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내용에 관한 포스팅은 http://vanodif.tistory.com/1005 을 참고하세요.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http://korean-national-ballet.kr/performance/view?id=7
예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schedule
※ 검정색은 5월 6일 토요일 공연 후기, 핑크색은 5월 7일 일요일 공연 후기.
벌써 새벽 한 시 반이라니. 토요일, 너무 스케줄이 많았어서 집에 올 땐 차에서 졸았을 정도로 피곤해서 제대로 후기를 쓸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쓰려고 한다. 아... 내일 있을 피아노 리사이틀은 예습을 못하겠네. -_ㅜ 이 후기를 쓰면 바로 잠들어야 하지 싶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가장 놀란 부분은 안무였다. 찬란한 안무가의 탄생. 우리나라에 드디어 이런 안무가가 생겼다, 는 감동. 강효형 님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안무가로, 모던발레와 네오클래식 발레가 장점이라고 한다ㅡ라는 설명이 이 발레를 보면 완전히 와닿는다. 나와 일행이 발레를 보고 나오면서 감탄했던 여러가지 중 하나가 바로, "분명 모던댄스라 해도 될 것 같은데, 희한하게 모던댄스가 아니라 '모던발레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동작들이지만, 전체적으로 발레 특유의 우아함과 고상함, 균형적인 틀이 느껴진다"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좋지 않았던 안무는 한 가지 뿐이었다. <라 바야데르>를 연상시키는, 팔꿈치와 무릎을 꺾은 상태에서 손목과 발목을 바깥 방향으로 꺾는 동작. 한국적이라기 보단 이질적이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리고 그 외의 동작들은... 황홀했다.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이고 고전적이다,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미가 있다ㅡ이런 표현을 보면 알겠지만 균형감각이 뛰어난 안무였달까. 정중동 동중정이라 기자님께서 표현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절한 여백미와 강렬한 역동성을 동시에 소화해 낼 수 있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 길지 않았으나, 그 아찔한 균형감각을 훌륭히 이루어 낸 안무였다고 생각해. 허난설헌의 시 두 편을 읽고 그 시의 내용과 허난설헌의 안타깝고 기구한 삶의 슬픔을 참 잘 녹여낸 작품이다. 시에 대한 이해와 해석도 근사했고. 향후 작업하실 안무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강효형 님이다. 제발 제발 스토리만 잘 만나시기를. 좋은 스토리의 작품에 이렇게 반짝이는 안무를 입히시기를.
<허난설헌-수월경화>의 안무는 아크로바틱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다. 남성 무용수들이 여성 무용수를 공중에서 휘두를 땐? 헉, 싶었을 정도로 아찔했다ㅡ무용수분들 넘 고생 많으셨어요. 보는 입장에선 황홀하지만 제발 다치지 말아주세요. -_ㅜ. 남녀가 함께 하는 안무가 많다 보니 덕분에 남성무용수분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참 힘드시겠다 싶었다. 남성 무용수분들은 파트너가 안심하고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하게 서포트해야 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기도 해야 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어려운 동작이 많은 만큼, 남성 무용수분들이 파트너를 하나같이 매의 눈으로 보며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안무를 보면 관객은 즐거울 수 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ㅠ
이 안무의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여성의 몸을 제대로 표현해 주셨구나' 싶었던 것이다. 발레리나의 안무가 갖는 장점을 참 잘 살린 안무였던 것이, 남녀 무용수가 같이 동작을 할 때, 남성 무용수가 여성 무용수를 끄는 장면이 자주 나왔는데, 물론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표현하는 등으로 내용의 이해에 적절하게 부합하는 동작이었으면서도, 여성 무용수의 몸이 활처럼 아름답게 휘면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이동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가늘고 긴 곡선으로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가 하면, 남성 무용수의 팔 위에서 조그맣고 동그랗게 몸을 마는 동작이라거나, 리프트 상태에서 회전의 방향이 색다르다거나, 등등의 모습을 보며, '여성의 몸을 참 아름답고도 효과적으로 잘 표현하셨다'며 감탄했다.
첫장면 박슬기/신승원 님의 연기 뒤로 나오는 <김준영 -말없이 고이>에서 검정 붓글씨분들의 춤 또한 매력적이었는데, 등장하실 때의 동작은 같은데, 그 다음 자리에 가서 배치될 때의 동작이 다르다. 그것에서 연상되는 것은, 시를 쓰는 허난설헌의 붓 터치가 똑같이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각각 다른 글자로 퍼져가는 모습이었다. 한 분 한 분의 정지 동작이 한 자 한 자의 글자 같았다.
또한 어디였더라... 나중에 이 붓글씨가 다시 등장하는데, 그때 앞에서 춤을 추시던 분의 동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발레마임에서 '아름답다' 부분이었는데, 얼굴 반대쪽을 쓸어내리는 손을 둥글리는 모양이, 아 어째서 잘 어울렸지? 왠지는 모르겠는데, 이 작품과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작을 보면서, '한국적인 발레마임을 새로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미 알려진 발레마임은 많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특별히 한국적인 언어로라면 '한'이나 '정', '효심', '조상', '공동체적인 삶' 그리고 현대적 의미로는 '분단' 등이 있을 텐데, 향후 이런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혹 만들게 되신다면, 그런 한국적인 단어들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발레마임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ㅡ는 좀 너무한 바람인 걸까.;; 만드시는 분들 피 말리는 줄 모르고 보는 입장에서 욕심만 많아져가지고는. 아니 이렇게 훌륭한 안무를 보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기는 걸 어떡하라고. ㅠ
'쉐도우'분들은 토요일 공연에선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일요 공연에서 보았을 때 눈에 들어왔다. 가을 바람에 꽃이 시들고 절망에 빠진 허난설헌에게서 멀어지는 그림자. 짧은 부분이었지만 이 부분도 좀 생각하고픈 부분이었다. '그림자'는 존재의 '물성'을 상징한다. 살아있는 것,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존재하는 것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런데 허난설헌은 그 그림자를 강탈당한 것이다. 현실이 주는 고통과 냉혹함에 절망한 허난설헌은 그나마 세상에 존재하는 자로서의 현실성을 상징하는 그림자를 빼앗긴 채, 이제 신선의 세계, 즉 비현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반강제적, 반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간 신선의 세계에서 그녀는, 자신의 핏빛 선명한 죽음을 만나게 된다.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는 부분인 것이어서, 이 그림자와의 이별 장면은 조금 더 깊게 다루어주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장면. 세 분의 바람을 허난설헌이 타는 장면. 들려 올려진 허공에서 한바퀴를 돌아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한 장면이 참 아름다웠다. 행여 다치실까봐 조마조마했지만서도.
음악. 말해 뭐하나. 황병기 님의 가야금 소리가 뚱, 뚜둥, 울릴 때마다 심장을 쿵, 쿠쿵, 친다. 네 분이 작곡하신 음악을 사용하셨는데 우리 국악이 이토록 아름답구나 싶도록 훌륭했다. 이 굉장한 음악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동작이 안무되었고, 또 그 동작을 기막힌 타이밍과 표현력으로 무용수분들이 연기해 주셨다. <김준영 - 거문고 독주 수장>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부분이 나올 때는 감탄을 했는데, 그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것이 바로 이 푸른 바다와 광상산을 상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애국가의 한 부분을 넣었으니, 세계적인 작품으로 나가기에 참 재치있게 맞아 떨어지는 곡이었다. 더군다나 '백두산'은 현재 대한민국 사람에게 있어 존재는 하나 쉬이 갈 수 없는 산이자, 애국가에 등장할 정도로 국민적 염원이 담겨 있는 산인 만큼, 가고 싶되 갈 수 없고 꿈에서나 갈 수 있는 '광상산'을 상징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겠다. 그 외 난초가 시들 때나 부용꽃이 떨어질 때의 음악은 애달프면서도 아름다운 명곡이었다. ※ 음악에 대해선 http://vanodif.tistory.com/1005 에 추가로 싣도록 하겠다.
무대. 미니멀리즘이란 이런 것이지. 어지간해선 미니멀리즘적인 무대에 감동하지 못하는 편인데, 무대가 참 좋았다. 얼마 전 보았던 연극 <심청>이 살짝 연상되기도 했지만, 한 편의 수묵화를 그리듯 번지는 무대장치가 허난설헌의 좌절하는 마음을 서늘한 바람처럼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천장에 뻗은 매화가지도 예뻤고. 또 잎새들이 나왔다 가려지는 그 무대도 감각적이었다. 그 무대는 병풍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또한 천장의 매화나무, 병풍 위를 뻗어가는 붓터치와 함께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면서도, 내용에 맞게 열리고 닫힘으로 입체감을 더하였다.
조명. 과하지 않으면서 모자라지 않고, 그러면서도 매력적인 조명이었다. 1장의 난초가 떨어진 후 등장한 흰옷 무용수분들은 난초의 향기와 허난설헌의 눈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프로그램북의 설명에는 없네. 암튼, 그 부분의 조명이 은은하게 감도는 난초의 고운 향과 흰 옷소매를 적시는 맑은 눈물 같은 느낌을 예쁘게 잘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2장 시작의 바다부분 조명도 좋았고. 음. 그 조명이 구슬바다를 표현한 것이었나, 지금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드네. 다시 한 번 보아야겠다. 7일에 다시 보니 <황병기 -침향무> 부분에서 바람과 난초 잎이 함께 춤을 출 때 붓끝에 떨어진 먹이 화선지에 번지듯 조명 한 방울이 바닥에 뚝, 하고 번지던데, 그런 디테일한 조명도 처연함을 상승시켰다. 그리고 <김준영 -거문고 독주 수장> 부분이었나, 물줄기와 같은 하얀 선들이 길쭉하게 흔들리는 것이, 냉혹하고 무심한 현실에 좌절한 허난설헌이 마침내 신선계의 물결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푸른 바닷물에서의 물의 이미지로 잘 연결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의상. 너무 아름다웠는데. 맨 첫장면의 박슬기 님 의상은 반칙이지 뭔가. 박슬기 님은 앞모습, 뒷모습이 모두 아름다운 발레리나인데, 특히 뒤돌아 서실 때면 어깨와 팔, 등의 자글자글 박혀 있는 근육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분이란 말이다. 거기다가 반듯하게 곧은 어깨는 박슬기 님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닌가. 첫장면 내내 뒤돌아서 춤추셨던 박슬기 님의 뒷태에서 이미 넋이 날아가 버렸다. 아 참, 의상 부분이었지.;; 거의 누드에 가까운 상체는 자연과 맨마음을 연상시켰다. 난초는 식물이니 자연이고, 그 난초 앞에 죽어가는 자신의 꿈을 맨몸이 아닌 맨마음으로 투영한 허난설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허난설헌이 난초이고 난초가 허난설헌이 되는 바로 그 의상.
내가, 발레에서 발을 다 가리는 너무 긴 치마를 안 좋아한다. 발동작을 볼 수 없기 때문인데, 참 영민한 의상인 것이, 길지만 다리와 발동작을 다 볼 수가 있도록 시스루를 사용하는 재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상 참 잘 어울리는 시스루인 것이고. 또 다행히 다리동작이 시원한 안무가 많았어서, 의상은 우아하고 아름다울 뿐, 동작을 감상하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다라거나, 꽃잎이라거나, 바람이라거나, 푸른 난새 채색 난새 모두 아름다웠다. 특히 채색 난새의 의상은 색이 묘하고 예뻤다. 남성 무용수들의 의상은 밝은 파랑, 베이지, 흰색으로 색상에만 변화를 준 치마바지로 통일하였는데, 단조롭다 싶을 수도 있겠으나, 내용상 집중하기엔 최적의 의상이었다. <허난설헌-수월경화>는 허난설헌의 비애를 다룬 작품으로,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난초나 부용, 눈물은 모두 허난설헌의 상징이다. 그러니 허난설헌의 내면과 심적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여성무용수들의 의상은 섬세한 디테일을 과하지 않게 살렸고, 상대적으로 외적 환경에 해당하는 새나 바람의 남성무용수 의상은 단순화 하는 것이 작품에 잘 어울린다. 새의 역동적인 춤에 팔랑팔랑거리는 의상이 가벼움을 더했고, 바람의 풍성한 바짓자락 역시 꽃을 휘감아 부는 바람의 결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무용수분들과 동작에 대해 쓰기 전에 아쉬운 점 하나 더 말한다. 내용이 좀 어려웠다. 배경작품을 숙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 무용수분들의 정체성?과 동작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일행은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는데, 나는 자막을 원하는 것은 아니고ㅡ언어적 언어에서 벗어나 육체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무용이니 만큼ㅡ조금만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북이나 인터넷에 설명을 적어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병풍전환수'는 무엇인지, '쉐도우'는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거든. 그런 설명들을 덧붙여준다면 좀 더 풍성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은 6일에 나와 일행 둘 다 희한하게도 프로그램북에서 놓쳤던 부분이다. 7일에 다시 보니 이 부분이 설명되어 있지 무언가! 6일에 둘이서 몽유광상산에 다녀온 것인지, 원.
다음은 프로그램북에 있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설명을 싣는다. 진작에 이 부분을 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안무가가 이야기하는 <허난설헌-수월경화> 들으면서 보는 <허난설헌-수월경화>
황병기 -춘설: 조용한 아침
무대 위에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허난설헌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작품에서 허난설헌은 <감우>와 <몽유광상산> 두 개의 시에서 화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무대 뒤에 펼쳐진 병풍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앞으로 그녀 자신이 쓴 시 속 세계로 들어가
실존 인물로서가 아닌 시 속의 화자(시인)로 등장하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김준영 -말없이 고이
병풍 앞에 펼쳐지는 여인들의 무게감 있고 힘있는 춤사위가 그녀가 백지 위에 써 내려간 붓글씨를 연상케 합니다.
그렇게 백지 위에 먹이 칠해지듯 그려지던 춤사위는 어느덧 시 속에 등장하는 난초의 형상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서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가"라는 시 구절 하나에 떠오른 동양화의 이미지를
무용으로 표현하고자 한 안무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황병기 -춘설: 익살스럽게
무대 위에 새가 등장합니다. <몽유광상산>에 나오는 새를 작품 초입부터 등장시켜
허난설헌의 행복하고 따뜻했던 시절에 대한 평화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새는 뒤에 <몽유광상산>의 슬픈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 되기도 하지요.
황병기 -하마단: 자진모리풍, 휘모리풍,
- 침향무: 2장, 3장
향기롭고 싱그러운 난초 가지를 묘사한 춤들이 때로는 화사하게, 때로는 고요하지만 힘있게 이어집니다.
그러다 곧 가을바람이 불고 푸르던 난초들도 시들기 시작합니다.
한진 -월하정인
결국 가을바람에 시들어버린 난초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춤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시 속 화자인 시인이 등장해 시들어버린 난초 가지에서 느낀 연민을 애달프게 표현합니다.
그녀가 시든 난초 가지를 보면서 옷소매가 젖도록 슬피 운 이유는 시들어가는 난초 가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게 그녀 또한 난초들과 함께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바람곶 -Bowing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녀의 삶이 서서히 그녀를 옥죄는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슬픔들로 인해 어둡게 변해갑니다.
그녀를 압박했던 현실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지요.
앞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남자는 허난설헌 본인이 느꼈던 처절한 마음의 고통에 대한 형상일까요,
아니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던 현실 혹은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던 남편의 형상일까요?
김준영 -거문고 독주 수장
현실의 괴로움을 잊고자 그녀는 꿈 또는 신선 세계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허난설헌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몽요광상산>의 배경인 꿈속으로 발을 내딛는 장면입니다.
황병기 -밤의 소리: 신비롭게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철썩이는 바다의 파도가 시인을 또 어딘가로 이끕니다.
심영섭 -하늘을 날다
푸른 난새와 채색 난새가 어울려 춤을 추며 곧 닥쳐올 슬픈 시인의 마지막을 예고합니다.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것처럼,
붉은 꽃잎이 한 송이 한 송이 떨어질 때마다 그녀의 숨은 꺼져갑니다.
시인이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고 싶어했던 세계는 정말 아름다운 세계였겠지요...
자신의 시 속 세계처럼 말입니다.
이 창작작품은 첫공연이니 만큼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기에, 이 포스팅에는 내가 느낀 점 위주로 적게됨을 밝힌다ㅡ는 언제는 안 그랬느냐마는. -_- '현대예술의 가치 절반은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니 만큼, 자유로운 해석의 비약을 즐겨 보겠다.
허난설헌, 박슬기 님. 일단 너무 아름답지 말입니다. 혼자 우윳빛깔 박슬기를 뽐뽐하시는 그 자태란. 첫장면의 그 기이다랗고 가느으다란 팔을 휘저으실 때마다 손끝에서 처연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낙화 장면에서... 음. 내가 발레를 보면서 눈물을 찔끔거린 적은 몇 번 있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울었던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만 운 것이 아니다? 그 장면에서 여기저기서 훌쩍거리시던. 복잡하게 절정을 향해 달리는 음악과 함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규와 처절한 동작과 절망적인 표정, 흐느끼는 소리. 그 애절함이 너무 절절하여 심장이 저렸다. 박슬기 님의 연기력은 정말... 몸동작에서 절규가 소리로 전달되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훌륭했다. 당연히 심리 연기에만 능하신 것이 아니다. 위에 설명했듯 묘기에 가까운 어려운 동작들을 그토록 깨끗하게 소화해 낼 뿐 아니라, 깔끔한 동작선이 인상 깊었다. 7일 공연에선 1장의 난초가 시드는 장면과 허난설헌의 절규, 2막의 부용꽃이 떨어지는 장면에서 더 많은 분들이 훌쩍였다. 나로 말하자면 미리 티슈를 준비해 간 덕에 깨끗하게 훌쩍일 수 있었...?
시인의 이상 이재우 님. 이재우 님은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몸이 너무 멋져서 등장하는 순간 무대를 휘어잡는 그 존재감을 어쩌겠는가. 한 가지 독특했던 건, 어려운 동작이 많아 파트너를 서포트하시는 것만도 힘들었을 텐데, 그 와중에 표정 연기를 하시더라는 거. 1장에서 꽃을 떨어뜨리는 바람으로 연기하는 내내 싸늘한 표정을 지으셨는데, 그 표정과 서늘한 동작이 참 가슴 아팠다.
잠시 이야기를 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네 꽃을 떨어뜨리는 네 바람의 장면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특별했다. 여기에서 강효형 님께서 허난설헌의 <감우>를 얼마나 꼼꼼하고 깊게 이해하셨는가를 감탄했는데, 내가 시를 읽었을 땐 그 장면이 순차적으로 일어났었다. 그것은 언어전공자로서 언어를 대할 때 느끼는 한계일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한 차례 바람이 지난 후 뚝, 하고 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연상했거든. 그런데 강효형 님의 안무를 보니, 어쩌면 낙화는 바람과 꽃의 슬픈 사랑으로 풀어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는 슬픈 사랑도 존재하지. 함께 하면 상대를, 혹은 서로를 파괴시킬 수 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을, 꽃에게 반하여 꽃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는 바람과, 그 바람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꽃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 생각을 허난설헌으로 연결시킨다면, 그 바람은 허난설헌의 시적재능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재능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꺾일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어라...???? 이 후기를 쓰면서 드는 생각인데, 그 바람 중에 이재우 님이 있었고, 나중에 그 이재우 님이 시인의 이상, 즉 허난설헌의 시인으로서의 이상을 표현하잖아?? 아... 기막히구나! 음. 그렇다면 이재우 님의 그 냉정한 표정은 허난설헌에게 냉정한 시인의 이상, 혹은 재능이란 뜻인데... 나는 바람도 꽃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남자 싫어하는 사심을 가득 반영하여.;; 아, 암튼.;;
이재우 님의 그 탁월한 신체와 몸매는 굳이 언급할 필요 없겠지. 눈이 황홀합니다. 그런데 동작은 힘차고, 시원하고, 빠르면서도 매끈한 데다, 여성 무용수분들을 서포트 할 때는 그토록 믿음직스러울 수 없는 거다. 믿고 보는 이재우 님이지요.
토요일은 처음 본 공연이라 내용 따라가는 것에 급급해, 다른 무용수분들은 잘 감상할 수 없었다. 잘 모르기도 하고.;;
뭔가 더 표현하고픈 감동이 있었는데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네. 내가 쓰는 언어가 짧구나. -_ㅜ
새를 표현한 발레리노분들. 손바닥을 얼굴 앞에서 모아 새의 부리를 표현해주신 것 같았는데, 힘찬 동작이 좋았다. 오늘 일요일 공연에서 다시 보아야지.
처음 등장하는 검은 옷 8인무가 난이었나? 잘 모르겠는데. 8명으로도 칼군무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푸른 난새와 채색 난새는 의상이 너무 잘 어울렸는데, 난 좀 뭐랄까, 시를 읽었을 때 이 부분의 연상이 풍성했거든. 신선들이 노니는 광상산의 그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모습을 좀 더 즐기고 싶었는데.
아 참,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드는 모습은 살짝 아쉬웠다. 이 부분은 많은 무용수분들이 서로 휘말리는 장면을 상상했었거든.
2장에서의 부용꽃 낙화도 인상적이었다. 참 안무 잘 짜셨단 생각을 여기서도 했는데. 꽃대궁이 뚝, 뚝, 끊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이라니. 마치 붉은 피가 뚝,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그 시를 쓴 허난설헌의 마음이 그러했겠지, 싶었다. 7일에 다시 보았을 때도 이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떨어뜨리는 바람 앞에 파르르 떨다가 뚝, 하고 고개를 떨구는 그 모습들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마음 아팠어.
프로그램북의 시놉시스에 <감우> 시 두 번째 행에 '다시 들었네'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 시들었네'예요. 그거 읽으면서 일행과 함께 물음표 바닷속을 헤매었거든요. 원래 읽었던 시의 해석은 '떨어지다'였기 때문에.
더는 못 쓰겠다. 너무 졸립다... 자야겠다.
박슬기 님과 이재우 님. 설명이 필요 없죠.
아름답고 멋진 생명체들이 바글바글해. -_ㅜ
앞줄 왼쪽부터 신승원, 박나리(?), 김기완, 박슬기, 이재우, 한나래(?), 이... 수희?(얼굴 돌리고 계셔서 모르겠;;), 김하림, 이영도 님.
거 참 두 번쨋날 사진은 왜 찍었나 싶도록 민망한 화질이다. 따로 혼자 앉았어서 토요일보다 좋은 좌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질이 저러하다.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어요.;; 앞줄 중앙의 가장 크신 이재우 님을 중심으로 보기에 왼쪽에 계신 분이 신승원 님. 그리고 맨 왼쪽에서 네 번째ㅡ얼굴을 식별할 수 없지만 일단 뽀얀 얼굴의ㅡ푸른색 바다 복장을 한 분이 박슬기 님이다.
7일 공연에 대한 어지간한 후기는 앞에 핑크색으로 덧붙였고, 7일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던 신승원 님과 박슬기 님 연기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고자 한다. 두 분은 각각 허난설헌과 바다 솔리스트 부분을 교차하여 연기하셨다.
<허난설헌>
박슬기 님: 6일에 보았던 박슬기 님은 길쭉길쭉한 몸매 덕분인지 처연한 느낌이 강했다. 전체적으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었는데, 박슬기 님의 연기로 인해 상상되는 허난설헌은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에게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고 행복하게 자란 '소녀'의 느낌이었다. 그러한 밝고 꾸밈없고 영민한 '소녀'가 결혼 후 사방에서 죄여오는 현실의 압박에 놀라 상처 받고는 홀로 힘겨워하다 물흐르듯 좌절하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꽤나 괜찮은 표현이었던 것이, 과연 허난설헌은 조선시대에 보기 드물게 여성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친정에서 자유롭게 자란 만큼, 여타의 여성들 보다는 확실하게 밝고 맑은 성품에,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에 차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내 여성에게 개방적이고 관대한 남성들을 대하고 자란 그녀가, 여성에게 더없이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남성 중심의 현실을 홀로 맞닥뜨렸을 때,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박슬기 님께서 연기하신 허난설헌은 마치 선녀와 같았다. 선하고 아름답고 예민한, 부서질 것 같은 소녀의 마음 그대로 이어진 곱디 고운 선녀. 실제로 허난설헌은 병약했다 하니, 그런 면에서도 연결이 된다 하겠다. 오열하는 부분에서는 몹시 격렬한 감정의 분출을 보여주시면서도, 섬세하고 깨어지기 쉬운 감성을 잘 표현해주셨다. 두 분 모두의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기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신승원 님: 7일에 보았던 신승원 님은 크지 않은 체구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신기한 분이었다. 동작이 빠르고 에너제틱하다. 박슬기 님과는 꽤 다른 연기를 보여주셨는데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한 아이를 뱃속에서, 그리고 두 아이를 돌림병으로 잃은 이후의 허난설헌 같았달까. 그 이유는 '분노' 때문이다. 신승원 님의 절규에는 '분노'와 '공포'가 서려 있었다. 다른 것 다 접어도 자식 만은 지키고 싶었는데, 그 자녀들까지 죽음에 빼앗겨 버린 어미로서의 허난설헌. 그 이후 그녀에게 남은 시적 재능은 어쩌면 자신을 이 모든 비극으로 몰아 넣은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그녀에겐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지키고 싶은 시적 이상이, 동시에 자신으로 하여금 여염집 아낙처럼 행복하게 살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모순을 끌어 안고서 마침내 신선의 세계, 즉 시적 이상의 세계로 걸어들어가기로 한 허난설헌의 결정에는 붉은 피가 알알이 맺혀 있다. 신승원 님의 연기가 조금만 더 진해진다면 어마어마한 감동을 불러 일으킬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바다 솔리스트>
신승원 님: 6일은 처음 본 것이어서 공연의 흐름 따라가기에 바빠 잘 감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땐 이 분이 신승원 님이신 것도 몰랐는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2장 바다의 처음 등장 신에서 숙인 허리로 바닷물의 출렁임을 표현해 주셨을 때, "아! 바다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박슬기 님: 7일 공연에서 박슬기 님이 바다 솔리스트로 등장하셨다. 의외로 깜짝 놀랐는데, 춤이 '쫀득쫀득'했다? 다른 분들과 똑같은 동작을 하시는데도 박슬기 님께만 눈길이 갔을 정도로, 쫀득하게 매력적인 춤을 추셔서는 뜻밖에 질감이 느껴지는 무용을 보았지 뭔가.
개인적 취향으로는 박슬기 님의 연기가 즐겁다. 보기에 좋고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발레에서 기대하는 '몽환적인 세계로의 여행'에 적합한 연기였다. 이처럼 박슬기 님의 연기가 눈과 마음에 즐거운 것이었다면, 신승원 님의 연기가 건드리는 부분은 뇌였다 할까. 생각에 잠겨 분석하기에 즐거운 연기였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이토록 멋진 공연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냈다니 참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이처럼 젊은 안무가들을 독려, 육성하시는 강수진 단장님께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작품은 한 해만 공연하기엔 아깝다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국립발레단과 예당 관계자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참, 그리고 네이버 생중계는ㅡ늦게 알아서 못 보았...ㅠㅡ유툽에 풀어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즐거이 감상하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