 번 꽝꽝하는 거 괜찮아요...? 나만 힘든가.;; 나는 그 장면이 너무너무 싫다. 공포스럽고 힘들어. 


무대는 전체적으로 동화스럽다. 나는 제일 첫장면의 무대가 가장 좋은데, 동화나 애니매이션 속에 등장하는 장면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2막에서의 궁전 무대는... 의도한 것이겠지만 너무 유아틱해요.


전체적으로 발레마임이 많았다. 드롯셀마이어의 '아이들은 어디 있어요?'라든가, '박스에서 인형이 나올 거야' 등, 전통적인 발레 마임인 '춤추다', '얼굴이 예쁘다'를 제외한 마임들이 군데군데 많았는데, 딱히 마임을 알지 못해도 알아 보는 데 어렵지 않다. 충분히 알 수 있게 표현된 마임이어서. 발레에서 마임을 알아 보는 즐거움이 또 있어서 그 점은 재밌게 보았다.


쥐왕의 등장은 대체... ㅋㅋ 유리 그리고로비치 버전에서는 호두병정이 하는 포즈를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에서는 쥐왕이 하다니! ㅋㅋㅋ 두 버전을 다 본 나로서는 그 부분이 넘 웃겼지 뭔가. 이 버전에서 악당이 하는 포즈를 저 버전에서는 영웅이 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양쪽에서 다리를 받쳐들고 들어 올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생쥐군단이 서로의 꼬리를 잡으며 춤을 춘다든가, 또 30일 공연의 경우 세 명의 생쥐분들이 서로 다리가 꼬여 파닥대는 부분은 애드립 같아 보였는데, 암튼 군데군데 재미난 포즈가 많아서 즐거웠다. 대포소리만 아니었다면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ㅠ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에서는 프랑스 인형에 해당하는 양치기 소녀와 어린 양 넷, 그리고 늑대의 연기도 동화적인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었다. 30일의 늑대역은 누구신가...? 곽태경 님이셨네. 엎드렸다가 펄쩍거리며 다리를 위로 들어롤리시는 것이 깨끗한 12시.;; 깜짝 놀랐다. 참, 양치기 소녀가 성사미 님이셨네. 선이 예쁘셨다.


처음에는 낯설어서였는지 화려하지 않아서 좀 낙담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바실리 바이노넨 버전도 여러 번 볼수록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섬세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눈송이 군무 안무는 열 여덟 분의 눈송이분들이 똑같이 아라베스크 포즈에서 뒤로 회전하시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은 보는 내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역시 유니버설 군무! 또한 점프하면서 열을 바꾸는 장면도 멋졌고. 하지만 그 눈송이 군무를 포함한 전체적으로 안무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압승이지 말입니다. 물론 개인 취향이다. 어린이 무용수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킨 만큼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는 그리고로비치의 안무가 주는 흡인력은 거부할 수가 없다. 다만, 어린이 무용수 춤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만큼 아기자기하고 동화스러운, 좀 더 어린이 관객의 취향에 잘 맞춘 바이노넨의 버전은 크리스마스 특유의 따스함과 단란함, 화목함, 친밀함이 더욱 강조되는 매력이 있다 하겠다.
















오늘 공연의 강미선 님과 콘스탄틴은 대단했다. 이거 저거 할 거 없이 강미선 클라라의 핑핑 빠르게 도는 회전에서 환호가 터졌다. 그토록 깨끗하고 빠르고 청량한 회전이라니. 그동안 무슨 이유로건 맘속에 쌓였던 세상에 대한 어떤 찌꺼기 마음들이 덕분에 다 날아간 기분이었다. "속이 다 시원해!" 하며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혼잣말. 오늘은 박스석이었어서 주변 사람들에 신경쓰지 않고 맘껏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강미선 님의 정확한 선들과 자신감, 가벼움, 날렵함. 그 모든 것들이 눈송이 흩날리는 크리스마스 마을과 어우러져 더없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그랑 파 드 되에서의 고난도 기술을 척척 해내시는 든든한 모습에 정말 보는 마음이 편안했다. 


콘스탄틴 후두왕자는 아...! 보면 볼수록 참 좋은 무용수라는 생각을 한다. 그 무엇도 빠지는 것이 없고,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이 뛰어나다. 중심이 곧고 든든하게 잡혀 있어서 안정적이다. 이것은 서양 무용수분들의 특징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점프가 높고 가볍다. 이것은 한국인 무용수분들의 특징. 그런데 높은 점프의 착지가 가볍다. 그래서 무대 바로 옆에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쿵쿵하는 착지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그것이 참 신기했다. 그런 높이로 뛰면서 어떻게 소리가 안 나지? 동작은 기품있고 우아하다. 누가 보더라도 왕자이신데, 다소 우수에 찬 다정하고 낭만적인 왕자다. 거기다가 여성 파트너의 서포트까지 완벽하다.


콘스탄틴이 서포트한 리프트 동작에서 강미선 님은 높이 날았다. 이는 강미선 님 본인이 높게 날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강미선 님은 혼자서 점프를 하실 때도 높게 뛰시거든. 그런데 콘스탄틴의 서포트 역시 만만찮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것이, 가까이에서 다른 분들 리프트하시는 걸 보았는데, 팔을 많이 뻗지 못하셨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가볍다 할 지라도 발레리나분들이 성인이신데, 그 정도 들어 올리신 것도 굉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콘스탄틴이 리프트를 해줄 때를 보았는데, 팔이 상당히 많이 뻗어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높이 올라가는 걸까 싶었고. 물론 리프트를 하실 때는 두 분의 호흡이 아주 중요한 것으로 안다. 다만 콘스탄틴의 경우 매번 팔을 좀 더 길게 뻗어서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아서 신기했다. 본인의 기량과 기본기도 탄탄한데 서포트까지 잘 하는 완벽한 무용수. 그동안 본 적이 있지만 콘스탄틴의 알브레히트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고르 무어인형 힘차고 회전 참 좋았습니다.


생쥐군단들... 넘 익살스럽고 재밌어서 계속 웃었다. 혼자 데굴데굴 구르시나 하면, 자기 꼬리 붙잡고 빙글빙글 돌리시고, 또 대포 맞아서 아프다며 뻗은 생쥐, 그리고 그 생쥐를 흔들어 깨우려는 생쥐, 다리 잡아 끌고 들어가는 생쥐, 본인의 역할이 끝나는 순간까지 깨알같은 연기를 보여주신 생쥐군단 무용수분들, 큰 박수를 보냅니다! 매순간순간 즐거웠어요.


오늘 일행은 데니스 스페인춤(남)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당연하지. 데니스인데. 내 눈엔 예카테리나 스페인춤(여)가 조금 더 들어왔었다. 자신감 가득하고 섹시한 모습이 딱 플라멩코를 추는 무희 같았다.


성사미 양치기 소녀는 오늘도 선이 고우셨고.


문희원 어린 클라라의 그 가벼움과 발등웨이브도 즐거웠다.


제임스 로즈왈츠4(남)은 후반부에 들어서 여유롭고 품위 있는 모습이 멋졌고.


왈츠4(남)에서 한 분이 여성무용수분을 꽤 높이 들어올리시던데, 누구신지 모르겠네...



얼른 쉬고 다른 것을 해야 해서 마음이 급하다. 오늘 보면서 느꼈던 점은 참 따듯한 버전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축소하거나 삭제한 채 젊고 아름답고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무용수들만 엄선해서 보여주는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하나의 기막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매끈하고 세련되고 화려하고 멋진 예술작품. 그런데 유니버설의 <호두까기 인형>은 좀 다르다. 자세히 보니 한 동작 한 동작 까다롭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무용수분들이 분주하시던 버전이었는데, 무엇보다 많은 어린이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충분히 어린이들이 노는 분위기를 제공하는가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배역도 등장하여 무대 중앙에서 춤을 출 수 있고, 또 그분들의 배려하는 클라라 부모님의 애정이 흐르는 공간. 파티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포인한 발끝으로 아름답게 퇴장하는 국립발레단의 칼 끝까지 팽팽하게 벼려진 듯한 웰메이드 세공품 같은 안무에 비해, 그냥 발바닥으로 걸으며 퇴장하던 사람들과, 그 중에 졸려서 칭얼대는 아이를 번쩍 안아서 걸어가는 아버지를 묘사한 유니버설의 버전은, 서로 비교하기엔 너무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의 공연이 하나의 '작품'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면, 유니버설 공연은 딱히 '작품'이라기 보단 화목하고 따스한 클라라네 집 안은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모두가 함께 하여 다정한 그 분위기는 과연 사랑과 평화를 위하는 크리스마스의 정신에 참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까지 네 번의 공연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유니버설이 왜 이 버전을 택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니버설의 뛰어난 무용수분들의 기량이 아쉽지만, 따스하고 또 따스한 공연 덕분에 돌아오는 마음도 훈훈해졌다.


2017년 마지막 날까지 관객과 함께 해주신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분들과 관계자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연 잘 보았습니다. 이제 푹 쉬시고 내년 <지젤>에서 뵈어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