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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미술 전시] 윤양호 Yoon YangHo - 오직 모를 뿐 NUR WEIS NICHT @ 갤러리 비선재

by Vanodif 2018. 8. 11.




<윤양호 YOON YANG HO - NUR WEIS NICHT> 

* 기간 : 2018년 7월 20일(금) - 9월 20일(목) 

* 장소 : 갤러리 비선재 

* 요금 : 무료. 하루 전 사전예약필수 

* 예약 및 문의 : 02-793-5445 

    https://blog.naver.com/bsj54451/220952349744 

* 관련 홈페이지 : http://bisunjae.com/current 






올 4월부터 가고 싶어했던 갤러리 비선재에 드디어 다녀왔다. 유엔빌리지에서도 언덕을 올라 내려 한참 가야 나오는 갤러리. 날 좋은 봄가을이라면 산책... 이라기보단 '운동' 삼아 걸어가면 좋겠으나, 요즘 같이 뙤약볕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 낮이나 얼음 추위의 한겨울이라면 걷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걸어야 한다면 발 편한 운동화와 든든한 양산, 그리고 생수 한 통을 가져가기 바란다. 사람 없고 한적하나 의외로 차들이 없지 않은 유엔빌리지의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갤러리 비선재. 예약을 통해서만 감상할 수 있는 예약제이니 반드시 하루 전에 미리 연락하시길 바랍니다. 일요일은 휴관이다. 월요일은 확실히 모르겠는데 월요일에 휴관하는 갤러리가 많으니 금요일이나 토요일 즈음에 미리 전화로 확인해 보세요. 


처음 가는 사람은 무조건 길을 헤맨다고 해서 좀 가다가 부랴부랴 저 영상을 찍어 보았는데, 위에 링크해 둔 갤러리 비선재의 블로그에 가면 더욱 확실한 안내 영상이 있다. 미리 확인하고 가시면 길을 잃지 않겠죠. 언덕은 다소 가파른 구간이 있으니 걸어간다면 힐은 절대 피하세요.













갤러리 비선재는 아름다웠다. 건축 디자인 회사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답게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가서 즐길만하다 싶도록 좋았는데, 그런 공간에 윤양호 화백의 작품은 잘 어울렸다. 세심하게 고려해서 작품을 걸어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는데, 해서 이번 포스팅은 내가 찍은 것과 일행이 찍은 것 두 가지 버전의 사진을 함께 올리기에 좀 더 사진 양이 많다. 내것으로는 주로 작품 만을 잘라낸 사진을 올렸고, 작품이 걸린 배경까지 작품의 한 부분에 연결되는 것으로 인식한 일행의 사진은 일부러 그렇게 찍은 만큼 뒤의 배경을 잘라내지 않았다. 또한 갤러리 자체가 아름다운 만큼 작품 외 갤러리 사진도 함께 싣는다.




윤양호 Yoon YangHo

NUR WEIS NICHT

162 x 130 cm (100)

Mixed media on canvas

2017



NUR WEIS NICHT 

윤양호(YoonYangHo) 


갤러리 비선재는 오는 7월20일부터 9월 17일까지 윤양호 작가의 앵콜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비선재에서 열리는 윤양호 작가의 두 번 째 개인전으로, 지난번 단색화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많은 격려와 호응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작업을 보여드리고자 하였다. 작품집 출판기념을 겸하였던 지난 전시가 작가의 시기별 흐름과 미학적 개념을 정립하는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정리된 개념을 심화시키는 전시로 2018년 신작 40여점을 집중 조명한다. 


윤양호 작가가 처음 단색화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1991년이며, 이후 흰 광목천에 검은 원을 그린 대작을 제작한 것이 1994년이다. 1996년에 독일로 유학을 가며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다. 작가에게 독일 유학 기간은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시기로 보인다. 그는 당시에 모노크롬 회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며 예술의 정신성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그가 작품 속에서 내면의 정신성을 나타나기 위해 선택한 조형언어는 도형색채이다. 단순하지만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상징하는 형태로서 윤양호가 원에 부여하는 가치는 우리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환하는 가운데 모든 것은 변화하며,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의 지식과 경험도 새로운 가치를 찾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가치들은 다시 일정기간 순환하며 또다시 변화한다. 이러한 반복적 과정 속에서 우리는 수행적인 관점으로 삶의 지혜와 존재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수행은 인식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다양한 인식의 변화는 지혜로 이어진다. 윤양호는 원형의 확장된 형태로 색면과 무수히 많은 점을 캔버스에 담아내기도 한다. 안료를 수십 여 차례 덧칠하고 점을 찍기 위한 반복적인 붓질은 행위성을 강조하며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수행의 미학이라 볼 수 있다. 


윤양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빨려 들어갈 듯 화면을 채운 색채이다. 돌가루, 모래와 함께 작가의 주요 재료인 청색 안료는 단순하고 절제된 추상형태에 정신의 깊이를 더한다. 그는 이브 클랭이 발명한 IKB (International Yves Klein's Blue) 를 사용하는데 오랜 세월동안 이 물감을 다루며 체득한 경험으로 다양한 변형의 청색을 표현하게 되었다. 90년대 중반 파리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브 클랭의 작품을 처음 본 이후 연구를 거듭하던 윤양호는 그가 추구했던 정신성에 대한 탐색이었음을 주목하였다. 그는 이브 클랭이 허공을 탐색하며 추구했던 정신성과 그의 선 수행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며, 서로 다른 사상과 철학, 문화적 배경을 가졌다고 인식되어왔던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발현하는 유사한 정신성을 통하여 작가는 시공간을 넘어 인간은 다르지 않은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인간은 서로 소통한다. 작가와 관객은 작품을 통하여 교감하고 공감한다. 윤양호 작가의 작품은 더 나아가 치유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수행의 과정을 담은 작품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작가는 그가 그랬듯이 관객이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기를 바란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얻기 위하여 복잡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아는 것을 내려놓고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에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있다. 관념에서 벗어난 순간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며 그 에너지는 내면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작품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윤양호 작가의 작품 속에서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자유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이번 전시에서 갤러리 비선재는 전속 작가인 윤양호의 심화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비선재와 함께 한 지난 개인전과 아트페어에서 이미 입증을 받으며 개최되는 두 번째 개인전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지난 28년간의 작업과 연구 과정으로부터 작가는 조형적, 미학적, 표현적 개념을 정립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독일에서 20여년간 활동하며 작품을 전개해온 윤양호 작가에게 더 큰 도약이 기대된다. 


작가 소개 

1996년 독일에 유학, 독일 국립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지도교수 헬무트 페더레 Helmut Federle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 대학에서 아카데미브리프(석사), 및 마이스터쉴러 학위(2002, 박사)를 취득하였다. 2000년도에 국제선조형예술협회를 창설하였으며, 귀국 후 2005년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 선조형예술학과를 설립하여 주임교수로 있으면서 선과 현대미술에 대한 미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고자 연구와 작품 활동을 병행해 오고 있다.


* 출처: 갤러리 비선재 홈페이지: http://bisunjae.com/exhibitions/950





4월, 매달 초면 '전시회'를 검색해서 가고 싶은 전시 목록을 작성하곤 하는데, 그때 단연코 가고 싶었던 전시 중 하나가 윤양호 님의 전시였다. 해서 윤양호 님과 갤러리 비선재를 검색했는데,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하는 갤러리 비선재의 독특한 운영 방식이 또한 호기심을 끌었다. 그러다 일이 겹치면서 4월 전시를 놓쳤고, 이번에 생각나 따로 검색한 갤러리 비선재에서 윤양호 님의 전시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예약하고 방문했다. 넓고 아름답고 쾌적한 갤러리는 어느 다정한 분의 응접실 마냥 고아한 자태로 우리를 맞았다. 바로 어제 어디가 어딘지 모르도록 헤매면서 돌아다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는 확연히 대조되던 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은 너그럽고 아름답고 쾌적하지만, 윤형근 화백의 영혼을 건드리는 작품을 감상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했다. 바로 그 직후여선지 단 두 명의 예약임에도 불구하고 큐레이터분께서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고, 작품 감상에 전혀 방해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계시다가 내가 뭔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면 다가와 미소와 함께 작품에 대해 정성스레 설명해 주시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 뿐 아니라 갤러리 비선재에 다녀간 사람마다 '맛있다'고 칭찬한 아이스커피까지 만들어 주셔서 '이렇게 너그럽고 배려심 많은 갤러리가 다 있구나' 싶었다. 참 곱고 근사하다. 갤러리도. 작품도. 갤러리에 계신 사람들도.





이번 전시에 대한 설명은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1597 를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터뷰하신 동영상도 있으니 확인해 보세요. 1층에는 2018년에 작업하신 작품들, 지하 2층에는 작년과 올해 작업하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목을 적지 않은 작품들은 제목이 따로 붙어 있지 않은 것이다. 


윤양호 님 작품의 색채는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 파랑이 깊게 짠한 파랑인데, 티스토리의 필름 처리 기능을 사용하여 가까스로 비슷하게 만들긴 했으나 결코 이 색이 아니다. 필름 처리 없이 카메라로 담은 색은 더더욱 어이없게 나온다. 대체 왜 그런 걸까? 내 사진 실력이 형편 없어서겠으나, 큐레이터께서도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색'이라 말씀하신 걸 보니 원래 이 색이 그런 모양이다. 더 깊고 짠하다. 그리고 수없이 덧칠하여 만들어낸 색임에도 불구하고 '맑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밑바탕에 붉은색이나 노란색 등의 다른 색으로 칠했다가 그 위를 파랑으로 덮었기 때문이다. 마크 로스코의 색이 결코 사진으로 담을 수 없고 직접 보아야 그 투명함과 부유하는 느낌을 잡아낼 수 있는 것 역시 아래에 여러가지 색을 덧칠한 위에 맨 위의 색으로 덮었기 때문이듯, 윤양호 님의 작품들도 그런 작업을 거쳤기 때문인지 깊은데도 투명함이 은은하게 새어나와 '맑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밑바탕에 단순히 다른 색으로만 칠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색으로 된 형태를 그리고 그 위를 파랑으로 덮었기 때문에, 정면에서 보았을 땐 단순한 파란색인 것 같아 보이지만 측면에서 빛에 비춰 보거나 좀 더 자세히 다가가 보면 여기저기 파랑 아래에 존재하는 점이나 형태들을 볼 수ㅡ'느낀다' 쪽에 가까운ㅡ있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와 색을 덮은 절대의 색'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색이 아닙니다. 직접 보면 가슴에 짠하고 울림을 주는 깊은 색이다. 위의 갤러리 비선재 설명에 있듯 이브 클라인(이브 클랭 Yves Klein)이 특허를 낸 울트라마린 블루(IKB) 안료를 사용한 작품이다. 매 작품을 하실 때마다 안료를 섞어서 파랑을 만드시는데, 한 번 사용한 안료는 버리시기 때문에 이 많은 파랑이 있어도 똑같은 파랑이 아니다. 파랑 속의 파랑 속의 파랑 속의 파랑... 마치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 마냥 똑같은데 다르고 다른데 또 같은 파랑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Klein_Blue


바로 이 파랑이 IKB다. 누보 레알리슴(Nouveau Réalisme)의 선두주자 이브 클랭의 작품이건 윤양호 님의 작품이건 사진으로 보는 것은 큰 의미 없는 듯 하다. 대충의 감만 잡고 직접 가서 작품 앞에 서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은데, 이브 클랭의 작품을 직접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이브 클랭의 바로 그 IKB 안료를 사용하신 만큼 '똑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을 수 있겠으나, 윤양호 님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는 진실처럼 멀리서는 볼 수 없었던 형태와 색들을 볼 수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저 점무늬처럼 말이다. 이 파랑은 사진으로 보면 그냥 울트라마린블루로만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미세하게 붉은 빛이 배어 나온다. 아래에 붉은색 점으로 작업을 하셨기 때문.


윤양호 님은 캔버스에 돌가루나 모래, 또는 조개껍데기 가루 등을 뿌린 다음 그 위에 여러 색을 칠하고 또 칠한 후 맨 위를 파란 안료로 칠하고 칠하고 또 칠하고 칠하기를 반복하신다 한다. 그런 '수행에 다름 없는' 반복 행위를 통해 저런 짠한 파랑이 나오는 것이라고. 단색화의 매력이 그런 것 같다. 수행과 같은 작업. 김환기 화백께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하나 하나 눈물인 듯 찍으신 점들도 그러할 뿐더러, 박서보 화백은 인터뷰에서 "나의 단색화는 승려의 수행 같은 수없이 반복되는 행위가 핵심"이라고 단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파랑의 저변에 누워있는 저 점들은 김환기 화백의 점면화를 연상시킨다.


"윤양호 선생님께 있어 '파랑'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큐레이터께서 답하셨다. 


"윤양호 선생님은 이브 클라인의 작품을 보시고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고 느끼셨는데, 서양에서는 파란색이 정신의 순수를 의미하거든요. 동양에선 금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윤 선생님께서 선禪 수행의 세계를 표현하신 만큼 정신성을 파란색으로 나타내셨어요."


그 해설을 듣고 이 작품을 다시 보면 이런 해석이 된다. 


세속의 수많은 고민과 좌절과 욕망과 생각의 붉은 점들을 하나의 순수한 정신으로 덮을 때 비로소 선禪이 된다. 선이 마침내 이루어낸 정신의 순수는 같으나, 각 사람마다 겪은 생이 다른 만큼 그 정제된 정신에는 지나온 과정의 흔적이 새겨진다. 그 흔적들이야 말로 선禪에 닿은 각 정신의 고유성이 된다. 다시 말하면, 선에 닿기 위해 부단히 비우려 한 그 노력과 과정 자체가 의미를 이룬다.


여기서 잠깐 선과 젠에 대해 알아 보자. Art in Culture의 대표이자 경기대 교수이신 김복기 님의 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일부를 옮겨 적지만, 이 외에도 윤양호 님 작품에 대한 자세하고 훌륭한 설명이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방문해서 참고하시기 바란다. 



불교의 한 유파인 선종禪宗은 1950-60년대 특히 서구미술에서 유용한 철학적 자원으로 쓰였다. 명상, 동양적 신비성, 프리모던 등과 같은 선의 특성은 모더니즘 비판의 카운터컬처를 찾고 있던 현대미술에 일대 강력한 충격파를 가했다. 그 계보는 마크 토비, 존 케이지, 리처드 롱, 이브 클랭, 볼프강 라이프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 


선을 서구에 수출했던 일본은 'Zen'과 '禪'을 같은 발음이지만 좀 다른 뉘앙스로 쓰고 있다. 선이 서구 아티스트에게 폭넓게 침투해 '젠(Zen) 취미'라 부를 수 있는 감성이 형성되었고, 이 감성이 일본에 역류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 미술이라고 하면 수묵화, 달마도, 또는 '공(空)'이나 무(無)'를 상징하는 원형, 선문답을 모티프로 한 선화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서구에서의 젠 미술은 오히려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미술에 집중되어 있다. 일본의 한 철학자가 서구에 영향을 준 선 문화의 일곱 가지 특징으로 불균형, 간결, 고고(枯高), 자연, 유현(幽玄), 탈속, 정숙을 꼽은 바 있듯이, 젠 미술은 종교적 색채를 탈피해 정신성을 담은 추상으로 전개됐다.

* 출처: https://blog.naver.com/boggi04/221264450919



김복기 님에 따르면 윤양호 님께선 젠 미술을 지향하신다 한다. 이렇게 말하니 복잡하긴 한데, 윤양호 선생님께서도 '비워내기'에 대해 말씀하신 바가 있으며, 또 원에 집중해 작품을 하신 만큼 선 미술이나 젠 미술이나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모르겠다.


기왕 인용하는 김에 한국의 단색화와 서양 미술사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 보자.



윤진섭 평론가는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가 서양 미술사와 다소 겹치는 대목이 있다면 말레비치나 이브 클랭을 비롯한 작가들이 추구한 ‘정신성’”이라면서도 “한국의 단색파(Dansaekpa) 작가들이 추구한 것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이브 클랭은 허공을 탐색하기 위해서 몸을 통해 실증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반면, 한국의 전기 단색파 작가들은 금욕이라는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수행성을 강조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윤양호가 “선보인 대형 청색 그림은 작품과 관객 간의 교감과 소통, 그리고 나아가서는 치유의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출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402000817









몇 년 전 김환기 화백의 작품에서도 그러했고, 나는 이런 원형의 작품을 볼 때면 종종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또는 파란 호수나 바다에 뭔가를 떨어뜨려 파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물에 빠진 것은 어쩌면 세속적 자아일 지도 모르겠다.









다정한 이의 응접실에 초대 받은 느낌.





저 뒤의 공간에서 커피를 만들어 주신다.









윤양호 님의 모든 작품은 멀리서 보고 가까이에서 다시 한 번 꼼꼼히 보는 것을 권한다. 모래의 질감이라든가 밑바탕에 작업하신 안료들의 흔적들이 보는 위치에 따라 은근하게 드러나서 그런 질감들이 내는 느낌이 특별하다.











1층의 작품들을 보고 2017년과 2018년에 작업하신 작품들이 있는 지하 2층과, 또 전지연 님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윤양호

NUR WEIS NICHT

116.8 x 72.7 cm (50)

Mixed media on canvas

2018



이 작품의 배치가 신기했는데, 일행은 작품 아래에 괴어 둔 저 돌멩이가 귀엽다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나는 이렇게 지하 2층 계단 아래에 배치한 과감성 때문에 놀랐다. 어떻게 저곳에 놓을 생각을 했을까? 계단 아래도 거의 바닥 즈음에 놓여 있는 저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작품 앞에 앉아서 보아야 한다. 작품 감상에의 새로운 시각을 도모한 배치가 아닐까. 사람이 바글바글한 갤러리였다면 이런 배치는 오히려 불편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롯이 일행과 나 두 사람 만을 위해 개방해 주신 갤러리였기에 이런 독특한 작품 배치는 감상의 재미를 더했다.




윤양호

NUR WEIS NICHT

90.9 x 72.7 cm (30)

Mixed media on canvas

2018



윤양호 님의 밑바탕 작업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그저 하양과 파랑일 뿐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꼼꼼한 모랫가루와 선들, 그리고 같은 파랑인데도 농담을 달리하여 다른 색으로 인식되는 저 파랑이 이루어내는 모양과 색채가 굉장히 예쁘다.




윤양호

NUR WEIS NICHT

90.9 x 72.7 cm (30)

Mixed media on canvas

2018



아주 맘에 들었던 작품인데, 비늘인 듯 거품인 듯 구름인 듯한 형태 속에 생선의 살갗, 파란 바닷물, 하늘의 조각이 드러난 것 같다. 청량하고 단아하면서도 뭔가 뭉게뭉게 증식하는 느낌이 드는 데다 이 또한 몹시 예뻤다.





지하 2층의 벽에는 저런 구멍들이 좀 있었는데, 저 구멍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한남동에 위치한 갤러리 비선재는 언덕의 비탈에 지어진 건물이라 한다. 해서, 도로변인 1층의 입구로 들어가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반대편은 한강을 바라보는 바깥이 된다. 즉, 지하 1, 2층의 이 공간은 입구에서 보면 지하이지만, 맞은 편에서 보면 지상 높은 곳이다. 도로변 쪽이 지하이므로 어쩔 수 없는 습기가 있기에, 벽에서 새어나오는 그 습기가 작품들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이렇게 구멍을 뚫어 두셨다 한다.






윤양호

NUR WEIS NICHT

116.8 x 91 cm (50)

Mixed media on canvas

2017








간결한데도 색깔이 참 깨끗하고 예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저 파랑도 파랑이지만, 이상하게 윤양호 님의 하양 또한 몹시 에쁘다. 빛이 나는 듯 청결한 느낌. 예전에 리처드 라이트Richard Wright의 Native Son 이었나, 그 책에서 '하얀색 페인트를 완벽하게 하얗게 만들기 위해 검은색 페인트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음. 그랬을까?ㅡ는 물론 나의 전매특허 뜬금포 되겠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건.




윤양호

NUR WEIS NICHT

227.3 x 181.8 cm (150)

Mixed media on canvas

2018



와... 이 작품이 이렇게 밖에 안 담겼다니 속상하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인데. 윤양호 님의 작품은 인간의 정신성을 추구한다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것에서 좀 더 나아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놀랍게도 '논밭'입니다. 응? 논밭? 하다가 위에서 항공샷으로 찍거나 바라본 논밭을 떠올리면 단번에 이해가 간다. 구역이 나뉘어진 논밭. 그 논밭을 작품에 끌어 오신 것은, 이미 작품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돌가루, 모래, 조개껍데기 가루, 그리고 천연 안료의 '자연성'과 연결된다. 윤양호 님의 인간적인 예술행위와 자연물의 합작, 그것이 예술을 이룬다. 그리고 그 개념은 어제 감상했던 윤형근 화백의 작품 활동의 개념이기도 하다. 통하는 것 같다, 선禪을 추구하는 단색화의 세계는.







내가 '번짐'을 좋아한다. 물론 깔끔한 선이 주는 쾌감도 대단하지만, 물감이 바탕 재료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 몽환적인 느낌이 의식을 간지럽게 건드린다. 이 '번짐'을 여쭈었더니 하얀 안료 위에 파란 안료를 칠해서 표현하신 것이라 한다. 이 때문에 서양인들이 윤양호 님 작품을 보면 '동양적이다'라 느끼는데, 반면 동양인들은 윤양호 님 작품을 두고 '서양적이다'라 인식하곤 한다고. 아마 독일에서 작업하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묻어난 결과가 아닐까 싶다셨는데, 그 점이 큰 매력이 아니겠나. 


'번짐'을 생각하니 역시 어제 감상했던 윤형근 화백의 '번짐의 미학'이 떠올랐다. 다만 윤형근 화백의 '번짐'이 마포 위 물감이 퍼지게 두신 결과라 하면, 윤양호 님의 번짐은 화가의 의지가 들어간 자연스러움 같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마음을 비워내고 정성을 기울이는 의지. 이 번짐이 있어 작품이 촉촉해졌다.






윤양호

NUR WEIS NICHT

90.9 x 72.7 cm (30)

Mixed media on canvas

2018



윤양호

NUR WEIS NICHT

90.9 x 72.7 cm (30)

Mixed media on canvas

2018





멀리 벽에 전시되어 있어 자세히 감상할 순 없었지만. 역시 이 작품은 아래의 원형 단상 받침대와 연결해서 감상할 때 그 인상이 증폭된다. 가운데 하얀 점이 있는 저 원은 눈동자일 수도 있고 물방울일 수도 있고 인간의 정신일 수도 있겠다. 그 크기와 위치를 변화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윤양호

NUR WEIS NICHT

116.8 x 91 cm (50)

Mixed media on canvas

2017



음. 이 작품 이름은 Zen-Geist인 줄 알았는데... 는 어쩌면 전시 제목을 그때그때 작품에 붙이신 건지도 모르겠다. 비늘 같기도 하고 매트 같기도 하고, 또는 바다의 수많은 모래알을 확대시킨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은 몹시 화려하다.






윤양호

NUR WEIS NICHT

162 x 130cm (100)

Mixed media on canvas

2017



이 작품도 몹시 아름다웠다. 사실 명상을 즐기기엔? 아까 논밭을 연상시키는 작품보다 이것이 나을 것 같고. 경계의 번짐도 은근하고 아름답죠.










윤양호

NUR WEIS NICHT

116.8 x 72.7 cm (50)

Mixed media on canvas

2017





이 작품은 이처럼 격자무늬의 벽면 설치물과 함께 감상할 때 느낌이 더 풍성해진다. 무수히 찍히는 황금색과 붉은색의 저 점들은 욕망의 번제燔祭일까. 화가들께선 이런 작업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윤양호

NUR WEIS NICHT

90.9 x 72.7 cm (30)

Mixed media on canvas

2018





긁어내신 부분에 섬세하게 칠하신 저 물감. 어... 물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벗겨져 드러난 바탕색이었으려나?;;
























윤양호

NUR WEIS NICHT

162 x 130 cm (100)

Mixed media on canvas

2017



역동성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자세히 보면 속도감도 느껴지고. 저렇게 신속하게 공간을 가로지르는 것들은 무엇일까?










1층 카운터에 있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근처 갤러리 소장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일 지도 모른다.






작품을 다 감상하고 나오다가 갤러리 비선재 이사님을 만났다. 다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감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 미소 가득 인사하시는 걸 보며, '갤러리 비선재가 특별한 것은 이곳을 운영하시는 분들 때문이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유별나게 예약제를 하느냐'라는 불만들이 많으신데, 저희 바람으로는 예약해서 오신 분들께서 오롯이 작품들을 충분히 감상하셨으면 해서거든요"라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 나는 작가도 아니고 컬렉터도 아니고 일개 감상자일 뿐인데, 그런 나와 우리가 불특정 다수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배려하셨다는 말씀에 감동했다. 바로 그런 배려 덕분에 오늘 윤양호 님 작품 감상이 그토록 풍성했던 거였다.


그 외에도 갤러리 비선재는 소속 작가들의 작품 만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있어 새로운 단계가 성취될 때마다 전시를 열고, 늘 정기적으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보고 받고 또 함께 토론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갤러리 비선재는 작가분들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여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도우면서 관리하며 후원하는 갤러리임을 알았다. 물론 작가분의 개인 성향에 따라선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분들도 있겠으나, 이런 든든한 관리와 후원이라면 험난한 예술계에서 생존을 고군분투해야 하는 작가분들께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울 도심 속 깊고 시원하고 맑은 샘물과 같은 갤러리 비선재를 곧 다시 찾아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