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권영우

by Vanodif 2017. 4. 4.


P82-95 

1982 

화선지 

116 x 89 cm


사진출처: 갤러리 현대




백색의 화가 권영우 님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기사: http://www.mmca.go.kr/notice/n33/33-e.html


권영우는 「바닷가의 환상」(1958년), 「섬으로 가는 길」(1959년) 등으로 연이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당시의 작품은 초현실적인 동시에 간결한 먹선으로 집약되는 추상성을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부터 붓과 먹의 사용에서 벗어나 한지를 붙이고 구멍을 내는 등 백색 한지라는 재료를 이용해 추상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무제」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시기의 주요 전시로는 1975년 도쿄 화랑에서 개최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전이 있다.

1964년부터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1978년 교직을 그만 두고 1979년 파리로 건너가 이후 11년간 파리화단에서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한지작업과 함께 과슈와 먹을 혼용한 단색조의 색채를 가미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다. 1990년 귀국 후에는 다시 백색의 종이 작업으로 돌아와 머리빗, 병, 달걀 포장용기 등의 오브제를 이용한 한지작업을 시도하며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그의 일생을 통한 한지 작업은 동양화 표현양식의 지평을 확대시킨 것으로 의의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영우 [Kwon Youngwoo, 權寧禹]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품 초기에는 동양화의 기본 재료인 수묵과 종이를 기반으로 했으나 1962년 전후 필묵을 버리고 종이 자체를 기반으로 하는 순수 추상에 전념했다. 그는 그리는 행위를 배제한 종이를 오리고, 찢고, 붙이고, 떼고, 손가락 혹은 손톱으로 밀어내는 등 평면에서 입체로, 통일에서 파괴로 변화를 시도하며 전통적 재료의 한계를 확장하는 추상형식미를 극대화했다. 뿐만 아니라 채색의 경우 찢겨진 부분으로 물감이 들어가는 우연적 현상을 통해 화선지의 물성을 드러냈으며, 화선지와 먹을 통해 담백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기법을 추구한 한국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http://cakorea.com/archives/4193















화실별견 畵室瞥見

1956


당시 누드화는 모델을 구하는 것도 힘들고 당국의 검열도 높아 그리는 것이 힘들었다 한다.

하여, 화실별견, 즉 화실을 흘끗 본다는 제목과 내용으로 모델의 뒷모습을 은근히 그렸고, 

그 모델을 그리는 화가를 검은색 선으로 표현한 데다, 이들을 훔쳐 보는 제 3자의 시선을 추가함으로써 

은근함과 관음이라는 요소를 또한 표현한 작품이다. ㅡ[변상섭의 그림 보기] 참조





바닷가의 환상 

1958

한지에 채색

137.5×138㎝

유족 소장



이 작품은 1958년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당시 철도청에서 구입하였는데

권영우 화백께서 이 작품을 아끼셨어서, 똑같은 것을 하나 더 그리셨고, 그것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원래 그리셨던 이 작품이 작년에 서울옥션의 경매에 나왔고, 그것을 유족이 구입하였다고.

화가께서 특별히 아끼셨던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하는 유족분들의 마음이 아름답다.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흔치 않은 초현실주의적 표현방법이 시도된 작품이다.



http://news1.kr/articles/?2938948





섬으로 가는 길

1959

224 x 190


구체적인 현실적 모티프에서 벗어나 순수한 추상의 작품에 이른 것은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에 해당되는 시점이다. 어떤 계기에 의해 추상으로 진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섬으로 가는 길>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대담한 생략과 압축은 추상으로의 추이를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구상적인 세계의 잔흔을 남기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전개의 과정은 엿볼 수 없다. 그의 추상적 패턴의 작품은 처음부터 화선지의 콜라주에서 출발되고 있다. 동양화의 기본적인 매재인 모필과 먹을 버리고 화선지를 화판에 콜라주해가는 순수한 종이 구성의 작품이다. 이는 동양화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적 방법을 일탈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붓과 먹 대신 종이와 풀과 칼이 도구의 전체로 대신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다는 방법을 벗어나 만든다는 새로운 방법의 천착이 비롯된 것이다. 무엇을 그리느냐, 어떻게 그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구성해 갈 것인가 란 문제가 전면으로 나온 것이다.


http://www.daljin.com/column/2910



(섬으로 가는 길)등 초기 작업에서 이미 회화의 구성원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강하게 드러난다. 대상의 묘사를 위해 사용되는 선들을 최소화하여 이들이 서로 중첩되 면서 만들어 내는 크고작은 면들의 어울림에 보다 비중을 두고 화면을 진행하고 있다. 


http://www.mmca.go.kr/notice/n33/33-e.html



이 작품. 묘하게 좋다. 단정하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선들이 살짝 교차하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오른쪽의 갈매기 한 마리가 없었다면 무기질적이기만 하다 여겨졌을 작품에, 갈매기 한 마리로 인해 미세한 박동이 가미된다. 돛을 가로지르는 검은 선인지 바탕 화선지의 무늬인지의 선들은 돛을 쓰다듬는 바람과도 같아, 마치 갈매기가 그 바람을 타고 있는 것 같은 가벼움의 느낌과 서늘한 촉감을 부여한다.






고요 

1960 

162x127

한지에 수묵



낚시터의 풍경. 절제. 정화. 여백. 

가만히 쳐다보면 공의 세계로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어진 작품들은 화선지를 화판에 발라 올리면서 채 물기가 가시기 전에 손으로나 또 다른 도구로 표면에 일정한 자국을 내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꾹 꾹 눌러 작은 구멍을 무수히 내는가 하면 주걱 칼로 부분 부분을 밀어 바탕을 드러나게 한다든지 일정한 방향으로 칼질을 가하여 찢겨진 자국을 그대로 들어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부분적으로 색채를 가하여 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섬세한 칼자국으로 암시적인 선조의 구성을 시도해 보이기도 한다. 흰 종이가 주는 균질한 질감 위에 일정하게 가해지는 충격으로 인해 생겨난 구멍이나 뜯겨진 자국은 은밀한 내재율로 인해 잔잔한 여운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더없이 고요하면서도 탄력적인 상호견인으로 인해 화면 전체에 밀도를 더하고 있다...(중략)...격렬한 동작이 지나간 흔적은 화면과 작가와의 대결이 갖는 투명한 의식을 은밀히 바닥으로 침잠시킨다. 그것은 평면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의 퇴적을 대신해준다. 


http://www.daljin.com/column/2910





사진: 갤러리 현대 

http://www.galleryhyundai.com/?c=exhibition&s=1&mode=current&op=&past=&year=&gbn=slider&gp=1&ix=107&start=0



P80-97 

1980 

화선지 

162 x 130 cm





P82-8 

1982 

화선지 

162 x 130 cm



참 좋다. ㅜㅠ






무제 

한지에 과슈, 먹 

224 x 170 cm





무제 

한지에 과슈, 먹 

81 x 65 cm




무제 

한지에 과슈, 먹 

100 x 81 cm





무제 

1986

 224 x 170 cm







무제

 1986 

한지에 과슈, 먹 

224 x 170 cm






무제 

1991

 한지에 혼합재료 

117 x 91 cm





무제 

1991 

한지에 혼합재료 

162 x 112.5 cm



야아... 이 작품은 너무 예쁜데?

직접 한 번 보고 싶다.

한지의 하얗게 솟아오른 부분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을 것 같아.

서늘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무제 

1992 

한지에 혼합재료 

117 x 91 cm






무제 

1992

 한지에 혼합재료 

130 x 62 cm