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화 님 서른 세 번째 앨범 Beau Soir 감상 :
https://www.youtube.com/watch?v=Pc9lr9NNLnU&list=PLy1LBe31DTwYI87QZCsztQR2FOn8YYr1S
Gabriel Fauré - Violin Sonata No. 1 in A Major, Op. 13
음. 신기하네. 분명 CD의 음질은 완벽하여 무결점의 소리를 자랑하는데, 이상하게 현장에서 들은 상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너무나 듣고 싶었던 정경화 님의 연주는 의외로 생각보다 점잖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몇 군데 음이 불안해 들리기까지 했다ㅡ지만 이건 내 귀가 막귀이므로 신뢰도는 없다. 그런데 음이 어떻게 저떻고를 떠나 아우라가 굉장했다. 아우라가 맞나. 영감이랄까. 연주가 흐르면 그냥 눈 앞에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렇게 듣는 케빈 케너의 연주는 좋다 정도지만, 실제로 들은 케너의 연주는 맑고 가볍고 고왔다. 실제로 듣는 편이 훨씬 매력적인 연주였다.
지금 유툽으로 듣고는 좀 당혹스러운 것이, 이 곡이 내가 오늘 연주에서 들은 곡이 맞나? 싶도록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영상의 연주야 훨씬 매끈하고 정제되었다. 그런데... 연상이 되지 않아. 내가 피곤한가.;;
이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로콩에서 이 연주를 들었을 때 하얀 달빛이 일렁이는 청회색 바다와 금빛 비늘을 지닌 인어가 단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가슴이 벅찼는데, 뭐랄까. 바다가 맑고 아름다운데 슬펐다. 그리고 인어는 사랑을 노래한다기 보다는 망가진 바다로 인해 마지막 남은 인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황금빛 비늘을 반짝이며 마지막 남은 고래와 물고기 떼를 모아 1, 2, 3, 4악장에 걸쳐 함께 찬란한 파멸의 노래를 부르는 느낌. 그래서 낭만 가득한 시간을 보냈더랬는데 이렇게 유툽으로 들으니... 아마 내 컴의 소리가 좋지 않기 때문이겠지.
정경화 님의 연주는 고음이 몹시 맑고 깨끗하고 거미줄처럼 가늘면서 반짝반짝 빛났다. 세월을 들여 바이올린과 함께 깊고 부드럽게 성숙하신 정경화 님의 아름다운 내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독특했던 점은, 마지막 프랑코 곡과 앵콜곡 중 드뷔시 곡에서 약한 음을 내실 때 마치 허공을 켜서 소리를 내시는 것처럼 아지랑이와 같은 아련함이 가냘프면서도 예쁘게 울려 퍼졌다.
케빈 케너의 연주는 요란하지 않고 담백하지만 음량 조절에 있어 노련함이 돋보였다. 가벼운 소리를 내실 때는 손가락이 건반에 닿는가 싶도록 딱 필요한 음량만 내셨는데, 그럼에도 모든 음이 분명하게 소리나던 것이 신기했다. 피아노의 미니멀리즘이랄까. 음량이 커야 하는 부분에선 유감 없이 소리를 내시지만, 바이올린을 방해하면서까지 튀지 않도록 섬세하면서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반주였다.
두 분의 호흡과 케미가 너무 좋아서 듣는 내내 즐거웠다. 함께 달리고 함께 쉬는 연주. 연주 내내 케너에게 귀를 기울이시던 정경화 님의 모습이 따뜻했다. 참, 정경화 님은 너무 귀여우시던. 사람들이 환호하자 여기저기 잼잼손인사를 하시는가 하면 우리쪽으로는 손키스도 하시고, 환호가 커지자 앵콜곡을 세 곡이나 해주셨을 정도로 다정하셨다. 여기저기서 "알러뷰!" "뷰티풀" 사랑고백이 터졌는데, 사람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받는 연주자를 보는 것은 행복하고 감동적인 일이다.
맘 같아선 한 곡 한 곡 다 후기를 쓰고 싶지만 에너지가 없다... ㅠ
참, 첫 음이 울렸을 때 깜짝 놀랐는데, 마치 바이올린 바로 앞에 마이크를 댄 것 처럼 음이 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끄럽게 울린 것이 아니라 깊은 공명을 표현하듯 부드럽고 청아하게 울렸다. 신기해서 듣다가 그곳이 로콩임이 떠올랐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정경화 님의 바이올린, 혹은 연주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게 울렸는지, 아니면 로콩의 구조 때문이었는지. 처음 로콩에서 연주를 들었을 때 느낀 그 동그랗게 말려들던 예쁜 울림을 잊을 수 없다. 해서, 기회 된다면 담에 예콩에서 정경화 님의 연주를 다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콩에서 들은 연주회가 네 번째인데,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곤 다 무대 가까이서 들었다. 오늘 좌석은 무대 바로 뒤인 합창석이었는데, 음... 울림이 아름답긴 했는데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오르간 연주 때도 그 생각을 했더랬는데, 그땐 내 컨디션이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자리도 살짝 과하게 울려서 소리가 좀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뭐, 내 막귀의 소감이니 모르겠다. 담번엔 가능하면 윗층에서 들어 보고 싶은데 로콩은 가기도 힘든데 가격도 너무 착하진 않아요.ㅠ
중간중간 많은 생각과 상상을 즐겼더랬는데, 일일이 쓸 에너지가 없어 아쉽다.
프로그램 곡도 좋았고 앵콜곡도 좋았다. 첫 번째 앵콜곡은 음...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인 것 같은데 기억이 벌써 휘발되어 정확히 모르겠다. 정경화 님 버전은 없고 클라라 주미 강의 영상을 올린다.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는 언제 직접 들어 보나. ㅠ
두 번째 앵콜곡인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만인이 아는 바로 그 곡을 연주하셔서 다들 웃음이 터졌다. 깔끔하던 연주.
세 번째 곡은 드뷔시였다. 근데 이것도 내 귀가 정확한지 모르겠네...
에잇, 바흐의 파르티타 <샤콘느>도 올리자. 힐러리 한의 연주다. 정경화 님의 연주는 사색적이었다. 깊음과 다정함이 묻어나는 훌륭한 연주.
거장의 연주를 듣고는 이따위 후기 밖에 쓰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음악을 오랜만에 들어선지 몇 달 동안 머릿속을 발레곡으로만 거의 채우고 있었기에 살짝 낯설기도 했고. 또 뒷모습을 보며 들어야 하는 좌석의 위치에 당황하기도 했고, 뭐, 등등ㅡ초라한 변명이군요. 담에 예콩에서 다시 들을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