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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연주회] 이승민 귀국 쳄발로 독주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by Vanodif 2017. 11. 28.











마치 바로크시대 가구인 듯 날렵하게 멋드러진 쳄발로를 직접 보는 것은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몇 년 전 하우스 콘서트에서 있었던 바로크 앙상블에서 본 것이었다. 그 쳄발로는 꽤 장식적이었던 것 같았는데, 이 쳄발로는 간결한 외양을 지니고 있네. 하콘에서 들었던 쳄발로는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되었던 것이어서 쳄발로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 참, 위의 쳄발로 사진은 예당 리사이틀홀 어셔분의 허락 하에 찍은 것입니다. 


지금껏 들었던 쳄발로의 소리는 바흐의 곡을 주로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기계적'이란 인상이 강했다. 바로 앞에서 연주된다 하더라도 유리막 뒤에서 듣는 것처럼 간접적인 느낌이 도드라지고, 어찌 들으면 전자음 같기도 해서 비인간적인 소리를 낸다고 늘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이승민 님의 연주를 듣다 보니, 쳄발로에는 강약 시스템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들어도 뚜렷한 강약이 없고, 음의 길이와 음과 음 사이 시간의 간극으로 강약을 표현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스피드가 있는 터치에 의해 더욱 결정적인 음을 얻을 수 있으나, 단계적인 셈여림은 불가능하므로 바람직한 뉘앙스의 표현은 음의 길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상당한 커버, 즉 다음의 음이 나와도 앞의 음을 둔 상태로 하는 이른바 피아노의 페달 효과를 손가락으로 행하는 것이다.

ㅡ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라는 글이 있네. 함께 한 일행은 귀가 예민한 편인데 덕분에 칭찬 받았다. 막귀인 나도 많이 듣다 보니 조금씩 들리긴 하는가 봄. 유건타현악기인 피아노에 비해 쳄발로는 발현유건악기라는데 아니 무슨 용어가 이렇게 어려워. 이를 테면 피아노는 건반이 달린 타현악기이고, 쳄발로는 건반이 달린 발현악기라는 말. 아니 이것도 어렵잖어. 그니깐 둘 다 건반이 달렸는데, 피아노는 줄을 '치는' 악기이고, 쳄발로는 줄을 '퉁기는' 악기라는 말이다. 이 간단한 말을 왜 그렇게 어렵게 표현하는가!


쳄발로를 검색하다 아주 흥미로운 유툽을 발견했는데, 이 동영상을 보고 나니 쳄발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조음 방식이 섬세하고 다채로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나다며. 얼른 자야 하는데. ㅡㅜ





쳄발로의 구조와 원리, 기능을 배워 보시죠!







이승민 쳄발리스트의 연주가 특별했던 건, 이처럼 소리의 강약을 낼 수 없어 내게는 무미건조하게 들렸던 쳄발로에 감정을 불어 넣은 연주를 하셨기 때문이다. 기계가 나와서 "지금 시각은 오전 열 시 이 분 삼십 초 입니다 째깍째깍' 할 것만 같은 쳄발로가 이승민 님의 손길을 타자 사랑을 노래하고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절규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들으며 여지껏 해보지 못한 경험에 깜짝 놀랐다. 주신 좌석의 위치가 좋은 곳이어서 이승민 님을 맨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처음엔 쉬이 잡을 수 없었던 감정선을 이승민 님의 표정을 따라가다 보니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오른손 연주였다. 


생각해 보니 음의 강약을 명확히 조절할 수 없고 페달도 없는 쳄발로의 음은 피아노와 비교했을 때 울림이 현저히 적고 한 음 한 음이 딱딱 끊어진다. 해서, 음을 연주하지 않는 동안은 무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결과가 되는데, 그런 이유에선지 쳄발로 연주곡은 거의가 왼손이 아주 바쁘게 배경을 채우고 있다. 숨을 고르는 빈 공간이 없기 때문에 한결같이 타건되는 음표의 홍수 속에 곡에 담겨있는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승민 님의 연주에서는 그 감정이 느껴졌다. 가만히 들으니 아마도 미세하게 음의 길이로 감정을 불어 넣으시는 것 같았는데, 엇박이 많기도 하지만 음이 살짝 더 길고 짧은 것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음의 강약을 타건의 강약이 아닌 음의 길이로 조절하시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짜릿했던.


또한 다양한 작동법을 갖춘 악기답게 다양한 소리를 들려 주셨는데, 들으면서 쳄발로는 피아노 같기도 하고, 기타 같기도 하고, 하프 같기도 하고, 전자 기타 같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때는 타악기 같기도 한 다양한 소리를 듣게 되어 몹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쳄발로가 희귀 악기이니 만큼 처음 접하는 작곡가가 대부분이었는데, 프로그램에 실린 훌륭한 설명이 아까워 파란색으로 옮겨 적는다. 





Jean-Henri d’Anglebert
Pieces de Clavecin, Paris 1689

Ouverture de Cadmus


태양왕 루이 14세의 궁정 쳄발로 연주자 ordinaire de la musique de la Chambre du Roy pour le clavecin이자 작곡가,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했던 장 앙리 당글베르는 그의 생애에 걸쳐 이 클라브생 모음곡집 한 권만을 남겼지만, 이 모음집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작곡 기법과 정교한 장식음 기보로 17세기 서양 건반음악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당글베르는 역시 루이 14세의 궁정 작곡가였던 쟝 밥티스트 륄리 Jean-Baptiste Lully와도 긴밀한 관계였으며, 그의 오페라 곡들의 일부를 이 클라비생 모음집 안에 옮겨 놓았다.


오페라 까드무스 Cadmus의 서곡과 오페라 아르미드 Armide 중 파사칼리아도 여기에 속하고 있으며, 원곡의 폴리포니적 요소를 충실히 옮기면서도 그의 통주저음 저서 Principes de L'Accompagnement에서 보여주고 있는 6성부 이상으로 이루어진 풍성한 연주 기법이 구사되어 당글베르의 정교한 작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Jean-Henri d’Anglebert
Pieces de Clavecin, Paris 1689








 
Alessandro Scarlatti 
Toccata per Cembalo d’Ottava Stesa, Napoli 1723
 

18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나폴리 악파의 창시자라 불리는 알레산드르 스칼랏티의 기악 작품은 성악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편인데 스칼랏티는 아마도 그의 작곡 활동 후반에 기악곡 작곡에 관심을 둔 것을 보인다.


그의 음악은 동시대인들에게 "스칼랏티 식" maniera-Scalatti으로 따로 불렸을 만큼 독자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스칼랏티는 건반악기를 위해서 다수의 토카타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Toccata per Cembalo d'Ottava Stesa는 그의 가장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Presto-Agagio(Recitativo)-Presto-Fuga-Adagio cantabile ed appoggiato - Folia로 이루어진 곡의 구성은 기본적으로 이탈리아 교회 소나타의 구성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빠른 음형의 쉼없는 전개로 루짜스코 루짜스키 Luzzasco Luzzaschi로부터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 Girolamo Frescobaldi까지 이어진 전통의 토카타 작법인 스틸루스 판타스티쿠스 Stylus Phantasticus에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형식과 언어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Francesco Geminiani 
Pieces de Clavecin, London 1743

Prelude, lentement
 

나머지는


Gayment

Tendrement

moderement

Vivement


인데,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워낙 모르는 곡이었기 때문인지 다시 들어보니 헷갈리네.

위의 영상을 보면 화면 오른쪽에 연결된 다른 곡들이 있는데, 그 중에 들으면 될 것 같다.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는 출생지인 루카를 비롯하여 로마, 나폴리, 런던, 파리, 더블린 등지에서 작곡가로, 바이올리니스트로, 또한 음악 이론가로 활동하였다. 아르칸벨로 코렐리 Arcangelo Corelli와 알레산드로 스칼랏티 Alessandro Scarlatti의 사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작품 속에서는 그의 범유럽적인 활동 영역에서 볼 수 있듯이 출신지 이탈리아 뿐 아니라 프랑스적 색채 또한 찾아볼 수 있다. 제미니아니는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Op.1과 Op.4, 그리고 콘체르토 그로씨 Op.2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이 클라브생 모음곡집에 담아놓아는데 악장, 템포 표기가 본래의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바뀌어 출판된 것을 두고 음악학자들은 그가 아마도 프랑스 악보 시장을 염두에 두고 이 모음집을 출판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모음곡집 안의 느린 악장들에서는 제미니아니의 아치아카투라 Acciaccatura를 다루는 섬세한 기술을 볼 수 있는데 1749년 출판된 그의 이론서 A Treatise of GOod Taste in the Art of Musick에서는 특별히 이 아치아카투라에 대해 언급하며 "이 섬세하고도 놀라운 비밀"을 완벽히 구사하는 능력을 쳄발로 연주의 완성에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Louis Andriessen
Overture to Orpheus (winter 1981-1982)


이 곡, 굉장했다. 20세기 작곡가여서 그런가, 다른 곡들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를 내었다. 이 곡의 앞 부분에선 쳄발로가 가야금 같기도 하고 샤미센 같기도 하며 심지어 전자 기타 같기도 해서 감상하면서 굉장히 즐거웠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의 「신 시집」Neue Gedichte, 1907에 수록된 시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헤르메스> Orpheus, Eurydike, Hermes는 오르페우스가 지하 세계에서 에우리디케를 구출하여 인간 세계 가까이까지 동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심부름의 신 헤르메스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를 약속을 어기고 뒤돌아봄으로써 영원히 잃게된 오르페우스의 상실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에우리디케의 죽음과의 친화를 묘사한다.


[...]

그러나 그녀는 신의 손에 의지한 채

시신을 감쌌던 긴 끈에 방해를 받아 가면서

불안스레, 차분히, 초조한 기색 없이 걸어갔다.

큰 희망을 품은 여인처럼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앞서 가는 사나이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삶의 세계로 올라가는 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되어 있었다. 죽어 있음이

풍요처럼 그녀를 충만하게 하고 있었다.

감미로움과 어둠의 한 열매처럼,

새로워서 전혀 알 수 없는

위대한 죽음으로 넘쳐 있었다.


[...]

그녀는 이미 시인의 노래에 나오는

금발의 여인이 아니었다.

넓은 침대의  향기도 아니고 섬도 아니고,

저 사나이의 소유물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처럼 풀리고

땅에 내린 비처럼 몸 바치고

끝없이 나눠주는 넉넉함 같았다.


그녀는 이미 뿌리였다.

[...]


네덜란드 출신의 작곡가 루이 안드리센은 그의 작품 "Overture to Orpheus"에서 이 시를 모티브로 삼고, 시 속 표현들, "암흑", "한 줄기 창백한 길", "후각처럼 뒤에 머무는 청각", "발소리" 등을 미니멀리즘적 어법 안에서 재구성하여 언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내밀한 정서까지도 곡 속에 담아내고 있다.









 
Johann Sebastian Bach
English Suite No. 6 in d minor, BWV 811    


바흐의 영국 조곡은 그가 바이마르에서 활동했던 1715년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영국 조곡의 자필 원고는 남아있지 않고 대신 그의 제자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아그리콜라 Johann Friedrich Agricola와 요한 필립 키른베르거 Johann Philipp Kimberger, 하인리히 니콜라우스 게르버 Heinrich Nicolaus Gerber, 그리고 그의 아들 중 하나인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Johann Christian Bach 등이 필사한 악보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흐의 다른 조곡 모음집들과는 달리 이 영국 조곡은 여섯 곡 모두가 프렐류드 Prelude로 시작되고 있는데 이는 조곡이라는 악곡 형식의 발상지인 프랑스의 루이 쿠프랑 Louis Couperin 이나 쟝 앙리 당글베르 Jean-Henri d'Anglegert 같은 선대 작곡가들의 전통적 조곡 구성과 일치하는 점이기도 하다. 6번 d단조는 여섯 조곡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이며 음악학자 포르켈 Johann Nikolaus Forkel이 1802년 그의 저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흐 고유의 화성적, 선율적 어법이 잘 살아있는 걸작이라 평가되고 있다.



바흐의 영국 조곡은 옛날에 종종 들었던 음악이었는데, 감정이 실릴 수 있는 곡인 줄 몰랐다. 물론 그땐 내가 너무 어렸기도 했지만서도. 이승민 님께서 이 곡을 연주하시자 마치 베토벤이 연주하는 바흐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열정이 몰아치다가 또 부드럽게 노래했다가, 슬픔에 잠기는 등의 다양한 감정이 흘러나와 이 곡이 내가 예전에 들었던 그 곡이 맞나?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이렇게 동영상을 들어도 그런 느낌은 잘 살아나지 않으니 그것이 더 신기하고. 훌륭한 연주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피아노 전공인 se, sh에게 피아노ㅡ쳄발로ㅡ파이프오르간으로 앙상블을 만들어 보면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둘 다 눈이 번쩍, 했지만 쳄발리스트와 오르가니스트의 희귀성과, 특히 오르간 연주의 공간적 제약을 문제로 실현성이 희박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감상자의 입장에선 꼭 들어보고 싶은 조합인 건데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