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korean-national-ballet.kr/ko/performance/view?id=10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2875
작년 <스파르타쿠스> 후기: http://vanodif.tistory.com/926
1막1장-침략
트라키아를 정복한 로마 군단이 로마 점령지의 대장 크라수스의 지휘 아래 그들이 거치는 곳마다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잔인하고도 승리에 가득찬 행진을 하고 있다. 포로들 중에는 사슬에 묶인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도 있다. 그들은 이제 노예가 된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백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져 있다. 자유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이제 사슬에 묶인 노예가 된 것이다.
1막2장-노예시장
노예상인들이 부유한 로마의 귀족들에게 포로들을 노예로 팔기 위해 남녀를 갈라놓는다.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도 이별을 한다.
프리기아의 독백
행복을 빼앗긴 프리기아는 한숨을 쉬고 그녀 앞에 놓일 무서운 시련을 생각한다.
1막3장-향락
무언배우와 창녀들이 손님들 앞에서 여흥을 펼치고 크라수스는 노예가 된 프리기아에게 수작을 건다. 술과 여흥에 취한 크랏수스가 구경거리를 대령하라고 호통을 치자 투구로 눈이 가려진 두명의 검투사들이 들어온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못하고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승리자가 투구를 벗었다. 그가 바로 스파르타쿠스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백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파르타쿠스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노예를 죽인 것이다. 이러한 비극이 그의 분노와 저항심을 불태운다. 그는 포로가 되어 속박되어 있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하나, 바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1막4장-검투사의 막사
스파르타쿠스는 검투사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자고 설득한다. 한 마음이 된 검투사들은 스파르타쿠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자유를 향해 막사를 탈출한다.
2막1장-아피아 가도
막사에서 탈출한 검투사들은 아피아 가도에서 목동들과 만나게 된다. 검투사들은 목동들에게 그들과 함께 할 것을 권유한다. 스파르타쿠스가 그들의 지도자로 추대된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백
스파르타쿠스는 프리기아가 걱정된다. 그는 오직 프리기아에 대한 생각 뿐이다.
2막2장-크라수스의 빌라
프리기아를 찾기 위해 스파르타쿠스는 크라수스의 빌라로 잠입한다. 마침내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가 해후의 기쁨을 나눈다. 그것도 잠시, 아이기나가 크라수스의 참모진과 함께 나타나자 재빠르게 숨는다.
아이기나의 독백
오랫동안 아이기나는 크라수스를 유혹해서 권력을 얻기를 열망해왔다. 그녀의 목표는 그를 통해 합법적으로 로마 귀족 사회에 합류하는 것이다.
2막3장-크라수스 빌라에서의 향연
크라수스는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참모진은 크라수스를 예찬한다. 향연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크라수스의 빌라를 포위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향연에 참가한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크라수스와 아이기나도 함께 도망간다. 이때 스파르타쿠스가 빌라로 침입한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백
승리한 스파르타쿠스는 이제 그의 반란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2막4장-스파르타쿠스의 승리
검투사들이 크라수스를 붙잡아 스파르타쿠스에게 끌고온다. 검투사들은 그를 처형하자고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핏빛의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는 크라수스에게 일대일 전투를 제안한다. 크라수스는 그 도전을 받아들이지만, 이 대결은 스파르타쿠스의 승리로 끝난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를 죽이지 않고 놓아주어 크라수스가 굴욕감을 느끼도록 한다. 검투사들은 기뻐하며 스파르타쿠스를 칭송한다.
3막1장-크라수스의 복수
굴욕감에 가득찬 크라수스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아이기나는 그에게 복수하도록 부추긴다. 크라수스는 점령지의 군대들을 소집하여 반항하는 검투사들을 죽이기로 한다. 아이기나는 전장으로 나가는 크라수스를 배웅한다.
아이기나의 독백
스파르타쿠스는 아이기나의 적이기도 하다. 크라수스의 패배는 그녀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이기나는 계략을 생각해내어 스파르타쿠스 진영에 불화의 씨를 뿌릴 계획이다.
3막2장-스파르타쿠스의 막사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는 함께 있다는 행복감에 가득 차 있다. 그때 갑자기 그의 참모들이 걱정스러운 소식을 전달한다. 크라수스가 대 군단을 이끌고 행진해 온다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전투에 나갈 준비를 하자 그의 참모진 중 대부분이 나약함을 보이며 탈주한다.
스파르타쿠스의 독백
스파르타쿠스는 곧 있을 전투가 비극적인 결과를 낳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전투에서 죽을지라도 속박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주는 병사들은 그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3막3장-내분
아이기나는 스파르타쿠스를 배반한 비겁한 검투사들의 진영으로 은밀히 잠입한다. 그녀는 그들이 스파르타쿠스에게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창녀들을 거느리고 술과 고혹적인 춤으로 검투사들을 현혹시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잊게 한다. 아이기나는 그들을 유인하여 크라수스 앞에 대령시킨다.
크라수스의 독백
크라수스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크라수스를 욕보인 대가로 크라수스의 손에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3막4장-마지막 전투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는 로마군에게 포위당했다. 스파르타쿠스의 충성스런 병사들은 이 불공평한 전투에서 하나 둘 죽게 된다. 부상당한 스파르타쿠스는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며 싸우지만 결국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창에 찔려 전사한다.
레퀴엠
프리기아가 전쟁터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시신을 찾는다. 그녀는 슬픔과 비통에 잠겨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든 프리기아는 영웅적인 스파르타쿠스의 정신이 영원히 기억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호소한다.
[6월 23일 금요일 공연]
스파르타쿠스: 이재우
프리기아: 김지영
크랏수스: 변성완
아이기나: 박슬기
작년에 보았던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배역의 무용수분들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감상도 비슷했다. 자세한 것은 작년에 썼던 후기를 참고하시길.
공연 시작 전에 일행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오더니 몇몇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다. 한 눈에 아름다운 그녀는 강수진 단장님. 가끔 무대 인사 올라오시기도 하고 올해 초에 있었던 예당시상식에서도 뵈었지만 그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아... 너무 아름다우시던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차마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폐가 될까봐. 보통 TV에서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은 실제로 보면 이상하던데, 강수진 님은 TV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다.
프리기아 김지영 님. 김지영 님은 안 그래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강수진 님이 떠오르곤 했더랬다. 그런데 금요일은 강수진 님을 본 직후에 김지영 님의 무대를 보았기 때문인지, 1막 내내 강수진 님으로 보여서 혼자 당황했다. 2막이 되어서야 김지영 님으로 보였다. 김지영 님이 TV에 나오신 것은 나는 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번번이 강수진 님과 이미지가 겹치는 걸까. 두 분은 좀 다른 성격일 것 같은데. 더군다나 나는 강수진 님의 공연은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두 분의 단정한 몸의 선 때문일까. 모르겠다.
믿고 보는 김지영 님은 보는 입장에선 언제나 억울하다. 너무 감쪽같이 아무렇지 않게 고난도의 동작을 깔끔하게 해버리시기 때문에, 김지영 님의 발레는 참 쉬워 보인다. 동작이 전혀 어려워 보이지 않아. 하지만 똑같은 동작을 다른 무용수분들께서 하셨을 때 너무 달라 깜짝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녀의 그 깔끔한 동작이 얼마나 굉장한 기술인지를 안다. 모든 선이 정확하고 깔끔한 김지영 님. 몸은 늘 수직으로, 팔을 뻗으면 균형잡힌 수평으로 모든 선과 동적이 정확해서, 그 무엇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보는 눈이 참 편안해.
동작이 정확하고 깔끔한 반면, 상대적으로 김지영 님의 연기력은 절제미가 느껴지는 편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담백하다 하겠다. 그것이 정숙한 프리기아의 성격에 아주 잘 맞는다. 화려한 동작을 하시는 다른 무용수분들을 보면 김지영 님의 동작이 좀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김지영 님의 동작이 참 좋다. 요란하지 않고 넘침이 없고 언제나 품위있게 정도를 지키는 모범적인 느낌.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에 김지영 님의 그 정직한 동작이 더욱 좋은 것일 게다. 김지영 님의 오데뜨/오딜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네. 그녀의 오데뜨/오딜에서 다른 무용수분들의 연기에선 느끼지 못했던 점을 느꼈었거든.
크랏수스 변성완 님. 변성완 님은 물성이 물씬 강조되는 춤을 보여주셨다. 뭔가 쿵, 쿵, 쿵, 육체육체스럽달까. 모멸감에 치를 떠는 부분에서 조금만 더 절실하게 느껴지면 좋겠다 싶었는데, 크랏수스라는 배역의 춤이 딱히 큰 한 방을 지니지는 못한 것 같다. 내일 허서명 님의 크랏수스를 보면 변성완 님의 연기가 좀 더 구체적으로 느껴지려나.
아이기나 박슬기 님. 우윳빛깔 박슬기 뽐뽐은 여전하셨다. 2층에서는 무용수분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여성 무용수분들의 키가 대개 일정한 국립발레단의 특성상 얼굴이 아니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발레리나가 바로 박슬기 님. 특유의ㅡ내가 반해 마지 않는ㅡ곧고 반듯한 어깨 때문에, 몸만 보아도 '박슬기 님이다!' 하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깨와 쇄골, 등의 잔근육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 은 너무 갔습니까. 아하하;; 그만큼 몸이 아름답다.
<허난설헌-수월경화>에서의 청순가련 얇은 유리같던 이미지는 싹 사라지고, 요부도 요부도 그렇게 예쁘고 가볍고 자존심 드높으면서 망설임 없이 교활한 요부가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이번에 박슬기 님의 동작을 유심히 보았는데 역시 국립이지 싶은 것이, 90도, 180도, 식으로 선이 참 정확하셨다. 이전에는 김지영 님의 동작만 유독 눈에 들어왔더랬는데, 이번 공연에서 박슬기 님의 동작도 많이 인상 깊었다. 정확하고 빠르고 유연하고 부드러우면서 가벼운 동작. 로마 군인들과 함께 행진하는 장면에서, 박슬기 님의 다리가 어찌나 사뿐사뿐하신지. 요염할 땐 꿀통에 빠질 듯 요염하고, 배신의 순간에는 가차 없이 냉혹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크랏수스를 독려하는 부분에선 확신 가득한 모습이 참 다채로워 보기에 즐거웠다. 회를 거듭해 보면서 박슬기 님의 춤 스타일이 점점 인상에 남고 있다. 지금으로선 정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맑음이 박슬기 님의 춤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앞으론 어떻게 변하게 될까 기대된다.
아무래도 <허난설헌-수월경화>에서 박슬기 님과 비교될 수 밖에 없었던 분이 신승원 님이다. 그리고 같은 아이기나 역을 오늘 토요일, 신승원 님께서 연기하신다. 아까는 보면서 신승원 님께서 프리기아를 연기하셨다면 좋았을 걸 싶긴 했는데ㅡ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오열하는 장면이 아주 절절할 것 같아서ㅡ, 하지만 신승원 님의 요부 연기 또한 몹시 궁금하다.
스파르타쿠스 이재우 님. 이재우 님은... 남성 무용수분들에겐 민폐 캐릭터이시지 뭔가. 등장하는 순간 무대를 채우는 그 존재감을 어쩌겠는가. 아니 세상에 그 큰 예당 오페라극장도 이재우 님껜 작다, 작아;; 그 키에 그 비율에 그 근육에 그 스피드와 높이라니. 이재우 님의 연기는 김지영 님의 것과 좀 닮은 면이 있는데, 김지영 님의 경우 담백함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충분히 승화시켰다면, 이재우 님의 담백한 연기는 아직 뭔가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스파르타쿠스>에서의 이재우 님은 그야말로 스파르타쿠스의 현현 같아 보이지 뭔가. 강한 의지와 진지함이 돋보이는 스파르타쿠스를 잘 연기해주셨다. 다만... 힘이 넘치는 부분 보다는 부드러운 부분을 보는 것이 조금 더 좋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론 신기했다. 그러니까 김지영 님과 빠 드 되를 추셨을 때, 물론 그 부분에선 안무 자체가 너무 아름답긴 했는데, 이재우 님의 그 다정하면서도 민첩한 손길로 인해 김지영 님이 더욱 빛나 보이는 걸 보고 감탄했었다. 한 순간도 어김 없이 꼼꼼하고 부드럽게 김지영 님을 서포트하는 손길에 반했다. 이번 <스파르타쿠스>에선 김지영 님의 동작이 바뀌는 순간에 팔다리를 서포트하시는 연결동작에서도 김지영님의 팔과 다리를 쓰다듬는 장면에서, 프리기아를 향한 스파르타쿠스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 참 좋았다. 이재우 님 역시 작년에 보았던 배역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감상은 비슷했는데, 다만 올해 이재우 님의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드라마'가 더욱 풍성하고 세련되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재우 님이 무대에 서면 눈을 뗄 수 없을 뿐이고.
오늘 공연의 스파르타쿠스는 김기완 님인데. 카라보스 역으로 눈에 여러 번 익혔던 만큼 김기완 님의 스파르타쿠스도 몹시 기대된다.
작년 공연은 1층 맨 앞에서 보는 바람에 군무를 희생해야 했다. 그리고는 한이 맺힌 듯 금토일 사흘을 모두 2층 B블럭 4열로 예매했는데, 역시 군무는 2층인 것이다. 아... 이 춤이 이런 춤이었구나! 이 발레가 이런 발레였구나! 하고는 감격했던. 특히 검투사와 목동들의 춤에서는 남성미 가득한 군무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는데, 그래. 이것이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남성군무였구나! 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무용수분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그 군무를 이틀 더 즐길 수 있지, 으하하. 오늘 토요일은 어제와 거의 비슷한 자리이니 즐겁게 군무를 즐길 수 있겠다.
오늘 함께 한 일행은 전막 발레를 처음 본 것이었는데, '동영상을 보았을 때는 별로 몰입할 수 없었는데, 공연을 직접 보니 몰입이 잘 되었다. 공연이 훨씬 재밌다'고 말해주어 몹시 기뻤다. 그게 바로 공연예술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제 아무리 완벽한 음질의 CD를 듣는다 해도, 현장에서 눈 앞의 관객에 흥분한 오페라 가수가 살작 뜬 음으로 폭발적인 성량을 뿜어내는 모습이 주는 감동을 이길 수 없고, 제 아무리 불가능한 각도에서 클로즈업된 무용수의 얼굴표정까지 꼼꼼하게 감상할 수 있다 해도, 공연 동영상이 공연 자체의 현장감이 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표현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공연예술의 동영상은 가급적 많이 배포할 수록 공연의 대중화엔 도움이 될 뿐, 결코 피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동영상은 보게 될 공연을 더욱 알뜰히 감상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정도의 역할을 하며, 그 가이드라인은 실제 공연 감상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엔 다시 그 공연의 감동을 되새기기에 또한 도움이 되는 것이고. 유툽에 공연 영상 많이 풀어주세요. 내가 원하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잖아요. -_ㅜ
작년에 미처 다 감상할 수 없었던 <스파르타쿠스>의 매력을 좀 더 알게 되어 참 좋았다. 남은 공연도 기대합니다!
[6월 24일 토요일 공연]
스파르타쿠스: 김기완
프리기아: 김리회
크라수스: 허서명
아이기나: 신승원
이 날은 좌석에 앉았는데, 저기 왼쪽 앞쪽으로 낯이 익은 분이 보였다. 우아한 회색 곱슬머리의 멋진 고토벤 님! 2층 B블럭 2열 맨 가장자리쪽에 앉으셨더랬는데, 깔끔한 정장을 멋있게 입으시고는 자리하셨다. 하루는 강수진 님. 또 하루는 멋쟁이 고토벤 님을 뵈어서 공연 시작 전부터 마음이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프리기아 김리회 님. 김리회 님의 공연을 접한 것은 작년 <잠미녀>에서의 오로라공주와 지난 주 <발레 갈라> 중 <돈키호테>의 그랑 파 드 되에서였다. 두 번 다 수직이 꼿꼿하고 깨끗한 회전이 아주 인상 깊었었고. 해서 이번에도 기대가 많았다. 우선 김리회 님 외모적 특성을 하나 발견했다. 몸이 길쭉길쭉하고 특히 팔다리가 가늘고 길다. 그러면서 말초부분, 즉 머리, 손끝, 발끝이 가는 스타일이시랄까. 그러니까 손이 작다기 보단 아마 길다 해도 가늘고 길고 끝이 뾰족하게 예쁠 것 같은 느낌이다. 가늘고 길지만 입체적이며 탄력적인 몸매를 갖고 계셨다. 그래서 오늘은 1막에서 박슬기 님 옆의 군무에 서계셨는데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속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미끈한 모습이 인어 같기도 하고. 인어에게 다리가 있다면 김리회 님의 모습일 것 같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분들의 특징인 것 같다. 90도, 180도, 그리고 의도적인 45도, 135도로 각도가 맞춰지는 것. 그것이 보기에 참 편하고 아름답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뻗은 팔과 다리의 각도, 심지어 순간순간 동작을 취하는 정강이와 팔꿈치의 각도가 기막히게 바닥과 수직을 이루거나 90도, 45도 등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은 쾌감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김리회 님 역시 각도가 참 좋으셨고. 특히 역시나 회전 부분은 참 좋았는데, 빠르고 정확하고 꼿꼿하다. 그런데 프리기아의 안무는 회전이 메인인 것이 아니어서. 2막과 3막에서의 리프트 동작이 프리기아 안무의 클라이막스인 건데, 특히 3막 <아다지오>의 오른팔만 지탱한 리프트에서 180도로 다리 각도를 맞춘 상태에서 아래의 다리를 음악에 맞춰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은 정말 아크로바틱에 다름 아닐 정도로 아찔했다. 이 동작을 금요일의 김지영 님은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지 않을 리가 있나.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암튼 평지에서 아라베스크하듯 하신 것이었고, 토요일 김리회 님은 너무나 깔끔하고 시원시원하게 잘 해내셨다! 큰 박수 짝짝짝!!! 김리회 님은 정말 기술이 좋으신 것 같다.
3막 피날레에서의 김리회 님은 절절한 연기를 잘 표현해주셨어서, 공연 후 일행에게 '김리회 님의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느냐'라 묻자 '마지막 오열 장면'이라고 ㅡ 나와 같은 의견을 ㅡ 말했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다만...
음. 김리회 님의 기술은 최고에 가까웠다. 동작도 아름답고. 순간순간 감정표현도 잘 해주셨다. 그런데... 캐릭터가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는 김리회 님의 연기를 눈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즉 내가 보는 눈이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일 게다. 하여, 내 눈에는 김리회 님이 연기하시는 프리기아의 성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갑자기 성격이 확 드러나서 깜짝 놀랐다. '어, 왜 갑자기 이렇게...;;;'의 느낌이었달까. 감정 표현 자체는 너무나 좋으셨는데 말이다. 다음 공연 때는 김리회 님께서 표현하시는 인물의 성격을 좀 더 잘 감상해 보아야겠다.
크라수스 허서명 님. 전날의 변성완 님과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셨다. 점프가 가볍고 쾌활하다. 변성완 님의 크라수스가 좀 진지한 캐릭터였다면, 허서명 님의 크라수스는 한 19~21세 사이의 어리고 쾌활하고 자신감 가득찬, 놀기 좋아하는 로마의 장군 같았다. 딱히 악의가 있거나 음흉하다기 보다는 그저 힘이 넘치고 유쾌한 소년 같은 청년인데, 스파르타쿠스 앞에서 생명의 위협과 극심한 모멸까지 당하자 순간 공포에 질렸다가, 다시 빰빰 쳐부수자, 스파르타쿠스!! 스러웠달까. 나는 그런 허서명 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생각지도 못한 캐릭터였거든. 첫날과 막날의 변성완 님에 비교하니, 허서명 님의 동작은 변환이 빨랐다. 그리고 발끝에 스프링을 달아놓은 듯 통통 튀어 오르는 모습이 경쾌했다. 몸과 맘이 건강하고 자신감에 찬 로마의 젊은이 같은 모습이 보기에 즐거웠다. 넘치는 에너자이저답게 아이기나도 번쩍 번쩍 들어올리셨는데, 크라수스의 안무가 그러하더라. 막 엄청난 회전이 20회전씩 있는 건 아니지만, 내내 퐁퐁 쿵쿵 뛰는 동작, 점프가 유난히 많았어서 체력고갈에 딱이더라는. 티 안나게 어려운, 좀 억울한? 안무인 것 같기도 하고. -_ㅜ 그래서였는지 3막 끝부분에선 좀 힘이 딸리신 것 같단 느낌이 살짝 들어 안쓰러웠더랬다. 하지만 끝까지 잘 하셨어요. 역시 한 눈에 "미남이다!" 싶은 미모는 여전하시고 말이죠.
스파르타쿠스 김기완 님. 우와아 살을 그렇게 많이 빼셨다니!!! 전날의 이재우 님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김기완 님이 등장하자, 너무나 예쁜 모습에 일행과 나는 감탄했다! <잠미녀> 때도 몸이 예쁘셨는데, <스파르타쿠스>에서는 몸에서 매력이 뚝뚝 떨어지던. 아... 정말 몸 너무 잘 가꾸셨어요. 덕분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더욱 날씬하면서도 몸이 멋지니 가벼우셨다. 점프도 높고, 동작도 시원시원하고. 그런데... 힘이 좀 없는 느낌이었던 건 좀 아쉬웠다.
힘이 좀 부족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일행의 ㅡ 사흘 내내 다른 사람들과 공연을 보았으므로, 이날의 일행에게는 김기완 님의 스파르타쿠스가 처음인 것이었다 ㅡ '나약한 스파르타쿠스 같다'라는 평에 놀랐는데, 처음 본 일행도 그렇게 느꼈던 걸까 싶었다. 음. 세 분 스파르타쿠스의 캐릭터에 대해선 25일 감상에서 한 번에 정리해 쓰겠다.
김기완 님의 선이 그렇게 정확한지 처음 알았다. 그동안 난 대체 뭘 본 걸까. 역시 국립발레단이다 싶고. 그런데 난 김기완 님의 연기는 좀 더 자세히 감상해 보고 싶어. 내가 어떤 점을 어떻게 놓치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아이기나 신승원 님. 개인적으론 이날 공연의 수퍼스타였다. 바로 전날, '신승원 님은 프리기아를 잘 하실 것 같다'는 말을 했더랬지. 그래, 마지막 공연까지 다 보고 나니, 담번엔 신승원 님의 프리기아가 보고싶어졌다. 그러니까 내 눈에 보기 좋은 동작은 박슬기 님이시지만, 신승원 님은 머리가 즐거워하는 것이 또 다시 증명되었다. 박슬기 님의 완벽한 아이기나를 2년 연속으로 보았던 나는, 신승원 님께서 그리실 '요부'라는 것이 단순하도록 강렬한 어떤 류이리라 예상했었거든. 그런데 신승원 님은 그런 나의 예상을 또 다시 부수어 버렸다. 박슬기 님의 아이기나가 타고난 부드러움과 요염함과 교활함으로, 로마와 크라수스, 실제로는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는 트라키아의 포로 검투사들을 유혹하였다면(박슬기 님이 트라키아 포로들을 경멸하는 모습은, 유혹 직후 로마군인들이 도착하기가 무섭도록 냉정하게 뿌리치고 일어나 몸을 피해 서는 동작에서 드러난다), 신승원 님은 처음부터 여왕이었다. 거 참 신기한 분인 것이, 분명 다른 발레리나분들에 비해 키가 크지 않은ㅡ작은ㅡ편이심에도 불구하고, 신승원 님의 동작에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것은 모든 동작을 망설임 없이 하시기 때문에 느끼는 것인데, 자신이 무슨 동작을 왜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하는 모습이, 단지 신분상승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요부를 넘어서는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것이다. 프리기아에게 시선을 빼앗긴 크라수스의 관심을 다시 자신에게 가져오는 동작에서도 '어디를 봐, 감히. 나를 봐야지'라는 느낌이었고, 스파르타쿠스에게 모멸당해 괴로워하는 크라수스를 독려할 때도 '정신 차려'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으며, 특히 트라키아 병사들을 유혹하러 가는 장면에서는, '이것은 나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왕으로서 내 나라를 위해 내가 나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에 있어 능동적이고 확신에 찬 모습이, 관객으로서 보기에 짜릿한 해석이었어서 전율이 일었다. 이런 확신을 연기하시는 신승원 님의 독특한 표현방법이 있었는데,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줄곧 꼿꼿하게 턱을 들고서 상대를 바라보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지만, 정확하고 영민하게 상황을 판단하고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실수 없이 정확하게 해내는 것. 그것이 과연 여왕으로서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해서, 유혹을 마친 후 로마군이 왔을 때 그녀는 당당했고, 그런 그녀를 어리고 유쾌한 성정의 크라수스를 연기해주신 허서명 님께서 너무나 잘 맞춰 주셨던 것이, 그녀를 정말 여왕을 대하듯 깍듯하게 대하셨다. 그리고는 로마군 어깨에 맨 깃대인지 장대인지를 타고 퇴장하는 순간까지 여왕감 다운 권위를 내뿜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주 즐겁게 보았다, 신승원 님의 아이기나.
그런 신승원 님께서 프리기아를 연기하신다면 어떤 캐릭터를 보여주실까, 몹시 궁금하다. 개인적으론 패전국의 포로, 스파르타쿠스의 정숙한 연인을 넘어선 애국심 가득한 강인한 프리기아를 연기해주시는 무용수분을 보고 싶은데. 그런 캐릭터라면 마지막 장면의 오열이 더욱 일관성과 개연성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신승원 님의 아이기나, 정말 잘 보았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역을 맡으시나요. 기대하는 것도 즐겁군요.
[6월 25일 일요일 공연]
스파르타쿠스: 정영재
프리기아: 박슬기
크라수스: 변성완
아이기나: 박예은B
에너지가 떨어지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ㅜㅠ 그래도 마지막 힘까지 짜서 후기를 써보도록 하자. 화, 화이팅!
프리기아 박슬기 님. 오늘 실수를 하셨죠. 3막 시작 때부터 선이 흔들리시길래 '응? 무슨 일이 있으셨나?' 싶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3막 <아다지오> 리프트 최고의 장면에서 미끌리셨는 듯, 살짝. 하지만 정영재 님과 박슬기 님이 워낙 노련하셔서는 원래의 안무인 듯 자연스레 클라이막스 동작 뒷부분을 연기해 주시는 걸 보고 두 분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일요일 박슬기 님의 연기가 좋았어서 이 장면이 더욱 안타까웠지만, 굳이 그 동작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유연하게 대처하신 모습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전체적인 연기가 너무 좋았으니 걱정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두 분의 뛰어난 순발력과 대처능력이 증명되었으니 그것이 더 놀라운 거죠.
박슬기 님의 연기는 일관되다. 부드럽고 여리고 아름답다. 박슬기 님의 아이기나는 교활함을 갖춘 요부였으나,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답고 희한하게 맑은? 성품이 묻어나는 묘한 교활함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런 특성이 프리기아를 입으니 그 또한 몹시 잘 어울리고 아련하니 아른아른하니 하늘하늘하니 여리여리하니 막 그런 거다. 손짓 하나 하실 때마다 손끝에서 하얀 우유가 똑똑 떨어지는 것 같던 느낌. 부드럽고 순수하고 매끈하고 맑다. 그런 박슬기 님의 프리기아가 피날레에서 오열할 때는 그것이 나라의 희망을 잃은 것에 대한 애통함이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과 허망함과 좌절과 절망으로 여겨졌는데, 그 모든 감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셨다. 박슬기 님의 연기는 김지영 님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해석되는 캐릭터를 보여주신 것이어서 즐거웠다.
그 박슬기 님의 어깨 이야기는 오늘도 하지 말입니다. 1막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어깨에 걸쳐 누워 양발을 오른손으로 잡고 퇴장하는 부분에서 박슬기 님의 아름다운 왼쪽 어깨와 무릎의 꺾인 각도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에 콕, 하고 박혀 버렸다. 어깨 보험 드시는 겁니다. 하긴, 박슬기 님은 온몸의 부분별 보험에 드셔야 하지만. 팔다리가 아주 시원시원하신 것이 보기에 황홀하고. 그 박슬기 님 특유의 동작이 있다. 팔을 들어 펼치는 동작에서 박슬기 님의 위쪽 팔이 90도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나머지 팔을 둥그렇게 감싸는 동작인데, 그 동작을 하실 때 가슴 안쪽으로 공간이 넓게 형성되면서, 팔이 더욱 길어 보일 뿐 아니라 굉장히 표현력 있는 자세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 상태로 기쁜 표정을 지으면 상당히 기쁜 것 같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너무나 슬픈 것 같아 보이는데, 그것이 박슬기 님 특유의 부드러운 동작과 반듯하게 곧은 어깨에 참 잘 어울려 독특한 효과를 낸다. 내게는 그렇게 보인단 뜻입니다. 부드럽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여린 박슬기 님의 프리기아를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아이기나 박예은B 님. 몹시 아름다운 분이신데. 발등도 예쁘시고. 이름은 자주 대했으나, 아직 발레감상 초보인 내가 눈여겨 보지는 못했던 분이셨다. 3막에 가서 매끈한 연기를 보여주셨어서 보기에 즐거웠고. 그런데... 음... 글쎄. 박예은B 님의 캐릭터는 내내 해석하기 쉽지 않았다. 다만 3막의 유혹과 그 직후의 모습에서 느꼈던 모습은 타고난 요부라기 보다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게 느꼈던 이유 중 하나는 트라키아 막사에서 그들의 힘을 빼기로 결심하며 퇴장하실 때 고개를 숙였기 때문인데, 그 모습에서 '원치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야...' 하는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유혹 후 로마군이 도착했을 때도 기다렸다는 듯 탁, 팽개치고 일어나기 보다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어요!'를 보여주는 모습 같아 보여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앞서 박슬기, 신승원 님의 아이기나에 비하면 어리고 서툰 아이기나 같아 보였는데, 그렇게 놓고 보니 또한 새로운 해석이 되는 것이어서 즐거웠다. '그래서 그동안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았구나' 하니 나름 일관성도 갖추어지는 것이었고. 만일 의도하신 것이 맞았다면 굉장하지 뭔가. 누가 연기하더라도 이 아이기나는 요염한 요부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을 텐데, 그것을 의도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요부'로 연기하신 것이었다면, 캐릭터에 대한 무용수분의 깊이 있는 해석이라고 난 생각해. 하지만 천재성이란 반드시 의도를 거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의도하지 않은 천재야 말로 진정한 천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만큼, 의도하지 않으신 것이었다면 그 또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면이라 하겠다. 아직은 갸우뚱하고 있지만, 다음 번엔 박예은B 님의 연기를 좀 더 주의 깊게 감상하도록 할게요.
크라수스 변성완 님. 어제 허서명 님의 크라수스를 보고는 변성완 님의 크라수스를 다시 보고 싶었더랬지. 그러고는 다시 보니 역시 '물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크라수스였다. 그것이 점프 높이가 낮다는 말이 아니다. 점프도 높고 회전도 빠르시다. 다만 연결된 동작 사이에 살짝 시간적 공간이 주어지는데, 그 점이 '무게'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한 '무게'로 표현된 변성완 님의 크라수스는 강하고 거만하고 비열한 캐릭터로 인식되었다.
이 작품에서 크라수스 캐릭터는 정말 많이 아쉽다. 시종일관 너무나 힘든 동작들을 반복하는데도 빛이 안 나는, 이상한 배역이다. 그러하기에 캐릭터를 잘 잡아 '연기'를 더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안 그래도 힘든 동작을 내내 하는 배역인데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신 것에 비해 박수를 많이 받지 못하는 크라수스 배역이 속상하다.
나는 말이야, 좀 멋진 성격의 크라수스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세계 최강 로마군대의 장군으로서 자존감 드높고, 자신과 자신의 군대의 힘에 대한 확신이 강하면서도 무엇보다 정의감이 강한 로마인 장군. 이 '정의감'이라는 단어가, 2막에서 스파르타쿠스와 대결할 때 비열하게 칼을 잡으려던 부분과 상충될 텐데, 바로 그 부분 때문에 그 해석을 보고 싶은 거다. 시종일관 당당하고 정의롭고 신사답고 그러면서 남자답고 강한 크라수스에게 죽음이 아니라 대결의 칼을 스파르타쿠스가 던졌을 때, 당당한 무관 크라수스라면 일단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 후 '신사다움'이란 덕목에 끌려 기꺼이 동의를 하고 그 칼을 잡겠지. 그리고는 충분히 신사답게 결투를 했을 것이나, 도무지 질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자신이 생에 최초로 스파르타쿠스 노예에게 패배를 하게 되었고, 드높은 정의감을 넘어서는 자존심(자존감이 아니다) 때문에 순간 혼란에 휩싸이다 결국 비열하게 칼을 쥐려 덤벼들었으나, 결국 스파르타쿠스에 의해 저지당하는 모습. 그랬을 때 크라수스는 자기환멸에 빠져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퇴장시 그가 분출하는 오열이 스파르타쿠스를 향한 복수심일지, 자기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경멸일지는 크라수스 역 무용수분께서 해석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아아... 나는 또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 ;;; 너, 너무 빠졌다. 다시 나가야겠... 는데, 허우적허우적. ㅠㅠ;;
에잇.
스파르타쿠스 정영재 님. 굉장한 수상경력의 소유자시던데. 여기서는 정영재 님을 중심으로 세 분의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감상을 같이 써볼까 한다. 정영재 님의 스파르타쿠스는 '힘'이었다. 동작의 정확성이나 점프의 높이, 회전 등은 논하지 않도록 합시다. 정영재, 김기완, 이재우 세 분의 기술에 대해선 딱히 말할 필요가 없어요. 세 분 모두 최고의 실력을 갖고 계시다. 아, 3막에서였나 2막에서였나. 스파르타쿠스의 그 20회전. 정영재 님은 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깨끗하게 완수. 넘 시원하던걸.
그리고 정영재 님은 신기하게 타이밍이 좋으셨다? 음... 이번 <스파르타쿠스>의 오케스트라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였다. 굉장한 오케스트라답게 음악이 참 좋았다. 그런데... 딱히 무용수분들을 보시면서 지휘하셨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던 연주였다. 로즈 아다지오처럼 오케스트라와의 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품은 아니긴 하지만서도, 음... 암튼 그래서였는지 정영재 님의 '타이밍'이 너무나 돋보였고, 그 시간감각으로 인해 극적 효과가 배가되었다. 음악에 적확하게 맞춰 손을 뻗고 들어 올리고 동작을 하셨어서 그 카리스마가 더욱 빛나 보였는데, 사실 무용수분들께서 그 어려운 동작들을 쉴 새 없이 하시면서 음악까지 딱딱 맞추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그냥 녹음된 음악이라면 평소 맞춰 연습할 수나 있지, 현장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이라면 그 음악에 매번 동작을 맞추는 것은 너무 힘든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관객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오케스트라의 실제 연주가 황홀하고 감사할 뿐이지만서도, 이번 <스파르타쿠스>는 살짝 서운했... 그런데 정영재 님의 그 노련한 타이밍은 감탄스럽기 그지 없었다. '이것까지 하시는 분이구나!' 싶었던.
첫날, 이재우 님의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나의 느낌은 이러했다. 그냥 타고난 리더. 육체적으로나 혈통적으로나 카리스마에 있어 타고난 리더. 자신이 딱히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은 리더로 태어났으며,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여기고 있었고, 자기 자신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여, 목동들을 설득하는 이재우 님은 엄청나게 열정적이진 않았다. 그저 조국의 패망 자체가 너무 가슴 아파서, 자신은 리더이기에, 그들의 지도자이기에 그들을 기꺼이 이끄는 모습이었다. 그런 이재우 님에게는 조국의 무게가 실려 있었고, 하여 이재우 님의 스파르타쿠스는 분노한다기 보단 진중하고 슬픈, 권위와 품위 있는 왕의 모습이었다.
둘쨋날, 김기완 님의 스파르타쿠스는 사실 왜 반란군을 이끌었는지 잘 납득되지 않았다. 눈을 가린 결투에서 자신이 죽인 상대가 자신과 같은 민족인 포로였단 사실에 분노했다는 내용인 건데, 그런 이유로만 검투사들을 모아 군대를 이끌기엔 그 이전의 스파르타쿠스의 이미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은 느낌이다. 해서 갑작스레 그에 동조하는 다른 검투사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김기완 님의 스파르타쿠스는 '리더가 되고 싶어' 한 것 같아 보였다. 해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캐릭터의 스토리를 좀 연기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뜻하고 조금은 나약한 듯한 스파르타쿠스의 느낌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점은 꽤나 매력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점이기에, 아... 그 캐릭터가 좀 더 잘 분석되었으면 너무나 즐겁겠다는 생각이 든다ㅡ인데 단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날, 정영재 스파르타쿠스는 한 마디로 '혁명가'이다. 그는 타고난ㅡ육체, 혈통적인ㅡ리더는 아닐 수 있으나, 그에게는 강력한 동기가 있고, 또 설득력과 설득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반란을 독려하고, 자발적으로 그들을 이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그의 확신에 찬 에너지 때문. 그의 지도력에는 희망이 묻어 있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라기 보단 '더 나은 내일을 위해'라는 희망이 그의 에너지의 원천이다. 해서 사람들이 그에게 설득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세 분의 스파르타쿠스에서 내가 느낀 것은 이러했는데,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스파르타쿠스 캐릭터가 있다. 바로 '비열한 스파르타쿠스'이다. 비열하다 해서 악역 마냥 비열하다는 게 아니라, 이기적이랄까. 그만큼 자존'심'이 높고 자기애가 강하여 사람들을 부추기는 스파르타쿠스 말이다. 또 너무 나간 걸까.ㅠㅠ 비열한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키는 동기는 조국애 때문이 아니다. 나는 고상하고 멋진 사람인데, 그런 내가 포로가 되어 두 눈을 감긴 채 결투를 하게 된 것 만도 수치스러운 마당에, 그런 나로 하여금 감히 내 친구를 죽이게 해? 내 사람들에게 '동료를 죽인 스파르타쿠스'라 인식되라고? 참을 수 없다! ㅡ 이렇게 해석되었을 때 스파르타쿠스가 노리는 것은 단지 여흥을 위해 자신으로 하여금 친구를 죽이게 만든 크라수스다. 하여 크라수스가 잡혀 왔을 때, 마땅히 그를 죽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쿠스는 그를 죽이지 않고, 자신이 이전의 크라수스의 위치에 서서는 거만하게 칼을 던진다. "자, 주워 들어!" ㅡ 그리고는 이번에는 네가 내게 죽임을 당했던 내 친구의 위치에 서게 되는 거야. 그 공포를 느끼게 해주지 ㅡ 라는 내막. 아... 또 삼천포 타고 있군. 사흘 연속 <스파르타쿠스>를 감상한 후유증이다. 흑. 암튼 세 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스파르타쿠스> 공연 때문에 금요일에 가고 싶었던 공연에 가지 못했는데 후회는 않는다ㅡ가 아니라 사흘은 짧습니다. 첫날은 전체 작품을 보느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최소한 나흘은 공연을 보아야 첫날 팀이 막날에 배치되어 다시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김지영 이재우 커플 다시 보고 싶어졌단 말입니다. -_ㅜ
아 참, 그리고 2막의 목동-검투사의 춤을 보면서 지난 주 <발레 갈라>에서의 <트로이>가 생각났다. 재밌는 것이, <발레 갈라>에서의 <세레나데>는 <지젤>에서 윌리의 군무에 대한 오마주라면, <트로이>는 이 <스파르타쿠스>에서의 '목동-검투사의 춤'에 대한 오마주라는 생각이 들었던 점이다. 동작과 의상과 음악, 분위기의 유사성 때문에 보면서 몹시 즐거웠다. 역시 큰 그림을 그리시는 강수진 단장님이다. <수월경화>부터 시작해서 계속 국립발레단의 작품들에 '연이어 시달리는' 일이 이토록 즐거워서야 원.
발레를 보고 나오는데 옆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사는 거야". 무슨 말인지 발레를 보고 나오는 사람은 딱 들으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예당 오페라극장에서 하는 어지간한 공연은 2층 B블럭 3-4열의 경우 대개 8만원을 넘어선다. 10만원이 훌쩍 넘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런데 이 엄청난 오케스트라에, 무대, 아, 무대, 대체 무대가 몇 번 바뀐 거야...; 게다가 정성스런 조명에, 저 의상에, 무엇보다 그... 최고급 실력과 연기력을 지니신 아름답고 멋진 무용수분들이 수십 명 등장하는 이 발레를 2만원에, 그것도 조기예매할인을 받아 1만 4천원에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사실상 기적이나 다름 없다. 그 어떤 공연이 있어 이토록 가성비가 좋단 말인가. 국립/유니버설 발레단과 무엇보다 예술의전당이 아니라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인 건데, 대체 영화값 보다도 싼 이 발레를 어떻게 안 즐길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3층 4층으로 가 보시죠? 가격이 1만원, 혹은 5천원입니다. 5천원. 말이 되는 가격이냐고.
아아, <스파르타쿠스 2017>은 끝났습니다. 이제... 11월에 <안나 카레리나>가 있는데... 그 사이 기획공연과 유니버설 작품들을 즐기겠지만서도, 벌써부터 국립발레단 무용수분들이 보고 싶어진다. 부디 다치지 마시고 건강히 무사히 공연들 하고 오셔요. 멋진 공연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