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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연주회] 2019 서울시향 시벨리우스 스페셜 Seoul Phil Sibelius Special Concert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SAC Concert Hall

by Vanodif 2019. 2. 11.


※ 연주회에서 악장 사이 마른 기침은 삼가주세요.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연주회장은 살짝 서늘하게 온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가급적 생각보다 따뜻하게 옷을 입으시길 권합니다.

또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경우 관객들을 위해 시작 직전 1층 중앙에 사탕을 설치해 둡니다.

1인당 한두 개씩 정도만 가져가셔서 연주 시작 전에 입에 넣으시면 기침 막는 데 도움되실 거예요.

유독 심한 한국 관객들의 악장 사이 마른 기침을 외국인들이 비웃는다는 점 아시나요?

몸이 피곤하시거나 익숙지 않은 공연장의 분위기가 불편하시면 그냥 고개 숙이고 주무셔요. 

코골지 않고 조용히 가만히 주무시는 건 오히려 주변 관객을 위해서는 고마운 매너입니다.


※ 안다 박수도 자제합시다.

아무리 큰 감동을 받았다 한들, 소리가 사라지기까지는 연주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관객은 아직 감상 중일 수 있으니 이른 박수는 자제하시고, 사라지는 소리의 여운까지 감동을 충만히 감상합시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나 지휘자가 인사를 하면 있는 힘껏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셔요.


※ 휴대폰은 제발 끕시다.

이런 기초 매너를 왜 언급해야 하는지 도통 모를 일인데 

이상하게 장르를 막론하고 공연장에서마다 공연 도중 휴대폰 불빛과 소리에 방해를 받지 않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마음 같아선 공연장에 강제로 폰을 끄는 기계라도ㅡ그런 게 있다면ㅡ설치했으면 좋겠습니다만

제발 공연 시작하기 전에 각자 폰을 꺼주세요.

휴대폰의 소리는 물론이고 희미한 불빛도 공연 감상에는 큰 방해가 됩니다.

연주회 시간 동안 도저히 폰을 끌 수 없을 정도로 바쁜 분이시라면 다른 관객들을 배려해 공연을 포기합시다. 






노란색 하이라이트된 부분은 해당 페이지로 링크되어 있습니다.





<2019 서울시향 시벨리우스 스페셜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Sibelius Special Concert>

* 일시: 2019년 2월 14일 (목) 20:00

*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Seoul Arts Center Concert Hall 1588-1210

* 서울시향 홈페이지: http://www.seoulphil.or.kr/perform/concert/detail.do?idx=1389

*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http://www.sac.or.kr/SacHome/perform/detail?searchSeq=35883




지휘 오스모 벤스케 Osmo Vänskä, conductor

바이올린 양인모 InMo Yang, violin

 

[프로그램]


시벨리우스핀란디아

Sibelius, Finlandia Op. 26

 

시벨리우스바이올린 협주곡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Intermission 

 

시벨리우스교향곡 제6

Sibelius, Symphony No. 6 in D minor, Op. 104

 

시벨리우스교향곡 제7

Sibelius, Symphony No. 7 in C major, Op. 105



시벨리우스의 관현악 작품들은 20세기 음악의 이정표이다핀란드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풍요한 멜로디와 장엄한 스케일로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처럼 마음을 사로잡는다핀란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가 애국적 찬가인 핀란디아로 콘서트를 시작하며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바이올린 협주곡의 열정과 냉철함을 전한다. 6번 교향곡은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고요한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 중 하나로서 핀란드의 삼림을 떠올리게 한다이어 기념비적인 7번 교향곡으로 끝을 맺는다단일하고 강력한 표현을 가진 대곡이다.






따로 검색하기에는 편리하고 고맙게도 서울시향에서 올린 프로그램노트가 있어서 파란색 글자로 옮긴다. 프로그램노트의 주소는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688365&memberNo=42106792 이며, 음악칼럼니스트이신 황장원 님께서 쓰신 글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이전에 듣고 보았던 좋은 공연과 전시들이 기억에서 싹 휘발되어 버려서ㅠ 간단하게라도 기록을 남긴다. 


처음 들은 서울시향의 연주는 나와 일행에게 많은 혼란을 주었다. 나의 감상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일단 내 귀가 막귀에 나는 초보감상자인 것이고ㅡ그래서 내 공간에 내 방식으로 내 감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만ㅡ, 각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던 좌석이 달랐기 때문이고, 또 매번 다른 곡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 여기서 비교하는 오케스트라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코심 Korean Symphony Orchestra),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코챔 Korean Chamber Orchestra), 그리고 이번 공연을 연주한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향 Seoul Philharmonic Orchestra)이다.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Gangnam Symphony Orchestra)를 언급할 일이 있을 수도 있겠고. 이렇게 말하니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나는 막귀에 초보임을 기억하자. 그동안 코심은 예전부터 들어온 것을 계산하면 그래도 좀 들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도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들었던 것이고, 최근 기억에 남는 것으로 보자면 너댓 번 들은 것 같다. 아, 작년 국립발레단 <호두까끼인형>을 계산하면 14-5회까지 가겠으나 발레 공연의 반주는 비교할 때 고려하지 않는다. 그 외 코챔이나 서울시향의 공연은 한 번씩만 들었기 때문에 사실상 비교라는 작업이 의미없긴 하다. 강남 심포니는 한 번 예콩(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었고 나머지는 국립발레단 공연의 반주로ㅡ는 꽤ㅡ들었던 것이고. 비교하기엔 표본이 턱없이 부족함에도 지금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스스로 듣는 귀의 변화를 앞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이 공연을 이렇게 들은 초보도 있구나' 정도 여기시고 괘념치 마시길 바란다.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당연히 내 감상 소감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개인적 취향으론 코심 > 코챔 > 서울시향이다. 강남은... 비교하기엔 좀 다른 어떤 느낌이다. 주로 발레 공연에서 들었던 공연이 기억에 남아 있어서. 포근한 음색으로 기억한다. 부등호는 어쩌면 내가 그동안 코심에 훨씬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코심의 연주에 내 귀가 익숙한 것일 테고. 다만 그렇게 해석했을 때 각각 한 번씩 들었던 코챔과 서울시향의 공연이 어째서 다르게 인식되는가 하는 것이 의아한데, 좌석의 차이일 수 있겠다 추측하고 있다. 코챔은 예콩 2층이었고 서울시향은 예콩 3층이었는데, 확실히 3층은 2층보단 소리가 좀 작게 들린다. 2층은 맨 뒷좌석이었고 3층은 맨 앞좌석이었는데도. 그러나 이것은 또한 어쩌면 예콩 좌석의 차이라기보단 곡의 차이였거나 오케스트라의 차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좀 혼란스럽다.


아... 간단하게 기록을 남기기로 했는데 또 이렇게 길어지고 있다. 젠장.;;


다시 한 번 개인적 취향임을 밝히지만, 코심의 연주는 마감이 썩 잘 된 세련된 연주라는 인상이다. 일행은 코심의 공연을 두고 '멋지게 뾰족하다'라 표현했는데, 내게 남는 느낌으로는 '매끈하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이다. '세련미'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코챔의 경우 합이 좋다, 에너지가 좋다, 듣기에 즐겁다로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 하나의 소리인 양 곱게 울리는 현악 파트와 (1부에서는 더블베이스쪽에 앉아서 그랬겠지만) 웅장한 베이스와 관악의 화력이 멋진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들은 서울시향의 경우 금관 파트나 특히 호른은 좀 불만이었고, 목관 파트는 좋았다. 그리고 좀 특이했던 것이 현악파트였는데, 거... 결이 다 느껴졌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잘 안 서는데.;; 예콩은 악기별 소리보다는 전체적 조화를 잘 살려주는 구조라 들었는데, 악기별, 그리고 악기 사이에서도 개별 악기의 소리가 각각의 결로 느껴졌다는 것이 좀 신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보잉이 안 맞다로 해석하실 텐데,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는 점이 신기한 거다. 모르겠다. 내가 막귀여서 잘못 들었는지는. 무튼 개별 악기의 소리가 다양한 결로 느껴지는데 그것이 조화롭더라는 거. 그게 참 신기했다. 좋은 점이라 난 느꼈고. 다만... 코심의 매끈한 완성도를 떠올리니 선택하라면 코심을 듣겠다는 결론이 났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다채롭고 듣기에 좋았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코심 공연일 것이란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게 코심에 대한 팬심이 있나? 좋아하는 국립발레단과 함께 하였고, 특히 정치용 지휘자 님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큰 만큼 코심에 대한 믿음이 있긴 하지만 '팬심'이라 말할 만큼 열광하고 있지는 않다. 내 귀가 익숙한 것이겠지.


피아노 전공자에게 물었을 때 다 좋지만 그 중 서울시향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서울시향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어쩌면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들을수록 귀가 좀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특히 2부 시벨리우스의 심포니 6, 7번 자체가 좀 졸리는? 곡이다 보니 여기저기 잠든 숨소리도 들렸고 또 6번 들은 후 공연장을 나가는 분들도 있었다. 곡 선정의 문제였으려나. 지휘자에 따라 연주가 많이 변하기도 하니, 어쩌면 핀란드 출신 지휘자의 스타일이 내게 맞지 않았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든 좋게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서 속상한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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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곡인 핀란디아는 그래도 좋았다. 일행은 좋다와 별로라는 느낌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는데, 코심의 연주가 생각나긴 했으나 내게는 매력적으로 들렸다. 1부 두 번째 곡 바협 47번이 문제였는데... 음.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는 엄청나게 긴 다리가 눈에 띄는 멋진 분이셨는데,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연주 솜씨가 탁월한 테크니션이셨다. 특히 중음주법에서는 각각 뛰어난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아찔한 매력이 빛났고, 그 외에도 다양한 주법이 현란한 연주를 너무나 멋드러지게 소화하시는 분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일행이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역시' 싶었다. 굉장한 테크니션이셨는데, 문제는 나의 예습이었다. 예습하면서 내심 걱정을 많이 했더랬는데, 이번 공연에서 나는 시벨리우스 바협 47번의 3악장 하나 기대하고 간 것이어서 그동안 이 곡만 주구장창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예습한 연주자가 이자크 펄만, 힐러리 한, 정경화 님, 안나 소피 무터, 클라라 주미 강, 게다가 무려 하이페츠를 계속 들었으니, 들으면서도 '아... 너무 이렇게만 들으면 실망할 텐데;;'하며 불안했었다. 1, 2악장에서의 양인모 님은 탁월했다. 그런데 3악장은 내가 너무 다양한 해석의 연주를 들었고 그에 대한 나름의 기대가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양인모 님께서 아주 뛰어나게 연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의식 중에 형성해 둔 틀에 맞지 않아 실망하게 된 것이다. 내 잘못이죠, 당연히. 초보라서 하는 실수이길 바랄 뿐이다. 점점 나아지겠지. 전체적으로 양인모 님의 연주는 산뜻한 낭만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뭐랄까... 자신의 연주에 함몰되어 혼자 달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독주자의 문제인지 오케스트라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이 곡을 많이 들은 부작용은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나타났다. 그동안 예습한 곡들은 거의가 이어폰으로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필요이상으로 또는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완벽한 연주로 처리되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그렇게 웅장하게 빵빵 울려줘야 하는 부분에서 충분히 웅장하지 않았으며ㅡ3층 좌석의 영향이었을지도;;ㅡ 3악장 사이사이 호른에 마개를 하고는 다소 딱딱한 음색을 내는 부분이 있었음을 이번 연주를 들으며 알았다. 그동안 예습했을 땐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만큼 호른이 거슬렸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양쪽 다 열심히 연주해주셨으나 합이 썩 잘 맞지는 않는다는 느낌. 아쉬웠다.


2부의 시벨리우스 심포니 6번의 4악장... 이었을 게다. 그 악장은 몹시 좋았다. 특히 현악파트가 리드미컬하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사실상 2부의 두 개의 심포니에서 오케스트라의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달까.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가 적절해서 듣기 좋았다. 다만 결정적일 때의 빵빵 화력이 역시 아쉬웠다. 일행은 전체적으로 음소거가 된 듯한 느낌이라 했는데, 그 느낌에 동의한다.


가능할진 모르겠으나 다음 번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땐 가급적 한 좌석에서 들어 보자는 말을 일행과 나누었다. 같은 좌석에서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다 보면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의견을 일행이 주었는데, 난 기회가 있으면 가급적 1층이나 2층 중앙 블럭에서 듣고 싶은 거여서...ㅠ 근데 가격으로 보자면 3층으로 하는 것이 안정적일 테고. 암튼 그래서 생각 중이다.


아 참,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데 관객 중 한 분이 다른 관객석을 향해서 '브라보라고 외쳐주시는 건 좋습니다만, 연주의 여운까지 감상하는 것에 방해가 됩니다. 다음부터는 곡이 끝나자마자 브라보 외치시기 보다는 소리가 사라지는 여운까지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라 말씀하셨다. 음... 훨씬 멋진 문장으로 말씀하셨던 건데 내 기억이 영 시원찮네.ㅠ 암튼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 분의 말씀에 박수를 보냈다. 공연 내내 힘든 것은 사실이었거든. 매 연주가 끝나자마자 한 분께서 멋진 목소리로 '브라보'를 크게 외쳐주셨는데, 나는 음이 사라지는 걸 감상하다 말고 그 소리가 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되더라는 거다. 보니까 아직 지휘자님도 연주의 여운에 잠겨 계신던데. 너무 큰 방해가 되어서 속상했는데, 끝난 후 다른 분께서 그 말씀을 해주셔서 내심 기뻤다. 매번 정확하게 곡이 끝나자마자 외치신 것을 보면 '브라보'를 외치신 분은 이 곡들을 다 잘 아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멋진 연주를 해주신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크게 '브라보'를 외쳐주시는 것은 함께 하는 관객으로서도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외쳐주시면 우리의 마음도 더욱 자극되고, 그만큼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내게 된다. '브라보' 외치시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다만 타이밍이... 마지막 음이 사라질 때까지 여운을 충만히 만끽할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 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마 우리는 이렇게 성장하는 걸 게다. 예당을 비롯한 공연장과 각계의 음악전문가분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많은 관객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해서, 이렇게 한 명 한 명 우리 관객들이 그때그때 공연 현장에서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한국의 관객이 세계적으로 멋진 매너를 갖춘 근사한 관객이 될 것이라 믿는다. '브라보'를 외쳐주신 분도, 그리고 객석 분위기와 감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중하고 예믜바르게 '여운 감상'을 종용해주신 분도 모두 함께 하는 관객으로선 고맙고 멋진 분들이다. 관객을 누구보다 아끼는 예당과 함께 우리는 멋진 관객으로 성장할 겁니다. 빠밤.






오... 오그리토그리...

손가락이 사라지고 있어...;;;








시벨리우스핀란디아 Sibelius, Finlandia Op. 26 (1900년 작곡)


‘핀란디아’는 시벨리우스에게 결정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 곡을 쓰기 전에도 시벨리우스는 베를린과 빈에서 유학한 경험과 핀란드의 전통문화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쿨레르보 교향곡’, ‘카렐리아 모음곡’, ‘레민케이넨의 전설’ 등의 중요한 작품들을 이미 내놓고 있었지만, 아직은 북유럽의 변방인 그의 조국에서만 인정받는 작곡가였다. 그러나 이 ‘핀란디아’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연주된 이후로 그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나아가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핀란드는 1809년 이래로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는데, 이 곡에서 시벨리우스는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하는 핀란드인의 정신과 희망을 노래했다. 곡의 초반에는 고난과 시련에 처한 현실로 인한 비탄이 처절하게 토로되고, 중반으로 접어들면 저항의 의지가 결연히 떠올라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며, 종반에는 투명한 분위기 속에서 찬가풍의 선율(핀란디아 찬가)이 떠올라 승리와 평화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댓글 중에 외국인조차 애국심을 느끼게 하는 이 곡은 훌륭한 곡이란 말이 있는데, 과연 그러하다.






시벨리우스바이올린 협주곡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1903-1904년 작곡, 1905 개정)


제1악장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제2악장 Adagio di molto 매우 느리게
제3악장 Allegro, ma non tanto 빠르되 지나치지 않게


바이올린은 시벨리우스의 악기였다. 그는 피아노를 먼저 배웠지만 9세 때 삼촌에게서 바이올린을 선물 받은 후로 이 악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바이올린연주법을 익히고 나서는 종종 누나의 피아노, 동생의 첼로와 함께 삼중주를 이루거나, 이웃들과 어울려 현악 사중주를 연주하곤 했다. 15세부터는 본격적인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한 때는 비르투오소를 목표로 기량을 연마하여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너끈히 소화해낼 정도의 실력을 갖추기도 했다. 비록 20대 후반에 이르러 출발이 다소 늦었던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며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은 접게 되지만, 그에게 있어서 바이올린은 평생 동안 가장 친근한 악기로 남아 있었다.


시벨리우스는 2개의 ‘세레나데’와 4개의 ‘유머레스크’를 포함하여 다수의 바이올린 소품을 썼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쉽게도 단 한 곡을 남겼다. 하지만 이 한 곡만으로도 그는 협주곡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과 브람스의 걸작들을 계승한 수작으로 꼽히는가 하면, 차이콥스키의 명작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곡에서 시벨리우스는 악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직 바이올린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지는 음악을 선보였는데, 특히 양단 악장들에서 두드러지는 약음기와 하모닉스의 효과적인 사용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절묘한 음향효과, 그리고 중간 악장에서 부각되는 끈질긴 선율선 등이 돋보인다. 아울러 교향곡과 교향시의 대가였던 그답게 교향악적인 구성과 짜임새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 곡의 주요 특징이며, 악곡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선율, 리듬 등 여러모로 핀란드적인 색채가 투영되어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한편 이 협주곡을 쓰던 무렵 시벨리우스는 곤경에 처해 있었다. 건강악화와 경제난에 시달렸고, 그 여파로 창작에 전념하기 어려워 고심했다. 무엇보다 ‘교향곡 제2번’의 대성공에 즈음하여 찾아든 불청객, 귀의 통증으로 인하여 그는 어쩌면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그러한 역경 속에서 작곡된 이 협주곡은 1903년 가을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초연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후 시벨리우스는 1905년 여름에 작품을 대폭 손질하여 ‘개정판’을 마련했고, 브람스의 선례를 참고하여 한결 정돈된 구성에 교향악적 색채를 강화한 이 개정판은 동년 10월 베를린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었다.




1. Allegro Moderato - 1:07 2. Adagio di molto - 17:18 3. Allegro, ma non tanto - 25:09 Jean Sibelius (1865 - 1957) Sarah Chang playing the solo violin Jaap van Zweden conducting the Radio Filharmonisch Orkest (RFO)


아, 3악장.ㅠ 두근두근. 사라 장의 저 확신에 찬 연주에 가슴이 설렌다.




Jean Sibelius 1865-1957 00:00 1. Allegro moderato 17:19 2. Adagio di molto 25:55 3. Allegro, ma non tanto Hilary Hahn, violin Esa-Pekka Salonen, conductor Swedish Radio Symphony Orchestra


3악장. 힐러리 한의 거침없는 매끄러움. 내가 이것을 기대했다. 이 지독하도록 정확한 운지법과 명쾌함에 심장이 뚫린다.

나는 이런 그녀를 기대했던 거야. 이토록 차고 매끄럽고 거침없는 얼음여왕 힐러리 한을.




The Mariinsky Orchestra Conductor: Sasha Mäkilä


호오... 클라라 주미 강의 시벨리우스 바협 47은 산뜻하고 가볍구나. 이런 느낌은 또 색다르군.




그리고 하이페츠. 이 미친 근사한 운지법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차고 맑고 바르고 뾰족하고 무심하다




아이작 펄만. 이 시벨리우스 바협 47번 3악장에 있어 내 귀에 가장 예쁜 것은 힐러리 한이고 가장 재밌는 것은 이자크 멀만이다. 위트마저 느껴지는 여유로움. 칼칼하게 시작하여 매끈하게 끝을 맺는 그 매끈한 여유로움이 즐겁다.




그리고 시작부분의 짧은 호흡으로 인해 더욱 부각되는 젊은 말발굽 느낌. 정경화 님의 이 연주는ㅡ어린 시절의 버전이긴 하다ㅡ내가 들은 버전 중 가장 젋고 칼칼하다. 듣는 내 몸 속의 피가 끓어 오를 것처럼.






시벨리우스교향곡 제6번 Sibelius, Symphony No. 6 in D minor, Op. 104 (1923년 작곡)


제1악장 Allegro molto moderato 매우 빠르면서도 알맞게
제2악장 Allegretto moderato 보통 빠르기보다 조금 빠르게
제3악장 Poco vivace 조금 쾌활하게
제4악장 Allegro molto 매우 빠르게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5번’의 피날레에서 등장시켰던 백조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아이놀라(시벨리우스의 저택) 상공을 선회하다가 은은한 햇살을 머금은 안개 속으로 ‘은빛 리본처럼’ 반짝이며 유유히 멀어져갔던 그 백조들은 아마도 보다 광활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지 않았을까. 그 다음 작품인 ‘교향곡 6번’에 대해서 시벨리우스는 “언제나 내게 첫눈의 내음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곡의 첫 악장은 마치 눈송이나 새처럼 창공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기분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6번’을 완성한 것은 1923년 초였다. 두 차례 개정을 거친 전작, ‘교향곡 5번’을 발표한 때로부터 짧게는 4년, 길게는 8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사실 두 작품의 착상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즉 1914년 가을, 그가 ‘교향곡 5번’을 구상하던 무렵에 작성한 노트에 훗날 ‘교향곡 6번’과 ‘교향곡 7번’에 활용된 아이디어들이 함께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향곡 6번’의 작곡이 구체화한 것은 1918년부터였는데, 그 해에 그의 조국 핀란드는 마침내 러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 공화국으로 출범했다.


처음에 시벨리우스는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일명 ‘서정적 협주곡’)을 쓸 생각도 했으나, 결국 진로를 변경하여 ‘4악장 구성의 교향곡’을 써나갔다. 작곡 초기에 그는 이 곡에서 창대하고 태평한 ‘교향곡 5번’에 대비되는 ‘거칠고 정열적인 성격’과 ‘목가적 대비를 지닌 어둠’을 부각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곡은 그의 교향곡들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온화한 작품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현 위주의 투명한 실내악적 텍스처가 두드러지고, 시벨리우스 특유의 ‘모티브 작법’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서도 소박하게 노래하는 듯한 선율미가 풍부하게 느껴지며, 음계 면에서는 ‘교회선법(도리아 선법)’이 적용되어 종교적 색채와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후반 악장들에서는 다른 곡들에서만큼 격렬하고 지속적이지는 않지만 역동적이고 투쟁적인 분위기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마지막 악장 중간의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소나무의 정신과 바람의 투쟁’ 대목에서 정점에 이른다.


눈송이와 새는 결국 지상으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이 곡이 작곡되는 동안 핀란드는 세계대전의 여파로 물자부족과 물가폭등에 시달렸고, 독립 과정에서 적위대와 백위대의 대립으로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시벨리우스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구나 그는 다시 시작된 음주벽 때문에 부인과 불화를 빚었고, 유력한 후원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카르펠란 남작과 몹시 아꼈던 동생 크리스티안을 차례로 잃는 아픔도 겪었다.



한편 시벨리우스는 이 곡의 작곡 동기에 대해서 “다른 작곡가들이 현란한 칵테일을 조제하고 있을 때 나는 청량한 샘물을 내놓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시벨리우스는 이 곡의 작곡 동기에 대해서 “다른 작곡가들이 현란한 칵테일을 조제하고 있을 때 나는 청량한 샘물을 내놓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20년대의 유럽 음악계는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프랑스 6인조’ 등을 비롯한 아방가르드의 조류가 휩쓸고 있었지만, 시벨리우스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보다 고전적이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독자적 방식을 고수해나갔던 것이다. ‘교향곡의 틀 안에서 쓰인 시’로 일컬어지는 이 곡은 그의 교향곡들 가운데 유독 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시벨리우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작품으로 통한다.









시벨리우스교향곡 제7번 Sibelius, Symphony No. 7 in C major, Op. 105 (1918-1924년 작곡)


시벨리우스가 남긴 7개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면 ‘제2번’과 ‘제5번’을 꼽아야겠지만,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면 ‘제4번’과 ‘제7번’이 수위를 다툴 것이다. 특히 ‘교향곡 7번’은 교향시 ‘타피올라’(1926)와 더불어 시벨리우스의 창작세계에서 정점에 위치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에 드러난 독창적 구성의 묘와 치밀하고 능란한 기법, 그리고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숭고한 정신성과 감동적인 고양감은 가히 시벨리우스가 도달한 궁극의 경지와 맞닿아있다고 하겠다.


전술했듯이 이 곡의 착상 시점은 ‘교향곡 5번’의 구상 단계와 겹치고, 작곡은 ‘교향곡 6번’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행되다가 전작보다 한 해 늦은 1924년 3월에 완료되었다. 시벨리우스는 1918년 5월에 쓴 한 편지에 이 곡에 대한 계획을 ‘삶과 활력의 기쁨, 정열적인 경과구를 수반한 3악장 구성’이며, 피날레는 ‘헬레닉(hellenic, 그리스풍의) 론도’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몇 차례 수정을 거쳐, ‘교향곡 6번’이 완성될 즈음 단악장 구성’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작품의 제목은 초연 당시(1924년 3월 24일 스톡홀름)에는 ‘교향적 환상곡Fantasia sinfonica’이었다가 이듬해 2월 총보가 출판되면서 비로소 ‘교향곡 7번’으로 확정되었는데, 이는 작곡가가 이 작품의 정체성을 두고 고심했음을 말해준다. 고전적인 다악장 구조에서 탈피한 이 곡을 과연 ‘교향곡’이라고 불러도 될 것인가? 하지만 그는 이전 교향곡들에서도 악장 간의 융합을 꾸준히 시도한 바 있었고, 교향곡에서 정녕 중요한 것은 다악장 구조라기보다는 주요 테마 및 섹션들 간의 대비와 균형, 그리고 전편을 관류하는 일관된 관념과 유기적 연결성이 아니던가?


악곡의 전체적인 구조는 신중한 아다지오, 쾌활한 스케르초, 심오한 피날레 등의 섹션이 순차적으로 배열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경계는 뚜렷하지 않으며 각 섹션이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다지오를 기저 템포로 펼쳐지는 유장한 흐름 위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에 한 번씩, 두 번의 스케르초가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심화된 흐름이 치열한 절정에 도달한 후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악곡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일단 다음 두 가지는 놓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하는데, 그 첫째는 곡의 첫머리에서 팀파니
의 타격 직후 등장하는 ‘C장조 상승음계’이고, 둘째는 그 후 신중한 흐름이 5분 가량 이어진 후 트롬본에서 떠오르는 영감 어린 ‘핵심주제’이다.무곡 풍의 두 번째 스케르초는 앞서 언급한 ‘헬레닉 론도’의 잔영이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결과적으로 시벨리우스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다. 그는 이 작품 이후 ‘교향곡 8번’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관련 악보를 전부 폐기했다


와... 친절하고 넘 고마운 설명이다.ㅠ 








황장원 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예습이 편하고 즐거웠다.

서울시향 소리 좋단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그동안 어째선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드디어 듣게 되는 서울시향, 그것도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이니 기대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