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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오네긴 Onegin by 유니버설발레단 UBC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황혜민, 엄재용 은퇴공연: 축복된 이별 "발레해줘서 고마워♥"

by Vanodif 2017. 11. 25.







유니버설 발레단 홈페이지: http://www.universalballet.com/korean/index.asp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0229



발레 <오네긴> 설명: http://vanodif.tistory.com/1073




시놉시스


1막


1장 <라리나 부인의 정원>


타티아나는 정원에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생일 파티에 입을 드레스가 완성이 되자 쾌활한 여동생 올가가 타티아나에게 옷을 권한다. 하지만 타티아나는 관심이 없다. 곧 마을 처녀들이 나타나고, 타티아나는 거울을 통해 결혼할 남자를 보는 러시아 여성들의 전통 놀이인 '거울점'을 본다. 타이아나의 거울 너머로 오네긴이 나타난다. 오네긴은 젊은 시인 렌스키의 친구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생활에 권태를 느껴 찾아온 이지적이고 세련된 청년이다. 평소 사랑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던 타티아나는 첫눈에 오네긴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다.


2장 <타티아나의 침실>


첫사랑에 빠진 순진한 타티아나는 오네긴을 생각하며 연애편지를 쓰지만 잘 써지지 않는다. 편지를 쓰다가 잠이 든 타티아나는 거울에서 나타난 오네긴과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꿈에서 깨어나 벅찬 감정으로 편지를 완성한 타티아나는 유모를 통해 오네긴에게 편지를 전한다. 




2막


1장 <타티아나의 생일파티>


타티아나의 생일에 초대받은 귀족들로 가득하다. 이미 시골 생활에 싫증난 오네긴은 한쪽에서 혼자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타티아나는 그런 오네긴의 주위를 계속 맴돈다. 끝내 참지 못한 오네긴은 냉정하고 매몰차게 그녀가 보는 앞에서 편지를 찢어버린다. 실의에 빠진 타티아나 앞에 그레민 공작이 나타나 춤을 청한다. 한편 오네긴은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친구 렌스키의 약혼녀 올가에게 접근하여 렌스키의 질투심을 유발한다. 렌스키는 오네긴에 대한 배신감과 올가의 가벼움에 이성을 잃어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2장 <결투>


늦은 밤, 타티아나와 올가는 분노에 싸인 렌스키를 만류하지만, 렌스키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감행한다. 오네긴도 설득해 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네긴의 총에 맞은 렌스키는 두 자매의 눈 앞에서 숨을 거두고, 타티아나는 오네긴을 분노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네긴은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실수를 깨닫고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3막    


1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세월이 흘러, 인생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오네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그레민 공작의 무도회에 초대된다. 지난날 방탕한 자신의 허상이 스쳐간다. 아름답고 품위있는 그레민 공작 부인이 그 옛날에 자신이 거절했던 타티아나임을 깨닫고 후회한다.


2장 <타티아나의 침실>


오네긴으로부터 뒤늦게 사랑의 편지를 받은 타티아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때마침 그레민이 찾아와 출장을 떠남을 알리고 타티아나는 그와의 신의를 지키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레민이 떠나자 몰래 숨어든 오네긴이 타티아나 앞에 나타나 매달린다. 타티아나 역시 첫사랑의 감정에 동요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저버릴 수 없다. 오네긴의 간절한 사랑을 어렵게 뿌리친 후 타티아나는 엇갈린 운명에 목놓아 울부짖는다.

ㅡ 프로그램북 발췌




소설과는 좀 다르네... 좀 더 극적인 면이 부각되었다.




발레 <오네긴>의 비교 감상 포인트


1막 거울 파드되 vs 3막 회한의 파드되


1막과 3막에 선보이는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파드되는 단연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 1막이 오네긴을 짝사랑한 타티아나의 간절한 바람이 그녀의 꿈 속에 투영된 춤이라면, 3막은 성숙해진 타티아나를 사랑하게 된 오네긴이 사랑을 갈구하고 첫사랑의 감정에 휘말린 타티아나가 내적 갈등, 속에 함께 추는 파드되이다. 1막 '거울 파드되'는 오네긴의 어깨 위에 타티아나의 몸을 기대게 하고 한 바퀴 돌려 들어 올리거나 한 손으로 타티아나를 높이 들어올리는 등 고난이도 테크닉으로 고조된 여주인공의 감정을 한껏 느끼게 해준다. 특히 3막 '회한의 파드되'는 정형의 틀을 완벽히 벗어난 몸짓 언어의 결정판으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뒤에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거나 서로의 몸을 뒤엉켜 하늘을 향한 채 누워있는 등 온몸을 다해 타티아나의 애증과 갈등, 오네긴의 구애와 집착을 표현한다. 현실을 택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떠나 보내며 객석을 향해 두 팔을 내밀고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기는 명장면이다.



2막 타티아나의 고백 편지 vs. 3막 오네긴의 고백 편지


2막에서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사랑을 거절하며 편지를 찢어버리는 장면과 3막에서 타티아나가 오네긴의 구애의 편지를 거절하는 장면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3막에서 오네긴을 향한 첫사랑의 감정이 남아있음을 깨달은 타티아나가 내적 갈등에 직면하다 결국 현실을 택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심리 변화는 주역 무용수들의 깊이 있는 연기와 고난도 테크닉이 함께 어우러져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ㅡ 프로그램북 발췌




* 이번 프로그램북은 다른 때의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황혜민 엄재용 님의 자필 편지와 두 분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 은퇴기념 자서전 같기도 하니, 소장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 외 이 작품에 대한 다른 무용수분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으니, 무용수분들께서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1만원이니 웬만하면 기념도 될 겸 구입하기를 권합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오네긴>은 11월 초에 있었던 국립발레단의<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드라마 발레'여서 분위기나 몇몇 특징이 비슷했다. 일단 낭만/고전 발레에서 극의 스토리에 상관 없이 무용수 개인의 기량을 뽐내는 디베르티스망이 없고, 감정의 연기가 중요한 만큼 배경 또한 화려하지 않고 줄거리의 분위기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절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푸에떼 32회전이나 높은 점프 처럼 '화려한 기술'은 없으나 은근 리프팅이 많고, 또 2-3인무가 정교하고 복잡하여 섬세한 동작이 이어지니만큼 집중도 있는 감상이 요구되었다. 그런데 드라마라 그러한가, 정작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도록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몰입도가 독특했다. 낭만/고전 발레에서처럼의 전통적인 발레 마임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끊어지지 않는 스토리라인과 무용수분들의 표현에 의해 충분히 대사가 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점으로 인해 무용수 개인의 표현력이 빛날 수 있는 장르인 것 같다. 


무대: 간결했다. 문 단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미니멀리즘적으로 표현된 무대에서 1막의 잎이 푸른 나무는 타티아나의 사랑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2막의 헐벗은 겨울나무는 타티아나의 절망과 비극을, 그리고 3막의 기둥들은 어긋난 사랑과 단단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한다. 예당 오페라극장의 넓은 무대를 폭으로 갈라 이중으로 무대를 설치함으로써 춤추는 공간을 비교적 좁게 사용했는데, 그래서 군무에는 무대가 다소 좁다는 인상이 들긴 했으나, 인물들의 감정 연기에 집중하기에는 훨씬 좋았다. 좋은 무대장치였다 생각한다.


조명: 조명은 잘 모르겠다. 다만 발레에서의 조명은 다른 어떤 장르에서보다 힘들지 않을까 싶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무용수분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하니 만큼 조명 조종 기술이 뛰어나신 것 같다.


의상: 발레 무대의상 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1막에서는 순수한 시골 아가씨들의 단순하면서 하늘거리는 의상이 순박하면서도 아름다웠고, 3막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의 의상은 화려해서 분위기와 잘 맞았다.


안무: 안무가 상당히 좋던데? 다소 동작의 반복이 있긴 하나, 2인무와 3인무가 많아 인물 간 감정의 교류가 잘 표현되었다. 드라마 발레이니 만큼 화려한 회전이나 점프는 없더라도, 이 또한 인체의 구조를 이용한 섬세한 2인무가 많아서 보기에 즐거웠다. 그러면서 고난도의 리프트가 은근 많았는데, 특히 거울 파드되에서 한 발로 선 타티아나를 오네긴이 들어 올리는 장면과 등에 기댄 타티아나를 한 손으로 붙잡고 등으로 리프트하는 등의 동작들은 아찔했다. 


압권은 군무였다. 이 발레는 오페라극장 3층이나 4층에서 보기에도 썩 좋은 것이 바로 이 군무 때문이다. 4층 관람의 단점이 점프의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것이고, 최대 장점이 전체 군무의 대열 이동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 상대적으로 점프가 많지 않고 군무의 대열 변환이 훌륭한 존 크랭코의 <오네긴> 안무는 그런 면에서 4층에서 감상하기에 손해보다 이익이 많은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유니버설의 군무가 훌륭한 이유도 있지만.








아무래도 황혜민, 엄재용 님 은퇴공연인 만큼 두 분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은퇴공연이라 생각하고 보아선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슬프고 비장했다. 


황혜민 타티아나: 말해 뭣하나. 모든 것이 완벽한 발레리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벼움과 유연성, 봉긋하게 예쁜 고(굽은 발등), 그리고 포인 상태로 잔뒷걸음질 칠 때 그 발등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물결. 조그만 얼굴, 작은 키에도 가늘고 긴 팔다리. 이처럼 완벽한 신체조건 외 심지어 연기력까지 탁월하니, 황혜민 님은 그야말로 발레에 최적화되신 분이란 생각을 늘 하곤 한다. 물론 본인의 엄청난 노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겠지만. 해서, 황혜민 님의 은퇴소식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황혜민 은퇴를 반대합니다. 황혜민 은퇴 철회를 지지합니다. ㅜㅠ


'소녀'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이 황혜민 님이다. 순수하고 가녀린 모습. 그러면서도 애절한 연기 또한 누구 못지 않게 해내는 표현력이 좋은 분이다. 풍부한 감수성으로 맡으신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절절하게 표현해내는 분. 그 엄청난 가벼움을 대체할 무용수가 전무한데 은퇴하시면 어떡한단 말인가. 대체가 불가능한 무용수이신데. 황혜민 님 때문에 요즘 우울합니다.


보통 '지적인 사람'이라 하면 성별 불문 큰 키에 늘씬한 체형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현실을 둘러 보면 지성은 사람의 키나 체형에 상관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담한 키의 황혜민 님 역시 발랄하고 가녀린 역에는 더없이 완벽한 이미지를 지니고 계시지만 언뜻, '지적인 타티아나에 잘 어울리실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더랬다. 그리고 그 의문은 황혜민 타티아나를 보고는 명확하게 해결되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는다 해서 다 똑같은 분위기를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격에 따라 다른 점도 크지만, 읽는 책의 종류에 따른 분위기도 없진 않다고 본다. 책을 많이 읽되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과 철학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분위기가 같을 리 없다. 그리고 소설 내에서도 연애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과 전후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이 내는 분위기는 확실히 다르다. 이 발레의 원작인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등장하는 타티아나는 혼자 소설을 주로 읽는 아가씨로 등장한다. 그리고 황혜민 타티아나에게서는 연애소설도 읽지만 예술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을 많이 읽은 아가씨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영민하달까.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고 기민하게 인식하는, 감각이 벼려져 있는 아가씨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곧 있을 토요일 저녁 공연에선 어떤 느낌이 전달될지 기대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벼움. 엄재용 오네긴이 번쩍 안아 올렸을 때 마치 종이로 된 인형을 들어 올리는 것마냥 가볍게 쑤욱ㅡ하고 올라가던 모습에 '역시 황혜민!' 싶었다. 아... 그 모습을 유니버설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없다고? ㅜㅠ 그리고는 있었던 오네긴과의 파 드 되에선 평소 황혜민 님의 부드럽고 가녀린 몸짓과는 다르게 아주 힘찬 동작을 보여주셨어서 깜짝 놀랐다. 어려운 동작이 많던데 힘드시겠던. 그리고는 1막 1장이었나 2장이었나, 끝에 뒷걸음질 칠 때의 발등 웨이브. 이번 <오네긴>에선 발등 웨이브를 볼 수 있는 장면이 많아서 황홀했다.


3막 1장 그레민 공작과의 파드되에서 공작 팔에 안겨 뒤쪽으로 끌려가며 다리를 팔랑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황혜민 님은 그냥 천조각을 바람에 펄럭이듯 하체가 팔랑거리는 바람에 도무지 인간으로서의 물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황혜민 님의 뼈와 살은 공기로 이루어져 있고, 혈관에는 기름이 흐르고 있음에 틀림 없어. 



엄재용 오네긴: 엄청난 체중감량이 한 눈에 띄었던 엄재용 님은 몹시 샤프하고 날렵하고 어려지셨다. 20대 중반이라 해도 믿겠을 정도로 멋져지셔서 프로그램북이나 유니버설 홈피의 대표사진과 매치가 안 될 정도로 달라지신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선지 동작도 훨씬 가벼워지셔서 눈이 즐거웠다. 다만 첫공이어선지(앞으로 두 번이나 더 남았으니) 좀 조심을 하시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어려운 공중 2회전을 곧고 깔끔하게 잘 해내셨다.


금요일의 엄재용 오네긴은 내도록 근엄하고 비장한 분위기였다. '댄디'한 젊은 남성이긴 한데 나쁜 남자스러웠달까. 냉정함이 인상적이었으며 내내 절제미가 돋보였다. 


황혜민 님이야 누구와도 훌륭한 호흡을 보여주시지만, 특히 엄재용 님과는 누가 부부 아니시랄까봐 완벽한 찰떡궁합을 보여주셨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자석이라도 붙어있는 것처럼 쫀득쫀득한 관계가 느껴져서 보는 입장에선 굉장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분의 호흡을 유니버설에서 더는 볼 수가 없다구요? 앙대... ㅜㅠ 황혜민, 엄재용 님 은퇴에 반대합니다. 엉엉.



한상이 올가: 한상이 님은 사진에서 본 얼굴은 눈에 익는데 이름이 낯설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기억할 것 같다. 한상이 올가는 산뜻했다. 점프 같은 낮은 리프트 동작에서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결과적으로 무게감이 적게 느껴졌다. 바닥에 닿는 시간과 발의 면적을 최소화한 것 마냥 아주 사뿐사뿐한 느낌. 하필 함께 연기한 분이 황혜민 님이어서 독보적인 가벼움은 양보하셔야 했지만, 동작이 상당히 가볍고 산뜻하셔서 보는 내 기분이 좋아졌다. 막공연에서도 한상이 올가를 볼 테니 더욱 기대가 된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렌스키: 콘스탄틴이 조연이라니... 음. 일단 처음엔 그의 금발이 보이지 않아서 그가 아닌 줄 알았다.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을 줄은 몰랐거든. 시작 전 황혜민, 엄재용 이름만 보고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캐스팅은 기억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그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동작이... 콘스탄틴 특유의 낭만이 동작에서 묻어나오지 뭔가. 지난 번 마린스키 지그프리드처럼 넘쳐 흐르는 낭만이 아니라, 콘스탄틴의 낭만은 참 적절한 만큼 우아한 낭만이어서, 그의 동작을 보다가 '어? 콘스탄틴인데?' 했더랬다. 인터미션 때에야 프로그램북을 보고는 '역시 콘스탄틴이었네' 했다. 콘스탄틴의 가볍고 높은 점프를 즐길 만한 안무는 없었지만, 그의 동작은 언제 보아도 깔끔하고 로맨틱하다. 3막 회상 장면에서 죽었던 렌스키가 다시 일어나 유우령... 아니고, 오네긴과 다시 결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무대 앞쪽에서 쓰러진 콘스탄틴의 자태가 얼마나 우아하던지. 쓰러져 누워 있는 자세에서조차 낭만을 뿜어내는 콘스탄틴의 위력이란!



데니스 자이네티노프 그레민 공작: 황혜민ㅡ이재우 커플에 대한 내 갈증을 그나마 채워준? 데니스가 고마웠다. 데니스의 손에 걸린? 황혜민 타티아나는 그냥 구름조각 내지는 솜뭉치, 아니, 그것도 아니고 하얗고 깨끗한 먼지 뭉치가 되어서는 훌쩍 훌쩍 하늘로 솟아 올랐다가 이리저리 팔랑팔랑거려서 보는 내 마음이 선득선득했다. 아 참, 데니스 그레민은 타티아나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다. 3막 2장에서 가기 전에 자신을 껴안는 타티아나를 보며 "왜 그래요?"하며 묻듯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이 정중하고 고상하면서도 다정하고 따뜻했다.



코르 드 발레: 1막 1장 마지막 장면에서 두 번 사선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압권이었는데, 8커플이었나 12커플이었나, 암튼 그 커플이 똑같은 높이, 똑같은 보폭, 똑같은 박자로 달려가면서 점프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첫날에는 이 장면에서 뒤의 무용수분들이 너무 잘 맞추셔서 설렜는데, 둘쨋날인 토요일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딱딱 맞추어서 큰 박수가 터졌다. 역시 유니버설은 군무가 좋아.


그 외에도 군무가 훌륭했다. 전체적으로 매력적인 대열 이동이 많아서 3-4층에서 보기에 즐거웠다. 밧줄을 묶었다 푸는 듯한 대열도 좋았고. 1막 1장에서의 남성 군무도 시원스럽게 딱딱 맞아서 좋았는데, 1, 2, 3막 모두 파티 장면에서의 군무가 너무나 즐거운 공연이다. 















강미선 타티아나: 강미선 님에 대해 '청순하다'는 평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게는 아직 강미선 님의 춤에 대한 인상이 또렷하게 박혀 있지 않다. 그래서 오늘 공연을 기대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잘은 모르겠다. 한 눈에 특징이 분명하게 잡히는 무용수가 있나 하면, 보면 볼수록 고유한 특징에 빠져들게 되는 무용수도 있다. 강미선 타티아나의 성격은 한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순하고 착한 타티아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럽고 고아하며, 착한 심성을 지닌 아가씨. 말하자면 추리소설 보다는 잔잔한 에세이나 힐링서적을 주로 읽었을 것 같은 아가씨였다. 오네긴에게 거절당한 직후 파티에서 그레민 공작과 춤을 추는 장면에서, 시종일관 오네긴을 쳐다보는 그녀의 그 순수함에 내 마음이 다 설렜다. 그 부분에서 '아! 이래서 강미선 님이 청순하다는 거구나!' 싶었다. 확실히 청순하시던.



이현준 오네긴: 이현준 님은 내 귀에는 낯선 이름이다. 이는 내가 아직 무용수분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고, 특히 남성 무용수분들은 더욱 모르기 때문인데, 그래서 어떤 분일지 궁금했다. 토요일 낮공연에서 이현준 오네긴은 상당히 매력적인 면모를 보여주셨는데, 차갑고 냉정한 댄디함을 선보이신 엄재용 오네긴에 비해, 이현준 오네긴은 부드러운 댄디함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현준 오네긴의 부드러움이란 것이 좀 오묘한 것인데... 일행은 그를 두고 '힘차다, 강한 이미지다'라 평을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여성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남성에겐 거칠다, 는 느낌이어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네긴의 특징이 바람둥이와 댄디함인데, 엄재용 님은 그것을 나쁜남자 버전으로 표현하신 것 같다면, 이현준 님은 제대로 바람둥이 같아 보였다. '모든 여성은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라는 지론이라도 갖고 있는 것처럼 함께 춤추는 여성들과 다정하게 시선을 맞추는 그는 영락없는 바람둥이 댄디보이였다. 1막에서 타티아나를 만났을 때도 이현준 오네긴은 타티아나를 기품 있으면서도 다정하게 대했는데, 과연 그런 부드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소중히 다루어주는 남성을 만난다면 어느 여성이라 해도 마음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리고 타티아나 역시 그런 다정함에 설렘을 느꼈으리라. 


존 크랑코의 발레 상으론 오네긴이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표현되었지만, 내가 읽은 푸쉬킨의 책에서 오네긴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타티아나의 순수함에 그는 마음이 흔들렸으며, 그 순수함을 좋아했다. 다만 자유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으로 타티아나를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현준 오네긴은 내가 책에서 받은 예브게니 오네긴의 인상과 닮았다. 해서 개인적으로 이현준 오네긴이 흥미로웠다. 발레에서 타티아나를 거절할 때도 딱히 냉정해서라기 보다는 그녀의 마음을 단념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냉정한 태도를 보이려 애쓴 것 같아 보였다.


3막에 가서는 순수한 열정에 사로잡힌 오네긴이 되어 타티아나에게 열렬한 마음을 고백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2막 결투 신청을 받는 장면에서는 세상 거칠게 반응하는 모습에서, 남성에겐 강하고 여성에겐 부드러운 오네긴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 묘한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김나은 올가: 음... '밝은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금요일의 한상이 님과 마찬가지로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가볍고 밝고, 아 참, 속상해하는 렌스키를 두고 오네긴과의 춤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철없는 올가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간토지 오콤비얀바 렌스키: 금요일의 콘스탄틴 렌스키에 비하면 남성적인 면이 돋보였다. 

















전체적으로 어제 공연에 비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군무는 말할 것도 없고 엄재용 님께서 특히 더 편해지신 것 같았다. 



황혜민 타티아나: 황혜민 님은 어제도 완벽했고 오늘도 완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몸이 자유로우셨던 모습이 보기에 편안했다. 하지만... 내내 계속 슬펐지는. 모르겠다. 보는 내 눈이 슬펐던 건지도. 오늘은 오페라글래스를 대여해서 보았는데, 보는 내내 황혜민 님의 아름다운 발등에 시선이 꽂혔더랬다. 그 엄청난 고를 이제는 못 본단 말인가 싶고. 아... 생각하니 또 슬프다. 그리고 그 엄청난 가벼움에 오늘도 솜털마냥 이러 퐁 저리 퐁 날아다니셔서는, 하늘로 날아 오르실 때마다 내 맘이 심쿵, 설렜다. 3막 2장 회한의 파드되에서 누워있는 상태에서 오네긴의 손을 붙잡아 일어나면서 점프하는 장면이 있는데, 황혜민 님은 '누웠다ㅡ앉았다ㅡ일어섰다ㅡ점프했다'의 과정이 다 생략된 채 마치, '누웠다ㅡ날았다'의 단계 뿐인 것처럼 폴짝, 하고 날아 오르시는 모습에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아무리 생각해도 황혜민 님 은퇴는 반대합니다. ㅜㅠ 


일행의 평을 덧붙이자면, 2막에서 오네긴의 거절을 받았을 때 황혜민 타티아나는 소녀처럼 얼굴을 감싼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지만, 3막에서 오네긴이 절망 속에 뛰쳐나가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두 팔을 비장하게 아래로 늘어뜨림으로써 체념하는 듯한 울음을 보여주셔서 그 섬세한 연기에 감탄했다고 한다.



엄재용 오네긴: 와... 오늘 엄재용 오네긴 멋졌다! 엄재용 님의 매력을 이렇게 절감한 건 처음인 듯 싶은데. 몸이 가볍기도 하시지만, 회전이 정확하고 동작선이 굉장히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그 깨끗함이 오네긴의 댄디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건 지난 ,백조의 호수>였나... 그 공연 때도 살짝 느꼈던 건데, 엄재용 님은 서포트가 아주 좋으시다? 황혜민 님이고 홍향기 님이고, 엄재용 님과 호흡을 맞추실 때면 유독 편해 보이고 안정된 점프를 하신다. 그것이 노련미일까. 여태껏 엄재용 님의 매력을 잘 몰랐더랬는데, 오늘 공연만 같아서는 앞으로 계속 더 보고 싶은 춤이었다. 눈이 시원해지도록 깨끗한 동작이 근사한 춤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북의 설명을 읽어 보니, 엄재용 오네긴은 유니버설에서 표현하기로 한 바로 그 오네긴을 그대로 표현해주신 느낌이 들었다. 오만하고 세련되고 나른하면서 냉정하고 이기적인 오네긴. 내가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소 다른 느낌이긴 한데, 엄재용 오네긴은 그러한 차가운 댄디함에 썩 잘 어울리는 멋진 연기를 해주셨다. 어떡하지... 계속 보고 싶은데.



홍향기 올가: 향기 님 특유의 파워를 사랑한 나는 '힘향기 님'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번 <오네긴>에서는 그 지극한 파워나 뛰어난 기술의 정확함을 뽐낼 만한 마땅한 장면이 없었다. 다만 누구보다 '쾌활함'을 뿜어내셨는데, 꼬인 곳이 없고 시원시원한 성격과 동시에 우아한 자태를 지닌 올가를 표현해 주신 것 같았다. 동작이 정확하여 보기에 편안한 것도 홍향기 님다운 장점이고. 다소 철없긴 하나 악의 없는 홍향기 올가는 보기에 유쾌했다.



마밍 렌스키: 오늘 저녁 공연을 기다렸던 이유 중 하나가 마밍이었다. 지난 <백조의 호수>때의 지그프리드가 인상적이었어서, 마밍 렌스키는 어떠할까, 일행과 함께 몹시 기대했었다. 마밍 렌스키는 아니나 다를까 기품있었다. 마밍 왕자님이지 말입니다. 마밍의 동작에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동작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그의 중심이 수직으로 묵직하게 서있기 때문이다. 점프는 높고 회전은 빠른데, 안 그래도 긴 팔다리를 가능한 길게 사용해서는 동작이 시원스럽다. 그러면서 상체의 무게중심이 단단해서 시원한 동작이 기품있게 느껴진다. 렌스키의 솔로에서 마밍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아...! 정말 근사하구나 싶었다. 다만... 엄재용 님과 비교가 되어선지 모르겠으나, 상대적으로 파드되는 솔로 만큼은 빛나지 않았다ㅡ가 아니라 솔로가 아주 빛났다, 가 맞는 말이겠다. 참, 렌스키 독무에서 마밍만 반대 방향으로 두 번 쓰러졌다? 다른 분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러졌는데, 마밍 렌스키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면서 일행이랑 "응??" 하며 의아했던. 오른손잡이ㅡ왼손잡이인 겁니까? 무튼 발레 감상에 있어서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그 설정은 거의 모든 공연을 다 본 우리 같은 관객에겐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둘이서 인터미션 내내 물음표 날리다가 남몰래 키득거렸거든. 근데 대체 이유가 뭘까뭘까? 암튼 연말 <호두까기 인형>때 마밍 호두까기를 볼 수 있겠지. 벌써 기대된다.



알렉산드르 세이트칼리예프 그레민 공작: 일행은 '힘이 좋아서 리프트가 힘찼다'는 평을 했는데, 나는 다른 무용수분들 보느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3막 2장의 장면에서 앞의 두 그레민 공작들과는 다르게 타티아나를 살짝 의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근엄한 그레민 공작 같았다.


















너무 많이 울었다. 문 단장님 우시는 바람에...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 나 참. ㅜㅠ 

공연 내내 울었어서 넘 피곤해 후기 못 쓰겠다. 내일 괜찮으면 쓸 예정.

황혜민, 엄재용 님. 수고 많으셨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발레해줘서 고마워♥














공연장에 가기 전에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아마도 유니버설에서 은퇴 이벤트를 준비해 주었으리라고. 그리고 도착한 공연장에는 이렇게 슬로건이 좌석마다 끼워져 있었다. 다만 슬로건 뒷면에 있는 지시사항 중 '자막기에 슬로건을 들어주세요가 나오면 들어달라' 적혀 있었는데, 막상 화면에는 '슬로건을 들어주세요'라는 문구가 뜨지 않아 사람들이 우왕좌왕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으나, 황혜민, 엄재용 님을 아끼는 한마음으로 엮일 수 있는 자리가 되어서 고맙고 기뻤다.







사실상 어제의 막공 소감은 자세히 쓰기 어렵다. 우느라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 전, 마지막 은퇴공연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감상할 요량으로 오페라글래스도 빌리지 않고 다짐을 했더랬다. 오페라글래스가 손에 있으면 아무래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대 위에서 전체적인 동작을 감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유니버설에서의 마지막 무대 위 황혜민 님을 그녀의 동작으로 오롯이 기억하고 싶었다. 또한 울게 되면 시야가 방해를 받으니 절대 울지 않으리라 마음 단단히 먹었더랬는데, 시작 전 작품 설명에서 문 단장님께서 울먹이며 눈물을 터뜨리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시작도 되기 전에 눈물이 터져 버렸다. 2층에서 감상했던 hy 씨 말에 따르면 2층에서는 hy 씨 혼자 남몰래 훌쩍였다 했는데, 층별로 다른 것인가? 3층은 눈물바다였다. 물론 엉엉 우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훌쩍 훌쩍. 슬쩍 둘러보니 남녀를 막론하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1막에서 훌쩍임이 많았다가, 2막에선 그쳤다. 그러다 3막이 되고, 엄재용 님의 마지막 솔로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다시 훌쩍훌쩍. 그 다음 이어지는 황혜민-데니스의 파드되에선 훌쩍임이 많아지더니, 마지막 황혜민-엄재용의 회한의 파드되에선 더 많이 퍼졌다. 나 역시 2막의 조금을 제외하고 황혜민 님이나 엄재용 님만 보면 눈물이 터졌는데ㅡ는 그 두 분이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ㅡ, 커튼콜 때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환호를 지르고 싶었으나, 너무 울어 목이 잠겨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두 분의 마지막 공연, 너무 아름답고 슬퍼서는. 공연을 보면서 이렇게 많이 운 것은 처음이었는데, 프로눈물러?답게 휴지를 든든히 준비하고는 가능한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연 내내 코를 막고 감상했다. 이래서 슬픈 것이 싫어요, 나는. 슬픈 영화도 싫고, 경연 프로그램에서 감성팔이 스토리 나오는 것도 혐오한다. 울기 싫다고. ㅠ


눈물 때문에 제대로 감상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절절하도록 아름다웠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우선 문 단장님. 우리의 아름답고 우아하신 문 단장님. 언제나처럼 친절하고 기품있는 해설은 감상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문 단장님께서 황혜민 님과 엄재용 님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인터뷰를 통해 보았어요. 그런 부드러운 마음으로 유니버설 발레단 무용수분들을 아끼고 품어주시는 거겠죠. 문 단장님으로 인해 유니버설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사랑합니다♥. 


유니버설 스케줄에 따르면, ACC브런치 콘서트에 문 단장님께서 해설을 해주신다셔서 브런치인데도 무리해서 가려고 했더니, ACC가 전라도 광주에 있는 곳이었다...?? 포기. ㅠ 광주에 사시는 분들 부럽군요. 시간 되시면 참석해 보셔요.


이제 무용수별 감상.




황혜민 타티아나: 눈물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 황혜민 님의 동작 하나하나에 모든 힘과 에너지가 실려 있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모든 포인 동작에서 발끝까지 절절하게 집중하여 볼록한 고가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고 또렷하게 드러나는 것에서, 마치 '원껏 발등을 보여주려 작정하신' 것만 같아 보였다. 덕분에 나는 황홀했지만 계속 슬펐어. 젠장, 지금도 눈물이 나네. ㅠ


거울 파드되에서 엄재용 님께 안겨 대각선으로 휘도는 회전은 그 작고 가녀린 몸에 상상도 못하리만치 스피디하고 힘차게 커다란 원을 하얗게 그려주셔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아름다웠단 뜻이다. 오네긴에게 거절 당하기 직전 냉정한 그의 태도에 어리둥절해 하던 그 표정이 가슴에 이렇게 박혀 있고, 거절 당한 후 두 손에 얼굴을 문자 그대로 파묻은 채 흐느끼던 그 모습도, 황혜민이라는 이름 만이 만들어내는 가녀림과 애절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3막 1장 그레민 공작과의 파드되에선 이 또한 솜털인형처럼 사뿐하게 리프트되었는데, 그 장면부터 흐느낌이 여기저기 번져갔다. 그 독보적인 가벼움을 이제는 유니버설에서 볼 수가 없다니. 아... 자꾸 눈물이 나네, 후기 써야 하는데 불편하게. ㅠ 그리고 3막 2장 회한의 파드되.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재용 님의 두 팔에 온몸을 '던지는' 황혜민 님. 마지막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필사적이고 절절해서 보는 마음이 찢어졌다. 아주 눈물바다가 되었고. 어쩌면 그토록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전력을 다 하실 수가 있을까. 황혜민 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셨지만, 회한의 파드되에선 최선 이상으로 존재를 다 하셨다. 팔을 뒤로한 채로 서서 앞으로 걸어가는 황혜민 타티아나와, 그런 그녀 뒤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 팔을 붙잡고 끌려가며 애원하는 엄재용 오네긴을 보면서, '오네긴의 그 마음이 바로 지금의 내 마음이에요. 가지 말라고, 은퇴하지 마시란 말이에요!' 소리치고만 싶었다. 그런 오네긴에게 마음이 크게 흔들리던 타티아나, 그리고 결국 오네긴과의 이별을 결정하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 그녀를 붙잡고 싶은 팬들과 이별을 결정한 자신을 표현하신 것만 같아 맘이 너무 속상하고 아팠다. 하지만 마지막 무대에서 그녀가 온 존재를 다해 표현해준 타티아나는 더할 수 없이 완벽했다. 수고 많으셨어요, 황혜민 님. 황혜민 님과 엄재용 님 닮은 사랑스런 2세 꼭 가지시길 바랍니다. 정말 발레해주어서 고마워요. 덕분에 발레의 아름다움을 충만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엄재용 오네긴: 동작의 깔끔함이 돋보이는 춤. 깨끗하고 단정한 춤. 군더더기 없는 감정선. 그리고 회한의 파드되에서는... 엄재용 님 역시 온몸을 던져 연기를 하셨다. 덕분에 마음은 더욱 아프고. 두 분의 모든 것을 다한 춤 덕분에 작품의 비극성은 고조되었고, 두 분이 빚어낸 비극의 회오리로 관객들은 휘말려 들어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장면. 폭풍치는 비극. 멋진 은퇴공연을 해주신 엄재용 님. 고맙습니다. 안무가로서 또 다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실 것을 응원합니다.



주연 두 분도 간신히 보았는데 다른 분들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해서 한 번에 쓴다. 한상이 올가는 역시나 가벼웠다. 공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음을 일행도 확인해 주었는데, 일행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한상이 님도 가벼웠겠지만, 어쩌면 한상이 님을 들어 올린 콘스탄틴의 힘이 좋았던 건 아닐까?' 하는. 들어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콘스탄틴이 낭만적이면서도 힘이 좋지. 그리고 한상이 님의 가벼움과 기술 또한 한 몫 했음에 틀림 없다. 착지할 때 발동작을 유심히 보았는데... 닿는 자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았거든. 미끄러지듯 땅에 닿고, 닿자마자 미끄러지듯 이동하시는 동작을 보았는데, 그것 때문일지 다음 번에 다시 신경써서 보아야겠다. 암튼, 몹시 가볍고 동작이 아름다우셨다.


군무에서는 무용수분 개인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타티아나의 친구로 나오는(편지 부분에서) 분의 군무가 잠시 눈에 띄었더랬다. 언뜻 보았는데 춤의 선이 깔끔하고 아름다우셨다.


콘스탄틴 렌스키의 어디였더라... 1막 축제 장면이었던가? 암튼 특유의 가볍고 높은 점프에서 '역시 콘스탄틴!'하며 슬픈 중에 감탄을. 사실 이번 공연에서 '시인'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연기를 하신 분은 콘스탄틴이라 생각한다. 시인하면 낭만인데 콘스탄틴이 또 낭만이어서. 그의 절제된 낭만이 참 멋지게 어울린다 생각했다.


데니스 그레민은 첫공 때보다 더욱 타티아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거야... 아아... 




믿을 수 없었던 황혜민, 엄재용 님의 은퇴공연이 끝났다.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던 그 일이 마침내 일어나 버린 것이다. 두 분은 시원섭섭하실지 모르겠으나, 내게 시원은 없고 섭섭만 가득하다. 섭섭하고 서운하고 속상하고 안타깝고 그래. 하지만 두 분을 알뜰하게 챙겨주고 축복하며 보내주는 유니버설의 아름다운 이별회에 감동해 버렸다. 그래서 나도 축복하는 마음으로 두 분의 마지막 공연을 마음 깊이 간직하기로 했다. 실컷 울고 슬퍼했으니, 운 만큼 잘 보내드릴 수 있을 게다.


김지영 님과 이영철 님, 강미선 님은 부디 은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화려한 정점에서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내려오는 것도 멋지지만, 연기자들처럼 나이 들어가는 모습도 팬으로서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영철 님이 너무나 좋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그러다 단역으로. 후배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점점 자리를 양보하실 수 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몸이 움직이는 한ㅡ사실 알브레히트의 아버지 같은 역할은 걸을 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ㅡ무대 위에서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뒷받쳐주면서 끝까지 우리 관객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그러다 무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신다면, 관객들은 그들의 유령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지. 뭐, 죽음까진 아니라 해도, 가능한 오래, 우리와 함께 나이드시면서 관객과 호흡을 나누어 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아... 황혜민 님 은퇴가 주는 충격이 너무 크네... ㅜㅠ 어서 잊어야지.












문 단장님과 황혜민 님의 포옹.

두 분 얼마나 우셨을까. ㅠ






황혜민, 엄재용 두 분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발레 <오네긴>의 매력과 특징


발레 <오네긴>은 오만하고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과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영혼 타티아나, 오네긴의 친구 렌스키와 약혼녀이자 타티아나의 철없는 동생 올가까지 네 명의 중심인물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연극적 요소를 중요시했던 존 크랑코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캐릭터를 특성화시켰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주의 아래 무기력한 지식인이자 상류사회의 전형적인 잉여 인간 오네긴은 등장부터 남다르게 표현된다. 극의 초. 중반 오네긴은 시종일관 나른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긴 다리를 느릿느릿 뻗어가며 움직인다. 그리고 세련된 매너 뒤에 숨겨진 가식과 위선으로 충동적인 행동도 일삼는다. 반면 타티아나는 첫사랑의 마음을 주체 못하는 듯 오네긴의 주변을 종종걸음으로 맴돌며 사랑스럽고 순진하게 나온다. 크랑코는 이 사랑스런 소녀를 등장인물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로 만들었다. 타티아나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당하고, 여동생을 희롱하다 예비 매제인 렌스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오네긴과 일련의 사건 속에서 현실에 순응하고 이겨나가는 강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두 사람의 관계는 3막을 기점으로 역전된다.


발레 <오네긴>은 그랑 파드 되와 디베르티스망과 정형화된 마임 및 화려한 무대세트를 과감히 없앴다. 대신 클래식 발레의 낭만성과 고난도 테크닉 위에 등장인물 내면의 감정 변화를 담아낸 독무와 2인무(이하 파드 되 pas de deux)를 전면에 배치시켰다. 이러한 연극적 요소는 무언의 춤이 마치 대사처럼 들리게 만든다. 1막 '거울 파드되'는 거침없는 리프트와 점프로 첫사랑에 들뜬 타티아나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잘 표현했고, 이것은 3막 '회한의 파드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입장이 바뀐 오네긴의 애절한 구애에 흔들리는 타티아나의 복잡한 심정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1막과 3막의 파드되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선사한다. 연극적 요소는 주변인물의 움직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2막에서 오네긴과의 결투를 앞둔 렌스키의 춤은 아라베스크와 피루엣이 빠르고 느리게 반복되면서 복잡한 심경과 우울함을 대변한다. 또한 결투를 만류하는 타티아나와 올가와의 3인무(pas de trois)는 연속 던지기와 리프트의 반복으로 역동적인 시퀀스를 형성해 세 사람의 절망감과 극적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존 크랑코의 안무 특징 중 하나는 춤 속에 삽입된 정지 동작 기법이다. 이 동작은 인물의 특정 감정이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3막에서 '회한의 파드되' 말미에 열렬히 구애하는 오네긴에게 그가 그랬던 것처럼 편지를 찢어 오네긴의 손에 쥐어주고 '당장 떠나라'는 신호로써 팔동작을 정지화면처럼 구사한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그녀의 발 밑에 꿇어 앉아 옷자락을 붙잡고 처절하게 매달리는 오네긴의 감정과 대조를 이루고, 그가 떠난 후 주먹을 불끈 쥐고 오열하는 타티아나의 복잡한 심경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감정이입 시킨다.


그는 푸시킨의 원작 소설에 없던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거나 자신의 초연 안무에 있던 장면을 제거해서 더욱 극적인 발레로 만들었다. 오네긴과 타티아나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를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찢어 버리는 장면은 원작에 없었던 장면이다. 그리고 원작에서의 타티아나의 꿈은 악몽으로 표현되지만, 발레는 오네긴과의 사랑의 파드되로 설정해 소설보다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크랑코는 1965년 발표한 초연작에서 오네긴이 유산상속을 위해 시골로 내려와 삼촌의 임종을 지켜보는 프롤로그를 삭제했다. 또한 타티아나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굿나잇 키스를 하는 결말 대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오열하는 모습으로 바꿔서 임팩트 있는 결말을 만들었다. 

ㅡ프로그램북 발췌




오네긴 음악


1막 


1.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37a - February (Carnival)

2.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19 - No. 3 Feuillet d'album in D Major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51 - No. 2 Polka peu dansante in b minor

3.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February (Carnival)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January (At the Fireside)

   Impromptu in A-flat Major

4.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January (At the Fireside)

    *렌스키 독무 장면

5.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June (Barcarolle)

    * 올가-렌스키 2인무 장면

6.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February (Carnival)

7. The Caprices of Oxana aria from Opera <Cherevichki>

8.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19 - No. 4 Nocturne in c-sharp minor

    * 오네긴 독무 장면

9. Russian Dance from Opera <Cherevichki>

10. Russian Dance from Opera <Cherevichki>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February (Carnival)

11. Overture from Opera <Cherevichki>

12. Romeo and Juliet, TH 42, CW 39

    A Naiad Chorus, Oxana aria from Opera <Cherevichki>

    * 1막 2장 타티아나의 꿈 속 장면



2막


13.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51 No. 4 Nata-Valse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51 No. 6 Valse Sentimentale

14. 18 morceaux, op. 72 - No. 6 Mazurka pour dancer

    3 morceaux for Piano op. 9 - No. 3 Mazurka de salon

15. 18 morceaux, op. 72 - No. 3 Tendres Reproches

16. 3 morceaux for Piano op. 9 - No. 2 Polka de salon

17. 18 morceaux, op. 72 - No. 3 Tendres Reproches

18. 6 Pieces for Piano, op. 19 - No. 5 Capriccioso in B-flat Major

    * 타티아나 독무 장면

19. 18 morceaux, op. 72 - No. 16 Valse a cinq temps

20.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No. 10 October (Autumn Song)

21.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No. 10 October (Autumn Song

    * 렌스키 독무 장면

22.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No. 8 August (Harvest)

    Impromptu in A-flat Major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No. 10 October (Autumn Song

    * 2막 2장 결투 장면



3막


23. Polonaise from Opera <Cherevichki>

24. The Caprices of Oxana(aria) from Opera <Cherevichki>

    Impromptu in A-flat Major

25. 18 morceaux, op. 72 - No. 3 Tendres Reproches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51 No. 5 Romance

    *타티아나-그레민 공작 2인무 장면

26. Lied der Saporosher from Opera <Cherevichki>

27. Francesca da Rimini, symphonic fantasia in E minor, after Dante Alighieri, op. 32

    The Seasons, 12 pieces for piano, op. 37a - February 

    Six Pieces for Piano Solo, op. 51 No. 5 Romance

28. Francesca da Rimini, symphonic fantasia in E minor, after Dante Alighieri, op. 32

    Romeo and Juliet, TH 42, CW 39

    * 타티아나-오네긴 2인무 장면

ㅡ프로그램북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