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rformance

[연주회] 이영우 피아노 독주회 @ 일신홀

by Vanodif 2017. 11. 11.








재구성 II - 윤이상을 추모하며




PROGRAM



존 케이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신비로운 모험> 6’

John CAGE (1912-1992) / Mysterious Adventure for Prepared Piano (1945)


도시오 호소카와 / 밤의 소리들 9’

Toshio HOSOKAWA (1955- ) / Nacht Klänge (1994/ Revidiert 1996)

 

하인츠 홀리거 / <엘리스>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야상곡(夜想曲) 6’

Heinz HOLLIGER (1939- ) / Elis Drei Nachtstücke für Klavier (1961/ Revidiert 1966)

 

하인츠 홀리거 / 피아노를 위한 <714일의 작은 불꽃놀이> 3’

Heinz HOLLIGER (1939- ) / Feuerwerklein zum "Quatorze juillet" für Klavier (2012)

- 한국초연 (Korean Premiere)

 

도시오 호소카와 / <5> 일본의 고대 춤곡 4’

Toshio HOSOKAWA (1955- ) / Mai - Uralte japanische Tanzmusik (2012)

 

윤이상 /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A> 12’

Isang YUN (1917-1995) / Interludium A für Klavier (1982)

 

Intermission

  

피에르 조들롭스키 / 피아노와 스테레오 사운드트랙을 위한 <파란색의 시리즈> 14’ 51”

Pierre JODLOWSKI (1971- ) / Série Bleue for Piano & stereo soundtrack (2013)

- 아시아초연 (Asian Premiere)

 

존 케이지 /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그리고 지구는 다시 견뎌야 한다> 3’

John CAGE (1912-1992) / And the Earth Shall Bear Again for Prepared Piano (1942)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 / 피아노와 라이브 엘렉트로닉을 위한 <그림자놀이> 10’ 31”

Georg Friedrich HAAS (1953- ) / Ein Schattenspiel für Klavier und Live-Elektronik (2004)

- 한국초연 (Korean Premiere)

 

  

 

============================================================================================




내 음악은 동양적인 것으로 들을 수도, 서양적인 것으로 들을 수도 있다.

나는 두 문화의 요소를 다 갖고 있다.

- 윤이상

 

동방은 신의 땅 !

서방은 신의 땅 !

북방과 남방의 땅이

그의 손에서 평화롭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서동시집>

 

격동적인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한 작곡가 윤이상은 경남 산청에서 나고 통영에서 자랐다. 20세기 작곡기법을 공부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한 그는 기존의 서양 음악에서 들을 수 없던 새로운 음색으로 유럽 현대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관현악곡 <예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옛 친구도 만나고 늘 벽에 붙여놓고 바라보던 강서고분의 사신도를 직접 보고자 1963년 북한을 방문한 윤이상은 당시 반공을 국가 정책의 첫 번째 이념으로 삼았던 정권에게 친북 인사로 분류되었고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어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유학생들과 함께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은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겪게 된다. 당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마우리치오 카겔, 오토 클렘페러, 죄르지 리게티, 한스 베르너 헨체, 하인츠 홀리거 등 2백 여 명의 음악인들이 윤이상의 수감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정부에 항의했다.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 그는 서독으로 귀화해 국립 베를린 예술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갔지만, 한국 정부는 그의 입국을 금지했고 1995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윤이상은 하나하나의 음들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서양 음악과는 달리 우리 음악에서는 이미 하나의 음 그 자체만으로도 고유의 의미가 있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작곡 기법으로 주요음(Hauptton)’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이는 한국의 전통 음악의 가락시김새(잔가락, 장식음)’와도 연관이 있다. 윤이상의 음악에서 주요음은 주변의 장식적인 음들에 비해 긴 울림을 갖고 있으며 그 긴 음들은 비브라토, 트레몰로 등으로 미세하게 움직이고 음정이 살짝 변하기도 하며 다양한 장식음들로 꾸며지기도 한다. 이렇듯 윤이상은 기존의 조성 체계나 12음계에 기초한 음악이 아닌, 동양적 음향 관념에 뿌리를 둔 음색을 서양의 악기와 음악체계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독창적으로 고안한 작곡 기법과 자신의 음악 철학에 근거해 곡을 썼다. 윤이상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곡을 많이 연주하기도 한 피아니스트 아키 타카하시의 요청으로 작곡되었고 제목의 ‘A’는 그녀의 이름 아키에서 따온 것이다.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고요한 중간부는 전체의 간주 역할을 하며 A 음이 주요음으로 쓰였다. 이 간주적 중간부를 사이에 두고 앞부분에서는 화음의 폭발적 분출, 뒷부분에서는 길고 짧은 선율의 지속적인 연결과 움직임이 나타난다. 복잡하게 얽힌 주요음과 주변음들의 움직임과 확장, 음량과 음색의 극적이고 폭넓은 대조,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활동적인 에너지가 하나의 소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윤이상의 작품들은 연주하기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라 빈번하게 연주자들의 원성을 사곤 했지만, 연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는 초인적인 기교를 지닌 당대 최고의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작품과 주법에 대해 논의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 중 하인츠 홀리거의 이름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1939년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보에 레퍼토리를 발굴함은 물론, 오보에의 한계를 보여주는 궁극의 기교와 독창적 해석으로 수많은 현대곡을 초연하였고 자신도 작곡가와 지휘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곡이야말로 악기 소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수많은 작품을 썼으며 특히 극한에 치닫는 삶을 산 시인들에게 매료되었다.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야상곡 <엘리스> 역시 게오르크 트라클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불꽃놀이>는 제목처럼 다양한 색채와 음향을 지닌 화려한 곡으로 세련되고도 간결한 시적 표현이 인상적이다.

 

특유의 동양적 색채와 음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출신 작곡가 도시오 호소카와1955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에 건너와 윤이상과 클라우스 후버에게 작곡을 배웠고 일본 전통문화와 유럽의 아방가르드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어냈다. 스승인 윤이상과는 부자지간처럼 각별한 사이였으며 음악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았다.음악은 소리와 침묵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밝힌 그의 사상과 철학<밤의 소리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며, 고대 춤곡에서 영향을 받은 <5>에서는 일본 예술의 아름다움과 근원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과 그 시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존 케이지선불교와 주역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어떤 절차나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연성 음악을 개척해 수많은 음악가에게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기존의 이론과 질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다양한 음향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냈고 특히 피아노의 현 사이에 다양한 물체들을 끼워 그만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는데 이것이 바로 조작된(prepared) 피아노이다. 케이지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주로 춤과 움직임에 기초한 작품들을 썼다. <신비로운 모험>, <그리고 지구는 견뎌야 한다> 두 곡 역시 각각 댄서인 머스 커닝햄, 발레리 베티스를 위한 작품이다.

 

전자음악은 새로운 음악 언어와 표현 방법을 찾던 작곡가들의 의지와 전자기기의 발전이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새로운 음향의 추구라는 기본적 목표를 넘어 음의 개념을 소음으로 확장했고 공간 개념을 도입했으며 작곡가와 연주자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기보법도 고안했다.

 

전자음악, 설치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의 작곡가 조들롭스키어쿠스틱과 전자음향을 모두 사용해 무대에서 공간, 음악, 텍스트, 시각적 요소들을 결합한다. <파란색의 시리즈>‘Série’ 연작 중 다섯 번째 작품으로 이브 클라인의 파란색 그림과 그와의 만남을 통해 받은 영감을 토대로 만든 곡이다. 불협화음, 잔향, 긴장감 속에서 곡이 시작되며 중간부에 확실한 맥박과 나타나면서 음악은 완전히 다른 색으로 전환된다. 깊은 울림을 주는 전자음향의 베이스는 피아노와 음악적인 조화와 대조를 함께 이루며 느리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으로 현재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자신의 억눌린 성적 욕망과 절망, 고통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켰다. 작곡가 자신과 연주자 모두에게 가학적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었던 그의 예술 세계는 최근 새로운 파트너와의 결혼 생활로 전환기를 맞아 또 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놀이>에서는 1/4음 높게 조율된 피아노 소리가 전자음향으로 재생되며 마치 그림자처럼 피아니스트를 추격하는데 점점 그 간격을 좁혀나가다가 마침내 서로가 만나는 순간에 도달한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를, 어떤 음향의 흐름을 듣는다. 나는 그것을 마음의 귀로, 음향의 환상 속에서 듣는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거기에 있고 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

나는 재료를 가지고 음악을 쓰지 않고 직관으로 쓴다. 나는 어떤 선율이나 주제를 쓰지 않는다.

내 음악은 언어이며 노래이며 호소이며 시이며 환상이며 암묵의 극적 세계이고자 한다.

- 윤이상

참고문헌 : [내 남편 윤이상 / 이수자, 윤이상] (창비)

[Der verwundete Drache(상처받은 용) / Luise Rinser, Isang Yun] (Fischer)

© 2017 이영우


* 출처: 일신홀 홈페이지 http://ilshinhall.com/concert/list_view.html?idx=338&year_1=2017







이영우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세 번째 듣는다.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올해 내 생일날 들었던 두 번째 연주에서는 난해함에 힘들었고, 그리고 금요일에 들은 세 번째 연주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면서 힘들어하고, 그러면서도 신기해하고 경이로워했던 연주. 현대음악은 아직도 낯설게 다가오지만, 이영우 님의 연주를 따라다니면서 조금이나마 연결끈이 자라나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멀기만 한 현대음악. 현대음악은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는데 아... 듣다 보면 자꾸 생각이 엉뚱한 웅덩이에 빠져 있어서는. 멀리 도망가 있는 생각을 끌어오고 또 다시 끌어다 놓는 의식의 작업이 힘겹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불편하던 낯섦이 이젠 점점 익숙한 낯섦이 되어가고 있다. 낯선 것에 자발적으로 길들여지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다.


토요일은 보아야 할 공연이 세 개여서(미쳤어) 내가 얼만큼 후기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주 끝나고 집까지 한 시간을 걸어온 바람에 피곤은 겹쳤고, 매일 계속해서 저녁 스케줄이 있어서 체력이 부쩍 소모되는 주말이다. 어서 잠들어야 해서 후기는 올릴 수 있는 만큼만 간단히 올리고 잠드는 걸로. 맨날 시간이랑 에너지가 부족해. -_ㅜ


독특한 연주회로 나만 멘붕 당하는 건 억울한 일이니 자아, 오늘 연주된 곡들을 만나 보도록 하자.






존 케이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신비로운 모험> 6’

John CAGE (1912-1992) / Mysterious Adventure for Prepared Piano (1945)





원래는 이런 퍼포먼스를 위한 곡이었는가 보다. 사실 이번 연주회를 대하면서 딱히 '연주회'라기 보단 '퍼포먼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우 님의 연주하는 표정과 자세까지 연주의 한 부분인 것 같아 보였거든.





이렇게 피아노줄 사이사이에 다양한 물체들을 끼워넣어 원래 피아노음을 변형시켰다. 이영우 님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이 곡을 부탁받았을 때 협소한 장소에 피아노 한 대가 달랑 있는 것을 본 존 케이지가, 피아노 한 대로 다양한 타악기의 소리를 내기 위해 이 곡을 고안해 내었다 한다. 그렇다면 전자피아노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가 궁금했던 건데, 일행에 따르면 전자피아노의 피아노 음과 이 피아노의 피아노 음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그리고 물체를 설치한 음만 다른 타악기의 소리를 내고 나머지 음은 보통의 피아노 음이 나는 것이니 그것 또한 묘한 매력이겠다. 피아노는 정말이지 굉장한 악기가 아닌가. 악기 하나로 교향곡을 연상시킬 만한 곡을 연주할 수도 있는 데다, 이렇게 타악기 소리까지 낼 수 있으니.




도시오 호소카와 밤의 소리들 9’

Toshio HOSOKAWA (1955- ) / Nacht Klänge (1994/ Revidiert 1996)

 




아주 독특했다.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음악에서 조명이 비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밤에 대한 도시오 호소카와의 곡은 서사에 익숙한 내게는 굉장히 낯설었다. 비규칙적인 우박이 내리는 것 같기도 한 이 음악을 들으며 깜깜한 밤의 생물 혹은 물체들을 희미하고 동그란 조명이 갑작스레 비추는 느낌이 들었다. 확, 하고 비추는 것이 올빼미. 또 땅, 하고 비추는 것이 잿빛 바위, 그런 식으로 말이다. 한 귀에 상당히 동양적이고 명상적인 곡이다. 비어 있는 여백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를 아슬함도 있고, 으스스함도 있고. 건반 뿐 아니라 피아노 전체를 악기 삼아 연주하는 곡이 독특하다. 피아노 한 대로 참 다양한 음향효과를 내지 않는가.




하인츠 홀리거 / <엘리스–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야상곡(夜想曲) 6’

Heinz HOLLIGER (1939- ) / Elis – Drei Nachtstücke für Klavier (1961/ Revidiert 1966)

 




사람마다 밤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있을 텐데, 앞의 호소카와가 밤에 대한 동양인의 연상들이었다면, 이 하인츠 홀리거의 곡은 밤에 대한 서양인의 연상이라는 설명. 과연 두 곡이 다르면서도 상당히 닮았다. 현대를 사는 음악가들에게 있어 밤의 이미지는 이런 것일까? 나라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만들 것 같아서 신기했다. 하지만 과연 밤이 연상되는 곡들. 말하자면 내가 듣기론 홀리거의 곡이 조금 더 서사적이고 이미지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서양 문학에 익숙해서일까나.



하인츠 홀리거 피아노를 위한 <7월 14일의 작은 불꽃놀이> 3’

Heinz HOLLIGER (1939- ) / Feuerwerklein zum "Quatorze juillet" für Klavier (2012)

한국초연 (Korean Premiere)

 




얼마나 독특한 연주인지는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알 수 있다. 연주자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피아노의 건반과 현을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모습. 피아노의 소리를 내는 것에는 건반 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타와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말이지 피아노는 굉장한 악기가 아닌가. 음. 피아노줄을 활료 연주하는 곡도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도시오 호소카와 / <5– 일본의 고대 춤곡 4’

Toshio HOSOKAWA (1955- ) / Mai - Uralte japanische Tanzmusik (2012)

 




정말 동양적이다. 일본의 가부키가 연상되기도 했고, 할복하는 사무라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여기저기 익살스럽기도 하고. 참 독특하고 재미난 곡이었다. "윤이상 님도 호소카와도 고국에서 떠나 타국 생활을 오래 하셨음에도 자국의 색채를 잃지 않고 작품에 반영했다"라는 이영우 님의 해설.



윤이상 피아노를 위한 <간주곡 A> 12’

Isang YUN (1917-1995) / Interludium A für Klavier (1982)

 




윤이상 님의 곡은 들을 때마다 난해하다. 그동안 설명도 듣고 어쩌고 해서 좀 친숙해질까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해했다. 곡에서 떠오르는 연상은 난데없는 또다른 연상으로 배반당하는 작업의 연속. 순간에 집중하라셨는데, 그 집중할 순간들이 너무 당혹스러웠달까. 아... 29일에 있는 윤이상 곡 연주회에 너무 가고 싶은데, 수업이 있어서. ㅜㅠ 가고 싶다아.




Intermission

  



피에르 조들롭스키 피아노와 스테레오 사운드트랙을 위한 <파란색의 시리즈> 14’ 51”

Pierre JODLOWSKI (1971- ) / Série Bleue for Piano & stereo soundtrack (2013)

아시아초연 (Asian Premiere)





전자음과 함께 연주된 피에르 조들롭스키의 곡은 영상, 전자음과 함께 피아노 음을 감상하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연주였다. 연주장에서 상영된 화면은 유툽의 화면과 좀 다르다. 일신홀의 벽이 울퉁불퉁해서 화면이 잘 식별되지는 않았지만, 섬세한 조명작업에 환상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조들롭스키는 빨강, 하양, 핑크 등 색깔 시리즈를 작곡하고 있는데, 그 중 파랑 시리즈를 이영우 님께서 연주하셨다. 이런 곡 들을 때마다 궁금한 것은, 연주자분들께선 어떤 생각을 하시며 연주를 하시는가 하는 점이다. 우울하고 정적인 블루에서 차고 날카롭고 격정적인 블루까지 다양한 이미지들이 쏟아지는 시간이었다.


 

존 케이지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위한 <그리고 지구는 다시 견뎌야 한다> 3’

John CAGE (1912-1992) / And the Earth Shall Bear Again for Prepared Piano (1942)

 




앞의 곡에 비해 천과 또 다른 어떤 물체가 설치되었다 하는 존 케이지의 곡. 이번 연주에서는 윤이상과 존 케이지의 이름에 의미를 두고 갔던 것인데, 윤이상에서는 여지 없이 참패를 한 반면, 존 케이지의 곡은 의외로 꽤 취향에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곡의 배치도 좋았던 것 같고. 언젠가 내가 존 케이지와 윤이상 님의 곡을 아주 좋아하게 된다면 이영우 님 덕분이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 피아노와 라이브 엘렉트로닉을 위한 <그림자놀이> 10’ 31”

Georg Friedrich HAAS (1953- ) / Ein Schattenspiel für Klavier und Live-Elektronik (2004)

한국초연 (Korean Premiere)

 



이것도 전자음과 함께 연주된 곡인데, 녹음된 전자음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앞의 조들롭스키 곡에 비해 이 곡은 좀 더 즉흥성을 띤다고 하셨다. 이 작품 속에는 우리의 기침소리도 다 음악이 된다고ㅡ존 케이지스러운 발상인데, 그러고 보니 곡들이 다들 서로 조금씩 닮아 있다. 현대음악의 특성일까나.


그런데 이 곡이 이름이 <그림자 놀이>였단 걸 지금 알았네. 제목을 못 본 채 들은 곡인데, 나는 곡을 들으면서 '유령들과의 작업'을 떠올렸더랬다. 여기저기 메아리치듯 세 단계, 네 단계로 들려오던 녹음 음악이 이영우 님의 실제 피아노 소리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는 것도 재미났고, 마치 서로 마주보아 끝없이 이어지는 거울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자기성찰적인 곡이란 생각이 들었던 건데, 과연 '그림자 놀이'였군. 그런 걸 보면 작곡가들의 재능은 상당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적절하게 표현해주시는 연주가분들도.




이영우 님의 실험적인 곡들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곡들이 아니어서 세 번을 들은 아직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롭고 흥미롭다. 앞으로도 연주회를 좀 더 따라가 보면 언젠가 이 낯선 음악들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 수 있을까. 이영우 님과 일신홀 덕분에 귀한 음악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