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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연주회] 아렌트 흐로스펠트 Arend Grosfeld 쳄발로 독주회 @ 오디오가이

by Vanodif 2017. 12. 2.











이승민 님의 쳄발로 연주를 들은 후 쳄발로 검색에 버닝하다 흥미가 생겨 버렸다. 그러던 중 딱 내가 좋아하는 하콘으로 쳄발로 공연이 떴길래 부랴부랴 신청해서 갔다. 아아 쳄발로 곡은 역시나 생소하고... 바흐를 제외하곤 또 모르는 작곡가들이었다.





이야... 벌써 올라왔네. 바로 이 공연입니다. 금요일에 있었던 이 공연은 이번에 나온 음반 발매 기념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핸드폰 영상이라선가 울림이 적게 표현되고 음이 깔끔하지 않네. 실제로 들었을 땐 훨씬 좋은 소리가 났다.





공연에서 들은 연주도 참 좋았는데, 음반의 경우 곡 하나하나마다에 맞는 튜닝이 되었다 한다. 이렇게 들으니 듣기가 좀 더 부드러운 것 같기도 하고, 참 예쁘게 녹음되었다.





오디오가이에서 듣는 쳄발로 소리는 아름답다는 말을 보고 신청한 공연답게 여기서 듣는 쳄발로의 소리는 지난 주 예당 리사이틀홀에서 들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소리가 깨끗하게 들렸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오디오가이 공간의 힘인 것 같았으나, 처음 간 것이라 정확하진 않다. 다음에 다시 가서 다른 악기로 들어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귀를 깨끗한 물로 씻고서 듣는 음악 같았달까. 부작용은 있다. 너무 깨끗하게 씻긴 바람에 어떤 부분에선 살짝 소리가 복잡하게 들린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비갠 후 맑은 날 뽀드득거리는 시야처럼 선명하게 귓속을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상쾌하다'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른 쳄발로 연주에 비해 이번에는 유독 '울림'이 독특하게 여겨졌다. 보통의 쳄발로는 다소 딱딱하며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의 소리가 나는데, 흐로스펠트의 연주에선 아름답고 풍부하게 울려퍼지는 공명이 종소리 같기도 하고 꽃향기 같기도 해서 즐거웠다. 이 점이 신기해서 연주 후 있었던 와인 다과회에서 그에게 물었다. (편의상 존칭과 존댓말은 생략한다.)


- 다른 쳄발로 연주에 비해 유독 울림이 크고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이 오디오가이라는 공간의 영향인가, 연주하신 쳄발로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당신의 연주법으로 인한 것인가?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 세 가지 모두가 다 이유이다. 오디오가이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아주 훌륭하고, 또 내가 연주한 쳄발로 자체의 울림도 있고, 내가 울림에 중점을 두어 연주하는 것도 맞다.


- '울림을 강조하는 연주'란 어떤 것인가? 쳄발로는 페달이 없고 피아노에 비해 울림이 현저히 작은 악기로 알고 있다.


+ 그렇다. 그래서 나는 쳄발로가 피아노에 비해 취약한 바로 그 '울림'을 표현하고 싶었다. 울림을 위해 내가 사용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 등을 사용한다. 

[※ 여기서 잠깐,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이란: http://www.poemspace.net/epoche/01_profile_epoche_phrase.htm]


- 아, '울림'의 표현을 위해 특별한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 하니 납득이 간다. 확실히 울림이 좋아 깜짝 놀랐다.


+ (웃음)


- 그렇다면 쳄발로는 어떤가? 다른 쳄발로에 비해 당신이 연주한 쳄발로가 특별히 울림이 좋은 것인가?


+ 그렇다. 피아노와 달리 모든 쳄발로는 제각각 다른 소리를 지니고 있다. 내 경우 네덜란드에서 제작했을 때, 울림이 가장 좋은 쳄발로로 만들어 줄 것을 특별히 주문했다.


- 와... 직접 주문제작했다는 사실, 또 울림을 위해 쳄발로 제작과 타건법 모두에 세심한 신경을 쓴 것이 멋지다. 그런데 이전의 다른 공연들에서 보았던 쳄발로들에 비해, 이번에 사용한 쳄발로의 크기가 훨씬 크다. 그것도 의도한 것인가?


+ 그렇다. 쳄발로들 중 내 모델이 가장 큰 쳄발로다. 


- 큰 쳄발로의 장점은?


+ 현이 길다. 그리고 타건감이 다르다.


- 무거운가?


+ 딱히 그렇다기 보단 좀 더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있어 경쾌한 소리를 낼 수 있다.


- 피아노와 쳄발로의 차이점은?


+ 쳄발로는 피아노 보다 오르간과 훨씬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곡은 오르간 곡인지 쳄발로 곡인지 모호한 경우도 꽤 있을 정도다. 하지만 피아노와는 조음법도, 연주법도 상당히 다르다.


- 예를 들면?


+ 건반을 칠 때 들어가는 힘부터 다르다.


- 쳄발로는 피아노 만큼의 분명한 강약 표현이 타건법으로는 힘들다고 들었다. 쳄발로를 칠 때가 더 힘이 들어가는가?


+ 반대다. 쳄발로는 살짝만 눌러도 큰 소리가 난다. 그래서 아주 섬세하게 연주해야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칠 때는 팔뚝까지의 힘을 이용하지만, 쳄발로는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가 없다. 팔 전체의 힘을 빼고 손가락 끝으로만 연주해야 한다. 피아노에 비해선 쳄발로의 소리가 좀 더 가볍고 경쾌하다.



기억의 휘발을 막기 위해 연주에 관한 중요한 대화만 복기하였는데,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서 쳄발로에 대해 자세하게 답해주어서 덕분에 쳄발로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되었다. 이처럼 친절한 답을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쳄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기초적인 질문들을 많이 드렸는데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다정하게 일일이 답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네덜란드인인 아렌트는 현재 한예종에서 반주법을 비롯한 여러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산 지 겨우 2년인데도 비정상회담 패널들 못지 않게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깜짝 놀랐는데, 한국 오기 전 4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다고 하긴 하지만서도... 이렇게나 잘 할 수 있다고?? 믿을 수가 없어 의아해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음악도 언어지!" 그 말을 들은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가로서 살아가는 것의 가장 좋은 점'에 대한 나의 황당한 질문에도 잠시 당황해하다가는 곧 진지하게 답하는 흐로스펠트. "내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지난 번 이승민 님의 쳄발로 연주가 마치 피아노처럼 다양한 서정성을 아름답게 노래했다면, 이번 흐로스펠트의 연주는 울림통이 좋은 성악가처럼 아름다운 울림이 인상적인 연주였다. 사실 프로그램곡 자체는 내도록 딱딱했는데, 앵콜곡이 의외로 서정적이고 소리가 몹시 부드러워져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 점을 또 물었더니, '일부러 그렇게 곡을 배치했다. 프로그램 곡들은 독일작곡가들의 곡이고 앵콜곡은 프랑스 작곡가인 듀프리?의 론도인데, 그 다른 문화 작곡가들의 다른 분위기를 대조시키고 싶었다'며 흐로스펠트는 웃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내어서 나로서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는데, 그것이 '의도된 대조'라는 말에 '역시'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걸 두고 '반전'이라고 하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서정성이 좀 더 짙은 곡들로 프로그램이 구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아까 이야기 나누었을 때 부탁해 보았을 걸. 깔끔하고 정돈되면서도 향기로운 울림이 돋보이는 흐로스펠트의 연주, 잘 들었습니다.





1층과 2층의 건반('층'은 쳄알못인 나의 표현입니다;;)은 음이 같으나 소리가 다르다. 2층이 좀 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지난 이승민 님 연주회 포스팅에서 올렸던 쳄발로 구조에 대한 동영상에선 2층의 건반이 좀 더 울리며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런데 그 영상에서 내 막귀로는 2층의 '울림'을 잡아내기가 몹시 힘들었던. 금요일의 연주에선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 좋았다. 음이 또렷하게 들린 덕분이다.





흐로스펠트에 따르면 피아노와 다르게 쳄발로의 건반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 등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몹시 예민하기 때문에 자주, 또 섬세한 조율이 요구된다고. 참 멋진 건반이죠? 한국에는 쳄발로 만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비행기로 데려온 본인 소유 쳄발로라 합니다.











Johann Jakob Froberger

Partita no. 2 for keyboard in D minor, FbWV 602/602a/602b/602c: Allemande - Sarabande





Johann Kaspar Kerll

Passacaglia in D minor




Johann Jakob Froberger 

Suite XVIII: Allemande-Ssarabande







위의 두 동영상은 같은 곡을 쳄발로로 연주한 것인데도, 연주자와 연주법에 따라 굉장히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낸다. 그만큼 연주자의 곡해석과 연주법이 중요하다.



Georg Böhm

Prelude - Fugue - Postlude in G minor









Johann Caspar Ferdinand Fischer

Musicalisches Blumen-Büschlein Suite No. 8 in G major

Präludium - Chaconne

Uranie: Toccata - Passacaille





이것은 위에 흐로스펠트의 이 곡 연주가 있는데도 실었다. 내가 연주자들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이렇게 들어 보아도 흐로스펠트 앨범의 연주가 훨씬 울림이 좋음을 알 수 있다. 





Johann Sebastian Bach


Prelude in G minor BWV 917

Prelude in C minor BWV 921








연주회 끝나고 와인 다과회 장소로 이동하는데, 지난 번 연주하셨던 이승민 쳄발리스트를 뵈었다.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단아하고 아름다우시던.


그리고 연주 때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핀란드 전통악기인 Kantele 연주자 Maija Kauhanen이었다?;; 안 그래도 수요일에 푸른아카에서 이야기 나누었던 분이 지난 주 핀란드 축제에서 훌륭한 연주를 들어서 참 좋았다 해서 그 기회를 놓쳐 아쉽다 싶었는데, 바로 그 연주를 하신 분을 만나게 되어 이 또한 깜짝 놀랐다며. 놀람의 연속인 연주회였다. 마이야는 내년에 오디오가이에서 녹음 작업을 위해 한국에 다시 올 예정이며, 5월에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라 한다. 







핀란드는 넓은 땅에 보이는 건 나무와 자연 뿐 전체 인구가 천 만이 안 된다는 마이야의 말에, '그래서 핀란드가 요정의 나라인 거구나!'라며 농을 했는데, 그녀의 노래를 들으니 확실히 엘프와 요정의 나라 분위기가 난다. 첫부분은 몽환적이다가 뒷부분은 아일랜드나 인디언 음악 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독특한 음악이 이국적이면서도 묘한 친근감을 불러 일으킨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이젠 크리스마스 때 눈이 내리지 않고 1, 2월에나 내린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데, 핀란드는 산타클로스의 나라가 아니었어...?;;; 기다란 핀란드의 남부에 사는 그녀에게도 백야나 흑주는 충격이었다는 말을 친근하게 건네는 그녀는 소탈한 성격이 참 좋아 보였는데, 내년 5월 있을 공연에 꼭 가서 들을 예정이다.


핀란드 전통악기인 칸텔레는 우리나라 가야금 같기도 하고 눕혀 연주하는 크로마하프 같기도 한데, 아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자 칸텔레로도 진화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의 가야금도 그런 다양한 형태로 널리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하콘이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호스트분들도 친절하시고, 그동안 다녔던 대학로 하콘 보다는 좀 더 소규모의 친근한 분위기였단 점도 또 나름의 매력이 있어 좋았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와인과 다과도 맛있었어요. 다음에도 좋은 공연 있으면 찾아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