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니버설발레단 홈페이지:
http://www.universalballet.com/korean/performances/performance_view.asp?cd=709&furl=performance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6213
프로그램북 내용이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옮겨 적는다.
[줄거리]
1막 : 춘향과 몽룡의 첫 만남, 사랑, 그리고 이별
어느 봄날, 몽룡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향단과 함께 있는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춘향과 몽룡은 단옷날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게 된다. 몽룡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나게 되자 춘향에게 혼인서약을 하고 서로 정표를 나눈다. 둘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첫날밤을 보내고 몽룡은 한양으로 떠난다.
2막 : 몽룡이 과거시험, 어사출두, 춘향과의 재회
과거시험이 시작되고 몽룡은 시제를 본 순간 일필휘지로 답을 써내려 간다. 한편 신관사또 변학도는 화려한 부임식을 갖고 춘향에게 수청을 제의하지만 춘향은 거절한다. 변학도의 생일날 기생들과 여흥을 즐기던 변학도는 춘향을 다시 불러들인다. 하지만 춘향이 재차 거절하자 결국 죽일 것을 명한다. 때마침 몽룡이 마패를 꺼내들며 어사출두를 외치고 변학도의 악행을 처단한다. 몽룡은 지난날 부채에 새겨둔 정표를 보여주며 춘향과 재회하고 그 기쁨을 나눈다.
[감상 포인트]
한국의 아름다운 고전, 발레의 품격을 입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이야기를 담아낸 <발레 춘향>은 2007년 초연하였고 2014년에는 창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안무, 무대, 의상까지 전면적인 수정을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발레 춘향>은 <심청>과 더불어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5년 오만 로열 오페라하우스 무스카트 스프링 시즌에 초청받아 현지 관객과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올해 9월 콜롬비아 보고타 홀리오 마리오 산토도밍고 마요르 극장에 공연을 앞두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유려한 선율 위에 펼쳐지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
<발레 춘향>의 음악은 예술성을 뒷받침한다. 유병헌 예술감독은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선율을 가진 차이코프스키 음악이야말로 <발레 춘향>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여 음악을 직접 선별 후 편곡자의 손을 거쳐 하나의 연결된 곡을 탄생시켰다. 이 음악은 마치 <발레 춘향>을 위해 작곡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다.
두 눈을 사로잡는 고혹적인 한복 의상
디자이너 이정우는 원단을 직접 염색하여 의상의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렸고, 여기에 아름다운 자수, 화려한 장신구를 더하여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한복 의상을 구현했다. 여기에 트임, 비침 효과로 은은하게 비추는 한국적인 미를 살려 <발레 춘향>에 최적화된 의상이 탄생한 것이다. 마치 한복 패션쇼를 방불케 할 만큼 두 눈을 사로잡는 의상은 발레를 보는 재미까지 더한다.
2018년, 새로운 무대영상으로 세련미를 더하다.
올해 4년만에 관객을 만나는 <발레 춘향>은 영상을 도입하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문화예술계 트랜드인 '미니멀리즘' 형식으로 무대 막을 최소화하고 영상을 이용하여 고즈넉한 시대적 풍경, 계절의 변화 등 화려하면서도 동적이고 깊이 있는 무대연출을 선보인다.
후기를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현재 내 상태가 발레 후기를 쓰기에 썩 좋지 않다. 이유는 얼마 전 본 볼쇼이 <백조의 호수>가 아직 눈 앞에 펼쳐지고 있어서다. 자고 일어나면 왕궁 파티에서의 음악이 의식에 흐르고, 여유가 날 때마다 한 명 한 명 무용수들의 깨끗한 선과 완벽한 군무가 순간순간 재생되는 걸 보니, 볼쇼이 <백조의 호수>로 인해 받은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너무 좋았던 만큼 눈이 망가져 버려서 심지어 '괜히 보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요즘 좀 괴롭다. 볼쇼이 직후 있었던 발레 축제 작품을 보았다가 혼자 슬퍼진 이후 축제의 다른 작품들을 다 포기했다. 유니버설의 <발레 춘향>과 국립의 <안나 카레니나>는 일찌감치 예매를 마쳐 두었고, 또 아니었더라도 두 발레단의 작품이기에 보는 건 당연하지만서도, 그래도 마음이 못내 불안하긴 했다. 아... 정말이지 볼쇼이 안 본 눈 삽니다. ㅠ 요즘 같아선 볼쇼이 공연 보러 러시아로 가고픈 심정이 들 정도다.
이런 이유로 후기를 쓰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나의 기억 저장을 위해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나의 이 후기가 유니버설의 그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얼만큼 충실히 담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허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적당히 걸러 읽기를 바랍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에 이은 두 번째 창작발레 <춘향>은 4년 전 무대에 오른 바 있었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당시 발레를 챙겨 보기는 했으나, 아직 발레에 있어 다양한 장르와 레퍼토리를 즐길 수 있는 수준이ㅡ지금보다도ㅡ아니었기 때문에, 공연하는 것을 알았지만 가지 않았다. 당시는 모던발레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창작발레에 대한 불신이 컸다. 물론 지금이라고 모던발레나 창작발레를 너끈히 소화해내는 수준은 못 된다. 유니버설이 소개하는 모던발레만 간신히 즐기는 정도인데, 올해 발레축제에선 그것을 즐길 수 없어 좀 아쉽네. 대신 아름다운 <발레 춘향>을 보게 되긴 했지만.
4년 전의 <춘향>에 비해 2018의 <춘향>은 안무에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설명이 있는데, 유툽을 검색하니 과연 안무 뿐 아니라 무대배경에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은 것 같다. 전막 영상이 없고 티저나 하이라이트 영상만 있기 때문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만 모여 있는 결과, 그 변화가 세련되었긴 하지만 내가 <발레 춘향>을 보면서 아쉬워했던 점들 모두가 4년 전 버전에 다 담겨 있음을 보고는 좀 당황했다. 두 버전 다 매력이 있으니, 아예 두 버전으로 올리셔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안무가가 누구실까가 몹시 궁금한데, 검색하니 유병헌 님 이름이 뜨긴 하는데 이번 버전의 설명에선 예술감독님이라 하고. 정확히 모르겠다.
차이콥스키의 Souvenir de Florence Op.70의 2악장 Adagio 시작 테마로 시작하는 공연은, 차이콥스키의 모든 곡 중 그 곡을 가장 좋아하는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부터 낭만적인 마음이 마련되었다. 막이 오르고, 좌우로 분리되어 펼쳐지는 무대는 왼쪽에는 커다란 꽃그림이 걸려 있는 춘향의 공간으로, 수를 놓는 춘향과 담배를 피우는 월매, 시중을 드는 향단이 있다. 곧 무대 좌측에서 월매의 친구 기생들이 등장하고는 춘향을 보며 '그 조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하며 쉬이 알 수 있는 마임을 한다. 월매와 친구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춘향은 단오 축제에 가고 싶다며 향단에게 말하고, 향단이 월매에게서 허락을 받아 낸다. 춘향의 공간에 걸려 있는 꽃이 무슨 꽃인지를 검색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보자마자 작약인가? 했는데, 백작약이 그런 모양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작약은 훨씬 큰 꽃이어서. 그래서 양귀비인가? 싶었는데 색상이 좀 연하고. 그런 모양의 꽃을 꽃집에서 많이 보았긴 한데 설마 서양의 꽃일 리는 없을 테고. 작약이라면 꽃말은 '수줍음'이고 양귀비라면 '위로, 위안, 몽상'이다. 양귀비에 더 가까우나 다른 꽃일 수 있다ㅡ이것은 그냥 개인적 유희로 받아들이면 된다. 궁금한 건 뭐든 검색하는 유형이라. 더 검색할 에너지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까지 꽃에 집착하는 이유는 춘향의 공간에 불이 꺼지고 몽룡의 방에 불이 켜지는데, 몽룡의 방에는 대나무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알다시피 대나무의 꽃말은 '지조, 절개. 인내'다. 이는 춘향의 절개와 인내 뿐 아니라, 춘향을 위한 몽룡의 절개와 인내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아, 시작부터 이렇게 힘 빼면 안 되는데.;; 좀 빨리 진행해 보자. 몽룡 역시 축제에 가겠다고 허락을 받고는 방자와 함께 단옷날 축제로 향한다.
<춘향전>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 두 가지가 바로 이 단옷날 그네 장면과 감옥칼을 쓰고 옥에 갇혀 있는 춘향의 모습이다. 그네 장면은 <춘향전>의 가장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당하고, 감옥칼 장면은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 두 장면이 없어서 좀 의아했다. 한국인으로서 그 두 장면을 넣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검색하니 2014년 버전에는 이 그네 장면이 있었고, 또 감옥칼 장면도 다른 식으로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영상이다. 안무도, 무대 디자인도 완전히 다름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 그네 장면을 뺐다는 이야긴데, 왜 그랬을까? 어쩌면 무대를 '미니멀리즘'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전통적이고 사실적이었던 2014년 버전의 무대에 비해 현대적이고 미니멀리즘적인 2018년 버전의 무대 디자인에 있어 확실히 '물리적 그네'는 무리가 있다. 그 부분만 과거로 처리되어 전체적인 통일성이 무너지게 된다. 해서 이해했다. 그래서 그네를 뺐구나. 하지만 내심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는데, 첫날 놓쳤던 그 부분 안무를 둘쨋날 확인할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의 안무였어서 쉬이 알아채기 힘들었는데, 단옷날 축제에서 남성 두 명이 춘향의 양쪽으로 펼친 팔을 하나씩 잡고 들어 올려 허공에서 동작을 하는 안무가 있다. 바로 그 장면이 그네를 형상화한 것이 맞다면 상당히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네장면이 중요한 만큼 조금만 더 길고 다양하게 표현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CJ토월은 <춘향전>을 감상하기에 무대가 좁다는 생각을 했다. 군무 때도 그러했지만, 특히 춘향과 몽룡의 첫만남 파 드 되 때문이었다. 이 파 드 되는 참신했는데, 춘향-몽룡의 파 드 되와 향단-방자의 파 드 되가 동시에 무대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아함과 익살스런 재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독특함이 있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둘 중 어느 쪽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기도 했다. 두 커플 사이의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날에는 향단-방자의 춤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겨 버려서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부드러운 춘향-몽룡의 춤을 거의 감상할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강미선 님의 그 부드럽고 은근한 춤이 몹시 기품 있었을 텐데. 재치있게 배경을 채우는 향단-방자의 춤이 상대적으로 너무 화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둘쨋날 홍향기-이동탁 님의 첫만남 파 드 되는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 부분 안무가 우아하고 낭만적임을 알게 되었다. 대신 향단-방자 커플을 거의 감상할 수 없었고. 두 커플 사이가 너무 가까운 데다, 무대와 관객의 거리도 너무 가깝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시야가 좁아져 깔끔함이 감소되었다. 음. 정확하게 표현할 말을 못 찾겠네. 각 커플의 안무가 참 좋았어서 좀 더 충분히 감상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던 부분이다. 회전을 하는 사이사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어려워 보였으나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장면이었다.
첫날밤 파 드 되는 몇 달 전 있었던 <발레 갈라> 때 보았던 벚꽃 배경이 훨씬 낭만적이었다. 다만 춘향의 방임을 알리기에는 앞서 등장했던 꽃그림 병풍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맞고, 또 벚꽃 배경이 이 때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엔딩 장치로 사용되었을 때의 감동과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또한 납득이 갔지만, <발레 갈라> 때의 분위기가 춤과 이야기의 낭만성에 있어 나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 몽룡은 난초가 그려진 하얀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그 부채 뒷면에 춘향과 함께 사랑의 맹세를 적는다. 그리고는 첫날밤 안무가 시작되는데, 옷고름을 푸는 장면은 야하지 않은데도 몹시 섹시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속옷차림의 2인무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장면이었다ㅡ지만 굉장히 어려운 리프트와 공중회전이 많은 안무였다. 그 어려운 장면을 아름답게 표현하신 강미선, 이현준, 홍향기, 이동탁 네 명의 무용수분들이 감탄스럽다.
첫날밤 후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치르러 가게 되는 몽룡과 춘향이 추는 이별의 춤. 두 사람의 파 드 되로 시작한 이별에 이내 '회색발레'가 펼쳐진다. '회색발레 Ballet Gris'는 '백색발레 Ballet Blanc'에 비교되는 개념으로 내가 만든 말입니다. 모르겠다. 발레 용어로 '회색발레 Ballet Gris'가 존재하는지는. 내 검색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확실하지 않다면 기존에 있는 발레 용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 '회색발레'는 이번 <발레 춘향>에서 '장원급제군무'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이고 멋진 장면이었다. 보면서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함께 본 일행은 몽룡과 춘향의 '번뇌'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했다. 나로 말하자면 배경의 먹구름과 연결선상에 있는 '감정의 먹구름'에서 사랑하는 둘을 갈라놓는 '이별'이나 '비극적 운명', '고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번뇌건 이별이건 슬픔이건 고통이건 같은 말이리라. 회색발레에서 <발레 춘향> 의상의 뛰어남이 부각되었는데, 다른 의상들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면 이 장면에서의 의상은 열 여덟 무용수분들의 빠른 회전으로 인해 그야말로 '회오리치는 먹구름'을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형상화해내었다. 비극으로 달음박질치는 음악과 함께 빠르고 힘차고 역동적인 군무, 그리고 그 군무가 이리저리 가르는 춘향과 몽룡 사이의 거리가 빚어내는 애절함과 고통 속으로 관객은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굉장했다, 회색 군무. 너무 좋아서 계속계속, 좀 더 많이 보고 싶었다. 회색발레에 대한 박수를 칠 타이밍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막 박수치며 환호하고 싶었는데 바로 이어서 파 드 되가 진행되는 바람에.
2막이 시작하고 과거시험장 선비들의 춤. 붓글씨를 추는 재치있는 안무였는데, 서예에 대한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싶기는 했다. 몽룡의 춤처럼 붓을 쥐어 주면 어떨까 했는데 없어서 좀 더 깔끔했던 건 맞고. 이리저리 더듬더듬 글을 쓰다가 머리 아프다며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돌리는 안무. 보다가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첫날 이 장면에서 기대했던 남성군무가 다소 어설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둘쨋날 이 장면에선 어설프지 않았다. 그런데 난 첫날의 느낌이 해석하기에 더 즐거웠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장원급제 남성군무가 너무나 멋지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과연 어중이떠중이 다 모여있는 일반 과거시험과, 그 시험에서 합격한 인재들의 춤은 다르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몹시 즐거웠더랬는데, 둘쨋날에는 과거시험군무가 좋고 상대적으로 장원급제군무가 살짝 덜했어서 그 해석의 즐거움이 무너져 아쉬웠다.ㅠ
몽룡의 일필휘지 독무의 소품에 박수를 보냅니다. 몽룡의 대범함과 총명함을 시원시원하게 표현하는 안무를 커다란 붓이 더욱 빛내주었다. 인상적인 소품이었습니다. 이번 <발레 춘향>은 단 두 번의 공연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볼거리가 많았는데, 각 장면마다 등장한 소품들 보는 재미가 깨알같다.
장원급제군무는 회색군무와 함께 내게는 선물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급제자들의 복두에 꽂힌 어사화(꽃모자)의 각도와 앵삼(옷)의 펄럭임이 주는 통일성이 좋았다. 자신감에 가득찬 춤동작과 남성군무의 힘에 어우러진 역동성은, 앞선 회색여성군무의 날카로운 역동성과는 또다른 멋이 있었다. 특히 이 급제군무에서의 X자형 대열 이동이라든지, 지그재그 회전(열마다 다른 방향의 회전) 또한 즐거웠다.
나온 김에 말하자면 <발레 춘향>의 큰 볼거리는 '군무'다. 이는 군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데, 1막에서부터 시작된 군무는 혼성군무에서 여성군무, 남성군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무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위에서 말한 '지그재그'가 눈에 띄었는데, 여러 번 열의 방향이 다르다. 그러니까 1, 3열의 무용수분들은 오른쪽을 본다면 2열의 무용수분들은 왼쪽을 본다든가 그런 식으로 회전을 한다든가 하여, 위에서 보기에 몹시 즐거웠다. 또한 대열이동도 많아서 전체 대열 감상에 큰 즐거움을 주었다ㅡ무용수분들은 힘드셨겠지만요.;; 덕분에 관객이 너무 즐거운 겁니다♥
아... 글이 너무 길어지네... 좀 줄여야겠는데 어떻게 줄여 쓰지. 에너지가 남을지 걱정이다.ㅠ
변학도가 등장하고부터 장면들은 부쩍 거칠어진다. 보기 쉽지는 않았는데. 변학도 부임식에서는 기생들의 솔로와 군무를 즐길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무대가 하얀색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내내 아쉬웠더랬는데, 기생들의 은은하게 비치면서도 화려한 형형색색의 옷들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다. 짙은 고동색의 무대에선 그 예쁜 색들이 충분히 돋보이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다. 기생군무에선 소고와 수건, 부채, 장고라는 다양한 한국적 소품이 등장하여 전통미와 현대미의 세련된 조화가 빛났다.
춘향을 불러 들였을 때는 음... 왜 '예쁘다'와 '결혼했다'라는 마임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한데... <발레 춘향>의 포인트가 춘향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절'에 있다면, 그 '정절', 혹은 '곧은 마음'을 표현하는 마임이 있으면 좋겠다 싶고, 아니면 앞서 변학도가 기생들을 물리친 이유가 얼굴이 충분히 예쁘지 않기 때문이었으니, '예쁘다' 라는 마임은 썼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춘향을 불러 들일 때도 편리할 뿐더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마임을 아는 발레 애호가들은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그리고 변사또를 거절하는 춘향의 이유가 '나는 결혼한 사람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었더라면 무뢰한으로서의 변학도가 더욱 부각될 수 있었을 것 같다.
감옥에서 춘향의 독무는 감옥 저편으로 펼쳐지고 있어서 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강미선 님과 홍향기 님의 뛰어난 춤을 온전히 감상하진 못한다는 느낌 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아련했겠지. 모르겠다.
변학도 생일 잔치에서 춘향을 고문하는 장면은 위에 실은 2014년 장면이 나은 것 같다. 훨씬 화려하고 극적이다.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아니어서 정확히 비교할 수는 없다.
암행어사출두 장면도 남성군무였는데, 변학도측 고문자들의 춤과 몽룡의 군졸들 춤의 대비를 즐길 수 있었다. 장원급제군무고 어사출두군무고, 군무는 위의 동영상에 있는 정면 각도 보단 위에서 보는 편이 훨씬 화려하고 멋집니다. 물론 개별 무용수분들의 선을 감상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겠지만.
마지막 춘향-몽룡의 재회의 파 드 되는 고난도의 동작이 팡팡 펼쳐지는 아름다운 안무였다. 시종일관 몽룡의 팔 위에서 공중회전을 하는 춘향은 몹시 아름다웠는데, 그만큼 두 분 무용수 모두에게 힘든 장면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전체적으로는 군무가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역동성이 특히 강조되어 순식간에 관객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했는데, 상대적으로 정적인 장면 한두 부분이 좀 더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몽룡의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었지만 정작 타이틀 롤인 춘향의 인상은 상대적으로 작아져서, 제목이 <몽룡전>, 또는 <춘향, 몽룡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막에서는 춘향과 몽룡의 무게가 너무 동일하게 배분되었는데, 춘향의 설렘을 표현하는 정적인 솔로가 짧게라도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기생들 중에서 홀로 양반집 규수처럼 정숙하게 자라는 배경을 여성군무와 함께 하는 춘향의 춤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 2막에서는 감옥 속 솔로가 춘향의 고뇌를 표현한 것인데, 하필 감옥 저편에 있어서 그 감정이 완전히 전달되기엔 무리가 있다. 하여 전체적으로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타이틀 롤 춘향의 이미지보단 몽룡의 이미지가 더 크게 남는다. 하지만 힘차고 역동적인 군무와 고난도의 낭만적인 파 드 되는 발레의 고전 작품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외 음악, 무대 디자인, 조명, 의상, 소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성스러운 세련됨이 뛰어난 작품이다. 영상으로 살짝 보는 4년 전 버전도 좋고 2018년의 모던한 버전도 좋으니, 두 버전을 번갈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면 한 버전의 결말이나 해석이 다른 것도 좋겠고. 끝에 춘향이 기절한 것이 아니라 죽어버린다면 앞선 회색군무가 주는 비극성이 더욱 극에 달하게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근데 이것은 비극을 선호하는 내 개인 취향이어서는.
아 참, 엔딩장면의 벚꽃화면 압권이었어요.
[6월 9일 토요일]
강미선 춘향: 강미선 님의 춤을 볼 때마다 바람에 날리는 우유색 천이 떠오른다. 참 곱고 부드럽고 우아하다. 곱게 자란 가녀린 아가씨가 떠오르는 강미선 춘향은 뛰어난 춤을 부드럽게 잘 표현해 주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동작은 부드럽고 회전은 빨라서 보는 맛이 좋았다.
이현준 몽룡: 이현준 몽룡은 1막과 2막이 달랐어서 더욱 즐거웠다. 1막에서 이현준 몽룡은 서툴고 놀기 좋아하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청년 같았다. 심지어 단옷날 축제에서 춘향을 만나기 전에 추었던 솔로에서는 나르시시즘마저 엿보여 순간 짜릿했다. 춘향이 등장하는 바람에 그 나르시시즘이 금방 사라져 아쉬웠을 정도로. 애니매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벨을 향한 갸스통의 "Here in town there's only she who is beautiful as me, so I'm making plans to woo and marry Belle"이라는 노래가 잠시 떠올랐는데, '나 만큼 아름다운 유일한 그녀'라는 느낌이 들어 혼자 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1막의 몽룡은 아버지 이참판의 명령 하에 꼼작 못하는 나약하고 미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현준 몽룡은 2막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일단 과거 시험장에서의 그 거침없는 붓글을 써내려갈 때의 확신에 찬 당당함은, 남원을 떠나 한양에서 공부하며 실력을 갈고 닦는 동안 부쩍 든든하게 성장한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장원급제 때의 멋진 각도와 선을 자랑하는 춤과 망설임 없는 깨끗한 회전에서 그의 성숙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춘향을 향한 여전한 낭만이 그가 같은 몽룡임을 증명했는데, 사랑에 빠진 미숙한 청년에서 당당하고 믿음직한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멋지게 표현해주신 이현준 님께 박수를 보낸다. 몽룡 캐릭터를 그렇게 표현하실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즐거웠다. 테크닉에 대해선 굳이 묘사하지 않겠습니다. 1막의 훌륭하지만 살짝 어설펐던 점 때문에, 2막의 완벽하고 깔끔한 춤이 더욱 돋보였다. 해석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아주 훌륭한 표현이었습니다.
※ 이 날 함께 보았던 일행이 변학도에게 칼을 겨누기 직전 이현준 몽룡의 어마어마한 회전 왜 따로 칭찬 않느냐며 클레임을 걸어서 언급합니다. 휭휭 화려하고 깔끔하고 멋진 회전이었어요!
강민우 변학도: 기사를 보니까 재활치료 후 복귀하신 무대라던데 와...! 그 힘 가득한 춤이라니! 시원시원하고 거침없는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춤이었다. 점프 높고요,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힘찬 공중회전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강민우 변학도에게서 딱히 비열함은 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가졌고 또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안하무인 폭군의 면모를 위엄있게 표현해 주셨는데, 강민우 님의 남성미를 다른 작품에서도 보고 싶다.
박수경 향단과 이택영 방자: 재미있고 익살스런 연기를 잘 해주셨어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두 분이었다. 이택영 방자의 엄청난 회전과 높은 점프가 인상적이다.
[6월 10일]
홍향기 춘향: 홍향기 춘향은 우아하고 곱고 아름다우면서도 향기 님 특유의 햇살이 빛나는 춘향이었다. 향기 님의 춤을 보면 늘 내면에 햇살의 밝음과 반짝임이 느껴지곤 하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의 느낌을 내곤 한다. 10일에 본 향기 님의 춘향에서 역시 그 밝음과 순수한 호기심이 춘향의 우아함과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루어 보기에 즐거웠다. 향기 님의 뛰어난 테크닉은 강미선 님과 마찬가지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으나, 첫만남 파 드 되였나 첫날밤 파 드 되였나에서 뛰면서 뒤로 돌아 몽룡의 팔에 안기는 동작에서 뛰는 줄도 모르게 너무나 사뿐하게 리프트되어 우아함이 더해졌다.
홍향기 춘향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변학도를 대하는 장면에서였다. 강미선 춘향이 가냘프고 애처로운 모습으로 보는 이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였다면, 변학도를 대하는 홍향기 춘향의 표정은 '혐오'였다. 정당한 이유로 수청을 거부하는 자신을 힘으로 압제하는 변학도가 정말, 너무, 끔찍하게 싫은 것 같아 보였다. 그 연기 덕분에 몰입도가 상승했고, 춘향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믿고 보는 홍향기 님!
이동탁 몽룡: 역시 이동탁 님은 귀족적인 점잖음이 빛난다. 이동탁 몽룡은 반듯하게 자란 양반집 자제로, 마음이 성숙하고 진중하나 사랑에 대한 낭만이 때묻지 않은, 거의 이상적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춘향을 조심스레 아껴주는 모습과 변학도를 단호하게 응징하는 모습은 이동탁 님 특유의 매력으로 인식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캐릭터여서 이동탁 님의 춤을 보는 것이 즐겁다.
달라르 자파로프 변학도: 역시 힘차고 멋진 변학도. 많은 박수를 받으셨다. 좀 더 소감을 써야 마땅한 춤을 추셨는데 내 감상내공이 부족하다.
아타 아리카 향단과 임선우 방자: 역시 맛깔스런 연기를 잘 해내신 두 분. 첫만남 파 드 되ㅡ에서는 두 쌍의 파 드 되가 동시에 진행되니 결국 파 드 꺄트르인가;;ㅡ에서 두 분의 배경 부채춤은 역시 재미있었다. 춘향-몽룡의 춤이 돋보일 수 있도록 과하지 않은 춤이었다. 임선우 방자는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서 점프나 회전을 하실 때 즐거웠다.
겨우 두 번 보았기에 아직 안무도 제대로 다 감상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본다면 나아지겠지. <발레 심청>이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면, <발레 춘향>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한국적인 요소를 전통발레로 잘 녹여내고 빚어낸 수작이라 생각한다. 안무에 대한 소감을 미리 쓰는 바람에 군무에 대한 소감을 따로 쓰지 않았는데, 1막에서 단오 축제의 혼성군무와 1막 마지막의 회색발레, 2막에서의 과거시험군무와 장원급제군무, 그리고 기생군무와 어사출두 군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력을 한껏 뽐내는 군무를 너무나 잘 소화해주신 무용수 여러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회색발레와 장원급제군무는 너무너무 멋졌어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공연에 문 단장님의 해설이 없었군요. 원래 해설 없는 공연인가요...? 뭔가 아쉬운 이 느낌은 우아한 문단장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려나.
유니버설 발레단과 예술의전당 덕분에 멋진 공연 잘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의 창작발레가 더욱 많아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