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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Book Review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by Vanodif 2012. 7. 10.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 심각한 스포일링의 줄거리. 책을 읽기 전이라면 줄거리는 늘 1/3만 읽을 것.

 

 

신림책방이라는 헌책방집 아들 이수명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한 이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게 된다. 언제나 혼자 있던 그에게 어느 날 마음 속에서부터 누군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해 생에 처음으로 친구를 갖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명이 그 목소리에 더 집착할 수록 그 목소리는 어느 순간 수명에게 차도에 뛰어들라는 둥, 불을 지르라는 둥,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하게 되면서 결국 수명은 헌책을 창 밖으로 집어 던지게 된다. 그 일로 로뎀병원이라는 비싸고 환자에 대한 대우가 좋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나오자마자 길 가던 여자에게 어색한 투로 길을 물어 여자가 소리를 지른 일로 또 다시 수리희망병원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가격은 좋지만 환자에 대해 비인격적 대우가 많은 이 수리희망병원을 무대로 펼쳐진다.

 

같은 날 이 병원으로 이송된 같은 침대를 쓰게 된 류승민은 재벌이 바람을 피워 낳은 막내로, 재벌 아버지가 죽으면서 그의 앞으로 많은 유산을 남겼고, 그것에 불만을 품은 본가 식구가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집어 넣은 것이었다. 어렸을 적 불을 낸 적이 있는데, 회사의 공장 방화범으로 승민을 몰았던 것이다. 승민은 어렸을 적 미국의 시골에서 '대장'이라 부르며 따랐던 이에게서 유일하게 따뜻한 정을 느꼈으며 그로부터 행글라이딩을 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것으로 수상도 했을 정도로 하늘을 나는 것을 몹시 좋아했다. 그런 승민의 시력이 점점 나빠져 이제 곧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시점에서 승민은 정신병원을 탈출하려 몇 번이나 시도했으나 끝내 잡혀 들어온다.

 

승민 외 승민을 '또별'이라 부르며 말처럼 올라 타는 만식 씨, 정신병원 내의 도사와 같은 십운산 선생, 일류대학을 나온 김용 씨, 버킹엄 공주, 바바리맨 509호 거시기, 딸 현선이를 늘 애타게 부르짖는 현선이 엄마, 중졸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수명에게 수학을 배우는 우울한 세탁부, 그리고 까칠한 간호사 윤보라, 원장의 친척이자 환자들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변태적 성향이 있는 점박이, 말썽을 피운 환자를 강압적으로 제어하지만 사실상 환자들을 유일하게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최기훈 등이 어우러져, 우스꽝스럽지만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여러 사건들을 이어 나간다.

 

승민의 도주계획에 휩쓸렸다가 결국 전기충격요법을 받게 된 수명은 우울한 세탁부에게 부탁을 해, 시력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승민을 도울 계획을 세우는데, 그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최기훈으로부터 전해 듣는다. 아버지는 병원치료를 거부하면서 수명이 평생 그 정신병원에 있을 수 있도록 돈을 마련해 놓았고, 수명의 보호자로 고모를 지정했다는 것. 장례식에도 수명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 소식을 들은 직후 받은 전기요법에서 수명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감추었던 자신의 과거를 맞닥뜨린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그 날에의 기억. 수명은 엄마의 자살이 아빠탓이라 여겼었다. 그런 그에게 떠오른 무시무시한 과거의 기억. 어릴 때부터 정신병원을 오갔던 엄마를 수명은 싫어했다. 자꾸 자살을 시도하는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퇴원 후 엄마를 방에 가둬 문을 잠갔던 아빠가 외출을 했을 땐 수명이 엄마를 돌보아야 했다. 그런데 새로운 헌책이 무더기로 도착한 날, 수명은 책 꾸러미를 묶은 끈을 가위로 자르고는 포우의 『붉은 죽음의 가면』 에 탐닉했다. 그러다 손에 가위를 든 줄도 모른 채 2층으로 올라가 엄마께 점심을 드린 후 가위와 열쇠를 그대로 2층에 둔 채로 내려와 또 다시 책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엄마 식사 챙겼냐, 는 아빠의 전화에 또 다시 2층으로 올라갔는데, 욕조에서 가위로 목을 찔러 자살한 엄마를 발견하고는 기억을 잃는다. 그 기억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이다.

 

전기요법을 끝내고 나오자 마자 수명은 원래 승민만 탈출시키려던 계획을 수정해 자신도 탈출하기로 한다. 병원의 다른 환자들이 그런 둘을 위해 일대 소동을 피워주고, 그 사이 우울한 세탁부의 세탁통 속에 둘을 몸을 숨겨서 봉투를 운반하는 봉고에 몸을 싣고 탈출에 성공한다. 미리 친구에게 부탁해 산꼭대기에 비행장비를 숨겨두었던 승민을 산꼭대기까지 인도하고, 그러는 중에 승민에게 그 모든 기억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승민은 수명이 늘 자기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 고 말했었는데, 그런 수명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시계를 쥐어주며 "네 시간은 네 거야"는 말을 남기고 하늘을 날아 떠난다. 그리고 수명은 산꼭대기에서 저체온증으로 정신을 잃는다.

 

붙잡힌 수명은 승민의 자살방조죄로 소송을 받는데, 승민이 하늘을 날아 자살을 시도했다는 정황은 있으나, 정작 승민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죄가 성립될 지는 미지수다. 그런 수명은 여기저기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서 이 모든 말을 오랜 시간에 걸려 고백한다.

 

출소한 수명은 이제 더 이상 가위에 예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어둠을 직면하고는 드디어 진정한 자신을 되찾은 것이었다. 자유를 되찾은 수명에게 승민과 수리희망병원 식구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수명은 예전에 병원의 모노드라마에서 승민이 추었던 트위스트 노래에 트위스트 춤을 추면서 자신으로부터의 자유, 진정한 해방을 만끽한다.

 

 


 

 

 

[2009 세계 문학상 수상] 이란 말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 중 내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날 확률은 20%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내 취향과 문학적 안목이 수준 높지는 못하다ㅡ생각은 않지만,

그저 내 취향이 메이저와는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하니까.

 

그런데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 중 내 맘에 꼭 든 것이 바로 『절망의 구』였다.

작품성과 상관 없이 분명 그 작품은 영화와도 같이, 눈 앞에 생생하게 장면을 그려내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만장일치는 아니었을 지라도 '심사위원진의 압도적 선정'이란 것.

문학작품은 다양하다. 소재와 메시지와 문체 등 너무나 다양한 부분에서 너무나 다양하다.

거기다 심사위원마저 다양하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소위, 최고의 안목을 가진, 자신이 작가인 분들이다.

그런 다양한 취향과 안목을 가진 다양한 심사위원들이 최고의 작품을 꼽는 데 있어

쉽사리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까탈스런 양반들의 의견을 모았다는 것.

그것이 작품의 가치를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선택은 옳았다.

 

너무,

정말 너무, 좋은 작품이다.

 

유쾌하고 즐겁고 웃기고 재밌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낄낄대고 웃으면서도 눈에 눈물이 어리고 가슴이 뭉클, 저며진다.

펑펑 심장에 눈물을 쏟아대면서도 이 못돼먹은 작가의 손장난에 어쩔 수 없이 키들키들 댄다.

정말이지 '엉덩이에 뿔 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잘 읽히지 않는다.

심사평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잘 읽히지 않는다.

『절망의 구』가 탁월한 흥행성을 지녔다면, 이 작품은 탁월한 작품성을 자랑한다.

보통 작품성이 뛰어난 책은 잘 읽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작품 속의 메시지가 너무 무거운 것이기 때문,

너무나 복잡한 것들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작업이 책에 익숙지 않은 다수의 대중에겐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

혹은 내용과 메시지 자체에 너무 공을 들이다보니 문체가 매끈하고 가볍게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

ㅡ사실, 많은 경우 가벼운 작품이 문체가 가벼운 경우가 많다.

대중은 무거움을 버거워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근데 이 작품은 비록 주제가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누구나 수긍 가능한 것이다.

또한 여기저기 위트가 지뢰밭의 지뢰처럼 깔려 있어, 조금만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게 속도를 낼 수 있을 테다.

그런 이 작품을 읽는데 이토록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작가의 끈질기고 지독한 정성 때문이다.

어지간히 의미 없는 문장들은 어지간한 경우 있게 마련이고 그런 문장은 가벼이 읽어 넘길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작품에는 그런 '어지간한' 문장이 단 한 줄도 없다.

그래서 단 한 줄도 대충, 어지간하게 읽을 수가 없다.

 

아! 정말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읽으면서 그 지극한 정성에 마음이 쿵쿵* 울릴 정도로.

 

전직 간호사로 직접 정신병원에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활하며 어울리며 체험하며 썼다, 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얼마나 정성들여, 얼마나 그 환자들에 애정을 담고 썼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읽으며 환자들에, 작가의 마음에 감동이 차오르게 된다.

 

수명이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는 과정을 너무나 납득이 가게 말해 주었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앓게 되는 거구나.

정신분열증을 앓는 환자를 향한 작가의 깊은 애정과 공감, 연민

그런 따스함이 이 작품의 밑바닥을 내내 흐르고 있어

따스함 때문에 또 다시 울게 되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참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