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과장됨 없이 감히 말하건대, 김용걸과 김지영은 믿음의 무용수들이다. 매 공연마다 관객에게 실망을 안겨준 적이 없는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이기에 거리낄 것 하나 없이 바치는 말이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우아한 몸짓을 취할 때면 어떤 관객은 저 자신의 눈으로 예술이 만들어내는 숭고함을 목도하는 것만 같은 순간을 겪기도 하는데, 이는 거짓이 아니다. 그 우아한 몸짓을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면 모종의 비장함마저 감돈다. 김용걸은 때때로 무대를 전쟁터로 여기는 이의 결기어린 정조를 구현하고, 김지영은 때때로 무대를 세계의 총체라 여기는 이의 장악력을 선보이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견고해지는 이들의 힘은 모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더군다나 '발레'는 다른 영역에 비해 시간과 더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고 여기는 종류의 무용이 아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이든 몸이 소화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상상을 쉽게 할 수 없는 영역이지 않은가.
"평생 발레를 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연습을 게을리 했어도 죽기 전까지 가능한 동작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했었어요. 그런데..." ㅡ 김지영
"언젠가부터 관객들이 나를 보러 무대에 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죠." ㅡ 김용걸
시간을 거슬러서 무대를 채워야 했던 이들이 역으로 온몸으로 시간을 맞이하면서, 그리하여 역사가 쌓인 몸으로 여전히 발레를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최고의 발레리노와 발레리나가 무대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발레를 상대화하고 의심하면서, 더군다나 자기 자신에게 거는 기대까지 배반하면서 꺼내는 '한국에서 발레리노/발레리나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말은 어떤 말일까.
ㅡ 프로그램북 설명
※ 이번 공연에서 처음 본 김용걸 님은 참 훌륭한 무용수셨는데, 내가 익히 아는 분이 아니었으므로 이 포스팅은 김지영 님께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혹시 김용걸 님 팬분께서 보신다면 죄송해요.;; 또한 이번 작품의 안무에 대한 내용도 없습니다. 이 포스팅을 하는 의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국립발레단 초대 단장님이신 임성남 단장님에 대한 영상이다. 2분 50초 정도부터 나오는 위의 대표사진 속 인물이 임 단장님과 막 입단하신 스무 살 김지영 님, 그리고 김용걸 님이시라 한다. 앳된 모습이긴 하지만 지금도 거의 차이 없으신 두 분. 김지영 님은 오히려 지금이 더 아름다우시고. 시작 전부터 혼자 바가 설치된 무대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계시던 김용걸 님은 내가 발레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훨씬 전에 국립발레단에서 은퇴를 하시고 현재 한예종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계신다 한다. 왼쪽 발목에 퇴행성 관절염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전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완벽한 몸매와 유연성, 그리고 동작의 정확성을 갖고 계신 신기한 분이었다. 요즘의 어린 발레 학도들도 고 임성남 단장님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알리고 싶었다시는 김용걸 님. 공연 도중도중 위의 두 분에 관련된 부분 영상이 상영되었고, 두 분의 20년 전 모습은 이러했구나! 하며 아끼는 무용수분들의 내가 알지 못했던 과거 모습에 대해 알게 되어 신선하고 즐거운 자리였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김지영 님 이름이 빠지고 대신 <슈팅스타> 오픈 리허설에 갔을 때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에 김지영 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는 김지영 님께서 외도를 하시는 걸까 싶었다. 김지영 안나를 볼 수 없어 서운했지만, <호두까기>의 마리로 만날 수 있겠지 라는 믿음으로, 국립현대무용단과 함께 하는 발레리나의 공연은 어떤 것일까를 기대하기로 했다(<호두까기>에 나오십니다!) 김지영. 그 이름 하나로 예매한 공연. 물론 <슈팅스타> 공연과 관련 행사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세련되고 정성스런 진행 방식을 보며 감탄한 것도 사실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서 혼자 스트레칭 중이신 김용걸 님을 흘깃거리며 펼쳐든 프로그램북을 보며 마음 한 켠이 철렁, 하고 무너져내렸다.
"언젠가부터 관객들이 나를 보러 무대에 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죠." ㅡ 김용걸
황혜민 님 은퇴 공연 직후 '김지영, 이영철 님은 은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멘트를 후기에 쓰면서 나 자신이 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주연에서 조연으로, 그리고 단역으로,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면서 무대 위에선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뒷받침하기'이지, 과연 그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나는 전공자가 아니며 나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선뜻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막상 가장 힘이 넘쳐나는 시절부터 최고의 자리를 지켜오던 최고의 무용수가 나이 들고 기량이 예전같지 못하여 조연으로, 단역으로, 아버지/어머니 역할로 물러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무엇보다 그들을 보고 싶은 나와 같은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어떻게든 자신을 설득시켜 조연, 단역으로 물러난다 치자. 계속해서 20대 특유의 힘과 기량으로 힘차게 올라와 무대를 장악하는 새로운 무용수들 앞에서 과연 관객인 내가 계속해서 아끼고 익숙한 무용수분들 만을 쳐다보고 바랄 수 있겠는가. 내 눈에도 그 한창의 힘과 기량을 뽐내는 뉴페이스가 반가울 것은 어쩔 수 없이 자명한 일이다. 해서, 공연 시작도 전에 김용걸 님의 이 말씀이 내 마음을 쳤다.
안내방송이 나오고, 영상이 나오고, 김용걸 님과 김지영 님의 춤이 시작되었다. 백조와 호수에서 오데트와 지그프리드의 파 드 되. 그러나 김지영 님은 흑조의 튀튀를 입고서 춤을 추셨다.
음악이 흐르고, 김지영 님의 발끝이 포인되며 나머지 다리가 허공으로 올라가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스스로 당황스러웠는데. 그러고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게 너무 익숙한 그 선. 동작. 언제 보아도 정확하고 명쾌하여 시야가 아름다워지는 불안함 없는 바로 그 동작.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무용수의 익히 잘 알고 믿는 그 동작과 선이 무대를 그리자, '내가 김지영이라는 무용수를 참 좋아하고 있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그 안도감과 동시에 불안함이 서로 버무려져 눈물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황혜민 님 은퇴로 너무 놀라고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나의 불안은 바로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김지영 님의 이 동작마저 볼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 또 새롭고 또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지닌 훌륭한 뉴페이스 무용수분들이 등장하실 테지. 하지만 내가 이토록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김지영 님의 춤을 볼 수 없다면, 그땐 온통 낯선 무대를 마주한 그 객석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 나로 하여금 '정석의 동작'에 대한 쾌감을 처음 알게 해주신 분이 김지영 님이신데, 이 분의 그 곧고 멋진 동작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슬픔이 밀려들었다. 김지영 님의 백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품있고 아름다운데, 그녀의 동작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절망의 가시가 자라나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는 첫 작품이 끝나고 이어진 무용수와 관객의 대화. 사실상 대화라기엔 좀 무리가 있겠고, 무용수분들의 허심탄회한 마음을 우리가 듣고 감응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설마하며 내내 불안해하던 바로 그 말씀을 김지영 님께서꺼내셨다. '은퇴에 관한 고민 이야기.'
김지영 님께 자꾸 은퇴하라 권하시는 김용걸 님이 미웠다. 하지만 누구보다 친하고 서로를 위하는 오누이 같은 두 분이심을 알 수 있었기에, 김용걸 님의 그 권유는 사실상 아끼는 후배 김지영 님께서 우리 관객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해주신 염려임도 알았다. 그래서 김용걸 님이 미웠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우리가 사랑하는 김지영 님을 그렇게 아껴주는 오빠로 함께 하심이 더없이 든든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김지영 님을 아껴주시면서 서로 함께 작품활동 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아끼는 무용수를 더욱 아끼고 염려하는 선배 무용수.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무용수는 관객에게 예술을 제공하고 관객은 그런 무용수를 환호하며 소비한다. 관객의 성질은 결국 '소비'에 있기에, 무용수분들이 느끼는 불안과 배신감은 너무나 이해할 만한 것이다. 육체의 기량에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고, 몸을 최대이자 유일한 무기로 사용하는 발레는 그 어떤 장르 보다 시간의 무게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매순간 관객은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새로운 무용수를 기대하게 되고, 그 한창 때의 기량을 더는 보여줄 수 없는 무용수는 물러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는 시스템과 그 세계. 인생을 송두리째 들여 최고의 춤을 보여주었던 그들은 관객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배신하는 것은 관객 뿐일까?
20년 전의 관객 그대로 20년 후의 관객석을 채운다면 어떨까. 과연 무용수분들은 그것을 좋아하고 행복해 할까? 뉴페이스를 원하는 것은 무용수분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능하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2-30대의 관객이 보내는 환호에 더 기운을 내며 즐기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관객 역시 소비재의 운명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다만 무용수분들은 그것을 드러내어 표현하지 않을 뿐.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무용수분들이 젊은 관객층을 선호하여 6-70대 무용수분들의 공연에 2-30대의 젊은 관객들만 가득하다면, 그 무대를 무용수분들은 온전히 즐기기만 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6-70대 관객들이 찾은 공연의 무대에 2-30대의 새로운 무용수분들만 가득하다면ㅡ현실상 그런 구조이지만 나는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ㅡ그것은 과연 즐겁기만 한 공연일까?
관객이건 무용수건 서로가 뉴페이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에 자신이 오랫동안 좋아해오고 있는 무용수나 눈에 익은 관객이 보인다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큰 즐거움과 안정감과 위로가 되지 않을까.
작년, 유니버설의 <심청>에서 역대 심청들께서 한 무대에 서신 적이 있다. 무대복장을 입고선 우아하게 팔을 뻗으시던 문 단장님과 어린 심청 황혜민 님,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우아한 역대 심청분들을 무대에서 보았을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째서 무용수는 연기자처럼 무대 위에서 나이들 수 없는 걸까. 그러면 안 될까? 한창 때 한국을 휩쓸며 주연을 도맡으셨던 분들이 세월과 함께 조연으로 단역으로 기꺼이 양보를 하시면서 끝까지 관객과 함께 호흡을 해주시는 것처럼, 무용수분들도 그러하면 안 되는 걸까? 지난 번 <오네긴> 후기에도 말했지만, 대부분 왕이나 왕비의 역할은 32회전 푸에떼 기량을 요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그 나이대의 그 어떤사람보다 더욱 기품있고 아름다운 동작을 해주실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최근 국립에서 진행 중인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가 참 멋진데, 좀 더 다양한 안무를 많이 만들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창작 작품도 좋고, 기존의 <백조의 호수> 등 유명 작품에도 과감하게 손을 대어보면 어떨까. <잠미녀>에서 사냥터 장면의 춤들은 엄청난 기교를 필요로 하지는 않으면서도 충분히 유쾌하고 우아하고 보기에 즐거웠다. 혹은 이번에 <안나 카레니니>와 <오네긴>으로 접한 드라마 발레는 몰입도가 굉장하던데, 전성기의 기량이 줄어든 만큼 연기력이 더욱 깊어진 선배 무용수들이 할 수 있는 동작으로 충분한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안무가 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외 기량이 아직 충분한데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시라면, 이번 김지영 님께서 하신 것처럼 2-3번에 한 번의 공연은 후배 무용수분께 주연을 양보하시고, 다른 공연에선 주연을 맡으시는 방법도 있겠고. 방법이야 찾으면 좀 더 나오지 않을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무용수가 훌쩍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는 안정감이 있다면, 얼마든 새로운 무용수에 환호하면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친근하고 믿는 무용수를 순간순간 눈으로 쫓으며 또 안정을 느끼고, 또 환호하고 즐거워하고. 그러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짧게 이틀 정도의 공연이더라도 연기력이 더욱 깊어진 선배 무용수들이 주연으로 춤을 추는 공연을 즐기고, 또 가끔은 이번 <댄서하우스>에서 처럼 아끼는 무용수분과 우리 관객들이 아늑한 공간에 모여 앉아 춤을 춰주시고 감탄하고 서로를 나누고 소통하는 이런 자리도 있고. 이 모든 것이 은퇴를 하지 않고서도 진행되기를 원한다면, 관객으로서 지나친 욕심을 내는 걸까.
믿고 보는 김지영 님의 안정된 동작을 보면서 '내가 아끼는 무용수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없이 공연을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이전에는 이런 불안감 따위 전혀 없었는데 황혜민 님 은퇴로 너무 많이 놀랐어. 이 분들이 은퇴란 걸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어서 두려워졌다. 하지만 은퇴 만이 유일한 길은 절대 아니리라 난 생각한다. 얼마든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텐데 충분히 찾고 고민해보지 않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김지영 님의 은퇴 고민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은퇴하지 마셔요. 김지영 님과 이영철 님은 은퇴하시면 안 돼. 50대가 되고 60대, 70, 80대가 되신다 한들, 그 나이대의 그 누가 그만큼 우아하고 아름답게 춤을 출 수 있단 말인가. 백발의 무용수가 무대에서 삶을 담아 춤을 추는 발레를 나는 꿈꾼다. 그리고 나 역시 백발 관객으로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의 세월을 함께 호흡하고 기뻐하며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에잇, 또 눈물이 나네. 난 요즘 아주 눈물샘이 되어 버렸어, 젠장.
영원히 그들 만을 한결같이 바라볼 것이란 약속은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원히 우리 만을 내도록 바라보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리고 젊은 관객과 무용수에게 눈길과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최고의 무용수와 그들은 모르는 우리 관객이 세월을 타고 서로가 모르는 듯 아는 친구가 되어 함께 공연을 만들고 즐기며 함께 삶과 죽음을 꿈꾸며 준비했으면 좋겠다.
아 참, 아까 김지영 님. 연습 없는 날에 뭐 하시냐는 질문에 "재활운동 간다"는 답. -_- 순간, "저랑 같이 미술관 가요!"하고 손 번쩍 들며 소리지를 뻔.;; 날짜와 시간만 맞으면 미술관도 가고 서점도 가고 강의도 듣고 다른 공연도 보러 가고 산책도 하면 좋을 텐데. 아 막 같이 다니자고 말씀드리고 싶었... 그런데 재활운동이라니. 제발 다치지만 마셔요. 지난 번 유니버설 <오네긴> 때도 이동탁 님 다치셔서 걱정했는데. 무용수분들은 은퇴고민일랑 하지 마시고 제발 부상 당하지만 마십시다. 하지만 은퇴에 대한 고민을 우리 관객들과 기꺼이 나누어주신 김지영 님 사랑합니다♥ 근데 은퇴는 안 되셔요. 아니, 하셔도 되는데 딱 101세 때 하시는 겁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 세련되고 사려깊은, 그리고 센스있는 프로젝트에 감탄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현대무용의 무대에 세워 현대무용 속에 녹이려나 싶어 걱정이 컸는데(발레는 발레여서 좋고 현대무용은 현대무용이라 좋은 것이어서), 발레다움과 현대무용다움 사이의 아찔한 줄타기를 이렇게 절묘하게해낼 줄이야! 너무나 멋지고 귀한 시간 고맙습니다. 관객은 알 수 없는 무용수분들의 깊은 속마음과 고뇌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 참 근사했어요. 아... 현대무용까지 관심 가지면 안 되는데... 지금도 이미 너무 많은 덕질을 하고 있는데. 자꾸 관심이 가. 엉엉. ㅠㅠ
천생 발레리나 김지영 님. 스무 살 때와 똑같으셔요. 아니 지금이 더 세련되고 아름다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