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피아노 독주회 Daejin Kim Piano Recital>
* 일시: 2018년 11월 25일 (일) 저녁 5시
*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4243
[프로그램]
Beethoven: The Last 3 Sonatas
Sonata No.30 in E Major, Op.109
Vivace ma non proppo
Prestissimo
Andante mlto cantabile ed espressivo
Sonata No.31 in Ab Major, Op.110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Allegro molto
Adagio, ma non troppo - Recitativo: Piu adagio - Andante - Adagio - Meno adagio -Adagio - Adagio ma non troppo: Arioso dolente - Fuga: Allegro ma non troppo - L’istesso tempo di Arioso - L’istesso tempo della Fuga poi a poi di nuovo vivente -Meno Allegro - Tempo primo
Sonata No.32 in C minor, Op.111
Maestoso - Allegro con brio ed appassionato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프로필]
감성과 논리를 지적으로 조화시켜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음색을 창출하는 연주자.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이 강한 작품해석으로 독자적인 연주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상급 연주자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11세 때인 1973년 국립교향악단과 협연과 이듬해 10월에 열린 데뷔 독주회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예원콩쿨(1974), 이화경향콩쿨(1975), 중앙음악콩쿨과 동아음악콩쿨(1979)에서 차례로 모두 1위에 입상하여 촉망 받는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제6회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 콩쿨(현, 클리브랜드 국제 콩쿨)에서 영예의 1위에 입상하여 한국을 빛낼 피아니스트로의 탄탄한 길을 약속 받게 되었다.
어느 작품을 대하든지 여러 접근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연주자의 의식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는 음악관을 갖고 있는 그는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독주회,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협주곡 전곡 연주회 등을 통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2000년 베토벤 협주곡 전곡 1일 연주회를 통해 음악과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열정적 노력을 통해 청중을 감동시켜 많은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교수, 피아니스트, 그리고 지휘자로서의 특별한 업적을 인정받은 그는 2017 대원음악상 대상을 수상하였고, 독창적인 기획과 진취적인 추진력을 통해 다양한 무대에서 클래식 음악의 깊이와 감동을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창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헌신적인 교육자의 모습 뿐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주를 펼침으로써 수많은 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영롱한 빛의 연주"
하필 공연 전날 24일에 KT 건물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영향 반경에 있는 KT 사용자였던 나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전화통화 마저 거의 되지 않았던 터라 예습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작년 백건우 님 연주 때 들었던 곡임을 떠올리고는 예당 콘서트홀로 향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김선욱 님 뿐 아니라 핫하디 핫한 손열음 님을 발굴하여 키워내신 것으로 유명하시다지만, 제자 육성에 있어서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실력에 있어서나 한국 피아노계의 대부라 알려진 김대진 님의 공연을 나는 올 초 예술의전당 1년 계획을 확인했을 때부터 기다려왔다. 그러다 너무 많은 공연들을 접하는 바람에 깜빡 예매 기간을 놓쳐 버렸더랬는데, 지난 주 리샤르-아믈랭 연주를 보고 나오면서 예당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보고는 아차, 싶어 집에 오자마자 바로 예매했다. 다행히도 1층 D블럭의 황금좌석 하나가 비어 있어서 냉큼 구매했는데, 아마 누군가의 반환표였던 것 같다. 운이 좋았다 내가. 좋은 자리 반환해주신 분 누군지 모르지만 고맙습니다.
명성 만큼 3층 좌석까지 많은 관객들이 꽉꽉 메운 공연장은 연세 지긋하신 분들부터 어린 꼬마 관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곡 사이 뿐 아니라 인터미션까지 없이 70분 내도록 쉼없이 이어진 연주.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내가 가끔 들었던 30번은 몹시 감명 깊게 들었으나, 31, 32번은 상대적으로 내게 익숙하지 않은 곡들이었어서 도중 휴식 없는 연주가 좀 버겁긴 했다. 자꾸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새었고. 이는 들을 곡에 충분히 자신을 노출시키지 못한 나의 잘못이었다. 그래서 속상하기도 했고, 믿을 수 없도록 꼿꼿한 자세로 끝까지 멋진 집중력으로 연주해주신 김대진 님께 죄송하기도 했다. 다음부턴 정말 예습 좀 더 하고 가야지.ㅠ
김대진 님의 연주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하고 침착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나 이제부터 연주한다' 라거나, '나 이제 감정 잡는다' 싶은 느낌이 없었다는 점.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워서 연주인지 모르게 편안하게 듣다 보면 어느 새 강렬한 감정에 빠져들었다가 또 아련한 장면에 젖어드는 시간이었다. 노련함. 대가의 노련함이다. 그러나 단지 노련함 만으로 이런 연주가 나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연주에는 연주자의 인품이 묻어날 것이라 믿고 있는데, 그의 연주로 느껴본 현재 김대진 님의 인품은 너그러운 분이실 것 같았다. 자신의 취향에 사로잡혀 상대에게 자신의 것을 강요하며 다그치기 보다는 상대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실 것 같은 느낌. "괜찮아. 그렇다면 이렇게 해볼까?"하고 말씀해 주실 것 같은 느긋함과 든든함이 듣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주는 연주였다. 크레센도, 디크레센도에서도 갑자기 쾅쾅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균일한 속도와 정도로 무리되지 않도록, 그러나 확실한 강함으로 지구력있게 커지고 작아지는 소리가 여유롭고 능숙하게 들렸다.
70분간의 쉼 없이 집중적인 연주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신 김대진 님은 여러 번의 커튼콜 끝에 피아노 뚜껑을 닫으셔서 관중석의 웃음이 터졌다. 백건우 님께서도 작년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연주에서 앵콜을 하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렇게 앵콜곡 없는 연주도 참 좋아서. 앵콜곡을 할 만큼의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은 연주였던 만큼 본공연 연주 자체의 완성도가 높았다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위해 남은 에너지를 쥐어 짜서 앵콜곡을 들려주시는 연주자분들은 관객으로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죠.
Beethoven: The Last 3 Sonatas
프로그램북에 실려 있는 서주원 음악평론가의 세 개 피아노 소나타에 대한 훌륭한 글을 파란색으로 옮겨 싣는다.
베토벤의 세 개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옷깃을 여미며 듣는 음악
오늘 연주되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은 편안한 감상을 위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심연에서 천상까지 무한한 층위에서 펼쳐지는 음악이다. 그 영혼이 여정에 함께하는 것은 불편한 도전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이 작품들은 우리를 계속 깨어있게 요구한다. 이 불편함을 왜 감수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 손 안의 세상은 얕고 쉽고 편한 길로 가도록 끝없이 유혹하고 있다.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터치 몇 번이면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온갖 음악도 손에서 귀로 바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 세계는 또한 한없이 축소된 세계다. 섬세하고 깊은 배음이 제거된 소리에서 풍부한 공명이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곳에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사유의 공간이 없다. 안락한 길에서 길들여지는 사이에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자기 자신과 연결이 끊기고 자신의 영혼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베토벤의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Op.109, Op.110, Op.111은 신성한 차원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들은 각기 고유의 우주를 창조하며, 의미 있는 묘사라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영혼의 미답지로, 이제껏 상상할 수 없었던 체험의 세계로 떠나는 정신적 오디세이로 우리를 이끈다." (제러미 시프먼)
새로운 차원의 소나타들
여기 자신의 내면에서 고유의 우주를 발견한 이의 음악이 있다. 명상적이고 심오한 성격, 시적 통찰력과 철학적 사상,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독특한 영감...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표현과 형식의 새로운 차원을 연 이 세 개의 소나타는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들은 고전적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관습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당시 악기의 발달과 함께 구체적인 지시어, 극단적 다이내믹과 음악, 개성적 연주기법이 담긴 이 소나타들은 기존의 한게를 넘는 새로운 표현의 세계를 창조했다. 세 곡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각기 다른 진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Op.109는 소나타의 제3악장에서 변주곡 형식을 사용했으며, Op.110은 악장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제3악장에서 아리오소와 푸가가 나타난다. 또한 Op.111은 2악장 구성으로, 마지막 제2악장에서 더욱 확장된 변주곡이 나타난다. 표현과 내용과 형식과 깊이, 모든 면에서 이 작품들은 고전시대를 넘어 낭만주의 시대로 전환되는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을 작곡할 당시에 베토벤의 귀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돼 있었지만, 우리를 무한한 내면세계에 귀기울이도록 안내한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음들은 베토벤이 세상에 있을 때 오직 그의 내부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소리다. 어쩌면 한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온 세상을 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도 모른다. (와... 어쩌면 이런 평을 쓸 수 있지. 넘 멋지다.) 더 늦게 전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보는 사물이란 우리들의 내부에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오. 오리가 우리의 내부에 갖고 있는 것 이외의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살고 있소. 그들은 단지 외부의 형상 만을 현실이라 여기고 자신의 내부에 들어있는 그듦만의 독자적인 세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는 거요. 그렇게 한다면 행복할 수는 있을 거요. 그러나 내가 만일 일단 다른 길을 발견한다면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달려가지는 않을 거요. 싱클레어, 대다수가 가는 길은 편하지만 우리들의 길은 힘든 거요.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갑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Beethoven - Piano Sonata No.30 in E Major, Op.109
Vivace ma non proppo
Prestissimo
Andante mlto cantabile ed espressivo
<피아노 소나타 30번 E장조, Op. 109>
베토벤의 소나타가 특별히 예술적 자아의 실현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기존의 틀에 음악적 내용을 채워 넣기 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형식을 새롭게 변형시켰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3악장 구성이지만 매우 짧은 첫악장은 마치 전체 소나타의 서곡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마지막 악장에서 변주기법을 사용해 풍부한 상상력과 원숙한 기법을 펼쳐보였다.
총 99마디로 이루어진 제1악장은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템포와 박자가 다른 두 개의 주제가 제시된다. 온화한 제1주제는 2/4와 박자, E장조, 빠른 템포(Vivace, ma non troppo)이며, 장중한 제2주제는 3/4박자, c#단조, 느린 템포(Adagio espressivo)이다. 소나타의 제시부에서 주요 주제들이 각기 다른 템포와 박자를 가지는 것, 그리고 두 주제 사이에 연결구가 생략된 것, 그리고 제2주제가 딸림조가 아닌 관계단조로 나타나는 것 등에서 베토벤이 이 악장에서 표현력과 응집력을 최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제2악장은 매우 빠른 템포(Prestissimo)로 전개되는 스케르초풍의 악장이다. 전통적인 소나타의 2악장이 느리고 서정적인 노래가 제시되는데 반해서 이 악장은 폭발적 역동성이 돋보인다.
제3악장은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악장으로 이 소나타 전체 악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에서 변주곡 형식을 이처럼 비중있게 다룬 것은 이레적이다. 평온하고 울림이 풍부한 코랄 풍의 주제에는 베토벤 만년의 종교적인 깊이와 숭고미가 담겨 있다.
I. Vivace ma non troppo-Adagio espressivo(0:37) II. Prestissimo(4:11) III. Gesangvoll, mit innigster Empfindung: Andante molto cantabile ed espressivo(7:02)
김대진 님 연주 영상이 없어서 백건우 님 연주 영상으로 올린다.
이 곡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첫곡부터 울어서 걱정이 많이 되었다. 에너지가 콸콸 빠지게 되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음 두 곡은 내가 친숙하지 않기도 했고... 에너지가 순식간에 고갈되어 충실히 듣지 못했다.ㅠ
아름다운 1악장 도입부 1주제를 감상하다 어느 순간, 한 신사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김대진 님의 멋진 은발 때문에 그렇게 연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는 자신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들, 상처에 쓰러졌으나 회복했던 순간들 등이 하나씩 떠올랐는데, 16:23 부분부터는 그의 삶을 축복하는 천국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참, 11:20 부분에서 등장하는 스타카토가 너무나 가볍고 사뿐하고 예뻐서 즐거웠는데, 위의 백건우 님 연주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신사의 고민 없던 어린시절이 회상되었다. 자연스러움과 진중함과 사뿐한 경쾌함을 모두 잘 표현하셔서 즐거웠다.
Beethoven - Piano Sonata No.31 in Ab Major, Op.110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
Allegro molto
Adagio, ma non troppo - Recitativo: Piu adagio - Andante - Adagio - Meno adagio -Adagio - Adagio ma non troppo: Arioso dolente - Fuga: Allegro ma non troppo - L’istesso tempo di Arioso - L’istesso tempo della Fuga poi a poi di nuovo vivente -Meno Allegro - Tempo primo
<피아노 소나타 31번 A♭ 장조, Op.110>
명상적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깊은 비탄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전체는 3악장 구성으로 음악적 아이디어와 전개방식은 낭만주의적 면모가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제1악장의 동기가 제3악장의 주제와 연관돼 있어 악장 간에 통일성을 가지며, 3악장에 아리오소와 푸가가 결합된 독창적인 형식을 사용해 자신만의 음악적 사고를 자유롭게 펼쳐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제1악장은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A♭ 장조이다. 따뜻하고 풍부한 표정을 가진 선율로 시작한다. 첫4마디가 담긴 음향이 제3악장의 첫 푸가의 주제로 사용돼 악장들이 동일한 주제적 요소로 긴밀하게 연결된 순환형식을 이룬다.
제2악장은 스케르초이며 f단조이다. 일반적으로 스케르초가 3박자 계열인 것에 반해 이 악장은 2/4박자이며, 당김음의 사용과 불규칙한 강세 패턴으로 예측할 수 없는 역동감이 넘친다.
마지막 제3악장은 서주와 2개의 아리오소, 그리고 2개의 푸가가 결합된 독특한 구성의 악장이다. 베토벤은 말하는 듯한 레치타티보와 말과 선율이 결합된 형태의 아리오소, 그리고 푸가 형식을 자유롭게 사용해 자신만의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 레치타티보 후에 나오는 아리오소 I은 '비탄의 노래'(Klagender Gesang)로 탄식하듯 노래한다. 푸가 I은 3성 푸가로 활기차게 전개되는데 푸가 주제에는 제1악장의 도입부에 쓰인 동기가 사용됐다. '기진맥진하여, 탄식하여'(Ermattet, klagend)라고 적혀있는 아리오소 II에는 아리오소 I 보다 더욱 깊은 슬픔과 절망이 나타난다. 이어지는 푸가 II는 '점차 소생하며'(Nach und nach wieder auflebend)라는 지시어처럼 서서히 속도감이 붙으면서 확신에 찬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베토벤의 내면 풍경이 비춰지는 탄식의 아리오소와 불굴의 의지가 담긴 활기찬 푸가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이 악장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마지막 승리의 푸가로 끝맺는다.
I. Moderato cantabile molto espressivo(0:00) II. Allegro molto(5:47) III. Adagio ma non troppo-Fuga: Allegro ma non troppo(8:00)
Beethoven - Piano Sonata No.32 in C minor, Op.111
Maestoso - Allegro con brio ed appassionato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피아노 소나타 32번 C단조, Op.111>
소나타라는 형식과 씨름하면서 그 한계를 계속해서 확장해온 베토벤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특이하게 단 2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연주시간이 약 30여분에 이를 정도로 장대하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 그 길을 끝까지 간 이의 회고록과도 같다. C단조의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며, 감7도의 하강 도약과 함께 도전적으로 시작한다. 계속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역동적인 제1주제가 유니즌으로 제시되고, 대위법적으로 전개된다. 이후에 밝은 색채를 띤 제2주제가 등장한다. 이 악장에서 베토벤은 대위법적 전개를 선율이 가진 특징을 더 명확하고 풍성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로써 논리적 치밀함이 특징인 오래된 형식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악장의 음악적 흐름은 순탄하지 않다. 잦은 전조와 템포의 변화, 극단적인 다이내믹이 수시로 등장해 혼돈과 암흑 속에서 고투하는 한 음악가의 초상이 그려진다.
제2악장은 C장조로, 제1악장의 C단조와 같은 으뜸음조이다. 두 악장의 중심음은 동일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울림은 혼돈에서 평정으로, 갈등에서 승화로 변한다. 제2악장의 주제는 청아하고 깊은 울림을 담고 있는 시적인 아리에타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5개의 변주들은 일반적인 변주곡과 달리 각 변주가 번호 없이 연결돼 있다. 이로써 베토벤은 변주 형식을 중심적 틀로 사용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하나의 유구한 흐름 안에서 통합시킨다. 또한 주제부터 마지막 변주까지 점차 음가를 분할해서 계속해서 속도감이 더해진다. 이 동력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 가차없는 추진력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다음 단계로 심화되는 자연스러운 추동력이다. 이 장대한 소나타는 마지막 코다에서 고음역의 긴 트릴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눈부시게 빛나는 빛을 발견한 사람의 환희처럼 오래도록 울린다.
ㅡ글: 서주원(음악평론가)
I. Maestoso-Allegro con brio ed appassionato(0:12) II. Arietta: 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8:42)
이 마지막 32번 연주에서는... 나는 검은 악과 하얀 선의 대결이 떠올랐던 것 같은데... 정확히 복기할 수 없음이 아쉽다. 백건우 님의 연주와는 많이 달랐어서. 두 분의 연주 모두 비교가 불가하리만치 각각 매력적이다.
김대진 님의 연주가 끝나고 남은 것은 빛의 잔상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서지는 빛의 황홀한 잔상이다. 보통 피아노 연주를 들을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물이다. 빛이라 해도 물 위에 비치는 빛이 주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번 김대진 님 연주에서는 전체적으로 아주 다양한 형태로 부서지는 빛들이 등장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 아지랑이 사이로 창백하게 부서지는 빛, 호수 위로 부서지는 빛, 검은 파도 위로 부서지는 빛, 은은하게 흔들리는 달빛에 아득하게 빛나는 별빛까지. 그 색도 투명하리만치 맑은 하얀색에서 노란색, 칠흑처럼 검은색에 무지개빛까지 다양하게 빛들이 부서지고 산란해서 환상적인 시간을 가졌다. 아, 지금 생각나는데, 처음 들었던 30번에서는 차고 맑고 투명한, 그러나 따갑도록 뾰족하지는 않은 고드름이 떠올랐다. 고드름이 여기저기 가득 얼어 있는데도 이상하게 춥지 않은 신기한 나라에 있는 것 같던 기분.
부서지는 빛들의 향연으로 기억될 연주였다.
김대진 님의 연주 영상을 하나라도 올리고 싶어서.
공연 후 1층 로비에 등장하신 김대진 님은 발걸음을 옮기기 힘드셨을 정도로 많은 제자분들이 줄지어 다가가 인사하셨다. 제자 뿐 아니라 다른 동료 교수님들도 많으신 것 같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김대진 님께서 얼마나 많은 분들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신지 깨달았다.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분을 보는 것은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죠. 그 성실하고 멋진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