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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지젤 Giselle by 국립발레단 KNB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by Vanodif 2018. 3. 20.




*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http://www.korean-national-ballet.kr/ko/performance/view?id=1045#Casting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5653





1막 


순박한 시골 처녀 지젤은 마을을 찾아온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알브레히트는 신분을 속이고 지젤에게 자신을 로이스라고 소개한다. 지젤을 사랑하는 사냥꾼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를 향해 질투심을 느끼고 그의 정체를 의심한다. 


지젤은 가을 수확 축제의 여왕이 되어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지만, 지젤의 어머니는 심장이 약한 지젤을 걱정한다. 이때, 마을 근처에서 사냥하던 쿠르랑드 공작이 그의 딸이자 알브레히트의 약혼녀인 바틸드와 함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젤의 집 앞으로 찾아온다.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가 숨겨둔 칼을 찾아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의 정체를 폭로한다. 진실을 알게 된 지젤은 충격을 받아 죽게 된다. 



2막 


깊은 밤, 숲속의 음산한 무덤가에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이 그림자는 연인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 귀신인 윌리다. 이들은 젊은 남자들을 숲으로 유인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춤을 추게 한다. 오늘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는 새로운 윌리가 된 지젤을 맞이한다. 


꽃을 들고 지젤의 무덤을 찾은 알브레히트는 그녀의 환영에 홀려 뒤쫓아 간다. 그 사이 무덤가를 찾은 힐라리온은 윌리들에 의해 죽는다. 알브레히트가 미르타의 명령으로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자 지젤은 미르타에게 그를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지젤은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 결국 알브레히트를 지켜낸다. 이윽고 새벽이 밝아오는 종소리가 울리자 지젤은 알브레히트와 영원히 이별하고 윌리들과 함께 무덤으로 사라진다.






3월 20일 화요일 <프레스콜> 후기: http://vanodif.tistory.com/1134










후기를 쓰고 싶은데 너무너무 피곤해서 쓸 수가 없다. 21일 공연에 함께 한 분들 중 세 분은 발레를 혹은 지젤을 처음 보신 분들이었는데, 끝나고 발레 입덕하겠다는 분과 <안나 카레니나> 예매하신다는 분 한 분씩 확보했다. 느하하. 국립의 공연을 보고서 팬이 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 근데 작품과 마임에 관한 설명을 미리 드렸더니 내가 발레 관련 일을 하거나 발레와 연관된 사람인 줄 아셨다고. 그, 그럴 리가요.;;  인팁의 덕질이란 게 그런 건데, 그 말씀을 하신 분이 또한 인팁이셨다는 사실이 재미난 일이다. 하하. 보면 인팁들이 더욱 내게 많이 놀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거다. "거, 선수들끼리 뭘 그리 놀라십니까". 근데 생각해 보면 '선수'이기 때문에 놀라는 걸 게다. 나도 다른 사람이 내 생각 이상 수준의 덕질을 하는 걸 보면 경탄스럽거든. 덕질이 뭔지 피부로 알기 때문에 놀라는 거야. "그냥 보는 게 좋은 거예요, 전"이라는 답에 감탄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동시에 즐겁기도 하고 그랬다. 난 유치한가봐.


박슬기님 칭찬을 엄청엄청엄청 하고 싶은데, 그저께 3시간, 어제 4시간 자고 다닌 거라 제대로 후기를 쓸 자신이 없다. <지젤> 마임도 여기에 다 풀고 싶은데. ㅠ 그동안 유니버설 공연 때 문 단장님께 받은 훈련도 있고, 또 혼자서 공부하며 익힌 것도 있어서 이번 <지젤> 마임은 꽤 해독해냈거든. 근데 에너지가 없어.


일단 자고 일어나야겠다. 박슬기 님 사랑해요. ♥



박슬기 지젤만 간략하게 언급하자. 우리 박슬기 님의 목과 팔과 다리가 점점 가늘고 길어지고 있다. 그리고 얼굴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2막 박슬기 지젤 윌리는 어찌나 가냘픈지. 보는 눈은 황홀하도록 아름답지만 그러다 사라져버리지 않으실까 걱정이 될 정도다. 다이어트 너무 하지 마셔요. 아프실까 불안해져요.ㅠ 톡, 하고 건드리면 파삭, 하고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좀 더 자세한 후기는 바라건대 토요일 저녁 공연을 본 후에 적기로 하고.


박슬기 지젤은 역시 맑다. 왜 그렇게 맑지? 춤을 보면 투명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맑고 투명하고 순수하고 착하고 선한 모습이 꼭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은 이미지다. 하필 상대가 최장신 이재우 님. 박슬기 님은 무슨... 꼬꼬마 병아리가 되어 버리셨고.ㅋ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신 거다.


딱 한 가지만 써야겠다. 2막 지젤 윌리. 박슬기 지젤 윌리는 특별했는데, 자신의 무덤을 찾은 알브레히트를 처음 만나 스치면서 앞으로 나왔을 때, 뭔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뭐냐 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윌리라는 사실조차 모르다가 이제야 막 깨닫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 목요 공연 때의 김지영 지젤과 달리 박슬기 지젤 윌리는 울고 있는 알브레히트를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 몸이 왜 이리 가볍지...?' 하고 의아해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렇게 무대 자체를 떠나 있는 듯한 모습이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러다 알브레히트와 춤을 추면서 비로소 자신의 상태를 깨닫게 되고, 또 서서히 알브레히트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 그런 박슬기 지젤 윌리에게서 알브레히트에 대한 윌리로서의 복수심이나 배신에 대한 원망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가 느낀 것이 맞는지 토요 공연 때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 너무너무너무 신기한 해석이 되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무대였다. 어서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은 오랜 기간 지켜 보면서 언젠가 함께 공연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마침내 함께 본 것이어서 감회가 평소와 달랐다. 예당과 국립발레단이 만나면 마법처럼 제공되는 믿을 수 없는 황금의 3층석 5천원 혜택. 그 말도 안 되는 혜택 덕분에 맘껏 표를 사서 지인들 혹은 모르지만 함께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공연에 초대해서 나누는 일이 가능한 건데, 적은 돈이지만 초대 받은 분들의 한결같은 기쁜 표정, 이 정도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는 평들 덕분에 기쁨이 증폭된다. 국립발레단의 공연이 그렇지. 누구든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혜택을 제공하는 곳은 없다고 확신해. 이런 수준의 공연을 이런 수준의 공연장에서 이런 가격으로 즐긴다는 건 기적입니다. 볼 때마다 예당과 국립발레단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점이다.



화요일에 이어 느낀 바지만 1막에서 김지영 지젤은 수요일 박슬기 지젤에 비해 좀 왈가닥 같은 매력이 있었다. 순진하고 착하면서 장난기도 있고 밝고 쾌활한, 화사한 개나리 같은 에너지가 가득한 발랄한 아가씨였다. 축제 때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춤을 출 때는 춤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몸짓이 보는 나의 기분까지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1막의 압권은 광기 부분이다. 김지영 지젤이 미쳐 가는 장면에선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는데, 밝고 순진한 아가씨가 납득할 수 없는 충격에 알브레히트와의 사랑을 더듬어 복기하는 과정에서 그를 찾아 달리는 장면, 그리고 알브레히트에게 검을 빼앗긴 직후 무섭도록 광기어린 웃음에서 김지영 지젤의 물오른 연기의 정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음이 저리면서도 간담이 서늘해지던 그 느낌.


그런가 하면 2막이 되고 윌리가 된 김지영 님은 음... 화요일 프레스콜에선 놓쳤던 부분이 감상되어 짜릿했다. 바로 전날 박슬기 지젤에게서 감탄했던 부분이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박슬기 지젤의 후기를 먼저 썼더라면 설명이 더 쉬웠을 것 같은데, 아...ㅠ


박슬기 지젤 윌리가 무덤에서 울고 있는 알브레히트를 처음 만났을 땐 그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설명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21일 후기에 쓰기로 하고. 그런데 김지영 지젤 윌리는 한 눈에 알브레히트를 알아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해 처음에는 마음을 닫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이 그와 함께 춤을 추는 김지영 지젤 윌리의 태도에서 지젤의 생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를 용서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 윌리로서의 그녀는 알브레히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복수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는 그녀의 마음에는 그를 아직 사랑하고 용서하고픈 마음이 있기에 그 두 마음 사이에 갈등하는 모습. 그런데 김지영 지젤 윌리는 가볍지 않다. 산뜻하고 발랄하지만 약해 빠져서 휘청휘청하는 캐릭터가 아니기에, 진지하고 신중하게 용서여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알브레히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부레(잔걸음)로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그녀는 마침내 용서를 결정한 것 같아 보였다. 전날 박슬기 지젤 윌리를 보았을 때와는 상당히 다른 해석이 나왔기 때문에 보면서 너무나 신났다. 토요일 낮공연에 다시 확인해 봐지.


김지영 님은 항상 그랬다. 몇 년 전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뜨와 오딜의 연기를 하셨을 때, 아마 거의 처음으로 내게 무용수별 해석의 불꽃을 점화시키셨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무용수분들의 오데뜨/오딜과는 완전히 달랐던 그 모습에 뇌가 쪼개지며 새로운 해석의 세계가 열렸던 그 느낌. 훌륭한 예술가이자 멋진 뮤즈다.


박종석 알브레히트의 팔에서 하늘로 높이 솟아 오르는 김지영 지젤 윌리는 중력과 체중을 잃은 듯 사뿐사뿐 날아올랐고,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이 선득선득했다. 프레스콜 덕분에 김지영 지젤을 세 번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른다.



박종석 알브레히트는 목요일 공연에서 그 매력을 확실히 알았다. 그는 진중하다. 가볍지 않다. 물론 오늘 금요일 공연의 허서명 알브레히트, 일요 공연의 김기완 알브레히트와도 비교를 해야겠지만, 화요일에 이어 두 번째 감상한 박종석 알브레히트는 역시 마음이 가벼운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동작에 은근한 무게가 실려 있어 안정감과 기품이 더해졌다. 수요일 이재우 알브레히트가 바람둥이 같았다면, 박종석 알브레히트는 양다리임에도 불구하고 바람둥이 같지 않았다. 그는 바틸드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지젤이었다. 그런데 1막에선 지젤을 그렇게까지 절절하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에 반했지만, 신중한 성격답게 아직은 알아가는 과정. 지젤을 유혹하고 함께 진도를 나가고 싶어하지만, 그녀에게 정중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캐릭터를 좋아해서 보면서 참 좋았다. 순수하면서도 밝은 왈가닥 김지영 지젤과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 박종석 알브레히트. 그는 지젤을 그냥 데리고 노는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진지한 성격 탓에 그의 유혹이나 몸짓은 다소 절제된 듯 보였다.


그러다 그가 폭발한 것은 지젤의 죽음이었다. 지젤이 죽었을 때 힐라리온과 더불어 두 분 현실로 싸우시는 줄. 그 격렬한 몸싸움에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네 탓이야! 아냐, 너 땜에 지젤이 죽은 거야! 하면서 서로를 향한 분노를 뿜어내시는 장면이 실감났다.


2막이 되고 회한 속에 지젤의 무덤을 찾은 박종석 알브레히트는 점점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지젤 윌리가 등장하자 그의 그리움이 본격적으로 깨어나고, 자신을 살리려는 지젤 윌리의 처절한 춤과 함께 하면서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든다. 아이러니다. 살아있을 때보다 지젤이 죽은 후에 점점 더 그녀에게 빠지게 되다니. 사실 공연이 끝나면서 박종석 알브레히트의 그 캐릭터가 살짝 걱정되었던 건 공연에 몰입해 혼자 느끼는 재미다. 이제 지젤을 만날 수 없는데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어 버렸으니 어떻게 해요, 알브레히트ㅡ싶었던.ㅋ


죽음의 춤에서 박종석 알브레히트가 보여주었던 바뜨리(batterie)ㅡ공중에서 두 다리를 엇갈리게 치는 동작ㅡ는 어마어마했다. 몇 회더라... 스물 몇 회던가 서른 몇 회던가. 헤아리다가 10번이 넘어가면서 충격 먹어서는 정줄 놓고 박수치느라 숫자를 놓쳤다.;; 아주... 막 너무 신났다. 박종석 알브레히트의 머리에서 별들이 사방으로 뻗어가는 것 같았다. 정말 멋졌어요. 자꾸자꾸 보고 싶지만 제발 다치지 마셔요.ㅠ 


김지영 님과 파트너를 하면 그런 것 같다. 이재우 님이 그랬던 것처럼 박종석 님 역시 바른 사람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김지영 님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동작이 깔끔하고 선이 반듯하다. 내가 바른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 느낌이 참 좋다. 이 커플, 참 사랑스럽다. 착하고 바르고 정직한 사람들 같아 행복한 마음으로 응원하고픈 이미지다.


박종석 님을 새로이 발견한 목요 공연 정말 멋졌다. 멋진 기술과 내면 깊은 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한나래 미르타는 역시... 몹시 아름답고 매끈하지만 차갑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분노. 마치 얇디 얇은 고드름으로 만들어진 분노가 느껴진다. 믿을 수 없도록 잘디 잔 부레로 인해 걷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타고서 슥 이동하는 듯한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운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막공의 한나래 지젤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윌리 군무는 멋졌지! 목요 공연에선 내가 좋아하는 아라베스크 열 이동도 훌륭했다! 사실 그 직전의 한 줄씩 나와 동작을 준비하는 음악이 나올 때부터 내 심장이 쿵덕쿵덕 뛰기 시작하는데, 한 줄 한 줄 채워지고 드디어 그 장면이 시작되면 숨이 멎는다. 그런데 목요 공연은 너무나 훌륭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행복하구나. 이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니. 스물 넷 + 두 분이다. 스물 여섯 분의 윌리가 똑같은 바로 그 타이밍에 똑같은 동작과 똑같은 호흡으로 똑같은 보폭으로 똑같이 뛰어서 자리를 이동한다는 거. 똑같은 각도의 팔과 목과 허리와 다리로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동작을 하신다는 거. 그런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연습하셨을까 하는 감동은, 한순간의 음악과 함께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빛어낸다. 너무 아름다워요, 코르 드 발레. 뭐니뭐니해도 <지젤>은 코르 드 발레가 주인공입니다.



패전트 파드되의 허서명 패전트... 어감이 이상하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목요 공연에선 포텐 터지셨던. 무슨 동작이 그렇게 깔끔합니까! 눈을 치약으로 뽀득뽀득 닦은 줄. 성큼성큼 도약은 하늘로 날아가는 줄 알았고. 그런데 선이 너무 예뻤다. 시원하고 명쾌하고 깨끗한 동작에 박수 백만 개. 오늘 금요 공연이 김리회 지젤, 허서명 알브레히트 커플이다. 


아 참, 김리회 패전트. 김리회 님의 깨끗한 선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전. 이상하게 김리회 님의 회전은 맛깔스럽다. 굉장히 미묘한 타이밍과 포인트의 문제인 것 같은데, 다른 분들과 동시에 똑같은 회전을 하셔도 더 쫀득하게 보는 맛이 난단 말이지. 오늘 금요 공연의 김리회 지젤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묙요 공연은 처음 만나 함께 했던 사람들 외에도 신기한 일이 하나 있었다. 중앙 좌석이라 일찌감치 착석하여 일행들에게 <지젤>의 감상포인트와 마임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는데, 공연 다 끝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뒷좌석에 앉으신 노신사 한 분께서 다정한 미소와 함께 내게 말씀을 거셨다. "발레에 대해 정말 많이 아시네요." 그런 적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일단 그렇게 멋지고 점잖은 노신사분을 발레 공연장에서 뵌 것이 처음이었는데ㅡ는 고토벤 님 제외ㅡ, 거기다 그런 멘트도 처음이었다. 놀라서는 "네? 아, 아닙니다"라고 했는데, "설명을 참 잘 하시더군요. 잘 들었습니다"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아니예요.;; 고맙습니다" 하고 나왔... 내가 순발력이 좀 많이 부족하다. "제가 부족함이 많습니다" 라 말씀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예요"만 연신. 촌스럽게 반응했다.ㅠ 예당과 국립발레단 덕분에 이런 근사한 소통도 하게 되는구나. 행복해라.♥


다수표는 다 썼고 이젠 2매 짜리만 남았다. 평소 함께 가던 지인들을 초대했고. 발레의 여러 공연을 함께 보아온 사람들이기에 대화가 더 풍성해질 예정이다. 


아... 공연이 네 번 밖에 안 남았네. 흑.ㅠ 한 회 한 회 보아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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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김리회 지젤: 국립 무용수분들은 유독 선이 좋은데, 김리회 님 역시 선이 깔끔해서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특유의 회전은 정말 왜 그렇게 예쁘지? 예쁘고 매력적이어서 김리회 님이 회전을 하면 눈을 뗄 수가 없다. 특히 2막 윌리씬에서 김리회 지젤이 미르타의 명령에 따라 무대 중앙으로 나오고, 곧바로 한 발을 든 채 뒤로 회전을 하실 때, 너무나 빠른 회전 때문에 깜짝 놀랐다. 당연히 박수가 터졌고. 다시 보고 싶은 회전이다. 


1막에선 김리회 지젤의 성격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2막이 되면서 다른 지젤들과 확연히 다른 김리회 지젤 윌리가 보였다. 특히 알브레히트를 살리는 춤을 출 때의 그 간절함. 마치, '자신이 그대로 소멸된다 할 지라도 알브레히트를 살리고야 말겠다'라는 의지인 듯 격렬하다 싶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춤을 추셔서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그 춤은 맨 마지막 장면에서 또 한 번의 놀라움을 주었다. 동이 트고 윌리들이 사라진 후 지젤과 알브레히트는 마지막 파드되를 춘다. 그리고는 무덤 속으로 사라져야만 하는 지젤과 그녀를 붙잡고 싶어하는 알브레히트. 김리회 지젤 윌리는 다른 그 어떤 지젤보다도 이별을 싫어했다. 알브레히트의 동작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떠나지 못한 채 마지못해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모습. 그리고 맨 끝까지 헤어지지 않으려 버티고 서있다가 마침내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길에 잡혀 끌려가기라도 하듯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모습에서 알브레히트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치열했던 지젤이었다. 마지막까지 멋진 연기를 해주신 김리회 님께 박수를 바친다.



허서명 알브레히트: 전날 페잔트 빠드되의 남성으로 포텐 터지셨던 허서명 님은 이날, 미친 알브레히... 죄, 죄송;; 암튼 혀를 내두를 정도로 너무나 깨끗하고 깔끔한 선을 자랑하셨다. 공연 내내 많은 박수를 받으셨던 건 당연한 일. 허서명 님 특유의 높고 가볍고 깔끔한 점프. 그리고 이재우 님도, 박종석 님도, 김기완 님도, 당최 국립의 발레리노분들은 공중2회전을 정말 깔끔하게 해내시는데, 그 중 허서명 님의 공중2회전은 최고다.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공중2회전은 볼 때마다 시원한 기분이 든다. 에또... 1막에서 처음엔 다소 바람둥이 같아 보였다. 능수능란하긴 한데 막 매끈하다기 보단 젊고 댄디한 남성 특유의 여유로운 유혹이었달까. 그러다 점점 지젤에게 빠져들고 그녀의 순수함에 감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 참, 정영재 힐라리온은 알브레히트보다 더 지젤을 간절히 사랑하는 분위기가 나서 재미있었다. 보통 알브레히트의 그림자에 가려 힐라리온의 존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특히 지젤이 죽은 직후 알브레히트와 싸우다가 마지막에 "날 죽여!"하고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가슴을 있는대로 내미는 모습에서 그의 지독한 아픔이 전해졌다. 지젤을 갖기 위해 일브레히트의 정체를 폭로했건만, 바로 그 폭로 때문에 지젤이 죽었다는 사실에서 자괴감에 빠진 힐라리온은 2막 처음에 주사위 놀이 하던 친구에게 "아름다운 지젤이 죽었어! 바로 나 때문에! 나, 나 때문에!"라 절규하는 모습으로 연결되었다.









이 토요 낮공연에서의 김지영 지젤은 내게 멘붕을 일으켰다. 아직 생각의 정리가 잘 되지 않았는데... 나중에 쓰겠다.



이 날, 김지영 지젤에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리가 아닌가 싶은 해석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지영 지젤의 춤에서는 '춤을 사랑하는 지젤'이 유난히 강하게 느껴졌는데, '춤을 좋아하지만 병약한' 다른 지젤들과 달리, 김지영 지젤은 약한 심장 따위 신경쓰지 않고 춤추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밝고 긍정적인 지젤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밝고 곧고 심성이 바른 지젤.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고, 의심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소녀. 그래서 힐라리온의 폭로 직후 알브레히트에게 안겼을 때 김지영 지젤은 상당히 묘했다.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의심이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처럼 충격받은 그 표정, 몸짓. 바틸드의 확인으로 인해 알브레히트의 거짓이 증명된 직후에도 김지영 지젤은 누군가에게 배신을 느끼는 그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브레히트와의 춤과 행동을 복기할 때 다른 지젤들은 그의 '사랑'을 떠올렸다면, 김지영 지젤은 알브레히트의 '진심', 즉 그 말과 행동의 '진실성'을 떠올린 것이다. 하여, 다른 지젤이 미친 이유는 당연히 사랑의 배신이었지만, 김지영 지젤의 광기는 사랑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바름, 혹은 진실이 아닌 거짓 자체를 용납하거나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 생각이 이에 이르자 아,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았는데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해석이 된 것이지?? 내게 김지영 님은 항상 그렇다. 전혀 생각지 못한 해석을 하게 만드신다. 아주 뇌가 짜릿짜릿해져.


1막이 끝났을 때만 해도 이 해석이 몹시 매혹적이긴 하나 너무 나간 거라 치부하며 지우려 했다. 그런데... 2막에서 김지영 지젤 윌리가 또... ㅠ 알브레히트를 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 애절했으나, 단지 사랑 하나만으로 그 모든 생명의 춤을 춘 것 같진 않아 보였다는 점에서 또다시 멘붕이 왔다. 어쩌면 내가 1막에서 그런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이 이어져서 그랬던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김지영 지젤 윌리는 자꾸 내게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들더란 말이다. 뭐냐하면, 그녀가 왜 알브레히트를 그렇게 목숨 다해 살렸냐 하면,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고상하고 바른 김지영 지젤의 성정상 그녀는 복수심 따위로 사람을 유혹해 죽이는 나쁜 유령은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사랑했던 알브레히트를 그렇게 죽이는 것은 바른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해서 그를 살렸다. 그것이 옳은 일이므로.


미치는 줄 알았다. 왜 자꾸 이런 해석이 되는 거냐며 혼자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런데 말이다, 김지영 지젤 윌리의 맨 마지막 장면. 못내 알브레히트를 떠나지 못해 끌려가듯 들어가는 김리회 지젤 윌리와 전혀 다르게, 김지영 지젤은 사뿐하게 알브레히트를 떠났다. 물론 마지막 파드되는 절절하게 추었으나, 그것은 알브레히트와의 모든 인연과 기억, 그러면서 이승에서의 모든 일을 정리하는 의미에서의 애절함이었을 수 있겠다. 그리고는 모든 정리를 마친 후 알브레히트가 붙잡기도 전에 부레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완전히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면서 온갖 폭탄이 다 터져 버린 거다. 당장 앉아서 공연을 다시 복기하고 싶었지만, 토요 낮공연이었던 만큼 저녁 공연도 있었고 또 일행과 식사도 했어야했기에, 쿵쿵대는 심장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넋이 빠져 공연장을 나왔더랬다.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려.


물론 내 해석은 너무 나갔다. 아, 설마 이 정도로 나가는 건 좀... 그런데 내가 워낙 한계 없는 해석을 즐기는 유형이다 보니, 이런 해석의 작업이 미치도록 짜릿하고 신나고 재미난 것이다. 나의 뮤즈 김지영 님. 정말이지 그 어떤 발레리나를 통해서도 이런 해석은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재밌고 즐겁다.



이 날 박종석 님은 바뜨리를 무려 36회를ㅡ일행은 32회라던데 난 36회로 헤아렸... 무튼 최소한 32회가 아닌가! 보다가 환희에 차 정신이 날아가는 줄 알았다. 동작 깔끔해, 점프 높으셔, 기술 훌륭해, 기품있는 연기까지. 아... 박종석 님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지젤> 3회 전공연 정말 정말 잘 하셨어요. 너무나 수고 많으셨고, 박종석 님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아 참, 어머니가 춤추던 지젤을 찾는 동안 지젤이 알브레히트 등 뒤로 숨었을 때 두 분 어휴, 그 깨알 연기... 김지영 님은 재미나다는 듯 계속 키득거리고 두 분 등 뒤로 손 잡으며 장난치고 아주 꽁냥꽁냥한 애정행각을 어쩜 그리 세심히 표현하시는지 귀여워 죽는 줄. 또 보고 싶다아.








박슬기 이재우 커플도 좀 있다 후기를 쓸 예정이다. 지금은 맘이 넘 급해.



저녁 공연 참 좋았는데, 낮공연의 충격이 너무 컸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ㅠ 일단 박슬기 지젤은 역시 맑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다른 지젤들과 달랐던 점은 뒤돌아서 알브레히트를 처음 보았을 때 '첫눈에 반한' 그 모습이 정말 잘 전달되었던 점. 박슬기 지젤에 있어 이재우 알브레히트는 한 눈에 딱 이상형이었던 거다. 그러고는 자꾸 두근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도망가려던 모습과 그런 지젤을 붙잡은 멋진 알브레히트의 팔에 대롱대롱 기대어 행복한 마음을 표현하실 때 정말로 사랑에 빠지신 것 같았다. 공연 내내 알브레히트에게 온 마음을 다 주는 지젤의 순정이 가슴 떨리도록 전해졌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치 알브레히트를 차가운 땅바닥이 아니라 꽃이 있는 자신의 무덤에 눕히는 것처럼 살포시 들어가시는 모습에서 역시 알브레히트를 향한 지젤의 순수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재우 알브레히트. 음... 뛰어난 점프, 26회 바뜨리, 깔끔한 공중2회전은 뭐, 이재우 님께는 새삼스러운 칭찬이다. 다리 하나 펴시는 것에도 시간이 걸리는 시원한 길이 덕분에 어떤 동작을 해도 맘이 시원해진다ㅡ는 물론, 동작의 선이 정확하고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길이로 선이 좋지 않다면 훨씬 더 엉망으로 보일 테니. 이재우 님은 선이 좋다.


이 토요 저녁 공연에서 느꼈던 이재우 알브레히트는 생각을 많이 하셨다. 순간순간 멈추어 고민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시작했을 때는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지젤을 희롱했으나, 지젤의 순수함과 사랑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갈수록 지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시던 모습.


그런데 말이다. 음. 사실 이 해석은 이재우 님 때문에 시작되었던 것인데 막공의 김기완 님에게 적용하면 더 납득이 갈 만한 해석이어서 어떻게 써야 할 지를 모르겠네. 막공 때 김기완 알브레히트는 다른 알브레히트들에 비해 지젤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거든. 그런데 막공 후기에 썼듯 그건 단순히 내 앞자리 관객들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었을 수도 있어서 잘 모르겠다. 에잇, 어떤 분이시든 암튼 그 해석을 써 보자.


뭐였달까. 이재우 님과 김기완 님 두 분 모두 1막에서 어머니가 윌리 이야기를 했을 때의 반응이 좀 신기했던 거다. "네가, 네가, 네가 죽을까봐!"라는 지젤 어머니의 마지막 '너'의 손가락은 알브레히트를 향했는데, 그 말을 들은 두 분이 두려워하기는 커녕 뭔가에 매혹된 느낌을 내더라는 거? 그래서 어? 이게 뭐지? 하고 놀랐다. 


물음표로 가득한 인터미션 후 2막이 시작되었는데 말이다, 내 이 고질적 비약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하더라는 거다. 어째서 이재우/김기완 알브레히트는 1막에서보다 2막의 지젤에게 더 빠져든 것 같아 보이는가. 왜? 어째서? 그녀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이유로? 그것 뿐일까?


그 지점에서 내 이 몹쓸 해석이 알브레히트의 변태적 기질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알브레히트는 윌리 자체에 반한 거지. 그 오싹함. 짜릿한 소오름. 결혼식 전 남성의 배신으로 죽어 맺힌 한으로 웨딩드레스와 베일을 쓰고 등장하는 미녀 처녀귀신, 그 원한으로 인해 숲속에 들어오는 남성들을 유혹해 죽음의 춤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수없이 강조했던 '예쁜 지젤'이 이제, 그 귀신들 중 가장 아름다운 처녀귀신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지젤 윌리가 다른 스물 여섯의 윌리들과 한 명의 절대 권력 윌리 여왕 미르타에 맞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려 춤을 춘다는 거. 죽은 지젤 윌리가 생명의 춤을 추는 것만도 설레는 일인데, 다름 아닌 그녀를 배신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 춤을 춘다는 개념 자체에 그는 매료된 것 같았다. 에잇... 변태는 이런 해석을 하는 나인지도. ㅠ


암튼 이번 <지젤>은 너무너무 재밌었다. 무용수분들별로 표현하는 바가 너무 달라서 해석하느라 신났던 공연. 그립다아. ㅠ









막공연의 티켓을 두 종류로 샀다가 이틀 전에 황금 2층석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막공에 눈에 가장 담고픈 것이 다름 아닌 윌리 군무였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옳았다. 하지만 이 날 관객 매너가 완전... @#@$#%였어서 한나래 지젤을 거의 감상하지 못했다. 앞좌석에 엄마와 아들이 앉았는데, 1막 내도록 잔뜩 몸을 앞으로 숙여 감상하는 바람에. 분명 입장할 때 한 명 한 명에게 어셔분께서 "오늘 공연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바른 자세로 관람해 주셔요"라고 부탁했는데도, 내도록 뽀뽀를 하고 귓속말을 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움직이다가는 중요한 장면에서마다 몸을 앞으로 잔뜩 기울이는 바람에 기분이 정말... 시각예술 발레를 보러 오면서 그 정도 매너를 갖추지 않고 오다니 속상한 일이다. 결국 인터미션 때 어셔 분께 말씀을 드렸더니 공손히 말씀하시는 어셔 분께 도리어 소리 높여서 "누가 그래요? 누가 그랬는데요?"하며 따지시던. 맘 같아선 "제가 그랬는데요" 말씀드리려다가 어셔분께서 지혜롭게 잘 무마하셨는데 괜히 시끄러워질까봐 가만히 있었다. 계속해서 3층에서 감상했지만 그 정도로 매너가 엉망인 관객이 이번 공연엔 없었는데 하필 막공에서 잘못 걸렸다.


회전을 시작하면 몸을 숙이셨고요, 연기를 할 만 하면 숙이셨고요, 광기가 시작되자 숙이셨고요. 똑같은 음악과 의상, 동작에서의 미묘한 차이점을 짚어내고 싶어서 있는 힘껏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시야가 대책없이 가리는 바람에 1막의 한나래 지젤과 김기완 알브레히트는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래서였나, 두 분, 다른 커플에 비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을 정도. 아마 내 기분이 나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 게다. 속상해라.


하지만 2막에서였나, 김기완 알브레히트의 공중2회전은 동작이 남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리고... 24회 바뜨리 직전의 춤이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해서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



막공에서의 송정빈 힐라리온은 그 애절함이 빛을 발했다. 그 어떤 공연에서보다 더 지젤을 향한 깊은 마음이 잘 드러났던 것 같다.



정은영 님은 작년 <잠미녀>에서 라일락요정을 맡았던 분이지...? 너무나 아름답고 시원하시던 분. 정은영 미르타는 우아하고 고상한 카리스마가 빛났다. 어쩌면 국립 여성 무용수 중 가장 크신 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길쭉길쭉한 팔다리를 뻗을 때마다 마치 이재우 님의 동작처럼 시원시원해서 보기에 좋았다. 특히 윌리 때 복수의 춤?ㅡ점프를 하시면서 무대를 회전하셨던ㅡ때는 근사한 카리스마와 특유의 시원스러움 덕분에 관객의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 당연히 선 아름다우시고. 참 보기에 즐거웠다.



전체 공연 중에 한 분, 눈에 살짝 띈 분이 계신데 1막 패전트 빠드되에서 여성의 첫 번째 솔로가 끝난 직후 춤을 추는 마을 처녀 여섯 명 중 관객이 보았을 때 무대 맨 오른쪽에 처음 배치되셨던 분. 손이 좀 크신 분이었는데, 분명 다른 분들과 똑같은 춤을 추는데 그분의 춤에 자꾸 시선이 갔다. 우유같은 춤이었는데, 연결동작이 부드러우면서도 우유와 같은 농도와 질감이 느껴져서 그 분 누구실까 계속 궁금해했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윌리 군무. 막공의 코르 드 발레는 너무나 훌륭해서 기어코 눈물이 찔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라베스크 열 이동이 끝날 즈음 숨이 멎도록 아름다웠는데, 참 내가 복이 많구나. 이런 아름다운 공연을 이렇게 볼 수 있다니, 하며 마음이 자꾸 뭉클뭉클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똑같은 타이밍과 각도, 동작으로 하나의 윌리인 듯 춤추시는 모습과, 또 미르타가 '너희들은 지젤을 깨우고', '너희 두 윌리는 가서 내 마법 지팡이를 가져 오너라'라 명령했을 때 26분의 모든 윌리가 똑같은 각도의 얼굴로 '네!'하고 끄덕이며 일사불란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지젤봇인줄. 세심한 동작 하나하나 정확하게 맞추신 코르 드 발레에 마음 다해 박수를 보냅니다.






코심과 함께 한 오케스트라 연주 좋았습니다. 주디스 얀이 등장하신 순간 음악 걱정은 접었죠. 역시... 동작에 딱딱 맞추시는 그 노련함이란. 무대도 좋았고. 죽음의 춤 때 무대 중앙 허공에 맴도는 구름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분들과 예당 관계자분들 수고 많으셨어요. 좋은 공연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