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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by 국립발레단 KNB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by Vanodif 2018. 6. 21.





*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http://www.korean-national-ballet.kr/ko/performance/view?id=1079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5657&reviewYn=Y


* 작년 리뷰 & 줄거리: http://vanodif.tistory.com/1065?category=532651



원작ㅣ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Tolstoy 

음악ㅣ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 비톨트 로만 루토스와프스키 Witold Roman Lutoslawski 외 

안무ㅣ 크리스티안 슈푹 Christian Spuck 

무대ㅣ크리스티안 슈푹 Christian Spuck, 외르크 지엘린스키 Jorg Zielinsk 

의상ㅣ에마 라이엇 Emma Ryott 

조명ㅣ마르틴 게브하르트 Martin Gebhardt) 

영상ㅣ티에니 부르칼테르 Tieni Burkhalter 

음향ㅣ마르틴 도너 Martin Donner 

지휘ㅣ폴 코널리 Paul Connelly 

연주ㅣ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Korean Symphony Orchestra 

피아노ㅣ 조재혁 Cho Jaehyuck 

성악ㅣ국립합창단(조윤정, 최윤정)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예술감독 | 강수진 Kang Sue Jin 

세계 초연 | 2014년 10월 12일,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국내 초연 | 2017년 11월 01일, 국립발레단(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예당 회원의 자랑, 국립발레단 공연 전막 프레스콜 초대. 음. <안나 카레니나>에선 깅지영 안나를 볼 수 없다. 작년 공연 때 <댄서 하우스>를 하느라 빠지신 것인데, 그런 식으로 후배 무용수분들과 작품들을 나누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김지영 님께서 해석하신 안나가 몹시 궁금하다. 매 작품마다 나를 깨는 해석을 하게 만드는 무용수이시니 만큼... 인데 아니 잠깐, 그러면 김지영 님은 10월의 <마타하리> 때까지 못 보는 거야...??? 어어... 앙대.... 벌써 보고 싶은데. ㅠ 


근데 올해는 무용수분들 부상이 좀 잦으신 걸까? 막판에 캐스팅 변경도 있었고, 단독으로 맡으신 분들도 많아서 걱정이다. 다 좋아하는 분들이라 여러 번 보는 것이야 팬의 입장에선 좋은 것이지만 무용수분들 다치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다. 


오늘 나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잠을 이틀간 하루 네 시간 밖에 못 잤기 때문인데, 그래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을 컨디션이어서 그런 나의 상태가 많이 아쉬웠다. 무용수분들의 춤을 충분히 감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내일은 꼭 꼭 잠 많이 자서 반짝이는 마음으로 보아야지. 5개월도 더 전에 5회 전공연을 다 예매해 두었는데, 토요일에 지방에서 지인 결혼식이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토요일 두 회 공연을 취소했다. 전석매진이던데 누구 좋으시겠어요ㅡ는 내가 예매한 좌석은 황금좌석이란 말이야.ㅠ 너무나 속상한 것은 하필 토요 낮공연이 이영철 카레닌과 박종석 브론스키라는 점이다. 아... 이영철 님은 그 회 한 번 나오시는데. 넘넘 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쓰리다. 보고 싶습니다, 이영철 님. ㅠ 





아마 이 캐스팅이 맞을 게다. 입장 직전에 도착해서는 바빠서 캐스팅 사진을 못 찍었는데, 한나래 님과 김기완 님 이름을 확인했으니 이 캐스팅일 것 같다. 요즘 눈이 많이 나빠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어. 오케스트라는 코심이었는데 지휘자가 바뀌셨네? 나야 막상 발레가 시작하면 음악이 의식에 잘 들어오지 않는 막귀이지만, 사이사이 들린 음은 좋았다. 동작에도 세심하게 잘 맞은 것 같고.


다시 보아도 슈푹의 이 <안나 카레니나> 안무는 멋지다. 그리고 다정하달까. 안나가 카레닌에게 자신의 반대의사를 전하면서 날카롭게 대립할 때 두 발을 포인한 상태로 뻣뻣하게 서는 동작은 참 영리하다 생각한다. 그녀의 뾰족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 그리고 노동군무 역시 재치있는 안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우리 안무가분들도 세계 명작을 좀 건드려 보면 안 될까. 우리나라 것도 좋지만 명작은 그 내용이 멋진 거니까 서양의 작품이라 해도 다뤄봐도 좋을 것 같은데.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화이팅.


음악 좋고요... 미니멀리즘 유행에 잘 맞는 무대도 좋습니다. 고상한 의상은 정말 좋고. 1막 모스크바의 무도회에서 입은 튤립 모양 드레스도 예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벳시네 파티에서였나, 군무에서 사박사박 단체로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귀에 즐겁다.



한나래 안나: 이 글 쓰기 전에 잠시 작년 후기를 뒤적였는데, 한나래 안나를 보고는 놀랐다. 올해 느낀 점과 거의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나래 님의 특징인 걸까 싶기도 한데. 올해 소감으로는 당연히 박슬기 님과 아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고상함'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다. 큰 키에 긴 팔과 긴 다리를 지니셨는데도 몸이 가벼워서 리프트가 우아하다. 그리고 한나래 님 선이 이렇게 좋았나? 싶도록 선이 좋으시던데. 긴 팔, 다리와 멋진 선으로 표현하는 고상함이 은근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또한 유독 발끝이 가볍고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년에도 그렇게 느꼈다고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한나래 님 춤은 딱히 기억해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체적으로 '조심스러움'이 많이 묻어나는 것도 맞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한나래 안나는 요부가 아니었다. 정숙하고 곱고 고상한 여성. 화려한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세련되고 멋진 여성이지만 마음이 닳고 닳은 여성이 아니라 순수함과 순진함을 간직한 여성 같아 보였다. 그래서 매순간 브론스키에게 빠져들지 않으려 마음을 다지고, 또 키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정숙하고 고운 안나였다.


마음이 변덕스럽거나 가벼운 편이 아니어서 그녀의 광기가 자극적이진 않았다. 모든 면에 있어 과함이 없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이 부드러움과 성숙한 내면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섬세하고 부드러운 발끝으로 인해 착하고 고운 느낌을 주었다. 오늘 내가 느낀 것이 맞을까? 막공 때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겠으니 다행이다.



김기완 브론스키: 김기완 님 선 좋으신 거야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고. 그런데 사실 김기완 님 캐릭터는 아직 내 내공으로는 잘 잡히지 않는다. 지난 번 <말괄량이>때는 다소 '나쁜 남자'스러웠는데, 음. 잘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여성 무용수분들께 남은 에너지를 집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재우 카레닌: 오늘은 전체적으로 여성무용수분들만 간신히ㅡ그나마도 부족하게ㅡ감상했다. 이재우 님은 뭐, 보기만 해도 두 눈에 하트가 뜨니까, 난. 나는 이재우 님께서 여성무용수를 서포트하시는 모습이 참 좋다. 물론 매몰차게 안나를 내팽개치는 장면에서야 그래야 하는 연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연기가 거칠다 해도 서포트 자체는 섬세하고 정성스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성 무용수를 소중하게 대하시는 손길에 내가 감동스럽달까. 모르겠다, 실제론 어떠하실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 냉정한 모습은 소설 속의 캐릭터이니 속상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반듯한 카레닌의 모습은 이재우 님과 잘 어울린다. 



신승원 키티: 처음엔 키티가 김리회 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춤이 김리회 님이 아니다? 해서 누구시지... 싶었다. 산뜻한데 김리회 님 특유의 봄바람 같은 느낌이 아니랄까. 처음부터 신승원 님이신 걸 알았더라면 좀 더 재미나게 감상했을 텐데. 산뜻하면서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있어 강단 있는 그 느낌이 신승원 님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잘 감상할 순 없었다. 신승원 님 넘 보고 싶었는데.ㅠ 지난 <말괄량이> 때 놓치는 바람에 넘 오랜만에 보는 거다. 이번에 전공연에서 키티를 맡으셨으니 신나게ㅡ는 겨우 세 번 밖에 볼 수 없다ㅠㅡ보아야지.



김명규A 레빈: 김명규A님이셨구나... 레빈은 오늘 잘 감상하지 못했다.



박에은 돌리: 박예은 님은 박예은B님이시겠지? 지금 검색하니 아티스트 중에 박예은 님이 한 분 밖에 안 계시네? 내게 돌리는 작년의 신승원 돌리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박예은 돌리는 상당히 많이 달랐다. 그래도 스티바를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그의 바람에 더욱 괴로워하는 것도 같았고. 박예은 님 특유의 말랑 발목을 잘 감상하지 못해 아쉽다.ㅠ 내일부터 보아야지.



박종석 스티바: 그렇지. 스티바가 박종석 님이신 거지! 유난히 눈이 깨끗하다 싶었다. 선이 깔끔해서 에너지 부족한 가운데 인상적이었다.



김희선 벳시: 김희선 님도 선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화려한 성격의 벳시를 잘 연기해주셨다. 유연성이 뛰어난 벳시였다.



내일 금요일은 2층 B블럭 2열이다. 한중앙 좌석은 아니지만 칼군무가 절대적인 작품은 아니어서. 가까이서 보는 만큼 감정 연기 감상에 좀 더 유리하리라 기대한다.










속상하다... 오늘 공연 너무너무 좋았는데, 내일 아침 6시에 출발을 해야 해서 일찍 잠들어야 한다. 그래서 좋았던 만큼의 후기를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속상하다. 전막 동영상이라도 있으면 돌려 보면서 포인트를 잡아 내면 좋을 텐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 오늘 공연의 최고 멋진 점은 안나ㅡ브론스키ㅡ카레닌의 성격 케미였다. 아주 오싹오싹하던.





마음도 급하고 몸도 피곤해서 오늘 후기는 좀 많이 두서 없고 내용이 부족할 것 같다. 발레 보고 나오니까 에너지 제로가 되었어. 가능한 느낀 만큼을 쓰고 싶은 욕심인 건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슬기 안나: 박슬기, 박슬기, 박슬기! 연기에 물이 오른 박슬기 님은 형형색색 몹시 화려했다. 성격표현이 그만큼 다채로웠다는 뜻이다. 그동안 박슬기 님께 무슨 일이 있었나? 원래 몸이 낭창낭창 유연성이 뛰어난 분이시지만 뭔가 좀 달라졌다? 동작의 완성도가 높아졌달까. 마무리가 몹시 깔끔하고 세련된 동작이어서 화려한 느낌이 빛을 발한다. 1막 모스크바 무도회에서 박슬기 님의 발은 신기할 정도로 음... 단순한 '가볍다'로 설명될 게 아니고, 손끝과 발끝마다 공기층이 있는 것 같달까. 살짝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미묘했다. 세련됨. 박슬기 님 춤은 매끈매끈 세련되어서 보는 쾌감이 크다. 선도 좋고 예쁘고.


그런데 재미난 점이, 오늘 공연에서 박슬기 님은 영리하셨달까, 영민하셨달까. 브론스키와 추는 파 드 되와 카레닌과 추는 파 드 되가 다르다?? 몹시 흥미로웠는데. 그것이 안나ㅡ브론스키ㅡ카레닌 세 분 캐릭터 해석의 케미가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느꼈다. 


박슬기 안나는 러시아 최고 세련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 최고의 여성으로서 매끈매끈하고 세련된 매너와 도도함을 지녔다. 그러면서 돌리를 대하는 모습에선 더없이 부드러운 상냥함을 볼 수 있었고. 브론스키를 대하는 모습은 열정 가득했으며, 카레닌을 대할 때는 마음의 뻣뻣함이 그대로 신체로 표현되는 듯 뾰족하고 뻣뻣했다ㅡ물론 뻣뻣하다 해서 일반인의 뻣뻣함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분은 박슬기 님이시란 말입니다. 누구보다 유연하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박슬기 님. 이처럼 대하는 사람들에게마다 휙휙 캐릭터가 바뀌는 모습에 다소 복잡하긴 했지만, 안나가 러시아 최고 사교계 최고 인기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간다. 오죽했으면 그 브론스키가 한 눈에 반했겠는가. 그런 압도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이라면 그처럼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유했을 수 있겠다. 바닥에 누운 브론스키에게 붉은 드레스를 입고서 덤벼들 땐 그대로 덮치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두 분 오늘 연기력 폭발하셨죠.♥


카레닌 앞에서는 뻣뻣한 모습으로 뾰족하게 날을 세우던 안나가, 브론스키 손만 닿으면 연유처럼 녹아내린다. 두 사람을 대하는 안나 본인의 마음이 그대로 몸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너무나 분명히 알 수 있어서 보는 내내 입이 귀에 걸려 내려가질 않았다. 


박슬기 안나는 브론스키를 만나기까지는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벳시네 무도회에서 브론스키와 춤을 춘 직후였던 것 같다. 브론스키와 추다가 카레닌이 나타난 순간 그 화들짝 놀라던 모습. 그리고는 내내 충격을 받은 것 같다가 마침내 브론스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요부처럼 매혹적이던 그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순수의 결정체가 표면을 뚫고 나와 안나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밖에서 보면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젊은 남성과 사랑을 도피를 한 안나가 부정한 요부로 보이겠지만, 안나의 입장에선 생전 처음ㅡ비로소ㅡ절감하는 '사랑'의 존재 앞에 자신의 마음을 도덕의 이름으로 가리는 것 자체가 순수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사랑에는 사랑에 걸맞는 '솔직함'이 요구된다. 그리고 안나는 그 순수를 좇아 브론스키와 사랑의 여행을 떠난다.


매끈매끈한 세련미 때문에 누가 봐도 박슬기 안나는 요부로 보이겠지만, 바로 그러한 순수함의 표현 때문에 그녀가 광기로 빠져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납득되었다. 지나친 순수, 더군다나 생애 처음 폭발하는 '온전한 순수'는 필히 파멸로 치닫는다. 세상은 그만큼의 순수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낭창낭창한 춤으로 인해 표출되는 그 지독한 세련미와 농염함에도 불구하고, 박슬기 안나에게선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순수함과 순결함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가릴 것 가리고 사람들 눈을 피해 즐길 것만 즐기면서 적당히 연애했더라면 파멸로 이르지 않았겠으나, 카레닌을 보는 순간 몸이 굳어 버리는 안나의 그 지독한 순수와 솔직함으로 인해 그녀는 필히 비극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지극의 순수. 바로 그것이 박슬기 안나가 파멸에 이른 이유다.


아편에 취해 정신을 하나하나 놓아가는 과정. 그 뼈를 깎는 외로움과 괴로움. 언제였더라, 카레닌이 안나를 버렸을 즈음이었나,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홀로 아편에 취해 의자에 앉았을 때 나도 눈물이 핑 돌았는데, 울면 또 시야가 가려서 볼 수가 없으니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정말, 정말 애처롭고 슬펐다. 박슬기 님 연기가 몇 명을 울렸는지 몰라요.


박슬기 님은 독무를 하실 때도 선이 예뻤다. 뾰족뾰족. 보는 내 신경이 다 따끔거릴 정도로 불안함과 불편한 마음을 잘 표현하셨다. 


공작새 같은 박슬기 님.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우 브론스키: 이재우 님은 존재 자체가... 일단 이재우 님 서포트를 받으면 모든 여성 무용수분들이 가볍고 아름다워진다. 키가 크신 정은영 님까지 훌쩍 들어 올려 버리시는 이재우 님 손에서 박슬기 안나는 꼬마꼬마가 되었다. 여행 장면에서는 박슬기 님을 들고서는 무슨 놀이기구라도 되신 마냥 어찌나 신나고 멋지게 돌리시는지, 보는 내 마음이 녹는다, 녹아. 신승원 키티도 이재우 님 손에 걸리면 한 조각 솜이 되어 이리저리 휭휭 날아다닌다. 어디 그뿐인가. 국립의 남성 무용수분들은 거의가 여성 무용수분들을 소중히 다루어 주시지만, 우리 이재우 님은 어디였더라, 카레닌, 안나와 파 드 트루아 때 들어올린 박슬기 안나의 발목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어찌나 조심스레 내려 주시던지 내 마음이 다 포근해져. 이 정도면 국보로 지정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혼자 생각하며 하하. 이재우 님이 서포트하면 여성무용수분들이 모두 빛이 난다. 반짝반짝.


이재우 님이야 테크닉과 점프 또한 시원시원하고 뛰어나시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그런 테크닉을 뽐내는 장르가 아니라, 감정표현 연기력이 중심이 되는 드라마 발레인 만큼 깊은 내면세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재우 님이 낭만재우님이 되었다! 그러니까 작년의 느끼 능수능란하던? 모습과 다르게 정말로 낭만적인 면모를 한껏 보여주셔서 보면서 대책없이 반하게 되는 것이다. 키티와 춤을 출 때만 해도 바람 가득한 바람둥이 모습이었는데, 안나를 만나는 순간 브론스키는 순수직진남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바로 그 점이 박슬기 안나의 지독한 순수와 너무나 잘 맞아서, 두 분 보면서 들끓는 사랑의 열병 속에 나까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매순간 안나를 원하고 안나를 바라보고 안나를 사랑하는 이재우 브론스키의 그 낭만절정이라니. 가슴 터지도록 안나를 탐하면서도 막상 안나를 강하게 붙잡으면 그녀가 부서져 버릴까봐 소중히, 부드럽게 대하는 이재우 브론스키의 낭만에 반했다. 그리고 둘의 여행 장면에서는 모든 것을 미리 생각하고는 자신감 있고 자상하게 리드하는 모습에서 든든함을 느꼈다. 이재우 님은 정말 멋지단 말이지.


아 참, 출산 직후 안나를 찾은 카레닌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무대를 떠나면서 끝에 고개 돌려 카레닌을 경계하는 깨알같은 연기표현에 감탄했다. 덕분에 카레닌에 대한 해석이 더욱 확실해졌거든. 이재우 브론스키 역시 알고 있었다. 안나가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카레닌에게서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재우 브론스키의 또 다른 매력은 군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 안나와 사랑에 빠진 동안은 세기의 로맨틱가이가 되어 부드럽고 자상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든든하고 순수한, 그야말로ㅡ내 개인 취향으로는ㅡ완벽에 가까운 남성상을 보여주었는데, 안나와 함께 하지 않은 춤이나, 특히 끝에 안나를 향한 마음이 식은 브론스키는 그대로 군인의 딱딱한 분위기를 내어서 그 또한 감탄스러웠다. 감정의 변화가 그대로 전달되는 춤과 연기력이 즐거웠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여담이 맞나.;; 무도회에서 안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이재우 브론스키는 대체 왜 그렇게 멋진 겁니까. 가만히 선 채로 안나를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린다. 바로 직전 키티와 춤을 췄을 때는 그냥 미끌거리는 바람둥이였는데, 안나를 대하자 내면에 숨겨져 있던 진지함과 순수함이 그대로 나타나서는 바람둥이답게? 안나를 대하지 못하고 정직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그녀 앞에 정중하게 서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참... 아, 안 되겠다. 이재우 님을 향한 애정고백은 이제 그만. 바르고 선하고 진지한 사람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 때문에 자꾸 감정이입이 되는 거다.ㅠ 암튼, 두 분 무도회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마음이 두근두근했어요. 이재우 님은 갈수록 멋져지실 뿐이고.



송정빈 카레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ㅠ 넘 슬프다. 오늘 송정빈 카레닌 굉장했는데. 일단 몸이 항상 ㅣ이 되어 있습니다. 기둥 하나를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시종일관 꼿꼿한 그 자세는 카레닌의 완고함을 드러낸다. 송정빈 님이 표현하신 카레닌은 개인적 취향으로는 싫어하는 캐릭터인데, 예술가로서 하신 표현으로는 상당히 수준 높은 해석이었다 생각한다. 뭐랄까... 어제의 이재우 카레닌은 딱딱하면서도 안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 마치 차가운 시멘트벽 밑바닥을 찰랑이는 눈물처럼 아름답고 애틋하고 기품있었다면, 오늘의 송정빈 카레닌은 '잔혹할' 정도로 냉담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어느 장면이었더라, 전막 영상이 있으면 좋겠는데. ㅠ 안나의 불륜을 안 직후 강제로 안나를 취하려는 장면에서는 너무나 차갑고 냉정하고 강압적인 그 표현에 음악의 기괴함까지 더해져 순간, '이거 공포물이야...???' 싶어 소오름이 오싹, 끼쳤을 정도였다. 으... 완전 너무 무서웠다.ㅠ 막 거칠게 팍팍 대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안나를 쓰다듬는데 그 손길이 오싹한 거지. 거칠지 않은 것 같은데도 끝동작이 거칠어서 안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ㅡ이것은 이재우 님과 정반대의 느낌을 주었다. 아 참, 그리고 안나의 팔을 위로 휙, 낚아채는 장면에서 한 번 더ㅡ필요 이상으로ㅡ퍽, 잡아 당기는 모습이, 사실상 그리 거칠거나 아프진 않았을 텐데도 그 표정과 온몸으로 뿜어내는 냉담함으로 인해 정말 거칠게 느껴졌다. 분노의 화신에 다름 아니었는데, 왜, 불도저처럼 내달리거나 화르륵 타오르는 분노가 아니라 뼛속까지 얼려 버릴 듯 차갑고 무겁고 단단한 분노 있지 않은가. 그런 느낌이었다. 정말 정말 무서웠다. 보면서 혼자 ㄷㄷㄷ.ㅠ


그는 분명 안나를 육체적으로 학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명망 높은 집안의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답게 안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예의에 잘 맞는 품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깊이, 절절하게 안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나의 불륜 앞에 그는 너무나 잔혹하게 냉정했고, 그로 인해 안나의 비참함이 증폭되었다. 평소 그는 마음 기댈 곳 없는 안나를 그 냉정한 마음으로 학대했을 것이며, 그런 카레닌과 정반대로 부드럽고 자상하고 낭만적인 브론스키를 만났을 때 안나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주 훌륭했다, 송정빈 카레닌. 송정빈 카레닌의 잔혹한 차가움과 이재우 브론스키의 따뜻한 낭만, 그리고 박슬기 안나의 꾸며진 도도함 속에 감춰진 열정의 순수. 그 세 요소가 만나면 필히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없겠다. 세 분 해석과 연기, 탁월했다. 보면서 너무너무 즐거웠다.




다른 분들 소감도 더 쓰고 싶은데... 시간이 자정이 훨 넘었다. 어서 잠들어야 일찍 일어나니까. 그런데 하루가 지나면 기억이 날지 모르겠네. 속상해라.ㅠ 오늘은 이만 잠들기로.










슬재빈 트로이카를 어쩌면 좋은가! 아주 내 맘을 있는대로 들었다 놨다, 아니 이 분들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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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막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보면서 차근차근 자세하게 기억을 저장하고 싶었는데. 하루 동안 많은 감정이 휩쓸다 보니 기억이 많이 휘발되었다, 속상하게도. 2시 공연은 대단했다. 슬재빈 트로이카는 물론이고 벳시와 벳시연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들의 열연이 빛났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3층에서 보았는데, 역시 내게는 오페라극장 3층이 감상에는 조금 더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두 커플의 춤이 연결되거나 동시에 진행되는 장면이 많은데, 2층에서는 두 커플을 한꺼번에 감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 무용수의 동작이 움직이는 전체 선을 감상하기에도 3층이 나았다. 대신 동작의 세밀한 감상을 하는 것과 특히 표정까지 볼 수 있으니 연기력을 느끼기에는 2층이 훨씬 좋았다. <마타하리>의 장르가 뭔지 모르겠는데... 2층과 3층 모두 메리트가 뚜렷해서 욕심이 나네. 내 몸을 쪼개어 볼 수도 없고.ㅠ



박슬기 안나: 이 생각을 한 것이 기억난다. '박슬기 님이 완벽에 다가가고 있다.' 깨끗한 선에 완벽한 연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연성과 캐릭터의 표현까지. 박슬기 님의 춤에 홀리는 것만 같았다. 박슬기 안나는 확실히 화려하고 세련되었다. 모스크바 무도회에서 이재우 브론스키와 춤을 출 때 어쩔 수 없이 뿜어나오는 요염함은, 사교계 인기인다운 유혹의 몸짓이 몸에 배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이재우 브론스키와의 정사 장면에서는 붉은 드레스보다 더 붉은 열정을 뿜어내었고, 카레닌과 싸울 때는 누구보다 뾰족하게 날을 세웠다. 브론스키와 밀회를 떠났을 때는 더없이 부드러웠으며, 카레닌과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끝내 브론스키에게까지 버림을 당할 때는 처절했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잃은 채 무너지는 모습은 여기저기서 터진 훌쩍임이 증명하듯 처연하고 슬펐다.


박슬기 님은 뾰족하다. 그동안 보았던 박슬기 님의 춤을 떠올려 보아도 다 그러했다. 맑음과 순수함, 요염함과 열정, 부드러움이라는 모순된 특징을 모두 다 품고 있는 팔색조의 매력을 품은 박슬기 님은 타고난 별이다. 스타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런데 그 다양함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뾰족함'이라 표현했지만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음... '반응도가 빠르다?' '기민하다?'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그것도 만족스럽진 않네. '빠릿빠릿함'에 가까운데 그것이 단순히 빠른 것이 아니라 민감한, 그래... '민감하다'가 조금 더 어울리겠다. 그런 민감함은 예민함으로 연결되고, 예민함은 예리함 또는 vurnerable. 기실 이 단어만 생각났더랬다. '깨어질 것 같은'. 그것이 너무 의지가 약하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깨어지는 게 아니라, 의지도 분명하고 다재다능하며 영리한 만큼 모든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달까. 모든 부분의 의식이 민감하게 깨어 있기 때문에 쉽게 상처받고 깨어질 것 같아 보이는 거다. 생각해 보았는데, 없다. 이런 느낌을 주는 다른 무용수분은. 그래서 박슬기 님을 보는 것이 신난다. 누구보다 시원하고 안정적인 춤선과 완벽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박슬기 님의 존재를 감싸 흐르는 그 위태함의 감각에 가슴이 설렌다. 탄탄한 테크닉을 알기에 전혀 걱정은 되지 않지만, 뭔가 모르게 나를 끌어 당기는 기분 좋은 긴장감. 



이재우 브론스키: 좋았지. 좋았다. 와... ㅠ 안나와의 정사 장면에서 두 분 정말 불 붙은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어찌나 열정적이신지. 그런 강렬한 키스를! 이재우 브론스키가 안나를 만지고 탐하는 장면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는 거다.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급급하여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 막 키스를 퍼붓는 배려 없는 열정이 아니다. 열렬한 키스나 안나에게 달려가는 힘찬 동작으로 심장 가득 끓어 오르는 열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막상 안나를 만질 땐 세상 그렇게 애틋할 수 없는 거다. 안나 팔의 세포 하나하나에 키스를 하려는 듯 부드럽고 정성스런 키스를 팔에 퍼붓더니, 손을 만질 때도, 들었다 내릴 때도 어찌나 꿀 뚝뚝 떨어지는지. 


벳시네 파티에서 안나를 대하는 이재우 브론스키의 모습은 볼 때 마다 가슴이 뛴다. 가만히 서서 내려다 보기만 하는데도 온몸으로ㅡ진정으로ㅡ그녀를 원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 거지? 그렇다고 동작이 요란한 것도 아니다. 요란하게 들떠서 막 탐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여성들을 탐했다면, 안나를 향해 브론스키 역시 생전 처음 '사랑'을 느낀 것 같아 보일 정도로 진지하고 정성스러웠다. 눈빛 하나하나, 손짓 하나하나 그냥 하는 것이 없고, 안나를 바라보고 배려하는 모습에 보는 내가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기억이 휘발되어 순서가 좀 꼬였는데...;;


모스크바 무도회에서 안나를 만났을 때 브론스키는 다소 놀란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곧 자신이 반했음을 깨닫고 그녀에게 계속해서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안나를 따라 간 상트 페테르부르크 벳시네 파티에서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확고한 마음을 고백하는데, 그 부분이 마음 떨리는 거지. 그리고 정사 장면에서는 예의 그 터지는 열정의 도가니가 펼쳐졌고. 그, 야, 야한 영화 보는 줄 알았어요, 두 분 너무 정열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셔서. ㅋㅋ 성인으로선 즐거운 건데 옆 자리에 앉은 꼬마 관객의 눈은 가려주고 싶었던.ㅋ 그만큼 잘하셨다는 증거니깐. 아 참, 이 부분에서 섬세하다 느꼈던 장면이 있었는데, 정열을 나누다가 안나가 갑자기 충격 받은 표정으로 몸을 가리며 두려워하는 장면에서 이재우 브론스키는 분명 타오르는 도중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잠시 열정을 막는 안나의 모습에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내 일어나 안나를 다시 부드럽게 대하는 모습에서 그녀를 향한 브론스키의 부드러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한결같이 정성스럽지? 싶도록 섬세한 표현이라 느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 여행 장면에서... 이재우 브론스키는 안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몸 가득 표현했던 팽팽한 긴장감이 편안한 여유로움으로 변해 있었다. 정사를 나누기 전의 간절함과 정사의 열정, 그 후의 여유로움이라는 변화가 상당히 납득이 가서 보면서 즐거웠던 부분이다. 이탈리아에서의 이재우 브론스키는 한층 여유롭고 능수능란하게 안나를 리드했다. 안나의 손이 뻗을 곳에 브론스키의 손이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고, 여유로운 자신감과 함께 기쁜 모습으로 안나를 끌어 당기고 들어 올리고 받치는 모습. 그 뿐 아니었다. 데크에 앉아 있는 자신을 안나가 돌아 보자마자 당장 일어나 안나에게 달려가는 모습에서, 안나와의 사랑에 흠뻑 빠져 있는 브론스키의 낭만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뭐였지... 심지어 신나 보였을 정도로 춤이 동글동글 곡선진 부분이 있어서 보면서 혼자 킥, 하고 웃었을 정도.


그런 브론스키가 안나를 버리는 장면. 사실 이 장면은 안무 자체로는 설명이 많이 부족한 부분이긴 하다. 해서, 나는 그 이유를 이재우 브론스키의 한결같이 정성스러운 고백에서 찾았다. 처음부터 그는 안나를 진심으로 대했으며, 모스크바 무도회에서부터 계속해서 거절하며 머뭇거리는 안나에게 끝없이 확신을 주며 고백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까지 낳은 안나가 다시 카레닌에게 가버리고, 그 후 떠난 여행에서도 안나는 끊임없이 다른 곳을 바라본다. 브론스키는 안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렸는데도 말이다. 그런 안나가 기어코 세료자를 찾았을 때 브론스키의 마음은 단순히 사교계가 그리워서, 라기 보단 자신의 전심을 다한 진심이 끝없이 외면 당하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안나를 떠났다. 결국 안나의 선택은 자신이 아니라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서 이재우 브론스키의 낭만이 지극했던 만큼 그의 외면은 너무나 슬펐다. 딱딱하게 각이 선 그의 춤은 바로 전에 보여준 여행에서의 부드럽게 흐르는 선과 같은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것이었다. 단단하게 닫힌 그의 마음 앞에 안나의 절규는 더욱 처절했다. 이 장면 보면서 음... 이재우 님은 혹시 리드하는 것을 좋아하시나? 아니면 그런 브론스키를 표현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는데, 어떤 동작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안나와의 마지막 파드되에선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다시 애틋했지만 이미 마음은 정해진 브론스키. 아... 납득이 가면서도 속상했다. 그리고 막이 내릴 때, 밑에 조금 남은 막에까지 이재우 님의 다리가 끝까지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문자 그대로 막이 다 내려갈 때까지 연기를 하신 이재우 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송정빈 카레닌: 이재우 브론스키에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ㅠ 송정빈 카레닌! 으아아... 엄청난 캐릭터였다. 아 증말. 보면서 계속 소오름이 도도돋.;; 두 공연을 하루에 보느라 너무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것이 바로 카레닌 캐릭터 비교였다. 아주 짜릿했는데. 송정빈 카레닌은 정말 무서운 캐릭터였다. 안나를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사람. 해서, 남성으로서 마음의 배신 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더욱 견딜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무도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에게 뻣뻣한 안나를 향해 '이거 뭐지? 이 사람이 왜 이래?' 하는 듯 화가 나 보였지만,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 퇴장한다. 


경마장에서 브론스키의 낙마에 소스라치게 안나가 놀라며 달려 나가는 장면. 그 장면의 송정빈 카레닌, 와...!!! 모자 하나 벗는데도 소오름이...;;;;;;; 이재우 카레닌은 그런 안나에게 자신도 놀라며 모자를 확 벗었는데, 송정빈 카레닌은 ㅠ 서서히 일어나더니 모자를 두 손으로 잡고는 서서히 벗어서 내려 놓는다. 그 동작에서 카레닌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가 아니다. '음... 이 상황에서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벳시 무도회에서 나에게 대든 이유였었나? 내가 사람들에게서 가문을 욕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내게 대들고 또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가... 브론스키였군. 버릇을 똑똑히 고쳐 두어야겠어!' 하는 모습. 그리고는 사람들 앞에서 안나를 거칠게 끌어 당기는 카레닌. 


이어서 카레닌이 안나를 강제로 취하려는 장면은 그야 말로 호러호러였다. 안나 뒤에서 어깨를 붙잡을 때도 손가락에 힘이 가득 들어 있고, 옷을 서서히 벗기다 마지막에 팍! 하고 벗기는 그 분노. 공포의 하이라이트는 뒤에서 안나의 얼굴을 손으로 천천히 훑는 장면이었는데, 으아아아아 ㅠ 너무너무 무서웠던 거다. 전날 보았기에 그럴 걸 알고 봤는데도 더 무서워졌어. 싸이코패스 카레닌 같았어요.ㅠ 이 장면 보면서 '공포발레'라는 장르가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공포물은 볼 꿈도 꾸지 못하지만, 요란하게 잔인한 화면 없이 발레로 이렇게 품위있게 공포를 표현해 준다면 나도 신나게 공포발레?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송정빈 님 덕분에 엉뚱한 생각까지 하고는ㅡ인데 정말 그런 장르 있으면 좋겠다. 드라마 발레에 코믹 발레도 있는데 공포 발레라고 없으라는 이유는 없지 않나. 발레로 표현하면 그 어떤 장르보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공포가 될 텐데... 는 삼천포겠죠. 암튼, 송정빈 카레닌의 공포연기?는 만약 내가 혼자 보았더라면 덜덜 떨면서 신음했을 장면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안나를 버리는 카레닌은 얼음 그 자체였다. 싸늘하고 딱딱하고 거친 그에게서 얼음의 분노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송정빈 카레닌, 매력이 어마어마했어요. 발레에서 공포를 느낄 거라곤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나.ㅠ 뛰어난 캐릭터 표현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송정빈 님 커튼콜 때 가장 먼저 환호성 지른 사람이 저예요!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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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지 않은 장면이 하나 있지. 안나 출산 직후 파 드 트루아. 일부러 빼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정말 너무나 재밌었거든. 세 분 케미 진짜... ㅠ 이미 에너지가 떨어져서 받은 감동을 다 쓰지 못할 것 같아 슬픈데.


카레닌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선 이재우 브론스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줄. 그대로 송정빈 님을 관통시키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랍시고 왔으니 비켜는 주는 것이 맞으나, 안나와 둘이 두고 나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는 송정빈 카레닌이 아... 안나와 브론스키를 '용서하기로 한' 송정빈 카레닌이 병약해진 안나에게 보여준 모습은... 낭만 브론스키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난 데 없이 낭만적인 사람이 된 카레닌.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안나가 반한 브론스키를 흉내낸 것이었는데, 그것이 잘 될 리가 없지. 이 내가 낭만까지 갖추어 주겠다는데 말이야. 이러면 안나가 돌아오는 것이 맞는 거지. 그런데 안나가 자꾸 빠져 나가 브론스키와 사랑을 나눈다. '어? 이게 아닌가?' '왜 이러지?' 그 때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살짝 갸우뚱하며 당황하던 송정빈 카레닌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겨 죽는 줄. 그거 아니라고요, 카레닌. 용서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래두요. ㅋㅋㅋ 안나를 들어 올렸다가 발을 내려주는 모습에서 이재우 브론스키를 따라하듯 순간, 너무나 정성스럽던 모습. '안나가 좋아하는 게 이런 거였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또 킥킥. 그러다 아무리 흉내내도 원조 낭만의 팔에 안기는 안나를 보고는 결국 그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포기해. 그래봐야 내 아내야'라는 듯 브론스키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ㅡ이제는 낭만의 흉내를 그만 포기한 채ㅡ안나의 손을 강제로 잡고 데려가는 카레닌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송정빈 카레닌은 훌륭했다. 


음... 송정빈 카레닌이 새롭게 해석된 부분이어서 그 부분에 집중을 했는데, 이 부분에서의 박슬기 님은 더없이 연약하고 부드러웠다. 자신에게 이전에 없던 정성을 보여주는 카레닌과 한결같은 사랑을 주는 브론스키 사이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한 채 갈등하는 모습이 실감났다.


물론 이재우 브론스키의 낭만은 카레닌이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고. 박슬기 안나를 불면 날아갈까 소중히 대하는 모습이, 송정빈 카레닌과 서로 안나를 차지하려는 묘한 경쟁심과 어우러져 미묘하면서도 재미나서 몹시 즐겁게 보았다.


슬재빈 세 분. 춤은 당연한 거고, 캐릭터 해석과 표현, 연기력 정말 너무 좋았어요. 흐름상 충분히 개연성 있고 납득이 가는 해석이어서 즐겁기도 했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우리 국립 무용수분들이 이 정도야!



신승원 키티: 신승원 키티는 귀여웠다. 파티에서 브론스키를 보고 달려가 팔 밑으로 통과할 때 옆자리에서 귀엽다며 쿡쿡, 웃음이 터지던.


신승원 키티는 작년에 보았던 김리회 키티와 많이 달랐다. 김리회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거절 당한 후, 자신이 거절한 레빈의 마음을 비로소 돌이켜 보고는 공감을 하는 것 같았던 기억인데, 신승원 키티는 레빈이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서 레빈을 찾아간 느낌이었다. 아마도 망설임 없고 확실한 동작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 보면서 신승원 님은 춤을 맛깔나게 추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명규A 레빈: 순수하고 솔직한 레빈이었다. 키티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때는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았고, 거절 당한 후 괴로움에 잠겼다가 노동 후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 그리고 키티가 찾아왔을 때 토라진 모습에 그래도 다시 마음을 여는 모습이 다 전달되었다.



박예은 돌리: 음. 이동훈 스티바를 만난 박예은 돌리는 박종석 스티바 때보다 더 과격했다. 모르겠다. 두 시 공연 때는 모든 무용수분들이 열정적이어서. 마치 무대 에너지 자체가 전체적으로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달까. 뜨거운 무대였다. 이동훈 스티바와 다툴 때 강렬한 마음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고, 온몸 가득 딱딱하게 닫힌 마음이 표현되었다. 끝에 다시 스티바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시작부터 뭔가 체념한 느낌이었는데, 마치 스티바를 바꿀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체념한 것 같다고 느꼈는데, 정확히 모르겠다.



이동훈 스티바: 이동훈 스티바는 '난 그냥 이런 사람이야. 당신도 좋고 이 여자 저 여자도 좋은 거라고. 이런 걸 어떡해. 그냥 받아 들여' 라는 느낌이었다. 불륜에 대해 따지는 돌리를 향해 시원하고 당당하게 춤을 추셔서 그렇게 느꼈다. '어쩌라고' 이런 느낌.



김나연 벳시: 아... 김나연 벳시. 정말정말 좋았다. 기억이 휘발되어 안타까운데... ㅠ 연인과 함께 등장하여 무대 중앙에서 둘의 파드되를 시작하는 순간. 다리를 90도로 쭉 뻗을 때, 이 부분은 혼자 보았더라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을 부분이다. 선이 선이... 너무나 화려하고 멋져서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뾰족하게 날카로운 선인데, 그것이 세련되고 화려한 여성임을 보여주었달까. 발끝이 이동하는 각도에 선이 그려지는 것 같은 춤이었다. 김나연 벳시의 춤을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흐름상 주인공들이 등장하면 그쪽으로 시선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에ㅡ는 주인공이 무려 박슬기, 이재우 님이다;;ㅡ아쉬웠다.



김명규B 벳시연인: 벳시 연인은 정이 많은 걸 수도 있고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도 있다. 착하고 악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은영 소로키나 공주: 길다란 팔다리가 시원시원하고 우아한 모습.










재우 카레닌과 박예은 돌리가 보여주는 또다른 해석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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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래 안나, 김기완 브론스키, 이재우 카레닌에 대해선 한꺼번에 소감을 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슬재빈과는 완전히 달랐다. 래완재 버전을 보면서 이 발레 <안나 카레니나>는 카레닌의 캐릭터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교적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했지만, 꼭 소설 그대로의 표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장르가 다르고, 그 긴 내용을 단 두 시간에 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크게 삭제된 부분들이 있다. 그 삭제된 사이사이 부분들을 무용수분들 개인의 해석으로ㅡ개연성만 있다면ㅡ채우게 될 때 보는 입장에선 즐거움이 확대된다. 


내가 느끼기로 이 발레 <안나 카레니나>에서 카레닌이 중요한 이유는, 카레닌의 성격에 따라 안나의 억눌린 욕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억눌린 욕망은 자신이 희망하는 브론스키의 성격을 결정한다. 결핍된 것을 채우려 하게 되니 그러하다. 


슬재빈 트리오에서 송정빈 카레닌의 차가움과 사랑 없는 소유욕으로 인해 박슬기 안나가 부드러움과 낭만을 꿈꾸어 낭만재우 브론스키에게 빠져 들었다면, 래완재 트리오에선 잃어버린 사랑의 흔적을 갈망하는 것 같았다. 이재우 카레닌은 차갑고 딱딱했으나 안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나 역시 한 때 카레닌을 사랑했었다. 왜 그렇게 느꼈느냐 하면,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박슬기 안나가 마중 나온 송정빈 카레닌과 파드되를 추었을 때 뭔가 불안해하는 느낌이 들었던 반면, 한나래 안나는 그 장면에서 오히려 안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재우 카레닌을 만나 비로소 안심이 된다, 라는 느낌? 그래서 한나래 안나가 정숙하다 생각했다. 브론스키에게 흔들리는 마음 자체가 불편하고 싫었기 때문에,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남편을 만난 것이 반가웠던 것이다. 딱히 이재우 카레닌이 한나래 안나를 심적으로 학대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한나래 안나의 불만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왜 김기완 브론스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일까. 사실 김기완 브론스키의 해석이 쉽지 않았다. 1막에선 거의 성격을 알 수가 없었는데, 2막의 여행 장면에서 비로소 살짝 성격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성격이 이재우 카레닌과 한나래 안나의 성격과 연결하니 아귀가 맞는 것이다.


송정빈 카레닌이 사람들의 이목과 가문의 명예를 생각해서 안나를ㅡ혼내듯이ㅡ거칠게 다루었다면, 이재우 카레닌은 안나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음. 잘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니까 이재우 카레닌은 차갑다기 보다는 곧고 반듯한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는 명석하며 모든 것에 있어 자신이 생각한 반듯한 기준이 있다. 모든 것을 미리 생각하고, 모든 것이 가지런히 정리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사람.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안나의 불륜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안나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현상이었다. 순간의 흔들림 때문에 자신과 안나의 삶이 어떻게 망가질 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해서, 안나를 '타이르고 또 타일렀다'. 이 공연은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보는 공연 메이트와 보았는데, 공연 후 소감을 묻자 '이재우 카레닌은 남편이라기 보단 아빠나 오빠 같았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느낀 것과 같다. 타이르고 돌보고 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안나. 하지만 그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안나에 대한ㅡ사랑까지는 아닐런지 모르나 확실한ㅡ애정이었다. 마음의 표현을 잘 하는 낭만적인 성격이 아닌 카레닌으로선 딱딱하긴 해도 나름 안나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이재우 카레닌의 손이 미리미리 가 있고, '너, 왜 이래! 그만 두지 못해?'라는 느낌이 아니라, '그게 아니야. 그러면 안 돼'라는 느낌이 드는, 절도 있으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동작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이나 연인이 아니라 아빠나 오빠 같은 카레닌. 안나의 모든 생각을 자신이 생각한 '옳음' 안에 두려는 카레닌의 성격으로 인해 정숙한 한나래 안나가 느낀 욕망은 '내게 맞춰 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미리 정하고 자신을 이끌어가는 카레닌이 아닌, 자신에게 맞춰주는 사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어깨에 얹혀지기 전의 아직 말랑했던 카레닌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김기완 브론스키가 나타났다. 


김기완 브론스키에 대한 일행과 나의 소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이 점도 재미났다. 일행은 김기완 브론스키에 대해 '안나가 만들어낸 허상 같다'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해석을 내놓았는데, 이유를 물은 즉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잘못 들으면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인데, 말의 뉘앙스를 전달하지 못하는 글이라 그러하다. 그러니까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의도된 연기일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느낀 김기완 브론스키는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안나에게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어때? 둘의 소감이 비슷하지?


여행지에서 이재우 브론스키가 마음의 확신을 갖고서 계속 흔들리는 순간의 안나를 든든하게 리드했다면, 김기완 브론스키는 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있다가 한나래 안나가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서 돌아보면 즐거운 표정으로 달려가 안나의 손을 잡는다. 딱히 확신에 찬 사랑으로 안나를 이끈다기 보다는 안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주는 모습이었는데, 그 장면에서 성격이 부드럽고 고운 브론스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재빈 트리오에서 느낀 안나의 욕망이 '사랑'이었다면, 래완재 트리오에서 느낀 안나의 욕망은 '자유'였다. 


그렇다면 안나를 염려하는 이재우 카레닌이 결국 그녀를 포기한 이유는 뭘까. 벳시네 무도회에서, 경마장에서, 심지어 출산후의 파 드 트루아에까지 그는 끝없이 안나를 타이르고 조언하고 다시 돌이키려 애썼다. 그녀를 괘씸하게 여겨 분노했다기 보단 그녀가 가려는 길이 틀린, 잘못된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녀를 놓지 않고 타일렀다. 그러던 그의 마음이 지친 것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바른 사내인 그가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마음을 들여 안나를 돌이키려 했지만,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는 안나를 보며, 카레닌다운 자신의 모습을 안나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적인 체념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거칠고 화난 것 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안나가 미웠다기 보단 해결되지 않는 상황과 그녀를 단념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슬픔 때문인 것 같아 보였는데, 이건 내가 너무 감정을 이입해서 그렇게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재우 카레닌에서 느껴지는 성격 해석이 좋아서 즐거웠다.


이처럼 송정빈 카레닌과 이재우 카레닌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보니, 놓친 토요일 두 시 공연이 더더욱 아쉬워졌다. 무려 이영철 카레닌인데...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해 주셨을까.ㅠ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캐릭터 해석의 제왕 이영철 님이라면 분명 짜릿한 카레닌을 보여주셨을 텐데. 속상하다. 보고 싶어요, 이영철 님.



박예은 돌리와 박종석 스티바의 경우, 박종석 스티바는 돌리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조금 어린 느낌이랄까. 바람 피우는 것이 잘못인 거 알고 돌리를 사랑하는데, 그냥 마음이 빼앗겨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보였다. 돌리가 따졌을 때 화들짝 놀라며 '아냐! 난 당신 사랑해! 내 맘 몰라?'하는 듯 다급하고 살짝 과장된 춤에서 그렇게 느꼈다. 그러다 벳시네 파티에서 크게 싸울 땐 '아 몰라!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좀. 그걸 이해 못해주냐?'라는 것 같았다. 박예은 돌리와 박종석 스티바의 다툼이 내게는 좀 귀여웠는데, 물론 박예은 돌리는 스티바를 좋아하는 만큼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하고 괴로워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향한 애정을 알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그래, 내가 봐준다'하며 팔짱을 끼는 느낌이었달까. 박종석 스티바의 행동이 미운 거지, 스티바 자체가 미운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상대에 따라 성격을 바꾸어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일 텐데, 박예은 돌리는 그런 점에서 훌륭했다. 



박나리 벳시: 파티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고 매끈한 연기를 잘 보여주신 박나리 벳시. 역시 눈이 즐거웠다. 아 맞다. 금요일 공연에서 보았을 때 선이 정말 신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다. 45도 90도 135도 등 선이 명쾌해서 눈이 시원했다.



이영도 벳시연인: 이영도 님은 코미디를 담당하신 것 같아 보일 정도로 표정이 좋으셨다. 동작도 시원시원해서 회전 때마다 박수를 받으셨죠. 정 많으면서 익살스러운 모습이 귀엽고 즐거웠다.






공연 후 계속 다른 것을 접하는 바람에 지금께엔 기억이 휘발되어 아쉽다. 이번에 처음 <안나>를 본 일행도 그랬고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도 '어렵다'는 말을 하던데, 작년을 돌이켜 보면 첫장면이 가장 난해했던 것 같다. 첫장면이 안나의 장례식이라는 것만 알면 그리 어렵지 않지 싶은데, 일행은 그렇다 해도 시놉시스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란 말을 했다. 그랬나...? 나는 내용을 미리 알고 갔기 때문에 첫 장면 외에는 딱히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고전이나 낭만발레를 볼 때 32 푸에떼 같은 화려한 테크닉에 마음이 설레고 열광하게 된다면, <안나 카레니나>나 <오네긴> 같은 드라마발레는 뛰어난 캐릭터 연기와 감정표현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엄청난 회전이나 점프가 강조되지 않았다 해서 안무가 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리프트가 유난히 많고, 또 리프트 상태에서 하는 동작들이 많은 만큼 파트너 무용수와의 호흡이 더욱 많이 요구되는 장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파드되나 파드트루아에서 빚어지고 생성되는 감정들이 그 어떤 화려한 테크닉 못지 않게 마음을 두드리고 흔들고 울린다. 감정을 강조하여 전달하는 장르인 만큼 성격해석이 중요할 텐데, 그런 면에선 연륜 있는 무용수분들이 유리한 장르일 것도 같다. 좀 더 다양한 무용수분들의 감정과 해석을 즐길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드라마발레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지영 님 못 보아서 아쉽지만...ㅠ 이영철 님은 눈 앞에 두고 놓친 기분이 들어 안타깝고.ㅠ 허서명 님도 안 나오셨고... 그리고 김리회 님 마지막에 캐스팅 바뀌었던데, 혹시 다치신 건 아닐까 걱정된다.


김기완 님을 보면서 김리회 님이 생각났다. 한 눈에 캐릭터가 보이는 무용수가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보아야 간신히 가냘프게 잡히는 무용수도 있다. 이는 나의 내공이 충분히 높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건데, 아직 미묘한 동작을 감상하기에 부족해서 그러한 걸 게다. 김리회 님의 특성을 잡아내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이번 <안나>를 보면서 이상하게 김리회 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찰랑거리는 걸 보며 놀랐다. 김지영 님이나 이영철 님, 박슬기, 이재우, 신승원 님을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 김리회 님이 왜 이렇게 보고 싶지...?? 


최근 김리회 님의 춤에서 확실하진 않지만 미묘하게 감지했던 느낌은 맑고 곱다는 느낌이다. <말괄량이> 때 세 명의 구애자와 춤을 추었을 때 발끝으로 사뿐사뿐 걷던 모습이 눈 앞에 밟히는데, 언니와 다투면서도 언니를 동경하며 와ㅡ하던 모습에서 느낀 순진함이랄까, 그런 사랑스러움이 떠오른다. 별 생각 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김리회 님의 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신기했다. 내 생각엔 김기완 님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아직 감상 능력이 부족하여 한 눈에 느끼진 못했지만, 가랑비에 옷젖듯 조금씩 조금씩 깊게 김기완 님의 춤에 빠지게 되었으면 좋겠다.



지워버린 일기에 썼었지만, 볼쇼이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국립발레단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유니버설의 <춘향>과 국립의 <안나> 덕분이다. 믿을 수 있는 무용수분들과 믿을 수 있는 발레단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든든하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그리고 자상하고 아름다운 예당♥은 서울의, 한국의 자랑입니다. 이 훌륭한 공연을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착한 가격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공연 끝나고 나오면서 예술적인 분수를 즐기고, 또 그 분수로 뛰어가는 아이들과 예당 여기저기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당은 참 너그럽구나란 생각을 했다. 이래서 예당을 벗어날 수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