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바로 맞은 편에 이런 건물이 있다. 불과 작년 초만 하더라도 곤드레밥집이었는데 간판이 사라지더니 그때부터 작은 전시회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황금땅덩어리에 이렇게 넓은 공간을 단층으로 유지하면서 일반 가게가 아닌 갤러리...? 임시의 느낌이긴 하지만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이었나 싶은 마음에 예당 갈 때마다 지나다니면서 흘깃거렸으나, 홍대 미대 동문회 전시라든가, 어느 작가 그룹전 등 '아는 사람만 가는' 느낌이 나서ㅡ라기 보단 내가 원래 낯을 좀 가린다.;; 이 미술관(?) 자체를 관찰하던 중이었던 것이 더 맞는 이유일 게다ㅡ그동안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예당 공연에 가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들이 걸려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갤러리 이름이... <갤러리 반포대로5>이다. 뭐... 제대로 작정하고 만든 갤러리는 아닌 듯 하다. 임시 사용인 걸까. 아쉽다. 이런 이해하기 힘들면서 은근한 감동을 주는 건물, 좋은데. 하필 모든 것이 완벽한 예당의 바로 길 건너에 이처럼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뒤집어 보게 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 곳에 전시되는 작품들이 내 취향이 꽤 있다. 한 번 갔으니 종종 들러야지. 앞으로 예당에 갈 땐 조금 더 일찍 서둘러야겠다.
빛을 그리시는 화가. 내가 받은 인상은 빛과 그림자와 담벼락, 그리고 나무를 담아내시는 분이었다. 작품 안에 따스함과 서늘함, 휴식과 고독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딱 집에 걸어두고서 매일같이 보고픈 작품들이었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실제 벽을 뜯어다 걸어두신 것만 같았다. 사진을 보여주자 마녀는 "사진 전시였어?"하고 물었을 정도. 그런데 아니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리신 작품이었다. 벽의 금과 돌의 재질을 얼마나 실감나게 그리셨는지 여러 번 가까이 가서 캔버스임을 확인해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는 '진짜와 똑같은 사실성'에 있지 않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그림'을 원한다면 구자승 화백의 작품을 보면 된다. 구자승 화백이 사물의 군더더기를 지우고 가장 깨끗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작품 속에 정화시켜 구현하신다면, 김경숙 화백은 사물과 사물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화가가 지닌 마음의 필터로 뭉근하게 문지름으로써 사물의 이면, 쉬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다. 김경숙 화백의 작업에는 사물과 자연광과 그 사물의 그림자를 보여줄 수 있는 벽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거칠고 불투명한 벽은 매끈하게 사물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자들이 엄습하는 불가해한 불안의 느낌을 준다면, 김경숙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흔히 신경쓰지 않는 의식의 뒤안길에 위치한 그림자에 담긴 존재의 부드러움과 아름다움, 따스함. 눈에 보이는 세계 저편 빛이 빚어내는 또다른 그림자의 세계에서 사물의 본질은 그처럼 다정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과 대상의 깊은 내면에는 겉으로 보이는 수많은 불안함과 미숙함이 흔들 수 없는 안정과 온전함이 단단하고 부드럽게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들 앞에 소파가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아니, 이 전시장이 내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불안하고 세상에 불만이 생길 때 이 작품들 앞에 앉아 그림자와 빛의 사귐을 가만히 바라본다면 마음에 행복이 깃들 것 같다.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이다. 작품성은 아래의 사진이 더 뛰어남을 알겠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바로 앞에 섰을 때 가장 아름다웠다. 최근 미술품 구입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지금의 내 여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지만, 살 수만 있다면 이 작품을 첫 구매작으로 하고 싶었다. 그 책에선 첫 구매작을 잘 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했는데... 투자가치 같은 건 난 모르겠고, 그냥 갖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내 공간에 이 작품 하나가 있으면 참 좋겠구나. 행복하겠구나, 하는. 너무 비쌀 듯 하여 감히 가격은 여쭈어 보지도 못했다.
이 작품엔 많은 것이 담겨 있긴 하지. 색깔이 그러하고 빛과 사물과 그림자라는 배치 자체가 불러 일으키는 연상작용이 어쩔 수 없이 강조된다. 누구나 아는 동굴 속 플라톤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다 접더라도,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구석진 담벼락, 따스한 햇살의 미소 아래에서 나무와 그림자가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은가? 무슨 대화를 나누기에 벽은 저렇게 볼을 붉히고 있는 걸까. 근사한 파랑과 함께 발그레한 붉음에 무슨 이야기가 스며 있는 건지 궁금하다. 내가 햇살 아래 담벼락 앞에 서서 내 그림자와 대화를 나눈다면 이런 느낌이 날까. 그럴 리 없겠지.
전시 중인 작품 중 딱 한 점을 골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라 한다면 난 이 작품을 고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사진보다 작품 앞에 섰을 때 받는 감동이 더 크다. 깨끗하고 맑은 이슬방울이 묻어나는 듯한 느낌. 몹시 곱고 처연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전시장의 모습을 보라. 일반적인 갤러리의 매끈한 벽과 대리석 바닥이 아니다. 천장과 벽, 바닥이 다 거칠고, 심지어 바닥에는 패인 부분이 있어 돌멩이가 굴러다닐 정도다. 처음 들어간 전시장이었기에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이 작품 때문에 설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전시된 김경숙 화백의 작품들을 감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설정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한적한 담벼락에 서 있는 기분.
모든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 하다 못해 <무제>라는 제목도 없으며, 소재 설명조차 없다. 그냥 작품들만 고요히 걸려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이런 그림을 그리시고 이런 전시장에서 전시하시는 화가분께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전시회 전체의 주인공 작품을 고른다면 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크기 자체가 많이 크고, 한 눈에 시선을 빨아들인다. 벽에 표현된 저 매혹적인 그림자와 빛의 희롱,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두 마리 새의 지저귐. 그물같이 빛과 함께 표현된 그림자는 다른 작품들에서와 달리 역동성마저 지닌다.
이 작품은 좀 신기했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대체 어떤 것 때문에 그런 느낌을 내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네. 작품 크기가 딱히 다른 작품에 비해 큰 것도 아니었는데 거리를 두고 보았을 때 분위기와 색감이 더욱 예쁘고 아름다웠다.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한 눈에 비가 느껴지리라. 쏟아지는 빗속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어찌 보면 살짝 무서운 느낌도 품고 있는 이 작품은 단단히 가둬둔 망각을 헤집는 그림이었다. 참 갖고 싶은데 또 우울해질까봐 걱정이 되는 아름답고 먹먹하고 그리운 그림. 떠올리기 두려운 기억들을 부드럽게 불러내는 느낌.
과하지 않고 딱 적절한 마띠에르. 김경숙 화백의 작품이 좋은 것은 이런 섬세함과 깔끔함과 영민함 때문이다.
이건 물방울 작가라는 별칭을 지니신 엄마의 작품과 느낌이 비슷해서 찍은 건데, 선물로 드린다 해놓고 아직 드리지 못했네. 좀있다 보내드려야겠다.
예당 앞의 보석같은 갤러리. 언제까지 갤러리로 사용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이 전시되는 한 즐기고 싶다. 그리고 김경숙 화백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 작품들도 다시 들러 보고 싶다.
두 번째 방문한 어제(30일)는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팠던 작품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참 맑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